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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대선(大選)

사진으로 보는 대선(大選) 뒤안길

熱望과 希望, 失望이 엇갈리는 민주공화국의 드라마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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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조선일보DB
초대 대통령은 1948년 7월 20일 국회에서 선출했다.
총 196표 중 180표를 얻어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48년 대한민국헌법이 공포됐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선포했다. 유사(有史) 이래 민주주의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이 나라의 어린 백성들은 ‘민주’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정치’를, 공화국이란 ‘나랏님을 내 손으로 뽑는 나라’로 이해했다.
 
  그로부터 69년, 18번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11명의 대통령을 뽑았다. 때로는 국회에서, 때로는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출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것이 국민적 비원(悲願)이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선거포스터.
신익희 대통령 후보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급서했지만, ‘못 살겠다 갈아 보자’는 외침은 선거구호의 고전으로 남았다.
자유당은 “갈아봤자 더 못 산다” 등의 구호로 맞섰으나, 호응은 적었다.
  6월 민주화운동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것이 3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국민의 환호 속에 뽑힌 6명의 대통령도 말로는 험했다. 감옥으로 가거나 자살하거나 탄핵소추로 쫓겨났다. 망명을 하거나 쿠데타로 쫓겨나거나 암살당한 전임자들보다 나을 게 없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사는 박복한 이 나라의 현대사 그대로다. 난데없이 치르게 된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목전으로 닥쳐온 지금, 사진을 통해 지나간 대통령 선거의 뒷모습들을 반추해 본다.⊙
 
1960년 8월 13일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열린 제4대 대통령 취임식.
윤보선 대통령은 8월 12일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71년 제7대 대선 당시 지방 유세 도중 울산지역 거리에 붙은 자신의 선거벽보를 바라보는 김대중 신민당 후보.

육영수 여사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남편의 선거 유세를 보러 대전공설운동장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그는 청중이 그를 알아보는 바람에 결국 단상으로 올라와야 했다.
꼭 40년 전 제6대 대통령 선거 때의 일이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내가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호소했다. 김대중 후보에게 94만여 표 차이로 승리한 박 대통령은 이듬해 유신을 선포, 직선제를 폐지했다.

1980년 9월 1일 제11대 대통령 취임식.
전두환 대통령은 그해 8월 23일, 최규하 전 대통령은 1979년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6년 만에 직선제로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그동안 내연(內燃)해 오던 지역감정이 분출된 선거였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후보는 다른 후보의 지지 지역에 가서는 돌팔매질을 당해야 했다.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격돌했던 1992년 제14대 대선에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통일국민당 후보로 출마, 22%를 득표했다.

1997년 7월21일 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제15대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이회창 후보와 경쟁상대였던 이인제 후보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후 이인제 후보는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출마해 492만여 표를 획득, 이회창 후보 패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제16대 대선 유세 마지막 날인 2002년 12월 18일 밤 서울 명동에서 유세를 하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
노무현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로 노 후보가 급부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정몽준 의원은 이날 밤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를 선언했지만, 노 후보의 당선을 막지는 못했다.

2007년 8월 20일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사실상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본선이나 다름없었다.
박근혜 의원을 꺾은 이명박 후보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상대로 531만 표 차로 압승했다.

2012년 제18대 대선 당시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다.
지금 두 사람은 지지율 1, 2위를 다투고 있다. 누가 승자가 될까?

흰 눈을 맞으며 선거 유세를 하는 2012년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이때 그는 임기를 채우지도 못하고 대통령직에서 내려오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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