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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의 KOREA WATCH

한국 거부(巨富)들의 원형은 애국이었다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gsmoon@chosun.com

사진 : 이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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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의령관문 앞을 지나는 남강에 솥바위가 있다.
물밑으로 솥처럼 세 다리가 뻗어 있는 방향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세 부자가 태어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진주 지수면 승산마을은 GS-LG의 모태, 그들은 모두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경상남도 진주 근처에 지수면 승산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멀리 방어산(防禦山)이 버티고 있고 거기서 뻗어 나온 보양산이 용(龍)이 머리를 조아린 듯 동네를 감싸고 있다. 나지막한 한옥들을 작은 개천이 가르고 있다. 상리, 하리라고 사람들은 부르는데 상리는 구씨(具氏), 하리는 허씨(許氏)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지수면 승산마을은 천하의 명당이다. 가운데 구름 사이로 방어산이 마을을 지키고 있고 왼쪽으로는 보양산이 승산마을을 감싸안고 있다. 풍수에서 말하는 회룡고조형이다.

지금은 폐교된 지수초등학교 터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명당의 기운이 뭉쳐 있다고 했다.
태풍이 불어도 학교 안에 들어서면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마을 맞은편에 지금은 폐교된 지수초등학교가 있다. 구령대 뒤에 큰 소나무의 뿌리가 머리를 맞댄 듯 자라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이 이 학교를 함께 다녔던 오늘날의 LG그룹 구인회(具仁會) 창업주, 삼성그룹 이병철(李秉喆) 창업주를 상징한다고 한다. 다시 마을로 돌아가 허씨들이 살았다는 한옥들을 살펴본다.
 
지신정 허준 선생 생가. 지신고가라고 쓰여진 집이 지금의 GS그룹의 모태가 된 지신정 허준 선생이 살던 곳이다.
  주인공은 지신정(止愼亭) 허준(許駿·1844~ 1932)과 그의 아들인 효주 허만정(許萬正·1897~ 1952) 선생이다. 영남의 만석꾼으로 불린 허준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자였다. 그는 승정원에서 봉직(奉職)하다 세상이 시끄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가난한 농민들에게 땅 200평씩, 모두 800두락을 나눠 줬다.
 
허씨마을 전경.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의 골목 풍경이다.
작은 개울을 경계로 왼쪽이 구씨 집성촌이고 오른쪽이 허씨 집성촌이다.

관서오호장이라 불린 허동립 장군이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에 세운 연정(蓮亭)에는 지금 연꽃이 만발해 있다.
  이후 그는 독립운동과 육영(育英)사업에 매진했다. 땅을 농민들에게 나눠 준 것 외에도 국고(國庫)가 비면 스스로 채웠다고 한다. 그 맥을 아들 효주 선생이 이어 갔다. 학교를 세우고 백정들의 해방운동도 지원한 덕에 6·25가 터졌을 때 그의 마을은 빨치산의 횡포로부터 무사했다. 덕(德)은 말 그대로 넓은 품성을 말한다.
 
구인회 창업주가 살던 집이다.
  효주 선생은 이병철이 지금의 효성그룹 조홍제(趙洪濟) 창업주와 삼성그룹을 세울 때 큰아들 허정구(許鼎九·1911~1999)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을 보냈고 허정구는 삼성물산 초대 사장을 지냈다. 그런가 하면 구인회가 LG그룹을 세울 때 도왔으니 이곳이야말로 애국적 한국 자본주의의 씨를 뿌린 시배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령 정곡면 이병철 삼성 창업주 생가에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들이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생가 뒤편에는 쌀가마니가 쌓여 있는 듯한 형상의 바위도 있다.
부자가 태어난 곳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승산마을에서 멀지 않은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에 이병철 창업주의 생가가 잘 보존돼 있다. 이 집 역시 풍수(風水)에 문외한이 봐도 예사롭지 않다. 집과 연결된 마두산 자락이 이 집 주변에선 노적가리가 쌓여 있는 노적봉(露積峰) 형상인 데다 집 바로 뒤의 바위들이 거북이 아니면 쌀가마니를 쌓아 놓은 듯 기이한 모습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생가 뒤편에 있는 바위가 마치 거북이처럼 생겼다.

이병철 창업주 생가.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생가는 고인의 품성처럼 정갈하기 그지없다.
  안내인은 말했다. “원래 집과 이어진 산의 이름이 말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마두산(馬頭山)이었는데 호암(湖巖·이병철 창업주의 호)이 유명해지면서 호암산으로 바뀌었지요. 한문은 틀리지만요. 산의 기운이 흐르다 혈(穴)이 맺힌 곳이 이 집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맞은편 한옥은 이건희 창업주의 생가라고 한다.
 
 
  함안 군북면 효성 조홍제 창업주 생가에는 지금도 태극기가 휘날린다
 
효성 조홍제 창업주 생가. 경남 함안의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 생가는 기울어져 가는 그룹의 모습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다시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로 가 본다. 자그마한 골목을 빠져나오면 양편에 태극기가 걸린 정갈한 한옥이 효성 조홍제 창업주의 생가다. 한창 때보다 기세가 꺾인 그룹의 모습처럼 돌보는 이 없이 굳게 닫혀 있지만 한옥의 자세가 빈틈없다. 누군가는 “명당이라기보다 자식 교육을 잘 시켰을 것 같은 집”이라고 말했다.
 
 
 
전북 고창 인촌 김성수 생가에는 두 형제의 우애가 어려 있어

 
전북 고창의 인촌 생가 가운데 가장 안쪽이 인촌 선생이 기거하던 집이다.

전북 고창의 인촌 김성수 선생 생가에는 고인을 비롯한 가족들의 작은 동상이 놓여 있다.
  경상남도에서 삼성·LG·GS·효성그룹이 발아했다면 전라북도 고창의 인촌 김성수(金性洙·1861~1955) 선생 생가는 호남(湖南) 부잣집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일자(一字)로 지은 집은 인촌과 그의 동생 김연수 선생이 살던 곳이다. 앞에는 동생이 살던 집으로 작은 문을 통하면 뒤편의 인촌이 살던 집에 연결돼 있다. 인촌 생가는 집 자체보다 앞의 풍광이 일품이다. 부안과 변산반도 쪽 산맥이 너른 평야를 앞에 두고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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