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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교동도에 울려 퍼지는 망향가

글·사진 : 이오봉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ob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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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가을 들녘, 화개산 정상에서 본 황해도 연안군 일대. 예전 같으면 배로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와룡지 너른 들에 / 뜸북새 지새 울고 / 북신당 맑은 샘물 / 솟구쳐 흐르는지
  그리움 구름 되어 / 비봉을 찾아 드니 / 한 서린 안개 피어 / 눈앞을 가리누나.
 
  65년 전 교동도로 피란 온 황해도 연백 출신 실향민의 한이 담긴 망향시 한 구절.
  강 건너 고향 땅이 아련히 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연백군민 망향대에 새겨져 있다.
 
교동면 고구리 화개산 기슭에 있는 조선시대 한증막. 조선시대 후기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른 10여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규모다. 한국전쟁 전에는 강 건너 연백 주민들도 배를 타고 찾아오기도 했던 곳이다. 1970년 초까지 교동도 주민들이 사용했다.
  인천시 강화군 교동도(喬桐島)는 해안선 36km가 거의 철책으로 둘러쳐진 섬이다. 지금은 휴전선 때문에 쉽게 오가지 못하지만 예부터 개경(개성)과 한양(서울), 중국을 오가는 뱃길 중심에 있어 인적·물적 교류의 중심지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황해도 연안군과 배천군 군민 3만여 명이 배를 타고 건너와 피란살이를 했던 섬이다. 현재 인구는 3000여 명. 그중 인천 등지로 뿔뿔이 흩어지고 살아남은 100여 명의 황해도 실향민들은 오늘도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고향 땅을 다시 밟을 그날을 기약 없이 기다리며 살고 있다.
 
1626년(인조 7년)에 교동도의 주산인 화개산(華蓋山) 남쪽 기슭에 축성한 교동읍성. 둘레는 779m. 동·남·북 세 곳에 성문이 있었으나 다 허물어지고 남문인 홍예문만 남았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시작점이기도 한 교동도가 지난해 7월 강화도 양사면 인화리와 교동면 봉소리를 잇는 길이 3.44km의 연륙교가 놓이면서 섬이 아닌 육지가 됐다. 너른 가을 들녘 끄트머리 철조망 저 너머 북녘으로 황해도 연백평야와 개성 송악산이 바로 코앞에 보인다. 이곳에서 제일 가까운 북한 땅과는 2.6km밖에 안 된다. 그래서 재작년과 지난해 북한 주민들이 헤엄쳐서 건너와 귀순을 하기도 했다. 지난 8월 남북대치 상황이 벌어지면서 대북방송 시설이 설치된 교동면 지석리와 인사리 철책 인근에 사는 일부 주민들이 대피를 하기도 했지만, 교동도는 분단 이후 아무런 군사 충돌이 없었던 평화의 섬이다.
 
  60~7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섬 교동도를 사진에 담았다.⊙
 
교동면 읍내리 비석군. 교동 지역 목면관인 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도호부사, 방어사 등의 공적비 40여 기를 한데 모아 세웠다.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인 교동향교. 고려 충렬왕 12년(1286년) 문성공 안향(1243~1306)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모셔와 이곳에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전남 해남이 조선시대 선비들의 유배지였다면 교동도는 왕족들의 유배지였다. 한양과 가까우면서도 조류가 급해 접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충헌에 의해 쫓겨난 고려 21대 왕 희종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안평대군, 연산군, 임해군, 능창대군 등 11명의 왕족이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조선 후기에는 서해안 방어를 위해 교동읍성 안에 경기, 충청, 황해도를 지키는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을 설치했다.

강 건너 황해도 연안군 해성면에서 내려와 1965년 7월 10일자 이용사 면허증을 걸어놓고 오늘날까지 50여 년간 영업을 하는 대룡시장 안 지광식(76)씨의 교동이발소.

옛 모습을 간직한 교동도 대룡시장의 옛 시장 풍경을 담는 벽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 온 연백군민의 생활 터전이기도 했던 대룡시장. 아직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60~70년대 우리네 재래시장을 보는 듯하다.

화개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강화도, 석모도, 주문도, 볼음도 등이 아스라이 보인다. 오른쪽 교동도 연안에 조선시대 수군통어영이 있던 남산포가 자리 잡고 있다.

교동도를 찾은 신현수(66)씨가 돌아가신 시어머님께 혼백이라도 연백 고향 땅에 가보시라며 교동도 앞바다에 평소 좋아하던 붉은 제라늄 꽃을 헌화하고 있다.

교동도 주산인 화개산 정상.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하구에 자리 잡은 교동도는 북방 한계선(NLL) 너머 황해도 연백평야와 마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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