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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속으로

청년 세대의 새 트렌드- ‘소확행’에서 YONO로

아주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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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LO(You Only Live Once·인생은 오직 한 번뿐)’에서 ‘YONO(You Only Need One·꼭 필요한 것만 구매한다)’로
⊙ “‘아보하’는 행복을 자랑하고 과시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의미”(김난도)
⊙ 청년층 1인 가구 증가… ‘무지출 챌린지’(한국), ‘봇치족’(일본), ‘저소비코어’(미국)
⊙ 〈리틀 포레스트〉 〈동백꽃 필 무렵〉 등 흥행 성공은 ‘미니멀 라이프 트렌드’ 반영
⊙ 20대 남성 섹스리스 비율 29%, 20대 여성은 43%… 파트너 없고 관심 없다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리틀 포레스트〉(2018)
  “‘욜로(YOLO)’는 가고 ‘요노(YONO)’가 온다.”
 
  지난 두 달여 동안 각종 경제지부터 종합지, 지상파 방송 생활 정보 프로그램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언론 미디어에서 새로운 청년층 풍속도(風俗圖)를 소개하며 사용한 공통된 레토릭이다. 특히 상품 시장에서 이를 민감히 받아들여 경제지나 경제 방송 등에서 반영도가 상당히 높았다. 예컨대 《매일경제》에선 지난 7월 말부터 9월 말까지 두 달여 동안만도 관련 기사를 9건이나 쏟아냈다.
 
 
  ‘무지출 챌린지’
 
  ‘욜로’에 대해서라면 이제 많이들 친숙할 듯싶다.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라는 의미의 “You Only Live Once”라는 영어 단어 앞 글자를 이어 붙인 신조어다. 한국에선 2010년대 중후반부터 유행한 젊은 층 풍속도다. 대략,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느라 인생을 소진(消盡)하는 일을 그만두고 지금 내 앞의 삶을 최대치로 즐기며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사고방식을 담았다. 이런 태도가 범람하면서 젊은 층의 과소비 풍조를 부추겼다는 부정적 평가도 잇따랐다. 그럼 ‘요노’는 또 뭘까. 《한국경제》 7월 28일 자 기사 〈오마카세 대신 간편식, 택시보단 버스… 2030이 변했다〉를 보자.
 
  〈최근 청년들이 달라지고 있다. 소득은 찔끔 오른 반면 물가와 금리가 치솟자 욜로와 정반대 개념인 ‘요노(YONO·You Only Need One)’형 소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다. 요노는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한다’는 뜻으로 사치보다 실용성을 추구하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의 소비 성향을 드러낸다.… 2030 세대 소비가 축소 지향적으로 바뀐 가장 큰 이유는 고물가와 고금리 여파로 주머니 시장이 빠듯해져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구주 나이가 39세 이하인 2030 세대의 작년 평균 소득은 65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3.6%)의 절반 수준이다. 같은 기간 40대와 50대 가구주의 가구소득은 각각 6%, 3.2% 늘며 2030 세대보다 개선됐다. 고금리에 따른 이자 부담도 청년에게 가중됐다.〉
 
  이 기사는 이러면서 농협은행의 은행·카드·유통 거래 데이터를 통해 드러난 수치, 즉 지난해보다 9% 감소한 2030 세대의 외식 건수, 이 중에서도 한 끼 식사가 10만~20만원에 달하는 뷔페 소비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4% 줄고 대신 간편식 소비가 21%나 증가한 점, 그리고 전년 동기 대비 11% 줄어든 2030 세대의 수입차 구매 건수와 21% 줄어든 택시 이용 건수 등을 “‘욜로(YOLO)’는 가고 ‘요노(YONO)’가 온다”의 근거로 삼았다.
 

  물론 이 같은 변화는 1~2년 전부터도 몇몇 신종 유행을 통해 어느 정도 감지되고 있던 터다. 예컨대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한 ‘무(無)지출 챌린지’를 들 수 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 간다거나 커피숍 대신 집에서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담아 갖고 다니는 식으로 생활비를 줄여 “오늘은 한 푼도 지출하지 않았다”는 점을 가계부 어플이나 금융 어플 등을 통해 인터넷상에서 인증하는 놀이다. 2022년 8월 기획재정부가 이 ‘무지출 챌린지’를 독려하는 이미지를 배포해 작은 논란이 인 적도 있다.
 
 
  2030 세대의 돌변
 
  이렇게 놓고 보니 신종 사회현상이라는 ‘요노’도 현(現) 기성세대들에겐 어딘지 기시감(旣視感)을 불러일으키는 것일 수 있다. 1997년 IMF 외환(外換) 위기를 맞았던 당시 X 세대의 의식 변화와 유사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때도 X 세대는 소비주의 성향이 강해 ‘선(先) 세대가 일군 경제 성장의 열매를 따 먹는 세대’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막상 외환 위기를 맞아 취업 대란부터 불거지기 시작하자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운동’ 등으로 180도 방향을 뒤집어 전혀 다른 세대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이렇게 현 2030 세대도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2022년 무렵부터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경제 구조에 충격이 오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방향성이자 모토(motto)를 180도 전환하게 됐다는 것.
 
  나아가 ‘요노’는 전 세계적 경제 상황 변화와 맞물리는 사회현상이기에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니게 됐다. 예컨대, 미국 Z 세대에선 근래 ‘저(低)소비 코어(Underconsumption Core)’라는 신조어가 탄생하며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는 분위기다. 《한국경제》 9월 23일 자 기사 〈“액정 깨진 휴대폰 자랑하던 친구 이상했는데”… 2030 ‘돌변’〉이 이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지난 7월 《뉴욕포스트》 등 외신도 ‘저소비 코어’를 소개하면서 “인플루언서들의 명품 하울(Haul·명품 등 물건들을 작동해보면서 품평하는 동영상-편집자 주) 등 ‘과소비’에 지친 청년들이 수준에 맞는 ‘정상적인 소비’를 추구하고 있다”며 “부분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의 산물로 보인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저소비 코어’가 기존 절약 정신과 다른 점은 소비를 줄이는 것을 사진이나 영상 등 콘텐츠로 제작해 널리 알린다는 점이다. 틱톡, 인스타그램 등에서 관련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은 6000여 개 이상이다.〉
 
  순서를 따지고 보면, 2010년대 들어 소셜미디어(SNS) 열풍과 함께 서로 간 비교심리가 극단으로 치달아 전 세계적으로 명품 소비 등 과소비 풍조가 일어났고, 이는 특히 미디어 민감성이 강한 청년 세대 내에서, 또 어느 정도 소비 여력을 갖춘 선진국들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그러다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여파로 2022년 무렵부턴 청년 세대 분위기가 180도 바뀌어 새로운 풍조로 이어지게 됐다는 흐름이다.
 
 
  ‘미니멀 라이프 트렌드’
 

  큰 차원에선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적 환경 변화만이 ‘요노’ 열풍 원인이라 보긴 힘들다. 당대 대중심리 변화가 격렬하게 드러나는 대중문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면 더더욱 그렇다. 대중문화 유행을 통해 봤을 때 한국에서 ‘요노’와 같은 삶의 방식 추구는 2022년 이전, 심지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도 이미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2018년 한국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깜짝 흥행을 들어볼 만하다. 도시에서 살던 젊은 여성이 어느 순간 치열한 일상을 멈추고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 직접 키운 농작물로 매 끼니를 해결하며 소박한 삶을 꾸려나간다는 얘기다. 제작비 15억원 정도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져 손익(損益)분기점은 관객 80만 명 선으로 발표됐지만, 청년 세대의 예상 밖 호응 덕에 최종 관객 151만 명으로 그 배 가까운 성과를 얻어냈다. 호응도가 확인되자 방송계가 이를 이어받았다. 2019년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과 2021년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등장이다.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지방 소도시를 무대로 그곳에서 사는 이들의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다루며 젊은 층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아 대히트를 기록했다.
 
  당시 이들 콘텐츠 붐은 농어촌을 배경 삼은 ‘힐링 드라마’ 트렌드로 해석되곤 했지만, 지금 시각으로는 2010년대 초반부터 밀려온 ‘미니멀 라이프’ 트렌드가 대중문화 콘텐츠로 전이(轉移)된 형태라는 당시 소수(少數)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여기서 미니멀 라이프는 사실상 말만 바꾼 ‘요노’나 다름없었다. 해당 트렌드가 국내 언론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기 시작한 게 2012년 무렵부터고, 이후 관련 서적으로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조슈아 필즈 밀번·라이언 니커디머스의 《미니멀리스트: 홀가분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이나가키 에미코의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등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일본에서부터 시작
 
2016년 NHK 드라마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요노’는 2022년 인플레이션 대란으로 진행 속도가 격렬해졌을 뿐, 대략 10년여 전부터 착실히 젊은 층에 뿌리내려온 흐름이라는 얘기다. 갑자기 생겨난 변화가 아니다. 그리고 그 바탕 중 하나인 위 미니멀 라이프 서적 중 유독 일본 서적이 많다는 인상도 틀린 게 아니다. 실제로 한국의 ‘요노’ 또는 미니멀 라이프 트렌드는 애초 일본의 그것을 바탕으로 삼아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앞선 영화 〈리틀 포레스트〉부터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일본 만화가 원작이고, 영화 버전 역시 일본에선 2014~2015년에 걸쳐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 두 편의 영화로 먼저 영상화된 바 있다.
 
  한편, “You Only Need One” 취지에 더 걸맞은 도시형 미니멀 라이프 콘텐츠로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도 있었다. 유루리 마이가 2015년 발간한 만화 에세이로, 잡동사니로 뒤덮인 집에서 하나둘씩 별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자기 물건들을 버리며 결국 ‘아무것도 없는 집’을 만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인터넷 블로그 연재 당시부터 폭발적 인기를 모아 서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결국 2016년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6부작 드라마로 제작해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이 밖에도 많다.
 
  일본에서 ‘요노’, 또는 미니멀 라이프 유행이 문화 분야에서 시작된 건 대략 2011년 곤도 마리에의 서적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 일본에서만 170만 부나 팔려나가는 문화현상을 일으키면서부터다.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1991년 버블경제 붕괴 이후 크게 알뜰해진 일본인들의 달라진 소비 풍조를 거론하기엔 시간적으로 거리가 있고, 무엇보다 2010년대 일본은 인구절벽 문제로 청년층 취업에 숨통이 틔고, 아베노믹스 효과로 실물 경제 회복과 함께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던 고질적 디플레이션으로부터도 탈출을 꾀하던 때다. 시대 공기(空氣)가 버블 붕괴 당시와는 전혀 다르다.
 
 
  ‘봇치족’
 
  이 때문에 일본에서도 해당 붐의 원인에 대해선 경제 부문이 아니라 2030 세대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 및 관련 문화의 급부상에 무게를 두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2010년대 들어 이 같은 현상이 가속화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봇치족(ぼっち族·외톨이족)’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것도 이때쯤이다. 이렇게 3~4년 흐른 뒤 등장한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2014년 12월 5일 자 기사 〈가족도 동료도 있지만… 혼자서 만끽 ‘봇치족’〉을 보자.
 
  〈‘봇치족’은 그저 고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독신 지향이 강한 사람도 아니다. “여행은 반드시 혼자서” “영화는 혼자 감상한다” “혼자 커피를 마시면서 독서를 즐기고 스마트폰을 본다”… 그 배경에 있는 것은 세대, 성별, 지역 등에 따른 취미의 다양화다. 가족이라 해도 각자가 자신의 리듬으로 소비를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동이 증가해 혼자 즐길 수 있는 이들이 많아진 것도 한 요인일지 모른다.… 총무성의 사회생활 기본조사에 의하면 일본인이 교제(交際)에 사용하는 시간은 해마다 감소 경향으로, 데이터가 확인되는 2011년은 전체적으로 하루 19분이며 이는 2001년보다 약 30% 줄어든 수치다. 연령별로는 20~24세의 감소폭이 크다. 향후 소비를 생각하는 데 있어 ‘외톨이’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듯하다.〉
 
  같은 ‘봇치족’ 현상을 국내에 전한 《동아일보》 2015년 6월 15일 자 기사 〈‘1인용 상품’ 속에 파묻힌 日 외톨이족〉은 “일본에서 고독감을 즐기는 봇치족이 늘면서 이들을 겨냥한 상품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며, 특정 공간에서 각자 헤드폰을 통해 음악만 동일하게 무선으로 받아 홀로 춤추며 즐기는 ‘사일런트 디스코’, 1인용 텐트, 1인용 바비큐 그릴, 1인용 영화관, 그리고 혼자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 모습으로 기념 촬영하는 ‘솔로 웨딩’ 상품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결국 ‘1인 가구’ 현상은 단순히 혼자서 생활을 꾸려간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점에선 순서가 정반대로, 젊은 층에서 점차 사회적 관계 맺기를 꺼려해서 타인들과의 교제 시간을 대폭 줄이며 혼자만의 세계를 즐기게 됐으니 그 심리적 경향이 ‘1인 가구’ 증가로 이어지게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일자리 등 현실과의 타협이 함께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상황을 다분히 유심론적(唯心論的)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 어찌 됐든 이렇게 사회적 관계 면에서 대폭 위축된 세대가 새롭게 경제활동 인구로 편입되고들 있으니 대중심리 차원에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시(誇示)용 소비’라 해봐야 엄밀히 소비를 통해 얻은 소유물을 자랑할 만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 몇 없게 됐다. 이에 욕구 또한 자연스럽게 사그라지게 됐다.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소유물을 전시해 과시하려는 행태가 화제로 떠오른 일이 있는데, 그것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적(私的)으로 연결된 사람들을 향한 것일 뿐 아예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들에게까지 과시하며 스스로의 자존감(自尊感)을 채우려는 이는 소수라고 봐야 한다. 결국 관계가 점차 휘발(揮發)되다 보면 모든 것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문제로 돌아오게 되고, 위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처럼,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You Only Need One”의 부상(浮上)이다.
 

  쉽게 눈치챌 수 있듯, 위 일본의 젊은 층 풍속도, 특히 ‘봇치족’ 양상 등은 이제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일이다. 앞선 ‘사일런트 디스코’는 코로나19 팬데믹 즈음부터 한국에서도 유행, 하나둘 이벤트가 늘어가며 한강시민공원에서도, 을지로의 좁은 골목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나 홀로 캠핑,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등 역시 이 같은 신조어까지 등장시켰을 만큼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고 보면 ‘요노’ 이전에 등장했던 그 징검다리 격 개념, ‘소확행’이라는 삶의 추구 경향 역시 일본발(發)이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축약어인 ‘소확행’은 크고 거창한 욕망의 추구보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히 실현할 수 있는 행복 지점을 추구하자는 의지를 가리킨다. ‘욜로’가 점차 명품 소비 등 과소비 지향으로 흘러가자 나온 그 수정(修正) 버전으로, ‘일과가 끝난 후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등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챙겨나가자는 취지다. 그리고 이 신조어는 저명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게르한스섬의 오후〉에서 처음 쓰인 말이다. 이렇게 일본 서적에서 시작된 말이 한국에서도 공감을 얻어 2018년 취업 포털사이트 인크루트가 조사한 ‘2018 올해의 유행어’ 1위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性관계에도 흥미 없는 20대
 
  이렇듯 일본에서 시작된 젊은 층 풍속도가 2010년대 중반을 넘기며 한국 젊은 층에서도 가감(加減)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간명하다. 일본의 미니멀 라이프 트렌드가 기본적으로는 청년층 ‘1인 가구’ 증가 및 청년층의 사회적 관계 휘발에서 비롯됐듯, 어느 순간부터 한국 청년층도 같은 문제를 안게 됐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5.5%까지 늘어났고, 여기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 집단이 12.5%의 20~30대였다. 이다음이 10.0%의 60~70대다. 2000년의 1인 가구 비율이 15.5%였음을 돌이켜보면 어마어마한 증가 추세다. 일본 역시 일본 총무성이 2021년 발표한 조사에서 1인 가구는 전체의 38.0%로 드러났다. 이는 20여 년에 걸쳐 청년층 비혼 경향이 누적돼 이제 중년 세대까지 1인 가구가 치고 올라간 결과로, 50세 시점에 미혼인 남성은 28.3%, 여성은 17.9%로 집계됐다. 2000년 조사에서는 이 수치가 남성 12.6%, 여성 5.8%였다. 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일본에선 ‘봇치족’이, 한국에선 ‘나 홀로족’이 탄생
 
  사회적 관계의 휘발 정도도 일본이든 한국이든 이제 비슷해졌다. 늘어가는 청년 고독사(孤獨死) 등 ‘외로운 청년 세대’ 관련 보도는 지난 수년간 끊이지 않고 보도되며, 20대에 가장 왕성할 수밖에 없는 남녀관계까지도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염유식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와 최준용 연세대 의대 내과학교실 교수가 발표한 ‘2021년 서울 거주자의 성(性)생활’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섹스리스 비율은 29%로 남성 전(全) 세대 중 가장 높았다. 20대 여성도 43%로 여성 전 세대 중 60대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했다. 성관계를 갖지 않는 이유에 대해 20대 남성은 ‘파트너 없음’과 ‘흥미 없음’이 1, 2위를 차지했고, 20대 여성은 ‘흥미 없음’이 압도적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러니 일본에선 ‘봇치족’이, 한국에선 ‘나 홀로족’이 탄생하고, 관계의 휘발과 함께 빚어지는 미니멀 라이프, 요노 등의 현상도 사실상 공유하게 된 셈이다. 그러고 보면 ‘요노’와 비슷한 ‘저소비 코어’가 벌어지고 있다는 미국도 큰 차원에선 비슷한 사회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미국의 1인 가구 비율은 역대 최고 수치인 29%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국 뉴욕대의 사회학자 에릭 클리넨버그는 “충격적인 사회 변화”라며 “지난 세기에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놓쳐버린 최대의 인구통계학적 변동”이라 논평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요노’ 등 청년층 풍속도와 이를 만들어낸 청년층 ‘삶의 철학’ 차원 변화들이 상당 부분 ‘얀테의 법칙’을 따라가고 있다며 우려하기도 한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등 온라인 공간에서 이런 얘기들이 자주 나온다. 남들을 따라잡으려 애쓰지 않으며 본인들만의 생활양식을 고수한다는 차원을 넘어, 타인들과 딱히 상호작용을 주고받지 않으려는 자폐(自斃)적 태도와 ‘나는 특별하지 않고, 특별해지고 싶지 않다’는 체념의 의식을 내비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는 것.
 
 
  ‘얀테의 법칙’
 
  ‘얀테의 법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마땅히 갖춰야 하는 삶의 자세로서 통용된다는 지역 특화 생활 규범을 가리킨다. 노르웨이 작가 악셀 산데모세가 1933년에 내놓은 소설 《도망자는 자신의 발자국을 넘어간다》에서 처음 등장한 뒤 공감을 얻어 퍼져나갔다. 간섭을 거부하는 개인주의 극단이자 어떤 종류의 개인적 우월감 표출도 부정하며 심지어 그를 죄악시하는 사회적 태도를 보여준다. 10가지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2. 당신이 남들보다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마라.
  3.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4. 당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5. 당신이 남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6. 당신이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7. 당신이 어떤 일이든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8. 남들을 비웃지 마라.
  9. 누군가 당신을 걱정하리라 생각하지 마라.
  10. 남들에게 어떤 것이든 가르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보기만 해도 갑갑한 내용이지만, “소탈하게 살자”라는 권유가 “소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當爲) 또는 윤리처럼 옮아가기 시작하면 이런 억압적 생활 규범으로 변모해 번져나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의미심장하게도 2020년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 통계에 따르면 1인 가구가 40% 가까이돼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는 유럽 국가 중에는 ‘얀테의 법칙’이 통용된다는 스칸디나비아 3국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가 모두 포함돼 있고, 핀란드는 무려 44.7%로 유럽 지역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얀테의 법칙’은 근래 한국에서도 크게 주목받은 바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여기저기서 언급이 많이 되는 편인데, 《경향신문》 2024년 3월 23일 자 기사 〈누구도 특별하지 않기에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이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북유럽에서는 높은 소득이나 부를 과시하는 것이 금기로 통한다. 불필요한 과시가 집단 내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개인을 통제하고 개성을 억압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북유럽의 행복도를 높여준 뿌리 깊은 가치관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아보하’
 
지난 9월 25일 김난도 교수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5》출판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시사의 창
  어찌 됐든 ‘요노’는 이제 한국에서 점점 더 영향력을 크게 발휘할 분위기다. 2008년부터 매년 출간되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통해 이른바 ‘트렌드의 제왕’ 소리까지 듣게 된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올해 내놓은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도 이름만 바꾼 ‘요노’ 개념이 들어가 있었다.
 
  김 교수는 ‘요노’ 대신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 내년 트렌드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짚고, “‘소확행’이라는 개념이 확산하면서 본질을 잃고 과도하게 피로해졌다. 명품을 사고 오마카세에 가는 것까지 소확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며 “요새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아보하’는 행복을 자랑하고 과시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는 삶의 태도가 대세로 번져나가리라는 것이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그간 영향력에 비춰볼 때 ‘요노’든 ‘아보하’든 이 같은 개념은 향후 언론 미디어를 통해 한층 맹렬하게 소개되며 대중을 유도할 수 있다.
 
  물론 ‘요노’가 대세가 된 미래 한국 사회의 모습은 아직 가늠하기 힘들다. 문화적 배경의 차이 탓에 ‘얀테의 법칙’ 같은 규범들이 등장하진 못하리라는 예상도 많다. 그런데 그 미래 예상과 관련된 갑론을박(甲論乙駁)만큼이나 그 원인이 되는 청년 세대의 사회적 관계 휘발, 나아가 비단 경제 상황 때문만이라고는 보기 힘든 자발적인 고독과 고립의 문제 등도 심도 깊게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현시점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인 저(低)출산 문제의 실마리가 돼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그저 ‘없는 형편에 돈 아끼자는데 당연한 일 아니냐’며 가볍게 치부해버릴 세태 변화 정도가 아니라는 얘기다. 일단 ‘요노’의 심리부터 샅샅이 해부해봐야 저출산도, 이외에 다양한 청년층 문제들도 그 심리적 핵심부를 이해할 수 있게 될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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