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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에 물들다 〈20〉 “시란 설명할 수 없고 가슴으로 느껴야”(네루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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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출간 100주년, 네루다 탄생 120주년
⊙ 국내 김수영·김남주 시인에게 큰 영향… 김남주는 스페인어 원서로 읽어
지난 6월 27일 주한 칠레 대사관은 서울국제도서전(SIBF)의 일환으로 파블로 네루다 탄생 120주년과 그의 대표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사진 가운데 왼쪽부터 마티아스 프랑케 주한 칠레 대사와 황수현 교수, 루카스 파베스 영사. 사진=황수현 경희대 교수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칠레의 국민시인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1904~1973년)가 탄생 120주년을 맞았다. 아울러 사랑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o′n desesperada)》가 출간된 지 100주년이 되었다. 지난 6월 27일 주한(駐韓) 칠레 대사관과 경희대, 이건산업㈜, 앤트러사이트커피 등의 공동 주관으로 파블로 네루다 탄생 120주년과 사랑 시집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다채롭게 열렸다.
 

  경희대 스페인어학과 황수현 교수는 이날 ‘사랑의 시인 네루다, 사람과 대지를 포옹하다’를 강연하며 “칠레의 시인 네루다는 한국의 독자에게 익숙한 이름”이라며 “네루다는 한국의 시인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시인이 김수영, 김남주”라고 말했다.
 
 
  절절한 사랑을 노래한 시인
 
네루다가 스무 살에 쓴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가 올해 출간 100년이 되었다.
  네루다는 1904년 7월 12일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340km 떨어진 남부 파랄(Parral)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Neftali Ricardo Reyes). 그러나 필명인 네루다로 평생을 살았다. 그의 필명에 대한 기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체코의 작가 얀 네루다(1834~1891년)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가설이 오랜 세월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네루다의 전기(傳記) 작가들은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인 셜록 홈스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주홍색 연구》(1887) 제4장에 홈스가 유명한 오스트리아 바이올리니스트인 기예르미나 마리아 프란치스카 네루다의 콘서트에 참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네루다가 어린 시절부터 탐정소설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전기 작가들은 이 두 번째 추정이 더 타당하다고 여긴다.
 
  네루다는 10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한 동네 살았던 노벨문학상(1945년) 수상 시인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Gabriela Mistral·1889~1957년)의 서재에서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를 찾아 탐독했다고 전한다. 사범대학 진학을 위해 18세 때 산티아고로 상경한 낭만적인 시골 소년은 아버지의 철도원 망토를 두르고 보헤미안처럼 살았다.
 
  황 교수는 “영화 〈일 포스티노〉(1994)에서 시골의 우체부에게 시를 가르치던 서민적 풍모의 시인, 마추픽추의 산정(山頂)에 올라 라틴 아메리카를 노래한 민중시인,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에서 절절한 사랑을 노래한 시인이 바로 네루다”라고 말했다. 스페인어권 시인들 가운데 네루다만큼 국내에 널리 알려진 시인이 또 있을까.
 
  네루다의 첫 시집 《황혼 일기》는 열아홉이던 1923년에 나왔다. 세상에, 10대 청소년이 쓴 시집 제목이 ‘황혼’이라니. 그 무렵 매일 두 편 이상의 시를 쓰며 지냈다고 한다.
 
  이듬해 나온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로 네루다는 널리 이름을 알렸다. 네루다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스무 살에 펴낸 이 연애 시집을 ‘목가적이고 또 고통스러운 시집’이자 ‘내가 아끼는 시집’이라고 했다. ‘고뇌에 찬 청년 시절의 정열과 칠레 남부 지방의 거친 자연이 혼합되어 있다’는 고백도 했었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민음사, 박병규 옮김, 2008)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은밀하게 타오르는 저 불길에 타 죽고 싶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우물에 빠져 죽고 싶었으나, 불이든 물이든 간에 나 자신을 던질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 시절 네루다는 수줍은 청년이었다. 여성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고 얼굴이 빨개졌다고 한다. 관심 없는 척 지나쳤지만 마음속으론 여성을 ‘아주 신비한 존재’라고 여겼다. 그렇다면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에 등장하는 여인은 누구일까. 여기에 대해 네루다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혔었다.
 
  〈이 우울하고 열정적인 시집에 등장하는 두세 명의 여자 이름을 편의상 마리솔과 마리솜브라라고 해두자. 마리솔은 무수한 별과 테무코(Temuco) 지방의 하늘처럼 검은 눈을 지닌 매력적인 시골 처녀다. 명랑하고 생기 넘치는 모습은 산 위로 떠오른 반달이나 항구의 물결과 함께 시집 전편에 걸쳐 나타난다. 마리솜브라는 산티아고의 학생이다. 또한 회색 베레모이고 부드러운 눈길이며, 학생 시절의 연애 편력에 스며든 인동덩굴 향기이자, 도회지 은밀한 곳에서 열정적인 해후를 나눈 뒤에 찾아드는 육체의 평화다.〉
 
  마리솔(Marisol)과 마리솜브라(Marisombra)는 네루다가 만든 합성어다. 마리솔의 문자적인 뜻은 ‘바다와 태양’, 마리솜브라는 ‘바다와 어둠’이다.
 
네루다 시의 국내 수용 양상은…
  김수영·김남주 시인이 열렬히 사랑했던 시인

 
  네루다가 우리의 시의 직접적 영향권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김수영(金洙暎·1921~1968년)을 통해서이다. 당대 한국 문단을 대표하던 시인은 1968년 영어로 번역된 네루다의 시를 《엔카운터(Encounter)》라는 영어 잡지를 통해 접하고 네루다에게 흥미를 느껴 그의 몇몇 작품을 번역해 《창작과 비평》(1968년 여름호) 등을 통해 소개하였다. 단행본의 형태로 출간된 것은 네루다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1971년 10월 한얼문고에서 간행한 《네루다 서정 시집》(임중빈 옮김)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 시집은 네루다의 시 일부를 발췌한 만큼 네루다의 시를 본격적으로 소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의 네루다 문학 수용의 역사를 논할 때 감옥에서 읽고 번역해 소개한 김남주(金南柱·1946~1994년) 시인을 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인 김남주는 1972년 10월 유신에 반대해 지하신문을 만들어 배포하다 9개월 형(刑)을 산 뒤 좌파 단체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다시 1979년 구속돼 9년 3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1988년에야 석방되었다.
 
  맹문재가 엮은 《김남주 산문 전집》(2019)에 따르면 그가 네루다를 처음 접한 것은 김수영이 번역한 네루다의 시를 통해서였다. 김남주는 처음엔 영어, 일어로 번역된 작품을 구해 읽다가 나중에는 원문의 깊이 있는 울림을 직접 접하고 싶어 스페인어 원서를 구해 읽었다고 전한다. 놀랍게도 그는 감옥에서 스페인어를 독학했다고 한다.[황수현·장재원의 논문 〈김남주의 민중시에 나타난 파블로 네루다 수용 양상〉(2022) 중에서]
 
  100세가 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올해로 100세가 된 네루다의 두 번째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최권행(1980), 정현종(1989, 1994, 2007), 추원훈(1992)에 의해 차례로 번역되었다. 국내 독자들에게 네루다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아무래도 시인 정현종(鄭玄宗)의 영향이 크다.
 
  기자와 만난 정현종 시인은 미국의 시인 로버트 블라이(Robert Bly·1926~2021년)의 번역판 시집을 읽으며 네루다에게 그만 빠져들고 말았다고 털어놓았다. 정현종 시인의 말이다.
 
  “언젠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는 자리에서 김우창(金禹昌) 선생이 네루다의 시를 번역해 《세계의 문학》(민음사에서 간행하던 계간문학지. 지금은 폐간되었다)에 싣자는 제안을 하셨고, 그때 나는, 영어본을 통한 중역(重譯)이라는 게 마음에 걸려, 역시 스페인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런데 선생이 그거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하셔서 용기를 얻어 우선 네루다의 시 다섯 편을 실은 일이 있다. 민음사 박맹호(朴孟浩) 사장이 단행본으로 내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 그래서 나는 한두 편씩 번역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가장 먼저 미국에 거주하던 대학 선배 최익환(崔益煥) 선생이 네루다의 영역본을 준 것이 네루다의 시에 심취하는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별로 읽지 않았지만 읽다가 점점 빠져들었다. 너무 좋더라, 좋아!”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
  네가 내맡길 때, 너는 세계와 같다.
  내 거칠고 농부 같은 몸은 너를 파 들어가고
  땅 밑에서 아들 하나 뛰어오르게 한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고,
  밤은 그 강력한 침입으로 나를 엄습했다.
  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벼리고
  내 화살의 활처럼, 내 투석기의 돌처럼 벼렸다.
  그러나 이제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벗은 몸, 이끼의, 갈망하는 단단한 밀크의 육체!
  그리고 네 젖가슴 잔들! 또 방심(放心)으로 가득 찬 네 눈!
  그리고 네 치골의 장미들! 또 느리고 슬픈 네 목소리!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우아함을 통해 살아가리.
  내 갈증, 내 끝없는 욕망, 내 동요하는 길!
  영원한 갈증이 흐르는 검은 하상(河床)
  그리고 피로가 따르며 가없는 아픔이 흐른다.
 
  -정현종 역(譯) ‘한 여자의 육체’ 전문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시인 네루다가 말년에 살았던 칠레 이슬라 네그라의 해변.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이 이곳에 있다. 사진=민음사
  《스무 편의 사랑의…》에 실린 시 ‘한 여자의 육체’는 탐미적인 느낌을 준다. ‘젖가슴의 잔들!’ ‘치골의 장미들!’이 가져다주는 이미지는 매우 감각적이다. 수줍어하는 성격의 네루다가 열아홉과 스무 살 언저리에 이런 달달하고 격정적인 문장을 썼다는 사실이 불가해하다. 정현종 시인은 이 시에 대해 이런 느낌을 밝혔다.
 
  “‘잔들’과 ‘장미들’이 ‘젖가슴’과 ‘치골’을 미화(美化)하지 않았다면 시적 품격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남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그 부분들이 쾌락과 고통의 원천이라는 세속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또한 생명의 원천이라는 성성(聖性)을 가리켜 보이지 못했을 터이다.
 
  그리고 ‘잔’과 ‘장미’가 감각, 형태, 작용의 차원에서 얼마나 적절한 비유인가 하는 데 대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황수현 교수는 이 시를 다른 느낌으로 다시 소개했다.
 
  여인의 몸, 하얀 언덕, 새하얀 허벅지,
  몸을 내맡기는 네 모습은 세상을 닮았구나,
  내 거친 농부의 몸뚱이가 너를 파헤쳐
  대지 깊은 곳에서 아이 하나 나오게 한다.
 
  나는 터널처럼 홀로였다. 새들은 내게서 달아났고
  밤은 거세게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난 살아남기 위해 너를 벼렸다. 무기처럼.
  내 활에 메겨진 화살처럼, 내 투석기의 돌멩이처럼.
 
  그러나 이제 복수의 시간이 오고, 난 너를 사랑한다.
  가죽과 이끼와 단단하고 목마른 젖의 몸뚱이여,
  아 젖가슴의 잔이여! 아 넋 잃은 눈망울이여!
  아 불두덩이의 장미여! 아 슬프고 느린 너의 목소리여!
 
  내 여인의 몸이여, 난 언제나 당신의 아름다움 안에 머무르리
  나의 목마름, 끝없는 갈망, 막연한 나의 길이여!
  영원한 갈증이 흐르고, 피로가 뒤따르는
  한없이 고통이 지속되는 어두운 강바닥이여.
 
  -김현균 역 ‘Poema 1’ 전문

 
  스무 살의 네루다가 꿈꾸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 시절, 그는 그저 시인, 전업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시를 쓰기 위해선 생계를 먼저 해결해야 했는데 예컨대 기념품 판매, 만화 판매, 친구와 동업한 물개 가죽 수출업, 번역 등의 일을 했다. 그러나 자본이 많지 않았고 장사 수완도 없어서 실패만 거듭했다.(고혜선 단국대 명예교수가 옮긴 《실론 섬 앞에서 부르는 노래》의 해설 참조)
 
  이 불완전 연소된 청춘의 영혼이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네루다는 “시란 설명할 수 없고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고 했는데 그의 시 ‘네 가슴으로 충분하다’를 소리 내어 읽어본다.
 
  내 심장을 위해서는 네 가슴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네 자유를 위해서는 내 날개면 되고,
  네 영혼 위에서 잠들어 있던 것이
  내 입에서 나와 하늘로 솟아오를 것이다.
 
  네 속에 나날의 환상.
  너는 찻잔 모양 오목한 꽃에 이슬처럼 온다.
  너는 너의 부재로 지평선을 허문다.
  영원히 파도처럼 날고 있고.
 
  너는 소나무처럼 그리고 돛대처럼
  바람 속에서 노래했다고 나는 말했다.
  그것들처럼 너는 훤칠하고 말이 없으며
  그리고, 갑자기, 항해처럼 슬프다.
 
  너는 오래된 길처럼 사물을 너에게 모은다.
  너는 메아리와 향수 어린 목소리로 붐빈다.
  나는 잠을 깼고, 네 영혼 속에서 잠자던
  새들이 달아나 이주했다.
 
  -정현종 역 ‘네 가슴으로 충분하다’ 전문

 
  ‘지평선’ ‘메아리’ 같은 시어에서 보듯 이 시 속엔 외로움과 그리움, 기다림의 정서가 담겨 있는데, 특히 ‘너는 너의 부재로 지평선을 허문다’라는 행(行)이 인상적이다.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 것[不在]이 거대한 자연의 한 축을 와르르 무너뜨릴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허문다’로 번역된 단어가 스페인어 원어로는 ‘socavar’인데, 직역을 하면, ‘파내려 가다’ ‘와해하다’ ‘침식시키다’를 뜻한다. 결국 ‘너의 부재’는 지평선을 침식시킬 만큼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형용모순(oxymoron)의 화신인 셈이다.
 
 
  詩란 시를 읽는 사람이 완성시키는 競走
 
  《스무 편의 사랑의…》에 실린 장시(長詩) ‘절망의 노래’는 네루다가 어느 난파선에서 떨어져 나온 좁고 긴 구명보트에서 《장크리스토프》(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의 소설)를 읽으며 썼다고 한다. 그때 본 하늘빛이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만큼 눈이 시리게 푸른색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다음은 박병규가 옮긴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의 한 대목이다.
 
  〈그 시절만큼 심오하고 고양된 느낌을 경험한 적이 없다. 저 위에는 침범할 수 없는 푸른 하늘이 있었고, 손에는 《장크리스토프》와 방금 쓴 시가 들려 있었다. 내 곁에는 시에 나타난 그 모든 것들이, 이를테면 멀리서 들려오는 바닷소리, 새들 지저귀는 소리, 불멸의 가시나무처럼 끊임없이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처럼 ‘절망의 노래’는 심장박동을 조절하기 어려운 격정의 노래다.
 

  낯선 말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배가 있고 조난당한 사람이 있으며 그사이에 메타포(metaphor)가 있다. 메타포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쓴 칠레 출신의 소설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Antonio Ska′rmeta)의 언어로 말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하늘이 울고 있다는 뜻은 쉽게 말해 비가 온다는 거다. 이게 메타포다. 슬픔이 가슴 안에서 불길을 사르고 맹렬히 불타오르는 것을 ‘하늘이 울고 있다’고 말하는 예술 장르가 시다.
 
  게다가 시는 ‘시를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중에서)이다. 시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칠레산 포도주 한 병을 마시게 만들어 사물을 온통 붉게 만든다. 취한 눈으로 본 세상은 온통 올빼미들로 가득하다. 사랑의 열병으로 몇 날 며칠 눈을 붙이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매혹의 마법을 시가 만든다. 시를 쓰는 사람이 마법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시를 읽는 사람이 완성시키는 질긴 경주(競走)가 시이고 시 읽기다.
 
  너에 대한 기억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밤으로부터 나타난다.
  강은 그 그치지 않는 슬픔을 바다와 섞는다.
  새벽의 부두처럼 버려졌다.
  이별의 시간이다, 오, 버려진 자!
 
  차가운 꽃부리들이 내 머리 위에 비 오듯 쏟아진다.
  오, 파편 구덩이, 난파한 것의 사나운 동굴.
 
  네 속에 전쟁과 싸움은 축적되었다.
  너로부터 노래하는 새의 날개는 솟아올랐다.
 
  너는 모든 걸 삼켰다, 먼 거리처럼.
  바다처럼, 시간처럼. 네 속에 모든 게 침몰했다!
 
  그건 공격과 키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등대처럼 반짝인 마법의 시간이었다.
 
  조타수의 두려움, 눈먼 잠수부의 격렬함,
  사랑의 광포한 취기, 네 속에 모든 게 침몰했다!
 
  -정현종 역 ‘절망의 노래’ 일부

 
  이 시에서 드러난 ‘난파’와 ‘전쟁’ ‘침몰’은 격렬함의 서곡이고, 버려진 자의 사나운 크레셴도 페달이며, 메마르다 못해 소금기만 남은 강바닥이자 그런 메마른 슬픔을 침몰시켜서 사랑으로 다시 건져 올리는 배수진(背水陣)을 친 전쟁이다. 이 폭풍전야 앞에 멀리 등대가 희미하게 반짝이고 난파한 배의 조타수와 눈먼 잠수부가 침몰 속에서 사랑의 광포(狂暴)를 느끼며 절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 절망은 절망이면서 사랑이고, 폐허이면서 궁전이며, 폭풍이면서 광채다. 이런 초현실적인 역설이 네루다 시의 마법이다. 그러므로 네루다의 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가슴으로 언어를 느껴야 한다.
 
 
  네루다의 시 《모두의 노래》를 음악으로
 
네루다가 1950년에 펴낸 서사 시집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스페인어로 ‘칸토 헤네랄’)》
  기자는 우연한 기회에 그리스의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가 네루다의 시집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스페인어로 ‘칸토 헤네랄’)》(1950)에 나오는 ‘반란의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시에 멜로디를 입힌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모두의 노래》는 가장 완성도가 높은 네루다를 대표하는 시집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네루다의 시집 《모두의 노래》에 멜로디를 입혀 1980년 무렵 음반을 발표했다. 칠레 네루다 재단에서는 그가 2021년에 향년 96세로 사망했을 때 애도문을 실었다. 기자는 유튜브를 통해 이 음반에 실린 여러 곡 중에서 ‘반란의 아메리카’라는 곡을 그리스의 가수 게오르게 달라라스(George Dalaras)가 스페인어로 직접 부르는 버전으로 들어보았는데, 가슴이 웅장해지는 경험을 했다.
 
  어떻게 그리스 가수가 스페인어로 노래를 부르며 어떻게 그리스 작곡가가 네루다의 시로 곡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 가수 게오르게 달라라스(George Dalaras)가 네루다의 시를 스페인어로 불렀다. 사진=유튜브 캡처
  그 비밀의 자물쇠를 풀어보자. 프랑스로 망명한 젊은 그리스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당시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의 초청으로 1971년, 칠레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때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작품을 바탕으로 칠레 작곡가들이 만든 몇 개의 곡을 듣게 된다. 이에 테오도라키스는 깊은 감명을 받아, 네루다의 열 번째 시집인 《모두의 노래》에 대해 자신의 음악적 견해를 칠레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파리로 돌아간 후 작곡을 시작했고, 수년간에 걸친 노력 끝에 드디어 1980년 곡이 완성되는 결실을 맺는다. 이 둘을 이어준 것은 자유와 정의에 대한 투쟁과 열망이었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거의 400년에 걸친 지배를 받은 그리스의 역사가 작곡가로 하여금 이런 도전을 부추기지 않았을까. 동토(凍土)의 슬픔을 경험한 한국인에게 달라라스의 노래나 네루다의 시가 인상 깊게 다가오는 이유다.
 
  《모두의 노래》는 남미(南美) 역사를 담은 서사시로 모두 231개의 시, 15개 장, 1만5000행으로 이뤄져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 문명에서 스페인 식민지 시대, 독립전쟁,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곳 사람들의 꿈과 희망, 아름다움과 풍요로움, 자유를 외치는 영혼과 착취를 당했던 민중의 아픔 등이 담겨 있다.
 
  이 연작(聯作)은 심오한 은유로 가득 차 있어서 많은 번역사에게 도전물이 된다고 한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네루다가 한 영혼이 되어 자유를 향한 절박한 염원을 담은 시를 게오르게 달라라스의 깊은 울림을 주는 목소리로 함께 음미해보자.
[유튜브(https://www.youtube.com/watch?v=aaOM4PzVJng) 참조]
 
  우리의 대지, 드넓은 대지는, 고독 속에서
  함성과, 사람들의 팔과 입을 향해 뻗어갔노라.
  침묵의 음절은 불타며
  비밀스러운 장미꽃을 한데 모으고,
  초원이 금속과 말발굽 소리에 덮여 흔들릴 때까지.
  진실이란 쟁기질만큼이나 고된 것이었으니.
 
  쟁기질은 대지를 파괴하고, 욕망을 세웠노라.
 
  발아되는 이념을 땅에 파묻으니
  은밀한 어느 봄에 싹이 피어올랐으나.
  그 꽃은 침묵했고, 거부되었노라.
  빛과의 조우도 부서졌고,
  부풀어지던 집단의 효모 덩어리도, 숨겨진 깃발의 입맞춤도
  모조리 진압당했노라.
  그러나, 그 꽃은 땅의 감옥을 가르며,
  벽을 뚫고 나왔노라.
 
  어둠 속에 있던 민중은 그 잔이 되어,
  거부된 실체를 받아들였으나,
  바다의 경계에서 그 실체를 퍼뜨리다가,
  고집 센 절구로 그 실체를 갈아버렸노라.
  그리고 상처 입은 페이지들과 함께,
  길 위에 있는 봄과 함께 밖으로 나와버렸노라.
 
  어제의 시간, 정오의 시간,
  다시 온 오늘의 시간
  죽음의 순간과 태어나는 순간 사이에서,
  거짓이라는 가시 돋친 시대에서 기다려온 시간.
 
  조국이여, 그대는 나무꾼들로부터,
  세례받지 않은 자식들로부터, 목수들로부터, 태어났노라.
  마치 신비한 새처럼,
  날아다니는 핏방울을 안겨준 사람들로부터 태어났노라.
  조국이여, 배신자와 교도관들이 그대가 영원히 침몰되었다고
  믿는 그곳에서부터, 그대는 다시 힘겹게 태어나리니,
  조국이여, 그대는 그 옛날처럼 민중들로부터 태어나리니.
 
  조국이여, 오늘 그대는 예전처럼
  석탄과 이슬로부터 모습을 드러내 태어나리니,
  오늘 그대는 문을 흔들며 반드시 나타나리니,
  학대받던 손으로, 살아남은 영혼의 부스러기로,
  죽음이 절멸시키지 못한 그 눈빛 뭉치로,
  누더기 아래 무장한 숨겨진 연장들을 가지고,
  그렇게 다시 태어나리라.
 
  -김진민 역 ‘반란의 아메리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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