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X 세대는 미국·서구 대중문화 통해 68 감수성을 1980~90년대에 이식받은 뒤늦은 68 세대”
⊙ 진보신당 지지했던 ‘진신류’… ‘민주당의 촌티’ 거부하는 수도권, 젊은 층, 高학력 화이트칼라 중산층
⊙ “강남좌파의 속내는 ‘우리가 좌파는 안 할망정 강남에는 계속 살 거야!’”(공희준)
⊙ 미국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은 가장 열성적인 트럼프 지지자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 진보신당 지지했던 ‘진신류’… ‘민주당의 촌티’ 거부하는 수도권, 젊은 층, 高학력 화이트칼라 중산층
⊙ “강남좌파의 속내는 ‘우리가 좌파는 안 할망정 강남에는 계속 살 거야!’”(공희준)
⊙ 미국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은 가장 열성적인 트럼프 지지자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 ‘조국사태’ 와중인 2019년 8월 18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을 나서는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진=조선DB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 중 하나는 신당 조국혁신당의 약진이었다. ‘돌풍’ 내지 ‘현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언론미디어들도 많았다. 지역구 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고 선거를 치른 결과 24.45%의 정당 득표율을 얻어 12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비례대표만으로 봤을 때 14석의 더불어민주연합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돌풍에 대한 해석은 이후 한 달여 동안 온갖 언론미디어를 통해 수없이 제시됐다. 같은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친(親)이재명 구도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친문재인 색채를 강하게 띤 조국혁신당을 선호했다는 해석이 가장 널리 회자(膾炙)됐다. 이 밖에 “조국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조국 대표 자체가 현 정권의 명확한 대립각으로 인지되고 있기에 조국혁신당도 ‘제3지대’ 좌파 진영 야당으로서 적합한 상징성을 지니게 됐다는 점도 종종 거론된다. 한편, 근본적인 원인은 그와 다르다는 의견을 제시한 언론도 존재한다. 《시사인》 2024년 4월 26일 자 기사 〈성공해서 실패한 진보 정당 20년사의 역설〉을 보자.
〈2004년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 국민의힘(당시 한나라당)이라는 양당 체제 바깥의 도전자로 등장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24년, 민주노동당의 후신 중 민주당과 연대하지 않은 세력은 국회 진출에 실패했다. 이것은 단순히 ‘비호감 정당이 폭망했다’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당과 연대하지 않는 진보 정당의 국회 진출이 가능한가?’를 묻는 장면이다. (중략)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정의당’을 찍던 시민들 상당수가 이번에는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조국혁신당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국혁신당이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당인지는, 적어도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그러한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2030 외면받는 신당
결국 조국혁신당이 어떤 가치와 노선을 지녔든, 민주당과 연대한 좌파 정당만이 살아남는 ‘제3지대’ 생리에서 ‘지민비정(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정의당)’이 ‘지민비조’로 바뀐 것뿐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SNS) 등에선 또 다른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다분히 문화적인 측면, 즉 좌파 정당 일부 지지층의 문화적 감수성에 따른 선호(選好)로서 나온 결과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은 3월 말엽 총선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면서부터 시작됐다.
먼저 KBS와 한국리서치가 3월 24~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20대의 7%, 30대의 15%만 조국혁신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40대의 36%, 50대의 34%와 비교해 턱없이 낮은 수치였다. 이어 한국갤럽이 3월 26~28일 조사한 결과도 등장했다. 오히려 앞선 조사보다 더 극단적인 결과로, 20대의 2%, 30대의 7%만이 조국혁신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40대 17%, 50대 23%에 비해 현저히 저조한 수치였다.
실제 총선의 방송 3사 출구조사 역시, 비록 여론조사 당시만큼 극단적이진 않을지언정, 구도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50대 남성 44.5%, 40대 남성 41.5%, 40대 여성 34.7%, 50대 여성 32.3%가 조국혁신당에 투표한 반면, 20대는 남성 17.9%, 여성 18.5%만 조국혁신당에 표를 던졌다.
젊은 층에서 대안(代案)으로서의 신진(新進) 세력에 매력을 느껴 신당에 투표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도 4050에서 가장 큰 지지를 얻어내는 신당이란 확실히 흔치 않은 광경이다. 나아가 2030은 조국혁신당을 이끄는 조국 대표에 오히려 강한 비호감(非好感)을 느낀다고 봐야 한다. 《조선일보》 2024년 3월 31일 자 기사 〈“입시비리 사실인데 왜 억울?”… 2030이 조국 외면하는 이유〉에서도 “조국, 조민 다 입시 비리 저지른 거 맞지 않냐. 선거에 나온 것 자체가 뻔뻔하다” “10대 때부터 지겹게 경쟁만 해왔다. 부모 찬스 써서 이긴 사람을 좋아할 수가 없다” “조국이 아들 시험 대신 봐주는 그 카톡 봤냐. 그걸 보고도 조국 숭배하는 게 신기하다” 등 2030의 비호감 반응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조국혁신당=진보신당 시즌 2’?
그런데 왜 4050은 다를까.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사법부에서 실형까지 선고받은 인물임에도 이를 아예 모른다는 듯 지지를 아끼지 않는 모습은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말이다. 친문재인 논리 등도 이를 다 설명해주진 못한다. 2030 역시, 특히 2030 여성층은 누구보다 열렬히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지해온 이들임에도 ‘조국 사태’에 대해서만큼은 민감히 여기며 조국혁신당에 이렇다 할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이 선거 출구조사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럼 뭘까.
이쯤 되면 또다시 현 4050 세대를 놓고 ‘1970년대생론’ 또는 ‘X 세대론’을 꺼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인식 기반으로 앞서 언급했듯 문화적 감수성 측면에서 제시된 또 다른 주장이 바로 ‘조국혁신당=진보신당 시즌 2’론이다.
다들 알다시피 진보신당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존립(存立)했던 정당이다. 민주노동당의 민족해방파(NL)를 비판하던 당내 민중민주파(PD)가 떨어져 나와 꾸린 정당으로, 여성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 소수자 운동 등 전형적인 신(新)좌파 어젠다들을 앞세워 호응을 얻었다. 이른바 ‘적녹보라’ 노선이다.
이렇게만 보면 ‘조국혁신당=진보신당 시즌 2’론은 더더욱 미스터리가 된다. 진보신당의 실질적 후신(後身)으로 여겨지는 건 정의당이며, 조국혁신당은 바로 그 정의당(총선 당시 녹색정의당)을 ‘0석’ 원외 정당으로 추락시키며 그를 대체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미 명확한 후신이 존재하는데 왜 ‘조국혁신당=진보신당 시즌 2’이기에 과거 진보신당 지지자들이 정의당 대신 그를 택했다는 주장이 나오느냐 말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정치 노선이나 정당 구성 등에 대한 분석보다는 다소 복잡한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진신류’의 선민의식
진보신당이 제19대 총선에서 비례득표 기준 미달로 해산된 후 그 지지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진신류’라는 호칭이 등장했었다. ‘진보신당류(類)’의 줄임말로, 사실상 멸칭(蔑稱)처럼 쓰였다.
여러 문서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진신류’의 첫 번째 특징은, 일단 수도권 거주자 중심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수도권 관점으로 모든 걸 바라보려 한다는 한계가 여러 번 지적됐었다. 또 명확한 20대 젊은 층 중심이며, 상대적으로 고(高)학력에 화이트칼라 중산층(中産層)이라는 면면도 강조됐다. 또 앞서 언급했듯, 미국 리버럴의 중심을 이루는 신좌파, 문화좌파 색채가 강해 차별금지법을 위시로 생태주의, 기후 문제, 학생인권조례 등의 어젠다에 유난히 활발한 측면을 보였다.
문제는 이들이 기묘한 선민의식(選民意識)을 갖고 민주당계 지지자들을 ‘노빠’ ‘깨시민’ 등의 멸칭으로 부르며 차별화를 꾀하려 했다는 점이다. 민주당계 지지자들에게 ‘신도(信徒)’들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폄하(貶下)하고 자신들의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분위기도 포착됐다.
이런 탓에, 비록 ‘진신류’라는 말 자체는 진보신당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등장했지만, 그 전부터도 좌파 진영 내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당연히 곱지 않았다. 정치 칼럼니스트 공희준과 〈나는 꼼수다〉 일원이기도 했던 시사평론가 김용민이 나눈 2011년 11월 국민뉴스 대담 〈한화갑-공희준 대담(사회: 김용민)〉을 보자.
조국은 ‘강남좌파’의 상징
〈공: 강남좌파를 상징하고 대변하는 정치 집단들이 있습니다. 진보신당이 대표적이고, 유시민 세력도 역시 여기에 포함됩니다. 저는 강남좌파와 관련해서 가장 한심하게 여기는 정당이 진보신당입니다. 강남좌파 근성에 찌들 대로 찌들어 있어요. 요새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조국씨의 경우에도 정당을 기준으로 삼자면 진보신당에 가장 우호적인 스탠스를 공개적으로 취하고 있고요. (중략) 결국 그 사람들은 민주당의 보수성이나 우편향성이 싫은 게 아니라 민주당의 촌티가 싫은 겁니다.
김: 촌티가 싫다?
공: 민주당의 촌티가 싫고, 빈티가 싫은 거죠. 비유하면 강남좌파란 거는 스타벅스에서 우아하게 체 게바라에 관한 얘기는 하고 싶어도, 저기 종로5가의 광장시장이나 동대문 지나 황학동 가가지고 곱창은 절대 먹고 싶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한테 좌파는 하나의 훈장입니다. 강남좌파의 본질은 강남에 있습니다. 좌파에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그 사람들한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고 가정해봅시다. 강남과 좌파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보라고요. 그럼 그 사람들 속내는 정확히 뭔지 아십니까? “우리가 좌파는 안 할망정 강남에는 계속 살 거야!” 바로 이겁니다. 그 사람들이 정확히 싫어하는 지점은 민주당의 촌티와 빈티입니다.〉
이렇게 서로 관계없어 보이던 진보신당과 조국 대표는 ‘강남좌파’라는 카테고리를 통해 만나게 된다. 사실상 리무진좌파, 캐비어좌파의 경향성 내에서 해석되는 것이다. 물론 ‘강남좌파’는 비단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중상류층 이상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좌파 성향이면서도 소위 ‘강남성(性)’을 지향하는 이들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때 그 사람들’
이런 경향성을 지닌 이들은 《조선일보》 2024년 3월 24일 자 기사 〈누릴 거 다 누리고 깨어 있는 척… ‘진보 중년’을 아십니까〉를 통해 좀 더 상세히 설명된다.
〈폭주하는 진보 중년을 보는 20~30대는 어리둥절하다. “도대체 꼰대들 왜 이럼?” “자기들도 수험생 자식 키우면서 조국 지지하는 게 말이 됨?” 젊은 층은 몸은 쇠하기 시작하나 심장이 끓는 중년을 ‘진보 대학생’이라 비웃고, 어르신들도 ‘영포티(young forty·젊은 척하는 40대)’에 혀를 찬다. 통상 40대는 자산을 모으고 자녀를 키우며 안정을 희구하는 경향과 함께 보수화되는 연령 효과(age effect)가 나타나는 시기다. 그런데 이 땅의 4050은 연령 효과를 거스르는 첫 변종 세대라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이들은 청소년기부터 뚜렷한 세대적 특성을 공유해왔다. 1970년대 초반~1980년대 초반 태어나, 산업화의 과실이 축적된 80~90년대 고도성장기와 민주화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며 성장했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배고픔을 모른 세대’로 일컬어진다. 이들이 중·고교에 다니거나 대학 신입생이던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다. 서태지 팬덤은 탈이념과 탈권위, 개인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폭발하던 시기, ‘우리는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신인류의 문화 독립 선언이었다. (중략) 사실 X 세대는 IMF의 타격을 정통으로 맞진 않았다. 이들은 고졸이든 대졸이든 취업 잘되고 내 집 마련도 쉬웠던 마지막 세대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자산 축적 속도가 가장 빠른 세대로 꼽힌다.〉
결국 ‘조국혁신당=진보신당 시즌 2’론은 이렇게 완성된다. 배고픔 모르고 자란 대중문화 폭발 세대인 X 세대 일부가 특유의 ‘강남좌파’적 감수성으로 20~30대에 지지하던 정당이 진보신당이었고, 이로부터 10~15년이 지난 지금 조국혁신당의 핵심 지지층이라는 4050은 바로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이런 진보신당은 앞선 《시사인》 기사 주장처럼 ‘민주당과 손잡지 못해’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득표율 2% 미달 정당은 해산한다는 당시 정당법에 의거해 해산되고 말았지만, 조국혁신당은 민주당과의 연대를 통해 12석을 얻고 ‘돌풍’과 ‘현상’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배경이 존재하기에 현 4050에게는 ‘조국이어도 관계없다’에서 ‘조국이어야만 한다’는 입장이 섰을 수도 있다.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도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늘 ‘강남좌파’였기 때문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나 명문대를 나오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며 외모까지 출중한 아이콘. 그야말로 ‘강남성’의 모든 면면을 두루 갖춘 데다, 4050의 숨은 ‘강남좌파’ 욕망을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 실체화시켜놓은 아이콘이다. 이렇듯 조건과 면모가 너무 드라마틱하다 보니 각종 비리 관련 문제들까지도 못 본 듯 무시하며 지지를 아끼지 않게 됐다는 해석이다.
히피 세대
이처럼 특이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현 4050의 면면은 사실 한국만의 독특한 광경은 아니다. 가장 유사한 예로 흔히 ‘히피 세대’라 불리는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를 들 수 있다. 미국 베이비 붐 세대는 1946~64년 사이 태어난 제2차 세계대전 전후(戰後) 세대를 가리킨다. 경제사적으로는 1950년부터 1973년까지 무려 24년간 이어진 ‘자본주의 황금기(Golden Age of Capitalism)’ 동안 유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역시 배고픔 모르고 자란 대표적 호황 세대다. 비록 1973년 제1차 석유 파동과 함께 ‘자본주의 황금기’는 막을 내렸지만 그사이 이들이 보인 문화적 특성과 정치 성향 등은 많은 면에서 한국의 현 4050, 이른바 ‘X 세대’와 매우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단 이들도 마찬가지로 ‘대중문화 폭발’ 세대였다. 경제성장 덕택에 TV 수상기나 레코드플레이어 등이 일반 가정에 속속들이 보급되면서 대중문화의 ‘안방 향유(享有)’가 대폭 확장됐다. 또 유소년 및 청년층이 부모가 주는 용돈으로 대중문화 상품을 소비하면서 소위 ‘용돈시장’을 형성, 그들만의 또래 문화를 시장에서 탄탄히 성립시키는 바탕도 마련될 수 있었다. 한국 X 세대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었다면, 미국 베이비 붐 세대에겐 밥 딜런과 지미 헨드릭스, 비치 보이스 등이 있었던 것이다. 영화로는 〈이지 라이더〉와 〈미드나잇 카우보이〉 〈내일을 향해 쏴라〉 등이 나와 이 같은 ‘베이비 붐 세대용’ 영화들을 묶어 ‘아메리칸 뉴 시네마(혹은 뉴 할리우드)’라 칭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언급했듯 ‘히피 세대’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1946~64년생에 이르는 베이비 붐 세대 분류에서 초반 1946~55년생 정도까지를 ‘히피 세대’로들 분류한다. 경제적으로 더없이 풍요롭던 시절, 이곳저곳 떠돌며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면서 살아가도 별문제 없었기에 등장한 ‘배부른’ 청년 세대다. 무제한의 자유를 외치며 마약과 성적(性的) 방종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68혁명’ 이후로는 이 같은 삶의 방식이 신좌파, 문화좌파 이론과 만나 베트남전 반대를 위시로 한 반전(反戰)평화주의, 생태주의, 여성주의 등의 표피(表皮)를 쓰기도 했다. 그러다 제1차 석유 파동과 함께 모든 것이 무너졌다. 히피 문화도 이렇게 끝났다.
‘히피에서 여피로’
그런데 이들 히피 세대에게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히피 문화 붕괴 이후의 후일담(後日譚)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어느 순간 기존의 리버럴 사상 체계에서 우파 리버태리어니즘(libertarianism·자유지상주의)으로 갈아타며 1980년대 미국 자본주의의 중추(中樞)로 거듭났다. 이런 흐름을 ‘히피에서 여피로(hippie to yuppie)’라 부르기도 한다. 애초부터 좌파 경제관의 계급적 문제의식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들이다. 거기다 특유의 여유만큼이나 상대적으로 유복한 가정의 고학력 청년들도 많아 자연스럽게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 최적화된 이들로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런 독특한 흐름을 보여주는 미국 대중문화 콘텐츠도 많다. 가장 빠르게 등장한 사례가 1989년 작 영화 〈루드 어웨이크닝〉이다. 1960년대 후반 마약을 제조하던 히피족 둘이 FBI의 추적을 피해 정글 속에서 살아가다 20년 만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보니, 함께 히피 생활을 했던 옛 친구들은 이제 모두 여피로 살아가고 있더라는 설정이다.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2008년 작 뮤지컬 영화 〈맘마 미아〉에도 ‘히피에서 여피로’를 보여주는 인물이 등장한다.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이 맡은 인물 샘 카마이클이다. 분명 과거엔 긴 장발을 늘어뜨린 전형적인 히피족이었는데 어느 순간 뉴욕에서 성공적인 건축가의 길을 걸어 여피로 변신, 이제는 단정하고 품위 있는 중년의 거부(巨富)로 거듭나 있다. 이 밖에도 많다.
그러나 이 같은 변신에도 이들 베이비 붐 세대의 투표 성향은 보수화(保守化)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들이 60대에 이른 2010년대부터야 조금씩 감지되다 처음 관련 아티클이 등장한 건 2015년이나 돼서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운영하는 《갤럽뉴스》 2015년 1월 29일 자 〈미국 베이비 붐 세대는 보수에 가깝다고 확인된다(U.S. Baby Boomers More Likely to Identify as Conservative)〉다. 그동안은 많은 점에서 앞의 《조선일보》 기사 제목처럼 〈누릴 거 다 누리고 깨어 있는 척〉이 이어져왔다는 뜻이다. 한국의 현 4050, X 세대도 비슷한 흐름으로 상당히 뒤늦은 ‘연령 효과’를 보일지 모른다.
“한국의 X 세대는 뒤늦은 68 세대”
흥미로운 부분은 또 있다. 미국 베이비 붐 세대가 한국 X 세대와 닮은 점이 많다면, 미국에선 베이비 붐 세대의 자녀가 바로 X 세대다. 그리고 미국 X 세대의 정치 성향에 대해선 미국 정치 전문 일간지 《폴리티코》에 실린 2022년 5월 20일 자 기사 제목이 잘 드러낸다.
〈X 세대는 어떻게 가장 트럼프를 지지하는 세대가 됐나.(How Gen X Became the Trumpiest Generation.)〉
마침 한국의 X 세대 자녀들인 현 20대들도 이른바 ‘이대남’ 현상을 일으키며 투표 성향에 있어 뚜렷한 보수 성향을 보이는 와중이다. 이렇게 한국과 미국은 대략 20~25년 격차를 두고 세대 특성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혹자는 단순히 각 세대별 경제 흐름 유사성만으로 어떻게 20~25년이나 격차를 두고 비슷한 성향들이 만들어질 수 있느냐고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액면 그대로는 맞는 얘기다. 그러나 여기서 역할 하는 게 바로 대중문화의 힘이다. 프랑스 영화비평가 세르주 다네는 “68혁명 이후 서구세계 문화는 모두 68혁명이 부르짖은 바의 영향권하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1970년대 이후 서구의 주류 문화 콘텐츠는 영화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기본적으로 신좌파, 문화좌파의 경향성, 무엇보다 그 특유의 감수성을 통해 성립되고 뻗어나가게 됐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국의 현 4050은 1990년대 대중문화 폭발을 통해 미국을 위시로 한 서구 대중문화 콘텐츠를 맹렬히 소비하며 동시에 이들 콘텐츠가 품고 있던 신좌파, 문화좌파 어젠다와 감수성을 사실상 무비판적으로 양껏 이식(移植)받은 세대라는 것이다. 딱히 진지한 콘텐츠도 아니라 1988년부터 1992년까지 KBS2에서 방영된 미국 시트콤 〈코스비 가족 만세〉 같은 중산층 윤리 기반 콘텐츠에서도 이 같은 경향성은 시시때때로 묻어 나오곤 했으니 말 다 했다. 이를 두고 문화평론가 오창석은 ‘주간 미디어워치’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X 세대는 68을 겪지 않았지만 미국과 서유럽 대중문화를 통해 그 감수성을 1980~90년대에 이식받은 뒤늦은 68 세대”라 지적하기도 했다.
‘추격 의식’
이제 조국 대표와 조국혁신당 ‘현상’, 그리고 진보신당과 조국혁신당을 이어주는 ‘강남좌파’ 멘털리티(mentality)로 돌아가보자. 어찌 됐든 4050에서 눈에 띄는 지지를 받아 원내에 입성한 조국혁신당의 돌풍은 곧, 앞선 공희준 칼럼니스트의 대담 내용을 적용해 보자면, 4050 일부에게 조국 대표야말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적 모델로 여겨졌을 뿐 아니라 현재의 민주당은 문화적 감각 측면에서 ‘촌티’ 나고 ‘빈티’ 나는 모습으로 비쳤을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어째서 같은 좌파 진영 내에서 이 같은 양상이 빚어질 수 있는 걸까. 이에 대해선 진보신당 부대표와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던 좌파 정치논객 장석준의 비평집 《근대의 가을: 제6공화국의 황혼을 살고 있습니다》 한 대목을 인용해볼 필요가 있다. 책 속에서 한국 사회가 고도성장기 동안 경제주의를 바탕으로 한 ‘추격의식’을 내면화하면서 벌어진 현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런 ‘추격의식’을 통해 우리 사회에는 어느 자본주의 사회보다 빠르고 깊게 경제주의가 뿌리내렸다. 상층 계급을 추격 대상으로 보는 한, 계급 사이에 분명한 선이 그어질 수 없다. 본래 계급이란 거리 두기에서 비롯된다.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거리를 둘 때, 비로소 우리는 ‘노동계급’을 말할 수 있다. 이 거리로부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계급의식’이 형성된다. 그러나 추격 상황에서 거리란 좁혀야 할 무엇일 뿐이다. 중산층에게 부유층은 미래의 자기이고, 노동자들에게는 중산층이 그렇다. 그럴수록 상층 계급의 사고·행동양식은 쉽게 아래로 퍼져나간다. 이게 압축 성장 시기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러면서 한국 사회에는 애초부터 “보편적 평등을 요구하는 거대한 이념-운동”이 비어 있었다고도 지적한다. 이처럼 좌파든 우파든 사실상 같은 멘털리티 기반에서 출발하고 있기에 명확히 상층 계급을 상징하는 인물이 등장했을 때 좌파 진영에서마저 일부는 그 자체로 열렬한 환영을 보내고 그 반대 면면을 보여주는 쪽은 환멸감을 사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사회주의가 미국에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
그러고 보면 소설 《분노의 포도》를 통해 미국의 대표적 좌파 작가로 거듭났던 존 스타인벡도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사회주의는 미국에서 뿌리내린 적이 없는데, 이는 가난한 이가 스스로를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로 여기는 대신 일시적으로 가난할 뿐인 백만장자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국과 한국이 20~25년 격차를 두고서라도 비슷한 면면의 세대들을 탄생시키고 있는 데는 근본적으로 이 같은 의식의 유사성이 깔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럴수록 저 특이한 4050이 낳은 조국혁신당과 조국 대표 ‘현상’도 꾸준히 그 추이를 관찰하고 연구해봐야 할 필요가 생긴다. 비단 한 정치인 개인의 흥망(興亡)을 추적한다는 차원뿐 아니라, 대한민국 인구 구성상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대의 멘털리티 자체를 가늠해본다는 차원에서 더더욱 그렇다.⊙
이 같은 돌풍에 대한 해석은 이후 한 달여 동안 온갖 언론미디어를 통해 수없이 제시됐다. 같은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친(親)이재명 구도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친문재인 색채를 강하게 띤 조국혁신당을 선호했다는 해석이 가장 널리 회자(膾炙)됐다. 이 밖에 “조국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조국 대표 자체가 현 정권의 명확한 대립각으로 인지되고 있기에 조국혁신당도 ‘제3지대’ 좌파 진영 야당으로서 적합한 상징성을 지니게 됐다는 점도 종종 거론된다. 한편, 근본적인 원인은 그와 다르다는 의견을 제시한 언론도 존재한다. 《시사인》 2024년 4월 26일 자 기사 〈성공해서 실패한 진보 정당 20년사의 역설〉을 보자.
〈2004년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 국민의힘(당시 한나라당)이라는 양당 체제 바깥의 도전자로 등장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24년, 민주노동당의 후신 중 민주당과 연대하지 않은 세력은 국회 진출에 실패했다. 이것은 단순히 ‘비호감 정당이 폭망했다’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당과 연대하지 않는 진보 정당의 국회 진출이 가능한가?’를 묻는 장면이다. (중략)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정의당’을 찍던 시민들 상당수가 이번에는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조국혁신당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국혁신당이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당인지는, 적어도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그러한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2030 외면받는 신당
결국 조국혁신당이 어떤 가치와 노선을 지녔든, 민주당과 연대한 좌파 정당만이 살아남는 ‘제3지대’ 생리에서 ‘지민비정(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정의당)’이 ‘지민비조’로 바뀐 것뿐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SNS) 등에선 또 다른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다분히 문화적인 측면, 즉 좌파 정당 일부 지지층의 문화적 감수성에 따른 선호(選好)로서 나온 결과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은 3월 말엽 총선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면서부터 시작됐다.
먼저 KBS와 한국리서치가 3월 24~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20대의 7%, 30대의 15%만 조국혁신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40대의 36%, 50대의 34%와 비교해 턱없이 낮은 수치였다. 이어 한국갤럽이 3월 26~28일 조사한 결과도 등장했다. 오히려 앞선 조사보다 더 극단적인 결과로, 20대의 2%, 30대의 7%만이 조국혁신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40대 17%, 50대 23%에 비해 현저히 저조한 수치였다.
실제 총선의 방송 3사 출구조사 역시, 비록 여론조사 당시만큼 극단적이진 않을지언정, 구도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50대 남성 44.5%, 40대 남성 41.5%, 40대 여성 34.7%, 50대 여성 32.3%가 조국혁신당에 투표한 반면, 20대는 남성 17.9%, 여성 18.5%만 조국혁신당에 표를 던졌다.
젊은 층에서 대안(代案)으로서의 신진(新進) 세력에 매력을 느껴 신당에 투표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도 4050에서 가장 큰 지지를 얻어내는 신당이란 확실히 흔치 않은 광경이다. 나아가 2030은 조국혁신당을 이끄는 조국 대표에 오히려 강한 비호감(非好感)을 느낀다고 봐야 한다. 《조선일보》 2024년 3월 31일 자 기사 〈“입시비리 사실인데 왜 억울?”… 2030이 조국 외면하는 이유〉에서도 “조국, 조민 다 입시 비리 저지른 거 맞지 않냐. 선거에 나온 것 자체가 뻔뻔하다” “10대 때부터 지겹게 경쟁만 해왔다. 부모 찬스 써서 이긴 사람을 좋아할 수가 없다” “조국이 아들 시험 대신 봐주는 그 카톡 봤냐. 그걸 보고도 조국 숭배하는 게 신기하다” 등 2030의 비호감 반응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조국혁신당=진보신당 시즌 2’?
그런데 왜 4050은 다를까.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사법부에서 실형까지 선고받은 인물임에도 이를 아예 모른다는 듯 지지를 아끼지 않는 모습은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말이다. 친문재인 논리 등도 이를 다 설명해주진 못한다. 2030 역시, 특히 2030 여성층은 누구보다 열렬히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지해온 이들임에도 ‘조국 사태’에 대해서만큼은 민감히 여기며 조국혁신당에 이렇다 할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이 선거 출구조사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럼 뭘까.
이쯤 되면 또다시 현 4050 세대를 놓고 ‘1970년대생론’ 또는 ‘X 세대론’을 꺼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인식 기반으로 앞서 언급했듯 문화적 감수성 측면에서 제시된 또 다른 주장이 바로 ‘조국혁신당=진보신당 시즌 2’론이다.
다들 알다시피 진보신당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존립(存立)했던 정당이다. 민주노동당의 민족해방파(NL)를 비판하던 당내 민중민주파(PD)가 떨어져 나와 꾸린 정당으로, 여성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 소수자 운동 등 전형적인 신(新)좌파 어젠다들을 앞세워 호응을 얻었다. 이른바 ‘적녹보라’ 노선이다.
이렇게만 보면 ‘조국혁신당=진보신당 시즌 2’론은 더더욱 미스터리가 된다. 진보신당의 실질적 후신(後身)으로 여겨지는 건 정의당이며, 조국혁신당은 바로 그 정의당(총선 당시 녹색정의당)을 ‘0석’ 원외 정당으로 추락시키며 그를 대체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미 명확한 후신이 존재하는데 왜 ‘조국혁신당=진보신당 시즌 2’이기에 과거 진보신당 지지자들이 정의당 대신 그를 택했다는 주장이 나오느냐 말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정치 노선이나 정당 구성 등에 대한 분석보다는 다소 복잡한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진신류’의 선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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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은 2008~2012년 신좌파 어젠다로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2009년 11월 29일 노회찬 대표의 서울시장 후보 출정식. 사진=조선DB |
여러 문서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진신류’의 첫 번째 특징은, 일단 수도권 거주자 중심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수도권 관점으로 모든 걸 바라보려 한다는 한계가 여러 번 지적됐었다. 또 명확한 20대 젊은 층 중심이며, 상대적으로 고(高)학력에 화이트칼라 중산층(中産層)이라는 면면도 강조됐다. 또 앞서 언급했듯, 미국 리버럴의 중심을 이루는 신좌파, 문화좌파 색채가 강해 차별금지법을 위시로 생태주의, 기후 문제, 학생인권조례 등의 어젠다에 유난히 활발한 측면을 보였다.
문제는 이들이 기묘한 선민의식(選民意識)을 갖고 민주당계 지지자들을 ‘노빠’ ‘깨시민’ 등의 멸칭으로 부르며 차별화를 꾀하려 했다는 점이다. 민주당계 지지자들에게 ‘신도(信徒)’들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폄하(貶下)하고 자신들의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분위기도 포착됐다.
이런 탓에, 비록 ‘진신류’라는 말 자체는 진보신당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등장했지만, 그 전부터도 좌파 진영 내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당연히 곱지 않았다. 정치 칼럼니스트 공희준과 〈나는 꼼수다〉 일원이기도 했던 시사평론가 김용민이 나눈 2011년 11월 국민뉴스 대담 〈한화갑-공희준 대담(사회: 김용민)〉을 보자.
조국은 ‘강남좌파’의 상징
〈공: 강남좌파를 상징하고 대변하는 정치 집단들이 있습니다. 진보신당이 대표적이고, 유시민 세력도 역시 여기에 포함됩니다. 저는 강남좌파와 관련해서 가장 한심하게 여기는 정당이 진보신당입니다. 강남좌파 근성에 찌들 대로 찌들어 있어요. 요새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조국씨의 경우에도 정당을 기준으로 삼자면 진보신당에 가장 우호적인 스탠스를 공개적으로 취하고 있고요. (중략) 결국 그 사람들은 민주당의 보수성이나 우편향성이 싫은 게 아니라 민주당의 촌티가 싫은 겁니다.
김: 촌티가 싫다?
공: 민주당의 촌티가 싫고, 빈티가 싫은 거죠. 비유하면 강남좌파란 거는 스타벅스에서 우아하게 체 게바라에 관한 얘기는 하고 싶어도, 저기 종로5가의 광장시장이나 동대문 지나 황학동 가가지고 곱창은 절대 먹고 싶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한테 좌파는 하나의 훈장입니다. 강남좌파의 본질은 강남에 있습니다. 좌파에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그 사람들한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고 가정해봅시다. 강남과 좌파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보라고요. 그럼 그 사람들 속내는 정확히 뭔지 아십니까? “우리가 좌파는 안 할망정 강남에는 계속 살 거야!” 바로 이겁니다. 그 사람들이 정확히 싫어하는 지점은 민주당의 촌티와 빈티입니다.〉
이렇게 서로 관계없어 보이던 진보신당과 조국 대표는 ‘강남좌파’라는 카테고리를 통해 만나게 된다. 사실상 리무진좌파, 캐비어좌파의 경향성 내에서 해석되는 것이다. 물론 ‘강남좌파’는 비단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중상류층 이상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좌파 성향이면서도 소위 ‘강남성(性)’을 지향하는 이들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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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지난 3월 14일 광주 동구 충장로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유세를 벌였다. 사진=조선DB |
〈폭주하는 진보 중년을 보는 20~30대는 어리둥절하다. “도대체 꼰대들 왜 이럼?” “자기들도 수험생 자식 키우면서 조국 지지하는 게 말이 됨?” 젊은 층은 몸은 쇠하기 시작하나 심장이 끓는 중년을 ‘진보 대학생’이라 비웃고, 어르신들도 ‘영포티(young forty·젊은 척하는 40대)’에 혀를 찬다. 통상 40대는 자산을 모으고 자녀를 키우며 안정을 희구하는 경향과 함께 보수화되는 연령 효과(age effect)가 나타나는 시기다. 그런데 이 땅의 4050은 연령 효과를 거스르는 첫 변종 세대라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이들은 청소년기부터 뚜렷한 세대적 특성을 공유해왔다. 1970년대 초반~1980년대 초반 태어나, 산업화의 과실이 축적된 80~90년대 고도성장기와 민주화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며 성장했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배고픔을 모른 세대’로 일컬어진다. 이들이 중·고교에 다니거나 대학 신입생이던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다. 서태지 팬덤은 탈이념과 탈권위, 개인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폭발하던 시기, ‘우리는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신인류의 문화 독립 선언이었다. (중략) 사실 X 세대는 IMF의 타격을 정통으로 맞진 않았다. 이들은 고졸이든 대졸이든 취업 잘되고 내 집 마련도 쉬웠던 마지막 세대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자산 축적 속도가 가장 빠른 세대로 꼽힌다.〉
결국 ‘조국혁신당=진보신당 시즌 2’론은 이렇게 완성된다. 배고픔 모르고 자란 대중문화 폭발 세대인 X 세대 일부가 특유의 ‘강남좌파’적 감수성으로 20~30대에 지지하던 정당이 진보신당이었고, 이로부터 10~15년이 지난 지금 조국혁신당의 핵심 지지층이라는 4050은 바로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이런 진보신당은 앞선 《시사인》 기사 주장처럼 ‘민주당과 손잡지 못해’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득표율 2% 미달 정당은 해산한다는 당시 정당법에 의거해 해산되고 말았지만, 조국혁신당은 민주당과의 연대를 통해 12석을 얻고 ‘돌풍’과 ‘현상’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배경이 존재하기에 현 4050에게는 ‘조국이어도 관계없다’에서 ‘조국이어야만 한다’는 입장이 섰을 수도 있다.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도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늘 ‘강남좌파’였기 때문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나 명문대를 나오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며 외모까지 출중한 아이콘. 그야말로 ‘강남성’의 모든 면면을 두루 갖춘 데다, 4050의 숨은 ‘강남좌파’ 욕망을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 실체화시켜놓은 아이콘이다. 이렇듯 조건과 면모가 너무 드라마틱하다 보니 각종 비리 관련 문제들까지도 못 본 듯 무시하며 지지를 아끼지 않게 됐다는 해석이다.
히피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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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 세대’의 감성을 보여주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 영화들. 왼쪽부터 〈이지 라이더〉 〈미드나잇 카우보이〉 〈내일을 향해 쏴라〉. |
일단 이들도 마찬가지로 ‘대중문화 폭발’ 세대였다. 경제성장 덕택에 TV 수상기나 레코드플레이어 등이 일반 가정에 속속들이 보급되면서 대중문화의 ‘안방 향유(享有)’가 대폭 확장됐다. 또 유소년 및 청년층이 부모가 주는 용돈으로 대중문화 상품을 소비하면서 소위 ‘용돈시장’을 형성, 그들만의 또래 문화를 시장에서 탄탄히 성립시키는 바탕도 마련될 수 있었다. 한국 X 세대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었다면, 미국 베이비 붐 세대에겐 밥 딜런과 지미 헨드릭스, 비치 보이스 등이 있었던 것이다. 영화로는 〈이지 라이더〉와 〈미드나잇 카우보이〉 〈내일을 향해 쏴라〉 등이 나와 이 같은 ‘베이비 붐 세대용’ 영화들을 묶어 ‘아메리칸 뉴 시네마(혹은 뉴 할리우드)’라 칭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언급했듯 ‘히피 세대’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1946~64년생에 이르는 베이비 붐 세대 분류에서 초반 1946~55년생 정도까지를 ‘히피 세대’로들 분류한다. 경제적으로 더없이 풍요롭던 시절, 이곳저곳 떠돌며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면서 살아가도 별문제 없었기에 등장한 ‘배부른’ 청년 세대다. 무제한의 자유를 외치며 마약과 성적(性的) 방종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68혁명’ 이후로는 이 같은 삶의 방식이 신좌파, 문화좌파 이론과 만나 베트남전 반대를 위시로 한 반전(反戰)평화주의, 생태주의, 여성주의 등의 표피(表皮)를 쓰기도 했다. 그러다 제1차 석유 파동과 함께 모든 것이 무너졌다. 히피 문화도 이렇게 끝났다.
‘히피에서 여피로’
그런데 이들 히피 세대에게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히피 문화 붕괴 이후의 후일담(後日譚)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어느 순간 기존의 리버럴 사상 체계에서 우파 리버태리어니즘(libertarianism·자유지상주의)으로 갈아타며 1980년대 미국 자본주의의 중추(中樞)로 거듭났다. 이런 흐름을 ‘히피에서 여피로(hippie to yuppie)’라 부르기도 한다. 애초부터 좌파 경제관의 계급적 문제의식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들이다. 거기다 특유의 여유만큼이나 상대적으로 유복한 가정의 고학력 청년들도 많아 자연스럽게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 최적화된 이들로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런 독특한 흐름을 보여주는 미국 대중문화 콘텐츠도 많다. 가장 빠르게 등장한 사례가 1989년 작 영화 〈루드 어웨이크닝〉이다. 1960년대 후반 마약을 제조하던 히피족 둘이 FBI의 추적을 피해 정글 속에서 살아가다 20년 만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보니, 함께 히피 생활을 했던 옛 친구들은 이제 모두 여피로 살아가고 있더라는 설정이다.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2008년 작 뮤지컬 영화 〈맘마 미아〉에도 ‘히피에서 여피로’를 보여주는 인물이 등장한다.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이 맡은 인물 샘 카마이클이다. 분명 과거엔 긴 장발을 늘어뜨린 전형적인 히피족이었는데 어느 순간 뉴욕에서 성공적인 건축가의 길을 걸어 여피로 변신, 이제는 단정하고 품위 있는 중년의 거부(巨富)로 거듭나 있다. 이 밖에도 많다.
그러나 이 같은 변신에도 이들 베이비 붐 세대의 투표 성향은 보수화(保守化)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들이 60대에 이른 2010년대부터야 조금씩 감지되다 처음 관련 아티클이 등장한 건 2015년이나 돼서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운영하는 《갤럽뉴스》 2015년 1월 29일 자 〈미국 베이비 붐 세대는 보수에 가깝다고 확인된다(U.S. Baby Boomers More Likely to Identify as Conservative)〉다. 그동안은 많은 점에서 앞의 《조선일보》 기사 제목처럼 〈누릴 거 다 누리고 깨어 있는 척〉이 이어져왔다는 뜻이다. 한국의 현 4050, X 세대도 비슷한 흐름으로 상당히 뒤늦은 ‘연령 효과’를 보일지 모른다.
“한국의 X 세대는 뒤늦은 68 세대”
흥미로운 부분은 또 있다. 미국 베이비 붐 세대가 한국 X 세대와 닮은 점이 많다면, 미국에선 베이비 붐 세대의 자녀가 바로 X 세대다. 그리고 미국 X 세대의 정치 성향에 대해선 미국 정치 전문 일간지 《폴리티코》에 실린 2022년 5월 20일 자 기사 제목이 잘 드러낸다.
〈X 세대는 어떻게 가장 트럼프를 지지하는 세대가 됐나.(How Gen X Became the Trumpiest Generation.)〉
마침 한국의 X 세대 자녀들인 현 20대들도 이른바 ‘이대남’ 현상을 일으키며 투표 성향에 있어 뚜렷한 보수 성향을 보이는 와중이다. 이렇게 한국과 미국은 대략 20~25년 격차를 두고 세대 특성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혹자는 단순히 각 세대별 경제 흐름 유사성만으로 어떻게 20~25년이나 격차를 두고 비슷한 성향들이 만들어질 수 있느냐고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액면 그대로는 맞는 얘기다. 그러나 여기서 역할 하는 게 바로 대중문화의 힘이다. 프랑스 영화비평가 세르주 다네는 “68혁명 이후 서구세계 문화는 모두 68혁명이 부르짖은 바의 영향권하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1970년대 이후 서구의 주류 문화 콘텐츠는 영화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기본적으로 신좌파, 문화좌파의 경향성, 무엇보다 그 특유의 감수성을 통해 성립되고 뻗어나가게 됐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국의 현 4050은 1990년대 대중문화 폭발을 통해 미국을 위시로 한 서구 대중문화 콘텐츠를 맹렬히 소비하며 동시에 이들 콘텐츠가 품고 있던 신좌파, 문화좌파 어젠다와 감수성을 사실상 무비판적으로 양껏 이식(移植)받은 세대라는 것이다. 딱히 진지한 콘텐츠도 아니라 1988년부터 1992년까지 KBS2에서 방영된 미국 시트콤 〈코스비 가족 만세〉 같은 중산층 윤리 기반 콘텐츠에서도 이 같은 경향성은 시시때때로 묻어 나오곤 했으니 말 다 했다. 이를 두고 문화평론가 오창석은 ‘주간 미디어워치’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X 세대는 68을 겪지 않았지만 미국과 서유럽 대중문화를 통해 그 감수성을 1980~90년대에 이식받은 뒤늦은 68 세대”라 지적하기도 했다.
‘추격 의식’
이제 조국 대표와 조국혁신당 ‘현상’, 그리고 진보신당과 조국혁신당을 이어주는 ‘강남좌파’ 멘털리티(mentality)로 돌아가보자. 어찌 됐든 4050에서 눈에 띄는 지지를 받아 원내에 입성한 조국혁신당의 돌풍은 곧, 앞선 공희준 칼럼니스트의 대담 내용을 적용해 보자면, 4050 일부에게 조국 대표야말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적 모델로 여겨졌을 뿐 아니라 현재의 민주당은 문화적 감각 측면에서 ‘촌티’ 나고 ‘빈티’ 나는 모습으로 비쳤을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어째서 같은 좌파 진영 내에서 이 같은 양상이 빚어질 수 있는 걸까. 이에 대해선 진보신당 부대표와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던 좌파 정치논객 장석준의 비평집 《근대의 가을: 제6공화국의 황혼을 살고 있습니다》 한 대목을 인용해볼 필요가 있다. 책 속에서 한국 사회가 고도성장기 동안 경제주의를 바탕으로 한 ‘추격의식’을 내면화하면서 벌어진 현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런 ‘추격의식’을 통해 우리 사회에는 어느 자본주의 사회보다 빠르고 깊게 경제주의가 뿌리내렸다. 상층 계급을 추격 대상으로 보는 한, 계급 사이에 분명한 선이 그어질 수 없다. 본래 계급이란 거리 두기에서 비롯된다.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거리를 둘 때, 비로소 우리는 ‘노동계급’을 말할 수 있다. 이 거리로부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계급의식’이 형성된다. 그러나 추격 상황에서 거리란 좁혀야 할 무엇일 뿐이다. 중산층에게 부유층은 미래의 자기이고, 노동자들에게는 중산층이 그렇다. 그럴수록 상층 계급의 사고·행동양식은 쉽게 아래로 퍼져나간다. 이게 압축 성장 시기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러면서 한국 사회에는 애초부터 “보편적 평등을 요구하는 거대한 이념-운동”이 비어 있었다고도 지적한다. 이처럼 좌파든 우파든 사실상 같은 멘털리티 기반에서 출발하고 있기에 명확히 상층 계급을 상징하는 인물이 등장했을 때 좌파 진영에서마저 일부는 그 자체로 열렬한 환영을 보내고 그 반대 면면을 보여주는 쪽은 환멸감을 사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사회주의가 미국에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
그러고 보면 소설 《분노의 포도》를 통해 미국의 대표적 좌파 작가로 거듭났던 존 스타인벡도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사회주의는 미국에서 뿌리내린 적이 없는데, 이는 가난한 이가 스스로를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로 여기는 대신 일시적으로 가난할 뿐인 백만장자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국과 한국이 20~25년 격차를 두고서라도 비슷한 면면의 세대들을 탄생시키고 있는 데는 근본적으로 이 같은 의식의 유사성이 깔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럴수록 저 특이한 4050이 낳은 조국혁신당과 조국 대표 ‘현상’도 꾸준히 그 추이를 관찰하고 연구해봐야 할 필요가 생긴다. 비단 한 정치인 개인의 흥망(興亡)을 추적한다는 차원뿐 아니라, 대한민국 인구 구성상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대의 멘털리티 자체를 가늠해본다는 차원에서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