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 영화 〈건국전쟁〉, OTT 예능 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드라마 〈살인자ㅇ난감〉 등 우파 관점의 콘텐츠 흥행 성공
⊙ ‘대중문화’ 개념이 사라지고 ‘단독성들의 사회’가 되어가는 현상의 반영
⊙ 미국에서도 〈사운드 오브 프리덤〉, 기독교 영화 등 우파 성향 영화 흥행 성공
⊙ 〈건국전쟁〉,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겠지만 우파 콘텐츠 활성화되는 전환점 마련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 ‘대중문화’ 개념이 사라지고 ‘단독성들의 사회’가 되어가는 현상의 반영
⊙ 미국에서도 〈사운드 오브 프리덤〉, 기독교 영화 등 우파 성향 영화 흥행 성공
⊙ 〈건국전쟁〉,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겠지만 우파 콘텐츠 활성화되는 전환점 마련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건국전쟁〉 열풍’이 한창이다. 대한민국 초대(初代)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조명한 극장용 다큐멘터리 영화 얘기다. 올해 1/4분기 동안 〈건국전쟁〉보다 흥행이 잘된 영화, 이보다 많은 소비자에게 다가간 TV 드라마나 대중음악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건국전쟁〉만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고 정치권과 학계까지 동원돼 의견 개진(開陣)의 장(場)을 만들어낸 콘텐츠는 또 없었다. 이러다 보니 지금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나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노래는 알지 못해도 〈건국전쟁〉이 어떤 영화인지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는 대중이 적지 않다. 물론 영화의 시각에 동의하느냐 아니냐는 문제는 차치(且置)하고서 말이다.
〈건국전쟁〉이 이렇듯 대단한 미디어 화제작으로 거듭난 이유는 간명하다. 전적으로 영화의 예상치 못한 흥행 덕이다. 2월 1일 개봉 당시만 해도 167개 스크린에 일일 관객 수 5411명에 불과했지만, 설 연휴를 끼고 중·장·노년층 관객이 일거(一擧)에 몰려들어 2월 17일에는 일일 관객 9만1162명에 900여 개 스크린까지 늘어나는 뒷심을 발휘했다. 열기를 이어가 개봉 27일 차인 2월 27일 드디어 누적 100만 관객을 돌파하고 3월 3일 현재까지 109만2720명에 이른 상황이다. 극장가 비주류(非主流)인 다큐멘터리 영화로선 찾아보기 힘든 일대 흥행이다.
다큐 영화 역대 4위
당장 국내에서 100만 관객을 넘어선 다큐멘터리 영화 자체가 〈건국전쟁〉을 포함해 사상(史上) 4편밖에 되지 않는다. 70년을 함께한 시골 노(老)부부의 모습을 담은 2014년 작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480만 명), 소로 농사짓는 나이 든 시골 농부와 그가 키우는 소의 관계를 그린 2009년 작 〈워낭소리〉(295만 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다룬 2017년 작 〈노무현입니다〉 (186만 명), 그리고 〈건국전쟁〉. 전체 다큐멘터리 중 역대 4위, 정치인 다큐멘터리 중에선 〈노무현입니다〉에 이어 역대 2위 기록이다. 특히 정치인 다큐멘터리 중에선 바로 다음 3위 〈그대가 조국〉이 33만 명으로 차이가 크게 난다. 〈건국전쟁〉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길 위에 김대중〉은 12만 명을 기록했다.
한편, 이 같은 흥행 덕에 또 다른 이승만 다큐멘터리도 ‘미투(Me Too)’ 효과를 얻어 흥행 반전(反轉)을 맞이했다. 지난해 10월 불과 2개 스크린에서 조용히 개봉한 〈기적의 시작〉이다. ‘〈건국전쟁〉 열풍’이 일자 극장 체인들의 관심을 끌어 130개 스크린으로 상영관이 폭증(暴增)하고, 3월 3일 현재까지 2만673명 관객을 끌어모으는 호조(好調)를 이어가는 중이다.
상황이 이러니 정치권도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분위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인 더불어민주당과 좌파(左派) 진영 전반에서 일제히 〈건국전쟁〉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힐난(詰難)과 폄훼(貶毁)를 쏟아냈다. 이에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건국전쟁〉에 대한 흥행과 호평이 이어지자 별안간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작품과 이 대통령에 대해 날 선 공격을 쏟아냈다”며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사실 그대로를 인식하려는 움직임이 민주당에는 왜 그렇게 불편한 일로 다가오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대응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불과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일어난 ‘〈건국전쟁〉 열풍’ ‘이승만 열풍’은 이처럼 사활(死活)을 건 일대 공방전으로까지 이어졌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건국전쟁〉 흥행은 극장가에서 대단한 이변(異變)으로 꼽힌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100만 관객 돌파도 그렇지만, 그렇게 다시 물꼬를 튼 게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이념적 우파(右派) 지향의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근래 국내 대중문화계를 살펴보면 이처럼 이전과 다른 분위기는 비단 〈건국전쟁〉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예컨대 OTT 웨이브에서 1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방영한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가 또 있다. ‘이념 서바이벌 예능’이라는 특이한 콘셉트로 등장한 예능 프로그램이며, 정치·젠더·계급·개방성 등 4개 부문에서 서로 다른 이념을 지닌 출연자들이 매번 다른 미션에 맞닥뜨려 각자의 가치와 신념으로 토론을 벌이는 형식이다. 보통 방송계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등장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좌편향적(左偏向的)으로 흐르던 게 상례지만, 이번은 달랐다. 전에 없이 균형 있는 시각으로 이념 갈등 그 자체를 담아내려 애썼고, 어떤 의미에선 가히 탈이념(脫理念)적인 방향성까지 보였다. 이에 오마이뉴스 지난 2월 20일 자 기사 〈현실 앞에서 무력(無力)했던 이념 〈사상검증구역〉이 증명한 것〉에선 이런 평가까지 내놓았다.
〈〈사상검증구역〉을 시청하다 보면 이념이라는 게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가상의 공동체가 구성되었을 때, 우리는 소위 ‘우파’는 우파끼리 ‘좌파’는 좌파끼리 모여서 세력을 이룰 거라 예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상황들이 많이 발생했다. (중략) 〈사상검증구역〉은 성인이 된 후 ‘지식’으로 습득한 신념이 얼마나 허술한지 선명하게 보여주고, ‘나’라는 사람을 형성하는 이념이라는 게 실상 굉장히 허약한 것임을 증명한다. 생존이라는 지엄한 과제 앞에 우리는 평소의 신념과 별개로 얼마든지 타인과 협력할 수 있다. (물론 배신할 수도 있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
대표적 OTT 넷플릭스 코리아에서 2월 9일 공개한 8부작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은 또 다른 경우다. 내용 자체보다는 극중 잠깐 등장하는 인물의 설정과 묘사 부분이 큰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 7화에 등장하는 ‘형성국 회장’이라는 인물이다. 형 회장은 원작 웹툰에도 나오는, 두터운 정관(政官)계 인맥을 통해 각종 비리를 일삼는 건설사 회장이다. 검사와도 연줄이 있고, 조폭과도 관계가 깊다. 그런데 원작에는 없는, 오직 드라마에만 등장하는 형 회장의 묘사를 두고 해당 묘사가 이재명(李在明)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떠올리게 해 그를 조롱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일단 형 회장은 극중에서 이재명 대표와 ‘지나치게’ 닮은 외모로 등장한다. 생김새 자체도 그렇거니와 검은 테 안경을 끼고 백발을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까지 그렇다. 외모 묘사뿐만이 아니다. 형 회장의 딸은 극중 ‘형지수’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를 두고 이 대표의 과거 욕설 논란에서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필터링을 피하기 위해 욕설 내용을 4글자로 줄였던 표현 중 3글자를 취해 만든 이름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또 있다. 형 회장은 과거 횡령과 재건축 수주 비리로 수감됐던 인물이다. 그런데 수감 당시 접견실에서 형 회장은 외부 음식인 초밥을 먹고 있다. 초밥은 이재명 대표의 법인카드 유용 음식 구매 의혹에서 화제가 됐던 대표적인 메뉴다.
그런가 하면 이때 형 회장의 죄수복에는 ‘4421’이라는 죄수번호가 씌어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 연루 의혹을 받는 대장동 개발사업 논란에서 제일건설이 올린 분양 수익금 총액이 4421억원이었다는 점을 들어 이 대표에 대한 비난과 조롱 목적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묘사들이 명확한 의도인지 그저 우연에 불과한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진실이 어느 쪽이든 이런 식의 명확하지 않은 의혹조차도 지금까지는 대부분 이념적 반대 방향, 즉 우파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만 일어나다시피 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러니 〈건국전쟁〉 제작과 흥행,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와 〈살인자ㅇ난감〉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보기 힘들었던 이례적인 콘텐츠가 불과 2~3개월 사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맞다는 얘기다.
‘좌경상업주의’
그럼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금과 같은 흐름과 분위기는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말이다.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대중문화 소비층의 변화 부분을 짚을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대중문화산업 속성에 대한 대중의 오랜 편견부터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전반적 좌편향 속성은 사실 일반 대중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認知)되는 바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등 자유세계 전반에 걸쳐 서로 비슷비슷한 분위기다. 이에 애초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문화예술인들 자체가 좌파 이념을 갖고 있어서라는 이유 등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그럼 그런 콘텐츠를 실체화(實體化)시켜주는 문화 자본의 문제가 또 남는다. 문화예술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든 관계없이, 이제 CJ나 롯데 같은 대기업 자본이 문화산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실인데 그럼에도 콘텐츠 좌편향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는 건 대체 어째서냐는 말이다.
이 같은 현실은 흔히 ‘좌경(左傾) 상업주의’ 개념으로 설명되곤 한다. 그저 산업으로서 당연한 상업주의를 따르다 보면, 쉽게 ‘돈’을 쫓다 보면, 자연스럽게 좌편향 콘텐츠로 이어지게 된다는 논리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애초 대중문화 콘텐츠의 목적은 현실에 지친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수익을 챙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로 대중문화 주(主) 소비층인 10~30대의 욕망을 감지해 그를 반영하려 애쓰는데, 이런 젊은 층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엄혹한 사회현실에 대한 이들의 신경질적 분노와 회피를 정당화시켜주는 방향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다 보면 이렇다 할 정치적 목적 없이도 대부분 좌파적 정서와 논리로 흐르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얼핏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다.
새로운 소비계층 베이비부머 세대
그런데 이제 저 ‘10~30대 대중문화 주 소비층’이라는 개념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건국전쟁〉부터 보자. 3월 2일까지 극장 체인 CGV가 집계한 〈건국전쟁〉 예매 연령대는 50대 이상이 44%, 그다음이 40대로 27%다. 40대 이상이 전체 관객의 71%를 차지하는 셈이다. 가장 대중문화 소비가 왕성하다는 20대는 8%에 머문다. 이런 분포는 웬만한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나오기가 힘들다. 40대 이상, 특히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50대 이상은 대중문화 시장 소비 주체로서 존재감이 극히 미미(微微)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크게 바뀌어가는 추세다. 《중앙일보》 2023년 11월 1일 자 기사 〈“240만원 콘서트 아깝지 않다” 아이돌 밀어낸 임영웅 뒤 그들〉을 보자.
〈최근 5060 베이비부머(1955~1974년 출생) 세대들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주력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부머쇼퍼(베이비부머+쇼퍼)’로 불리는데 정보 기술(IT) 기기와도 친숙해 그간 젊은 세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음원 시장이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구독 등 디지털 영역에 파고드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다. (중략) 특히 과거 산업화 세대는 돈을 쓰지 않고 모으는 경향을 보였다면 베이비부머들은 절약하던 습관을 벗어던진 부분도 작용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그동안의 중장년층은 경제적 능력이 많지 않았는데 베이비부머는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등장한 ‘능력 있는’ 실버들이라고 보면 된다”며 “학력도 높고, 경제성장기에 취직해 자본도 있기 때문에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들의 이야기 〈소풍〉
기사는 이들 베이비부머 세대가 음원 서비스 이용이나 음악 콘서트 관람, 넷플릭스나 유튜브 프리미엄과 같은 OTT 소비 등 특히 문화 소비 측면에서 전에 없이 왕성해진 모습을 상세히 전한다. 이렇듯 달라진 현실을 바탕으로 놓고 보면 〈건국전쟁〉의 흥행 성공도 사실상 ‘임영웅 신화’와 궤를 같이하는 문화 현상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젊은 층 구미에 맞는 감각적이고 냉소적인 콘텐츠에서 벗어난 종류, 인간과 세상에 대한 중·노년층의 시각과 정서를 담는 콘텐츠도 이제 해당 세대가 문화에 지갑을 열고 있는 이상 꾸준히 성립되고 마땅한 시장 파이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극장가에서도 〈건국전쟁〉만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게 아니다. 〈건국전쟁〉 일주일 뒤인 2월 7일 개봉한 한국 영화 〈소풍〉이 또 있다. 나문희·김영옥·박근형 등 이제 80대로 접어든 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노년층의 과거에 대한 향수(鄕愁)와 현실적인 고민들을 풀어내는 영화다. 기성세대에 희생을 요구하는 신세대와의 갈등, 존엄사(尊嚴死) 문제 등이 나열되는 다소 무거운 내용이어서 흥행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이가 많았지만, 중·노년층이 ‘자신들 얘기’에 관심 갖고 지갑을 열면서 손익분기점 27만 관객을 돌파해 3월 3일까지 32만3326명을 동원하는 또 다른 이변을 낳고 있다. 이렇게 80대 배우 셋이 주연을 맡아 흑자(黑字)를 본 사례가 알려지면서 향후 유사한 기획들도 속속 등장하리란 전망이다.
20대의 변화와 탈이념
〈살인자ㅇ난감〉은 또 다른 얘기다. 연출을 맡은 이창희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정치적인 견해를 작품에 반영할 마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치졸한 방법을 쓰진 않았을 것”이라며 이재명 대표 풍자설(諷刺說)을 적극 부인했지만, 어찌 됐든 시장에선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런 의혹이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일으켜 흥행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관찰도 나오고 있다. 〈살인자ㅇ난감〉이 넷플릭스 TV쇼 순위에서 한국 1위로 올라선 시점은 이미 논란이 불붙고 난 뒤인 2월 10일이었고, 이처럼 논란이 일어난 시점에 보이콧 분위기가 일지 않고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 효과만 부추기게 된 까닭은 〈살인자ㅇ난감〉의 타깃 시청층 성향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원작 웹툰 자체가 연재 당시 1020 남성층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고, 애초 〈살인자ㅇ난감〉처럼 엽기(獵奇)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스릴러물은 본래 젊은 남성층에서 유난히 인기 있는 장르다. 그런데 그 소비 중심인 20대 남성층은 이제 ‘이대남’이라 불리면서 20대에 대한 기존 인식을 뒤집어 명확한 우파 정당 선호를 보이는 이들이다. 이러니 이렇다 할 반발이나 보이콧도 일어나지 않고 시장에서 외면받는 일 없이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 효과만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마지막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극단적 이념 대립에의 피로감을 반영하는 콘텐츠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도 이런 콘텐츠가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이념 대립이 극으로 치달았던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1980년대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젊은 층을 향한 대중문화 콘텐츠 전체가 탈이념 지향으로 흘렀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이 큰 인기를 얻고, 홍콩 영화감독 왕가위의 영화나 TV 트렌디 드라마들이 공전(空前)의 히트를 기록하던 시절이다. 지금은 그와 똑같은 방향이라 보긴 힘들지만, 어찌 됐든 지금쯤이면 이념 대립의 허망함을 드러내는 콘텐츠가 또다시 등장할 때도 됐다. 향후 이런 계통 콘텐츠가 가장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대중’에서 ‘단독성’으로
한편 거시적(巨視的) 관점에서 봤을 때, 어찌 됐든 지금은 ‘대중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휘발(揮發)돼가는 시점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대중상품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고 수많은 특성 집단으로 시장이 잘게 나뉘어 각각을 핀 포인트로 공략하는 흐름이 가시화(可視化)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출간된 독일 문화이론가 안드레아스 레크비츠의 저서 《단독성(單獨性)들의 사회》도 이 같은 현상을 지목해 파헤치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소셜미디어(SNS) 열풍을 겪으며 세계는 모든 ‘보편’이 사라지고 점차 ‘단독성’의 ‘특수’가 폭발하는 이른바 ‘단독성들의 사회’가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 기술이 근대사회의 보편화를 이끌었다면, 디지털 기술은 단독성의 사회를 부추기고 있다는 논리다. 그렇게 노년층을 위한 콘텐츠, 우파 성향 대중을 위한 콘텐츠, 그 밖에 여전히 지상파 방송에선 금기시되는 일본 J팝의 팬들을 위한 콘텐츠 등이 무너져가는 대중 시장의 자리를 촘촘하게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큰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펼쳐지다 보니 한국과 유사한 이변들을 겪고 있는 나라들도 쉽게 눈에 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미국의 사례다.
그간 주류(主流) 시장에서 외면받아 제작 자체가 어려웠던 기독교 신앙 영화들이 2010년대 들어 갑자기 세(勢)를 키우며 〈천국에 다녀온 소년〉(2014), 〈선 오브 갓〉(2014), 〈신은 죽지 않았다〉(2018) 등의 연속 흥행 성공을 낳았다. 미국에서 한국의 트로트처럼 ‘낡은’ 이미지였던 컨트리 음악도 지난 수년 사이 되살아나 빌보드 차트 1위를 계속하고 있고, 〈에이티 포 브래디〉(2023) 등 80대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도 속속 등장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미국에서도 우파 영화 성공 이어져
무엇보다 미국에선 한국보다도 먼저 우파 성향 영화의 성공 신화가 쓰였다. 지난해 미국 우파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흥행에 대성공했던, 현재 국내에서도 상영 중인 영화 〈사운드 오브 프리덤〉 얘기다. 흐름은 여기서 끊기지 않는다.
미국의 젊은 우파 논객 벤 샤피로는 영화 〈백설공주와 사악한 여왕(Snow White and the Evil Queen)〉의 제작을 발표했다. 월트디즈니 영화사에서 〈인어공주〉 등 원작 고전동화에 등장하는 백인 캐릭터들을 일일이 흑인 등 소수인종으로 바꾼다거나 동성애자 캐릭터를 계속해서 끼워 넣으려 하는 등 과도한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행보를 보이자 샤피로 본인이 이에 맞서기 위해 어린이용 스트리밍 플랫폼 벤트키(Bentkey)를 설립, 이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상황이 이러니 국내 대중문화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주목할 만한 의견들이 오간다. 과거 “일본에서 유행한 것은 5년 뒤면 한국에서도 유행한다”는 말이 대중문화계에서 일종의 법칙처럼 얘기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일본의 자리로 미국이 오고, 선후(先後)관계도 사실상 쌍방향이라는 것이다. 특히 정치 이념과 대중문화가 만나는 상황들일수록 더 그렇다. 미국에서 벌어진 일은 이와 매우 유사한 형태로 곧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반대로 한국에서 벌어졌던 현상은 곧 미국에서도 거의 닮은 모습으로 재현된다는 것이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미국 대중문화계 동향(動向)을 주의 깊게 관찰해 봐야 할 또 다른 이유다.
‘선거용 영화’ 효과 미미
다시 〈건국전쟁〉으로 돌아가 보자. 〈건국전쟁〉은 대중문화산업 마케팅 논리에서 이른바 ‘선거용 영화’ 분류에 들어간다. 본지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지만, ‘선거용 영화’는 공직선거 판도(版圖)에 영향을 주기 위해 기획된 영화라는 의미는 아니다. 특정 이념 진영을 지지하거나 그 상대편을 공격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는 영화를 대선이나 총선 등 중차대한 공직선거가 가까운 시점에 공개, 살얼음판같이 예민한 분위기 속에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빗발치는 보도 열기를 통해 간접 홍보 효과를 얻어 흥행에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기획된 영화를 가리킨다. 〈건국전쟁〉의 ‘상대편’ 이념 진영을 향한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 김대중〉이 〈건국전쟁〉과 거의 같은 시기에 개봉한 것도 이 같은 ‘선거용 영화’ 속성에 기대기 위해서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선거용 영화’는 세간의 지레짐작과는 달리 실제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극히 미미(微微)하다는 관찰이다. 사실 당연한 얘기다. 애초 특정 이념이나 정파(政派) 지향이 강한 콘텐츠는 이런 측면 중심으로 언론 보도가 이뤄지고 홍보되기에 콘텐츠를 소비하려는 이들은 이미 해당 이념이나 정파의 방향성에 동의하는 이들인 경우가 절대다수다. 혹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영화 한 편 봤다고 자신의 지지 정당 또는 정치인 등을 바꾸는 경우란 흔치 않다.
지금은 “영화가 가장 중요한 대중 선동 수단”이라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시대, “영화는 1초에 24발의 총알을 퍼붓는 혁명의 무기”라던 볼리비아 혁명영화그룹 우카마우 집단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TV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대중적 볼거리로서 영화가 지닌 압도적인 위치 탓에 영화 속 메시지의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TV는 물론 유튜브 등 인터넷 기반의 뉴미디어들도 엄청나게 늘어나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는 성향, 원하는 메시지의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세상이다. 영화는 이제 수많은 엔터테인먼트 품목 중 하나일 뿐 ‘혁명의 무기’씩이나 되는 세상이 아니게 됐다. ‘선거용 영화’도 ‘여름철 납량(納涼) 공포영화’와 같은 단순 시즌용 상품에 가까워졌다.
〈건국전쟁〉 흥행의 의미
이런 점에서 〈건국전쟁〉 흥행을 놓고 벌어지는 좌우 이념 진영의 열띤 분위기는 어딘지 방향이 잘못됐다는 느낌이다. 모두 4·10 총선에 미칠 영향을 내다보며 날 선 공방을 펼치고들 있지만 〈건국전쟁〉 흥행은 이와 전혀 다른 차원, 즉 우파 성향 대중문화 콘텐츠 활성화에 전환점을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건국전쟁〉과 같은 콘텐츠가 ‘더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그 진정한 의미가 발견된다는 뜻이다.
애초 자유시장에서 ‘건강한 시장’이란 시장 참여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폭넓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적극적인 시장 환경이다. 우파 대중 등 그간 문화적으로 소외돼온 이들이 자신들이 평소 원하던 콘텐츠를 제공받아 여가(餘暇)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는 것, 많은 의미에서 대중문화산업의 궁극적 지향점에 가깝다. 우파 진영 일각에서 펼쳐진 〈건국전쟁〉 관람 독려 열기도 이런 입장에서 더 유의미한 소비자 운동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통해 그동안 대중문화에서 시선을 돌렸던 이들이 다시 흥미를 갖고 되돌아오게 된다면, 지금껏 공적 개념에서 내놓은 그 어떤 정책보다도 대중문화 시장과 산업을 살찌우고 고도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셈이 된다. 〈건국전쟁〉은 그렇게 중장기적 문화 진흥이라는 차원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콘텐츠가 될 수도 있겠다.⊙
〈건국전쟁〉이 이렇듯 대단한 미디어 화제작으로 거듭난 이유는 간명하다. 전적으로 영화의 예상치 못한 흥행 덕이다. 2월 1일 개봉 당시만 해도 167개 스크린에 일일 관객 수 5411명에 불과했지만, 설 연휴를 끼고 중·장·노년층 관객이 일거(一擧)에 몰려들어 2월 17일에는 일일 관객 9만1162명에 900여 개 스크린까지 늘어나는 뒷심을 발휘했다. 열기를 이어가 개봉 27일 차인 2월 27일 드디어 누적 100만 관객을 돌파하고 3월 3일 현재까지 109만2720명에 이른 상황이다. 극장가 비주류(非主流)인 다큐멘터리 영화로선 찾아보기 힘든 일대 흥행이다.
다큐 영화 역대 4위
당장 국내에서 100만 관객을 넘어선 다큐멘터리 영화 자체가 〈건국전쟁〉을 포함해 사상(史上) 4편밖에 되지 않는다. 70년을 함께한 시골 노(老)부부의 모습을 담은 2014년 작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480만 명), 소로 농사짓는 나이 든 시골 농부와 그가 키우는 소의 관계를 그린 2009년 작 〈워낭소리〉(295만 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다룬 2017년 작 〈노무현입니다〉 (186만 명), 그리고 〈건국전쟁〉. 전체 다큐멘터리 중 역대 4위, 정치인 다큐멘터리 중에선 〈노무현입니다〉에 이어 역대 2위 기록이다. 특히 정치인 다큐멘터리 중에선 바로 다음 3위 〈그대가 조국〉이 33만 명으로 차이가 크게 난다. 〈건국전쟁〉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길 위에 김대중〉은 12만 명을 기록했다.
한편, 이 같은 흥행 덕에 또 다른 이승만 다큐멘터리도 ‘미투(Me Too)’ 효과를 얻어 흥행 반전(反轉)을 맞이했다. 지난해 10월 불과 2개 스크린에서 조용히 개봉한 〈기적의 시작〉이다. ‘〈건국전쟁〉 열풍’이 일자 극장 체인들의 관심을 끌어 130개 스크린으로 상영관이 폭증(暴增)하고, 3월 3일 현재까지 2만673명 관객을 끌어모으는 호조(好調)를 이어가는 중이다.
상황이 이러니 정치권도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분위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인 더불어민주당과 좌파(左派) 진영 전반에서 일제히 〈건국전쟁〉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힐난(詰難)과 폄훼(貶毁)를 쏟아냈다. 이에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건국전쟁〉에 대한 흥행과 호평이 이어지자 별안간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작품과 이 대통령에 대해 날 선 공격을 쏟아냈다”며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사실 그대로를 인식하려는 움직임이 민주당에는 왜 그렇게 불편한 일로 다가오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대응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불과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일어난 ‘〈건국전쟁〉 열풍’ ‘이승만 열풍’은 이처럼 사활(死活)을 건 일대 공방전으로까지 이어졌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건국전쟁〉 흥행은 극장가에서 대단한 이변(異變)으로 꼽힌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100만 관객 돌파도 그렇지만, 그렇게 다시 물꼬를 튼 게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이념적 우파(右派) 지향의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근래 국내 대중문화계를 살펴보면 이처럼 이전과 다른 분위기는 비단 〈건국전쟁〉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예컨대 OTT 웨이브에서 1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방영한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가 또 있다. ‘이념 서바이벌 예능’이라는 특이한 콘셉트로 등장한 예능 프로그램이며, 정치·젠더·계급·개방성 등 4개 부문에서 서로 다른 이념을 지닌 출연자들이 매번 다른 미션에 맞닥뜨려 각자의 가치와 신념으로 토론을 벌이는 형식이다. 보통 방송계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등장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좌편향적(左偏向的)으로 흐르던 게 상례지만, 이번은 달랐다. 전에 없이 균형 있는 시각으로 이념 갈등 그 자체를 담아내려 애썼고, 어떤 의미에선 가히 탈이념(脫理念)적인 방향성까지 보였다. 이에 오마이뉴스 지난 2월 20일 자 기사 〈현실 앞에서 무력(無力)했던 이념 〈사상검증구역〉이 증명한 것〉에선 이런 평가까지 내놓았다.
〈〈사상검증구역〉을 시청하다 보면 이념이라는 게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가상의 공동체가 구성되었을 때, 우리는 소위 ‘우파’는 우파끼리 ‘좌파’는 좌파끼리 모여서 세력을 이룰 거라 예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상황들이 많이 발생했다. (중략) 〈사상검증구역〉은 성인이 된 후 ‘지식’으로 습득한 신념이 얼마나 허술한지 선명하게 보여주고, ‘나’라는 사람을 형성하는 이념이라는 게 실상 굉장히 허약한 것임을 증명한다. 생존이라는 지엄한 과제 앞에 우리는 평소의 신념과 별개로 얼마든지 타인과 협력할 수 있다. (물론 배신할 수도 있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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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드라마 〈살인자ㅇ난감〉 속 형성국 회장. 야당 대표와 모습과 행동이 비슷하다며 화제가 됐다. |
일단 형 회장은 극중에서 이재명 대표와 ‘지나치게’ 닮은 외모로 등장한다. 생김새 자체도 그렇거니와 검은 테 안경을 끼고 백발을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까지 그렇다. 외모 묘사뿐만이 아니다. 형 회장의 딸은 극중 ‘형지수’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를 두고 이 대표의 과거 욕설 논란에서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필터링을 피하기 위해 욕설 내용을 4글자로 줄였던 표현 중 3글자를 취해 만든 이름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또 있다. 형 회장은 과거 횡령과 재건축 수주 비리로 수감됐던 인물이다. 그런데 수감 당시 접견실에서 형 회장은 외부 음식인 초밥을 먹고 있다. 초밥은 이재명 대표의 법인카드 유용 음식 구매 의혹에서 화제가 됐던 대표적인 메뉴다.
그런가 하면 이때 형 회장의 죄수복에는 ‘4421’이라는 죄수번호가 씌어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 연루 의혹을 받는 대장동 개발사업 논란에서 제일건설이 올린 분양 수익금 총액이 4421억원이었다는 점을 들어 이 대표에 대한 비난과 조롱 목적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묘사들이 명확한 의도인지 그저 우연에 불과한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진실이 어느 쪽이든 이런 식의 명확하지 않은 의혹조차도 지금까지는 대부분 이념적 반대 방향, 즉 우파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만 일어나다시피 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러니 〈건국전쟁〉 제작과 흥행,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와 〈살인자ㅇ난감〉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보기 힘들었던 이례적인 콘텐츠가 불과 2~3개월 사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맞다는 얘기다.
‘좌경상업주의’
그럼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금과 같은 흐름과 분위기는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말이다.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대중문화 소비층의 변화 부분을 짚을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대중문화산업 속성에 대한 대중의 오랜 편견부터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전반적 좌편향 속성은 사실 일반 대중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認知)되는 바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등 자유세계 전반에 걸쳐 서로 비슷비슷한 분위기다. 이에 애초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문화예술인들 자체가 좌파 이념을 갖고 있어서라는 이유 등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그럼 그런 콘텐츠를 실체화(實體化)시켜주는 문화 자본의 문제가 또 남는다. 문화예술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든 관계없이, 이제 CJ나 롯데 같은 대기업 자본이 문화산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실인데 그럼에도 콘텐츠 좌편향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는 건 대체 어째서냐는 말이다.
이 같은 현실은 흔히 ‘좌경(左傾) 상업주의’ 개념으로 설명되곤 한다. 그저 산업으로서 당연한 상업주의를 따르다 보면, 쉽게 ‘돈’을 쫓다 보면, 자연스럽게 좌편향 콘텐츠로 이어지게 된다는 논리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애초 대중문화 콘텐츠의 목적은 현실에 지친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수익을 챙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로 대중문화 주(主) 소비층인 10~30대의 욕망을 감지해 그를 반영하려 애쓰는데, 이런 젊은 층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엄혹한 사회현실에 대한 이들의 신경질적 분노와 회피를 정당화시켜주는 방향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다 보면 이렇다 할 정치적 목적 없이도 대부분 좌파적 정서와 논리로 흐르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얼핏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다.
새로운 소비계층 베이비부머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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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현상’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적극적인 문화 소비자로 등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진=조선DB |
〈건국전쟁〉부터 보자. 3월 2일까지 극장 체인 CGV가 집계한 〈건국전쟁〉 예매 연령대는 50대 이상이 44%, 그다음이 40대로 27%다. 40대 이상이 전체 관객의 71%를 차지하는 셈이다. 가장 대중문화 소비가 왕성하다는 20대는 8%에 머문다. 이런 분포는 웬만한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나오기가 힘들다. 40대 이상, 특히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50대 이상은 대중문화 시장 소비 주체로서 존재감이 극히 미미(微微)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크게 바뀌어가는 추세다. 《중앙일보》 2023년 11월 1일 자 기사 〈“240만원 콘서트 아깝지 않다” 아이돌 밀어낸 임영웅 뒤 그들〉을 보자.
〈최근 5060 베이비부머(1955~1974년 출생) 세대들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주력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부머쇼퍼(베이비부머+쇼퍼)’로 불리는데 정보 기술(IT) 기기와도 친숙해 그간 젊은 세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음원 시장이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구독 등 디지털 영역에 파고드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다. (중략) 특히 과거 산업화 세대는 돈을 쓰지 않고 모으는 경향을 보였다면 베이비부머들은 절약하던 습관을 벗어던진 부분도 작용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그동안의 중장년층은 경제적 능력이 많지 않았는데 베이비부머는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등장한 ‘능력 있는’ 실버들이라고 보면 된다”며 “학력도 높고, 경제성장기에 취직해 자본도 있기 때문에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들의 이야기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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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배우 나문희·김영옥·박근형이 출연해 ‘노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소풍〉. |
당장 극장가에서도 〈건국전쟁〉만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게 아니다. 〈건국전쟁〉 일주일 뒤인 2월 7일 개봉한 한국 영화 〈소풍〉이 또 있다. 나문희·김영옥·박근형 등 이제 80대로 접어든 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노년층의 과거에 대한 향수(鄕愁)와 현실적인 고민들을 풀어내는 영화다. 기성세대에 희생을 요구하는 신세대와의 갈등, 존엄사(尊嚴死) 문제 등이 나열되는 다소 무거운 내용이어서 흥행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이가 많았지만, 중·노년층이 ‘자신들 얘기’에 관심 갖고 지갑을 열면서 손익분기점 27만 관객을 돌파해 3월 3일까지 32만3326명을 동원하는 또 다른 이변을 낳고 있다. 이렇게 80대 배우 셋이 주연을 맡아 흑자(黑字)를 본 사례가 알려지면서 향후 유사한 기획들도 속속 등장하리란 전망이다.
20대의 변화와 탈이념
〈살인자ㅇ난감〉은 또 다른 얘기다. 연출을 맡은 이창희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정치적인 견해를 작품에 반영할 마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치졸한 방법을 쓰진 않았을 것”이라며 이재명 대표 풍자설(諷刺說)을 적극 부인했지만, 어찌 됐든 시장에선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런 의혹이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일으켜 흥행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관찰도 나오고 있다. 〈살인자ㅇ난감〉이 넷플릭스 TV쇼 순위에서 한국 1위로 올라선 시점은 이미 논란이 불붙고 난 뒤인 2월 10일이었고, 이처럼 논란이 일어난 시점에 보이콧 분위기가 일지 않고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 효과만 부추기게 된 까닭은 〈살인자ㅇ난감〉의 타깃 시청층 성향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원작 웹툰 자체가 연재 당시 1020 남성층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고, 애초 〈살인자ㅇ난감〉처럼 엽기(獵奇)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스릴러물은 본래 젊은 남성층에서 유난히 인기 있는 장르다. 그런데 그 소비 중심인 20대 남성층은 이제 ‘이대남’이라 불리면서 20대에 대한 기존 인식을 뒤집어 명확한 우파 정당 선호를 보이는 이들이다. 이러니 이렇다 할 반발이나 보이콧도 일어나지 않고 시장에서 외면받는 일 없이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 효과만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마지막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극단적 이념 대립에의 피로감을 반영하는 콘텐츠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도 이런 콘텐츠가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이념 대립이 극으로 치달았던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1980년대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젊은 층을 향한 대중문화 콘텐츠 전체가 탈이념 지향으로 흘렀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이 큰 인기를 얻고, 홍콩 영화감독 왕가위의 영화나 TV 트렌디 드라마들이 공전(空前)의 히트를 기록하던 시절이다. 지금은 그와 똑같은 방향이라 보긴 힘들지만, 어찌 됐든 지금쯤이면 이념 대립의 허망함을 드러내는 콘텐츠가 또다시 등장할 때도 됐다. 향후 이런 계통 콘텐츠가 가장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대중’에서 ‘단독성’으로
한편 거시적(巨視的) 관점에서 봤을 때, 어찌 됐든 지금은 ‘대중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휘발(揮發)돼가는 시점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대중상품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고 수많은 특성 집단으로 시장이 잘게 나뉘어 각각을 핀 포인트로 공략하는 흐름이 가시화(可視化)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출간된 독일 문화이론가 안드레아스 레크비츠의 저서 《단독성(單獨性)들의 사회》도 이 같은 현상을 지목해 파헤치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소셜미디어(SNS) 열풍을 겪으며 세계는 모든 ‘보편’이 사라지고 점차 ‘단독성’의 ‘특수’가 폭발하는 이른바 ‘단독성들의 사회’가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 기술이 근대사회의 보편화를 이끌었다면, 디지털 기술은 단독성의 사회를 부추기고 있다는 논리다. 그렇게 노년층을 위한 콘텐츠, 우파 성향 대중을 위한 콘텐츠, 그 밖에 여전히 지상파 방송에선 금기시되는 일본 J팝의 팬들을 위한 콘텐츠 등이 무너져가는 대중 시장의 자리를 촘촘하게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큰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펼쳐지다 보니 한국과 유사한 이변들을 겪고 있는 나라들도 쉽게 눈에 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미국의 사례다.
그간 주류(主流) 시장에서 외면받아 제작 자체가 어려웠던 기독교 신앙 영화들이 2010년대 들어 갑자기 세(勢)를 키우며 〈천국에 다녀온 소년〉(2014), 〈선 오브 갓〉(2014), 〈신은 죽지 않았다〉(2018) 등의 연속 흥행 성공을 낳았다. 미국에서 한국의 트로트처럼 ‘낡은’ 이미지였던 컨트리 음악도 지난 수년 사이 되살아나 빌보드 차트 1위를 계속하고 있고, 〈에이티 포 브래디〉(2023) 등 80대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도 속속 등장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미국에서도 우파 영화 성공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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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우파 영화’ 〈사운드 오브 프리덤〉. |
미국의 젊은 우파 논객 벤 샤피로는 영화 〈백설공주와 사악한 여왕(Snow White and the Evil Queen)〉의 제작을 발표했다. 월트디즈니 영화사에서 〈인어공주〉 등 원작 고전동화에 등장하는 백인 캐릭터들을 일일이 흑인 등 소수인종으로 바꾼다거나 동성애자 캐릭터를 계속해서 끼워 넣으려 하는 등 과도한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행보를 보이자 샤피로 본인이 이에 맞서기 위해 어린이용 스트리밍 플랫폼 벤트키(Bentkey)를 설립, 이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상황이 이러니 국내 대중문화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주목할 만한 의견들이 오간다. 과거 “일본에서 유행한 것은 5년 뒤면 한국에서도 유행한다”는 말이 대중문화계에서 일종의 법칙처럼 얘기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일본의 자리로 미국이 오고, 선후(先後)관계도 사실상 쌍방향이라는 것이다. 특히 정치 이념과 대중문화가 만나는 상황들일수록 더 그렇다. 미국에서 벌어진 일은 이와 매우 유사한 형태로 곧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반대로 한국에서 벌어졌던 현상은 곧 미국에서도 거의 닮은 모습으로 재현된다는 것이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미국 대중문화계 동향(動向)을 주의 깊게 관찰해 봐야 할 또 다른 이유다.
‘선거용 영화’ 효과 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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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길 위에 김대중〉. |
그런데 이들 ‘선거용 영화’는 세간의 지레짐작과는 달리 실제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극히 미미(微微)하다는 관찰이다. 사실 당연한 얘기다. 애초 특정 이념이나 정파(政派) 지향이 강한 콘텐츠는 이런 측면 중심으로 언론 보도가 이뤄지고 홍보되기에 콘텐츠를 소비하려는 이들은 이미 해당 이념이나 정파의 방향성에 동의하는 이들인 경우가 절대다수다. 혹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영화 한 편 봤다고 자신의 지지 정당 또는 정치인 등을 바꾸는 경우란 흔치 않다.
지금은 “영화가 가장 중요한 대중 선동 수단”이라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시대, “영화는 1초에 24발의 총알을 퍼붓는 혁명의 무기”라던 볼리비아 혁명영화그룹 우카마우 집단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TV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대중적 볼거리로서 영화가 지닌 압도적인 위치 탓에 영화 속 메시지의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TV는 물론 유튜브 등 인터넷 기반의 뉴미디어들도 엄청나게 늘어나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는 성향, 원하는 메시지의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세상이다. 영화는 이제 수많은 엔터테인먼트 품목 중 하나일 뿐 ‘혁명의 무기’씩이나 되는 세상이 아니게 됐다. ‘선거용 영화’도 ‘여름철 납량(納涼) 공포영화’와 같은 단순 시즌용 상품에 가까워졌다.
〈건국전쟁〉 흥행의 의미
이런 점에서 〈건국전쟁〉 흥행을 놓고 벌어지는 좌우 이념 진영의 열띤 분위기는 어딘지 방향이 잘못됐다는 느낌이다. 모두 4·10 총선에 미칠 영향을 내다보며 날 선 공방을 펼치고들 있지만 〈건국전쟁〉 흥행은 이와 전혀 다른 차원, 즉 우파 성향 대중문화 콘텐츠 활성화에 전환점을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건국전쟁〉과 같은 콘텐츠가 ‘더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그 진정한 의미가 발견된다는 뜻이다.
애초 자유시장에서 ‘건강한 시장’이란 시장 참여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폭넓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적극적인 시장 환경이다. 우파 대중 등 그간 문화적으로 소외돼온 이들이 자신들이 평소 원하던 콘텐츠를 제공받아 여가(餘暇)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는 것, 많은 의미에서 대중문화산업의 궁극적 지향점에 가깝다. 우파 진영 일각에서 펼쳐진 〈건국전쟁〉 관람 독려 열기도 이런 입장에서 더 유의미한 소비자 운동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통해 그동안 대중문화에서 시선을 돌렸던 이들이 다시 흥미를 갖고 되돌아오게 된다면, 지금껏 공적 개념에서 내놓은 그 어떤 정책보다도 대중문화 시장과 산업을 살찌우고 고도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셈이 된다. 〈건국전쟁〉은 그렇게 중장기적 문화 진흥이라는 차원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콘텐츠가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