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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22〉 한국인에게 집과 素月의 ‘엄마야 누나야’

엄마와 누나가 사는 ‘강변’은 생명과 자연의 공간

정리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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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형님은 죽이는 공간, 싸우는 공간, 권력의 공간, 돈의 공간
⊙ 한국인의 피에는 농경민적인 욕망과 노마딕 한 ‘네오필리아’가 공존
⊙ 인간의 첫 집은 자궁(womb), 그리고 마지막 집은 묘지(tomb)
⊙ 반간은 淸風, 반간은 明月… 김장생 시조에 담긴 한국인의 생태적 건축의식
⊙ 소월 시에 담긴 이항대립… ‘뜰 앞’과 ‘뒷문 밖’, 개방과 폐쇄, 무기물(모래)과 유기물(이파리)

李御寧(1933~2022)
서울대 국문학과·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 경기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논설위원,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편집자 註]
이어령 선생이 타계한 지 1년이 지났다. 선생은 생전(生前)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의 문패에다 ‘끝나지 않은’이란 수식어를 직접 붙이셨다.
생전 선생은 당신이 남긴 굵직한 저작물과 수많은 강연에서 언급한 ‘한국인 이야기’를 비록 당신이 떠나도 계속 이어가기를 희망하셨고 관련 원고와 저서의 일부를 《월간조선》에 전하셨다. 또 선생이 남긴 바탕 위에 편집자의 생각을 보태도 된다고 허락하셨다. 아주 조심스럽게 선생이 남긴 큰 발자국을 따라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선생에게 누(累)가 되지 않기를 소망할 뿐이다.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등장한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 수성동(水聲洞)의 조감도. 서울시는 이곳에 전통 수목을 심고, 옛 정취를 되살렸다. 사진=조선DB
  그 많은 민족이 모여 국가를 이뤘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미국을 대하며 두렵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 중 하나다. 미합중국이란 나라 안에 종족이, 문화가 따로 있을 리 없고 DNA가 특별히 남다른 것도 없다.
 
  미국의 정신은 개척정신이다.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을 때 전 세계가 어떻게 됐나. 금융시장이고 은행이고 다 다운됐을 때 등장한 것이 리바이스 광고였다.
 
  이 청바지 회사는 마치 개척 시대로 돌아간 듯 “고 포스(GO FORTH), 앞으로 나가자”는 광고를 내보냈다. “우리에게는 꿈이 있다. 미국은 절대로 다운되지 않는다. 가자. 앞으로”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미국의 프런티어 정신, GO FORTH
 
184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골드 러시를 기념하는 우표.
  서부 개척 시대 ‘포티 나이너(forty-niner·184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몰려든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을 의미-편집자)’, 금광으로 뛰어갔던 사람들처럼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사실, 청바지는 단순한 옷이 아니라 개척자들의 집이요 텐트였다. 그러니까 이런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고 포스, 앞으로 나아가자고 외쳤던 것이다.
 
  한국인의 마음에도 한편엔 행진하는 ‘네오필리아(neophilia·뉴 프런티어 정신-편집자)’가, 다른 한편엔 초가삼간 짓고 살던 시절을 잊지 말자는 ‘토포필리아[topophilia·장소 애(愛)-편집자]’가 있다. 두 가지 면을 균형을 이루며 살아왔다. 21세기는 융합의 시대다. 농경적인 토포필리아, 유목적인 네오필리아의 결합이 필요하다.
 
  나는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지휘한 뒤 곧장 미국으로 프랑스로 일본으로 떠났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유목적인 삶을 산 게다. 일흔이 넘어 일본에 가니까 사람들이 쉬러 온 줄 착각하더라. 혼자 숙식하면서 일본에서 쓴 책이 《가위바위보 문명론》이다.
 
  처음엔 장관까지 한 사람이니 머리 식히러 온 걸로 생각했지만 일본인과 똑같이 세미나 가서 토론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장 봐서 밥 해 먹는 것을 본 것이었다.
 
  한국에 머물렀다면 편히 여생을 보낼 수 있을 텐데 마다하고 훌쩍 떠난 게다. 내 피에 노마딕 한 것, ‘네오필리아’가 있는 까닭이다. 나는 새로운 것을 끝없이 찾는 사람이다. 나처럼 머릿속에 옛이야기 보따리가 풍성하게 쌓인 사람도 없을 게다.
 
  집에 가방이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나? 공부 잘하는 것과 가방의 개수는 상관이 없다. 우리 집에 컴퓨터가 7대나 있다고 사람들이 놀라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7대가 된 것이다.
 

  가방이나 컴퓨터처럼 자기 집이 있다는 게 대수가 아니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밥을 굶더라도 가출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더러는 집에서 꼼짝 않고 한 우물을 파는 사람도 필요하고 더러는 집을 떠나 풍찬노숙하며 망가지는 사람도 필요하다. 간혹 그런 이들 중에 톱스타가 나오고 천재적인 인물이 탄생한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라. 리스크(위험)를 피하기보다 리스크를 감당한 채 뭔가를 해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오늘날의 강대국을 만들었다. 사실 우리에게는 옛날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던 나그네의 피, 몽골로이드의 피가 흐르고 있다. 칭기즈칸, 쿠빌라이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우리 민족은 칭기즈칸처럼 돌아다녀야 했는데 그만 한반도로 들어오는 바람에 모 심고 정착해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북방민족 중에 집을 지닌 채 세계를 돌아다니는 민족은 한국인밖에 없다. 한국인은 세계 10위권 디아스포라 민족으로 꼽힌다.
 
  우리 젊은이들이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리바이스 같은 청바지 기업도 리먼 사태가 일어나니까 프런티어 정신으로 ‘GO FORTH, 나가자’는 광고를 한다. 그 광고 하나로 미국인의 내면에 깃든 뉴 프런티어 정신을 끄집어냈다.
 
 
  한국인이 명절이면 고향에 가는 까닭
 
1000원 화폐의 뒷면 산수화인 겸재 정선이 그린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 그림 속 선비는 퇴계 이황 선생이다.
  인간이 제일 먼저 갖는 첫 집이 아기집이다. 엄마의 자궁이다. 영어로 웜(womb)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갖게 되는 집이 묘지, 툼(tomb)이다. 웜과 툼의 차이는 w와 t뿐이다. 이처럼 집은 우리 삶의 거점이다. 어떤 집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문화가 달라지고 일상이, 일생이 변화한다.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전 세계든 홈리스든 제1 장소는 누구에게나 집이다. 제2 장소는 직장, 학교다. 제3 장소는 xbox(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게이밍 플랫폼) 또는 트위터 또는 스타벅스로 상징되는 커피숍이다. 한자 ‘주(住)’자로 상징되는 ‘토포필리아(장소 애)’가 이처럼 소중하고 중요하며 다양하다. 어떤 집을 택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
 
  요즘 캠핑이 대세라고 한다. 젊은 캠핑족들을 산이나 강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혹자는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노인들도 캠핑을 한다. 캠핑카나 트레일러를 끌고 달려간다. 하늘을 지붕 삼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광활한 벌판에 무슨 집을 짓겠나? 그들에게는 자동차가 집이다. 홍콩이나 동남아 등에 가 보면 배 안에서 사는 사람도 많다. 우리의 고정관념과 달리 집은 여러 가지 형태다.
 
  명절 때마다 전국의 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귀성 인파로, 그리고 귀경 인파로 북새통이다. 고향을 떠나면 눈물겹고, 명절이면 꼭 돌아오는 유전인자가 한국인에게 있다. 고향이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상관없다. 강 건너 바다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고향이 나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도 없고 가봐야 아는 사람도 없는데도 고향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 중의 하나가 정지용(鄭芝溶·1903~1950년) 시인의 ‘향수’다.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충북 옥천의 정지용 생가 모습이다. 사진=조선DB
  시 ‘향수’는 국민시다. 그런데 한국인은 그렇게 고향을 좋아하면서도 이민을 떠난다. 저 아프리카 사막에 가도 한국 사람을 만난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 숨은 공간
 
  유목민의 집과 농경민의 집, 이 두 갈래의 집 이야기를 하기 전에 미래의 도시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언젠가 세계 17개국에서 온 31개 도시의 시장(市長)들이 서울에서 모인 적이 있다. ‘미래의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어떤 집에서 살아야 하나’를 주제로 큰 콘퍼런스를 열었을 때 특별연사로 연단에 섰다.
 
  처음엔 멋모르고 그냥 인사말이나 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전부 내로라하는 시장들이고 건축 전문가들이 귀를 세우고 내 말을 듣더라.
 
  인문학을 하는 사람, 그것도 문학하는 사람이 집 이야기, 도시 이야기 하는데 공감을 할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연설을 하게 된 이유는 나 자신이 유목민과 농경민의 피, 비류의 백제 피와 온조 백제의 피를 함께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충청도 사람이니까. 충청도 사람들이 아주 약해 보이지 않나? 농경민은 약해 보이고 순해 보이고 느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충청도 사람은 말이 아주 느리다고 하지만 천만에! 충청도 사람처럼 급한 사람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아, 뭐 괜찮아요” “뭐 그만둡시다”고 할 때 충청도 사람은 “됐슈” 딱 두 음절로 끝낸다.
 
  사실은 굉장히 스피드 한 사람들이다. 팔도 여성 중에서 독립운동을 가장 화끈하게 한 사람이 유관순(柳寬順·1902~1920년) 열사가 아닌가. 충청도 천안 사람이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다 한반도 중부, 충청도에 포진해 있었다. 이 말인즉 유목민과 농경민의 피가 섞여 있다는 말이다.
 
  외국의 시장들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말을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김소월(金素月·1902~1934년)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가 생각났다. “나는 문학을 한 사람인데 집 짓는 것으로 치면, 도시로 치면 기가 막힌 시가 있는데 그것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고 말했다.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개벽》 1922년 1월호)

 
  이 시는 후렴을 빼면 다 합쳐도 30자밖에 안 된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며 강변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시가 어렵지 않다. 한데 왜 하필이면 엄마와 누나일까. 아버지와 형은 어디 가고.
 
  그런데 강변 살자는 말은 곧 화자(話者)가 현재 강변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진술하는 말이기도 하다. 욕망은 결핍과 부재에서 나온다.
 
  뿐만 아니라 ‘엄마야 누나야’라는 말투에서 드러나 있듯이 그 욕망의 주체자는 어린 아이로 되어 있지만 그 진짜 주체자는 바로 이 시를 쓴 시인 김소월이다. 그러니까 이 시의 특성은 어른이 어린 시절의 시점을 통해, 즉 미래의 시간(살자라는 미래의 바람)을 과거의 시간을 기점으로 해서 말하고 있다는 데 있다. 강변이 현실공간이 아니듯이 화자로서의 어린이 또한 현실의 주체자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엄마와 누나 그리고 ‘강변’은 말할 것도 없고 ‘살자’고 말하는 욕망의 주체자마저도 부존한다.
 
  이 부재하는 욕망의 공간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는 것, 그것이 시인(詩人)의 특권인 이미지라는 힘이다.
 
 
  여성공간(생명) vs 남성공간(싸움, 권력, 돈)
 
  시에 없는 아버지는 어디 있을까. 그리고 누굴까.
 
  노마드다. 집을 떠나 공장에 있거나 아니면 전쟁터에 있다. 아버지와 형은 도시로 떠났거나 멀리 이민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엄마와 누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나? 생명의 자궁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최초의 집이 어머니의 자궁이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자궁에서 무덤으로 가는 그 생명의 집은 딱 두 개다. 자궁하고 자연이라고 하는 강변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했으니까 결국 나는 자연이 아닌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결과적으로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공간은 자연의 공간, 생명의 공간에서 살자는 게다. 죽이는 공간, 싸우는 공간, 권력의 공간, 돈의 공간과는 정반대의 공간이다.
 

  남자들은 강변에다 집을 짓지 않는다.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집을 뛰쳐나와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다. 이런 점에서 엄마·누나의 공간은 자연 공간, 아버지·형의 공간은 비자연적 도시 공간이다.
 
  어느 소설에 메트로폴리탄 뉴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서술이 나오는데 인용하면 이렇다.
 
  〈이 모든 건축, 발이 남성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맨해튼의 토지를 동서로 이어진 200개의 거리와 남북으로 이어진 12개의 대로로 인정사정없이 분할한 땅에 수직등급을 나타내는 추상적인 도장을 찍어놓았다. 또 어마어마하게 높이 솟은 건물에 공작새 깃털 같은 장식을 달아 도시는 야망과 투기, 경쟁과 지배 심지어 욕망을 상징하게 되었다. 높이와 크기 그리고 늘 그렇듯 돈을 향한 욕망이었다.〉
 
  -《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글, 박현주 옮김, 비채, 2007

 
  이 광활한 땅을 직선으로 구역을 만들고 거기다가 높은 집을 때려 짓는 짓을 여성이, 엄마가, 우리 누나가 하지는 않는다. 남성이, 아버지가 형이 한다. 전쟁, 욕망, 권력, 돈은 남성과 결부되어 있다. 끝없이 새로운 공간, 새로운 도시, 새로운 공장을 만들어 전쟁을 치르는 ‘네오필리아’의 싸우는 공간으로 나아가려는 본능이 있다. 그러니까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말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마땅치 않으니까 우리 강변에 가서 살자는 말이다. 우리 마음속엔 끝없이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본능이 숨어 있다.
 
 
  ‘터’를 중요시하는 한국적 건축
 
돌담과 초가지붕. 황토와 돌로 단을 쌓고 초가지붕을 얹은 전통적인 우리의 일반 가옥 형태다. 사진=조선DB
  소월은 ‘강변 살자’면서 어떤 집을 짓겠다는 말은 딱히 하지 않았다. 초가집인지 기와집인지 빌딩인지 알 길이 없다. 그냥 ‘언덕 위의 하얀 집’, 또는 유행가에 나오는 ‘큰 부잣집’ ‘기와집’ 그런 게 아닌 ‘강변 살자’는 ‘터’ 이야기를 한다.
 
  나는 “건축은 건축이 아니고 터”라고 외국의 시장들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좋은 곳에 텐트를 치듯이 터가 중요하지, 집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집은 무너져도 터는 안 무너진다. 한국인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처럼 어떤 집을 짓느냐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작 30자의 글자로 터를 만들어 뒤에는 갈잎의 노래가 들리고 앞에는 반짝이는 햇빛이 있는 데서 엄마, 누나와 살자고 노래한다. 보통 우리 같으면 “엄마, 우리 튼튼한 2층집을 짓고 살자. 남들처럼 아파트에서 살아”라고 했을 텐데 시인은, 시 속 화자는 터를 이야기한다. 터를 이야기하고 집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노마딕 한 게다. 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변에서 살자’가 아니라 처격조사 ‘에서’마저 빼 ‘강변 살자’라고 한 이 시구는 하나의 공간이 삶 그 자체의 목적으로 나타나 있다. 사실 ‘강변 살자’는 것은 배산임수(背山臨水)를 말하는 게다. 뒤는 산이고 앞은 강이니 옛날 산수화(山水畵)가 연상된다. 대개의 산수화는 그림의 뒷배경이 산이고 앞엔 강물이 흐른다. 그 가운데 조그마한 집이 있다.
 
  그 집이 기와집이냐, 부잣집이냐, 가난한 집이냐, 초가집이냐, 다 소용이 없다. 그저 거기 사는 게 제일 행복한 일이고 꿈이었다. 한국인은 배산임수, 터를 중시했다. 이런 이야기를 외국 시장들 앞에서 한 게다.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UN Headquarters) 빌딩은 허드슨강을 보고 있는데 남향이 아니다. 유엔본부에 가면 제일 햇빛 많이 들어오는 데가 화장실이다. 사진=조선DB
  “당신네는 터 개념이 없다.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UN Headquarters) 빌딩을 보면 남향이고 북향이고가 없다. 유엔본부 빌딩은 허드슨강을 보고 있는데 남향이 아니다. 유엔본부에서 제일 햇빛 많이 들어오는 데가 화장실이다. 유엔 본 회의장이 제일 어둡더라.
 
  당신네가 한국의 도심을 둘러보고 무질서하고 판잣집 같은 쪽방촌이 아직도 있다고 흉볼지 몰라도 이런 도시는 어디에도 없다. 한국인은 집을 지을 때 조금이라도 남쪽으로 틀어서 짓는다. 한때 우리나라의 제일 큰 건물이던 코엑스 빌딩만 봐도 그렇다. 애초 설계한 방향은 남향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큰 건물의 방향을 남쪽으로 하려고 건설 당시 많은 수정을 했다고 한다. 다른 큰 건물들도 대개 남향으로 지어졌다. 배산임수가 잘된, 즉 뒤에 산이 있고 앞에 강이 있는 터에 있는 집이 제일 비싸다. 한국인은 무덤을 쓸 때도 터를 본다.”
 
  십년(十年)을 경영(經營)하야 초려 한 간 지어내니
  반간은 청풍(淸風)이요 반간은 명월(明月)이라
  강산(江山)을 드릴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김장생(金長生·1548~1631년)의 시 ‘십 년을 경영하여’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 삼 간 지어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청풍 한 간 맡겨두고
  강산은 드릴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송순(宋純·1493~1582년)의 시 ‘십 년을 경영하여’

 
  두 시에서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었는데, ‘반은 청풍이요, 반은 명월’이란다. 이게 말이 되나?
 
  집을 지었는데, 그것도 10년 동안 애써서 지었는데, 반은 청풍이고 반은 명월이라니…. 그런 바람이 불고 달이 보이는 집이라면 그게 지붕이 있는 집일까.
 
  산천을 병풍처럼 둘러친다는데 담도 없는 집이란 얘기다. 청풍과 달이 안으로 들어오고 울타리조차 없는 집을 강산이 에워싸고 있다는 게다.
 
 
  한국의 생태적 건축,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다
 
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에 곡을 붙여 가장 널리 불리는 동요로 만든 월북 음악가 안성현(1920~2006)을 기리는 노래비. 전남 나주 남평읍 지석강변에 세워졌다. 사진=나주시
  터만 있지, 집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은 에콜로지컬(ecological)한, 소위 생태적 공간에 대한 시각이다. 우리가 도시에서 도시인과 어울려 살면서도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자연과 생명 공간을 추구하는 마음이 우리 피 안에 있는 게다. 한쪽으로는 아버지와 형처럼 도시로 나가서 어마어마한 욕망을 이야기하면서도 말이다.
 
  나는 외국의 시장들에게 “건축 없는 건축, 터가 중요하니까 앞으로 도시를 디자인할 때는 집이 어떻고 시설이 어떻고를 이야기할 게 아니라 도시를 얼마만큼 자연과 가깝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때 소월을 데려오는 게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것처럼 ‘강변’으로 생각하고 배산임수를 따져서 설계하는 게다. 나는 시장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시(詩)를 짓지 말고 시(市)를 만드시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하는 생명의 공간, 엄마와 누나의 자궁과 같은 그런 생명의 공간을 만드시오. 아버지와 형만으론 안 되겠소. 자꾸 공장을 때려 짓고 마천루나 올리고, 이게 사람 사는 곳이오? 시멘트로 전부 이어붙인 이런 곳에 어찌 살라고 하오?”
 
정선이 1755년경에 그린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 간송미술관 소장.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자. ‘뜰’ 앞에는 강물이 흐르고 ‘뒷문 밖’에는 산이 솟아 있다. 앞과 뒤 수평적인 것과 수직적인 것 그리고 ‘뜰’은 열려져 있는 세계를 그리고 ‘뒷문 밖’은 닫혀져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항적 대립을 더욱 첨예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 ‘금모래 빛’과 ‘갈잎의 노래’의 대조이다.
 
  ‘반짝이는’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뜰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래는 시각적인 것이다. 그래서 모래는 금모래가 되고 빛이 된다. 또한 모래의 그 물질적 이미지의 뒤에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뒷문 밖 산을 덮고 있는 것은 모래와 대조를 이루는 이파리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금모래 빛’의 빛과는 달리 ‘갈잎의 노래’라고 하여 청각적인 것을 나타낸다. 앞뒤로 분할되어 있던 공간은 ‘빛’과 ‘노래’의 시각과 청각의 감각 공간으로 대응관계를 띠고 있다. 모래에서 태양빛을 느꼈던 사람들은 이제 ‘갈잎의 노래’에서는 숨어 있던 바람소리를 듣게 된다.
 
  앞과 뒤,개방과 폐쇄,무기물(모래)과 유기물(이파리), 수평성과 수직성(강과 산), 그리고 시각과 청각… 음악의 대위법처럼 시의 병렬법(패럴렐리즘)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간,대체 살고 싶은 그 공간이란 어떤 곳인가.
 
  사실, 한국의 모든 건축물은 노마드적인 것과 농경적인 것, 북방적인 요소와 남방적 요소 등이 전부 섞여 있다. 북구와 남구, 농경과 유목, 유동적인 것과 정착하는 모든 것의 모순 위에, 인간의 근거, 존재의 근거를 마련하는 도시를 만들어 그 위에 문화를 꽃피우는 집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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