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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왜 10년 넘게 ‘1990년대 열풍’이 계속되고 있나?

인터넷도, PC주의도 없던,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그리움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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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사회적 현상과 문제들은 1990년대로부터 기원
⊙ 한국의 1990년대는 7%대 성장 유지하면서 정치·사회적 자유 확산되던 ‘마지막 호황기’
⊙ 미국의 ‘1980년대 열풍’은 사반세기 넘게 지속 중
⊙ 1990년대는 각자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냉소 대신 긍정의 힘을 믿고 분투했던 시대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1990년대’를 회고(懷古)하며 재해석한 서적 두 권이 최근 차례로 국내 출간돼 큰 관심을 받았다. 미국 서적 《90년대: 깊고도 가벼웠던 10년간의 질주》와 한국 서적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다.
 
  미국의 음악평론가 척 클로스터만의 《90년대: 깊고도 가벼웠던 10년간의 질주》는 199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 아이콘들을 통해 시대 정서를 되짚어내는 내용이다. 뉴키즈온더블록, 너바나 등 뮤지션들부터 마이클 조던과 O.J. 심슨 등 스포츠 스타들, TV 드라마 〈프렌즈〉와 〈사인펠드〉, 영화 〈사랑과 영혼〉과 〈타이타닉〉 등이 나열되며 특징적 시대 공기(空氣)를 들려준다. 클로스터만이 바라본 1990년대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부터 2001년 9·11 테러 직전까지 유지됐던 일련의 대중정서 흐름을 가리킨다. 1990년대를 “인간이 기술을 지배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기”라 규정하면서 “이 시기의 정서는 자기도취(narcissism)보다 자기중심주의(solipsism)가 대세였다”고 설명한다. 나와 타인들을 철저히 구분해 생각하며 자기완결적인 사고로 점철돼 있던 시대라는 얘기다.
 
  한편 국내 사회학자 윤여일의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는 1990년대 출간된 문예지, 학술지, 계간지, 대중문화지 등 잡지에 실린 문헌들을 통해 시대를 재현하며 그 의미와 특징적 정신세계를 되짚어보는 형식이다. 여기서 저자가 바라본 1990년대는 ‘87체제’가 성립된 1987년부터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까지다.
 
‘1990년대’를 분석한 《90년대: 깊고도 가벼웠던 10년간의 질주》와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
 
  X세대의 좌편향
 
  저자는 “지금의 사회적 현상과 문제들은 1990년대로부터 기원한 것이 많으며, 그것들을 파고들다 보면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야 할 일이 생긴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1990년대는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시간대이자, 지금의 사회 현실을 이루는 한 가지 지층”이라 주장한다. 예컨대 페미니즘이나 생태주의(生態主義) 등 서구에선 1960년대 후반 68혁명 등을 통해 뻗어나간 신좌파(新左派) 어젠다들이 국내 유입돼 처음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라는 것이다. 한편 보이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중심으로 K팝이라는 흐름이 시작된 것, ‘한국 영화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 등 K컬처의 시발점도 1990년대라는 점을 강조한다.
 
  위 두 서적은 지난 7~8월 연달아 출간되자마자 특히 언론미디어 입장에서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웬만한 종합일간지에서 다루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고, 《중앙일보》나 《경향신문》처럼 두 서적을 함께 엮어 미국과 한국의 서로 비슷한 듯 다른 1990년대 정신세계를 분석하는 보도들도 이어졌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은 1990년대가 더없이 주목받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애초 이런 분위기로 인해 비슷한 종류의 서적이 연달아 출간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일단 정치 측면부터 보자면,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X세대’, 즉 현(現) 40~50대 1970년대생의 선거 표심(票心)과 관련해 언론미디어는 물론 정치권의 주목도도 상당히 높은 상황이다. 단적으로 말해, ‘이보다 더 좌파(左派) 편향적인 세대는 없다’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당장 지난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48.56%,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47.83% 득표율로 박빙(薄氷)의 결과가 나왔지만, 이 중 더불어민주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세대가 바로 40대다. 더불어민주당 60.5%, 국민의힘 35.4%라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그다음이 50대로 더불어민주당 52.4%, 국민의힘 43.9%이며, 이 역시도 1970년대 초반 생들이 이제 다수 50대로 편입(編入)되어 벌어진 현상으로 해석되는 실정이다.
 
  결국 1970년대생 ‘X세대’의 강한 좌파 성향은 우파 정당에 있어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이자 좌파 정당에 있어선 가장 믿음직스러운 최후의 보루(堡壘)와도 같다는 것이다. 이러니 1970년대생은 과연 어떤 이들인지, 그리고 이들의 정체성(正體性)이 성립된 1990년대 ‘X세대의 시대’는 또 어떤 시대였는지에 대한 관심이 드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대중문화계는 온통 ‘1990년대 천지’
 
  1990년대에 대한 언론미디어의 남다른 관심에는 또 다른 이유도 존재한다. 어쩌면 이 부분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정치와는 다른 영역, 즉 대중문화 영역에 불어닥친 ‘1990년대 열풍’이다. 실제로 지금 한국 대중문화계는 온통 ‘1990년대 천지’다. 《스포츠동아》 2023년 9월 13일 자 기사 〈‘너시속’ ‘워터멜론’, 90년대로 시간여행 떠난 청춘들〉을 보자.
 
  〈안방극장에 ‘레트로’(복고)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8일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너의 시간 속으로〉에 이어 25일 첫 방송하는 tvN 월화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 내년 방송을 목표로 제작 중인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등이 시간이동(타임슬립) 소재를 통해 1990~2000년대 청춘들의 일상을 재현해낸다. (중략) 〈너의 시간 속으로〉는 1년 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 안효섭을 그리워하던 전여빈이 1998년으로 돌아가 안효섭과 똑같이 생긴 고교생을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중략) 〈반짝이는 워터멜론〉도 배경이 되는 1995년을 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드라마는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코다(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이자 줄곧 가족의 ‘귀’로 살아온 려운이 우연히 1995년에 떨어지면서 고교생 시절의 아빠 최현욱, 그의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꾸리는 내용이다. (중략) 또 내년 방송을 목표로 최근 촬영을 시작한 〈선재 업고 튀어〉는 위기에 빠진 톱스타를 구하기 위해 과거로 날아간 열혈 팬 김혜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레트로와 청춘 로맨스를 결합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드라마도, 패션도, 가요도 1990년대 복고 열풍
 
IMF 사태를 전후한 시기를 다룬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KBS2 드라마 〈오아시스〉가 방영됐고, 이 역시도 주로 1990년대를 배경으로 격변의 시대 속 청춘들 사연을 다룬 내용이었다. 따라가다 보면 지난해 1998년을 배경 삼은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현상적 대성공이 나온다. 더 있다. 영화 부문에서도 2018년 〈벌새〉, 2019년 〈유열의 음악앨범〉, 2020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2022년 〈동감〉 등이 1990년대를 배경으로 속속 등장했다.
 
  대중음악 부문도 마찬가지. 이미 걸그룹 뉴진스가 지난해 1990년대 풍 컨템퍼러리 R&B 노래들로 데뷔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이 외에도 1990년대 클럽 장르들에 기반한 다양한 노래들이 한창 국내 스트리밍 시장을 휩쓰는 와중이다.
 
  패션 분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소위 ‘Y2K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 후반의 패션 유행이 되돌아와 시장을 강타하는 중이다.
 
  물론 이 모든 현상도 대수롭지 않게 보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복고(復古)’ 개념하에서 결국 모든 유행은 20~30년이 지나면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고 또 10여 년이 지나면 이번에는 2000년대 초반이 ‘복고’ 유행 중심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1990년대 열풍’은 좀 상황이 특이하다. ‘복고’ 또는 ‘노스탤지어’라는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11년 전인 2012년에도 《조선일보》에서 〈[대중문화 90년대 열풍] 영화·드라마서 시작… PC통신·청청패션까지 부활〉이란 기사를 내놓은 바 있다.
 
  〈2012년 한국 대중문화계는 20여 년 전의 추억에 잠겨 있다. 1990년대 복고 바람이 대중문화계 전반에 불면서 당시 관심이 쏠렸던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다시 살아나 광고·기업 마케팅 등 사회·경제의 다른 분야로까지 파급되고 있는 것. 90년대 열풍은 올 상반기에 개봉해 4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발화(發火)했고, 최근 한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폭발했다.〉
 
 
  10년 넘게 유지되는 1990년대 복고 열풍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복고 드라마 중 하나인 〈응답하라 1994〉.
  당시 《조선일보》에선 해당 주제로 〈[대중문화 90년대 열풍] 1997년에 네 살이었어요… 아빠의 삐삐 낯설지 않죠〉와 〈[대중문화 90년대 열풍] “민주화 이어온 대중문화 르네상스 세대, 현재 사회 주역 돼 ‘90년대’ 소비”〉 등까지 모두 3편의 기사를 특집으로서 내놓는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이 같은 ‘1990년대 열풍’은 여기서 끝나질 않았다.
 
  2013년에도 KBS 뉴스에서 〈[화제포착] 1990년대 복고 열풍, 2013년을 흔들다〉(2013년 12월 6일 자)를 내보냈으며, 2015년에는 《경향신문》에서 〈‘90년대’ 왜 열광하는가 “갈수록 팍팍한 현실, 문화 융성 시대를 추억”〉(2015년 1월 12일 자)을 보도하고, 2018년에도 《한국경제》에서 〈‘90년대 복고 열풍… 3040세대들의 영원한 마들렌〉(2018년 3월 30일 자)을 게재했다. 그리고 물론 2020년대에도 〈[응답하라 1990] 1990이 2020마저 흔들었다〉(《시사저널》 2020년 8월 20일 자), 〈때 아닌 90년대 유행 열풍! 지금 2023년이 맞나요?〉(‘씽굿’ 2023년 6월 5일 자) 등이 쏟아졌다.
 
  기사 검색을 통해 보면 이 ‘1990년대 열풍’이 언론미디어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건 대략 2011년 정도부터다. 이때부터 무려 12년에 걸쳐 정확히 같은 1990년대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12년이 지나도 복고 대상이 도무지 2000년대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을 짚어볼 만하다. 거기다 ‘1990년대 열풍’은 아직 식지도 않았고 오히려 갈수록 심화(深化)되며 다른 분야들로 뻗어나가 확대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복고 같은 개념으로 봐야 할 게 아니라 상시(常時)적 선호로서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 호황기에 대한 애착
 
  그럼 이 같은 선호를 대체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까. 물론 이에 대해서도 해석들은 이미 많다. 그런데 대부분 한 가지 코드에 집중해 있다. 이른바 ‘마지막 호황기(好況期)에 대한 애착’으로 많이들 해석한다. 많은 한국인에게 1990년대는 ‘고도성장의 열매를 막 따 먹던 시절’로 기억된다. 88 서울올림픽으로 국제적 자신감도 어느 정도 생겼고, 노태우 정권 내내 지속적인 대중문화 해금(解禁) 조치 등으로 전반적인 사회·문화적 자유가 확충돼가던 시절이다. 여기에 실제 경제 상황도 ‘걱정이 없는’ 수준이었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평균 경제성장률은 7.0%를 기록했다. 1980년대 3저(低) 호황만큼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사회·문화적 자유의 배가(倍加)로 전반적 풍요의 감각은 오히려 1980년대를 앞섰다고도 볼 만하다.
 
  이런 분위기에선 사회·문화 형태도 달라진다. 일단 미국의 ‘자본주의 황금기’ 당시와 마찬가지로 신좌파(新左派) 구호들이 밀려 나와 앞선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에서도 지적했듯, 페미니즘이나 생태주의 등의 어젠다들이 최소 같은 젊은 세대 내에선 이렇다 할 충돌 없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러면서 성(性) 개방 풍조도 함께 밀려오고, 이에 따라 패션도 점차 과감해지는 추세로 간다.
 
  그리고 이전 세대의 갈등 지점들이 문화 콘텐츠에서 일순간 휘발돼버리는 현상도 일어난다. 예컨대 1990년대는 〈결혼 이야기〉나 〈그 여자, 그 남자〉 〈닥터 봉〉 등 로맨틱 코미디가 한국 영화계에 처음 등장해 대단한 성공을 거두던 때다. 직전인 1980년대만 해도 대부분 빈부갈등(貧富葛藤)을 기반으로 한 사회파적 멜로 스토리가 대세였다. TV 드라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MBC 〈질투〉를 시작으로 청춘들의 가벼운 연애를 다룬 트렌디 드라마가 처음 등장해 큰 인기를 누렸다.
 
 
  일본의 ‘쇼와 버블’
 
  그렇게 지금의 ‘1990년대 열풍’은 신세대들이 풍요롭고 미래 걱정 없이 여유 있는 1990년대 청춘들 모습을 일종의 판타지처럼 즐기면서, 또 그런 분위기에서 빚어진 특유의 느슨하고 포용력 있는 대중문화 형태가 각박한 지금 시대 청춘들에게 어필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논리다. 많은 면에서 쇼와(昭和) 시대, 특히 ‘쇼와 버블’로 불리는 1980년대 중후반에 대한 문화적 애착과 열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 분위기와 흡사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10년 넘게 지속되는 한국의 ‘1990년대 열풍’은 이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일본의 경우 버블이 붕괴된 1991년부터 소위 ‘잃어버린 10년’ 동안은 웬만한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다시 되짚어보려 하지 않는, 일종의 금기(禁忌)라고까지 볼 만하다. 그만큼 ‘잃어버린 10년’이 일본인들에게 준 상처가 상당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의 ‘1990년대 열풍’은 ‘IMF 이후’도 종종 다룬다. 당장 선풍적 인기를 모은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부터가 ‘IMF 이후’ 설정이고, 실제 극중에서 IMF 외환위기에 타격 입은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한다. 단순히 걱정 없던 호황기의 분위기를 즐기는 차원은 또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의 ‘1980년대 열풍’은 사반세기 넘게 지속
 
미국에서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복고 영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웨딩 싱어〉.
  그럼 뭘까. 이에 대해선 일본의 ‘쇼와 버블’ 애착보다 미국의 ‘1980년대 열풍’에 더 가까운 현상이라는 해석이 존재한다. 미국 대중문화계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1980년대라는 시간대에 강한 애착을 보이고 수없이 많은 대중문화 콘텐츠가 이 시대를 배경으로 등장해왔다. 1998년 〈웨딩 싱어〉 등의 영화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흥행에 대성공한 것을 그 시작으로 보면 이후 무려 사반세기에 걸쳐 ‘1980년대 열풍’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미국 언론미디어들도 이 같은 현상을 꾸준히 보도해왔다. 《뉴욕타임스》 단 한 언론미디어만 해도 〈‘1980년대 열풍’에 대해 ‘어깨 패드를 꺼내라: 80년대가 왔다’〉(2001년 4월 26일 자), 〈70년대는 90년대에 유행했던 것. 80년대가 지금의 유행이다〉(2002년 5월 5일 자), 〈80년대가 (또다시) 돌아왔다〉(2009년 8월 19일 자), 〈나를 잊지 마! 구제불능이라던 80년대의 귀환〉(2016년 4월 20일 자), 〈도와줘! 80년대가 돌아왔다〉(2018년 3월 15일 자)까지 장장 20년에 걸쳐 이 유행 아닌 유행에 대해 때 되면 반복해 다루는 중이다. 나아가 시간이 흐를수록 1980년대에 대한 문화적 집착은 오히려 심화돼가고 있다는 점도 함께 언급된다.
 
  지난 10년간 만해도 그렇다. 영화 부문에서 〈아메리칸 허슬〉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그것〉 〈아메리칸 메이드〉 〈보헤미안 랩소디〉 〈조커〉 〈원더우먼 1984〉 등이 모두 1980년대를 배경으로 흥행에 대성공했고, TV 드라마도 〈기묘한 이야기〉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1984〉 〈레드 옥스〉 〈글로우〉 〈홀트 앤 캐치 파이어〉 〈골드버그 패밀리〉 〈디 아메리칸스〉 등이 같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대중음악도 마찬가지다. 브루노 마스, 레이디 가가, 두아 리파, 위켄드 등 현재 미국 팝음악계의 슈퍼스타들이 일제히 신스팝을 위시로 한 1980년대 팝음악을 재현하며 인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우리가 1980년대에 집착하는 25가지 이유’
 
  이것도 저 ‘호황기 애착’일까?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 경제 부문에서 미국의 1980년대는 매우 복잡한 시기이며, 절대로 걱정 없던 호황기 정도로 표현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1980년 제2차 석유 파동으로 열렸던 시대다. 짧은 기간의 사건임에도 GDP는 1% 넘게 감소하고 실업률도 8%까지 치솟았었다. 곧바로 더블 딥 경기 침체가 1981년 일어났고, 1987년에는 단 하루 만에 주가 지수가 22.6%나 빠져 1929년 경제 대공황을 촉발(觸發)했던 하락 폭을 넘어선 이른바 ‘검은 월요일’이 벌어졌었다.
 
  반면 1990년대 미국 경제는 흔히 ‘좋았던 10년(The Good Decade)’으로 표현되고는 한다. 1990년대 초반, 1990~1991년 저축 대부 조합의 연쇄 도산과 걸프전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겪은 뒤 적극적 금리 인하 정책 등으로 경제를 부양(浮揚)해 빠르게 위기를 극복하고 비약적 성장을 거두는 데 성공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후반을 비교해보면 GDP 성장률은 3.3%에서 4.3%로 높아졌고, 실업률은 7.1%에서 4.6%로, 물가상승률도 4.7%에서 2.5%로 각각 크게 떨어졌다. 심지어 폭력 범죄율까지 1990년대 초반 정점을 찍은 뒤 1993년경부터 꾸준히 감소 추세로 접어든다. 그야말로 ‘좋았던 10년’이다.
 
  그럼에도 미국 대중문화계에서 이 ‘좋았던 10년’을 되돌아보는 콘텐츠는 그리 많지 않다. ‘1980년대 열풍’과 비교해보면 턱도 없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그만큼 미국인들에게 1980년대는 경제 상황을 떠나 각별한 의미가 있는 시대, 경제와 관련 없이 늘 되짚고 또 되돌아가고픈 이유가 뚜렷한 시대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2018년 미국의 남성 잡지 《베스트라이프》에서 〈우리가 1980년대에 집착하는 25가지 이유〉라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잡지가 뽑은 25가지 이유 중 주요한 것들만 간추려 보자면 다음과 같다.
 
  ● 1980년대 사람들은 요즘처럼 자의식(自意識)이 팽배(澎湃)해 있지 않았다.
  ●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았던 마지막 시대다.
  ● 스티븐 스필버그가 말한 것처럼, 그 시절은 일상의 스트레스가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다.
  ● 대중문화도 PC(Political Correctness) 기조에 구애받지 않았다.
  ● 전화는 집에만 있는 것이었기에 언제든 타인들로부터 연락을 피할 수 있었다.
  ● ‘가짜 뉴스’라는 것은 없었다.
  ● 아이들은 지금처럼 통제되며 자라지 않았다.
  ● 모든 일에는 시간이 걸렸고 지금처럼 모두가 즉각적인 보상을 원하지는 않았다.
 
 
  아날로그 예찬
 
  어떤 의미에선 ‘아날로그 예찬(禮讚)’이라 봐도 좋을 내용들인데, 실질적으로 인터넷 이전과 이후로 삶의 양상들이 나뉘어 전개되는 모습이라 볼 만하다. 결국 ‘인터넷 시대’가 되고 보니 생활은 편해졌지만 정신적 충만감이라는 측면에선 삶의 질이 오히려 떨어져 버렸다는 것. 그러면서 삶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기에 이해하고 따르기도 쉬워 지금보다 덜 불행했다는 의견들도 함께 제시된다.
 
  한국의 ‘1990년대 열풍’도 많은 부분 이와 겹친다. 미국의 1990년대는 냉전(冷戰) 종식과 함께 동서(東西) 대결구도에서 눌러뒀던 인종차별이나 여성권익 문제 등 수많은 국내적 갈등이 수면으로 올라와 1992년 LA 폭동 등으로 비화(飛火)되던 때이기에 전반적으로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시대로서 기억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1980년대와 같은 남북한 긴장구도하에서 냉전 종식으로 달라진 조건이 많지 않았기에 미국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였고, 그러니 1990년대에 대한 기억도 서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미국의 1980년대’는 곧 ‘한국의 1990년대’였다는 얘기다. 삶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보다 단순했고, 인터넷이 불러올 각종 문제는 2000년 이후로 미뤄졌다.
 

  그리고 그런 시대 공기가 1990년대를 소환(召喚)한 여러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도 엿보인다. 지금처럼 젠더갈등, 세대갈등, 빈부갈등 등이 넘실대며 온 세상이 혐오로 가득 차 있지도 않았고, 서로 뜻이 맞지 않는다고 쉽게 ‘손절(cancel)’해버리는 문화도 존재하지 않던 분위기 말이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서로 만나본 적도 없는 이들의 삶이 실시간 중계되면서 서로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점철(點綴)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갖고 각자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냉소(冷笑) 대신 긍정의 힘을 믿고 분투(奮鬪)했다. IMF 외환위기를 그토록 빨리 극복해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그러니 이 혐오와 갈등과 혼란의 시대에, 아니 바로 그런 시대이기에, ‘1990년대 열풍’이 젊은 층에서 벌써 10년도 넘게 상시적 유행으로서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이 곧 그 시절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변화의 싹을 틔우던 청춘들, 1970년대생, 지금의 40~50대들이 지속적으로 현실의 조건에 의문을 품고 만성적(慢性的) 절망감 속에 현실과 괴리(乖離)된 이상주의 내지 과거 회귀로 치닫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모두에게 화가 난 시대’
 
  어찌 됐든 1990년대의 질서로 돌아가고픈 중장년층과 1990년대에 막연한 동경과 환상을 지닌 젊은 층에 의해 한국의 ‘1990년대 열풍’은 벌써 사반세기 동안 사그라지지 않는 미국의 ‘1980년대 열풍’만큼이나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1990년대를 다룬 대중문화 콘텐츠나 그를 분석하는 서적들도 계속 이어질 터다. 그렇게 현실 속 결핍(缺乏)된 부분을 채워준다는 점에서 ‘1990년대 열풍’도 문화의 본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이처럼 과거 특정 시간대에 대한 집착이 문화적으로 장기간 지속된다는 건 곧 현재에 대한 혐오와 도피 심리도 늘어나고 있음을 방증한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되는 현상인 것도 맞다. 이에 1980년대에 빠진 지금의 미국 풍경도 한 번쯤 돌아볼 만하다. 《동아일보》 2023년 7월 31일 자 기사 〈[특파원칼럼/김현수] 모두가 모두에게 화가 난 시대〉 한 대목이다.
 
  〈두 쪽 난 이날 공원 풍경은 미국에서 확산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분노’를 시각화한 느낌이었다. 내가 속한 집단이 아닌 다른 집단에 대한 적개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지지하는 정당, 낙태, 성(性)정체성, 인종을 중심에 둔 ‘문화 전쟁’은 물론이고 남과 여,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와 베이비부머(1946~1964년 출생자) 간 갈등도 뜨겁다. 오죽하면 미합중국이 아닌 ‘미분열국(Devided States of America)’이란 말이 나올까. (중략) 갈등과 논란이 정치를 거치며 더 증폭되는 악순환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결혼율도 떨어뜨린다. 미 시사주간지 《디애틀랜틱》에 따르면 젊은이들은 데이트 앱에서 정치 성향을 보고 상대를 거른다. 2010년 이후 여성은 진보 성향으로, 남성은 보수 성향으로 이동하며 진보는 여성 1명당 남성 0.6명, 보수는 남성 1명당 여성 0.6명에 그쳐 연애하기조차 힘들어졌다. 《디애틀랜틱》은 한국을 빼놓지 않았다. “결혼율과 출산율이 사상 최저인 한국에서 남녀 이념 격차는 더 크다”고 했다.〉
 
  한국과 다른 부분이 없다. 당면 현실에 대한 염증으로 비롯된 미국의 ‘1980년대 열풍’, 한국의 ‘1990년대 열풍’을 그저 단순한 문화 유행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대체 어디서부터 접근해 실마리를 풀어내야 할지 감감한 지경이지만, 대중의 관심을 1980년대, 1990년대가 아닌 ‘현재’로 되돌려놓지 않는다면 모든 상황은 빠른 속도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지난 9월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7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 2분기(4~6월) 합계 출산율은 0.7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연말로 갈수록 출산이 줄어드는 추세를 감안하면 올해 합계 출산율은 0.7명대 아래로 떨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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