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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⑳ 한국적 맛에 담긴 ‘코드5’

찌고 고고 끓이는 게 한국의 ‘물맛’… “참기름만 주면 모든 풀을 나물로 무쳐 먹는” 민족

정리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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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람들은 왜 낙엽(삭힌 콩잎장아찌)을 반찬으로 먹는가?”
⊙ 김치, 된장 등 발효 음식은 한국 음식의 基底
⊙ 한국의 요리 코드는 음식의 건더기(고체)와 국물(액체)을 함께 먹는 혼합체계… 김치와 김치 국물
⊙ 나물 캐고, 열매 따고, 줍고…의 메타언어는 ‘채집하다’… 채집 시대, 혈거민의 전설이 숨 쉬고 있어
⊙ 나물의 쓴맛과 독기를 우려내 먹을 수 없는 걸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물에 살짝 데친 후 갖은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아무 맛이 안 나는 나물에 맛을 더해
⊙ 상추, 깻잎, 호박잎, 김, 미역 등등에 밥과 반찬, 된장을 넣어 싸 먹는 ‘쌈(包)’은 음식을 싸기 위한 수단이면서 목적
⊙ ‘고소하다, 구수하다’ ‘짭짤하다, 찝찔하다’ ‘칼칼하다, 컬컬하다’ ‘심심하다, 슴슴하다’ 속에 음양오행 원리 담겨
⊙ 비빔밥이야말로 ‘맛의 교향곡’… 단순한 ‘통합’이 아닌, ‘충돌’을 통해 ‘화합’을 이뤄내는 일등공신이 기름
⊙ 짜고 달고 시고 맵고 쓴 五味에 더해 밍밍하고 맛없는 無味의 맛 존재
⊙ 한식은 발효 문화이자 국물 문화, 나물 문화이자 융합 문화… 藥食同源,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원칙에 충실

李御寧(1933~2022)
서울대 국문학과·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 경기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논설위원,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편집자 註]
이 글은 이어령 선생이 디자인하우스와 함께한 네 차례의 구술 채록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선생의 저술 《김치 천 년의 맛》(디자인하우스), 《우리 문화 박물지》(디자인하우스), 《디지로그》(생각의나무)에서도 일부 내용을 발췌, 구성하였음을 밝힙니다.
비빔밥은 여러 재료를 넣고 비벼서, 혼합해서, 섞어서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서로 충돌하면서도 결국은 화합해 제3의 맛을 보여주는 것이 비빔밥이다. 사진=조선DB
  음식이란 한 나라의 기후조건과 지리적 특성, 민족성 등을 한데 응축한 고유한 문화이다. 또한 인간 본연의 특성과 연결되는 문화의 본질이기도 하다. 인간은 사냥이나 낚시를 해 짐승을 포획하든, 식물이나 열매를 채집하든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 법이 없다. 집으로 가져와 불로 요리를 해 먹거나 저장해두었다가 먹는 등 기다림의 시간을 거친다. 재료를 익히는 시간, 우려먹는 시간, 발효(醱酵)하는 시간을 거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시간이고 음식이 탄생하는 시간이다.
 
 
  삭히고 끓이고 무치고 섞는 맛의 비밀
 
  인간은 또한 여타의 다른 동물들과 달리 수렵과 채집을 통해 획득한 음식을 혼자 독식(獨食)하는 법이 없다. 대개 가족과 ‘함께’ 먹는다. 말하자면 공식(共食·Common Meal)이다. 공식은 ‘가족·친족, 지역공동체의 성원이 모여 같은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을 의미하는데, 이때 음식은 사회적 단결과 친목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례(祭禮)나 축제(祝祭) 등 공동사회의 여러 행사에 음식과 술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도 음식은 가족과 친족, 지역공동체의 친목과 화합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세시(歲時) 명절 같은 연중행사나 모내기, 추수 같은 농경사회의 주요 행사를 치를 때면 항상 음식과 술을 넉넉하게 준비하는 게 상례(常例)였다. 그리고 이 같은 전통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지금도 많이 사용되는 ‘음복(飮福)’이나 ‘식구(食口)’ 같은 단어의 뜻을 되새겨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음복은 제례가 끝난 후 제사상에 올렸던 술과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절차를 의미한다. 함께 음식을 먹음으로써 제례에 참여한 모든 이가 조상이 내리는 복을 받는 것이다. 식구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식구는 ‘가족’이라는 말과 통한다. 식구는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한국 문화에서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음식을 요리해서 여럿이 함께 먹는 행위를 통해 가족처럼 친밀한 커뮤니티, 식사공동체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음식이라는 결과에는 요리라는 과정이 따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과정 없는 결과가 없듯 각 나라의 고유한 음식은 고유한 요리 방법에 의해 탄생한다. 서양 음식은 굽고 볶고 튀기는 게 기본이라면, 한국 음식은 대개 삭히고 끓이고 무치고 섞는 방법으로 요리한다. 한국적 맛의 비밀 또한 이 고유한 요리 방법에 담겨 있다.
 
 
  첫 번째 코드: 담그고 삭히다
  삭혀야 제맛인 발효 문화
 
  어떤 형태의 요리든 맛의 근원적인 의미는 ‘날것’과 ‘익힌 것’, 즉 ‘생식(生食)’과 ‘화식(火食)’의 대립항에 의해 구분된다. 요리의 코드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자체의 코드가 그렇게 돼 있는 것이다. 신화의 상징에서도 그 유효성이 밝혀졌듯이 ‘날것은 자연’ ‘익힌 것은 문명’이라는 대응관계를 나타낸다.
 
  날것, 익힌 것의 요리 코드는 서양 음식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바비큐처럼 서양의 육식 요리는 불로 구운 정도(rare, medium, well-done)로 맛을 차별화한다. 이와는 반대로 서양 음식에서 야채는 수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날것 형태로 요리된다.
 
  문명과 자연의 이항 대립이 육식과 채식의 대립으로 나타나며, 서양의 요리체계는 이렇게 익힌 것과 날것의 대립항을 강화하고 더욱 심화해가는 데 있다. 그러나 한국의 요리 코드는 화식, 생식의 대립 코드에서 일탈해, 그것을 융합하거나 매개하는 제3항의 체계를 만들어낸다. 날것도, 익힌 것도 아닌 삭힌 것의 맛, 바로 발효(醱酵)식이다. 생식과 화식 사이에 발효식이 개재됨으로써 요리는 새로운 삼각구도를 지니게 된다.
 
 
  발효식은 시간의 맛… 어둠의 시간도 필요
 
김치, 된장·간장·고추장, 젓갈 등 발효 음식은 한국 음식의 기저(基底)에 해당한다. 사진=조선DB
  실제로 김치, 된장·간장·고추장, 젓갈 등 발효 음식은 한국 음식의 기저(基底)에 해당한다. 발효식이 여타의 많은 문화권에 존재함에도 한국 음식의 패러다임을 발효식에서 찾는 이유는, 발효식이 한국 요리의 시스템이나 코드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음식 코드를 주거(住居) 코드로 옮겨보면 된다. 한국의 주택에는 앞마당과 그에 대립하는 공간인 뒷마당이 있다. 이 뒷마당을 상징하는 게 장독대다. 장독대는 된장·간장·고추장과 같은 발효식품을 발효, 저장하는 기물(독)을 놔두는 곳으로, 장독대를 중심으로 한 주거 배치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발효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김치와 장류라고 한다면, 그것이 주거 형태로 나타난 것이 장독대다.(화식 위주의 서양 문화 코드를 주거 코드에 대입하면 스토브나 바비큐 세트를 장치한 정원이 된다.)
 
  화식이 성급한 불의 맛이라고 한다면 발효식은 시간의 맛이다. 한국의 대표적 발효 음식인 장(醬, 된장·간장·고추장)은 기다리고 용해하고 변화하는 시간의 지속 속에서 이루어진다.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말려 간장과 된장을 담그기까지, 그리고 독에 담아둔 간장과 된장이 발효돼 제맛이 들기까지, 대개 수개월, 혹은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맑은 날에는 장독 뚜껑을 열어 햇빛을 쐬고 흐린 날에는 뚜껑을 닫아 비를 피하며 삭힌다. 한국 종가의 씨간장은 수백 년간 대를 이어 전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고 삭힌 장은 그 시간만큼 깊은 맛을 품는다. 장에 박아 맛을 내는 장아찌 역시 마찬가지다. 깻잎, 고추, 양파 같은 채소는 물론, 콩잎, 수박껍질, 참외껍질처럼 응당 버려지는 재료마저 장에 묻은 후 일정 시간 삭히면 아삭하고 짭조름한 장아찌가 된다.
 
 
  김칫독은 ‘단군신화’ 속 동굴
 
  한국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김치야말로 삭힌 맛의 전형이다. 김치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배추도 고춧가루도 아닌, 시간이다. 김치는 샐러드나 겉절이처럼 즉석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특히 김장김치는 겨우내 쉽게 무르거나 상하는 일 없이 시원한 맛과 아삭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땅을 깊게 파고 그 안에 독을 묻어 보관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과 김치로 대변되는 한국 음식 문화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콩이나 배추, 무가 아니라 시간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물은 시들고 사그라지고 썩지만, 발효식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부패의 시간성을 역이용해 새로운 맛을 창조해낸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음식의 고유한 특징이자 발효식의 지혜다.
 
  발효의 맛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어둠의 시간도 필요하다. 한국의 김장독은 겨우내 땅속에 묻어 0도에서 영하 1도 사이 저온 환경을 마련하고, 산소 노출을 최소화한다. 야생의 풋것들은 어둠 속에서 점점 길들여지고 성숙해진다. 포도가 발효되면 술이 되는 것처럼 야채는 발효되어 김치가 된다. 불의 맛이 빛에서 태어난다면 발효식의 맛은 어둠에서 빚어진다. 김칫독은 한민족의 건국 신화인 ‘단군신화’ 속 동굴 같은 작용을 한다. 동굴 속에서 곰이 아름다운 웅녀로 변신하듯, 김치는 김장독의 어둠 속에서 제3의 맛으로 변신한다. 이러한 신화 속 변신은 곧 김치의 발효 작용과 매한가지일 것이다
 
 
  두 번째 코드: 끓이고 고다
  국물 맛이 일품인 濕食 문화
 
밥상에 매끼 빠지지 않고 오르는 것이 국, 탕, 찌개, 전골로 대표되는 국물 음식이다. 사진은 팔팔 끓인 꽃게탕. 사진=조선DB
  국물은 한국의 맛을 해독하는 중요한 코드 중 하나다. 서양의 요리 코드가 ‘고체-액체’ ‘건식-습식’의 대립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한국의 요리 코드는 이 대립의 경계를 없애고 음식의 건더기(고체)와 국물(액체)을 함께 먹는 혼합체계로 되어 있다.
 
  서양 요리에선 (수프처럼 정식으로 국물 요리를 만들 때를 제외하면) 조리 시 생기는 국물은 음식을 익히는 수단으로, 일종의 노이즈(noise)로 생각해 철저히 없애버린다. 반면 한식에서 국물은 수단이자 목적이다. 면을 끓이기 위해 부은 물도 버리지 않고 국수와 함께 그냥 요리 속으로 끌어들인다. 칼국수나 라면, 그리고 한식화한 국물 스파게티 등이 좋은 예다.
 
  김치는 어떠한가. 김치가 같은 문화권인 중국의 차사이나 일본의 오싱코와 다른 점은, 국물이 있느냐 없느냐, 국물과 함께 먹느냐 먹지 않느냐에 있다. 차사이나 오싱코는 조리 과정 중 생긴 국물을 덜어내고 건더기만 남긴다. 하지만 한국에선 김치의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국물을 버리는 법 없이 함께 먹는다. 국물 김치가 아니더라도 김치나 깍두기에는 꼭 국물이 따라다닌다. 국물과 건더기는 맛에서도 보완 작용을 해, 국물이 마르면 건더기의 맛도 죽어버린다. 건더기와 국물은 동양사상의 음과 양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한국인은 김치 국물을 활용해 전골도 만들고 찌개도 끓인다. 남들은 불필요하다 생각하는 것, 부수적이고 잉여적인 것을 제거하지 않고 포섭하는 것이다. 노이즈를 허용할 뿐 아니라 그 우연성을 적극적으로 살려 맛의 체계를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한식에 담긴 또 하나의 지혜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서양 음식 문화를 배제적(exclusive)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음식 문화는 포함적(inclusive)이라 정의할 수 있다.
 
  한국인의 밥상에 매끼 빠지지 않고 오르는 것이 국, 탕, 찌개, 전골로 대표되는 국물 음식이다. 설렁탕·갈비탕·곰탕 같은 ‘탕’ 종류, 김치찌개·된장찌개·두부찌개 같은 ‘찌개’ 종류, 쇠고기전골·해물전골·곱창전골 같은 ‘전골’ 종류는 한국인이 즐겨 먹는 국물 음식이다. 끓이고 고아 만든 한국의 국물 음식은 원재료의 깊은 맛을 우려내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한국인은 이렇게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 밥을 다 먹은 후에는 국물까지 후루룩후루룩 마신다. 밥과 국, 건더기와 국물이 함께 뒤섞여 있는 한국식 국물 문화는 ‘음식’이라는 말 자체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음식의 음(飮)은 마시는 것이고 식(食)은 씹어 먹는 것으로, 한국의 음식은 반드시 고체식과 유동식을 한데 묶어 생각한다. 마시는 것과 먹는 것이 동일선상에 놓이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에서는 음식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음식을 ‘다베(食)모노(物)’라고 해 마시는 것을 제외한다. 마시는 것과 먹는 것을 다른 층위에 놓는 것이다. 영어의 푸드(food)에도 음료 개념은 포함되지 않는다. 서구의 고체/액체의 요리 코드로 볼 때 우리의 국물 음식은 빵이나 비프스테이크를 수프에 말아 먹는 것과 같다. 다분히 탈코드적인 요리로 보일 것이다.
 
 
  한국에서만 수저 문화가 발달한 이유
 
  한·중·일 삼국이 같은 젓가락 문화권에 속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젓가락과 숟가락을 짝지어 사용하는 수저 문화가 발달한 것도 국물 문화 때문이다. 숟가락은 국물을 떠 마시기 위해 필요하고, 젓가락은 건더기를 집어 먹을 때 주로 사용한다. 음(飮)이 음(陰)이라면 식(食)은 양(陽)이다. 건더기의 양(陽)은 젓가락이 맡고, 국물의 음(陰)은 숟가락이 맡는다. 형태도 젓가락은 길쭉해서 양이고, 숟가락은 움푹해서 음이다. 세상만물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듯 음식과 수저는 함께일 때 조화롭다.
 
  이처럼 한국의 음식 문화는 ‘물’이 핵심이다. 이에 비해 서양은 ‘불’이 더 중요하다. 한국에선 물을 이용해 시루로 떡을 찌지만, 서양에선 물 없이 오븐으로 빵을 굽는다. ‘물맛’과 ‘불맛’, ‘시루’와 ‘오븐’, ‘떡’과 ‘빵’, ‘찌다’와 ‘굽다’가 대립항을 이루는 것이다. 찌고 고고 끓이는 게 한국의 ‘물맛’이라면 굽고 볶고 기름에 튀기는 것이 서양의 ‘불맛’이다. 한식이 국물이 주가 되는 가정식 중심의 인도어(indoor) 음식이라면 서양 음식은 스테이크나 바비큐를 중심으로 하는 아웃도어(outdoor) 음식인 셈이다.
 
  이 같은 전혀 다른 요리 방식은 조리도구나 식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식은 고고 끓이는 게 기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요리를 솥으로 한다. 한때 부엌의 중심에 솥이 놓였던 이유다. 이처럼 과거에는 커다란 가마솥으로 밥을 짓고, 국과 탕, 찌개도 끓였다면, 지금은 압력솥이나 전기밥솥으로 밥을 짓고 국과 탕, 찜 등의 요리도 한다.
 
  이에 비해 서양은 오븐으로 빵과 고기, 생선을 굽거나, 불로 돌을 뜨겁게 달군 후 꼬챙이에 꿴 고기와 야채, 생선을 롤링(Rolling)해가며 구워 먹는다.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서양의 부엌은 오븐이 중심이다. 오븐이 있는 곳에 신이 머무른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서양의 거실 중앙에 벽난로(Fireplace)가 있는 것도 비슷한 개념이다.
 
  조리도구뿐 아니라 식기도 한국과 서양은 완전히 다르다. 국물 문화가 발달한 한국에선 국물을 담을 움푹한 공기, 사발, 종지, 뚝배기 등이 필수지만, 서양은 접시만 있으면 어떤 음식이든 담을 수 있다. 한국을 사발 문화, 서양을 접시 문화라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 번째 코드: 캐고 무치다
  나물 민족의 식생활, 채집 문화
 
한국 음식 문화의 본류가 바로 채집 문화에서 시작된 나물 문화다. 한국 음식에는 유독 나물류가 많다. 사진=조선DB
  옛날 우리 누이들이 집 밖에 나올 때 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핸드백이 아니었다. 마치 기구처럼 배가 부풀어 있는 둥근 바구니였다. 그리고 그 바구니는 단순히 물건을 간직해두거나 소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바구니를 낀 채 봄에는 나물을 캐고 여름에는 뽕잎을 따고 가을에는 빈 밭에서 이삭을 주웠다. 나물 캐는 여인네의 모습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한국 특유의 정경이었다. 캐고, 따고, 줍고…. 그 기능의 메타언어는 ‘채집하다’이다. 그 바구니 속에는 인간들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조차 모르던 채집 시대, 혈거민들의 전설이 숨 쉬고 있다. 빈 바구니를 들고 산과 들을 걸었던 수렵 채집민들의 느림과 여유의 정신이 나물 문화에 담겨 있다. 농경 문화와 산업 시대를 지나면서 서구 사람들은 채집 문화를 망각했으나, 유독 한국인만은 문명의 변화 속에서도 채집 시대의 흔적인 나물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국 음식 문화의 본류가 바로 채집 문화에서 시작된 나물 문화다. 한국 음식에는 유독 나물류가 많다. 한국어사전에서 ‘나물’이 들어 있는 한국말을 검색하면 ‘가는갈퀴나물’부터 ‘흰 바디나물’에 이르기까지 무려 250가지나 된다. 아마도 한국인은 “참기름만 주면 모든 풀을 나물로 무쳐 먹는” 민족일지도 모른다. 달래·냉이·도라지처럼 뿌리를 캐 먹는 나물, 시금치나 취나물처럼 잎으로 먹는 나물, 콩나물이나 숙주나물처럼 열매의 싹을 틔워 먹는 나물까지 식물의 잎, 열매, 줄기, 뿌리, 껍질, 새순 등 거의 모든 부분을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다. 말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식물은 거의 다 나물이 된다. 들나물이나 산나물을 캐다 먹은 한국의 식문화가 가난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임금님도 나물을 들고, 입춘이 되면 신하들에게 오훈채(五葷菜)를 내렸던 옛 풍습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무엇보다 한국인은 이 나물들을 생으로 그냥 먹기도 하지만, 살짝 데쳐 참기름, 깨소금 등 갖은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무쳐 먹기도 한다. 나물은 덩이와 입자형의 음식물과는 달라 금세 다른 것과 뒤엉겨 결합될 수 있다. 그래서 나물의 요리법은 ‘무치는’ 것이고, 나물의 맛은 맵고 달고 시고 짜고 쓴 오미(五味)가 된다. 무치는 것 외에도 나물죽, 나물국, 나물찜, 숙채, 생채, 강회, 나물장아찌까지 한국인의 나물 조리법은 매우 다양하다. 레비스트로스는 요리 삼각형에서 날것은 자연을, 익힌 것은 문화를 의미한다고 했지만, 날것과 익힌 것의 대립구조로는 한국인의 나물 문화를 설명할 수 없다.
 
 
  나물의 맛은 맵고 달고 시고 짜고 쓴 五味
 
시래기는 배추 겉잎을 푹 삶아 찬물에 우렸다가 겨우내 처마 밑에 걸어 말린 식재료다. 사진은 시래기 정식이다. 사진=조선DB
  한국인의 나물 사랑에는 해조류 채집 문화도 한몫한다. 삼면이 바다에 면한 지정학적 특성은 미역, 김 같은 해조류를 즐겨 먹는 문화를 낳았다.
 
  그중에서도 미역국은 한국을 대표하는 통과의례 음식이라 할 만하다. 한국인에게 미역국은 아이를 낳은 산모의 첫 식사이자, 해마다 생일상에 오르는 음식이다. 특히 산모가 먹는 미역은 ‘해산미역’이라 해서 가장 질 좋은 미역을 값을 깎지 않고 사는 게 관례였다. 현대에 들어 미역과 김은 ‘한국의 슈퍼 푸드’로도 불린다. 흔하지만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카본 페이퍼(Carbon Paper·복사용으로 사용하는 먹지)’라 부르며 놀라워한 김은, 지금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선물목록이 되었다. 주로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바른 후 소금을 뿌려 구워 먹거나 부각으로 만들어 먹는데, 김에 찹쌀풀을 발라 말려 두었다가 기름에 튀겨 먹는 김부각은 바삭하면서도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다. 이 밖에 다시마로는 육수를 내거나 튀각을 만들어 먹고, 파래나 톳은 고추장이나 된장으로 무쳐 먹는데, 모두 몸에 좋은 건강식으로 손꼽힌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나물 중에는 도라지, 고사리처럼 쓴맛 나는 것이 많다. 본래 식물의 쓴맛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막이다. 인간이 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자연의 생태적 시스템인 셈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이러한 시스템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낸다. 입에 쓴 것,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새로운 맛, 건강한 음식으로 재창조한다. 일례로 겉껍질을 벗긴 도라지는 소금을 넣고 바락바락 문지른 후 물에 헹궈 쓴맛을 없앤다. 어린잎을 꺾어다 한 번 삶아낸 고사리는 물에 한참 우려내 독기를 빼낸다. 삶은 후 말렸다가 다시 물에 불린 후 조리하기도 한다. 질경이나 씀바귀 같은 나물들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쓴맛을 상쇄한다. 이 쓴맛을 우려내기 위해 발달한 도구가 바로 독으로, 독은 진흙만으로 구워 만든 기물이다.
 
  본디 요리란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을 수 있게, 맛없는 걸 맛있게 만드는 과정이자 결과다. 쓴맛과 독기를 우려내 먹을 수 없는 걸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것, 물에 살짝 데친 후 갖은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아무 맛이 안 나는 나물에 맛을 더하는 것이다. 한민족이 나물을 조리하는 방식이야말로 요리 본연의 의미를 충족한다.
 
  이 밖에도 한민족을 나물 민족이라 부를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한민족처럼 일부러 콩의 뿌리를 키워 콩나물을 만들어 먹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콩은 전 세계인이 즐겨 먹는 흔한 곡물이지만, 콩으로 나물을 만들어 먹는 문화는 한·중·일 삼국에서도 중국 일부 지방과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특성이다. 콩나물뿐이랴. 미니멀 아티스트 도널드 저드가 “한국 사람들은 왜 낙엽을 반찬으로 먹는가?” 놀라워했다는 삭힌 콩잎장아찌는 어떠한가. 한국인은 오래전부터 콩잎이나 깻잎 등 식물 이파리를 간장이나 된장에 담가 오래 삭힌 후 밑반찬으로 즐겨 먹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고 ‘버려’ ‘두어’ 새로운 식재료로 변모되는 시래기는 또 어떠한가.
 
  시래기는 김치를 담그고 남은 부산물인 무청이나 배추 겉잎을 푹 삶아 찬물에 우렸다가 겨우내 처마 밑에 걸어 말린 식재료다. 한국인은 이 시래기를 갖은양념 한 후 기름에 볶아 시래기나물로, 된장을 걸러 붓고 끓여 시래깃국으로, 된장과 쌀을 함께 넣어 시래기죽으로 겨우내 즐기며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했다.
 
 
  네 번째 코드: 싸고 섞다
  비비고, 섞고, 쌈 싸 먹는 융합 문화
 
  서양의 음식 문화는 분리가 핵심이다. 그들은 고기는 고기만, 야채는 야채만 먹는다. 절대 섞어 먹지 않는다. 음식 하나를 맛보고 난 후 그다음 맛으로 넘어간다. 섞지 않으려니 입을 씻어내야 한다. 그래서 빵이나 셔벗(Sherbet) 같은 걸로 씻어 입을 백지화한다. 음식이 바뀔 때마다 포크와 나이프도 바꾼다. 앞선 맛이 그 도구에 묻어 있을 테니까. 음식마다 철저히 칸막이를 만드는 것이다. 디저트 역시 마지막에 입안을 씻어내는 개념이다. 이렇게 서양 음식은 ‘다 되어 있는 맛’, 즉 ‘있다’ ‘Being’의 상태이며, 차려놓은 사람이 완전히 음식을 만들어 내놓는 것이므로 완성품이다. 이는 존재론의 개념이다. 또한 ‘Exclusive’, 즉 ‘배제적’ 문화인 셈이다.
 
  하지만 한국 음식은 먹는 사람의 입안에서 하나의 음식으로 완성‘된다’. 매끼 밥과 국, 야채, 고기, 생선, 심지어 후식으로 드는 떡, 식혜까지 동시에 한 상 위에 차린다. 이들은 홀로 있는 음식도, 독자적인 맛을 지닌 음식도 아니다. 김치든, 국물이든, 나물이든 반드시 밥과 함께 먹기 때문이다. 다른 음식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맛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갖는다. 그 병렬적 동시(同時) 구조의 상차림 앞에서 한국인은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능동적으로 입안에 넣는다. 밥 한 술에 김치 한 조각 얹어 먹었다가, 갈비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가 하면, 남은 밥을 국에 말아 먹는다. 먹는 사람이 밥에 뭘 섞어 먹느냐에 따라 짜고, 싱겁고, 매운 것이 다 조정된다. 먹는 사람이 음식 맛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음식 문화는 ‘되다’ ‘Becoming’의 상태이며, 생성론의 개념이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통합하는 ‘Inclusive’, 즉 ‘포함적’ 문화다.
 
 
  ① 싸다-쌈
 
융합 문화의 대표 격 중 하나가 쌈밥이다. 온갖 재료를 싸 통째로 입안에 넣는다. 사진은 정어리 쌈밥이다. 사진=조선DB
  이 같은 융합 문화의 대표 격 중 하나가 쌈밥이다. 한국인은 김이든 상추든 평면성과 넓이를 가진 것이라면 그것을 펴고 온갖 재료를 싸 통째로 입안에 넣는다.
 
  상추, 깻잎, 호박잎, 김, 미역 등등에 밥과 반찬, 된장을 올려 싸 먹는다. 여기서 ‘쌈(包)’은 음식을 싸기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그것이 음식 자체, 바로 목적이다. 안에 든 밥과 반찬도 음식, 이를 감싼 쌈도 음식인 셈이다. 이 두 가지 음식은 입안에서 하나로 섞이면서 어우러진다. 쌈의 문화는 한국인의 보자기 문화와 하나로 이어져 있다. 한국의 보자기는 서양의 가방과 달리 싸는 물건의 부피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고, 물건의 성질에 따라 그 형태도 달라진다. 때로는 보자기 밖으로 물건이 삐져나오기도, 반듯하고 단정하게 꼭꼭 여며지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풀어버리면 3차원의 형태가 2차원의 평면으로 돌아간다. 이 융통성과 다기능의 보자기가 상 위로 올라온 것이 바로 ‘쌈’이라 할 수 있다.
 
  쌈밥은 먹는 방법도 독특하다. 입을 최대한 벌려 입안이 꽉 차게 먹어야 한다. 푸짐하게 먹어야 더 맛있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한국인은 뭘 먹든 위가 꽉 차도록, 즉 ‘포만감’을 넘어 ‘팽배감’을 느끼도록 먹는 걸 좋아한다. 배 터지게 먹어야 잘 먹었다고 생각한다. 보쌈이 대표적인 예다. 보쌈은 쌈 안에 고기, 야채, 해산물을 모두 넣고 볼이 미어지도록 먹는 게 상책이다. 이때 쌈과 쌈 안의 내용물은 각각의 맛을 품고 서로 섞이고 융합된다. 속 맛과 겉 맛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② 비비다-비빔밥
 
  융합 문화의 또 다른 대표는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밥 위에 여러 가지 나물, 고기, 계란 등을 얹고, 참기름과 고추장을 섞은 ‘한 그릇 음식’이다. 산과 들판·강가에서 뜯어온 온갖 나물, 익힌 고기와 계란이 들어 있는 비빔밥이야말로 ‘맛의 교향곡’이라 할 만하다. 날것도 익힌 것도 아닌 그 중간항, 자연과 문명을 서로 조합하려는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낸 음식이다.
 
  비빔밥은 여러 재료를 넣고 비벼서, 혼합해서, 섞어서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선 ‘섞는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부드럽게 또 매끄럽게 한다는 뜻, 또 하나는 거꾸로 헝클어뜨린다는 뜻이다. 섞고 비비는 과정에서 단순한 ‘나눔’이나 단순한 ‘통합’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면서도 결국은 화합해 제3의 맛을 보여주는 것이 비빔밥이다.
 
  맵고, 짜고, 시고, 쓰고, 단 오미(五味)가 한 그릇 안에서 어우러져 만든 제3의 맛. 그런데 그 맛의 교향곡을 만드는 이는 바로 ‘음식을 씹는 나’다. 상을 받은 이가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잘 비벼 입안에 넣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오미가 비빔밥의 미각 기호라면 오색(五色, 靑·赤·黃·黑·白)은 비빔밥의 시각 기호다. 흰밥, 빨간 고추장, 푸르고 검고 누런 나물이 들어간 비빔밥을 섞으면 그게 곧 우리 태극기의 색이 된다. 바로 태극이다. 태극이란 것은 우주를, 음양을 나타낸다. 한국인들이 우주 공간을 상징할 때 사용하는 것이 바로 오방색(五方色)이다. 푸른색은 동(東), 붉은색은 남(南), 흰색은 서(西), 검은색은 북(北), 노란색은 중앙(中央)을 가리킨다.
 
  다섯 가지 색채는 공간의 방향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춘하추동과 그 계절의 변화를 일으키는 중심, 즉 우주의 시간 또한 상징한다. 자연과 인간의 현상을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로 구조화한 동북아시아의 음양오행설을 음식 문화에 적용시킨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요리체계는 한국인의 우주론적인 체계(Cosmology)와 상동성(Homology)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비빔밥은 ‘충돌’을 통한 ‘화합’
 
  비빔밥 속 여러 맛이 한데 섞이기 위해서는 기름이 꼭 필요하다. 한국의 참기름과 들기름은 밥과 나물과 고기와 계란이 한데 섞이고 융합하는 데 윤활유 역할을 한다. 아울러 고소한 맛까지 더한다. 비빔밥이 단순한 ‘통합’이 아닌, ‘충돌’을 통해 ‘화합’을 이뤄낼 수 있게 하는 일등공신이 바로 기름이다. 한식 특유의 기름 문화는 언어에도 잘 반영돼 있다. 음식이 ‘매끄럽다’ ‘맛깔스럽다’라는 말은 대개 기름 맛과 통한다. ‘고소하다’도 마찬가지다. 흥미로운 건 이 ‘고소하다’라는 말에는 해학적 의미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가 미운 사람이 잘못되면, ‘거 참 고소하다’라는 말을 한다. ‘속이 시원하고 재미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소하다’의 큰말 격인 ‘구수하다’에는 이런 의미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 이처럼 맛을 나타내는 ‘고소하다, 구수하다’ ‘짭짤하다, 찝찔하다’ ‘칼칼하다, 컬컬하다’ ‘심심하다, 슴슴하다’와 같은 한국어에는 음양오행의 원리가 반영돼 있다. 한국어 특유의 모음조화에 따라 각각의 대립항을 가지는 것이다. 이게 바로 한국말의 묘미다.
 
  이 외에도 한식은 뭐든 섞는 게 기본이다. 시각적 재미를 더하고 입맛을 돋우는 고명도 청(靑), 적(赤), 황(黃), 흑(黑), 백(白) 등 오방색을 사용한다. 더불어 양념 역시 여러 가지 재료를 한데 넣어 섞는다는 의미인 ‘갖은양념’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색과 맛이 잘 섞여야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다.
 
 
  다섯 번째 코드: 밍밍하고 슴슴하다
  無味가 만드는 순환과 역설의 문화
 
  한식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음양오행의 원리, 순환의 원리가 내재돼 있다. 동양문화권에서 태어난 해의 띠를 결정하는 십이지(十二支)의 경우, 대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라고 읽는다.
 
  하지만 한국적 개념의 십이지는 ‘해자축(亥子丑)’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자’에서 시작해 ‘해’로 끝나는 선형적 개념이 아니라 ‘해’에서 시작해 다시 ‘해’로 돌아가는 순환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라비아 숫자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서양에선 ‘123456789’를 일렬로 배치한다. 설령 수가 무한으로 간다 해도 어딘가에 끝은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1234’의 아래에 ‘8765’를 배치한다.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가는 형태다.
 
  그렇게 배치한 아래위 두 수는 합하면 동일하게 ‘9’로 수렴된다. 계절 역시 비슷한 패턴이다. 서양에서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끝난다. 여기에 순환의 개념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계절은 ‘겨울’에서 시작해 다시 ‘겨울’로 돌아간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김소월(金素月)이 자신의 시 ‘산유화’에서 ‘가을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라고 읊은 이유다. 이 같은 개념은 언어에도 잘 반영돼 있다. ‘종시(終始)’, 즉 끝을 시작의 앞에 둔다든지, ‘사생결단(死生決斷)’같이 죽음을 생의 앞에 두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 순환과 역설의 미학은 사계절을 오계절로 만들고, 오미에 무미(無味)의 맛을 더한다. 그렇다면 사계절은 어떻게 오계절이 될까? 겨울은 12월·1월·2월, 십이지로 따지면 ‘해자축’에 해당한다. 여기서 ‘해자’는 완전한 겨울이지만, ‘축’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일종의 인터페이스다. 이런 식으로 적용하면 봄은 3월·4월·5월, ‘인묘진’, 여름은 6월·7월·8월, ‘사오미’, 가을은 9월·10월·11월, ‘신유술’이 된다. 이렇게 겨울에서 봄,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축’ ‘진’ ‘미’ ‘술’을 한데 모은 게 오계절이다.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겨울이 더 추워져야 온다. 마찬가지로 새벽은 밤이 더 깜깜해져야 온다. 환해질수록 어두워지고, 달은 차오를수록 다시 이지러진다.
 
 
  밥은 無이며 텅빈 공허
 
오미(五味)에 무미(無味)의 맛을 더하는데, 밍밍하고 맛없는 무미의 맛이 밥맛이다. 사진=조선DB
  이 순환의 원리에 따르면 한식의 맛은 짜고 달고 시고 맵고 쓴 오미가 끝이 아니다. 밍밍하고 맛없는 무미의 맛이 존재한다. 그 대표가 밥맛이다. 밥은 그 맛이 아주 싱거워서 무(無)이며, 텅 빈 공허다. 그래서 빵처럼 밥 하나만 먹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짜고 매운 여러 반찬과 어울리면 밥은 새로운 맛을 띠게 된다. 밥은 국물 음식, 마른 음식, 매운 것과 짠 것, 딱딱한 것과 연한 것 등 온갖 반찬들의 맛을 차별화시키면서 동시에 융합시킨다. 말하자면 밥을 먹는 것은 입을 씻어 맛을 지우는 ‘지우개’ 같은 역할을 한다. 매운 음식을 먹었어도 일단 밥이 들어가면 입안에는 언제든지 새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백지(白紙)가 마련되고, 그 백지 속에서 모든 음식이 제맛, 제 표정을 갖게 된다. 그리고 밥은 동시에 그 맛 둘을 합산한다. 반찬은 밥의 텅 빈 맛 때문에, 그리고 밥은 반찬의 맵고 짠 자극적인 맛 때문에 싱싱하게 살아난다. 한국의 음식은 이 관계의 틈새에서만 존재한다.
 
  밥뿐이랴. 백석(白石)의 시 ‘국수’에 등장하는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표현은 평양냉면 특유의 심심한 맛을 잘 표현한 절창(絶唱)이다. 흰 떡의 심심한 맛은 또 어떠한가. 이 무미의 맛은 아직 맛이 형성되기 직전의 맛, 뭔가 하나 빠지고 결여돼 채우고 완성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맛, 만월이 되기 직전의 약간 이지러진 달 같은 맛, 막사발처럼 아직 조금 더 손이 가야 하는, 완성되기 일보 직전의 맛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맛이다. ‘Being’이 아니라 ‘Becoming’이 한국적 맛의 특징인 것이다.
 
 
  ① ‘버려둬’의 미학
 
  앞서 ‘채집 문화-나물 민족’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식의 또 다른 특징으로 ‘버려둬’의 미학을 들 수 있다. 한국의 토박이말에 ‘버려둬’라는 아주 흔한 말이 있는데, 사실 이 안에는 이미 모순이 내재돼 있다. 버리면 버리는 것이고 두면 두는 것이지 버려둔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한국인은 ‘버리다’와 ‘두다’라는 대립항을 한데 합쳐 다이내믹한 개념을 만들어낸다.
 
  ‘버려둬’의 대표 격인 누룽지를 예로 들어보자. 누룽지는 원래 밥이 타서 바닥에 눌어붙을 때 생긴다. 일반적으로 음식이 타면 버리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이를 버리지 않고, 누룽지로 만들어 먹는다. 물을 붓고 끓여 눌은밥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형태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묵은지도 비슷하다. 한국인들은 매년 김장김치로 겨울을 난 후 시어버린 김치도 결코 버리는 법이 없다. 묵혀뒀다가 ‘묵은지’로 먹는다. 오래 발효시켜 신맛이 강해진 묵은지는 돼지고기를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거나, 물에 씻어 물기를 꼭 짠 후 수육 등 고기와 함께 쌈으로 먹는다. 김장할 때 따로 빼둔 배추의 겉껍질 부분과 무청 역시 버리지 않고 잘 말려둔다. 이렇게 만든 시래기는 푹 삶아서 찬물에 우려 뒀다가 찌개를 끓여 먹기도 하고 나물로도 무쳐 먹는다. 이게 바로 우거지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콩 찌꺼기도 버리지 않고 뒀다가 콩비지로 만들어 먹는다.
 
  흥미로운 건 이런 ‘버려둬’의 대표 사례들이 버려두기 이전과 비교해 영양성분이나 맛 측면에서 전혀 뒤질 게 없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남들 눈에 쓸모없어 보이는 버려야 할 것들로 더 맛있고, 더 독창적인 음식을 만들어낸다. 부정을 긍정으로 역전시키는 것이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음식 문화가 아닐 수 없다.
 
 
  ② ‘막문화’
 
막걸리와 전. 막걸리는 찹쌀, 멥쌀, 보리, 밀가루 등의 곡물을 쪄서 누룩, 물과 섞어 발효시킨 한국 고유의 술이다. 사진=조선DB
  한식에 계급적 층위를 적용한 ‘막문화’도 특이하긴 마찬가지다. 막걸리, 막국수, 막김치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막문화’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빈자(貧者)의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그중 막걸리는 찹쌀, 멥쌀, 보리, 밀가루 등의 곡물을 쪄서 누룩, 물과 섞어 발효시킨 한국 고유의 술이다. 막 걸렀다고 해서 ‘막걸리’라 불리며, 맑지 않고 탁하다는 의미에서 탁주(濁酒), 농부들이 마시는 술이라는 뜻에서 농주(農酒)라고도 불린다. 막국수는 값비싼 밀에 비해 흔하고 저렴한 메밀을 주재료로 해 면발이 다소 거친 게 특징이며, 시원한 맛의 김치 국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막김치는 배추를 포기째 담그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크기로 썰어 김치 양념으로 막 버무려 담근 김치로, 포기김치보다 모양은 없지만 계절과 상관없이 어디서나 즉석에서 담가 먹을 수 있다. 이들 ‘막문화’를 대표하는 음식은 모자라고 부족한 재료로 식재료 본연의 맛, 자연에 가까운 맛을 구현해낸다. 마구, 혹은 대충 만든 듯하지만, 막바로 만들어낸 듯한 신선함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무심하게 대충 빚어 어딘가 모르게 조금 부족해 보이는 막사발, 일정한 형식 없이 몸과 맘이 가는 대로 마구 흔들어대는 막춤 역시 ‘막문화’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막문화’와 BTS의 몸짓
 
시중에 파는 막걸리.
  세계가 열광하는 BTS의 몸짓은 달리는 관광버스에서도 춤을 추는 우리의 막춤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막사발, 막걸리, 막춤 등 한국 특유의 생명력과 독창성을 가진 문화에 지금 세계인이 주목하고 있다.
 
  한식은 발효 문화이자 국물 문화다. 또한 나물 문화이자 융합 문화이기도 하다. 이 모두는 순환과 역설의 원리를 품은 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배제적’이 아니라 ‘포함적’이며, 서로가 서로를 포용하고 화합한다. 또한 한식은 약식동원(藥食同源), 즉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원칙에 충실하다. 채식 중심의 건강식을 지향하고, 음식 궁합을 중시해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과 상극인 음식을 가린다. 한식 최고의 맛은 이미 완성돼 끝난 맛이 아니다. 여전히 진행형인 덜된 맛이다. 이 역설의 미학이야말로 한식이 가진 최고의 경쟁력이자 K-푸드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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