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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우익의 여름’ 맞은 미국 문화예술계

극단적 PC문화에 맞서는 영화·가요, 잇따라 흥행 성공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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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 시위 비판하는 제이슨 알딘의 ‘트라이 댓 인 어 스몰 타운(Try That in a Small Town)’, BTS 정국 제치고 빌보드 차트 1위 차지
⊙ 트럼프 지지자를 모델로 트럼프 지지자들이 만든 액션 영화 〈사운드 오브 프리덤〉 돌풍
⊙ 멜 깁슨,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조던 피터슨, 벤 샤피로 등 보수 인사들, 〈사운드 오브 프리덤〉 지지
⊙ 1970년대에도 히피문화에 맞선 영화 〈조〉 〈더티 해리〉, 케니 로저스·존 덴버 등의 컨트리 음악 흥행 성공
⊙ 한국, 계층 갈등 다룬 舊좌파적 세계관이 콘텐츠 산업 장악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제이슨 알딘의 ‘트라이 댓 인 어 스몰 타운’ 뮤직 비디오. 사진=유튜브 캡처
  지난 7월 넷째 주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K팝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의 솔로 타이틀곡 ‘세븐(Seven)’이 싱글차트인 ‘핫100’ 1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K팝 아티스트의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는 총 8차례가 됐다. 그런데 정작 빌보드 차트를 만드는 미국의 언론미디어에선 2위를 차지한 컨트리 가수 제이슨 알딘 쪽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5월에 내놓은 알딘의 곡 ‘트라이 댓 인 어 스몰 타운(Try That in a Small Town)’은 어느 순간 갑자기 화제를 모으며 정국과 빌보드 사상 가장 치열한 초접전(超接戰) 끝에 불과 2점 차이로 2위에 안착했고, 그 다음 주인 8월 첫째 주 차트에선 1위로 올라섰다.
 
  왜 이 곡이 이렇게 화제일까. 모든 상황은 7월 14일 공개된 해당 곡의 뮤직비디오로부터 시작된다. 알딘의 고향 테네시주(州)에서 촬영된 뮤직비디오는 테네시주 법원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성조기가 걸린 법원 앞에서 노래하는 알딘의 모습과 함께 미국 내 각종 과격 시위와 시위 중 약탈 장면들이 흘러나온다. 그러면서 “작은 마을에서 그런 짓을 해봐(Try That in a Small Town)” 스스로 나서 이를 응징하겠다는 가사를 읊는다. 시위 장면 중에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비롯된 BLM(Black Lives Matter) 시위 장면도 포함돼 있고, 2절에선 “내게는 할아버지가 준 총이 있지” “그들은 언젠가 사람들이 총을 반납할 것이라 하지만 그런 일은 도시에서나 가능하지” 등의 가사도 등장한다.
 
  이에 즉시 좌파(左派) 리버럴(liberal) 성향 대중 사이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BLM 운동에 대한 모욕이라며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고, 총기 소지 자유에 대한 노골적 프로파간다이자 우파(右派) 자경주의(自警主義) 찬가라는 비판도 일었다.
 
 
  리버럴의 비판, 보수의 반격
 
  분위기가 과열되자 애초 뮤직비디오 배경을 테네시주 법원으로 삼은 것 자체가 의도적인 인종차별 메시지라는 과대 해석까지 등장했다. 테네시주 법원은 미국 근현대사에서 악명 높은 ‘헨리 초트 집단 폭행 사건’ 현장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1927년 테네시주에 살던 18세 흑인 청년 헨리 초트가 16세 백인 소녀를 성(性)폭행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은 뒤 재판도 받기 전 백인 폭도들의 집단 폭행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초트의 시신은 폭도들에 의해 법원 2층에 내걸렸다. 그러니 뮤직비디오는 이 사건을 정당화하려 일부러 테네시주 법원을 배경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정치권에서도 나섰다. 27세의 테네시주 민주당 하원의원 저스틴 존스가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비열한 인종차별적 노래”라 비판하고, 많은 리버럴 성향 뮤지션들도 이에 동참했다. 논란이 계속 번져나가자 케이블 방송 CMT에선 알딘의 해당 곡 뮤직비디오 방영을 중단하는 초강력 조치까지 취했다. 이에 알딘은 결국 뮤직비디오에서 BLM 시위 장면을 삭제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알딘이 겪고 있는 상황을 우파에 대한 명확한 핍박(逼迫)으로 받아들인 미국 우파 진영에서 일제히 알딘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제이슨을 끝까지 응원하자.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메시지를 자신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에 남겼고,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선 비벡 라마스와미도 알딘이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자 미국 보수(保守) 대중이 일거에 알딘에게로 몰려들었다.
 
  보수 대중은 알딘의 곡을 단 하루 동안에만 10만 유닛씩 다운로드해가며 알딘을 빌보드 차트 1위로 만들려 애썼다. 공화당 표밭으로 알려진 보수적인 주(州)들, 이른바 ‘레드 스테이트(Red State)’의 지역 라디오 방송국 DJ들도 계속 알딘의 곡을 틀어가며 응원 열기를 부추겼다. 그렇게 순식간에 점수를 모아 빌보드 ‘핫 100’ 2위, 그리고 바로 다음 주에는 드디어 1위까지 올라 ‘목적’을 달성해내고야 말았다는 전개다.
 
 
  ‘지켜줘야 할 대상’은 지켜주는 미국 보수
 
  이 같은 상황은 비단 알딘과 ‘트라이 댓 인 어 스몰 타운’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정국의 1위 직전까지 14주 연속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지켰던 같은 테네시주 출신의 또 다른 컨트리 가수 모건 월렌과 그의 곡 ‘라스트 나이트(Last Night)’도 비슷한 측면에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월렌은 2021년 그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의미를 담은 소위 ‘N-워드(word)’를 사용하는 영상이 대중에 공개되자 라디오 방송국에서 그의 곡들이 보이콧당하고 스포티파이 등 초대형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도 플레이리스트에서 그의 곡들이 모두 삭제되는 위기를 겪었다.
 
  그런데 이런 위기가 오히려 보수 대중에게는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서 그를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갑자기 보수 대중으로부터 지지세(支持勢)가 일어나 앨범 판매량이 폭증하면서 월렌은 순식간에 ‘전국구(全國區) 스타’로 거듭났다. 이번 빌보드 ‘핫 100’ 차트 14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 역시 결국은 저 ‘N-워드’ 사건 덕이 아니냐는 얘기가 이래서 나온다.
 
  이런 점에서 앞선 알딘의 건은 월렌이 이미 겪은 성공 경로를 재현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가사와 뮤직비디오로 좌파 대중을 자극하고 그만큼 우파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끌어내려 한 꼼수가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 됐건 마초적인 남성 컨트리 음악은 앞선 ‘레드 스테이트’들에서 많이 듣는 이른바 ‘보수층의 음악’이기에 리버럴 성향 대중으로부터 늘 눈엣가시처럼 여겨져 온 게 사실이기도 하다.
 
 
  ‘우파 영화’ 〈사운드 오브 프리덤〉
 
O.U.R. 창립자 팀 발라드.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근래 미국 대중문화시장에서 이 같은 보수 소비자 결집은 비단 대중음악 분야에서만 펼쳐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시장에서도 이와 놀랄 만큼 닮은 상황이 일어났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개봉한 영화 〈사운드 오브 프리덤(Sound of Freedom)〉 건이다.
 
  〈사운드 오브 프리덤〉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액션 스릴러 영화다. 미국 국토안보부의 아동 범죄 전담반에서 11년간 재직하며 아동 성매매 트래피킹 소탕 작전에 참여하다 스스로 아동 구조 전담 기구 O.U.R.(Operation Underground Railroad)을 세운 실존 인물 팀 발라드 얘기를 다뤘다. 아동 포르노를 배포하는 범죄자를 체포하던 중 포르노에 이용된 납치 아동들이 이미 해외로 팔려나갔다는 것을 알게 된 발라드가 남미 콜롬비아 정글에 위치한 범죄 집단에 잠입해 아동들을 구출해낸다는 내용이다. 얼핏 이런 소재가 왜 문제가 되는지 의아할 수 있지만, 실상은 조금 복잡하다.
 
  일단 발라드는 위 아동 성매매 트래피킹과 관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추진했던 미국-멕시코 간 국경장벽을 강력히 찬성해온 인물이다. 2019년 미국 상원 법사위 청문회에 출석해 “성매매를 목적으로 아동들을 밀입국시키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선 국경장벽의 강화와 확장이 필요하다”고 증언한 바도 있다. 그러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약화된 국경 정책이 위험을 부른다는 입장도 표명했다.
 
  일단 실화의 주인공 자체가 이른바 친(親)트럼프 우파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 제작자 에두아르도 베라스테기와 주연배우 제임스 카비젤도 모두 친(親)트럼프 우파다. 다시 말해, 우파들이 모여 만든 영화, 우파들이 우파로서 지지하는 정책의 정당성을 부르짖기 위해 만든 영화인 셈이다.
 
 
 
‘PC들의 왕국’ 디즈니

 
팀 발라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사운드 오브 프리덤〉.
  사실 〈사운드 오브 프리덤〉은 2018년에 이미 제작이 완료된 영화다. 배급은 대형 스튜디오인 20세기 폭스에서 맡기로 돼 있었지만, 2019년 20세기 폭스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산하로 인수되면서 상황이 기묘하게 흘렀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디즈니에선 어떤 식으로건 〈사운드 오브 프리덤〉을 배급할 생각이 없던 것이다. 이에 제작자 베라스테기가 디즈니와 1년에 걸친 협상 끝에 배급 판권을 되찾아오기에 이른다. 그래도 한동안 배급이 용이하지 않았다. 결국 저예산 기독교 영화들을 주로 배급해온 소규모 회사 엔젤 스튜디오에서 극장 배급을 맡게 되었다.
 
  이처럼 이미 다 만들어놓은 영화를 묵혀두기만 했던 디즈니를 놓고도 각종 의혹이 횡행한다. 2010년대 들어 디즈니는 ‘어린이의 왕국’이 아니라 ‘PC(Political Correctness)의 왕국’이라는 촌평(寸評)을 꾸준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고전(古典) 애니메이션의 리메이크나 만화 원작 슈퍼히어로 영화들에까지도 노골적인 PC 기조(基調) 재해석을 가해 얻어진 별칭이다. 이렇듯 신(新)좌파 이념에 경도(傾倒)된 회사 분위기다 보니 트럼프 정책을 지지하는 우파 성향 영화가 자신들 이름으로 배급돼 대중에 선보이는 것 자체를 꺼려해 영화를 ‘없던 것’으로 묻어버리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생겨나는 것이다.
 
  어찌 됐건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영화는 7월 4일 미국 전역에서 개봉됐다. 소규모 배급사인 만큼 배급과 홍보 마케팅에 여력이 없어 비용 마련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실시해야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 영화에 대한 갖가지 정보가 보수 대중에 알려지며 불과 10일 동안 7200여 명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곧 우파 유명인사들의 지지도 이어졌다. 영화배우이자 감독 멜 깁슨,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전 미국 백악관 고문이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트럼프,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 조던 피터슨, 정치평론가 벤 샤피로 등이 일제히 지지 선언을 하며 영화 홍보에 나섰다.
 
  이 같은 우파 유명인사들의 열띤 홍보 덕에 대부분 무명 스태프로 구성되고 할리우드 상업영화로선 저예산인 1450만 달러로 제작된 데다 배급사도 소규모에 그치는 〈사운드 오브 프리덤〉은 개봉일 7월 4일 하루 동안에만 1424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일간 흥행 1위를 차지했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나서 “좌파 언론들이 멀쩡한 영화에 이념을 투영해 작품을 망치고 있다”며 팀 발라드와 영화에서 그로 분한 배우 제임스 카비젤을 초청해 상영회도 개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영화의 화제성은 나날이 부풀어갔다.
 
 
  〈미션 임파서블〉 수입 능가
 
  〈사운드 오브 프리덤〉은 개봉 한 달이 지난 8월 3일까지 북미 지역에서만 1억564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사운드 오브 프리덤〉 제작비의 20배인 2억9000만 달러를 쏟아부은 톰 크루즈 주연의 블록버스터 영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보다도 높은 수치고, 곧 전설적인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5편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기록도 뛰어넘을 전망이다.
 
  이 같은 뜻밖의 대성공에는 우파 대중의 ‘영혼 보내기’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정 영화가 지닌 이념을 지지하는 일부 대중이 영화를 볼 시간이 없더라도 어찌 됐건 영화의 흥행 수치를 높여주기 위해 영화표를 결제하는 신종 소비운동 말이다. ‘극장으로는 내 영혼만 보낸다’고 해서 ‘영혼 보내기’라는 명칭이 붙었다. 한국에선 페미니즘 성향 영화 〈걸캅스〉 등에 페미니스트 대중이 ‘영혼 보내기’를 해서 화제가 된 바 있는데, 미국에선 〈사운드 오브 프리덤〉을 놓고 그 반대편에 속하는 우파 대중이 그런 식으로 지지를 표명한 셈이다. 또 영화 취지에 공감하는 몇몇 회사나 교회 등 종교단체에서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 앱을 통해 영화표를 대량 구매한 뒤 일반에 무료로 배포한 방식도 흥행에 큰 도움을 줬다.
 
  이처럼 우파 성향 콘텐츠가 근래 계속해서 빌보드 차트 1위를 거머쥐고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미션 임파서블〉이나 〈인디아나 존스〉 같은 유명한 시리즈까지 제쳐버리니 미국에 별처럼 많은 좌파 성향 대중문화 미디어들도 한창 당황하고 있다. 이에 올해 여름을 ‘우익(右翼)의 여름(right-wing summer)’이라고 비아냥대는 반응까지 존재한다.
 
  이런 흐름에 맞서는 좌파 미디어의 대응은 물론 ‘무시’다. 예컨대 〈사운드 오브 프리덤〉에 대한 비평을 내보낸 북미 언론미디어 숫자는, 비평 집계 사이트 로튼토마토 집계에 따르면, 인터넷 미디어까지 포함해봤자 8월 4일 현재까지 고작 50곳에 불과하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비평이 407곳, 페미니즘 영화 〈바비〉 비평이 422곳에서 쏟아진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혹평을 내리는 것조차 중요한 콘텐츠로서 인지(認知)는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까 봐 아예 무시해버린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우파 지식인을 나치 악당으로 묘사

 
흑인 인어공주가 등장하는 디즈니의 〈인어공주〉.
  물론 이 같은 ‘우익의 여름’도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은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미국 대중문화의 편향(偏向)된 흐름에 염증을 느껴온 미국 보수 대중이 드디어 폭발한 상황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PC 기조가 할리우드를 잠식한 지 그만큼 오래됐다. PC를 따르면 ‘깨어 있는 시민(Woke)’이 되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손절(cancel)’해야 한다는 질서 아닌 질서도 그렇게 강압적으로 자리 잡아 갔다. 〈고스트버스터즈〉 〈오션스 일레븐〉 〈닥터 후〉 등 수많은 히트 영화나 TV 드라마가 리메이크되면서 주인공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었고, 〈이퀄라이저〉 등은 주연배우가 백인에서 흑인으로 리메이크됐다. 여기까지는 미국 사회의 ‘다양성과 포용성(diverse and inclusive)’ 기조로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콘텐츠를 가로지르는 이념적 편향성이 걷잡을 수 없이 공격적으로 변모해갔다는 점이다.
 
  예컨대 마블 슈퍼히어로 만화 〈캡틴 아메리카〉에서 주인공의 오랜 적수인 나치 악당 레드 스컬은 2021년 신간에서 우파 지식인 조던 피터슨을 모델로 삼았다는 점이 알려져 우파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이 밖에도 많다. 동화 속 인어공주와 백설공주까지 유색인종으로 재설정하고 아동용 콘텐츠에서 이성(異性) 간 키스 장면은 안 나와도 동성(同性) 간 그것은 나와야 한다는 식의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PC 기조와 함께, 우파 사회를 조롱하고 그 지지자들을 바보 또는 사회 위험분자처럼 취급하는 콘텐츠가 늘어가면서 보수 대중의 인내심도 결국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 ‘우익의 여름’은 결코 뜬금없이 이뤄진 일이 아니다.
 
 
  히피문화와 〈아메리칸 뉴 시네마〉
 
  그런데 이처럼 팽팽한 대결 국면 역시 따지고 보면 미국 대중문화계에서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정확히 반세기 전인 1970년대 초반 미국 대중문화시장 분위기가 지금과 같았다. 1960~70년대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신좌파 이념의 전성기였다. 이를 행동 기반처럼 삼는 히피족들이 청년 세대를 장악했고, 특히 68혁명을 기점으로 그 기조가 대중문화 콘텐츠 전반에 이식(移植)돼 번져가기 시작했다.
 
  할리우드에선 그렇게 지금 나오는 영화들은 이전과는 다른 영화들이라 해서 ‘아메리칸 뉴 시네마’라는 명칭을 만들어냈다. 기성질서에 극렬하게 저항하는 내용, 혹은 그렇게 하는 이들을 우상화 또는 낭만화하는 내용의 〈졸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일을 향해 쏴라〉 등이 대성공을 거두고, 아예 “히피족 그 자체를 영화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이지 라이더〉 등도 파란(波瀾)을 일으켰다.
 
  대중음악 역시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신좌파적 구호를 외치거나 마약을 통한 개인의 자유를 부르짖는 곡들이 대거 등장했다. 당시엔 비틀스마저도 이런 성향들을 보였다. 이후 이어진 도어즈 등 록 밴드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이 히피들의 음악 대축제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정점에 이른다.
 
 
  히피문화에 도전한 영화 〈조〉
 
히피문화에 도전한 영화 〈조〉.
  그러다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게 1970년, 영화계에선 불과 1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초저예산 영화 〈조(Joe)〉가 그 신호탄이 됐다. 〈조〉는 뉴욕의 광고회사 중역 빌의 사연으로 시작된다. 그는 10대 마약중독자 딸이 마약 과용으로 병원에 실려가면서 거리에서 마약을 파는 그녀의 히피 남자친구와 다투다 실수로 그를 살해하고 만다. 스스로 저지른 일에 당황하면서 근처의 술집에 들렀다가 히피들을 극도로 증오하는 노동계급의 중년 남성 조를 만나게 되고, 빌의 고백으로 살인 사실을 알게 된 조는 오히려 그를 두둔하며 칭찬해준다. 이렇게 둘은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라는 계층의 벽에도 불구, 신좌파 히피 세력에 대한 증오와 세상이 점점 미쳐가고 있다는 염증을 공유하면서 ‘절친’이 된다.
 
  〈조〉는 사실 히피라는 현상을 낳은 신좌파 세력과 보수 세력 중 어느 한쪽을 편드는 영화는 아니다. 당시 극심한 세대 및 이념 갈등이 일으킨 비극 자체를 다뤘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보수 대중의 반응은 달랐다. 보수 대중은 영화 속 빌과 조의 입장에 강렬히 이입(移入)하며 ‘아름다운 미국’을 되찾으려는 그들의 ‘정당한(?) 처단’에 환호했다. 아무리 신좌파 열풍의 시대라 해도 1968년 “법과 질서를 되찾겠다”던 리처드 닉슨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1972년에도 재선시킨 미국이다. ‘침묵하는 다수’는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이었고 이들은 대도시 젊은 층과 지식층, 그리고 미디어가 만들어낸 신좌파 유행에 치를 떨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 세상도 〈조〉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조〉가 개봉하기 두 달 전, 디트로이트에 사는 철도노동자 아빌 갈랜드가 자신의 딸이 또래 히피들과 함께 지내는 디트로이트대 기숙사를 찾아가 딸을 포함한 4명을 총으로 사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판사는 이 사건에 생각보다 가벼운 형량을 내렸고, 갈랜드에게는 그를 동정하며 지지하는 편지들이 전국에서 쏟아졌다. 거의 같은 때 이른바 ‘켄트주립대 발포 사건’을 비난하는 대학생 시위가 뉴욕 맨해튼에서 벌어지자 근처 월드트레이드센터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공사 인부들과 월스트리트 화이트칼라들이 연대해 맞불 시위로 대응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가 그리고 있던 보수 화이트칼라-블루칼라 연대가 실제로 이뤄진 광경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개봉한 〈조〉는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대성공했다. 언급했듯 불과 10만 달러 제작비로 만들어진 영화가 미국 내에서만 19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염(氣焰)을 토했다.
 
 
  컨트리 음악의 부흥기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영화 〈더티 해리〉.
  한번 우파 대중시장의 가능성이 확인되자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一瀉千里)였다. 다음 해인 1971년에는 마초 형사 해리 캘러핸을 그린 〈더티 해리〉가 등장해 기록적 흥행을 거뒀다. 연쇄살인범을 체포해도 범죄자 인권을 부르짖는 무리의 압력으로 결국 풀어주게 되고 신좌파 언론미디어에 의해 오히려 범인을 체포한 자신이 악당으로 몰리게 되는 열혈 형사의 복잡한 사연을 다뤘다. 이를 두고 영화평론가 홍성진은 “반전(反戰)평화운동이 전성기를 맞던 시대에 위기와 공포를 느낀 보수 세력의 무의식을 반영한다”고 평하기도 했다.
 
  1973년에는 미군 특수부대를 전역한 뒤 고향으로 돌아온 한 남성이 고향마을을 어지럽히는 불량배들을 자기 손으로 처단한다는 자경주의 액션 영화 〈워킹 톨〉이, 1974년에는 그런 자경주의 액션 영화의 대도시 버전으로 찰스 브론슨 주연 〈데스 위시〉가 등장해 모두 대단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이들은 모두 수많은 속편을 쏟아내며 계속 관객들을 끌어모았다. 〈더티 해리〉와 〈데스 위시〉는 5편까지, 〈워킹 톨〉도 3편까지 등장했다. 이 밖에도 많다. 이 같은 1970년대 영화시장 분위기에 대해 미국 영화학자 릭 워랜드는 “남북전쟁 이래 가장 극단적으로 분열된 미국의 풍경”이라 진단한 바도 있다.
 
  대중음악계도 마찬가지다. 과격한 신좌파 사상을 부르짖는 록 음악, 펑크 음악들 사이로 앞서 언급했듯 ‘보수층의 음악’처럼 인식되는 컨트리 음악도 함께 일대 부흥기를 맞았다. 케니 로저스, 윌리 넬슨, 돌리 파튼, 로레타 린, 글렌 캠벨, 크리스털 게일 등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컨트리 가수들이 이 시대에 슈퍼스타로 발돋움했다. 현재 40대 이상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존 덴버의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현상적 인기를 구가한 것도 이때다.
 
 
  레이건 시대의 개막과 〈코스비 가족〉
 
  모든 상황이 지금과 유사하다. 당시 신좌파 열풍에 대한 반발로 종교적 보수주의가 대중문화 유행으로 돌아와 1977년 TV 미니시리즈 〈나자렛 예수〉 등이 선풍적 인기를 얻었던 상황까지도 지난 수년간 〈지저스 레볼루션〉 등 기독교 영화들의 연이은 미국 내 성공과 겹친다. 특정 이념과 사상을 담은 콘텐츠가 지나치게 만연(蔓延)하기 시작하면 정반대 위치의 이념과 사상 콘텐츠도 그만큼 떠오른다는 공식은 그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셈이다. 반세기 간극을 두고 벌어진 서로 무서우리만치 닮은 미국 대중문화시장 풍경이다.
 

  어쩌면 그런 속성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미국의 문화좌파들은 이번 ‘우익의 여름’을 더더욱 경계하며 아예 언급을 안 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1970년대 내내 신좌파 콘텐츠와 우파 콘텐츠가 경합(競合)을 벌인 뒤 이어진 1980년대는 대중문화시장 전체가 ‘레이거니즘’으로 대변되는 우파적 가치로 점철(點綴)되는 경향을 낳았기 때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보수적 가족주의 영화들과 함께 반공주의 마초인 람보와 코만도가 스크린을 휩쓸던 시대다. 대중음악도 마이클 잭슨 등 친(親)자본주의, 친소비주의적인 ‘팝의 시대’로 흘렀고, TV 드라마 역시 〈코스비 가족 만세〉처럼 보수적 중산층 윤리에 기반한 가족 시트콤이 큰 인기를 누렸다. ‘우익의 여름’이 끝없이 이어지는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과연 PC를 신앙처럼 떠받드는 미국 리버럴들이 기겁할 만한 미래 전망이다.
 
 
  이념의 각축전
 
  이제 한국 사정을 한 번 돌아보자. 한국도 문화계에 어느 정도 PC 기조가 스며든 환경인 건 마찬가지지만, 근본적으로는 계층 갈등을 다룬 구(舊)좌파적 세계관이 콘텐츠산업 차원에서 절대 주류다. 그 외의 사회문화적 쟁점들에 대해선 “한국인은 이념적이라기보다 정파적(政派的)”이라는 촌평(寸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양새다. 그저 어느 정치 진영이 주장한 것이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다인종(多人種) 사회에 기독교주의를 기반 삼는 미국과는 사회문화 환경 자체가 다른 측면이 크게 작용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 미국 대중문화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념의 각축전(角逐戰)도 한국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는 예상이지만, 향후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미국 역시 불과 5~6년 전만 해도 지금 같은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지금의 미국 상황이 한국 대중문화시장에 어떤 식으로 나비효과를 일으켜 어떤 지형도(地形圖) 변화를 일으키게 될지 미리 단정하는 건 무리다. 현시점 세계적 관심을 모으는 미국 ‘우익의 여름’ 추이를 관심 갖고 지켜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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