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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⑰ 한국인 얼굴과 내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의 눈빛 ‘생명의 순간’ 맛보았을 때 내 얼굴 완성

정리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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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배를 받을망정 긴 수염 기르고 당당한 팔자걸음의 어르신들 어디에
⊙ 열정적일 때의 눈빛은 결코 만들어내지 못해… 산업화, 민주화 거치며 눈빛 잃어
⊙ 삶의 가운데에서 맛보는 따뜻한 눈빛은 우리를 울게 만들어
⊙ 눈물 때문에 빛나는 얼굴만큼 아름다운 얼굴은 없어

李御寧(1933~2022)
서울대 국문학과·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 경기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논설위원,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편집자 註]
이어령 선생이 타계한 지 1년이 지났다. 선생은 생전(生前)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의 문패에다 ‘끝나지 않은’이란 수식어를 직접 붙이셨다.
생전 선생은 당신이 남긴 굵직한 저작물과 수많은 강연에서 언급한 ‘한국인 이야기’를 비록 당신이 떠나도 계속 이어가기를 희망하셨고 관련 원고와 저서의 일부를 《월간조선》에 전하셨다. 또 선생이 남긴 바탕 위에 편집자의 생각을 보태도 된다고 허락하셨다. 아주 조심스럽게 선생이 남긴 큰 발자국을 따라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선생에게 누(累)가 되지 않기를 소망할 뿐이다.
식민지일망정 수염을 기른 어르신들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했다. 사진은 1991년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 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전례학술 토론회에 참가한 갓 쓴 어르신 모습이다. 사진=조선DB
  # 오후 다섯 시의 그림자와 〈돌의 초상〉
 
  오후 다섯 시의 그림자(5 o’clock shadow)라는 말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남자들은 모두 수염을 깎는다. 아침마다 얼굴에 비누 거품을 바르고 면도기로 싹싹 밀어낸다. 그러고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직장으로 출근한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죽어라 일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 또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퇴근 시각이 가까워질수록 그토록 빡빡 밀었던 수염은 조금씩 자라, 오후 5시가 되면 뾰족이 길어진다. 수염의 자리에 파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이것이 5시의 그림자다.
 
  한국 사람들이 만든 말이 아니라 외국의 샐러리맨들의 비애를 표현하는 말이다. 오후 5시, 퇴근 직전 하루에 지친 샐러리맨의 얼굴에 드리워진 파란 그림자, 현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갑자기 수염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나라에서 사라져 버린 수염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참으로 지질하게도 못 살던 시절, 그래도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찬탄하는 것이 있었다. 남자들의 수염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수염이 길면 그 사람의 신분(身分)이나 부(富)의 정도와 상관없이 ‘어르신’이라 높여주었다. 그래서 갈수록 수염은 길어졌다.
 
  긴 수염을 어루만지며 당당했던 한국 사람들을 클라우스 만[Klaus Mann·독일 산문문학의 최고봉 토마스 만(Thomas Mann·1875~1955년)의 아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조선을 통치하는 일본 사람들은 앞을 보고 반듯하게 걸어 다니는데 조선인들은 지배를 받는 민족이면서도 가난하든 말든 긴 수염을 기르고 당당하게 팔자걸음으로 걸어 다닌다.”
 

  그 어르신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의 그 당당하던 걸음은 어디로 간 것일까.
 
  작가 최인호(崔仁浩·1945~2013년)의 단편 〈돌의 초상〉(1978)에 우리를 떠나간 어르신이 등장한다.
 
  소설 속 노망(老妄) 든 최순돌은 이름 석 자만 기억할 뿐 집이 어디며 가족이 누구인지 모른다. 몇 살이냐고 물으면 열두 살이라고 답하고 “배가 고픕니다. 밥을 좀 주세요”라는 말만 반복한다.
 
  프리랜서 사진기자인 ‘나’는 고궁에서 사진을 찍다가 노인을 만난다. 미아보호소에 노인을 맡기려다가 집으로 데려온다. 동거녀인 간호사 경희가 노인을 정성껏 대하지만 그런 모습이 ‘나’는 못마땅하다. 경희가 똥을 싼 노인을 목욕시키고 ‘내’ 옷을 입히는 것도 싫다.
 
  “도로 창경원에 데려다 놓든지 경찰서에 맡기든지 해야지, 난 못 참겠어. 이 집은 양로원이 아니야.”
 
 
  〈돌의 초상〉 속 한국의 어르신
 
1982년 KBS TV문학관을 통해 방영된 최인호 소설 원작의 〈돌의 초상〉. 프리랜서 사진기자 ‘나’와 경희, 최순돌 노인이 식탁에 앉아 있다. 노인은 연신 “배가 고프다”고 했다.
  경희가 출근하고 없는 사이 ‘나’는 노인을 어디다 버릴지 고민한다. ‘처음부터 노인은 버려져 있었지 아니한가. 나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다짐하듯 되뇐다. 그때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돌은 캐어냈던 자리에 도로 갖다 두는 게 원칙이야.”
 
  공연한 객기로 무거운 돌을 제천 선술집까지 지고 갔다가 술김에 선술집 화단 속에 부려놓고 나올 때 친구가 한 말이 떠올랐다.
 
  노인을 다시 처음 만난 고궁에 버릴 생각을 하다가 이내 무서운 복수의 감정이 고개를 든다.
 
  한강변 모래사장에 버릴 생각을 하다가 마음을 돌린다. ‘아무에게도 구원될 수 없는 사각지대 속에 던져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한복판인 명동에 버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급히 택시를 타고 명동에 도착한 뒤 명동성당에 다다랐다. 그리고 노인을 버리며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난 가겠습니다. 날 원망하지 마세요.”
 
  노인: “미, 미안합니다. 난 배, 배가 고픕니다. 밥을 주십시오.”
 
  나: “좀 기다리세요. 저 사람들이 줄 겁니다.”
 
  ‘나’는 불 밝힌 성당의 첨탑을 가리켰다. 그곳엔 십자가가 우뚝 서 있었다. 헤어지려는데 노인이 악수를 청한다. 생각보다는 따뜻한 손이다. ‘나’는 갑자기 무서워져 손을 뺀다. 노인은 연신 천진하게 웃고 있다. 노인은 어쩌면 분명한 이성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을 버린 뒤 도망쳐 집으로 돌아오지만, 퇴근한 경희가 노인을 어디에 버렸냐고 다그쳐 다시 명동성당으로 온다. 그러나 그곳에 노인은 없었다.
 
  ‘나’는 분명히 버려진 노인을 다시 돌려보냈을 뿐이다. 애초에 노인을 보호할 책임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무책임한 인간이 되었다. 결국 인간은 자기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운명은 결국엔 신(神)이 아닌 인간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 눈을 잘 안 맞추는 한국인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月下情人)〉
  한국 사람들은 눈을 잘 맞추지 않는다. 눈을 맞추면 째려본다고 오히려 상대로부터 오해받기 십상이다. 곧바로 “눈 깔아”라는 호통이 돌아온다. 아마도 이래서 한국에는 세계에 내놓을 만한 초상화가 그리 없나 보다. 얼굴이든 눈이든 똑바로 보는 게 힘든 문화이니까.
 
  김홍도(金弘道·1745~?), 신윤복(申潤福·1758~?), 김득신(金得臣·1754~1822년)의 풍속화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단원의 그림 속 사람들의 얼굴에는 차이가 없다.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똑같다. 어른인지 아이인지 구분도 안 된다. 심지어 옷을 보지 않고서는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도통 구분이 안 된다.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은 벌판에서 몰래 만나는 청춘남녀를 담은 작품이다. 여자는 쓰개를 쓰고 있다. 이슬람의 히잡만큼은 아니었지만 조선 시대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바깥출입을 할 때 꼭 쓰개로 얼굴을 가렸다. 작품 속 여성의 눈을 보라. 거의 까맣게 일직선으로만 표현이 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단춧구멍 눈이다. 외국 사람들이 보면 이게 무슨 눈이냐 할 정도다.
 
 
  조선 민화 속 단춧구멍 눈
 
김득신의 그림 〈파적도(破寂圖)〉
  김득신의 〈파적도(破寂圖)〉를 보자. 병아리를 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고양이와 새끼를 살리기 위해 날갯짓하는 암탉, 그리고 주인장으로 보이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 나온다. 고양이의 동선과 닭의 움직임, 사람의 손짓이 모두 바깥을 향한 한 점으로 모인다. 눈을 그리지 않아도 누가 봐도 제일 급한 건 암탉이다. 시선(視線)을 그리지 않아도 몸짓으로 우리는 시선을 볼 수 있고, 긴장감과 긴박감, 역동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김홍도의 그림 〈타작(打作)〉
  김홍도의 〈타작(打作)〉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등장하는 인물의 얼굴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똑같다. 한때 일본의 애니메이션에서도 눈이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유행했던 작품의 특징이었다.
 
일본 만화 〈피구왕 통키〉. 주인공 눈이 코보다 훨씬 크다.
  〈피구왕 통키〉라는 유명한 일본의 만화는 이와 확연히 다르다. 통키의 눈이 어찌나 큰지 거의 얼굴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얀색을 이용해 눈빛이 살아 있는 효과까지 표현했다. 가사에 ‘반짝이는 눈동자’가 들어 있는 걸로 보아 이 같은 예상은 확실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화장을 하고, 가면을 쓰고, 복면을 써도, 눈빛만은 가릴 수가 없다. 서클렌즈를 껴 눈동자의 색깔을 인공적으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이 되었어도 눈빛만큼은 만들어내지 못한다.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거나, 무언가를 위해 열정적일 때의 눈빛…. 불행히도 산업화,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며 우리가 가장 많이 잃어버린 것이 바로 이 눈빛이다.
 
  삶의 기쁨을 노래하는 환희의 눈빛,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맛보는 아름다움의 눈빛,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발견하는 열정의 눈빛을 잃어버렸다. 최인호의 소설 〈돌의 초상〉에서 우리가 내다 버린 ‘어르신’이 우리의 얼굴, 우리의 잃어버린 눈빛일지 모른다.
 
 
  # 서로의 눈 들여다보기
 
  여러분에게 세르비아의 여성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1946~)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유고슬라비아의 유명한 독립투사이자 종교가였다. 그녀는 아버지처럼 부당한 압력과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해왔는데 다른 그 어떠한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통해 예술적 창조를 이뤄내는 작가다. 면도칼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하고, 관객들에게 자신의 몸에 폭력을 행사하도록 해서 만신창이가 되기도 한다. 그 과정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교감하게 하는 것이다.
 
  그가 뉴욕현대미술관 모마(MoMA)에서 2010년 3월 14일부터 5월 31일까지 약 736시간 동안 펼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Marina Abramovic: The Artist is Present)〉 퍼포먼스는 새로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작가 외에 미술관의 텅 빈 공간에 존재하는 건 테이블과 의자뿐이다. 그 어떠한 퍼포먼스와 화려한 연출도 없다. 마리나는 그저 평범한 의자에 앉아 있다. 사람들은 마리나의 맞은편 의자에 와서 앉는다. 그러고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시간제한도 없다. 서로 마주 보다가 적당한 시간이 되면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앉는다. 〈더 아티스트 이즈 프레전트〉라는 제목의 이 퍼포먼스는 하루 6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참여를 기다렸다. 퍼포먼스가 끝날 무렵 남자 한 명이 의자에 앉는다. 살짝 눈인사를 주고받은 후 마리나의 눈빛이 흔들린다. 마주한 남자는 30년 만에 재회한 그녀의 옛 연인이자 동료였던 울라이(Ulay·본명 Frank Uwe Laysiepen·1943~2020년)였다. 30년 만에 재회한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눈으로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후 눈물을 흘리는 마리나와 말없이 위로의 눈빛을 건네는 울라이. 그 두 사람은 90일 동안을 걸어 만리장성에서 만난 후 한 번의 포옹 후 헤어졌던 연인이었다. 관람객들은 30년 만에 만난 그들의 재회를 목도한다. 짧은 눈빛의 대화는 셰익스피어의 그 어떤 대사보다도 감동스럽다. 망각, 오랜만의 재회가 주는 반가움, 다시 만날 수 없었던 절망감, 한없이 보고 싶었던 그리움…. 그 모든 것이 눈과 눈이 마주쳤을 때,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 보았을 때 그 공간에 퍼진다. 우리는 눈과 눈이 마주친다는 의미를, 그 감동을 몇천 년 동안 잊고 살았다. 이 작품을 보면 ‘사람과 사람이, 눈과 눈을 마주 본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라는 새로운 감동을 체험할 수 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
  규칙 깬 단 한 번의 눈물

 
마리나와 울라이가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이다.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퍼포먼스였다.
  “당신은 단지 다른 방문객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삶이었습니다.(You were not just another visitor. You were my life.)”
 
  함께 같은 길을 걷던 행위예술가이자 한때 커플이었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는 오랜 이별 후 만났을 때의 역사적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2010년 〈더 아티스트 이즈 프레전트〉 퍼포먼스에서 이뤄진 만남은 큰 감동을 주었고, 대중 역시 같은 감정을 느꼈다. 당시 영상이 유튜브로 공개된 후 조회수가 2000만 클릭을 넘었고 이후 두 사람이 걸어온 예술적 흔적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마리나는 훗날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그것은 훌륭했고, 어려웠고, 지옥이었고, 사랑이었고, 증오였고, 모든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규칙을 어겼을 때의 그 순간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저는 절대, 절대, 절대, 절대로 규칙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규칙’이란 작가와 관객이 아무 말 없이 침묵 속에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소통하기로 한 약속을 말한다. 예고 없이 울라이가 등장하자 마리나는 ‘규칙’을 깨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 울라이의 손을 잡았다.
 
  울라이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그 퍼포먼스에 대한 개념은 없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 리허설 역시 없었습니다. 예측된 결말은 없었어요.”
 
  독일 출신의 울라이는 1960년대 후반부터 폴라로이드를 중심으로 한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함께 공연예술가로 활동했다.
 
  두 사람이 1980년 진행한 퍼포먼스 〈정지 에너지(Rest Energy)〉는 지금도 자주 회자(膾炙)된다. 이 퍼포먼스는 살상용 실제 활과 화살을 사용했는데 마리나는 활대를, 맞은편 울라이는 화살깃을 손끝으로만 잡았다. 두 사람은 몸을 서로의 반대편으로 기울이며 팽팽히 시위를 당겼다. 자칫 힘의 균형이 깨지면 곧장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대단히 위험한 퍼포먼스였다.
 
  퍼포먼스가 시작되면서 의문의 쿵쿵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것은 실시간 녹음된 두 사람의 심박 소리였다. 서로에 대한 악의 없이, 오로지 전적인 믿음으로 그 위험천만한 행위를 진행했고 무사히 마쳤다.
 
  마리나는 “4분10초라는 짧은 시간이 내게는 영원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정말이지 완전한 신뢰에 따른 공연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1977년에는 두 사람이 서로 키스를 하며 숨을 나누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러나 17분 만에 이산화탄소 과다로 퍼포먼스는 중단되고 말았다.
 
  두 사람은 1988년 만리장성 양 끝에서 걷는다. 결국 중간에서 마주치는데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와 포옹을 한 뒤 각자의 길로 다시 걸어갔다. 헤어짐은 진짜 이별로 이어졌는데 자신의 이별마저도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것이 2010년 〈더 아티스트…〉 퍼포먼스였다.
 
  마주 앉아 바라본 경험이 없는 우리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가운데 사진은 마리나와 옛 연인 울라이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 아래 사진은 울라이를 보고 마리나가 울고 있는 모습. 사진=조선DB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순간들은 흔치 않다.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순간! 어렴풋이 스쳐 지나가는 바라봄이 아니라 눈을 마주치고 응시하는 순간! 아무런 장애 없이 온전히 누군가를 바라본 경험! 부모의 얼굴도, 애인의 얼굴도, 그리고 늘 만나는 친구의 얼굴도 마리나처럼 마주 앉아 바라본 경험이 없다.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나 스스로의 얼굴도 응시하지 않는다. 타인의 얼굴을 바라볼 때, 타인의 눈을 응시할 때 우리는 그들의 까만 눈동자 안에 비친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누군가와 이렇게 눈을 응시하고 있을라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게 된다. 우린 모두가 외로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면서 누가 나를 이렇게 봐준 적이 있던가. 타인을 이토록 바라본 적이 있던가. 늘 싸우고, 경쟁하고, 의심하면서 살아왔다. 그 삶의 가운데에서 맛보는 따뜻한 눈빛이 우리를 울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 너 얼마나 혼자 고생했니….”
 
  그 눈빛에서 위로받고 또 위로를 전한다. 눈을 마주치는 것은 삶을 공유하는 것이다. 타인의 눈빛과 나의 눈빛이 마주쳐 그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화장, 가면, 성형수술로 감출 수 없는 것
 
  인간은 살면서 수없이 타인과 이웃,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과 나의 얼굴이 마주쳐 삶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마리나와 울라이는 사랑하면서도 헤어진 연인이며 예술적 파트너였다. 언젠가는 사랑이 변질되고 서로 미워하고 지긋지긋해하며 헤어지는 보통의 헤어짐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런 중 헤어짐을 결심하고 중국 만리장성에서의 짧은 포옹을 마지막으로 헤어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다른 상처를 입고, 문득문득 서로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파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서로를 만나 눈물을 흘린다. 연인이 아니더라도 어머니와 헤어진 자식이 다시 어머니를 만났을 때의 그 반가움이 어떻겠는가. 주변에 사람이 아무리 많든, 누군가 나를 보든 말든 내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이다. 눈물 때문에 빛나는 얼굴만큼 아름다운 얼굴은 없다. 나 자신을 위해서 울든, 남을 위해서 울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흘리는 눈물을 잊어버렸다.
 
  사람과 경쟁하며 살아남기 위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투쟁이었던 삶 속에서 어느 날 문득 내가 바라본 내 모습이 아니라 타인의 눈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은 화장을 하고 가면을 쓰고 성형수술을 한다고 해서 감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얼굴을 찾는 순간은, 내 얼굴을 만지는 순간이 아니라 타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쳐 그 안에서 삶의 어떤 순간들, 행복한 순간이었든 슬픈 순간이었든, 생명의 어떤 순간들을 맛보았을 때, 비로소 내 얼굴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게 내 얼굴, 인간의 얼굴, 내 나라 얼굴’
 
  내 이웃의 눈을 들여다보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것이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도, 그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 개개인도 절로 눈물이 흐른다. 개개인이 고생한 순간들과 영광스러운 감격….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뜨거운 무언가가 있다.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서럽게 견디어온 우리의 역사…. 정말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것이 애국자다.
 
  그 눈 안에는 시베리아로부터 추위를 견디며 이곳까지 걸어온 한민족이 보인다. 만주 벌판으로 간도로 쫓겨 다니던 우리 조상들이 보인다. ‘나’라는 개체와 수천 년 내려오는 우리 DNA 속의 한국인의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이다.
 
  이제 우리가 서로 눈을
  마주할 때가 왔구나.
  가면도 벗고 복면도 찢고
  별과 별이 몇억 광년 떨어져 있어도
  서로 마주 보듯이
 
  어찌 흐르는 눈물을
  성형하랴.
  어찌 빛나는 그 눈빛을
  화장하랴.
 
  그게 내 얼굴이다.
  그게 인간의 얼굴이다.
  그게 내 나라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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