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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트로트 오디션’, 예전같지 않네…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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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트는 ‘틀딱가요’ 아닌 ‘성인가요’ 일부
⊙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저물고, 〈팬텀싱어〉 등 다른 음악 장르 다루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각광
⊙ 지금의 노년층은 ‘트로트 세대’ 아닌 ‘포크 세대’… 세대에 대한 오해 버려야
⊙ 미국, 1960년대 이후 로큰롤에 맞서 멜로디, 보컬 능력 중시되는 ‘어덜트 컨템퍼러리’ 대두
⊙ 신민요 → 트로트 → 포크 → ‘서태지와 아이들’로의 변화는 경제발전에 따른 음악 소비 계층 변화와 궤를 같이해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TV조선 〈미스터트롯 2〉의 최종 우승자들. 왼쪽부터 박지현(선), 안성훈(진), 진해성(미). 사진=TV조선
  TV조선의 트로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 2-새로운 전설의 시작〉(이하 〈미스터트롯 2〉)이 지난 3월 16일 13화 결승전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우승 진(眞)은 시즌 1 본선 3차전에서 탈락해 시즌 2 재도전한 안성훈에게 돌아갔고, 선(善)과 미(美)는 각각 박지현과 진해성이 차지했다. 그런데 〈미스터트롯 2〉는 방영 당시부터 결승전 및 특집 갈라쇼까지 모두 끝난 지금까지 언론미디어상으로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상에서 서로 비슷비슷한 입장의 부정적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가히 사회·문화적 현상으로까지 거듭났던 시즌 1에 비해 너무나도 ‘시시한’ 반향이라는 것이다. 일단 시청률부터가 그렇다. 시즌 1 결승전 마지막 회 시청률은 닐슨코리아 기준 34.9%를 기록했다. 1995년 케이블TV 시청률 집계가 시작된 이래 비(非)지상파 프로그램 최고 시청률이자 지상파와 비(非)지상파 통틀어서도 KBS2 〈1박 2일〉의 43.3%에 이어 예능 프로그램 사상 역대 두 번째 시청률이었다. 그런데 〈미스터트롯 2〉 결승전 마지막 회는 21.1%로 20%대만 간신히 넘겼다. 시즌 1에 비해 20% 가까이 시청자들이 빠진 것이다. 그 전 8~12회까지는 아예 20%조차 넘지 못하고 10%대를 맴돌았다.
 
  비단 시청률 차원만이 아니다. 측정할 수 있는 모든 인기 지표에서 〈미스터트롯 2〉는 시즌 1에 비해 말도 안 될 정도로 성적이 크게 떨어졌다. 상황을 담은 《한국일보》 2023년 3월 19일 자 기사 “〈미스터트롯 2〉, 시즌 1의 벽은 견고했다”를 보자.
 
 
  ‘반쪽짜리 성공’
 
  〈문자 투표수로 비교해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시즌 1에선 773만 표, 시즌 2에서는 252만 표가 집계됐다. (중략)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집계하는 예능 브랜드 평판 순위, CJ ENM과 닐슨코리아가 내놓는 콘텐츠영향력평가지수 순위, TV 화제성 순위 등 각종 리서치 기관이 실시한 예능 순위에서도 11주 연속 줄곧 1위 자리를 수성했던 ‘미스터트롯 1’과 달리 당시 ‘미스터트롯 2’는 화제성 영역에서도 1위 자리를 내줘야 했다.
 
  ‘미스터트롯 2’ 제작사는 각 팬덤의 화력이 입증되는 콘서트 매진에도 실패했다. 오는 5월 5일부터 7일까지 서울 KSPO DOME에서 열리는 ‘미스터트롯 2’ 서울 공연 티켓은 지난 9일 오픈했다. 그러나 전 회차 매진에 실패하면서 대중의 낮은 관심도를 확인할 수 있다. (중략) 결국 ‘미스터트롯 2’는 ‘반쪽짜리 성공’을 거둔 셈이다. 트로트 열풍을 지폈던 지난 시즌과 달리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에 몇몇 언론미디어에선 방영 시기가 겹친 MBN의 유사 프로그램 〈불타는 트롯맨〉 탓에 관심이 분산됐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타는 트롯맨〉은 화요일, 〈미스터트롯 2〉는 목요일 방영으로 시청 시간이 겹치지 않기에 이 같은 해석은 무리다. 아무리 비슷한 콘셉트라도 KBS2 〈1박 2일〉을 본다고 MBC 〈무한도전〉을 안 보는 것은 아니었듯이 말이다. 나아가 〈불타는 트롯맨〉 역시 딱히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보여준 건 아니었다. 마지막 회 시청률만 15.5%를 기록하며 프로그램 사상 최초로 15%를 넘겨봤다.
 
 
  트로트 콘셉트 피로
 
  이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다. 대표적으로 〈내일은 미스터트롯〉 열풍은 당시 막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심신(心身)이 지치고 바깥나들이가 꺼려지던 대중 분위기를 등에 업고 일어난 일시적 현상이었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잘 따져보면 트로트 열풍 시발점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방영된 〈내일은 미스트롯〉이었다. 각종 유사 프로그램이 우후죽순(雨後竹筍) 등장하게 된 것도 〈내일은 미스트롯〉의 예상 밖 성공에 자극받은 ‘미투(me too)’ 전략이었다. 시기적으로 맞는 해석이 아니다.
 
  한편, ‘미스트롯-미스터트롯’ 이후 유사 프로그램들이 난립(亂立)하는 통에 시청자들의 피로도가 가중됐다는 해석도 있다. 이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2020년부터 방영된 트로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만 해도 KBS2 〈트롯 전국체전〉, MBC 〈트로트의 민족〉, SBS 〈트롯신이 떴다〉 등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 그리고 종합편성채널에서 MBN 〈보이스트롯〉과 〈헬로트로트〉 등이 더 나왔다. 여기에 TV조선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 콜센타〉와 〈뽕숭아학당〉, MBC에브리원 〈나는 트로트 가수다〉 등 서바이벌 오디션이 아닌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끝도 없다. 콘셉트 피로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또 다른 의견도 들린다. 필자가 실제 방송 관계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원인이다. ‘미스트롯-미스터트롯’을 통해 음악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에 맛 들인 중·노년층 시청자들이 이제 트로트가 아닌 다른 장르 음악을 다루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로 흩어지며 〈미스터트롯 2〉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 보컬 오디션 프로그램인 JTBC 〈팬텀싱어〉가 있다. 그 시즌 3가 〈내일은 미스터트롯〉 종영 직후 방영을 시작한 통에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을 찾던 중·노년층 시청자들을 다수 흡수했다는 관측이다. 그리고 거기서 생성된 팬층이 이듬해 시즌 4까지 따라갔다는 것이다. 이 밖에 이광조의 ‘세월 가면’,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 등 1970~90년대 인기가요들을 다시 부르며 경연을 펼치는 KBS2 〈우리가 사랑한 그 노래, 새 가수〉, 포크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M.net 〈포커스: Folk Us〉, 장르 불문으로 진행된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 등등이 더 있다.
 
  그중 눈에 띄게 〈내일은 미스터트롯〉 시청층을 흡수했다고 여겨지는 〈팬텀싱어〉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역시 팝, 록, 재즈, 민요, 팝페라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경연이었지만 무리 없이 그대로 유입(流入)이 이뤄졌고, 여기서 좋은 무대를 선보인 남성 4중창 팀에게는 〈내일은 미스터트롯〉 베스트 7에 버금가는 팬덤이 형성되기도 했다. 일례로 시즌 3 우승팀인 라포엠의 한 유튜브 영상 댓글을 보자.
 
  “라포엠 넘 고맙습니다. 우리 나이가 그렇습니다. 아이들도 크고 혼자인 시간은 많아졌는데 일상은 편해졌으나 몸은 아파오고 외모도 어느 순간 늙어버렸고 그래도 콘서트 간다고 꾸며보고 합니다. 삶에 즐거움이란 없었는데 그때 라포엠을 만나 이렇게 감동받으며 살고 있어요. 라포엠이랑 함께 나이 들고 싶네요. 오래 함께해 주세요. 라포엠이랑 아름답게 나이 들고 싶습니다. 라포엠 사랑합니다.”
 
  트로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팬을 모은 여느 트로트 가수들에 대한 중·노년층 팬들 반응과 다를 것이 없다. 연령대도 그렇게 보이고, 특유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한 팬심(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내용이 〈팬텀싱어〉에 출연한 팀들 영상 댓글의 절반을 넘어선다.
 
 
  지금의 노년층이 ‘트로트 세대’인가
 
  그런데 이러면 상황을 파악하기가 조금 복잡해진다. 애초 ‘미스트롯-미스터트롯’의 사회현상 격 인기와 이에 뒤따른 각종 현상들은 트로트라는 장르 자체의 화려한 부활로서 이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꾸준히 언론미디어에서 지난 3~4년에 걸쳐 분석해왔고, 트로트라는 장르가 지니는 의미 등이 꾸준히 거론돼왔다.
 
  그동안 주류(主流) 미디어가 젊은 층이 즐겨 듣는 음악에만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조명이 되지 못했을 뿐 트로트를 사랑하는 이들은 중·노년층 중심으로 언제나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수요가 ‘미스트롯-미스터트롯’이라는 계기를 만나 폭발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해석하에서 특히 인구 통계상 다수를 차지하는 중·노년층의 의사(意思)나 취향 등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왜곡된 현대 매스미디어 현실 등이 함께 지적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사실은 트로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는 자극적인 콘셉트가 중요했을 뿐’이라는 논리가 튀어나오면 기존의 해석들은 모두 무너진다.
 
  이 같은 상황에 당황하기 전, 한 번쯤 돌아봤어야 할 지점이 존재한다. 과연 지금의 중·노년층, 특히 노년층은 대중문화 유행의 흐름상 ‘트로트 세대’로서 분류되고 이해되는 게 과연 맞느냐는 점이다. 노년층을 노인복지법, 도로교통법 등 각종 법률상에서 규정하는 65세 이상으로 생각해봤을 때 말이다.
 
  단적으로 말해, 지금 노년층의 다수는 ‘트로트 세대’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들은 이른바 ‘포크 세대’로 여겨진다. 포크 음악이 청년문화 자체를 상징했던 ‘포크 전성기’ 1970년대에 20대 청년이었던 이들이 지금 대략 65~74세다. 그리고 포크 음악은 무 자르듯 딱 1970년대부터 청년층에서 유행했던 것도 아니다.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트윈폴리오의 시대
 
트윈폴리오로 한창 활동하던 시절의 송창식(오른쪽)과 윤형주. 1968년 가을, 지금은 없어진 잡지 《아리랑》에 실렸던 화보 사진이다. 사진=윤형주
  한국 대중음악 유행에서 차별화된 청년문화가 성립되는 기점으로 흔히 1967년 결성된 남성 포크듀오 트윈폴리오의 현상적 인기를 꼽고는 한다. 송창식과 윤형주로 이루어진 통기타 듀오로서 당시 ‘하얀 손수건’ ‘웨딩 케익’ 등 포크뿐 아니라 그리스 민요, 컨트리, 칸초네 등에 걸쳐 모두 번안곡만 불렀던 팀이다. 이들은 등장 즉시 새로운 청년문화를 고대하던 청년층의 열광에 힘입어 스타로 거듭났고, 이후 송창식과 윤형주 음악 커리어의 발판이 됐다. 당시 어찌나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지 1969년 해체를 선언하며 가진 고별 공연은 MBC, TBC 등 지상파 방송에서 5차례나 방송했을 정도다.
 
  트윈폴리오의 불꽃같았던 인기는 그 데뷔 수년 전부터 쎄시봉, 오빈스 캐빈 등의 음악 감상실 기반으로 1940년대생들의 해외 대중음악에 대한 열광이 어느 정도로 부풀어 있었는지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또 1969년에는 당시 기성세대에 충격을 안겨줬던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서울 시민회관 및 이화여대 강당 내한공연이 있었다. 보수적인 기성세대 입장에서 젊은 여성들이 해외 남성 가수에게 열광하며 손수건과 선물을 던지는 모습 등은 큰 충격을 안겨줬다. 1960년대는 이렇게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와 트윈폴리오의 ‘하얀 손수건’이 공존하던 시대, 기존의 트로트와 서양에서 들어온 스탠더드 팝이 공존하던 시대였다.
 
 
  트로트를 밀어낸 청년문화
 
  이어진 1970년대는 그야말로 청년문화의 진정한 시작을 알린 시기였다. 송창식, 윤형주, 서유석, 이장희, 양희은, 조영남, 어니언스, 김세환 등 신세대 가수들이 모조리 튀어나와 트로트가 차지하던 대중음악시장 지분을 가져갔고, 딕훼밀리의 ‘나는 못난이’ ‘또 만나요’ 등 ‘그룹사운드’ 노래들도 큰 인기를 누렸다. 이에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에서는 “요즘 대학생 중에 기타 못 치는 애가 어딨느냐”는 대사까지 나온다. 1970년대 후반으로 가면 혜은이, 윤수일, 이은하, 윤시내, 산울림 등도 등장한다.
 
  이처럼 물밀듯이 밀려오는 청년문화의 새 유행이 1970년대 중후반 들어서서는 이제 완연히 주류로 등극하며 1977년 마침내 〈MBC 대학가요제〉가 시작된다. 1회 우승을 차지한 샌드 페블즈의 ‘나 어떡해’는 대히트곡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MBC 대학가요제〉는 애초에 트로트를 ‘받아들이지 않는’ 대회로 알려졌다. 트로트가 주류 대중음악 판에서 자리를 내주는 시점이다. 그리고 트로트를 비하하는 ‘뽕짝’이라는 용어가 젊은 층에서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이후 1980년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조용필과 전영록, 나미, 김현식, 송골매, 김수철, 이선희, 정수라, 해바라기 등의 시대다. 1980년대 후반으로 가면 김완선, 소방차, 박남정 등 현대적 댄스가수들도 등장한다. 주현미와 김수희 등의 트로트 스타가 등장하기도 했다는 점이 오히려 이변(異變)처럼 여겨지던 시대이기도 하다.
 
 
  어덜트 컨템퍼러리
 
  그럼 이들 ‘포크 세대’, 그리고 이후 1980년대의 ‘팝 세대’까지 트로트에 반응하며 ‘미스트롯-미스터트롯’에 빠져든 이유는 뭘까. 얼핏 미스터리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다. 이를 어색하게 여기는 것은 상당 부분 한국대중음악계와 그를 다루는 언론미디어에서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라는 미국식 대중음악 스타일 개념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어덜트 컨템퍼러리는 한국식으로 ‘성인가요’ 정도가 된다. 한국에서 성인가요라고 하면 대부분 트로트라는 장르 하나를 콕 집어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애초 이런 개념이 처음 등장한 미국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미국에서 성인가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건 1960년대다. 당시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스 같은, 당시로서 도발적인 로큰롤이 젊은 층에서 유행하니 이에 어느 정도 거부감을 느끼는 중·노년층이 새 유행을 거부하고 기존에 듣던 발라드 등을 추구하면서 개념이 탄생했다.
 
  1961년 미국 빌보드가 이런 흐름을 반영해 로큰롤과 구분되는 히트곡들을 집계하는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차트를 신설한 게 개념의 시초다. 1979년부터는 명칭을 어덜트 컨템퍼러리로 바꿨다. 1960~70년대에 걸쳐 바비 빈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칼리 사이먼 등의 노래가 성인가요로 분류되며 당시 젊은 층에서 유행한 록과 디스코음악 ‘바깥’의 중·노년층 취향을 반영했다. 1980년대 이후로는 배리 매닐로나 라이오넬 리치, 빌리 조엘, 마이클 볼턴, 휘트니 휴스턴 등의 노래도 성인가요로 분류된다.
 
  미국에서 성인가요로 분류되는 노래들의 공통점은 단순하다. 노래가 일단 멜로디 중심이며 가수의 보컬 능력이 중시된다. 그룹이라면 보컬 하모니가 백미(白眉)다. 또 전주와 절, 후렴, 간주 등이 정확히 갖춰진 전형적인 대중가요 형식을 띤다. 그리고 가사는 대부분 남녀 간의 사랑 등 개인의 감정적 소회(素懷)를 다룬다.
 
  중·노년층에게는 모든 노래가 다 그렇지 않나 싶을 정도로 당연한 듯 여겨지는 내용이지만 사실 1990년대부터의 대중음악 유행은 이와는 꽤 다르다. 특히 댄스음악에서 가수의 목소리를 악기와 비슷한 수준의 사운드의 일부로서 다루는 경우가 많고,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아이돌그룹이 인기를 끌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대중가요의 정석적 노래 진행을 깨는 형식도 이제는 부지기수(不知其數)다. 한편 가사도 상당히 다양하다. 사회 비판적인 내용도 많고, 내면의 분열 등 가히 정신분석학적인 내용도 드물지 않다. 요즘은 가상세계를 넘나드는 판타지적 가사들이 또 유행이다.
 
 
  트로트는 ‘성인가요’의 일부일 뿐
 
트로트 스타 임영웅. 사진=TV조선
  이런 식으로 이해해 보면 저 ‘미스트롯-미스터트롯’으로 촉발(觸發)됐다는 ‘트로트 전성시대’도 다르게 읽힌다. 트로트는 엄밀히 현(現) 중·노년층이 즐기는 성인가요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트로트만 홀로 툭 불거져 나온 현상이라기보다 1960~80년대의 전형적인 형식과 조건을 갖춘 성인가요들, 트로트, 가곡, 스탠더드팝, 컨트리, 소프트록, 보사노바 등 다양한 장르 노래들이 다시 방송에서 흘러나오게 된 계기가 중요했을 뿐이다.
 
  쉽게, 주로 아이돌 관련으로나 성립되던 자극적인 음악 서바이벌 오디션 형식을 성인가요 범주로 옮기면서 일어난 게 ‘미스트롯-미스터트롯’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추론은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낳은, 아니 지난 수년간의 트로트 열풍 자체를 대변하는 최대 스타 임영웅이 실제로는 트로트만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는 점으로 잘 드러난다.
 
  임영웅의 첫 정규 앨범 〈IM HERO〉의 타이틀곡 ‘다시 만날 수 있을까’부터가 트로트 전형과는 거리가 먼 발라드 곡이다. 창법도 담백하고 소위 트로트적인 구성진 측면이 없다. 나아가 앨범에는 발라드, 트로트, 팝, 힙합, 댄스, 포크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IM HERO〉 CD는 지난해 발매 첫 주 동안 무려 110만2000여 장이 팔려나가 한국의 솔로 가수 음반 중 첫 주 판매량 1위 기록을 세웠고, 타이틀곡 ‘다시 만날 수 있을까’도 주요 디지털 음원플랫폼 멜론과 벅스, 지니 등에서 모두 실시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임영웅 팬들은 이를 두고 ‘임영웅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됐다’는 식으로 칭송하지만, 사실 본질적으로는 이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이 위 설명한 성인가요의 특징과 조건들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세대’에 대한 오해
 
  돌이켜보면 한국은 계층 갈등, 남녀 갈등과 함께 세대 갈등도 상당히 심각한 사회 분위기이지만 생각보다 개개(箇箇) 세대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의외로 심한 편이다. 특정 세대가 어떤 환경, 어떤 공기(空氣)에서 살아갔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고 오직 공직선거 투표 성향 정도로만 세대를 파악해 상상을 부풀리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언론미디어들조차 특정 세대가 겪었던 문화 환경에 대해 이렇다 할 이해 없이 상황을 해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위처럼 ‘트로트 세대’를 잘못 분류하는 일 정도는 흔하다. 지고지순한 ‘우리네 어머니’ 정도로만 그려지는 1920~30년대생 여성들이 1950년대 〈자유부인〉부터 1960년대 〈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 〈미워도 다시 한 번〉, 1970년대 〈화녀〉 〈충녀〉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 불륜(不倫) 소재 영화들의 흥행을 책임지던 속칭 ‘고무신 부대’이기도 했다는 점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이처럼 나름대로 자유분방(自由奔放)했던 면면이 대중문화사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데도 말이다. 이 밖에도 많다.
 
  이런 점에서 저 트로트라는 장르가 애초 한국 대중문화 시장에서 어떻게 정착되고 어떤 식으로 생명을 이어나갔는지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도 생각보다 오해가 심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트로트는 단순히 한국인들의 정서에 더없이 꼭 맞는 장르이기에 살아남고, 또 상당기간 주류로서 자리 잡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둘 필요가 있다.
 

  트로트의 ‘진짜’ 전성기는 193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 30여 년 정도다. 대중음악 유행치고는 상당히 긴 세월이다.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 트로트는 사실 1930년대 당시만 해도 상당히 세련된 도회풍(都會風)의 음악 장르로 여겨졌다. 신세대들이 주로 듣는 음악이었으며 대부분 서울 등 도시에서 많이 듣는 음악이기도 했다. 애초 트로트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일본의 엔카(演歌) 자체가 그 당시로서 파격적인 음악 형태, 즉 동양 특유의 5음계에 서양의 단조(短調)를 적용해 만들어진 요나누키 단음계(短音階)를 기반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니 많은 점에서 ‘서양화된 음악’으로 볼 만했다. 당시 상황에서 빠르게 대중화되기에는 낯설고 어색한 장르였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당시 조선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던 신(新)민요를 제치고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엔카가 시장을 장악해버린 것은, 아주 단순히, 엔카 쪽이 ‘돈’이 됐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도시의 사회 엘리트층이 서구풍의 세련된 엔카에 매력을 느껴 그 주(主) 소비층이 되다 보니, 일반 서민들이 좋아하는 신민요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 레코드 음반도 팔고 공연 입장권도 팔 수 있어 여러모로 수익이 많이 남는 엔카 쪽으로 전향하려는 가수들의 흐름이 뚜렷했던 것이다. 당시 월간지 《삼천리》나 《신세기》 등을 봐도 당대 인기가수들을 뽑아놓은 명단에서 1935년까지만 해도 신민요 가수들이 주류였지만 1939년이 되자 그들이 모두 엔카 가수들로 ‘물갈이’되거나 그리로 전향한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트로트로 이름을 바꾼 엔카가 1960년대 중반까지 승승장구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해방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6·25전쟁을 맞이하고 일대 혼란을 겪으며 젊은 신세대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쉽게 자본을 쌓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 그러다 보니 일제(日帝) 시대부터 상대적으로 탄탄한 경제적 기반을 갖춰온 기성세대가 대중음악 등 문화에 지출할 여력이 있는 이들로 오랜 기간 남게 됐고, 이들이 청년 시절 즐기던 문화상품들이 그대로 ‘돈이 되는 상품’으로서 주류에 남게 됐다. ‘트로트 30년 천하(天下)’의 배경이다.
 
 
  대중가요의 변천과 경제발전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 재킷. 사진=조선DB
  이 같은 흐름에서 비로소 1960년대 중후반부터 대중음악시장에 차별화된 청년문화가 가시화(可視化)되기 시작한 것도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국가 경제의 부흥과 함께 이제 청년들도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춰 서울의 음악 감상실부터 시작해 청년문화를 표방하는 가수들을 실질적으로 소비하는 행태가 가능해졌던 것이다. 이런 흐름은 1970년대 들어 더욱 가속화되며 ‘포크 세대’가 탄생했고, 1990년대에 이르러선 스스로 돈을 벌지도 않는 10대 청소년들까지 대중문화에 돈을 쓸 수 있는 ‘용돈 시장’이 열렸다. 기성세대들에 한없이 낯선 음악 장르들을 연속적으로 선보인 ‘서태지와 아이들’ 신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처럼 “음악이라고는 트로트만 아는 줄 알았다”는 젊은 세대들의 막연한 고정관념과는 달리 훨씬 다양한 장르의 대중음악을 즐기는 노년층의 문화 향유 역사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사와 궤를 함께해 온 흐름이다. 반대로 말하면, 1960~80년대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기 역사를 알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시대 문화생활이 어떠했는지도 알 수 없게 되고, 세대에 대한 숱한 편견만 남게 되는 셈이다.
 
  물론 트로트의 힘은 여전히 대단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한국 정서에 맞도록 변형돼가며 중년층 이상부터는 누구나 부를 줄 아는 트로트 노래 한둘쯤은 갖게 됐다. 그만큼 친숙하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의 중·노년층은 이외에도 많은 음악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어느 날, 항상 라디오를 통해 ‘공짜’로 듣던 엘비스 프레슬리나 톰 존스, 폴 앵카, 프랭크 시나트라, 그리고 비틀스의 음반을 레코드 가게에 가서 돈 주고 살 수 있게 된 그때부터 이뤄진 일이다. 이런 역사를 이해한다면,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팬텀싱어〉로, 또 다른 음악 프로그램들로 계속 건너뛰며 다양한 음악들을 즐기는 중·노년층의 취향도 더 이상 미스터리로 남지는 않게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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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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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드랙    (2023-05-05) 찬성 : 2   반대 : 0
대중가요의 시대별 흐름을 논문과 다름없이 절절히 짚어주며 분석해주어 참 고맙. 시대별 장르별 언급해준 많은 가수중에 다 언급 할 수는 없었겠으나, 그래도 그 한시절 절대 잊을 수 없는 몇몇 인물의 이름이 없어^^ 좀 서운.. 최희준,패티김,펄시스터즈,정훈희,나훈아만이라도^.
  이정의    (2023-05-04) 찬성 : 0   반대 : 2
왜냐하면 왜 신망이 무너졌는가 하면..... 다 알거다. 심사대상인 지원자가 속한 소속사 가수가 심사위원이라는 사실.. 그것도 막강한 파워를 가진 사람이... 또 같은 소속사 심사위원이 한둘이 아니지... 판사도 피의자와 이러한 연관성이 있다면 재판을 기피한다는 것.,.. 공정성... 심사위원들은 공정하다고 하지만... 시청자들이 볼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 공정해야 오래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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