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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역사 ③ 전쟁과 문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자유민주문명에 대한 침공

글 :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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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위협이 되는 것은 서구문명의 오만이 아니라 탈레반의 이슬람 극단주의, 푸틴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 시진핑의 中國夢 등 非 서구문명의 독선
⊙ “전쟁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되었지만 평화는 현대의 발명품”(헨리 메인)
⊙ 레닌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다고 했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
⊙ “평화를 누리고 싶으면 강력한 군사력과 유사시 무력사용 의지 등을 수시로 과시해야”(도널드 케이건)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미래한국》 편집위원 역임 / 現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작년 4월 10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반러시아 시위에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푸틴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포스터가 등장했다. 사진=AP/뉴시스
  2023년 2월 24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을 맞는 날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일어난 전쟁이다. 유럽에서 이 같은 전면전이 발발한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유럽으로서도 충격이었지만 세계적으로도 충격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한국전쟁·베트남전쟁 등 지역적으로는 국지적(局地的)이지만 정치적 의미에서는 국제적인 전쟁이 있었다. 이 외에도 도처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치명적 재앙의 세계적 전쟁은 억제해나갈 수 있다고 여겼다. 냉전(冷戰) 시대에도 그 이후에도 대체로는 그랬다. 영구적(永久的) 평화는 아니라도 위험이 관리되고 있다는 통념이 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런 통념을 깼다.
 
  첫째, 강대국에 의한 노골적 침략전쟁이었다.
 
  둘째, 국제적 전쟁으로의 확전(擴戰) 위험이 대두됐다.
 
  셋째, 핵전쟁의 위협까지 나왔다.
 
  이것은 그간 어떻든 불완전하나마 믿어졌던 평화 무드에 비춰보면 전례 없는 사태였다.
 
  그런데 이런 위기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여전한 가운데 중국이 패권(覇權) 야욕을 노골화하며 미국과 충돌을 거듭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적 확전으로 치달으면 연쇄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중국이 기회를 틈타려 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한국도 그 여파를 피할 수 없다. 푸틴이 만약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게 되면 세계문명 자체가 아마겟돈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21세기 현대문명의 시대에 반문명적 야욕에 의한 전쟁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 같은 사태는 피할 수 없는 것인가?
 
 
  레닌, “자본주의가 전쟁의 원인이다”
 
레닌
  문명이 전쟁의 종식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古代)로부터 지금까지 문명권 내에서도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역사 속에는 전쟁을 거듭하다 몰락한 문명들의 기록도 즐비하다. 하지만 적어도 문명은 원시적(原始的) 야만의 상태보다는 전쟁의 위험을 줄였다. 문명국의 패권이 확립되면 적어도 한동안은 평화와 번영이 이어졌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그러했다. 중국에서도 난(亂)을 종식하고 치(治)의 시대를 여는 게 중요했다.
 
  정반대의 발상도 있다. 문명 자체를 전쟁의 원인으로 보는 발상이다. 근대 계몽주의 시대 초기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 그랬다. ‘행복한 원시’가 문명에 의한 ‘소유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간들 사이에 항상적 전쟁 상태가 조성됐다는 것이다. 후대(後代)의 좌익사상이 그 생각을 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가 바로 전쟁의 원인이라고 했다. 자본 간의 경쟁이 전쟁을 낳고 자본가들은 전쟁을 통해 이득을 본다고 했다.
 
  레닌에 이르러 이 같은 관점은 집약적으로 정리됐다. 《제국주의론》(1917)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의 정점으로서의 제국주의에 의한 전쟁이라는 게 핵심 논지다. 레닌은 이에 입각해 “토지, 빵, 평화”라는 구호를 내걸고 독일과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던 케렌스키 정부를 전복시키고 권력을 잡았다. 1917년 10월 혁명이다.
 
  이후 레닌의 《제국주의론》식 논리는 사회주의자의 교리가 되었고 그들의 국제정치관으로 자리 잡았다. 딱히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아니라도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은 이런 관점에 동조하는 게 일반화되었다.
 
 
  전체주의가 전쟁을 일으킨다!
 
  하지만 틀린 얘기였다. 당시 가장 선진적인 자본주의 국가는 영국이었으며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후발국이었다. 독일의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결과가 아니라 뒤늦게 국민국가를 이루면서 갖게 된 민족주의적 충동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후발국으로서의 콤플렉스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치즘의 핵심은 게르만 민족주의요 아리안으로 표방되는 일종의 인종주의였다. 나치즘은 자본주의적 발전의 결과가 아니다.
 
  하지만 루소에서부터 마르크스와 레닌을 거쳐 그리고 이후에는 포스트모더니즘 조류에 이르기까지 근대문명에 대해 이러저러한 비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물론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반문명의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사회주의-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라는 근대문명의 약점을 극복하고 문명적 완성을 이루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낭만적 공상(空想)이 아니라 문명적 과학이라 여긴다.
 
  하지만 역사의 실제 상황은 그들의 주장과는 달랐다. 소련은 그들이 주창한 바와는 달리 문명적 완성은커녕 지탱에도 실패하고 몰락했다. 공산중국이 표방하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평등은커녕 최악의 특권체제다. 그 끝자락에 빌붙어 있는 북한은 김가 일족의 왕조체제다.
 

  그리고 바로 그들이 전쟁으로 위협하고 도발했다. 소련 시절의 사회주의 제국의 위세에 향수(鄕愁)를 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중공은 팽창과 패권의 야심을 노골화하며 주변 국가들을 위협하고 있다. 북한은 핵무장을 갖춘 채 전쟁 불사를 외치고 있다.
 
  러시아·중공(공산중국)·북한의 도발적 행태가 그들의 체제가 자본주의이기 때문일까? 푸틴 러시아의 올리가르히(oligarch)가 특권적 자산집단인 것은 맞다. 하지만 올리가르히는 구소련의 노멘클라투라들이 사회주의 몰락 후 국영(國營) 자산을 민영화할 때 특권적으로 자산을 움켜쥐게 된 것일 뿐이다.
 
  한편 중공의 공산 특권층은 경제 위에 군림하며 직접적 자산가 못지않게 재산을 축적하고 있다. 북한은 나라 전체가 김가 일족의 사유재산이나 다름없다. 그 어느 경우도 자본주의적 발전의 결과가 아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전체주의이며 행태는 범죄적이다. 그들이 전쟁 불사를 외치고 또 도발을 직접적으로 자행했다. 이것은 자본주의 문명에 의한 게 아니다. 전체주의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관점
 
  그렇다면 다른 각도에서는 어떨까?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Samuel Phillips Huntington·1927~2008년)의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1996)이라는 관점을 살펴보자. 헌팅턴은 이슬람권과의 갈등과 함께 특히 중국의 대두와 그로 인한 갈등과 관련해 예고적 분석을 하고 있다. 헌팅턴은 부상(浮上)하는 중국이 21세기 들어 미국과 서구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면서 충돌을 빚을 것이라 보았다.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충돌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듯이 기존의 패권국인 미국과 대두하는 강대국인 중국이 충돌하게 된다는 것이다. 헌팅턴은 책의 마지막 장(章)에서 미국과 중국의 교전 시나리오를 그려보기도 한다. 물론 비관적 전망만 하는 것은 아니다. 파국(破局)을 막기 위한 대응책도 제안한다.
 
  그런데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을 말할 때의 문명의 의미는 가치적 개념이 아니다. 그의 문명 개념은 삶의 양식과 행태 특성의 의미를 갖는다. 헌팅턴은 가치적 관점은 논외로 하고 특성의 차이에 따라 문명들을 분류한다.
 
  근대문명의 보편성이 강화되고 어느덧 글로벌 문명의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각각의 역사적 경과를 거치며 형성된 나름의 특성을 갖는 문명권이 여전히 이어지고 존재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 같은 문명들이 갈등하고 경쟁하고 충돌하는 것은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인 게 맞다.
 
  그런데 헌팅턴식 접근법에는 약점도 있다. 가치판단을 유보한 ‘다양한 문명들’이라는 관점 자체가 그렇다. 헌팅턴은 오늘의 세계를 이룩한 서구 근대문명의 성취와 그 가치를 논하지는 않는다. 그 자신이 서구문명의 일원인 만큼 새삼 논할 일은 아닐 수 있다. 객관적 접근법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서구문명의 자세는 이미 충분히, 지나칠 정도로 객관적이다.
 
 
 
헌팅턴, “서구문명의 오만이 약점”

 
  서구는 문명적·문화적으로도 마땅히 톨레랑스, 즉 관용(寬容)이 견지돼야 한다고 여긴다. 이 같은 톨레랑스 문화 자체가 사실은 서구적이다. 서구 근대문명은 많은 역사적 굴곡을 거친 끝에 그런 면모를 갖게 됐다.
 
  그러나 서구문명과 충돌을 벌이는 다른 문명들은 서구에 대해 자신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만이 옳다는 독선(獨善)을 고수한다. 문명을 특성의 관점에서만 보게 되면 이 같은 독선의 문제점을 놓치게 된다. 객관적 접근이 되레 객관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헌팅턴은 서구의 오만과 자부심이 서구문명의 약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서구의 생존은 서구문명을 보편이 아닌 특수한 것의 하나로 인정하고 비서구문명으로부터 오는 도전에 맞서 자신의 문명을 혁신하는 데 달려 있다고 말한다. 헌팅턴은 그 점과 관련해 이렇게 말한다.
 
  “문명의 보편 국가가 등장하면 그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토인비가 말한 대로 ‘연속성의 망상에 눈이 멀어 자기네 문명이 인류 사회의 최종 형태라는 명제를 신봉하게 된다’. 로마제국이 그러했고 아바스 왕조가 그러했으며 무굴제국과 오스만제국도 다를 바 없었다.”
 
  “보편 국가에 거주하는 국민들은 그 보편 국가를 황야의 하룻밤 거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 인간의 궁극적 목표점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절정기의 대영제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1897년의 영국 중산층은 역사는 종착역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신들의 역사가 궁극점에 이르렀다고 전제하는 사회는 대체로 몰락기로 접어든 사회이다.”
 
  헌팅턴의 이 같은 언명은 서구문명의 자기 경계로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지금 ‘자기 문명에 대한 독선적 망상’을 보이는 것은 서구문명이 아니다. 탈레반의 이슬람 극단주의, 푸틴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 시진핑 중공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이 오늘날 세계의 대표적인 독선적 망상들이다.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 잣대는 극히 엄격하면서 다른 문명에 대해선 ‘틀린 것’조차 그저 ‘다른 것’으로 간주하는 건 옳은 게 아니다. 이것은 자부심이나 오만의 문제가 아니다. ‘틀린 것’ ‘잘못된 것’에 대해 타협적인 것은 문제를 악화시킨다. 헌팅턴이 어떻게 보든 서구문명은 단지 서구만의 것이 아니다. 서구문명 자신이 성취하고 지켜낸 가치를 잊지 않는 것은 서구 자신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價値의 충돌
 
홉스의 《리바이어던》.
  문명이라는 개념은 단지 특성이 아니다. 거기에는 원시와 야만에 대비되는 함의가 들어 있다. 문명 대 야만이라는 관점에는 분명 편견과 오만의 위험이 있다. 하지만 문명적 성취의 가치를 외면하는 것도 바르지 않다. 원시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한 자연 상태에 대한 관념은 상상적 바람에 의한 설정일 뿐이다. 원시는 고단했으며 잔혹했다. 현대에 들어 고고학이 발전하면서 이 같은 사실은 거듭 확인되었다. 인간은 문명으로 들어서면서 그 고단함과 잔혹함을 이겨내기 시작했다.
 
  홉스는 원시적 자연 상태는 “만인(萬人) 대 만인의 투쟁 상태”이며 그런 상태를 이겨낸 것은 권력, 즉 국가라는 리바이어던(Leviathan)이 등장하면서였다고 했다. 리바이어던의 원뜻은 괴수(怪獸)다. 그렇듯 국가권력은 괴수적 힘의 함의가 있다. 하지만 그 힘은 자연 상태의 잔혹을 수습하는 질서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게 바로 문명이다. 문명은 정치적으로는 리바이어던이다. 하지만 문명적 리바이어던은 그냥 괴수가 아니다. 다양한 문화적 양식을 동반하는 질서다. 그것이 포괄적으로 작동하여 사람들의 삶에서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안정성을 높인다. 그리하여 물질적으로도 풍요를 촉진시켜간다.
 
  문명에는 단지 다양한 특성만이 아닌 가치의 함의가 있다. 개인도 그렇지만 국가와 문명도 가치를 배제할 수는 없다. 가치의 충돌이 벌어질 때는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국제적 충돌은 그냥 다른 문명적 특성 간의 충돌이 아니다. 선택 가능한 삶의 양식 간의 갈등이 아니라 타협할 수 없는 가치의 충돌이다.
 
 
 
공산주의는 神 없는 종교

 
  20세기 이래 핵심적인 충돌은 전체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립이다.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이 같은 이념적 대립이 본질적이지 않음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전체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립은 이념적 가치의 격돌임과 동시에 헌팅턴식 관점의 문명 충돌의 의미를 모두 갖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서구 근대문명의 둥지 속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서구의 본거지에서는 주류로 자리 잡지 못하고 그 변방인 러시아에 레닌주의가 되어 주된 이념으로 자리 잡고 동유럽 지역에서 패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이동하여 서구가 아닌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북한 등 아시아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헌팅턴은 종교를 문명의 중요한 특성의 하나로 본다. 그렇다면 공산주의도 그렇다. 공산주의는 신(神) 없는 종교이며 공산당은 그 교회다. 공산주의는 자리 잡은 곳에서 기왕의 역사적 특성과 결합하여 각각의 틀을 구축했다. 제정(帝政)러시아의 속성을 물려받은 소련은 전체주의 문명의 종주국이 되고 동유럽도 지배했다. 중국에서도 과거 왕조들의 전제정의 속성을 상속한 전체주의 문명이 자리 잡았다. 그 자락의 연장에 북한의 전체주의 왕조가 있다. 공산전체주의 문명권이다.
 
  한편 서구 근대문명에서 잉태된 자유의 이념은 바다를 건넜다. 대서양을 넘어 미국을 탄생시켰다. 그리하여 서유럽과 미국은 자유민주문명 세계가 됐다. 물론 그 이후 많은 격통을 겪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있었고 파시즘과 나치즘이라는 전체주의와의 싸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유민주문명은 진통을 이겨내고 성장했다.
 
  영미문명과 만나고 그와 동반하면서 현대문명의 발걸음을 시작했던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나치즘이라는 전체주의와 함께하다 몰락했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에 패전(敗戰)하면서 자유민주문명의 일원이 됐다. 강제 편입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일본에 행운이 됐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도 그런 가운데 운명적 갈림을 하게 됐다. 북한은 공산권이라는 전체주의 문명의 부속물이 됐다. 하지만 남한은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민주체제 국가를 세우게 되면서 자유민주문명의 일원이 됐다. 이것은 한국이 이후 번영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출발이 됐다.
 
 
  중국의 팽창
 
2020년 중국은 홍콩의 민주화 요구 시위를 진압하고 홍콩을 접수했다. 사진=AP/뉴시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세계적 충돌은 ‘차이’ 때문에 초래된 게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체주의 문명의 자유민주문명에 대한 침공이었다. 러시아의 푸틴 스스로가 그 점을 분명히 말했다. 푸틴의 러시아는 자유민주적 가치를 핵심으로 한 서구문명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분명히 했다.
 
  미중(美中) 갈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공산중국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자신의 체제를 절대 가치로 내세운다. 자신들 내부에서만이라면 일단은 선(線)이 그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중국은 대외팽창과 세계적 패권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 진영에 대해 공격적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헌팅턴은 홍콩과 대만을 모두 중국문명권의 일원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면 중국이 홍콩을 접수한 뒤 홍콩의 자유를 부정해버린 것의 문제점은 간과된다. 중국은 대만 점령 야욕도 노골화하고 있다. 대만은 자유중국이다. 공산중국의 대만 접수는 중국문명으로의 원대복귀가 아니다. 그것은 전체주의 문명이 자유민주문명의 일원을 점령하는 게 된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
 
  이 같은 도발들에 맞서지 않고 물러서야 할까? 물론 비상한 충돌로 번질 위험도 있다. 하지만 평화는 갈등을 피한다고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며 전쟁은 외면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류 역사는 늘 전쟁과 함께였다. 도널드 케이건(Donald Kagan·1932~2021년)은 《전쟁과 인간(On the origins of war and the preservation of peace)》(1995)에서 “지난 3421년 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은 기간은 불과 268년”이라고 했다. 그리고 케이건은 “인간이 전쟁을 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동기는 경쟁자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 이익추구, 명예추구”라고 지적한다. 이 같은 동기의 발동은 쉬이 회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편 이스라엘의 국제정치학자 아자 가트(Azar Gat·1959~)는 《문명과 전쟁(War in Human Civilization)》(2006)에서 전쟁의 원인에는 인간의 본성적이고 근본적 측면이 있다고까지 지적한다. 본성은 다스릴 수는 있어도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케이건은 이렇게 말한다.
 
  “평화를 누리고 싶으면 군축(軍縮)이나 불개입 원칙 등 소극적 정책이 아니라 강력한 군사력과 유사시 무력사용 의지 등을 수시로 과시해야 한다.”
 

  강경한 언명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현실적 지적이다. 전쟁에는 역설이 있다. 전쟁은 외면할수록 위험이 커진다.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어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했다. 공산주의자 트로츠키의 언명이다.
 
  평화에도 역설이 있다. 평화는 믿지 않아야 가능한 오래 지속된다. 고대 로마의 베제티우스(Vegetius)는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이를 인용해 “로마인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했다”고 기술했다. 케이건의 지적도 마찬가지의 얘기다.
 
  전쟁은 거의 언제나 뒤통수로 닥쳐온다. 직시하고 있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날 경우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그리고 전쟁 발발의 억제도 그 위험을 항상 직시하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평화를 위한 노력이 무가치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전쟁에 대한 직시와 각오가 함께해야 평화를 위한 노력도 현실적 힘을 갖게 된다.
 
 
  평화의 발명
 
헨리 메인. 사진=퍼블릭 도메인
  영국 역사학자 마이클 하워드(Michael Howard)는 《평화의 발명 : 전쟁과 국제 질서에 대한 성찰(The Invention of Peace : Reflections on War and International Order)》(2001)이라는 책에서 서구에서의 평화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발명’되었다고 얘기한다. 하워드는 책의 서두에서 19세기 영국의 법학자인 헨리 메인(Henry Maine·1822~1888년)의 “전쟁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되었지만 평화는 현대의 발명품이다”는 언명을 인용하며 이 점을 말한다.
 
  메인의 말대로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평화의 개념은 근대에 들어 등장한 새로운 것이다. 전쟁을 적극적으로 억제하려는 시도는 근대에 들어 시작됐다. 분쟁 방지와 평화 증진을 위한 국제법과 제도의 발전 모두가 그러하다.
 
  서구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충돌에서 비롯된 ‘30년 전쟁’ 끝에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맺어 평화체제를 구축했다. 30년 전쟁은 최초의 국제전쟁이라 불리고 베스트팔렌 조약은 최초의 근대적 국제협약이며 근대적 국제법의 출발로 평가된다. 이 조약으로 유럽세계는 민족과 종교, 문화적 차이와 상관없는 크리스텐돔(Christendom)이라는 하나의 단일세계 관념이 종식을 고하고 각각이 외교 주권을 갖는 국민국가 시대로 접어들었다.
 
  베스트팔렌 조약이라는 근대적 국제협약은 말하자면 ‘평화의 발명’이었다. 하지만 평화가 발명된 후에도 서유럽 곳곳에선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협약에 의한 평화는 다시 전쟁을 통해 깨지곤 했다. 그래도 각각의 질서가 유지되던 일정한 동안은 커다란 전쟁은 억지되고, 국제 질서가 유지되었다. 물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유럽에 있어선 그 모든 노력을 허무하게 느낄 만한 종말론적 사태였다. 그러나 서구문명은 거기서 종말을 맞지는 않았다. 전쟁을 끝내고 유엔이라는 새로운 국제체제를 재구축했다. 이 같은 경과는 무의미한 게 아니다.
 
 
  영원한 평화는 영구히 없을 것
 
  영원한 평화는 영구히 없을 것이다. 현실적 평화는 협약이다. 가능한의 유지를 위한 약속이다. 영원성을 믿기보다는 현실적 가능성의 약속을 하는 게 근대적 정신이기도 하다. 근대적 발명품으로서의 평화는 그 항구성에 대한 감상적 믿음이 아니다. 수동적으로 주어질 것을 믿지 않고 능동적 노력으로 지켜내는 평화다. 그래서 그 평화는 깨질 위험에 대한 직시와 함께하는 현실적 평화다.
 
  근대문명은 많은 진통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수많은 성취를 이룩했다. ‘평화의 발명’도 그렇다. 자유민주문명은 이 같은 근대문명의 이념적·정치적 구현이다. 근대문명-자유민주문명은 서구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서구를 넘어선 보편 문명이 됐다. 그에 대한 도전과 도발에 맞서는 것은 서구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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