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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MZ 세대는 없다!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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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된 세대 구분이 청년·저출산 정책 표류하게 만들어
⊙ 미국에서 밀레니얼(M) 세대와 Z 세대를 가르는 기준은 9·11테러
⊙ 한국의 세대 구분 기준은 1997년 IMF사태여야
⊙ ‘정치적 올바름’에 익숙한 미국 Z 세대는 좌경화, 한국 Z 세대는 ‘자기 책임’ 강조하며 우경화
⊙ 일본은 미국의 세대 개념 직수입하기보다 ‘단카이 세대’ 등 독자적 개념으로 세대 구분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오늘날 젊은 세대의 의식을 읽을 수 있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2023년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언론미디어는 이맘때면 늘 그렇듯 모든 분야에 걸쳐 새해 전망들을 쏟아내고 있다. 와중에 수년래 빠지지 않는 ‘MZ 세대’ 전망들도 올해는 유독 눈에 많이 띈다. “이번엔 내 차례, MZ 주류 ‘갓생살기’… 올해도 계속된다” “MZ 세대가 조직을 떠나는 이유를 담다… 조용한 퇴사” “‘목적이 있는 만남’… MZ 세대의 ‘인덱스 관계’” “‘MZ 세대, 워라밸만 중시’ ‘라떼 조언 거부할 뿐’… 직장 내 ‘MZ 세대 논란’ 확산” 등등.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제휴된 언론미디어 기사만 해도 1월 5일 하루 동안 MZ 세대 전망 관련으로 600여 건이나 쏟아졌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은 이 MZ 세대가 말 많고 탈 많은 개념이라는 점을 많이들 알게 됐다. 당장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같은 유명인부터가 “젊은 세대에 대한 접근은 MZ 세대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없애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언론미디어에서 해당 개념 자체를 비판하는 기사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 또한 물론이다. 프레시안 2022년 12월 31일 자 칼럼 “미국 정치에 MZ 세대는 없다”도 그중 하나다.
 
 
  ‘MZ 세대’는 콩글리시
 
  〈“미국에서 MZ 세대라는 말 정말 쓰나요?” 한국에 계신 분들께 많이 받는 질문이다. 명확하게 답변하기에는 항상 장황한 설명이 뒤따른다. ‘밀레니얼’과 ‘Z 세대’라는 용어는 있지만, 한국처럼 “MZ 세대”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 MZ 세대는 콩글리시로 언젠가부터 우리 일상에서 많이 듣는 말이 됐지만, 이제는 ‘차세대’ 또는 ‘청년’과 같이 실체가 불분명한 단어로 변질된 것 같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1년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났고, Z 세대는 1997년부터 2012년 사이 태생인데, 크게 31년이나 차이 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부르는 건 무리가 따른다. 정작 당사자들도 자신들을 그렇게 지칭하는 일이 굉장히 드물다.〉
 
  현재까지 MZ 세대 개념에 대한 비판은 대략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짚는다.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서로 다른 세대를 이유 없이 하나로 합쳐놨다는 데 있지 않다. MZ 세대 특성을 설명하려는 한국 언론미디어의 시각 쪽이 더 큰 문제다. 쉽게, MZ 세대는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극도로 자기중심적이라는 묘사가 대부분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불편해지는 것을 못 참고 분명 장점이 존재하는 조직 문화에도 적응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식 거부 등은 물론이고 그 밖에 수많은 자기 권리 침해에 민감하다고도 한다. 또 거의 자폐적일 정도로 혼자만의 논리에 빠져든다는 설명도 덧붙는다. 그런데 여기서 아래 글을 한 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다.
 
 
  586 세대도 ‘신인류’였다
 
  〈아니 저게 누구냐? 아무래도 우리 집 애 같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낯선 사람같이 느껴진다. 거리에서 직장에서 “아, 이런 사람도 있었나” 하고 놀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게 어느 나라 사람이며 누구 집 자식이냐, 어디서 무엇을 보고 배운 사람이기에 이럴 수가 있냐고 아연실색해본 경험 말이다. 멀쩡하게 공부 잘하던 학생이 대학 졸업을 얼마 앞두고 휴학을 하겠단다. 병? 천만에, 그는 건강하고 착한 모범생이다. 휴학 사유가 걸작이다. 한라산에 새로운 등산로를 개발해보겠다는 것이다. 당신 아들이, 후배가, 제자가 이 말을 했을 때 당신의 다음 반응이 궁금하다. 어렵게 입사를 하고도 상사가 까다롭게 군다고 휴직을 해야겠다는 청년도 있다. (중략) 산더미처럼 일이 밀렸는데도 사규에 따라 정시 퇴근, 그리고 휴가를 가겠다고 나서는 신입사원에게 당신은 무엇이라고 대꾸하렵니까? 얌체, 아니면 조금 돌았다고 하겠습니까? 데려다 야단이나 칠 작정입니까?〉
 
  지금의 MZ 세대 소개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내용이지만, 이 글은 MZ 세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 이전의 세대론(世代論) 주역이었던 X 세대 사연조차 아니다. 이 글은 1987년 출간된 정신과의사 이시형 박사의 서적 《신인간, 무서운 신세대의 정신풍속도》 서문 중 일부다. 그러니 이 글에서 저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가히 자폐적이기까지 한 신세대는 지금 대부분 60대로 들어선 1980~85학번, 소위 n86 세대라는 얘기다.
 

  더 나아가면 이후 등장한 X 세대도 사실상 비슷한 맥락에서 다뤄졌고, 2000년대에 제시된 각종 다른 세대들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늘 거기서 거기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세대’라는 개념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저 연령대로만 그때그때 젊은 층을 툭툭 나눠 바라보면 어느 시대건 그 연령대 젊은이들 모습은 다 비슷비슷해진다. 기원전 1700년경 고대 수메르 점토판에 씌어 있다는 “요즘 젊은이들 큰일이다”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젊은이들은 기존 체제에 반항적이고 에고(ego)가 팽창(膨脹)해 있으며 기성세대에 대한 피해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반골(反骨) 기질의 신세대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문제가 될 정도다. 어찌 됐건 분명한 건, 이런 건 세대론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 세대란 어떤 식으로 파악되고 규정되는 것일까. 단순하게는, 먼저 당대의 특징적 사회 환경이 그에 민감한 젊은 층에 서로 유사한 일부 면면(面面)들을 만들어내고, 그런 젊은 층 성향에 맞춰 등장한 문화상품들이 영향을 줘 더욱 다양성의 범주를 좁힘으로써 일관된 경향으로 이끈다는 전개다. 복잡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젊은 층의 특징적 면면들에 적응해 만들어지는 대중문화 콘텐츠 흐름을 통해 상황을 바라보면 이해가 쉽다. MZ 세대 개념의 문제 역시 그런 식으로 접근했을 때 파악이 손쉽다.
 
 
  “Z 세대는 슬픈 세대”
 
  K팝이 글로벌화되면서 해외 K팝 팬들이 K팝 아티스트들의 각종 뮤직비디오나 예능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영상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코멘트를 첨부하는 이른바 ‘리액션 영상’이 유튜브 중심으로 상당히 활성화된 분위기다. 그중 걸그룹 르세라핌의 다큐멘터리 〈The World is My Oyster〉를 보며 리액션 영상을 제작한 미국 유튜버 ‘세바스틴(Sebastine)’의 영상이 눈에 띈다. 다큐멘터리 중 르세라핌의 한 멤버에 대해 해당 그룹을 제작한 회사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정말 요즘 Z 세대, 통통 튀고 똘똘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 정확하게 하고…”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세바스틴’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실소한다. 그러고는 “Z 세대는 슬픈 세대야. 우린 모두 슬픈 사람들이야”라고 뇌까린다. 한국과 미국 간에 이런 인식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위 한국 관계자의 변(辯)은,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 언론미디어에서 묘사하는 MZ 세대 또는 Z 세대의 전형(典型) 중 하나다. 또한 어느 시대나 볼 수 있는 신세대에 대한 기성세대 시각의 전형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대 개념을 말 그대로 ‘세대’로서 규정하고 구분하는 미국에선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위 프레시안 칼럼에도 이 부분이 설명돼 있다.
 
  〈미국에서 밀레니얼 세대와 Z 세대를 가르는 단일 사건으로 9·11 테러로 꼽을 수 있다. 대다수의 Z 세대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테러 사건을 너무 어린 나이에 경험해 기억이 뚜렷하지 않은 반면 유년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경제대침체를 겪고, 청소년기에 급증한 총기 난사 사건을 경험하며 자랐다. 학교에서 총격 사건 대비 훈련을 정기적으로 받은 첫 세대인 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17세 소년 트레이본 마틴과 18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죽었고, 전국에서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 아래 인종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또 Z 세대의 많은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고등학교나 대학교 졸업식을 제때에 치르지 못했다. 한 세대는 이런 공통 경험과 이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공유하기 때문에 앞선 세대와는 구분된다는 생각으로 묶인다.〉
 
 
  미국 Z 세대와 ‘캔슬 문화’
 
‘정치적 올바름(PC)’을 따지는 미국의 분위기 속에서 ‘흑인 인어공주’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이 같은 Z 세대의 특성은 이들이 즐기는 대중문화 콘텐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Z 세대가 대중문화를 왕성히 소비할 수 있게 된 2010년대 들어 미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는 어마어마한 수준의 PC(Political Correctness) 자기검열(自己檢閱)을 겪어야 했다. Z 세대에게 세상은 갈등으로 가득하고, 강자(强者)에 편향(偏向)돼 있으며, 그 탓에 기존 사회체제는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못한다고 믿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같은 갈등과 편향을 극복하려는 콘텐츠만 각종 소셜미디어(SNS) 공간을 통해 띄워 올리고, 그에 반(反)하는 콘텐츠라면 소위 ‘캔슬(cancel) 문화’를 통해 대대적 보이콧에 나선다.
 
  상황이 이러니 일단 영화와 TV드라마부터가 달라졌다. 성(性) 역할에 대한 편견을 깬다며 과거 남자 주인공들로 이뤄진 히트 영화 〈고스트버스터즈〉나 〈오션스 일레븐〉 〈화려한 사기꾼〉 등은 모두 주인공을 여자로 바꿔 리메이크됐다. 1963년부터 시작된 영국 BBC의 인기 드라마 〈닥터 후〉 역시 2018년 주인공이 갑자기 여자로 바뀌는 변화를 겪었다.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드라마라 큰 반응이 없었지만, 〈닥터 후〉와 함께 살아오다시피 한 영국인들 사이에선 파장이 크게 일었다. 영국 보수당 닉 플레처 하원의원까지 튀어나와 “모든 남성 캐릭터나 좋은 롤 모델은 이제 여성으로 교체되고 있다. 소년들의 롤 모델이 사라지고 있다”며 비판했다가 Z 세대들로부터 어마어마한 비난을 감내(堪耐)해야 했다.
 
  한편, 기존 오리지널 콘텐츠에서 주인공 인종을 바꿔 리메이크되는 경우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인어공주〉도 이제 주인공 아리엘이 흑인으로 바뀌어 공개될 예정이고, 곧 개봉할 〈피터팬&웬디〉에선 요정 팅커벨이 흑인으로 바뀌었다. 하도 이런 일들이 잦아지다 보니 이제는 이를 조롱하는 블랙워싱(blackwashing)이라는 용어도 따로 등장한 바 있다. 과거 대중문화 콘텐츠 속 비(非)백인 인종 캐릭터들까지 모두 백인 배우들을 분장시켜 연기시켜온 화이트워싱(whitewashing)에 대응하는 용어다.
 
  그리고 물론 콘텐츠의 이념적 입장에서도 좌경화(左傾化)가 한층 거세게 일고 있다. 할리우드의 좌경화 분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제는 우파적(右派的)인 입장이 드러나거나 단순히 우파를 지지하는 배우가 등장하기만 해도 바로 보이콧 분위기가 일어난다. 어찌 됐건 이 모두가 Z 세대의 특징적 면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상들이다.
 
 
  한국 세대 구분의 기준은 IMF 외환위기
 
  당장 여기까지만 봐도 한국의 Z 세대와는 전혀 딴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의 Z 세대는 605만 관객을 모은 2015년 영화 〈연평해전〉, 705만 관객을 동원한 2016년 영화 〈인천상륙작전〉 등 소위 우파적 콘텐츠에도 충분히 반응해왔다.
 
  이를 두고 좌파(左派) 언론미디어에서는 노년층 관객이 많이 들어서더라는 식으로 반응을 축소하려 애썼지만, 막상 극장 측 통계 등을 보면 다른 영화들과 관객 연령 분포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외에 많이 알려졌듯, 각종 공직선거의 투표 성향도 특히 20대 남성층 중심으로 보수정당 지지가 뚜렷하다.
 
  이런저런 유행어들도 마찬가지다. 근래에는 ‘누칼협’이라는 신조어(新造語)가 Z 세대 사이에서 인기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느냐”의 준말이다. 공무원 등 직종에 있는 이들이 각종 처우(處遇)에 불만을 품고 인터넷상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누가 너한테 공무원 되라고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느냐”는 식으로 내칠 때 쓰인다. 결국 스스로 선택한 길을 두고 왜 불평불만만 퍼부으며 신세 한탄(恨歎)이나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좀 거칠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파적 자기책임론(自己責任論)과 궤를 같이한다.
 
  이처럼 미국의 Z 세대와 한국의 그것은 전반적으로 전혀 다른 궤를 그리고 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Z 세대 명칭을 그대로 가져올 명분이 없는 셈이다. 세대 연령대만 가져다 쓰는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지만, 연령대 구분마저도 한국 실정과는 어긋나고 있다는 의견이 점차 늘고 있다. 미국에서 1981~1996년생을 밀레니얼 세대라며 하나로 묶고, 또 1997~2012년생을 다른 하나로 묶는다는 세대 분류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흐름과는 제대로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그로 인한 경제위기를 유·소년기에 겪은 세대로서 Z 세대를 규정한다면, 한국에서는 딱 그 10년 전인 1997년 IMF 외환(外換)위기를 유·소년기에 겪은 세대가 따로 분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미국 젊은 층이 겪은 사회·문화적 기억과 한국 젊은 층의 그것이 서로 판이하게 다르니 세대 특성은 물론 기본적인 연령대 구분마저도 같이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 그러니 소비하는 대중문화 콘텐츠 성격도 판이하게 다르고, 이들을 소비하는 연령층의 문제도 서로 차이를 보인다.
 
 
  韓美의 X 세대도 다르다
 
  돌아보면 MZ 세대만의 얘기도 아니다. 1990년대에 1970년대생 전반을 가리키던 ‘X 세대’라는 세대 개념도 이 같은 문제는 마찬가지였다.
 
  X 세대는 많이 알려진 대로 캐나다 작가 더글러스 코플랜드의 1991년 소설 〈X 세대〉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그런데 소설 내용이 예상과는 다르다. 20대 젊은이들 셋이 삶의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다가 캘리포니아 사막까지 가서 자신들을 옭아매던 각종 구속(拘束)들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X 세대 개념은 기성세대들과 달리 사회적 성공에 대한 야망이 완전히 휘발(揮發)되고 지극히 반(反)물질주의적이며 반소비주의적인 삶을 지향하는 젊은 층,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성과 가치에 냉소적인 입장을 취하는 젊은 층이 새롭게 등장한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한국의 X 세대는 이와는 사실상 정반대였다. 어느 언론미디어나 광고회사 등의 당시 기록들을 봐도 X 세대는 소비문화와 유행을 주도하는 신세대라는 설명만 나온다. 1990년대 초반 이른바 ‘압구정 오렌지족’ 상황과 맞물려 지극히 물질주의적이고 소비주의적인 청춘들을 묘사한 셈이다. 나머지는 시대 흐름에 따라 당연한 것들, 개방적 성(性)문화와 같은 사회·문화적 자유를 누리며 컴퓨터 등 새로운 전자기기에 능통하다는 식 설명들이 더 붙는다.
 
 
  염세적·비관적인 콘텐츠가 큰 인기
 
음모론적인 미국 드라마 〈X-파일〉은 염세적·비관적인 미국 X세대의 의식을 보여준다.
  이렇게 같은 X 세대라는 명칭을 두고 세대 특성이 정반대로 갈라진 건 사실 당연한 일이다. MZ 세대와 마찬가지로 용어가 탄생한 북미(北美)와 한국은 그간 흘러온 사회상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이를 꽤 심층적으로 다뤘던 《시사저널》 1993년 8월 19일 자 미국 통신원 기사 “X 세대는 이혼이 낳은 신세대”를 보자.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X 세대의 생각은 물질주의가 바탕을 이루고 있는 미국 사회에 던지는 도전이기도 하다. 그리고 X 세대를 보고 이기적이라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진짜로 이기적인 세대는 기성세대라고 항변하고 있다. 자기네 성취욕과 물질욕을 채우려고 자녀들을 방치한 것이야말로 부모의 의무를 저버린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급증하는 이혼으로 가정이 파괴되기 시작한 80년대의 조류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X 세대의 40% 이상이 이혼가정에서 자랐고, 이런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텅 빈 집을 혼자 지키는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가정이 흔들리기 시작한 변화기에 성장한 X 세대는 가정을 갖기 시작하면서 반사적으로 가정을 중요시하고, 삶에 대해 양보다 질을 택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Twenty Something》의 저자 클레어 레인즈는 지적하고 있다. 내팽개쳐졌다는 방기 심리와 고립감을 가진 X 세대의 내면 깊이 분노와 좌절과 무기력이 함께 뒤엉켜 있다는 것이 심리학자 로스 골드스타인의 진단이다.〉
 
  당연히 1990년대 한국은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앞선 대중문화 콘텐츠 흐름도 미국과 한국이 서로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199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는 상당히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콘텐츠 유행으로 넘어갔다. 대중음악에선 록밴드 너바나로 대변되는, 지극히 염세적(厭世的)인 그런지(grunge) 음악이 유행했고, 영화도 〈펄프 픽션〉처럼 냉소적이거나 〈세븐〉처럼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콘텐츠가 큰 인기를 누렸다. TV드라마는 미국 정부가 국민들에게 모든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SF 음모론 드라마 〈X-파일〉의 시대였다.
 
 
  한국의 X 세대는 n86 세대의 연장
 
  그런데 한국은 같은 시기 ‘고도성장의 열매를 따 먹는’ 시점으로 접어들어 있었다. 중산층이 형성되면서 그 10대 자녀들이 대중문화에 돈을 쓰는 이른바 ‘용돈시장’이 성립돼 현대적 아이돌의 시초라 불리는 서태지와 아이들 대히트로 거듭났다. 20대 사이에선 〈중경삼림〉 등 왕가위 감독의 영화나 〈상실의 시대〉 등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처럼 도회적(都會的)인 로맨티시즘 콘텐츠가 유행했다. TV드라마 역시 MBC 〈질투〉 등 가벼운 청춘 트렌디드라마의 전성기였다.
 
  물론 X 세대에 있어서도 똑같은 입장, 즉 연령대 구분만 가져왔을 뿐이라 항변(抗辯)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동일한 경향을 지닌다는 연령대 구분도 미국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점까지 Z 세대와 똑같다. 젊은 층의 극렬한 소비주의 분위기와 빠른 유행의 선도(先導) 등은 1980년대 초반 야간통행금지 해제 등 사회·문화적 자유가 주어지고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의 존재가 가시화(可視化)되면서 사실상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는 일종의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심화(深化)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연장선상에 불과한 1970년대생들을 왜 따로 구분해야 하느냐는 지적이다.
 
  결국 X 세대가 어느 정도 동의를 얻어 성립된 건 세상만사를 정치 중심으로만 바라보는 기성세대 시각이 반영된 결과라는 의견도 나온다. 1987년의 대규모 학생시위와 그를 통한 대통령 직선제 선언을 하나의 세대 기점으로 삼고 이어진 1990년대 대학생들의 정치 무관심 분위기를 또 다른 기점으로 삼다 보니 X 세대 개념도 그럴싸하게 먹혀들어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다른 경제·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X 세대라 불리는 이들도 엄밀히 n86 세대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라는 반론이 수없이 제기된다. 쉽게, X 세대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세대 소동(騷動)’은 근본적으로 뭐든 해외 선진국에서 등장한 개념이라면 바로 직수입해 적용하길 선호하는 한국 대중의 유난한 국제주의 취향과 관련이 깊다는 해석이다. 또 단순히 ‘요즘 젊은이들’이라는 식으로 뭉뚱그리는 것보다 그때그때 세대 명칭을 따로 부여하며 다루는 쪽이 늘 새로운 현상을 좇아 주장함으로써 화제를 모으고 상업성을 유지하려 하는 언론미디어 생리(生理)와 맞아떨어진 구석도 엿보인다. 그것이 한국의 실정과 맞든 안 맞든 상관없이 말이다.
 
  이 같은 ‘세대 소동’은 옆 나라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비판의 소지가 더 커진다. 일본에도 젊은 층을 분류하는 세대 개념과 명칭은 존재한다. 그런데 한국처럼 미국 것을 그대로 가져온 개념들은 거의 쓰이질 않고, 주로 자신들이 실제 겪어온 바를 토대로 성립된 세대 개념을 사용한다. 1차 베이비붐 세대이자 1960년대 일본 좌익학생운동을 이끌던 단카이(團塊) 세대, 일본 경제 전성기인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에 청년기를 보낸 신인류(新人類) 세대, 일명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이라고도 불리는, 버블경제가 붕괴한 1991년 이후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한 빙하기(氷河期) 세대, 그리고 삶에 있어 도전을 회피(回避)하고 최소한의 욕망만을 충족시키며 살아가려 하는 2010년대의 소극적인 청춘, 사토리(悟り) 세대 등이다.
 
 
  세대 변천 보여주는 바바 야스오의 영화
 
〈그녀가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면〉 등 1980~1990년대 바바 야스오의 청춘영화들은 버블 세대 일본 젊은이들의 의식을 보여준다.
  이 같은 일본의 세대 구분은 일본의 대중문화 콘텐츠 흐름과도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대표적으로 만화가 출신 영화감독 바바 야스오의 영화 흐름을 들 수 있다. 바바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버블경제 시기에 〈나를 스키장에 데려가 줘〉 〈그녀가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면〉 〈파도의 수만큼 안아줘〉 등의 청춘영화로 큰 인기를 누렸다. 당시 신인류 세대의 소비 향락 문화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제목 그대로 일련의 젊은이들이 스키장과 해변으로 놀러 가고,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마냥 즐기는 내용들이다.
 
  그랬던 바바는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또 다른 청춘상을 제시한다. 1999년 작 〈메신저〉는 잘나가던 빙하기 세대 직장인이 회사가 도산하면서 빈털터리가 되자 자전거 퀵서비스 배달직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그러다 2007년의 〈버블로 GO! 타임머신은 드럼방식〉에 이르면 과거 신인류 세대의 한탄(恨歎)을 담아내기까지 한다. 2007년의 일본은 살기 어렵고 모두들 불행해졌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개발, 버블경제 시대로 돌아가 버블 붕괴를 막아내고 다시 일본을 부강(富强)한 나라로 되돌려놓는다는 내용이다. 엉뚱하지만, 그만큼 절박(切迫)함도 엿보인다. 이처럼 대중문화 콘텐츠 흐름과 세대 구분은 서로 ‘맞아떨어져야’ 정상이다.
 
 
  청년 정책들이 불발하는 이유
 
  어찌 됐건 한국의 저 수많은 ‘세대 소동’들은 사실 단 한 가지 원인점을 가리킨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그간 새롭게 등장한 젊은 층의 면면 자체에 진지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정치적 진영논리 차원에서건 단순 상업적 목적 차원에서건, 자신들 이익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의 득실만 따지고 있었다고까지 볼 수 있다.
 
  그렇게 수많은 신세대가 마치 괴물 같은 모습으로 온갖 미디어를 유령처럼 부유(浮遊)하는 사이, 실제 젊은 층의 본모습은 인터넷 공간 구석구석으로 숨어버린 지 오래다. 늘 그런 식이니 젊은 층을 겨냥한 각종 정책도 불발률(不發率)이 높아지고, 저출산 등 청년 문제는 심화되기만 한다. 언급했듯, 당장 지금 이들이 열광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대중문화 콘텐츠부터 다시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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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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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ㅇ    (2023-02-02) 찬성 : 0   반대 : 0
재벌집과 우영우를 포함해서 한국 드라마 자체가 아줌마들과 할배들만 보는건데 대체 왜 노인들은 그런걸 젊은세대가 본다고 우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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