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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⑫ 땅 이야기- 디아스포라와 어머니, 황토방

“앉을방아에서 찧어 먹던 호밀, 보리 다 어디로 갔습니까?”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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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기미가요’에 드러난 침략의 노래… 돌멩이·모래가 바위·이끼 꿈꿔
⊙ 韓 ‘정석가’ ‘서경별곡’… 부정·죽음 앞세운 희망·생명 꿈꿔
⊙ “우리처럼 당하고 찢기고 힘든 고개를 넘어가면서 선진국 된 나라, 없어요”
⊙ “고향서 내쫓긴 우리가 남의 가슴 못 안 박고 살아 이렇게 사는 겁니다”
⊙ “끝없는 생명 만드는 게 흙, 죽은 생명이 흙을 통해 再生”

李御寧(1933~2022)
서울대 국문학과·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 경기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논설위원,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에서 열린 ‘이어령 예술극장’ 현판 제막식에 참석한 김대진 총장(왼쪽부터), 이어령 전 장관의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 아들 이승무 한예종 영상원 교수. 사진=조선DB
  # ‘기미가요’, 비과학적인 상상에 의한 침략의 노래
 
  남의 나라, 특히 우리와 가까운 일본의 국가(國歌)와 우리 국가를 한 번 비교해 봅시다.
 
  일본에서도 ‘기미가요’(일본어: 君が代 きみがよ·군주의 치세)를 막 부르지 못합니다.
 
  “19세기에 ‘기미가요’를 불러가면서 아시아를 침략했으니 부르지 말자, 일장기를 걸지 말자!”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에서 그렇게 요구하는 게 아니라 일본 내부에서 나오는 목소리예요. 사실 ‘기미가요’라는 건 일본의 고전 단가 모음집인 《만엽집》에 나오는 그냥 사랑 노래인데 그걸 천황을 받드는 노래로 만든 거예요. ‘기미(君/きみ)’라는 건 그냥 사랑하는 그대를 얘기하는 건데 거기에 천황을 빗댄 거죠.
 
  君が代は 님의 치세는
  千代に八千代に 1000대에 8000대에
  細石の 작은 조약돌이
  巖となりて 큰 바위가 되어
  苔の生すまで 이끼가 낄 때까지

 
 
  사랑의 노래가 침략의 노래로
 
  님이 다스리는 이 치세가, 또는 님이 살고 있는 이 시대가 한 대(代)만 돼서는 안 된다, 1000대 아니 8000대까지 가라(千代に 八千代に)는 영원히 이어지라는 말이죠.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과 같아요.
 
  1000년, 8000년이 길고 지겹다고요? 그런데 그다음 가사는 더 기가 막힙니다. ‘흙도 아니고 돌멩이가 바위가 될 때까지’ ‘다시 그 바위에 이끼가 끼도록 영원하옵소서’라고 노래합니다.
 
  이게 과학적으로 맞는 얘기예요? 돌이 바위가 될 수 있나요? 모래가 어떻게 바위가 되며, 설사 된다 한 들 모래가 바위가 된 것만도 끔찍한데 그 바위에 이끼가 끼는 것까지 상상을 합니까. 비과학적이죠. 우리하고는 달라요. 우리는 산이 닳아 모래가 되어 없어지는데, 일본은 돌멩이를 바위로 만들어서 그때까지 영원하자고 하니까 똑같은 영원이지만 우리처럼 부정적인 것을 전제로 한 영원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을 영원으로 했어요. 바로 침략(侵略)의 노래인 것이죠. 작디작은 모래가 바위가 된다고 생각했으니 한국을 먹고 중국을 쳐들어가고, 작은 일본이 점점 크게 확장되는 거예요.
 

  얼마 전만 해도 우리가 일본과 얼마나 가깝게 지냈어요. 그런데 자꾸 헌법을 뜯어고치겠다,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 참배를 간다고 하니까, 우리가 이렇게 말하며 일본을 경계하는 겁니다.
 
  “아이고, 얘들 또 돌멩이, 모래가 바위 되려고 하는구나. 그렇게 되면 우리가 억울하게 되겠구나.”
 
  지금 우리 살기도 바쁜데 왜 반일(反日)의 기치를 들겠어요? 2011년 쓰나미 왔을 때도 우리가 일본을 도와줬잖아요. “힘내라” 하면서 아이들이 저금통 깨서 성금 모아 보내고 했잖아요. 글쎄 이런 좋은 이웃으로, 그냥 모래로 살지 그걸 바위로 만들겠다고 야단들이에요, 지금.
 
 
  # 부정 앞세운 희망·생명 노래한 한국인
 
《악장가사》 등에 실린 고려가요 ‘정석가(鄭石歌)’.
  우리 ‘애국가’ 가사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라는 부정적 영원의 이미지가 어느 날 갑자기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고려 때부터 똑같은 발상의 노래가 있어요.
 
  조선 초기에 구전(口傳)되던 고려가요들을 모아 한글로 기록한 책 《악장가사(樂章歌詞)》 《악학궤범(樂學軌範)》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등에 실린 고려가요 ‘정석가(鄭石歌)’ 가사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삭삭기 셰몰애 별헤
  구은 밤 닷 되를 심고이다.
  그 바미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
  유덕(有德)신 님을 여ㅣ와지이다.’

 
  (사각사각 가는 모래 벼랑에/ 구운 밤 닷 되를 심습니다// 그 밤이 움이 돋아 싹이 돋아나야만/ 유덕하신 임을 이별하고 싶습니다.)
 
  아주 가느다란 모래가 있는 벼랑에, 그냥 밤도 아니고 구운 밤 다섯 되를 심어 놓고, 그 밤이 움이 돋아 싹이 나면 님과 이별하겠다는 말이니까, 절대 헤어지지 않겠단 이야기지요. 흙이 아닌 모래, 그것도 벼랑에 있는 모래니까 습기가 하나도 없어요. 제대로 된 씨를 심어도 싹이 트지 못할 그곳에 구운 밤을 갖다 심는다는 건 부정적인 가정(假定)이죠. 같은 영원을 가정하는 말이라도 같은 노래에 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므쇠로 한쇼를 디여다가
  슈산(鐵樹山)에 노호이다.
  그쇠 초(鐵草)를 머거아
  유덕(有德)신 님을 여ㅣ와지이다.’

 
  (무쇠로 큰 소를 만들어다가/ 쇠로 된 나무가 있는 산에 놓습니다// 그 소가 쇠로 된 풀을 먹어야/ 유덕하신 임을 이별하고 싶습니다.)
 
  철로 된 나무가 있는 산에 무쇠로 만든 큰 소를 놓아서, 그 소가 철로 된 풀을 먹을 때까지 영원하자는 겁니다. 옛날부터 그랬어요. 이 ‘정석가’와 ‘서경별곡’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는 후렴구가 ‘구스리 바회예 디신 긴힌 그츠리잇가’인데, 풀이하자면 이렇습니다.
 
  ‘구슬이 바위에 떨어져서 깨어질 수는 있어도, 그 구슬을 엮어 놓은 끈이야 끊어질 리가 있겠습니까.’
 
  이게 우리나라의 부정을 앞세운, 죽음을 앞세운 희망과 생명이에요.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은 끝없이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그다지 욕심을 부리지 않았어요. 현실은 항상 죽음을 전제로 한 행복이고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뿐 그렇게 욕심이 큰 민족이 아니었던 거죠.
 
 
  #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이만큼 사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
 
  그래서 지금도 난 늘 이야기를 해요. 한국 사람이 자랑할 것이 별로 없다고요. 세계적으로 지금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들이 얼마나 많아요. 국민소득으로 따져도 잘 해봐야 우리는 세계 10위에서 13위를 왔다 갔다 하니까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들이 10개 나라도 넘는 거예요. 그 나라들보다 우리가 못살고, 노벨평화상 하나를 빼고는 학술 분야에서 노벨상을 탄 사람도 없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남의 민족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고 그 가슴에 못질한 적도 없어요. 남을 침해하지 않은 민족 가운데 우리만큼 사는 민족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정말이에요.
 
  프랑스 개선문(凱旋門), 그거 아프리카에서 콩고니 뭐니 다 식민지로 만들고서는 자랑스럽다고 만든 문이잖아요.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에 이웃 국가들을 모두 침탈하고 심지어 대만까지 먹었어요. 그 이웃들이 흘린 눈물이 얼마겠어요. 그러니까 지금 G7, G10 국가에 들어 있는 나라들은 전부 남의 가슴에 못질하고, 거기서 빼앗은 재산으로 지금 선진국 소리를 듣지, 우리처럼 당하고 찢기고 힘든 고개를 넘어가면서 어렵게, 어렵게 살면서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어요.
 
  우리 지금 어때요? 한국에 스마트폰 안 든 사람이 있어요? 심지어 초등학교 아이들도 그걸 들고 다니니까 으레 그런가 보다 하지만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외국에서는 아직도 와이파이를 아이들이 쓰는 경우가 없어요. 이웃 일본만 해도 광케이블이 아니라 ISDN이 일반적이에요. 우리는 집집마다 광케이블이 안 들어가는 곳이 없는데….
 
 
  지금이 좋은 세상 맞아요?
 
  내가 지금 우리나라를 칭찬하고 자랑하자고 꺼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앞으로 가기 위해 뒤를 돌아볼 때 정말 광복 후 70여 년 동안 여기까지 우리가 제대로 왔느냐를 묻는 거지요. “우리가 하는 자랑이 진짜 자랑일까?” 이걸 묻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이만큼 살게 되었어요. 나이 많은 분들은 흔히 그러시죠. “아이고 좋은 세상 됐다, 우리 옛날 연탄불 피울 때는 말이지 가스 때문에 사람도 죽고 그랬어.” 그러곤 자식들 향해 “얘야, 좋은 세상 왔다”고요. 그러는데 정말 좋은 세상이 왔어요? 지금이 좋은 세상 맞아요?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가 어떻게 지냈느냐 하는 건 자랑스러운 것이죠. 하지만 앞으로 70년을 다시 또 나아가려면 이대로는 안 돼요.
 
  고향서 내쫓긴 사람들이 그래도 남의 눈에 피눈물 안 나게, 남의 가슴에 못 안 박고 올바르게 살았기에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우리만큼, 아니 우리보다 더 잘사는 다른 사람들, 다른 민족들은 다 전과자들이에요. 어디 가서 이야기하면 바로 “너희 몇 년에, 몇 세기 때 우리에게 와서 착취했던 나쁜 사람들이야”라고 지탄받지만 우리는 그런 게 없잖아요.
 
  1960년대 월남전 당시 파병 가서 좀 나쁜 짓을 하긴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한 게 아니죠. 우린 그때 워낙 못사니까, 돈을 받고 파병을 간 거예요. 사실은 눈물겨운 거지, 우리가 남을 침략한 게 아닙니다. 그래도 어쨌든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서 남이 눈물 흘릴 일을 만든 건 월남전 정도고 그걸 제외하면 우리는 남에게 못할 짓 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역사가 없습니다. 이런 민족이 드물어요.
 
  남의 나라 침공해서 지배했던 사람들은 지금 다들 민족이 해체되고 없어졌어요. 중국의 55개 소수 민족 중 자기 조국을 가지고 있는, 자기 민족만의 독립된 국가를 가지고 있는 민족은 몽골족과 조선족밖에 없어요. 이건 대단한 거죠.
 
 
  #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것도 좋은 것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은 193개국 732만5143명(2021년 기준)에 이른다. 지금은 한국이 살 만해서 이민이 줄고 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희랍어입니다. ‘디아(dia)’는 방향을 뜻하는 겁니다. 사방(四方)을 말하죠. 그리고 ‘스포라(spora)’는 씨앗, 즉 씨앗을 뿌리는 것을 말해요. 우리가 씨를 뿌릴 때 한군데에 모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사방에 넓게 뿌리지요.
 
  우리 민족도 그래요. 사방으로 도망갔지요. 지금 저 러시아부터 시작해 미국, 유럽 온갖 곳에 한국 사람 안 간 곳이 없어요. 아프리카 오지에 가도 뻥튀기와 번데기를 파는 한국 사람이 있다잖아요. 독일에 광부, 간호사로 가서 정착한 한국 사람도 있고, 열을 가하지 않아도 달걀이 그냥 익어버린다는 그 열사(熱沙)의 땅 중동 지역에도 한국인들이 진출해 있죠. 우스개로, 냉탕 온탕에 다 있는 거예요. 저 시베리아의 냉탕부터 중동의 온탕까지 그곳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었어요. 한국인의 디아스포라지요. 전 세계에 한국인의 씨앗을 뿌린 겁니다.
 
  지금 한국 인구가 5000만이 넘는데,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은 193개국 732만5143명(2021년 기준)이에요. 이 통계를 보면 동북아시아부터 아프리카까지 모든 곳에 다 가 있죠. 지금은 한국도 살 만하게 되었으니까 이민을 별로 안 나가지만요. 내가 가끔 농담 겸 하는 이야기로, 정치를 못해도 그것이 한국 사람에게 득이 될 때가 있다고 해요. 정치를 잘 해서 살기 좋으면 이민 갔겠어요?
 
  어렸을 때 민들레 홀씨가 하얗게 피어나면, 그 하얀 솜털 봉오리를 꺾어 들고 입김을 세게 불어 하늘로 날려 보낸 기억이 있을 겁니다. 누구라도 그 하얀 솜털 봉오리를 보면 불어 날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돼요. 어린아이의 장난이라고 해도 그건 생태계에 도움을 준 거예요. 하나의 식물이 가까이에 뭉쳐 있으면 해로워요. 어떤 이유로 그 지역의 생태계가 위협받으면 전체가 몰살되는 위험이 있잖아요. 그 식물에 위험한 돌림병이 돌면 그 돌림병이 퍼져 한 종(種)이 사라질 수 있어요. 그래서 멀리 퍼져나가기 위해 민들레는 하얀 깃털을 달았고, 단풍나무 씨앗이나 소나무 씨앗은 프로펠러를 닮은 외날개를 달고 있어요. 모체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질 수 있도록 말이죠.
 
韓民族 디아스포라는…
 
  한민족 분산의 역사는 크게 네 시기로 구분된다. 첫 번째 시기는 1860년대부터 1910년까지로 이 시기에는 구한말의 농민, 노동자들이 기근, 빈곤, 압정을 피해 국경을 넘어 중국, 러시아, 하와이로 이주했다.
 
  두 번째 시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다.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궁핍에 내몰린 우리 민족은 1920년대에 접어들어 자신이 경작하던 땅을 빼앗기자 어쩔 수 없이 이농민이 되어 만주를 비롯한 해외로 이주했다. 1910~1918년에 걸쳐 진행된 식민지 정부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선 농민의 소작화가 이루어지고 일본인 지주와 동양척식회사 등이 조선 농민을 체계적으로 착취하자 궁핍해진 농민들은 만주로 이주했던 것이다.
 
  게다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왕도락토(王道樂土)’ ‘오족협화(協和)’ ‘일본의 생명선’이라는 선전 문구 아래 식민지 건설의 환상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중국 동북 지역을 대륙 침략의 병참기지와 식량기지로 활용하고자 했던 일본은 1년에 1만 호씩 만주로 이주시킨다는 계획 아래 조선인들을 집단으로 이주시켜 집단농장을 형성하게 하여 식량 증산을 꾀했다.
 
  일본은 만선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해 한인이민 사업을 담당하게 하고 1939년부터 해마다 조선에서 1만 호를 이주시키기로 계획했다. 그리하여 만선척식주식회사에 의해 이주한 한인 농가는 1939년 말 당시 1만3977호, 인구수는 6만5065명이었다. 이후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주 추이는 줄었으나, 약 26만 명의 한인이 이 시기 조선총독부와 관동군이 협력해 강행한 국책이민 형태로 만주에 이주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요컨대 오늘날 대부분의 조선족 인구가 일제 식민지 통치기간에 이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세 번째 시기는 1945년부터 1962년까지로 이 시기에는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발생한 전쟁고아, 미군과 결혼한 여성, 혼혈아, 학생 등이 입양, 가족 개혁, 유학 등의 목적으로 미국 또는 캐나다로 이주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시기는 1962년부터 현재까지로 이때부터는 정착을 목적으로 한 이민이 이루어졌다.
 
  (장유정의 〈20세기 전반기 한국 대중가요와 디아스포라〉, 윤인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중에서 인용)
 
  워털루 전쟁과 로스차일드 가문 이야기
 
유대인은 나라 없이 떠돌았던 오랜 디아스포라를 겪으며 가난한 동족의 생존을 보살피기 위해 유대 회당에 모금함을 두고 모으는 구호 기금 ‘쿠파’와 이방인을 돕기 위한 ‘탐후이’ 등 다양한 자선의 방식을 만들어냈다. 오늘날에도 미국 인구의 2%인 유대인은 매년 발표되는 50대 기부자 명단의 평균 30% 이상을 차지한다. 프란스 프랑켄 더 영거의 그림 〈7가지 자비로운 행동〉(1605), 베를린 독일역사박물관 소장. 그림=조선DB
  전 세계로 가장 많이 흩어져 있으면서도 불행하지 않고, 노벨상을 가장 많이 탄 민족이 유대민족입니다. 디아스포라가 이 유대인에게서 나온 말이에요.
 
  진위(眞僞)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 워털루 전쟁과 로스차일드 가문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유럽에도 국채(國債)와 주식을 거래하는 시장이 있었는데, 전쟁의 승패에 따라 각 나라의 국채 가격은 오르락내리락했겠죠.
 
  전쟁의 승패에 대한 정보를 남들보다 하루만 빨리 알아도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어요. 그것을 가장 많이 알고 있던 이가 각국 정부나 군대가 아닌 딱 로스차일드 가문(Rothschild Family)의 네이선 로스차일드(Nathan Mayer Rothschild·1777~1836)였다고 해요. 당시엔 전화나 전보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어 있지 않으니 전서구(傳書鳩)를 띄워서 정보를 주고받았는데, 로스차일드 가문은 널리 퍼져 있어서 가문끼리 오가는 비둘기가 있었던 거죠. 패밀리 네트워크예요.
 
  워털루 전투의 승패가 결정되던 날은 폭우가 내렸는데 그 비를 뚫고 로스차일드 가문의 전서구가 도착했고, 영국의 승리를 알게 된 로스차일드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국의 국채를 팔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동요하는 거예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가문 사람들끼리의 패밀리 네트워크 덕분에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로스차일드가 영국 국채를 팔기 시작했다? 게다가 로스차일드가 누구예요. 금융업계의 왕과 같은 사람이잖아요. 사람들이 다들 “아이고, 영국이 졌구나!” 생각하면서 가지고 있던 영국 국채를 죄다 내다 팔았어요.
 
  그러자 로스차일드는 사람들이 투매(投賣)해서 가격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국채를 남몰래 싹 사들여 엄청난 이익을 취했어요. 이때 로스차일드가 번 돈이 현재 가치로 6억 파운드가 넘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이 로스차일드가 유대인이에요.
 
 
  흩어져 이 녀석들아. 하나씩 흩어져
 
디아스포라의 모습이다. 월남전 당시 베트남 ‘보트 피플’. 사진=조선DB
  다섯의 아들을 둔 어떤 사람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개의 화살을 끈으로 묶어놓고 아들들을 불러 모았어요. 그런 후 화살을 각자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며 “화살을 부러뜨려 봐”라고 하니 아들들은 손쉽게 화살을 부러뜨렸겠죠? “두 개 부러뜨려 봐” “세 개 부러뜨려 봐” 하니 아들들은 벌써 알고 있었어요. 그런 옛날이야기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속으로 ‘아이고 아버지, 그거 다 아는 얘기예요’라고 생각하며 세 개, 네 개까지 하는데, 다섯 개까지는 못 부러뜨리는 거예요. 그래서 아들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알았어요, 아버지! 오 형제 단합하고 뭉쳐서 잘 살겠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대뜸 “야 이 바보들아, 바보들아!” 합니다. 아버지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던 거죠.
 
  “너희 힘이니까 못 꺾지. 더 힘센 사람이 오면 다섯 개도 쉽게 꺾어. 뭉치면 죽는 거야. 흩어져! 이 녀석들아. 하나씩 흩어져! 하나는 독일에 가고 하나는 프랑스에 가면 독일과 프랑스가 싸워 어느 한쪽이 그 나라의 패망과 함께 사라져도 하나는 살아남잖아. 두 개 다 부러뜨릴 수는 없어. 전 세계로 흩어져. 그래서 그중의 어느 하나만이라도 살아남으면 우리가 다 사는 거야.”
 
  여태까지 우리는 뭉쳐야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했지만,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 게 맞는 말이에요. 디아스포라가 얼핏 보기에 불행해 보이더라도 유대인들이 세계 각국에 퍼졌기 때문에 노벨상도 각 나라의 여러 환경 속에서 탈 수 있게 됐던 거예요. 이스라엘 본국에 사는 유대인 중에서는 노벨상을 탄 사람이 별로 없어요. 남의 나라로 디아스포라 되어서 그 결과로 《안네의 일기》 같은 슬픈 글을 쓰게 되기도 했지만, 하느님이 전 세계로 파종을 하신 겁니다.
 
 
  디아스포라, 한국의 얼과 마음을 전 세계에 뿌려
 
독일 파독광부와 간호사야말로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대표적인 사례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1964년 12월 10일 서독을 방문해 파독광부와 간호사를 만나기 위해 본에서 1시간 거리의 함보른 광산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한국 사람이 지금까지 고통스럽게 살면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프리카 오지에 간 게 한국인을 파종한 거예요.
 
  “너희는 견딜 수 있어. 아프리카는 물론 그 어떤 곳에 가서도 견딜 수 있어. 그러니 한국의 얼과 마음을 전 세계에 뿌려!”
 
  이렇게 하느님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지만 디아스포라는 가슴 아픈 거예요. 그러나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더구나 요즘과 같은 글로벌한 세계에서 메르스, 코로나19 같은 무서운 병이 한국에 들어와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모두 죽는다고 해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우리 동포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곳은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지 않을 테니 살아남아요. 자식을 낳아서 한집에 오글오글 모여 사는 사람들은 ‘모’ 아니면 ‘도’예요. 그러나 흩어져 있으면 절대로 안 죽습니다. 이게 국제고 글로벌 사회예요. 그러니까 내 민족, 내 나라를 사랑하는 애족, 애국심을 가진 채로 전 세계로 흩어져 사는 것이 사실은 좋은 거예요. 우리나라에도 좋은 거고.
 
  IMF 때 해외에 있는 동포들이 우리나라로 금을 보내줬던 것도, 해외에 나갔기 때문에 금융위기에 타격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 국내의 동포를 도와준 거잖아요.
 
  롯데그룹을 보세요. 일본에서 시작된 회사가 한국으로 들어와서 아주 큰 기업이 되었지요. 일본에서 롯데를 처음 시작한 창업주도 한국에서 살지 못할 이유가 있어 일본으로 간 거지 처음부터 웅대한 포부와 모험심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갔겠어요? 지금 해외에서 살고 있는 우리 이민 1세대들은 다들 한국에서 탄압받고 땅을 빼앗기고 어떤 이유에서든 내 나라 내 땅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간 분들이지요.
 
  하지만 어때요? 그렇게 해외로 간 분들, 다들 그 나라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계세요. 그러니까 내가 이야기한 장소애(愛), 즉 ‘토포필리아(topophilia·장소를 뜻하는 topos와 사랑을 의미하는 philia의 합성어)’대로 여러분이 이 한국 땅, ‘붉은 산’을 벗어나면 죽는 줄 알면 이 이야기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어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우리가 그 붉은 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은 황토방으로 갑니다. 흙은 변하지 않지만 바람은 움직여요. 이 땅은 그대로인데 한국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많이 바뀌었어요.
 
 
  # 《80초 메시지 생각 나누기》- 어머니의 발
 
이어령 선생이 쓴 《이어령 80초 생각 나누기》
  내가 《이어령 80초 생각 나누기》(2014)라는 책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얼굴은 좀 험악하게 생겼지만 공부는 잘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취직시험을 보면 지필시험이나 서류 심사에는 늘 통과를 하는데 면접만 보면 떨어지는 거예요. 떨어지고 떨어지고, 마지막이다 생각했던 회사에서 또 떨어졌어요. 그러자 이 사람이 그 회사의 사장을 붙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사장님, 회장님. 제게 홀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십니다. 제가 시험에 또 떨어지면 저희 어머니가 죽습니다. 제발 좀 제 사정을 봐서 따로 면접을 봐주세요.”
 
  애원을 하자 그 사장이 그 구직자의 얼굴을 가만히 보더니 말합니다.
 
  “혼자 사는 노모가 계셔?”
 
  “네, 예전에 청상과부가 되셔서 저 하나를 보고 여태 키우셨는데, 제가 이제 어머니를 봉양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 그러면 오늘 가서 어머니의 발을 씻겨드리고 오게. 그러면 내일 자네에게 다시 면접 기회를 주겠네.”
 
  이 젊은 구직자가 그 말을 듣고 집에 돌아가니 어머님이 이렇게 말해요.
 
  “너, 취직은 됐냐.”
 
  “아니요, 그런데 희망이 하나 생겼어요.”
 
  “뭔데?”
 
  “어머니 발을 씻겨 오면, 내일 재면접을 보게 해 주겠대요. 사장님하고 단둘이서 따로 또 한 번 면접을 보게 해 주겠대요.”
 
 
  이게 어머니의 사랑이었구나
 
  그러자 어머니는 반색하며 말합니다.
 
  “얘, 그거 어렵지 않다. 대야 갖다 놓고 얼른 씻겨라. 취직만 된다면 씻겨라.”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요즘 아이들 말로 변태라고 해도 할 말이 없지요. 무슨 발을 씻기라고 합니까? 그래도 그 모자는 절박하니까 사장이 시킨 대로 해요. 한데 어머니가 씻겨달라고 양말 벗고 내놓은 발을 보는데 아들은 기가 막히는 거예요. 그 발이 사람 발이 아니에요. 청상과부가 되어 어린 아들을 키우느라고 어머니가 그 발로 평생 얼마나 걸어 다녔겠어요. 땅을 얼마나 디디고 다녔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새끼발톱은 무지러져 까맣게 죽었고, 발등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었어요. 아들도 어머니가 고생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발을 자기 손으로 잡아보니 눈물이 그냥 쏟아져요.
 
  ‘이게 사람의 발이냐.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몇천 리를 걸으셨냐. 이게 어머니의 사랑이구나.’
 

  어머니의 발을 씻겨준 아들은 그다음 날 그 회사로 다시 찾아갑니다. 구직자를 기다리고 있던 사장이 물어요.
 
  “어머니의 발을 씻겨드렸나?”
 
  그러자 아들이 대답을 합니다.
 
  “네. 사장님께서 제게 어머니를 찾아주셨습니다. 저는 말로만 어머니를 사랑했지, 어머니의 발을 씻겨드리면서 비로소 어머니가 나에게 어떤 어머니인가를 알았습니다. 정말 좋은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저 취직 안 해도 됩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으니 이만 가겠습니다.”
 
  사장이 등을 돌린 그 구직자를 붙잡습니다.
 
  “여보게 이리 와, 자네 지금 면접 합격했네. 내일부터 와서 일하게.”
 
  이 이야기를 《80초 메시지 생각 나누기》에 썼더니 어떤 사람이 와서 저한테 그래요.
 
  “이 선생, 역시 당신 옛날 사람이오. 요즘 그런 발을 가진 어머니 없어. 그러니 그런 걸로는 면접 통과 못 하고 취직 못 해.”
 
 
  # 흙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찾아가는 곳-황토방
 
서울의 어느 황토 찜질방 모습이다.
  도시를 보세요. 황폐한 붉은 산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흙과 함께 지내면서 흙에서 기운을 받아 살아왔는데, 지금 도시를 보면 그 흙 위로 모두 아스팔트가 깔려 있어요.
 
  아스팔트 아니면 돌이거나 돌 아니면 시멘트! 도심의 사무실만이 아니라 개인이 사는 집에도 여기저기 놓인 화분의 흙을 제외하면 흙이 없어요. 요즘은 다들 아파트에 사니까. 그러니 우리 자신들은 모르고 가는 것이기는 해도, 사람들이 흙을 찾아 황토방으로 가는 거예요.
 
  황토방에서 입는 옷은 황토색 옷이에요. 그 황토방에서 일괄 대여해주죠. 왜 하필 황토색 옷을 대여해줄까? 붉은 황토 산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니까 황토색 옷을 찜질복으로 대여해주죠. 거기에 가면 흙을 볼 수 있어요. 속까지 시커먼 흙구덩이….
 
  황토방에 가면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이 남녀노소 사이에 구별이 사라진다는 점이에요. 흙은 모든 것을 공평하게 끌어안죠. 그래서 흙 앞에 가면 다들 편안해집니다. 우리나라가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고 해서 그렇게 남녀를 구분하고 내외하는데도 시골에 가서 멍석만 펴 놓으면 그 자리의 주인이고 지나가던 나그네고 뭐고 그냥 전부 와서 앉고 드러누워 낮잠 자고 하늘 보고 그랬거든요. 옆에 누가 있든 말든.
 
 
  흙바닥에 멍석 깔아놓으면…
 
2022년 9월 서울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에는 지난 2월 타계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이름을 딴 ‘이어령 예술극장’이 들어섰다.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얘기가 있어요. 6·25사변이 났을 때, 피란민 중 한 사람이 어느 집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잠을 청하는데 웬 청년 하나가 옆에 와서 자더래요. 그런가 보다 하고 밤새 잘 자고 일어나 아침에 보니 같이 잠을 잔 청년이 북에서 내려온 인민군이었답니다. 무서운 적군(敵軍)이었던 거죠. 피란민들은 그 인민군을 피해 도망가던 중이었잖아요. 적으로 대치해 서로 죽고 죽이던 사이도 시골 흙바닥에 멍석을 깔아놓으면 옆에 와서 자고 가요. 그것에 관해 누구도 말하지 않아요. 이게 우리의 흙이에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그 흙! 바람은 그 흙을 어떻게 했어요?
 
  끝없는 생명을 만드는 게 흙이에요. 흙에서 생명이 자라기도 하지만 죽은 생명이 흙을 통해 또 다른 생명으로 재생되기도 하죠. 자연계 순환의 고리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흙입니다. 흙에서 자란 식물을 먹고 생활하던 동물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서 다시 다른 생명을 위한 거름이 됩니다.
 
  흙이 없으면 그 재생의 고리도 끊어져요. 그 중요한 흙을 오늘날 우리는 아스팔트로 시멘트로 덮어버립니다. 아스팔트와 시멘트 아래의 흙은 생산을 하지 못하니 죽은 흙과 마찬가지입니다. 고속도로가 생기면 그 고속도로의 길이와 너비만큼 흙이 생산할 수 있는 풀, 나무, 잡초, 곡식… 이런 생명이 줄어드는 겁니다.
 
 
  흙이 죽어가고 있다
 
강원도 정선군 남면 역밭 주민이 디딜방아로 곡식을 찧고 있다. 사진=조선DB
  지금 그 흙이 죽어가고 있어요. 도시란 흙을 죽이는 문명입니다. 농촌을 죽여서 도시가 만들어지면 그 농촌에서 살던 사람들이 도시로 서울로 이농(離農)해 출세하고, 그 출세를 부러워하는 이 문화가 우리의 번영을 가져온 도시 문화예요. 스스로 흙을 파서 우리가 먹을 양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공산품을 만들어 수출해 돈을 벌어 외국의 밀가루를 사 와서 연명하고 있지요, 지금 우리가…. 대량 생산에 적합하게 유전자 변형을 한 그 밀가루를요.
 
  우리가 옛날에 앉을방아에 찧어 먹던 호밀, 보리 다 어디로 갔습니까?
 
  그러니까 무역을 해서 이만큼 잘살게 되었다는 말은 그만큼 흙과 멀어졌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흙과 떨어졌어요. 분리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그 ‘흙’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 흙의 의미를 알자는 말이 옛날 브나로드 운동처럼 농촌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곡식 지어 빻아 먹자는 말이 아닙니다. 같은 도시 생활을 해도 흙이 뭔지를 알면 생명이 뭔지를 알게 됩니다. 여태껏 무심하게, 별생각 없이 그냥 가고 싶어지니까 갔던 황토방. 지금부터라도 그 황토방에 가면 왜 마음이 편안해지고, 우리가 굳게 지키던 규범마저 한 꺼풀 느슨해져 남녀구별도 없어지나를 생각해보세요.
 
 
  # 한국의 방 문화
 
이어령 선생이 기자에게 전해준 ‘미국에까지 퍼진 한국의 찜질방’ 사진이다.
  한국엔 외국엔 없는 묘한 문화가 하나 있어요. 사적인 공간은 ‘집’이에요. 공적인 것은 퍼블릭(public) 공공(公共)의 공간이죠. 그런데 그 중간에 ‘방’이라는 게 있어요. 빨래를 보세요. 사적 공간인 집에서 혼자 빠는 빨래가 있고, 동네의 세탁소라는 공적 공간에 맡기는 빨래가 있어요. 그런데 빨래방은 여럿이 가서 각자의 빨래를 해요.
 
  컴퓨터도 그래요. 집에서 혼자 컴퓨터를 써서 글도 쓰고 웹 서핑도 하고 게임도 해요. 회사에 나가서 컴퓨터로 공적 업무를 봐요. 그런데 PC방이 또 있어요. 노래를 부르려면 집에서 혼자 부르거나 극장의 무대에서 부르는데 한국 사람들은 집도 아니고 극장도 아닌 노래방에서 노래를 제일 많이 불러요. 이런 거 보면 한국 사람들 참 묘한 사람들이에요.
 
  이 방 문화가 하나 더 만들어낸 게 ‘황토방’이에요. 자연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중간 지점이죠. 도시 한가운데에 만들어진 인공의 자연이 황토방. 사람들이 거기 모여들어서 쉬는 거예요. 이 ‘황토방’은 현재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중국 사람들이 보면 “야, 희한하다”, 일본 사람들이 와서도 “와, 희한하다”, 이렇게 감탄하고 좋아하니까 이게 외국까지 진출했어요. 황토방은 아니지만 찜질방이.
 
  이 사진은 미국에 있는 한국식 찜질방인데, 아마 한국 교민이 만들었겠죠? 여기에 미국 사람도 와서 한국 사람들이 찜질방 즐기듯 즐기는 거예요. 사람들이 행복해 보여요. 이런 방에서는 반드시 먹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 다들 똑같은 헐렁하고 성별 차이 없는 옷을 느슨하게 입고 한방에 앉아 같은 음식을 먹는 거예요. 그것도 자발적으로. 이렇게 글로 써놓고 보면 참 희한한 일이지 않아요? 옷이야 주니까, 꼭 그 옷을 입어야 하지만 그렇다 쳐도 말이에요. 사람들이 찜질방 가면 꼭 하는 게 하나 더 있어요. 수건의 양 끝을 돌돌 말아가지고 ‘양머리’라 이름 붙인 수건 모자를 꼭 써요. 이건 규칙도 아니고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런데 다들 그러고 앉아서 삶은 계란을 까먹고 식혜 마시면서 놀아요. 참 묘한 문화죠. 방 문화라는 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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