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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취재

‘나랏빚’에 허덕이던 나라들의 오늘과 우리의 내일 ④ 포르투갈

구제금융 780억 유로와 맞바꾼 ‘양해각서’가 포르투갈 변화시켜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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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 경제를 더 경쟁력 있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 비용, 노동 지출을 줄이는 것이지 기업의 수익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비탈리노 카나스 전 사회당 의원)
⊙ 포르투갈 국가개혁프로그램(NRP), 국가 혁신 위한 방안 제시
⊙ 중도 좌파 사회당, 중도 우파 사회민주당 협력해 긴축재정으로 국가 위기 극복
⊙ 포르투갈은 성공, 그리스는 실패… 그 이유는 ‘후견주의’ 때문
긴축재정 반대 시위. 사진=뉴시스/신화
  유럽 남서쪽 끝에 자리한 포르투갈. 특유의 탐험 정신으로 무장한 포르투갈은 15세기 신(新)대륙 발견에 앞장서며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포르투갈의 국토는 남한 면적보다 작았지만 아프리카 일부 지역과 브라질, 지금은 중국에 반환된 마카오까지 식민지로 두며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했다.
 
  유로(Euro)를 사용하기 전만 해도 포르투갈의 지폐(~2000년)에는 대항해시대를 연 엔리케(1만Escudo), 인도 항로를 개척한 바스쿠 다가마(5000Escudo), 희망봉을 발견한 바르톨로메우 디아스(2000Escudo), 브라질을 발견한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1000Escudo) 등 탐험가가 인쇄됐다.
 
  포르투갈은 한반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포르투갈 상인이 남아메리카에서 가져온 고추 종자(種子)가 일본을 거쳐 조선(朝鮮)으로 전파돼 오늘날의 빨간 김치가 탄생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총(鳥銃)이라는 신(新)무기로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일했다. 이 총을 제작하는 기술은 포르투갈 상인이 전수했다. 왜(倭)는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주장하며 조선을 침략할 때도 이 무기를 앞세웠다.
 
  포르투갈은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세계를 하나로 묶어 교역을 벌이며 부를 쌓았지만 19세기 들어서는 해양 제국의 역할을 마감했다.
 
 
  2000년대 들어 국가경쟁력 약화
 
  한때 제국을 경영했던 포르투갈은 2011년 유로존[Eurozone, 유로화 사용 19개국(2011년 16개국)] 재정위기 당시 이른바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에 포함됐다.
 
  포르투갈은 유로존 위기에 앞서 이미 2000년대를 전후해 대내외적으로 불리한 경제 상황에 처했다. 내부적으로는 ▲높은 실업률과 경직된 노동시장 ▲낮은 생산성과 저성장세 ▲높은 국가 부채 ▲과도한 복지·공공부문 비용 등으로 인한 성장잠재력 저하에 빠졌다.
 
  실업률이 높은 이유는 강성 노조와 근로자 친화적인 연금 제도로 인해 노동시장이 경직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포르투갈은 ‘근로자 해고’가 쉽지 않았다.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었고 혜택은 정규직이 주로 누렸다. 연공서열식 임금 구조에 따라 정규직·중년층에게 유리한 임금 구조로 노동시장이 움직였다. 기업은 유지 비용이 늘어갔다. 노동시장의 주역이 될 25세 미만 청년 근로자 중 55%는 비정규직(임시 계약직)에 종사해야 했다.
 
  재정위기를 앞둔 2010년 당시 포르투갈의 실업률은 11.5%(IMF 기준)였다. 여기에 전체 실업자 중 장기 실업자 비중이 55%를 넘겼다. 통상 실업률이 5% 수준일 때 그 나라의 경제가 안정적이라고 평가한다.
 

  포르투갈의 낮은 생산성도 문제였다. 2010년 11월 EU집행위원회가 발표한 통계(EU 가입 27개국 기준)에 따르면 포르투갈은 EU 평균 대비 ▲1998년 68%(독일 112%, 스페인 108%, 그리스 91%) ▲2000년 69% ▲2002년 68% ▲2004년 67%(독일 108%, 스페인 102%, 그리스 101%) ▲2006년 70% ▲2008년 71%(독일 107%, 스페인 105%, 그리스 102%)였다.
 
  이 때문에 포르투갈의 2001년부터 2010년까지 평균 경제성장률은 0.93%로 유럽 국가 중 가장 낮았다. 1989~1998년은 연평균 3.2%에 달하던 잠재성장률이 1999~2008년에는 1.6%까지 하락했다.
 
  생산성 저하는 산업경쟁력 약화와 경상수지 적자·대외 채무 증가로 이어졌다. 제조업 분야 기술 수준이 낮아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해 ▲1996년 -4.0% ▲2000년 -10.4% ▲2005년 -10.4% ▲2008년 -12.6%를 나타냈다.
 
  총 외채도 2009년 기준 GDP 대비 232.3%였다.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도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나랏빚은 점차 늘었고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닥치자 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외부적으로는 동유럽 국가의 EU 가입이 포르투갈에 영향을 끼쳤다. 포르투갈보다 인건비가 더 저렴한 동유럽·아시아 등지로 제조업 생산 시설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그간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유럽 지역 시장에서 상대적 우위(비교우위)를 유지했었다.
 
  일부에서는 포르투갈로 유입된 국외 자본이 서비스업(관광업)으로 흘러 들어갔고 이러한 흐름은 제조업 분야의 생산성 저하, 임금 인상,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780억 유로와 맞바꾼 양해각서
 
  2009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그리스에는 재정위기(2010년 4월)가 터졌다. 이 전염 효과로 인해 포르투갈은 2011년 2월 국채(國債) 이자율(7%)이 상승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신용평가기관들은 포르투갈에 구제금융이 필요하다고 전망하며 포르투갈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tandard & Poor's)는 기존의 A- 등급에서 BBB-로 3단계 강등했고 무디스(Moody's)는 A1에서 Baa1로 3단계 강등했다.
 
  그리스(2010년 5월), 아일랜드(2010년 12월)에 이어 포르투갈도 2011년 5월 16일 트로이카[Troika·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로부터 78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아야만 했다. 780억 유로는 EU가 3분의 2, IMF가 3분의 1을 책임졌다.
 
  포르투갈은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트로이카와 ‘양해각서’를 맺어야 했다. 양해각서에는 재정 긴축과 민간 부문 부채 감축은 물론 ▲국영기업 부채 상한제 적용 ▲에너지 국영기업(EDP, REN) 등 국영기업 일부 민영화 ▲실업급여 최장 지급 기간 18개월 제한 ▲실업 6개월 이후 실업급여 축소 ▲무기계약직·유기계약직 근로자의 퇴직금 규모 삭감 ▲시간 외 근로에 대한 보상 축소 ▲탄력근로제 도입 ▲사법 제도 개선 등이 담겼다.
 
 
  우파 聯政, 노동개혁에 앞장서
 
  포르투갈은 중도 좌파 성향인 사회당(PS) 집권기에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어 2012년 사회민주당(사민당·PSD, 중도 우파 성향)·국민당(인민당·CDS-PP, 보수 성향)이 연정(聯政)을 통해 집권했다. 이 두 정당은 ‘양해각서’에 담긴 내용 중 핵심인 노동법 개정에 앞장섰다. 포르투갈의 정치체제는 이원집정부제이며 대통령보단 총리가 실권을 갖고 있다.
 
  구제금융 이전까지만 해도 포르투갈은 근로자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하는 원칙(favor laboratories principle)이 있었다. 이는 포르투갈이 1974년 민주화하는 과정에서 좌익들이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에 헌법에도 노동친화적인 요소가 반영됐다.
 
  하지만 유로존 위기를 겪은 뒤 포르투갈은 트로이카의 요구대로 시장친화적인 노동 정책을 폈다.
 
  양해각서는 당시 포르투갈 근로자의 퇴직금이 EU 근로자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다고 봤다. 이에 퇴직금 규모를 EU의 평균 수준에 맞추라고 요구했다. 포르투갈 근로자의 퇴직금은 노동개혁을 한 2012년을 기준으로 단계적으로 줄었다.
 
  기존 노동법(2012년 이전 적용)은 1년 근무 시 1개월분 임금을 퇴직수당으로 지급하도록 했다. 퇴직수당 상한은 없지만 최저 퇴직수당은 기존 임금의 3개월분이었다. 여기에 단체 협약을 맺으면 추가 퇴직수당을 받았다. 하지만 노동법 개정 이후에는 1년을 일하면 12일 치에 해당하는 금액만 퇴직수당으로 받게 됐다.
 
  또 트로이카는 포르투갈에 ‘쉬운 해고 조건’을 요구했다. ‘쉬운 해고가 더 많은 고용을 유발한다’는 논리였다. 이에 따라 양해각서에는 ‘작업장에 신기술 도입 또는 기타 변화가 없는 경우라도 근로자 부적합을 이유로 개별 해고가 가능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노동계는 “사용자가 재량권(裁量權)을 남용해 근로자를 손쉽게 해고할 수 있다”며 위헌(違憲)이라고 반발했다. 결국 위헌 판단을 받은 해당 노동법은 한 차례 개정을 거쳐 ‘최하위 업무 성적’ ‘계약상 의무 이행 부담의 가중’ ‘해당 직무의 경험 부족 및 짧은 근속’ 등과 같은 단서 조항을 갖게 됐다.
 
  초과근무에 따른 초과근로수당도 기존 대비 50% 수준으로 줄었다. 노동개혁 이전 대비 휴무일이 감소했고 보상 휴가도 사라졌다.
 
 
  최저임금도 개혁 대상
 
  트로이카는 최저임금도 개혁 대상으로 지적했다. 양해각서는 “구제금융 실행 기간 동안 최저임금은 경제 및 노동시장 동향에 비춰 정당화되고 구제금융 검토를 위한 기본 틀 내에서 합의되는 경우에만 인상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에 포르투갈 정부도 트로이카가 동의하지 않는 한 구제금융 기간에는 최저임금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2011~2014년 포르투갈의 최저임금은 565유로였다. 2014년 5월 구제금융을 끝내자 최저임금을 589유로로 인상했다. 2022년 최저임금은 822유로이다.
 
  포르투갈의 노동개혁에 대해 아나 테레사 리베이로(Ana Teresa Ribeiro, 포르투갈 가톨릭대 법대) 교수는 “(노동개혁 이후 근로자들의 권리 약화를 대가로) 노동 비용이 감소하고 사용자들의 결정권이 강화됐다. 이전 단체 협약이 무효가 되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경제발전이 낮은 임금과 장시간 근로를 통해 가능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노동법이 근로자를 보호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비판적이었다.
 
  포르투갈 재정위기 극복의 핵심인 노동개혁을 두고 포르투갈 정치권에선 평가가 엇갈린다. 금융위기 이후 연정을 통해 집권한 사민당은 노동개혁을 통해 재정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현 집권당이자 구제금융 당시 연정의 주축이었던 사회당은 ‘과거’를 언급하는 것을 꺼렸다. 그럼에도 사민당 연정이 벌인 일련의 개혁 조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여기에는 좌파로 분류되는 공산당(PCP), 좌익연합(BE) 등 소수 정당도 마찬가지였다.
 
 
  노동개혁 두고 左右 간 엇갈리는 평가
 
  “2012년 당시 사민당-국민당 연정은 IMF 구제금융 체제에서 노동시장 현대화, 기업경쟁력 제고, 고용 창출 확대를 목적으로 노동법을 개정했다. 그 결과 실업률 감소(17→10%)와 경제성장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거뒀다. 개혁의 성공은 노사 양측의 희생을 바탕으로 노사정협의회 내에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냈기 때문이다.”[클라라 마르케스 멘데스(Clara Marques Mendes) 사민당 의원]
 
  안토니오 몬테이로(Antonio C. Monteiro) 전 국민당 의원은 “노동개혁 내용에 대해서는 정당 간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면서도 “IMF와 구제금융을 협상한 정부는 현 집권 정부인 사회당 정부였다. 협상 이후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이행한 정부는 사민당과 국민당 연합 정부였다. 금융위기를 초래한 전 정부(사회당)의 실책으로 노동개혁이 야기된 것이고 노동개혁 이후 실업률은 감소했다”고 밝혔다.
 
  “구제금융 기간(2012~2014) 중 정부의 각종 입법 및 개혁 조치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노동자에게 그 부담이 전가된 측면이 있다. 또 정부의 공공부채 증가, 해외 이민 증가 등 경제적·사회적 문제를 야기한 점을 감안하면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본다. 노동시장 자유화는 당시 상황에 전적으로 알맞은 정책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티아구 리베이로(Tiago B. Ribeiro) 사회당 의원]
 
  “구제금융 기간 중 우익 연정(사민당-국민당)이 펼친 각종 개혁 조치는 국가적으로는 공공부채의 증가, 노동자에게는 임시직 고용 증가 등으로 노동권과 사회권의 축소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 포르투갈의 최저임금은 EU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월 557유로, 2017년 기준)으로 노동자의 1/3이 저소득층으로 분류되고 있다.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구제금융 이전 정책으로 환원되기를 기대한다.”[다이애나 페헤이라(Diana Ferreira) 공산당 의원]
 
  “노동개혁은 결국 임금 삭감으로 귀결됐다. 임금 삭감 및 실업수당 감소, 휴가 축소(연간 휴가일 3일, 국정 공휴일 4일), 해고 사유 확대, 임시직 근로자 확대 등 사용자에게 유리한 측면으로 개정됐다. 노동자가 모든 희생을 감수했다.”[호세 소에이로(Jose M. Soeiro) 좌익연합 의원]
 
 
  포르투갈 국가개혁프로그램(NRP)
 
언론사 《디아리오 데 노티시아스》의 레오니디오 페헤이라 부국장.
  구제금융 승인 이후 포르투갈의 개혁은 크게 두 단계로 진행됐다. 2011년부터 2014년 구제금융 종료까지 추진된 개혁은 주로 노동시장, 상품시장, 세제 분야에서 중점적으로 이뤄졌다.
 
  상품시장에선 규제 장벽이 높았던 전문 서비스 영역이 개방됐다. 행정절차가 간소화됐고 우편·통신·운송 분야에서도 민영화가 이뤄졌다. 정부는 양해각서에 따라 국영 에너지 기업의 지분을 일부 매각하거나 전량 매각했다.
 
  세제 분야에선 조세 회피나 탈세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고소득자에 대한 특별 소득세 징수, 대기업에 대한 조세 혜택 제한, 부유층에 대한 규제, 사회보장 지원금 축소도 이뤄졌다.
 
  포르투갈은 구제금융 실시 3년 만(2014년 5월)에 경제가 정상화되고 노동시장, 상품시장 등이 유연화되자 국가 차원의 혁신 전략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포르투갈 국가개혁프로그램(National Reform Programme·NRP)’이었다.
 
  NRP는 EU가 추진하는 Europe 2020의 주요 의제(▲스마트 성장 ▲포용 성장 ▲지속가능 성장)와 연계됐다.
 
  포르투갈은 ‘성장 확대’ ‘고용 확대’ ‘평등 확대’라는 3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NRP를 시행했다. NRP는 ①국민교육 강화 ②경제 혁신 ③자원 가치화 ④기업 자본화 ⑤공공행정 현대화 ⑥사회적 통합 및 평등을 실천 계획으로 삼고 있다. 포르투갈은 매년 NRP를 개정하며 국가 차원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포르투갈 언론 《디아리오 데 노티시아스(Dirio de Notcias)》의 레오니디오 페헤이라(Leonidio Ferreira) 부국장은 구제금융을 비교적 이른 시일 내 마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근로자만 희생? 그렇지 않다”
 
UGT의 카타리나 타바레즈 부사무총장(왼쪽)과 크리스티나 트로니 여성위원장.
  “노동개혁이 성공적이었습니다. 노동 분야에서 개선이 있었죠. 이를 바탕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습니다. 현재는 독일산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의 30%는 포르투갈에서 생산합니다. 또 질 좋은 신발이나 직물을 수출했습니다. 여기에 관광업도 호황을 누린 덕분에 빠르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페헤이라는 “공공 부문 개혁, 특히 공무원 등을 감축해 재정 지출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생각만큼 효과적이지는 못했다”며 “교육이나 건강, 복지 분야에 필수 인력을 줄이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정위기 이후 노동개혁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일방적으로 희생됐다’는 지적에 대해 페헤이라는 “그렇지 않다. 기업도 법인세 인상 등 어느 정도 희생을 해야 했다”고 했다.
 
  또 포르투갈 좌파 진영이 노동개혁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좌파 성향(사회당, 공산당, 좌익블록 등)은 변화를 싫어해 왔다. 보수적이다”며 “그런 면에서 사회민주주의 성향을 가진 이들(PSD)이 덜 보수적이었다. 이들은 시장을 개방하고 경쟁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했다.
 
  포르투갈 노동자 단체도 노동개혁에 대해 사회당, 공산당과 비슷한 입장이었다. 포르투갈 양대 노조 중 우리나라의 한국노총 격인 UGT 관계자를 만났다.
 
  카타리나 타바레즈(Catarina Tavares) UGT 부사무총장은 “지난 10년 동안 포르투갈은 트로이카의 개입 이후 매우 어려운 시기를 넘겼다”며 “각 분야에서 개혁이 이뤄졌고 이 개혁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실시됐지만 모든 부담은 근로자들이 떠안아야 했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나 트로니(Cristina Trony) UGT 여성위원장은 “최저임금 삭감으로 근로자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저는 금융 산업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낮다 보니 은행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어요. 포르투갈의 청년층은 다른 나라에서 일합니다. 간호사를 예로 들면 런던에서는 5000파운드를 받을 수 있지만 포르투갈에선 2000파운드밖에 받지 못해요. 어디에서 일하고 싶겠어요? 포르투갈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돈을 잘 버는 포르투갈 사람들은 명절(holyday)에만 집(포르투갈)에 온다고 말해요. 저임금 문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노동개혁 긍정 평가하는 사회당 정치인
 
비탈리노 카나스 리스본대 교수. 현재 주포르투갈 한국대사관 명예영사이다.
  하지만 사회당에서도 노동개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있다. 비탈리노 카나스(Vitalino Canas) 리스본대 교수는 사회당 출신으로 6선 의원을 지냈다. 현재 주포르투갈 한국대사관 명예영사이다.
 
  그는 “‘포르투갈의 개혁이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했다’는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라면서도 “포르투갈 경제를 세계시장에서 더 경쟁력 있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 비용, 노동 지출을 줄이는 것이지 기업의 수익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카나스 교수는 “2011년 재정위기 이후 청년층의 국외 취업이 늘어났다”며 “유럽이 통합돼 있다고는 하지만 포르투갈 세금으로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포르투갈 밖에서 일하는 상황은 안타깝다”고도 했다. 또 “2015년 이후 젊은이들이 포르투갈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정책을 펼치고 있다”면서도 그 성과는 크지 않다고 밝혔다.
 
  경제학자들은 “포르투갈 산업 기반 중 서비스업(75%)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첨단 산업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젊은 인재의 해외 유출은 필연적이며 이들을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오도록 하는 정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포르투갈 인구의 20%는 영국, 독일, 스위스 등 포르투갈 밖에서 일하고 있다. 카나스 교수의 둘째 딸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포르투갈은 성공, 그리스는 실패
 
사회당 소속 유리코 디아스(Eurico dias) 의원(왼쪽)과 자밀라 마데이라(Jamila Madeira) 집행위원장. 이들은 국외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포르투갈 청년들이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와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트로이카는 구제금융에 대한 조건으로 포르투갈에 개혁을 강제했다. 이에 포르투갈의 위기 극복을 두고 ‘포르투갈의 노력보다는 트로이카의 공이 크다’는 주장도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포르투갈인들은 이러한 주장에 반박했다.
 
  “그리스도 포르투갈처럼 구제금융을 받았으나 그리스는 실패했고 포르투갈은 성공했다.”
 
  재정위기 당시 포르투갈과 그리스는 모두 중도 좌파 성향의 정당이 집권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정치적 후견주의’에서 자유로웠고 그리스는 그렇지 못했다.
 
  후견주의(patronage)란 정치인과 유권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표를 교환하는 것을 말한다. 후견주의가 발전한 형태가 포퓰리즘이다.
 

  그리스는 포퓰리즘이 강했고 포르투갈은 그렇지 않았다. 이는 유권자 중 당원이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정치적 후견주의가 나타나는 양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유권자 대비 당원 가입자가 6.1%였지만 포르투갈은 2.2%였다. 또 노조와 정당 간의 관계도 그리스는 강했지만 포르투갈은 그렇지 않았다. 공공 부문의 노조 조직률도 그리스는 78.2%였지만 포르투갈은 15%였다.
 
  은민수 박사는 논문 〈경제위기 이후 그리스와 포르투갈의 정치적 후견주의와 재정긴축 정책결정〉에서 “그리스와 달리 포르투갈은 정치적 후견주의가 약했다. 이로 인해 2011년 경제 위기 직후 긴축 정책으로 급전환하는 과정에서 사민당과 국민당이 사회당 정부에 협력해 위기 극복에 동참했다”고 했다.
 
  은 박사는 “정당은 선거에서 불이익을 피하고자 인기 없는 결정을 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특정 조건에서는 인기 없는 정책을 감수하기도 한다”며 “후견주의에 의존하는 정당일수록 재정 긴축에 반대한다”고 분석했다.
 
  또 “후견주의에서 자유로웠던 포르투갈은 긴축 정책이 정당의 득표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며 “포르투갈 정당은 그렇게 많은 것을 약속하지 않았고 유권자들 역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포르투갈이 주는 교훈
 
  포르투갈을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포르투갈인들은 친절했고 이방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500년 전 세계를 상대했던 이들 선조들의 개방 의식이 이들의 DNA에 각인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500년 전 포르투갈인들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기꺼이 배에 올라 풍파에 맞서며 신대륙을 찾아 나섰다. 포르투갈이 우리에게 건네는 변치 않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미지를 향한 탐험 정신이 아닐까.
 
  여기에, 좌우를 막론하고 국민에게 선심성 복지 공약을 내걸고 표를 구걸하는 한국 정치와는 다른 포르투갈의 정치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포르투갈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허황된 것을 약속하지 않았고 포르투갈인들 역시 정치인들에게 허황된 것을 바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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