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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위기관리 ④ 정치와 기업

MB는 왜 광우병 사태 때 반대 여론 설득에 실패했나?

글 : 권신일  에델만코리아 부사장 겸 에델만 EG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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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는 최고 책임자가 직접 나서고, 갈등의 영역은 당이 싸우도록 했는데 지금은 반대
⊙ 기업과 정치인의 차이부터 이해해야
⊙ 저커버그, 청문회 불려 나가게 되자 對국민 사과 먼저 한 후 철저한 메시지 미디어 트레이닝받아
⊙ 국내 기업인들, 법리적 입장에 너무 의존하다가 낭패

權信一
1970년생. 한양대 대학원 관광학 박사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위원,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연구위원,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에델만코리아 전무이사 역임. 現 에델만코리아 부사장 겸 에델만 EGA 대표 / 저서 《협상5》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도어스테핑을 잘 활용해야 한다. 사진=뉴스1
  옛날 만석꾼 가문은 요즘으로 치면 대기업 수준으로 드물었다. 그럼에도 무려 400여 년간 12대에 걸쳐 만석꾼을 낸 경주 최부잣집의 가훈은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다. 주로 인심을 잃지 말라는 인간관계를 새기는 내용들인데, 그중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는 기업과 정치와의 관계를 담은 조언이다. 언뜻 보면 벼슬은 하지 말라는 것 같으면서도 ‘진사’ 정도는 괜찮다는 모순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
 
  기업의 위기관리에 정치인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정치인이 처한 독특한 현실과 인식에 대한 이해는 곧 비즈니스 성패와 직결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 정부의 직간접적인 규제로 기업의 흥망성쇠가 결정되기도 한다. 규제가 새로 생겨서 또는 없어서 아니면 그대로 유지돼 영향을 받는다.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인들의 독특한 상황을 알면 알수록 보다 효과적인 위기관리 방안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전부 아니면 全無’
 
  우리는 종종 ‘멀쩡하던 분들이 왜 정치권에만 들어가면 저럴까?’ 하는 의문을 갖곤 한다. 정치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상식과는 다르게 대처하는 모습도 본다. 문제는 기업의 죽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바로 그 이해하기 힘든 여야(與野) 정치권과 정부의 규제로부터 온다는 점이다. 많은 기업의 대표들은 영문도 모른 채 “왜 이렇게까지 심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건가?” “국회가 왜 나를 2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부르는 거지?” “정부가 너무 하는 거 아닌가?”라며 평소 기업 활동을 하던 대로 상식적인 대처를 하다가 위기를 더 키우기도 한다.
 
  왜 그럴까?
 
  첫째, 정치인은 “2위가 없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위기나 특정 이슈에 집중하고 승부에 강렬히 집착한다. 기업은 ‘2위 전략’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2위도 먹고산다. 심지어 3위 업체도 산업에 따라서는 글로벌 기업으로 명성을 떨치곤 한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2위는? 사실상 죽음과 같다. 1위가 모든 것을 다 갖는다. 2위에 처한 인물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그 방증이다. ‘2위는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항상 생사를 걸고 1위에 목말라하는 정치인들에게 기업인들의 웬만한 이슈는 눈에 잘 보일 리 없다. 따라서 기업 대표 또는 기업이 정치와 연관된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 그 이슈가 정치인의 1등 이미지와 연관이 있다는 콘텐츠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수만 명의 고용이 걸린 산업이라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이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1위 이미지로 만들어준다면 정치인들은 중세 시대의 ‘챔피언’처럼 기업의 이익 또는 위기 탈출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것이다.
 
  국회 국정감사 증인 신청 때마다 아예 해외로 출국해버리는 기업 대표들을 종종 본다. ‘오죽하면 그럴까’ 싶은데, 그 기업을 비판하는 국회의원의 주장에 맞서 기업의 입장을 자기 일처럼 설명해줄 수 있는 국회의원을 통한다면 쉽게 풀 수도 있다. 회피한다면 일을 더 어렵게 만들거나 괘씸죄를 뒤집어 쓸 수도 있다. 실제로 특정 기업에 불만이 컸던 어떤 국회의원은 4년 연속 해당 기업의 대표를 증인으로 요청하고, 선정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기업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었다. 참고로 말해두자면, 부르려는 자와 막아주는 자의 명분이 팽팽하게 맞선다면 최종명단을 협의하는 여야의 원내대표나 상임위 간사들은 그를 증인으로 선정하지 않는다.
 
 
  ‘관심’이라는 스트레스
 
  둘째, 정치인은 언론과 국민들의 집중적인 관심에 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산다. 사실 기업의 경우 매일 출근하는 기자가 100명이 넘지만,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면 시시각각 기사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라면 오히려 기자들이 맨바닥에 앉아 몇 시간이고 소위 ‘뻗치기’를 하며 기삿거리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므로 기업의 상황이 정책이나 정치와 관련된 것이라면, 이 같은 특성을 파악해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의 불리함을 불투명하게 숨기거나 속일 경우에는 반드시 드러나는 것이 정치권의 특성이다. 한 번 무너진 신뢰는 되찾기 어렵다.
 
  실제로 개인정보가 유출됐는데도 쉬쉬하다가 의회까지 불려가 위기가 더 큰 위기로 확장된 페이스북과 구글의 사례가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포털회사뿐만 아니라 통신회사, 배송회사 등도 쉬쉬하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기도 했다. 이러한 회사들은 한때는 신기술의 대표로서 정치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지금은 매년 공정위나 국회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
 
  셋째, 정치적으로 엮인 위기 상황은 허위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연예 기사처럼 빠르고 선정적으로 확산된다. 진실이 밝혀져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곤 한다. 1등을 걸고 싸우는 상대가 있다 보니 없는 사실도 흘리며 직간접적으로 위기를 더 키우려 한다.
 
 
  허위사실에 대해 반박 자료 남겨야
 
  이는 기업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기업의 경우 대개 경쟁 업체 간 싸움이 아무리 격렬해도 공개적인 논평을 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식으로 거의 매일 상대의 문제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동종 업계 간 일종의 불문율이라는 것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그런 룰을 지키지 않는다. 더 크게 혼란의 소용돌이로 키우고 사실이 밝혀져도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하면 상대보다 아래에 놓이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면책특권도 있고, 법원도 가급적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이명박(MB) 정부 때 롯데가 월드타워를 건설하면서 특혜를 받았다는 설이 사이버상에서는 아직도 기정사실로 퍼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민주당 정권의 감사원조차 아무 문제없다고 결론을 낸 사안이다. 롯데는 일본에는 거의 배당을 하지 않았고 한국에 재투자해왔으며, 일본에서보다 수십 배에 달하는 고용 창출, 사드 배치 부지 제공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 더 큰 기여를 했음에도 ‘일본 기업’이라는 정치적인 비난 때문에 큰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기업이 정치적인 이슈로 영향을 받을 때는 빠른 확산과 부정적인 증폭을 차단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허위사실에 대해서는 보도 여부와 상관없이 팩트 대응자료를 남겨두어야 한다. 24시간 모니터링을 하고 대응방안을 수립하는 ‘워룸(War room)’을 설치해 허위사실에 대해 ‘사실은 이렇습니다’라는 반박 근거와 증거를 반드시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인 이용 확산을 방지할 수 있고, 매년 반복되는 국감 때 한 건 올리려는 보좌진의 먹잇감이 되지 않는다. 허위사실에 대해서는 보도 여부와 상관없이 대응 내용이 온·오프상에 남도록 해야 한다.
 
 
  기업인 출신 MB의 위기관리
 
서울시장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계천 복원공사에 반대하는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사진=조선DB
  ‘정치권은 내가 사는 세상과 너무 달라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기업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그 기업은 이미 없어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 생활과 멀 것 같지만 경찰청을 산하에 두고 있는 행정안전부, 약 600조원에 달하는 국가 예산의 3분의 1 넘게 쓰고 있는 보건복지부 등 약 40여 개의 정부 부처는 우리 생활 곳곳 깊숙이 매일매일 관여하고 있다. 기업 활동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래서 대부분 기업마다 대관(對官)팀을 별도로 두고 대정부 또는 대국회 관계를 조율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성공한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맛보았다. 그의 사례를 통해 기업과 정치의 차이를 살펴보고 위기관리에 참고할 점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은 누구도 그 좋은 효과를 부정하기 힘든 2003년 청계천 복구사업은 당시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로 큰 비난을 받았다.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6만여 명의 서민 상인들의 반대 목소리 ▲수십만 명이 매일 이용하는 청계고가도로를 적게는 수개월에서 수년간 이용을 못 하는 점 ▲그간 복개천 공원 복구사업의 선례(先例)가 없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청계천 복구사업이 실패했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소속 당까지도 위기에 빠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MB는 서울시장 임기 중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와 반대로 2008년 대통령 임기 초반 광우병(狂牛病) 파동 때는 한참 높았던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위기관리 실패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앞서 청계천 복원사업 때처럼 과감하게 반대론자들과도 수백 번이라도 만나서 대화하며 문제를 풀어냈던 리더십을 보여주기는커녕 혼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수많은 촛불을 보며 민중가요를 들었다는 얘기는 우리가 오랫동안 알아온 그 사람인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했다.
 
  같은 사람임에도 어떤 이유가 위기관리 성공과 실패의 결과를 낳았을까?
 
  여러 가지 이유 중 탄탄한 ‘지원 세력’ 여부와 정보의 홍수 속 ‘신속한 판단’ 등 두 가지가 큰 차이다. 청계천 복구사업 때는 2002년 지방선거를 싹쓸이 승리한 이후 MB를 지원해줄 탄탄한 기반이 있었다. 그 외에도 MB는 비록 야당 소속이었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에 직접 참석해 축사를 해줄 정도로 많은 사람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당시 MB가 다양한 정보 속에서 빠르게 선택하고 결정하는 모습도 기업 CEO 출신다웠다.
 
  기업은 특정 타깃 소비자층만을 고려해 여러 가지 분석 툴이나 조사를 통해 문제를 푼다. 정치인은 같은 사안임에도 정반대 입장을 갖는 유권자의 입장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 소위 ‘숙성의 시간’이라는 특유의 시간 끌기를 통해 정반대 측의 생각도 최대한 반영하곤 한다.
 
 
  MB와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소통 실패로 광우병 사태라는 위기를 맞았다. 사진=조선DB
  MB는 청계천 복원 때는 기업인처럼 서울 시민을 주요 타깃으로 두고 속도감 있게 추진하며 반대파들에게는 대안(代案)도 제시하면서 반대 목소리를 최소화했다. 반면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무역국가로서 국익(國益)을 위한 불가피한 한미 FTA였음에도 미국산 소고기 수입 이슈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지원 세력은 안 보였고, 속도감 있게 처리하지도 못하다 보니 농민 단체의 반대는 거세지고, 반대 입장의 야당과 일부 문화·언론 세력의 반발까지 더해져 대혼란으로 이어졌다. 아마 명확한 타깃과 효과적인 목표 추진에 익숙해 있던 MB로서는 모호한 개념의 ‘국민’을 전부 고려하는 대통령의 입장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은 평생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다 잘하고 싶은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주요 타깃에 집중해 결정해나갔다면 상황은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다. 지원하는 목소리가 계속 줄어들다 보니 점점 더 도움의 손길을 내고 싶은 사람들조차도 마치 ‘침묵의 나선’처럼 사라져 갔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 이례적으로 절대다수가 보는 전통 매체 대신 이름도 생소했던 오마이뉴스와 첫 인터뷰를 하며 핵심 지지층을 양성하려 했던 것과 큰 차이다.
 
 
  윤석열, 지원 세력 미약한데 실행부터 밀어붙여
 
  최근 윤석열 정부도 임기 초부터 MBC와 큰 갈등을 빚고 있다. ‘대통령의 비속어가 문제다’ 또는 ‘방송사의 악의적인 허위 자막이다’라는 주제를 놓고 여야가 한 치의 양보 없이 대치하고 있다. 미국산 소고기 이슈 같은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주제가 아님에도 갈등의 크기는 그에 못지않다. 2위가 없고, 보는 사람이 많으며, 빠르게 증폭되는 정치권 위기의 특성 때문이다.
 
  앞으로 연금개혁, 기후변화 대응 등 이해관계 집단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는 정책들을 추진해야 하는데, 지금 대통령실의 대응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려스럽다.
 
  먼저 지원 세력 구축이 미흡한데 실행부터 밀어붙였다. 순서가 잘못된 셈이다. 임기 6개월이 지나도 내각과 공기관들의 빈자리들은 여전히 안 채워졌거나 이전 정부 사람들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극소수 여당 정치인과 장관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그러다 보니 실행을 위한 우호 여론 확산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때처럼 반대파조차 칭찬을 하고 참여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 조성은 요원하다. 심지어 청계천 복원처럼 좋은 명분을 가진 청와대 국민공원 이슈조차 비난 여론이 더 높아지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이 닥쳐오고 있는데, 이러한 위기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를 했던 것처럼 국민적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성공적으로 정책 수행을 했던 대통령들의 경우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는 최고 책임자가 직접 나서고, 갈등의 영역은 당이 싸우도록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도어스테핑이라는 좋은 홍보 수단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는 대통령이 어떤 주제를 직접 이야기하느냐에 달려 있다. 새 정부 정책의 성패 역시 앞으로 누가 더 지원 세력을 크게 구축하고, 속도감 있는 조치들을 보여주느냐와 그로 인한 지지여론의 크기에 좌우할 것이다.
 
 
  기업의 적극적 역할 필요
 
2018년 10월 26일 국정감사장에 불려 나온 IT업체 대표들. 해마다 기업인들은 국감장에 불려 나와 곤욕을 치르곤 한다. 사진=조선DB
  성공적인 정책 수행은 기업에 큰 영향을 주는 만큼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기업의 위기관리 활동 역시 아쉬움이 크다. FTA의 직접 수혜자였던 기업들이 선진국처럼 좀 더 성숙하게 대응했다면 허무맹랑한 이유로 우리 사회가 큰 비용을 치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첫째,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일부 시민단체에 대해 전경련이나 정부가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해도 믿지 않았다면, 같은 시민단체로 대응토록 했어야 했다. 마치 주부의 문제는 주부가 제일 잘 알기에 전문가보다 주부 간 대화가 더 신뢰성이 높다는 신뢰도 조사 결과와도 같다.
 
  둘째, 기업이 중장기적으로는 성숙하고 균형 있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갖추도록 지원하고, 스스로 정책의 든든한 지원 세력이 되는 것을 꺼려했다. 선진국에서는 기업이 투명하게 시민단체와 함께 캠페인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기업, 시민단체, 정부, 학계가 함께 정부 역할을 하는 거버넌스 체제에 후원자로서 기업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신속한 대응을 위한 기업의 정보 제공 역시 미흡했다. 기업의 역량이 커지며 그만큼 사회적 책임과 정보 제공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불법 로비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공무원들이 늘 목말라하는 시의적절하고 참고할 만한 정보 제공을 언론 기획이나 담당자에게 레터 형식 등 공식·비공식적인 방법으로 더해준다면 보다 담당자는 확신을 갖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이 국회·정부와 얽히는 대표적인 위기관리의 장(場)은 국회 국정감사다. 기업 대표가 국회에 불미스러운 이유로 불려가고 하루 종일 앉아서 국회의원들의 일방적인 질문에 절절매다 보면 대표와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동반 추락하곤 한다.
 
  사실 이미 국감 증인으로 선정될 때부터 위기 상황은 시작된다. 수많은 기업의 부정적 이슈 가운데 해당 기관의 조치가 미흡하거나 사정(司正)기관의 수사가 진행됨에도 석연치 않을 경우, 국회에서는 특정 기업을 지목해 대표자를 국감 증인으로 소환한다. 특히 외국 기업의 경우 한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기업 대표를 국감장에 앉혀놓은 것 자체가 큰 이슈가 되곤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위기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것이지만, 재판 등 여러 불가피한 이유로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그럼에도 2018년 미국 상원 청문회에 개인정보 유출 건으로 출석했던 페이스북(현 메타) CEO 저커버그의 체계적인 대응은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저커버그는 앞서 언급한 정치인이 이슈를 대하는 특성을 감안해 정치인 개개인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사전에 국민들에게 먼저 사과했다. 청문회 당일 방송에 대비해 철저한 메시지 미디어 트레이닝을 했고, 복장도 평소와 달리 캐주얼 차림 대신 정장 차림으로 방송에 임했다. 저커버그는 로펌이 가장 꺼리는 ‘내 책임’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개인적으로는 신뢰의 위기를 극복했고, 위기가 기업으로 번지지 않게 했다. 최근 개인적으로는 다시 기소되기는 했지만, 당시 페이스북의 책임은 법원의 기각판결로 이어졌다.
 
 
  한국 기업, 법리적 판단에 너무 의존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수많은 기업 중 매년 국감장에 불려 나오는 30~50여 개 기업들의 대응을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대부분은 끌려 나오다시피 출석한다. 로펌이 제공하는 법리적(法理的)인 입장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정서적인 사과 타이밍을 놓치거나, 사소한 것까지도 인정하면 더 큰 법적 피해가 뒤따를 수 있다는 주장에 따르다가 기업 평판을 그르친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적 관심사이기 때문에 출석 요구를 하는 것인데, 정작 국민에 대한 사과 또는 해명 메시지는 전혀 없다. 기업의 대관 담당자들은 개별 의원실만 줄기차게 출입하며 모면하려 한다.
 

  또한 국회의원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으로 전 국민을 상대로 언론에 나오는데도 제대로 된 PR전문가의 미디어 트레이닝도 하지 않고 출석해 무성의하다는 비호감 이미지까지 주곤 한다. 심지어 조율되지 않은 자기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 오히려 더 큰 화를 자초하는 경우도 있다. 국감 이후에도 제대로 상황을 관리하지 못해 2년 연속 증인으로 불려 나오는 곳도 많다.
 
 
  ‘고마운 사람’보다 ‘필요한 사람’이 돼라
 
  기업이 정치의 내용과 정치인들의 매우 특별한 상황을 이해한다면, 정치 면에서 발생하는 위기 중 대부분을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기업 내부 문제로 생긴 위기 상황일지라도 그 책임 공방과 영향 정도에 따라 정부와 국회로 파급 효과가 커지기 때문에 정부와 정치인들의 특성을 감안한 대응이 중요하다. 정치인은 ‘모 아니면 도’라는 절박한 입장에 있다. 또 정치인에게 정보가 많은 것 같아도 실제로 쓸 정보는 스스로 빠르게 선택해야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해 논리와 지원책을 제시한다면 윈윈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부터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스페인의 발타자르 그라시안(철학자이자 예수회 신부)은 인간관계론에서 ‘고마운 사람보다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했다. 정치인은 소위 ‘여의도 섬’, 공무원은 ‘세종 지방’이라는 곳에서 고립되어 제대로 된 정보에서 뒤처질 것 같다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그들에게 투명하고 적시성 있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주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서서 해결해주는 ‘챔피언’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인자한 지도자보다 무서운 지도자가 낫다’는 말도 새길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자상한 정치인보다는 무섭고 가혹한 정치인들이 더 많은 것은 동서고금 비슷한 현실이다. 그 이유는 원래 인격이 가혹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속한 세상 자체가 1등만 기억하는 삭막한 세상이고 가혹한 비판 여론에 매일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업인은 정치인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인 만큼 그 특성과 이해는 위기관리에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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