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하의 인기곡 ‘부럽지가 않어’… MZ 세대의 자격지심과 분노 노래
⊙ 근래 가장 많이 다뤄진 내용은 自我·自己愛
⊙ MZ 세대, 대중가요에서는 “나, 나, 나”를 외치지만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나’를 극단적으로 억눌러야 하는 공무원
⊙ 대중가요 가사 속에 ‘Savage’ 단어 사용 급증… 엄혹한 현실 속에서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워진 MZ 세대 입장 반영
⊙ BTS의 노래 ‘팔도강산’ 속 ‘8도’는 남한만 의미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 근래 가장 많이 다뤄진 내용은 自我·自己愛
⊙ MZ 세대, 대중가요에서는 “나, 나, 나”를 외치지만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나’를 극단적으로 억눌러야 하는 공무원
⊙ 대중가요 가사 속에 ‘Savage’ 단어 사용 급증… 엄혹한 현실 속에서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워진 MZ 세대 입장 반영
⊙ BTS의 노래 ‘팔도강산’ 속 ‘8도’는 남한만 의미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 BTS의 ‘Savage Love’.
흔히 ‘MZ 세대’라 불리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수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가 한창 인기다. 전자음(電子音) 바탕에 가사를 읊조리기만 하는 노래인데도 그 가사의 독특함 덕택에 지난 2월 발표 이후 음악 마니아들은 물론 대중적으로도 점차 인기를 넓혀가는 추세다. 뮤직비디오도 인디음악(independent music·음악을 만들고 유포하는 과정에서 기업이나 거대 자본의 지원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음악)으로서 상당한 수치인 400만 뷰 이상을 기록 중이다. 가사를 살펴보자.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중략)
너한테 십만 원이 있고 나한테 백만 원이 있어 / 그러면 너는 내가 부럽겠지 짜증나겠지
근데 입장을 한 번 바꿔서 우리가 생각을 해 보자고 / 나는 과연 니 덕분에 행복할까 내가 더 많이 가져서 만족할까
아니지 세상에는 천만 원을 가진 놈도 있지 / 난 그 놈을 부러워하는 거야 짜증나는 거야 (중략)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럽지가 않다는 자랑”
‘부럽지가 않어’에 대해 장기하 측에서는 “모든 자랑을 다 이기는 최고의 자랑은 뭘까? 자랑계의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는? 아하, 부럽지가 않다는 자랑이겠군!”이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어찌 됐건 노래가 워낙 깊은 인상을 남기다 보니 이를 현(現) 젊은 세대 풍조(風潮)와 연결해 해석하는 언론미디어 기사도 등장했다. 《중앙일보》 2022년 5월 30일 자 기사 “‘부럽지가 않어? 장기하가 부럽다’… MZ들 SNS 지우는 이유” 일부를 보자.
〈회사원 서모(29)씨는 1년째 SNS를 줄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두서없어진’ 자신의 취향을 되찾기 위해서다. 그는 “분명 나도 나만의 가치관이 있었을 텐데 어느새 잃어버렸다”고 했다. 서씨는 그 원인을 SNS에 반복 노출됐기 때문으로 생각했다. SNS를 자주 보며 ‘부럽다’ ‘신기하다’에서 끝나던 감상이 점점 형언하기 어려운 자격지심 같은 감정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중략)
지난 2월 발매된 가수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추세와 관련이 있다. 이 앨범은 SNS를 이용하며 MZ 세대가 느껴온 자격지심을 겨냥한다. 유튜브 숏츠 등 숏폼 동영상에서 배경음으로 자주 사용되면서 밈(meme)으로 자리 잡았다. 노랫말은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세상에 부러움이란 걸 모르는 놈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라고 말하지만, 누구보다 이 노래에 열광하는 건 ‘자랑’에 짓눌리고 ‘부러움’에 괴로워해 본 MZ들이다. (중략)
SNS는 여전히 MZ 세대의 주요 놀이 수단이지만, 다이어트 또는 거리 두기를 시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SNS 이용현황’ 설문조사에서는 다른 사람의 게시글 확인 빈도와 관련해 “하루에도 여러 번 확인한다”고 답한 20대가 2020년 35%에서 2021년 29.5%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10대도 34.4%에서 30.6%로 조사됐다.〉
‘SNS 다이어트’
확실히 MZ 세대들 정서와 가치관, 세계관 등에 있어 소셜미디어(SNS)가 미치는 영향은 상당한 것으로 그간 여러 차례 지적돼왔다. 소셜미디어 공간 안에서 서로들 ‘우월한 삶’ 경쟁을 펼치는 통에 각자 자격지심(自激之心)들도 심해지고, 자기 삶에 점점 더 만족하지 못하며 자기 이상을 실현해주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흐름도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소셜미디어의 부정적 영향이 2010년대 들어 뚜렷이 가시화(可視化)되는 젊은 여성층의 전반적 좌경화(左傾化) 흐름과도 연결되고 있다는 해석들이 많다. 그런 심적(心的) 고통을 벌써 10여 년째 겪다 보니 이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위 기사에서 말하듯 소셜미디어 이용 시간을 알아서 줄이는 ‘SNS 다이어트’에 하나둘 나서고 있는 것일 테고, 또 그런 배경이 존재하다 보니 세태(世態) 변화에 민감한 문화예술계에서 ‘부럽지가 않어’ 같은 노래를 만들고 그 노래가 공전(空前)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하는 것일 테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보통 기성세대들이 일상 속에서 포착(捕捉)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들의 정서와 사고 등을 알아보려 할 때 영화나 TV 드라마, 문학 등 서사(敍事) 구조 예술 장르 유행을 참조(參照)하려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당대 대중가요 가사를 살펴보는 쪽이 더 유의미(有意味)한 결과를 내는 때가 많다. 특히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노래들일수록 시시각각 변하는 젊은 층의 고민이나 사고방식 등을 반영하지 못하면 ‘구시대적(舊時代的)’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시장에서 도태(淘汰)되기 쉽기에 훨씬 치열하게 새로운 세태들을 담아내려 애쓰기 때문이다.
대중가요 속 永東과 江南
시계를 조금만 뒤로 돌려봐도 납득할 만한 예들이 많다. 예컨대 서울 ‘강남문화’만 해도 그렇다. 강남 일대가 대한민국의 대표 격 유흥(遊興)과 향락(享樂)의 거리로 알려지며 그 특유의 문화가 대중적으로 널리 인식되기 시작한 건 대략 1990년대부터다. 관련한 영화나 TV 드라마 등이 등장한 것도 그즈음부터다. 1990년대 중반 〈젊은 남자〉 〈비상구가 없다〉 등의 영화나 SBS 〈째즈〉 같은 TV 드라마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대중가요는 이미 1980년대부터도 이처럼 새로운 유흥문화 공간이 펼쳐졌다는 점을 꾸준히 알리고 있었다.
당시 ‘강남’이라는 명칭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현(現)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를 묶어 영동(永東)이라는 명칭이 주로 쓰였다. 따지고 보면 이도 1960년대에 ‘영등포(永登浦)의 동(東)쪽’이란 뜻으로 지어진 명칭이었는데, 1960년대만 해도 이 지역이 별다른 볼거리 없는 시골 수준이어서 꽤 큰 시가지(市街地)였던 영등포를 엮어 지칭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부르는 명칭부터가 참 애매한 느낌이었는데도 대중음악계는 1980년대 내내 ‘영동 찬가(讚歌)’를 계속해서 쏟아냈다.
‘영동 블루스’ ‘못 잊을 영동의 밤’ ‘영동 나그네’ ‘영동 네온가’ ‘영동 민들레’, 그리고 가수 주현미를 일약 198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띄워 올린 ‘비 내리는 영동교’까지 온통 영동 천지였다. 부르는 명칭이 ‘강남’으로 달라지기 시작한 것도 ‘강남 멋쟁이’ ‘강남 블루스’ ‘강남 아리랑’ ‘강남 사모님’ 등의 노래 제목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번화한 지역이 신사동 일대였음을 주현미의 최대 히트곡 ‘신사동 그 사람’을 통해 새삼 확인해볼 수 있다.
여기서 시대의 한 분기점으로 종종 거론되는 노래가 문희옥이 1989년 발표한 ‘사랑의 거리’다. 가사를 살펴보자.
“여기는 남서울 영동 / 사랑의 거리
사계절 모두 봄 봄 봄 / 웃음꽃이 피니까
외롭거나 쓸쓸할 때는 누구라도 / 한 번쯤은 찾아오세요”
이를 두고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이제 대중가요 노랫말의 주 무대가 과거의 종로, 무교동, 명동이 아니라 엄연히 신흥지인 남서울 영동으로 바뀌었음을 선포하는 득의양양한 강남의 찬가였다. 그것은 북에서 남으로 서울 도심이 이동, 그것도 완전 이동했다는 것에 대해 방점을 찍은 것을 의미했다”면서 “거대 빌딩의 현란함, 상업적 자본 회전의 우위와 같은 단순한 외형의 승리가 아니라 도시민의 바이오리듬과 같은 내면에 있어서도 중력은 강남으로 옮겨왔다는 것을 알리면서 강북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경향신문》 2004년 12월 2일 자 “(6)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고 논평한 바 있다.
대중가요 속 IMF 사태의 그늘들
한편, 아직도 많은 한국인에게 상처로 남아 있는 1997년 IMF 외환위기도 마찬가지다. 의외로 영화가 이 상황을 중점적으로 다룬 건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2018년의 〈국가부도의 날〉이었고, 그나마도 각종 사실 왜곡(歪曲)과 음모론으로 점철(點綴)돼 있다는 혹평을 받은 바 있다. TV 드라마의 경우 바로 얼마 전 종영된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개중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다룬 첫 드라마라는 평가다. IMF 외환위기로부터 사반세기 만에 안방극장에 선보이게 됐다는 얘기다.
반면 대중가요 가사로는 구제금융 신청 바로 다음 해인 1998년부터 일찌감치 등장했었다. 10대 자매들로 구성됐던 그룹 한스밴드의 노래 ‘오락실’이다.
“시험을 망쳤어 / 오 집에 가기 싫었어
열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어머 이게 누구야 / 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빠
장난이 아닌 걸 / 또 최고 기록을 깼어
처음이란 아빠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용돈을 주셨어 / 단 조건이 붙었어
엄마에게 말하지 말랬어”
지금이라면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힘들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누구라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화자(話者)의 아빠는 IMF 외환위기 여파로 회사에서 정리해고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 얘기를 가족들에게, 심지어 아내에게조차 차마 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동네 오락실에서 소일(消日)하는 모습이다.
같은 맥락에서 같은 해 보이그룹 H.O.T의 노래 ‘빛’에는 “사업에 실패했어 / 사랑에 실패했어 / 그 어떤 것도 당신을 쓰러뜨릴 순 없어”라는 가사가 등장하고, 이듬해에는 보이그룹 GOD의 노래 ‘어머님께’가 크게 히트하며 이른바 ‘IMF 정서’를 이어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어머님께’는 정확히 IMF 외환위기 상황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경제적으로 궁핍(窮乏)해진 당시 대중에게 호소(呼訴)하는 내용으로서 비슷한 계통 가사들의 등장을 부추겼다. 이처럼 대중가요는 모든 대중문화 장르 중 가장 빠르고 가장 직설적으로 당대 세태들을 즉각 반영해온 역사다.
‘J팝 가장 지겨운 가사 톱5’
그런데 대중가요의 가사 해석에 있어 좀 더 생각해볼 만한 부분도 존재한다. 가사 내용을 ‘있는 그대로’ 지금 돌아가는 세태로서, 특히 젊은 층의 정서와 사고를 대변하는 내용으로서 받아들여서는 곤란한 때도 많다는 것이다. 오히려 당대에 결핍(缺乏)된 부분, 해소되지 못한 욕망을 문화적으로 해소시켜주기 위해 특정 가사가 등장하는 때도 많다. 특히 정서적인 부분을 짚는 가사일수록 그렇다.
예를 통해 풀어보면 이해가 쉽다. 근래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꼽은 ‘J팝 가장 지겨운 가사 톱5’라는 게시물이 있다. 말 그대로, 일본 대중가요에 너무 많이 등장해 이제는 듣기조차 지겨워진 가사들을 가리킨다. 차례로 “혼자가 아니야” “너를 지키고 싶어” “그 손을 놓지 마”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대의 이름을 불렀다” 등이다. 실제로 위 가사들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일본 대중가요에 자주 등장하며, 일본밴드 백-온의 2013년 노래 ‘2분의 1’처럼 저 다섯 문장이 모조리 들어가는 노래까지 존재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의 해석이 특이하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모두 혼자라고 느끼고,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여기며, 타인은 매번 내 손을 놓아버리기에 이런 가사들이 유행하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특유의 가히 자폐적(自斃的)이기까지 한 개인주의 풍조 탓에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가 멀어지고, 그래서 발생하는 인간관계에의 갈증을 대중문화가 대리 해소시켜주는 광경인 셈이다.
온전한 ‘나’로 살겠다는 고백
이 같은 점에 비춰 다시 한국 젊은 층 정서와 사고 해석으로 돌아가 보자. 《신동아》 2020년 12월호 기사 ‘2020년 히트곡 가사로 본 200 키워드 4가지’는 2020년 1~9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음악콘텐츠협회가 운영하는 국내 공인 음악차트 가온의 월간 스트리밍 부문에서 10위 안에 진입한 노래 45곡을 분석해 각 노래가 전달하는 정서나 감정 등을 분류한 바 있다. 이에 1위는 자아·자기애(12곡, 26.6%), 그다음 이별·슬픔·그리움·사랑·설렘·기쁨(10곡, 22.2%) 등으로 빈도(頻度)가 매겨졌다. 사실 1위 아래로는 1960년대든 1970년대든 비슷비슷했을 것 같은 인상이지만, 근래 가장 많이 다뤄진 내용이 자아(自我), 자기애(自己愛)라는 점은 눈에 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기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요계에 ‘나’를 강조하는 노래가 등장한 게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에는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 ‘난 알아요’(1992)를 필두로 ‘교실 이데아’(1994), ‘컴백홈’(1995) 등이 기존 질서에 편입되길 거부하는 청소년의 마음을 대변하면서 큰 사랑을 받았다. 학교 폭력을 비판한 H.O.T의 ‘전사의 후예’(1996), 입시 지옥 현실을 다룬 젝스키스의 ‘학원별곡’(1997),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을 꼬집은 DJ.DOC의 ‘DOC와 춤을’(1997), 자기 뜻대로 밀고 나갈 수 없어 악동이 된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신화의 ‘YO!(악동보고서)’(1999) 등도 인기를 모았다.
단 이 노래의 주인공들은 ‘사회 속의 내 존재’에 큰 관심을 뒀다. 2010년 전후로는 원더걸스의 ‘So Hot’, 포미닛의 ‘핫이슈’ 등 자기애(愛)를 과시하는 노래가 히트곡 반열에 올랐다. 요즘은 사회적 관계나 외부의 시선과 무관한 ‘나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래가 대중의 이목을 끈다는 게 차이점이다. (중략) 이 가운데 자아·자기애에 관한 노래를 살펴보면 온전한 ‘나’로 살겠다는 고백이 주를 이룬다. 한 번 지나가면 오지 않을 인생, 나로서 당당하게 살자고 신나게 외치는 내용이다.〉
MZ 세대의 모순
얼핏 남 눈치 보지 않는 개인주의 세대의 면면(面面)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듯도 하고, 또 많은 관련 언론 기사들이 그런 식으로 경향을 짚고 있기도 하지만, 서두의 기사에 등장하는 대목, 즉 “분명 나도 나만의 가치관이 있었을 텐데 어느새 잃어버렸다”는 어느 MZ 세대 회사원의 고백이 함께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어떤 때는 요가하며 사는 이효리의 삶을, 어떤 때는 명품 두르고 사는 도시 생활을 부러워” 하게 되는 소셜미디어의 각종 자극 탓에 오히려 ‘나의 본질’을 잊고 방황하며 점점 더 자존감(自尊感)을 잃는 MZ 세대의 현실이 이들을 타깃으로 한 노래 가사에서 역설적(逆說的)으로 엿보이기도 한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정신과의사 윤홍균의 책 《자존감 수업》이 자존감이 크게 떨어져 고통받는 MZ 세대의 폭발적 인기를 누리며 100만 부 이상 팔려나간 때도 소셜미디어가 현상적 인기를 누리며 한창 이용자를 늘려가던 2016년경이다.
한편 또 다른 현상들도 주목할 만하다. 대중가요에서는 “나, 나, 나”를 외치는 MZ 세대라지만, MZ 세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오히려 ‘나’를 극단적으로 억눌러야 하는 위계질서(位階秩序)의 산 현장, 공무원 직종이다. 시험 유형 변화로 허수(虛數) 지원자가 줄어 예년에 비해 경쟁률이 크게 떨어졌다는 2022년 국가직 공무원 9급 공채 경쟁률만 해도 여전히 29.2대 1을 기록하는 실정이다. 대중가요 가사가 ‘나’를 크게 외쳐대기 시작한 2010년대 초반에는 이 수치가 무려 93.3대 1까지 치솟았었다.
‘젊꼰’ 현상
한편, 근래 언론 기사들을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른바 ‘젊꼰’ 현상도 거론해볼 만하다. ‘젊꼰’은 ‘젊은 꼰대’를 줄인 말이다. 개인주의 세대로서 안 그럴 것 같았던 20~30대 MZ 세대들이 회사 등 조직체에 들어가면 오히려 중장년 상사들보다도 심하게 권위와 서열을 따지며 상대를 억누르려 하는 풍조를 가리킨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능력지상주의, 공감 능력 부족 등이 꼽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전보다 젊은 세대들이 겪어야 할 경쟁이 치열해진 사회에서 그만큼 서열의식(序列意識)도 함께 부풀어 올라 벌어지는 일이라는 해석이다. 그렇게 MZ 세대는 어쩌면 이전 세대들보다도 더 ‘나’를 잃고 위계와 서열에 스스로를 옭아매며 고통받고 있다는 의외의 현실이 엿보인다.
그런 현실을 반영하는 듯한 또 다른 대중가요 가사 유행도 눈에 띈다. 대중가요에서 영단어(英單語) 가사가 보편화된 지금, 뜬금없이 ‘Savage’라는 영어 단어가 젊은 층 타깃 대중가요 여기저기서 계속 등장하고 있다. 나름대로 ‘Savage 열풍’이라고까지 할 만하다. 대략 2020년경부터 시작된 유행으로, 방탄소년단 ‘Savage Love’, 블랙핑크 ‘Pretty Savage’, 에스파 ‘Savage’ 등은 아예 제목으로 Savage를 노출시켰고, 가사 중에 Savage가 등장하는 것만 해도 몬스타엑스 ‘Love Killa’, 있지 ‘Kidding Me’, 크래비티 ‘Bad Habits’, 더보이즈 ‘Ego’, 최강창민 ‘Chocolate’, 강승윤 ‘Better’, 송민호 ‘Ok man’ 등등 끝도 없다. 불과 1~2년 사이 이만큼 쏟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2020년 하반기에는 아예 ‘Savage’ 단어 자체가 구글 트렌드에 오르기도 했다.
‘Savage’는 많이들 알다시피 ‘야만적인’ ‘흉포한’ ‘몹시 사나운’ ‘미개한’ ‘맹렬한’ 등의 의미를 지닌 단어다. 그런데 이게 영미(英美)권에서 일종의 슬랭으로 쓰일 때는 ‘맹렬한’이라는 의미에서 발전해 ‘거침없는’ 정도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듣는 사람이 기분 상하거나 당황해할 것을 신경 쓰지 않은 채 거침없고 당당하게 자기 의사를 표명할 때 ‘Savage’를 많이 쓴다. 이런 의미가 힙합 문화와 만나,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멋진 태도라는 식으로도 쓰여 때로는 ‘Savage’ 자체가 ‘멋지다’의 또 다른 표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Cool’보다 좀 더 거친 느낌의 ‘멋지다’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Savage 열풍’도 어쩌면 엄혹(嚴酷)한 현실 속에서 자신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남들 앞에 거침없고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워진 MZ 세대의 입장을 반영해 울분을 해소시켜주려는 가사 흐름이 아닐까 싶다. ‘지금 나는 Savage하다’가 아니라 ‘Savage하게 되고 싶다’는 동경(憧憬)을 표현한 것이리라는 얘기다. 날이 갈수록 거칠고 혼잡해지는 인터넷 공간의 언어폭력 현실 역시 그런 갈증과 욕망이 한껏 이지러진 형태로 해소되는 현장일 수 있다.
그렇게 다시 모든 것은 서두의 ‘부럽지가 않어’로 돌아간다. MZ 세대의 ‘진짜’ 내면적 현실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분방(奔放)한 느낌이 아닌 듯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점점 더 위축(萎縮)돼가는 모양새다. 소셜미디어의 자극으로 끝없이 자격지심에 시달리고 그만큼 현실에 대한 불만도 폭증(暴增)하며, 그 과정에서 ‘나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점차 망각(忘却)해가고, 또 그런 혼란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기성세대의 위계와 서열문화로 스스로를 옭아매 더더욱 갑갑하게 내면이 침잠(沈潛)해가는 흐름. 어쩌면 이것이 저 알쏭달쏭 그 본모습을 알기 힘든 MZ 세대의 숨겨진 진실일 수도 있다. 적어도 그들이 소비하는 대중문화를 통해 바라본 모습들로서는 그렇다.
대중가요 ‘오락실’의 부활
끝으로, 대중가요 가사와 관련해 근래 주목해볼 만한 특이점 두 가지를 더 짚어보겠다. 먼저, 앞서 IMF 외환위기 당시 쓸쓸한 가장(家長)의 모습을 담았다는 한스밴드의 노래 ‘오락실’. 이 노래가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던 2020년 하반기부터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를 흔히 역주행(逆走行)이라고들 하는데, 유튜브에서 노래를 다시 찾아 듣는 사람들이 점차 늘다 보니 유튜브 알고리즘도 이를 포착해 붐을 유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중앙일보》 2020년 12월 14일 자 기사 ‘[시선2035] ‘오락실’의 슬픈 역주행’은 “하지만 추억을 소환하는 옛 노래를 마냥 반길 수도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중략) 이 노래가 ‘역주행’한다는 건 이 노래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 다시 말해 직장을 잃은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불길한 징조”라면서 유튜브의 ‘오락실’ 영상에 실린 댓글 하나를 소개했다. “내가 중학생 때 나온 노래인데 난 지금 꽤 큰 아이의 아빠가 됐습니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무급휴직 중인데 살아남기 위해 오락실 대신 독서실을 다닙니다.” 노래 가사에 대한 공감(共感)을 기반으로 옛 노래가 새로운 현실과 만나 다시 소환(召喚)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세대가 만나버리기도 하는 안타까운 풍경이라 할 수 있다.
BTS의 ‘8도 강산’
한편, 또 다른 특이점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K팝 그룹 방탄소년단 노래의 가사에서 발견된다. 노래 제목은 ‘팔도강산’이다. 2013년에 나온 노래이니 거의 10년 가까이 된 곡이긴 하지만, 근래 이런저런 언론미디어를 통해 현재 젊은 층의 인식을 돌아보는 계기로써 종종 인용되고 있다.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나와서다.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 충청도부터 전라도
마마 머라카노 (What) / 마마 머라카노 (What)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 충청도부터 전라도
우리가 와불따고 전하랑께 (What) / 우린 멋져부러 허벌라게”
방탄소년단 멤버들 고향이 가지각색인 데서 착안(着眼)한 듯한 다소 유머러스한 노래이지만, 중요한 점이 있다. 제목은 ‘팔도강산’인데 그 팔도강산을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 충청도부터 전라도”라고 대한민국의 실효적(實效的) 영토에 한해서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신세대들에게 ‘우리나라’라는 개념을 “백두부터 한라까지”라는 식의 민족주의적 수사(修辭)에서 벗어나, 보다 국가주의적인 차원에서 대한민국 영토를 명확히 가리키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이 같은 부분들 역시 좀 더 면밀히 관찰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결국 모든 노래는 각자 나름의 얘기를 전하고, 그 모든 얘기에는 그 시대를 관통하는 의식(意識)들이 담겨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시대정신(時代精神)’이라는 묵직한 개념도 어딘지 거창한 선언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시대에 즐겨 불리던 유행가 한 자락이라 볼 수도 있겠다.⊙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중략)
너한테 십만 원이 있고 나한테 백만 원이 있어 / 그러면 너는 내가 부럽겠지 짜증나겠지
근데 입장을 한 번 바꿔서 우리가 생각을 해 보자고 / 나는 과연 니 덕분에 행복할까 내가 더 많이 가져서 만족할까
아니지 세상에는 천만 원을 가진 놈도 있지 / 난 그 놈을 부러워하는 거야 짜증나는 거야 (중략)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럽지가 않다는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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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지가 않어’의 가수 장기하. 사진=조선DB |
〈회사원 서모(29)씨는 1년째 SNS를 줄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두서없어진’ 자신의 취향을 되찾기 위해서다. 그는 “분명 나도 나만의 가치관이 있었을 텐데 어느새 잃어버렸다”고 했다. 서씨는 그 원인을 SNS에 반복 노출됐기 때문으로 생각했다. SNS를 자주 보며 ‘부럽다’ ‘신기하다’에서 끝나던 감상이 점점 형언하기 어려운 자격지심 같은 감정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중략)
지난 2월 발매된 가수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추세와 관련이 있다. 이 앨범은 SNS를 이용하며 MZ 세대가 느껴온 자격지심을 겨냥한다. 유튜브 숏츠 등 숏폼 동영상에서 배경음으로 자주 사용되면서 밈(meme)으로 자리 잡았다. 노랫말은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세상에 부러움이란 걸 모르는 놈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라고 말하지만, 누구보다 이 노래에 열광하는 건 ‘자랑’에 짓눌리고 ‘부러움’에 괴로워해 본 MZ들이다. (중략)
SNS는 여전히 MZ 세대의 주요 놀이 수단이지만, 다이어트 또는 거리 두기를 시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SNS 이용현황’ 설문조사에서는 다른 사람의 게시글 확인 빈도와 관련해 “하루에도 여러 번 확인한다”고 답한 20대가 2020년 35%에서 2021년 29.5%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10대도 34.4%에서 30.6%로 조사됐다.〉
‘SNS 다이어트’
확실히 MZ 세대들 정서와 가치관, 세계관 등에 있어 소셜미디어(SNS)가 미치는 영향은 상당한 것으로 그간 여러 차례 지적돼왔다. 소셜미디어 공간 안에서 서로들 ‘우월한 삶’ 경쟁을 펼치는 통에 각자 자격지심(自激之心)들도 심해지고, 자기 삶에 점점 더 만족하지 못하며 자기 이상을 실현해주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흐름도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소셜미디어의 부정적 영향이 2010년대 들어 뚜렷이 가시화(可視化)되는 젊은 여성층의 전반적 좌경화(左傾化) 흐름과도 연결되고 있다는 해석들이 많다. 그런 심적(心的) 고통을 벌써 10여 년째 겪다 보니 이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위 기사에서 말하듯 소셜미디어 이용 시간을 알아서 줄이는 ‘SNS 다이어트’에 하나둘 나서고 있는 것일 테고, 또 그런 배경이 존재하다 보니 세태(世態) 변화에 민감한 문화예술계에서 ‘부럽지가 않어’ 같은 노래를 만들고 그 노래가 공전(空前)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하는 것일 테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보통 기성세대들이 일상 속에서 포착(捕捉)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들의 정서와 사고 등을 알아보려 할 때 영화나 TV 드라마, 문학 등 서사(敍事) 구조 예술 장르 유행을 참조(參照)하려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당대 대중가요 가사를 살펴보는 쪽이 더 유의미(有意味)한 결과를 내는 때가 많다. 특히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노래들일수록 시시각각 변하는 젊은 층의 고민이나 사고방식 등을 반영하지 못하면 ‘구시대적(舊時代的)’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시장에서 도태(淘汰)되기 쉽기에 훨씬 치열하게 새로운 세태들을 담아내려 애쓰기 때문이다.
대중가요 속 永東과 江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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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중심이 강남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문희옥의 ‘사랑의 거리’. |
당시 ‘강남’이라는 명칭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현(現)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를 묶어 영동(永東)이라는 명칭이 주로 쓰였다. 따지고 보면 이도 1960년대에 ‘영등포(永登浦)의 동(東)쪽’이란 뜻으로 지어진 명칭이었는데, 1960년대만 해도 이 지역이 별다른 볼거리 없는 시골 수준이어서 꽤 큰 시가지(市街地)였던 영등포를 엮어 지칭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부르는 명칭부터가 참 애매한 느낌이었는데도 대중음악계는 1980년대 내내 ‘영동 찬가(讚歌)’를 계속해서 쏟아냈다.
‘영동 블루스’ ‘못 잊을 영동의 밤’ ‘영동 나그네’ ‘영동 네온가’ ‘영동 민들레’, 그리고 가수 주현미를 일약 198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띄워 올린 ‘비 내리는 영동교’까지 온통 영동 천지였다. 부르는 명칭이 ‘강남’으로 달라지기 시작한 것도 ‘강남 멋쟁이’ ‘강남 블루스’ ‘강남 아리랑’ ‘강남 사모님’ 등의 노래 제목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번화한 지역이 신사동 일대였음을 주현미의 최대 히트곡 ‘신사동 그 사람’을 통해 새삼 확인해볼 수 있다.
여기서 시대의 한 분기점으로 종종 거론되는 노래가 문희옥이 1989년 발표한 ‘사랑의 거리’다. 가사를 살펴보자.
“여기는 남서울 영동 / 사랑의 거리
사계절 모두 봄 봄 봄 / 웃음꽃이 피니까
외롭거나 쓸쓸할 때는 누구라도 / 한 번쯤은 찾아오세요”
이를 두고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이제 대중가요 노랫말의 주 무대가 과거의 종로, 무교동, 명동이 아니라 엄연히 신흥지인 남서울 영동으로 바뀌었음을 선포하는 득의양양한 강남의 찬가였다. 그것은 북에서 남으로 서울 도심이 이동, 그것도 완전 이동했다는 것에 대해 방점을 찍은 것을 의미했다”면서 “거대 빌딩의 현란함, 상업적 자본 회전의 우위와 같은 단순한 외형의 승리가 아니라 도시민의 바이오리듬과 같은 내면에 있어서도 중력은 강남으로 옮겨왔다는 것을 알리면서 강북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경향신문》 2004년 12월 2일 자 “(6)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고 논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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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사태 당시를 다룬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
반면 대중가요 가사로는 구제금융 신청 바로 다음 해인 1998년부터 일찌감치 등장했었다. 10대 자매들로 구성됐던 그룹 한스밴드의 노래 ‘오락실’이다.
“시험을 망쳤어 / 오 집에 가기 싫었어
열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어머 이게 누구야 / 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빠
장난이 아닌 걸 / 또 최고 기록을 깼어
처음이란 아빠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용돈을 주셨어 / 단 조건이 붙었어
엄마에게 말하지 말랬어”
지금이라면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힘들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누구라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화자(話者)의 아빠는 IMF 외환위기 여파로 회사에서 정리해고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 얘기를 가족들에게, 심지어 아내에게조차 차마 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동네 오락실에서 소일(消日)하는 모습이다.
같은 맥락에서 같은 해 보이그룹 H.O.T의 노래 ‘빛’에는 “사업에 실패했어 / 사랑에 실패했어 / 그 어떤 것도 당신을 쓰러뜨릴 순 없어”라는 가사가 등장하고, 이듬해에는 보이그룹 GOD의 노래 ‘어머님께’가 크게 히트하며 이른바 ‘IMF 정서’를 이어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어머님께’는 정확히 IMF 외환위기 상황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경제적으로 궁핍(窮乏)해진 당시 대중에게 호소(呼訴)하는 내용으로서 비슷한 계통 가사들의 등장을 부추겼다. 이처럼 대중가요는 모든 대중문화 장르 중 가장 빠르고 가장 직설적으로 당대 세태들을 즉각 반영해온 역사다.
‘J팝 가장 지겨운 가사 톱5’
그런데 대중가요의 가사 해석에 있어 좀 더 생각해볼 만한 부분도 존재한다. 가사 내용을 ‘있는 그대로’ 지금 돌아가는 세태로서, 특히 젊은 층의 정서와 사고를 대변하는 내용으로서 받아들여서는 곤란한 때도 많다는 것이다. 오히려 당대에 결핍(缺乏)된 부분, 해소되지 못한 욕망을 문화적으로 해소시켜주기 위해 특정 가사가 등장하는 때도 많다. 특히 정서적인 부분을 짚는 가사일수록 그렇다.
예를 통해 풀어보면 이해가 쉽다. 근래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꼽은 ‘J팝 가장 지겨운 가사 톱5’라는 게시물이 있다. 말 그대로, 일본 대중가요에 너무 많이 등장해 이제는 듣기조차 지겨워진 가사들을 가리킨다. 차례로 “혼자가 아니야” “너를 지키고 싶어” “그 손을 놓지 마”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대의 이름을 불렀다” 등이다. 실제로 위 가사들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일본 대중가요에 자주 등장하며, 일본밴드 백-온의 2013년 노래 ‘2분의 1’처럼 저 다섯 문장이 모조리 들어가는 노래까지 존재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의 해석이 특이하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모두 혼자라고 느끼고,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여기며, 타인은 매번 내 손을 놓아버리기에 이런 가사들이 유행하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특유의 가히 자폐적(自斃的)이기까지 한 개인주의 풍조 탓에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가 멀어지고, 그래서 발생하는 인간관계에의 갈증을 대중문화가 대리 해소시켜주는 광경인 셈이다.
이 같은 점에 비춰 다시 한국 젊은 층 정서와 사고 해석으로 돌아가 보자. 《신동아》 2020년 12월호 기사 ‘2020년 히트곡 가사로 본 200 키워드 4가지’는 2020년 1~9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음악콘텐츠협회가 운영하는 국내 공인 음악차트 가온의 월간 스트리밍 부문에서 10위 안에 진입한 노래 45곡을 분석해 각 노래가 전달하는 정서나 감정 등을 분류한 바 있다. 이에 1위는 자아·자기애(12곡, 26.6%), 그다음 이별·슬픔·그리움·사랑·설렘·기쁨(10곡, 22.2%) 등으로 빈도(頻度)가 매겨졌다. 사실 1위 아래로는 1960년대든 1970년대든 비슷비슷했을 것 같은 인상이지만, 근래 가장 많이 다뤄진 내용이 자아(自我), 자기애(自己愛)라는 점은 눈에 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기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요계에 ‘나’를 강조하는 노래가 등장한 게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에는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 ‘난 알아요’(1992)를 필두로 ‘교실 이데아’(1994), ‘컴백홈’(1995) 등이 기존 질서에 편입되길 거부하는 청소년의 마음을 대변하면서 큰 사랑을 받았다. 학교 폭력을 비판한 H.O.T의 ‘전사의 후예’(1996), 입시 지옥 현실을 다룬 젝스키스의 ‘학원별곡’(1997),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을 꼬집은 DJ.DOC의 ‘DOC와 춤을’(1997), 자기 뜻대로 밀고 나갈 수 없어 악동이 된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신화의 ‘YO!(악동보고서)’(1999) 등도 인기를 모았다.
단 이 노래의 주인공들은 ‘사회 속의 내 존재’에 큰 관심을 뒀다. 2010년 전후로는 원더걸스의 ‘So Hot’, 포미닛의 ‘핫이슈’ 등 자기애(愛)를 과시하는 노래가 히트곡 반열에 올랐다. 요즘은 사회적 관계나 외부의 시선과 무관한 ‘나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래가 대중의 이목을 끈다는 게 차이점이다. (중략) 이 가운데 자아·자기애에 관한 노래를 살펴보면 온전한 ‘나’로 살겠다는 고백이 주를 이룬다. 한 번 지나가면 오지 않을 인생, 나로서 당당하게 살자고 신나게 외치는 내용이다.〉
MZ 세대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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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량진 공무원학원가의 공시생들. MZ 세대는 自我를 주장하면서도 自我를 억눌러야 하는 공무원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사진=조선DB |
그렇게 “어떤 때는 요가하며 사는 이효리의 삶을, 어떤 때는 명품 두르고 사는 도시 생활을 부러워” 하게 되는 소셜미디어의 각종 자극 탓에 오히려 ‘나의 본질’을 잊고 방황하며 점점 더 자존감(自尊感)을 잃는 MZ 세대의 현실이 이들을 타깃으로 한 노래 가사에서 역설적(逆說的)으로 엿보이기도 한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정신과의사 윤홍균의 책 《자존감 수업》이 자존감이 크게 떨어져 고통받는 MZ 세대의 폭발적 인기를 누리며 100만 부 이상 팔려나간 때도 소셜미디어가 현상적 인기를 누리며 한창 이용자를 늘려가던 2016년경이다.
한편 또 다른 현상들도 주목할 만하다. 대중가요에서는 “나, 나, 나”를 외치는 MZ 세대라지만, MZ 세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오히려 ‘나’를 극단적으로 억눌러야 하는 위계질서(位階秩序)의 산 현장, 공무원 직종이다. 시험 유형 변화로 허수(虛數) 지원자가 줄어 예년에 비해 경쟁률이 크게 떨어졌다는 2022년 국가직 공무원 9급 공채 경쟁률만 해도 여전히 29.2대 1을 기록하는 실정이다. 대중가요 가사가 ‘나’를 크게 외쳐대기 시작한 2010년대 초반에는 이 수치가 무려 93.3대 1까지 치솟았었다.
‘젊꼰’ 현상
한편, 근래 언론 기사들을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른바 ‘젊꼰’ 현상도 거론해볼 만하다. ‘젊꼰’은 ‘젊은 꼰대’를 줄인 말이다. 개인주의 세대로서 안 그럴 것 같았던 20~30대 MZ 세대들이 회사 등 조직체에 들어가면 오히려 중장년 상사들보다도 심하게 권위와 서열을 따지며 상대를 억누르려 하는 풍조를 가리킨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능력지상주의, 공감 능력 부족 등이 꼽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전보다 젊은 세대들이 겪어야 할 경쟁이 치열해진 사회에서 그만큼 서열의식(序列意識)도 함께 부풀어 올라 벌어지는 일이라는 해석이다. 그렇게 MZ 세대는 어쩌면 이전 세대들보다도 더 ‘나’를 잃고 위계와 서열에 스스로를 옭아매며 고통받고 있다는 의외의 현실이 엿보인다.
그런 현실을 반영하는 듯한 또 다른 대중가요 가사 유행도 눈에 띈다. 대중가요에서 영단어(英單語) 가사가 보편화된 지금, 뜬금없이 ‘Savage’라는 영어 단어가 젊은 층 타깃 대중가요 여기저기서 계속 등장하고 있다. 나름대로 ‘Savage 열풍’이라고까지 할 만하다. 대략 2020년경부터 시작된 유행으로, 방탄소년단 ‘Savage Love’, 블랙핑크 ‘Pretty Savage’, 에스파 ‘Savage’ 등은 아예 제목으로 Savage를 노출시켰고, 가사 중에 Savage가 등장하는 것만 해도 몬스타엑스 ‘Love Killa’, 있지 ‘Kidding Me’, 크래비티 ‘Bad Habits’, 더보이즈 ‘Ego’, 최강창민 ‘Chocolate’, 강승윤 ‘Better’, 송민호 ‘Ok man’ 등등 끝도 없다. 불과 1~2년 사이 이만큼 쏟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2020년 하반기에는 아예 ‘Savage’ 단어 자체가 구글 트렌드에 오르기도 했다.
‘Savage’는 많이들 알다시피 ‘야만적인’ ‘흉포한’ ‘몹시 사나운’ ‘미개한’ ‘맹렬한’ 등의 의미를 지닌 단어다. 그런데 이게 영미(英美)권에서 일종의 슬랭으로 쓰일 때는 ‘맹렬한’이라는 의미에서 발전해 ‘거침없는’ 정도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듣는 사람이 기분 상하거나 당황해할 것을 신경 쓰지 않은 채 거침없고 당당하게 자기 의사를 표명할 때 ‘Savage’를 많이 쓴다. 이런 의미가 힙합 문화와 만나,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멋진 태도라는 식으로도 쓰여 때로는 ‘Savage’ 자체가 ‘멋지다’의 또 다른 표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Cool’보다 좀 더 거친 느낌의 ‘멋지다’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Savage 열풍’도 어쩌면 엄혹(嚴酷)한 현실 속에서 자신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남들 앞에 거침없고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워진 MZ 세대의 입장을 반영해 울분을 해소시켜주려는 가사 흐름이 아닐까 싶다. ‘지금 나는 Savage하다’가 아니라 ‘Savage하게 되고 싶다’는 동경(憧憬)을 표현한 것이리라는 얘기다. 날이 갈수록 거칠고 혼잡해지는 인터넷 공간의 언어폭력 현실 역시 그런 갈증과 욕망이 한껏 이지러진 형태로 해소되는 현장일 수 있다.
그렇게 다시 모든 것은 서두의 ‘부럽지가 않어’로 돌아간다. MZ 세대의 ‘진짜’ 내면적 현실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분방(奔放)한 느낌이 아닌 듯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점점 더 위축(萎縮)돼가는 모양새다. 소셜미디어의 자극으로 끝없이 자격지심에 시달리고 그만큼 현실에 대한 불만도 폭증(暴增)하며, 그 과정에서 ‘나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점차 망각(忘却)해가고, 또 그런 혼란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기성세대의 위계와 서열문화로 스스로를 옭아매 더더욱 갑갑하게 내면이 침잠(沈潛)해가는 흐름. 어쩌면 이것이 저 알쏭달쏭 그 본모습을 알기 힘든 MZ 세대의 숨겨진 진실일 수도 있다. 적어도 그들이 소비하는 대중문화를 통해 바라본 모습들로서는 그렇다.
대중가요 ‘오락실’의 부활
끝으로, 대중가요 가사와 관련해 근래 주목해볼 만한 특이점 두 가지를 더 짚어보겠다. 먼저, 앞서 IMF 외환위기 당시 쓸쓸한 가장(家長)의 모습을 담았다는 한스밴드의 노래 ‘오락실’. 이 노래가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던 2020년 하반기부터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를 흔히 역주행(逆走行)이라고들 하는데, 유튜브에서 노래를 다시 찾아 듣는 사람들이 점차 늘다 보니 유튜브 알고리즘도 이를 포착해 붐을 유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중앙일보》 2020년 12월 14일 자 기사 ‘[시선2035] ‘오락실’의 슬픈 역주행’은 “하지만 추억을 소환하는 옛 노래를 마냥 반길 수도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중략) 이 노래가 ‘역주행’한다는 건 이 노래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 다시 말해 직장을 잃은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불길한 징조”라면서 유튜브의 ‘오락실’ 영상에 실린 댓글 하나를 소개했다. “내가 중학생 때 나온 노래인데 난 지금 꽤 큰 아이의 아빠가 됐습니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무급휴직 중인데 살아남기 위해 오락실 대신 독서실을 다닙니다.” 노래 가사에 대한 공감(共感)을 기반으로 옛 노래가 새로운 현실과 만나 다시 소환(召喚)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세대가 만나버리기도 하는 안타까운 풍경이라 할 수 있다.
BTS의 ‘8도 강산’
한편, 또 다른 특이점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K팝 그룹 방탄소년단 노래의 가사에서 발견된다. 노래 제목은 ‘팔도강산’이다. 2013년에 나온 노래이니 거의 10년 가까이 된 곡이긴 하지만, 근래 이런저런 언론미디어를 통해 현재 젊은 층의 인식을 돌아보는 계기로써 종종 인용되고 있다.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나와서다.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 충청도부터 전라도
마마 머라카노 (What) / 마마 머라카노 (What)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 충청도부터 전라도
우리가 와불따고 전하랑께 (What) / 우린 멋져부러 허벌라게”
방탄소년단 멤버들 고향이 가지각색인 데서 착안(着眼)한 듯한 다소 유머러스한 노래이지만, 중요한 점이 있다. 제목은 ‘팔도강산’인데 그 팔도강산을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 충청도부터 전라도”라고 대한민국의 실효적(實效的) 영토에 한해서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신세대들에게 ‘우리나라’라는 개념을 “백두부터 한라까지”라는 식의 민족주의적 수사(修辭)에서 벗어나, 보다 국가주의적인 차원에서 대한민국 영토를 명확히 가리키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이 같은 부분들 역시 좀 더 면밀히 관찰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결국 모든 노래는 각자 나름의 얘기를 전하고, 그 모든 얘기에는 그 시대를 관통하는 의식(意識)들이 담겨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시대정신(時代精神)’이라는 묵직한 개념도 어딘지 거창한 선언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시대에 즐겨 불리던 유행가 한 자락이라 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