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제작비 그리 많이 들지 않고, 흥행성도 있어
⊙ 김정은 등장 이후 남북 간 화해 다룬 영화보다는 善惡 구도 명확한 영화가 흥행 성공
⊙ 영화평론가들, 흥행 성공작들도 ‘반공영화’ ‘정훈영화’라고 혹평… 남북 간 화해 메시지 담으면 호평
⊙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닌 전쟁’이어서 미국에서는 외면… 중국에서는 ‘抗美援朝전쟁’ 영화 제작 붐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 김정은 등장 이후 남북 간 화해 다룬 영화보다는 善惡 구도 명확한 영화가 흥행 성공
⊙ 영화평론가들, 흥행 성공작들도 ‘반공영화’ ‘정훈영화’라고 혹평… 남북 간 화해 메시지 담으면 호평
⊙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닌 전쟁’이어서 미국에서는 외면… 중국에서는 ‘抗美援朝전쟁’ 영화 제작 붐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6월은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이다. 이때가 되면 방송가는 이런저런 관련 프로그램들을 다수 편성한다. 특히 KBS, MBC, KTV 등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방송사 중심으로 한국전쟁 관련 다큐멘터리나 옛 한국전쟁 영화들을 방영해주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특집드라마가 편성되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각 방송사에 한국전쟁 영화를 제공하는 한국영화계 측에선 상황이 다르다. 당장 올해도 6월에 개봉하는 한국전쟁 영화는 한 편도 없고, 올해 통틀어 아직까지 없는 상황이다. 비단 코로나19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분류에 따르면 2010년 이후 10여 년간 한국전쟁을 다룬 한국영화는, 도입부에 전쟁 상황이 잠시 등장하는 〈국제시장〉까지 포함해봐야 고작 9편에 불과하다. 1년에 한 편꼴도 안 나온다는 얘기다. 근 100년 내에 직접 치열한 전쟁을 겪은 나라 중 이렇게까지 자국(自國) 전쟁을 영화로 다루지 않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패전국 일본보다 적어
혹자는 이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근현대 전쟁을 다룬 영화의 유행이 지나 그렇다는 분석을 내리기도 한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얘기다. 당장 영화의 메카 할리우드가 위치한 미국만 해도 그렇다. 미국에서 근현대 전쟁영화가 대중의 관심에서 밀려났던 건 오히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다. 이후로는 상황이 달랐다. 1998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대단한 흥행 성공을 거둔 뒤 근현대 전쟁영화는 완전히 부활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2000년대 들어 미국이 겪은 수많은 전쟁 중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만 딱 집어 설명하려 해도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개중에는 〈진주만〉 〈위 워 솔져스〉 〈작전명 발키리〉 〈U-571〉 〈언브로큰〉 등 블록버스터 흥행작도 많다. 예술성을 인정받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지명됐던 영화만도 〈핵소 고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덩케르크〉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등 수없이 나온다. 여기에 제1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걸프전 등을 다룬 영화까지 합치면 진짜 끝도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 한국에서 한국전쟁을 다루는 영화는 엄밀히 패전국(敗戰國)인 일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루는 영화만큼도 안 나온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확실히 일본에서는 우익적(右翼的) 시각이든 좌익적(左翼的) 시각이든, 혹은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소위 피해자 입장의 반전(反戰) 평화주의 시각이든 그들이 겪은 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최소한 한국보다는 많이 나온다. 2010년대만 해도 〈일본 패망 하루 전〉 〈영원의 제로〉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태평양의 기적: 폭스라 불렸던 남자〉 〈캐터필러〉 〈노비〉 등 왕성하게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으로도 등장해 〈바람이 분다〉 〈이 세상의 한 구석에〉 등이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영화는 흥행성 없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국이 참 특이한 상황이다. 근현대 전쟁영화는 본래 어디서건 인기 있는 장르다. 애초 서부극(西部劇)과 함께 오락성 높은 액션영화의 전형(典型)을 만들어낸 장르이기에 늘 상업성 있고 대중의 호응도 좋았다. 또 극단적 상황에 놓인 인간 군상(群像)을 다룬다는 점에서 진지한 인간탐구가 가능하고 휴먼 드라마로서 가치가 높아 비평적으로도 좋은 반응을 얻어내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언급했듯 근현대 전쟁영화 중에서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경우가 많은 것도 다 그 때문이다. 한마디로, 오락성과 작품성을 겸비하는 장르의 대표 콘텐츠 중 하나가 바로 근현대 전쟁영화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이토록 ‘드문드문’ 한국전쟁 영화가 나오는 걸까. 이에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제작비(製作費) 차원 문제다. 전쟁영화는 상대적으로 많은 엑스트라와 소품이 필요하기에 제작비가 많이 드는 장르다. 한국에서도 웬만한 전쟁영화라면 100억원 이상 자본이 투여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흥행 부담도 커지고 전반적으로 리스크가 크기에 꺼린다는 논리다.
상황을 잘 살펴보면 그런 식으로만 넘겨짚기에는 반론(反論)의 여지가 많다. 한국에서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장르는 사극(史劇)이다.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영화처럼 수백 대의 탱크나 항공모함 등이 등장하는 게 아니니 요즘 액션영화 치고 그렇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건 또 아니라는 것이다.
또 있다.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한국에서 흥행 타율이 꽤 높은 편이라는 점이다. 2010년 이후 고작 9편밖에 안 나왔지만, 그중 〈포화 속으로〉 〈고지전〉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 4편이 흥행 성공작이다. 절반 정도 타율이면 한국영화계에서 꽤 충성도(忠誠度) 높은 장르다. 웬만한 현대 도시액션영화들은 흥행 타율이 이보다 높지는 않은데도 매년 수없이 등장한다. 그런데 왜 유독 전쟁영화만 이토록 드문드문 나오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른바 ‘충무로’라 불리는 한국영화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을 든다. 필자가 실제 현직 영화업계 종사자들을 만나 들어본 얘기 중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두 가지 이유다.
먼저,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너무 심하게 도식화(圖式化)돼 있고, 그 도식화된 틀을 깨기가 어려워 더 이상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전쟁 영화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남북 간 화해를 강조하는 영화와 어쩔 수 없는 대립상황을 치열하게 묘사하는 영화다. 전자(前者)가 주로 픽션, 가상(假想)의 얘기라면, 후자(後者)는 비교적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는 특성도 존재한다. 전자의 최대 히트작이 2005년 664만 관객을 모은 〈웰컴 투 동막골〉이라면 후자의 최대 히트작은 2016년 705만 관객이 본 〈인천상륙작전〉을 꼽을 수 있다.
근래는 대결구도 명확한 영화 성공
그런데 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체제가 시작되면서 한국 대중, 그중에서도 특히 영화의 주(主) 관객층인 젊은 층에서 북한에 대한 인식이 빠른 속도로 악화되기 시작됐다고 한다. 이에 대해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어찌됐건 당장 ‘남북 간 화해 메시지’ 영화들의 연이은 흥행 실패로 상황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2010년대에만 국군과 인민군 병사의 우정을 다룬 〈서부전선〉 등이 흥행에 계속 실패했다. 반면에 명확한 선악(善惡) 구도를 바탕으로 남북 간 대결을 그린 〈포화 속으로〉 〈인천상륙작전〉 등은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아니지만 유사하게 명확한 선악 구도를 제시한 2015년 영화 〈연평해전〉도 605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그럼 그렇게 실제 역사에 기반한 전쟁영화를 계속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전쟁은 수많은 전투와 특수 상황이 존재한 전쟁이지만, 개중에 한 편의 영화로 확대시킬 만한 소재는 또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미 영화로 쓸 만한 얘기는 거의 다 나온 상황이고, 그래서 결국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전투까지 찾아낸 2019년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150여억원 제작비를 들여 불과 114만 관객을 모으는 대실패를 겪어야 했다.
결국 결론은 단순하다. 실화 소재로서는 이제 소재 부족이 오고 있기에 만들고 싶어도 더 만들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들의 혹평
또 다른 측면도 존재한다. 영화 비평에 대한 부담감이다. 사실 문화예술 평단(評壇)의 전반적 좌경화(左傾化) 분위기는 세계 어디서나 비슷비슷하다. 큰 의미에서는 문화예술계 자체가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1960년대 신좌파(新左派)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극단적으로 상황을 단순화시킨 반전주의(反戰主義), 생태주의(生態主義), 반문명주의(反文明主義), 성해방(性解放), 다원주의(多元主義) 등의 가치들을 공유하는 분위기다. 한국에서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이런 국내 평단 분위기 속에서 철저하게 ‘남북 간 화해 메시지’를 표방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두들겨 맞는’ 일들이 허다하게 벌어진다.
예컨대 2010년 영화 〈포화 속으로〉 상황을 돌아보자.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해 집결한 학도병(學徒兵) 71명의 희생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해 일반 관객들의 평가와 평단의 평가가 좀 심하게 차이 난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영화 페이지에서 〈포화 속으로〉에 대한 관람객·네티즌 평점은 10점 만점에 8.23점을 기록하고 있다. 5월 5일 현재까지 1만9634명이 참여한 결과다. 상당히 좋은 평가다. 반면 평론가 평점은 게재된 평론가 7명의 점수를 평균 내봤을 때 10점 만점에 3.75점이 나온다. 관람객·네티즌은 명확하게 ‘좋은 영화’라 여겼지만, 평단에서는 정반대로 명확하게 보지 말아야 할 ‘나쁜 영화’로 결론 내렸다는 것이다.
물론 일반 대중과 평단의 반응이 서로 엇갈리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런데 오락성 강한 상업영화를 놓고 이렇게까지 갈리는 일은 꽤나 드물고, 낮은 평점을 준 평론가들의 ‘한줄 평’을 살펴보면 어딘지 서로 비슷한 맥락에서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인상도 강하게 든다. “뉴라이트 역사관에 빛나는 150억원짜리 반공영화”(황진미), “전쟁 장르의 진화와 시대정신에 모두 역행한다”(이용철), “갓 제대한 학도병들이 만든 영화 같다”(이동진), “겉멋 속으로”(박평식), “110억짜리 정훈교육 영화”(최광희) 등이다.
대부분 영화의 이데올로기와 이른바 ‘시대정신’이라는 측면을 짚어 비판한다. 영화 자체의 만듦새를 거론하며 비판하는 태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데올로기 강의를 들으러 입장료를 내는 게 아니라 그저 오락성 강한 엔터테인먼트로서 〈포화 속으로〉를 선택할 대다수 관객의 입장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 북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해외로만 넘어가도 〈포화 속으로〉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진다. 미국 영화 종합사이트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만 해도 주로 해외 네티즌들이 주는 평점에서 〈포화 속으로〉는 현재 10점 만점에 7.3점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네이버의 관람객·네티즌 평가에 훨씬 가깝다. 해외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영화여서 미국 평단의 반응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영화비평 모음 사이트 ‘로튼토마토’에 게재된 두 미국 평론가는 어찌 됐건 호의적인 반응을 보내 ‘빨간 토마토’ 표시를 받았다. 결국 엔터테인먼트로서는 대부분 합격점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평단의 편 가르기
반면, 영화의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아도 일단 ‘남북 간 화해 메시지’를 다루기만 하면 국내 평단의 평가는 훨씬 후해진다. 1953년 정전협정(停戰協定) 3일 전을 배경으로 국군과 인민군 병사 사이 우정과 비극을 다룬 2015년 영화 〈서부전선〉이 한 예다. 같은 네이버 관람객・네티즌 평점은 7.17점으로 〈포화 속으로〉보다 떨어지지만, 평론가 평점은 〈포화 속으로〉의 3.75점보다는 훨씬 우호적이다. 평론가 6명에게서 평균 5.8점, 대략 ‘볼 만한 영화’ 정도 평가는 받고 있다. 한줄평도 “긴장완화를 지향한단 점에서 지지”(황진미), “두 남자는 아기처럼 누워 잤다. 그리고 형제가 되었다”(이용철) 등 만듦새보다는 ‘남북 간 화해 메시지’ 자체를 높이 평가하는 내용들이 많다.
이 같은 국내 평단의 유별난 ‘편 가르기’ 태도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에 있어 분명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제 영화비평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세상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다 할 스타배우나 스타감독 이름이 없는 영화들은 여전히 개봉 전 기대치를 잡아주는 평단의 비평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영화비평을 읽지는 않지만 여전히 영화에 관심 많은 마니아들은 이를 꼬박꼬박 찾아 읽고, 특정영화의 평가가 아주 좋다거나 혹은 아주 나쁘면 이를 화젯거리 삼아 수십 군데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평단 반응을 퍼 나르기도 한다. 이런 식이면 그 효과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증폭돼버린다.
이 같은 문제는 위 언급한 한국전쟁 영화의 소재 다양화 측면과 정확히 맞물린다. 북한에 대해 냉정하게 바라보기 시작한 젊은 관객층에 맞춰 영화를 만들고자 했을 때 실화 소재에서 벗어나 픽션을 가미한 영화를 기획해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어느 굴지(屈指)의 영화사 직원에게서 이런 답을 들은 적 있다.
“실제로 벌어졌던 전투를 배경으로 삼아도 평단이 이렇게 시대 착오적이라는 둥 이념 편향적이라는 둥 점수를 깎아내리는데, 실제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 북한을 비판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충분히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한국전쟁 영화 퇴조 원인
이제 방향을 조금 바꿔, 그간 한국전쟁 영화에 대해 이런저런 언론 미디어에서 숱하게 흩뿌려온 ‘오해’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자. 이 역시 일정 부분 한국전쟁 영화 제작을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애초 한국전쟁 영화는 정전(停戰) 직후부터 제작돼 〈피아골〉(1955) 등 몇몇 주목할 영화들을 남겼지만 1950년대에는 아직 상당수가 이산가족 멜로영화로 흐르는 경향을 보였다. 이에 대해 영화학자들은 전쟁의 상흔(傷痕)이 가시지 않은 때여서 너무 직접적으로 전쟁의 참상(慘狀)을 다루는 영화는 대중이 불편해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한국전쟁 영화의 전성기는 1960년대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선 한국 대중이 어느 정도 전쟁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됐다. 그러자 소재 다양화가 가능해져 일약 가장 대표적인 흥행 장르로 손꼽히게 됐다. 예컨대 1963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었고, 1964년의 최고 흥행작은 〈빨간 마후라〉였다. 1966년에는 가장 대표적인 영화상 대종상에서 우수반공영화상을 제정했고, 1967년부터는 우수반공영화로 꼽힌 영화의 제작사에 외화수입 쿼터 1편을 배정하는 특혜를 주기도 했다.
이런 흐름에서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은, 당시까지 한국전쟁 영화는 엄밀히 ‘반공(反共)영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하위 갈래였다는 점이다. 당시 반공영화는 크게 한국전쟁물, 간첩 첩보물, 이산가족 멜로물 등으로 나뉘었다. 이 같은 구도가 1980년대 중반 즈음까지 갔다. 그러다 전반적으로 반공영화가 영화시장에서 퇴조(退潮)하고, 덩달아 한국전쟁 영화도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退出)되는 상황을 맞는다.
한국 언론 미디어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반공 메시지를 담은 한국전쟁 영화는 시대 착오적으로 여겨졌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와는 다르다. 한국전쟁을 다룬 콘텐츠가 극장용 영화에서 TV 드라마로 이동한 탓이 더 크다.
실제로 한국전쟁 소재는 1975~ 1978년, 그리고 1983~1984년 방영한 KBS TV 〈전우〉, 1983~1984년까지 MBC TV에서 방영한 〈3840 유격대〉 등을 통해 TV에 정착하고 있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 되면 어김없이 웬만한 영화 수준의 완성도를 지닌 특집 드라마들이 편성되었다. 결국 1970년대 후반 즈음부터 한국 방송계가 선진화되면서 이제 제작 규모나 기술적 측면에서 다소 까다로운 전쟁 드라마도 어느 정도 구현(俱現)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무료(無料) 지상파 TV로 한국전쟁 소재 주(主) 무대가 옮겨지다 보니 어디까지나 유료(有料)였던 극장용 전쟁영화는 퇴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영화의 부활
그렇게 한동안 극장가에서 한국전쟁 영화를 찾아볼 수 없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산업 팽창(膨脹)을 통해 한국영화도 이제 규모와 기술 면에서 가히 할리우드와 맞대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고, 그렇게 TV 드라마와의 차별화가 가능해지자 모든 것이 다시 부활했다. 간첩 첩보물은 1999년 〈쉬리〉부터, 한국전쟁 영화는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부터 모두 대대적인 흥행 성공을 통해 시장에 자리 잡게 됐다. 두 영화는 분단(分斷)의 비극성을 강조했어도 딱히 북한을 동정적으로 바라본다거나 무리한 ‘남북 간 화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시대착오적’이니 뭐니 하는 해석과는 전혀 무관한 흐름인 셈이었다.
한편 한국전쟁 영화를 현실정치와 정권의 영향하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는 그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언론 미디어를 통해 주장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다룬 최은진의 2018년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박사학위 논문 ‘〈쉬리〉 이후 분단영화에 나타난 핍진성(逼眞性)과 장르변주의 상호텍스트적 관계 연구’를 보자.
논문은 문재인 정권 시기의 남북관계 영화에 대해 “이전 시기에 비해 소재와 장르적인 측면에서 더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면서 “진보정권 10년 동안 분단영화도 햇볕정책과 평화번영 정책의 영향을 받아, 반공영화 일색이던 분단영화를 탈피해 상업영화시장에서 자생력을 갖춘 장르로 변화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보수정권 동안에는 ‘가족 이데올로기’와 ‘보수적 가치’가 영화에 틈입(闖入)하면서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반공영화가 귀환하는데, 이것은 정치적 헤게모니의 입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러 매체에서 보도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사실 이런 식의 주장들이 언론 미디어에서 하도 횡행(橫行)하다 보니 엄연한 민간기업 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들을 두고 정권의 입김이라는 식의 음모론이 번지게 되는 것이다.
‘정권 따라 흔들리는 영화계’(?)
실제 현실은 이와 ‘꽤나’ 다르다. 엄연한 보수정권이던 노태우 정권 출범 당시부터 소위 ‘반공영화 일색’ 분위기는 사라지고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빨치산을 동정적으로 다룬 영화 〈남부군〉이 무리 없이 개봉해 대성공을 거둔 것도 노태우 정권 당시인 1990년이었다. 국군이 양민을 사살하는 대목이 등장하는 한국전쟁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는 김영삼 정권 당시인 1993년 개봉해 역시 흥행에 성공했다. 심지어 이듬해 1994년에는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 직후 조정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태백산맥〉이 별 탈 없이 개봉돼 역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니 실제 벌어진 상황은, 1980년대 중반부터 영화 속 이데올로기나 정치·사회적 입장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점차 크게 확보되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정권에 따라 갈 지(之) 자로 움직인 게 아니란 말이다. 남북관계 영화는 아니지만 1988년에 노동자 문제를 다룬 〈칠수와 만수〉, 1989년에 권력자 비리와 음모를 다룬 〈서울무지개〉 등이 개봉해 성공을 거두고, 이어 1990년대에도 전태일 평전에 기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18을 정면으로 다룬 〈꽃잎〉 등이 공개돼 막대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흐름이 존재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이른바 ‘햇볕정책’ 영화도 크게 보면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는 것일 뿐 정권 성향이 달라졌다고 영화가 달라지고 영화를 보는 대중이 달라진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이른바 보수정권에서 〈포화 속으로〉 〈국제시장〉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등이 줄줄이 등장해 성공한 것도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영화를 보는 주(主) 관객층 구미에 적응하려다 보니 나온 흐름으로 말이다. 쉽게, 관객이 달라져 나온 흐름을 두고 이를 ‘정권 따라 흔들리는 영화계’라는 식으로 호도해선 곤란하다.
〈매쉬〉는 사실상 베트남戰 영화
끝으로 한국전쟁을 다룬 해외 영화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흔히 한국전쟁을 두고 해외, 특히 미국에서는 ‘잊힌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특히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나 TV 드라마 등 엔터테인먼트 차원에서 가장 다뤄지지 않는 전쟁이다 보니 일반 대중의 기억에서 쉽게 지워져 버렸다는 점도 분명 크게 작용한다.
이유는 다소 간명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미국 입장에서 ‘이도 저도 아닌 전쟁’이기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처럼 ‘승리의 전쟁’으로서 희생의 가치를 설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베트남전쟁처럼 ‘패배한 전쟁’으로서 신(新)좌파세력의 반전주의(反戰主義) 설파 기반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절반의 승리’이자 ‘절반의 패배’로서 한국전쟁의 그 ‘어정쩡함’으로 인해 확실한 방향성을 요구하는 엔터테인먼트 차원에서 꺼려지는 소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찌 됐건 참 드물게 등장한 할리우드 한국전쟁 영화 중에는 그나마 1954년 작 〈원한의 도곡리 다리〉와 1957년 작 〈전송가〉 정도가 간간이 거론되는 정도다. 그런데 개중 미국인들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영화가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1970년 작 〈야전병원 매쉬(M.A.S.H)〉라는 점이 참 당혹스럽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야전병원의 의사·간호사들의 난잡하고 문란한 생활을 다룬 난폭한 코미디이자, 한국전쟁을 다루는 척하면서 사실은 당시 진행 중이던 베트남전쟁을 비꼬는 뚜렷한 반전(反戰)영화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선 한국전쟁을 다룬 가장 유명한 영화인 동시에 실제적으로 한국전쟁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抗美援朝전쟁 영화들
진정으로 기가 차는 일은 따로 있다. 이처럼 한국전쟁이 할리우드로부터,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한국영화계로부터 조용히 외면받는 동안 현재 한국전쟁을 가장 열성적으로 다루고 있는 건 중국영화계라는 점이다. 한국전쟁을 두고 미국에 침략당한 조선을 중국이 도운 전쟁이라며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 부르는 중국은 지난해부터 전쟁 50주년을 맞아 각종 ‘중국 입장’의 한국전쟁 프로파간다 영화를 속속 내놓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 18만 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금강천(金剛川)〉부터 시작해 좀 더 어린 관객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최가애적인(最可愛的人)〉이 등장하고, 올해도 항미원조전쟁영화 러시는 계속될 것으로 본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 영화감독 장이머우까지 오는 10월 개봉을 목표로 ‘한미원조전쟁 블록버스터’ 〈저격수(狙擊手)〉를 촬영 중이다.
한국전쟁 영화는 글로벌 차원에서 점점 더 예상치 못한 기괴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한국도 미국도 관련 영화제작을 꺼리는 동안, 정작 호국영령의 달에 중국에서 제작한 항미원조전쟁 영화가 버젓이 TV에서 방영되는 날이 언젠가 오는 게 아닐지 불안해지기도 한다. 최근 친중(親中) 역사왜곡 논란으로 떠들썩했던 SBS TV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태를 돌이켜보면 그리 허무맹랑한 예상도 아닌 것 같아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막상 각 방송사에 한국전쟁 영화를 제공하는 한국영화계 측에선 상황이 다르다. 당장 올해도 6월에 개봉하는 한국전쟁 영화는 한 편도 없고, 올해 통틀어 아직까지 없는 상황이다. 비단 코로나19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분류에 따르면 2010년 이후 10여 년간 한국전쟁을 다룬 한국영화는, 도입부에 전쟁 상황이 잠시 등장하는 〈국제시장〉까지 포함해봐야 고작 9편에 불과하다. 1년에 한 편꼴도 안 나온다는 얘기다. 근 100년 내에 직접 치열한 전쟁을 겪은 나라 중 이렇게까지 자국(自國) 전쟁을 영화로 다루지 않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패전국 일본보다 적어
혹자는 이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근현대 전쟁을 다룬 영화의 유행이 지나 그렇다는 분석을 내리기도 한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얘기다. 당장 영화의 메카 할리우드가 위치한 미국만 해도 그렇다. 미국에서 근현대 전쟁영화가 대중의 관심에서 밀려났던 건 오히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다. 이후로는 상황이 달랐다. 1998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대단한 흥행 성공을 거둔 뒤 근현대 전쟁영화는 완전히 부활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2000년대 들어 미국이 겪은 수많은 전쟁 중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만 딱 집어 설명하려 해도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개중에는 〈진주만〉 〈위 워 솔져스〉 〈작전명 발키리〉 〈U-571〉 〈언브로큰〉 등 블록버스터 흥행작도 많다. 예술성을 인정받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지명됐던 영화만도 〈핵소 고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덩케르크〉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등 수없이 나온다. 여기에 제1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걸프전 등을 다룬 영화까지 합치면 진짜 끝도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 한국에서 한국전쟁을 다루는 영화는 엄밀히 패전국(敗戰國)인 일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루는 영화만큼도 안 나온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확실히 일본에서는 우익적(右翼的) 시각이든 좌익적(左翼的) 시각이든, 혹은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소위 피해자 입장의 반전(反戰) 평화주의 시각이든 그들이 겪은 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최소한 한국보다는 많이 나온다. 2010년대만 해도 〈일본 패망 하루 전〉 〈영원의 제로〉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태평양의 기적: 폭스라 불렸던 남자〉 〈캐터필러〉 〈노비〉 등 왕성하게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으로도 등장해 〈바람이 분다〉 〈이 세상의 한 구석에〉 등이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영화는 흥행성 없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국이 참 특이한 상황이다. 근현대 전쟁영화는 본래 어디서건 인기 있는 장르다. 애초 서부극(西部劇)과 함께 오락성 높은 액션영화의 전형(典型)을 만들어낸 장르이기에 늘 상업성 있고 대중의 호응도 좋았다. 또 극단적 상황에 놓인 인간 군상(群像)을 다룬다는 점에서 진지한 인간탐구가 가능하고 휴먼 드라마로서 가치가 높아 비평적으로도 좋은 반응을 얻어내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언급했듯 근현대 전쟁영화 중에서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경우가 많은 것도 다 그 때문이다. 한마디로, 오락성과 작품성을 겸비하는 장르의 대표 콘텐츠 중 하나가 바로 근현대 전쟁영화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이토록 ‘드문드문’ 한국전쟁 영화가 나오는 걸까. 이에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제작비(製作費) 차원 문제다. 전쟁영화는 상대적으로 많은 엑스트라와 소품이 필요하기에 제작비가 많이 드는 장르다. 한국에서도 웬만한 전쟁영화라면 100억원 이상 자본이 투여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흥행 부담도 커지고 전반적으로 리스크가 크기에 꺼린다는 논리다.
상황을 잘 살펴보면 그런 식으로만 넘겨짚기에는 반론(反論)의 여지가 많다. 한국에서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장르는 사극(史劇)이다.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영화처럼 수백 대의 탱크나 항공모함 등이 등장하는 게 아니니 요즘 액션영화 치고 그렇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건 또 아니라는 것이다.
또 있다.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한국에서 흥행 타율이 꽤 높은 편이라는 점이다. 2010년 이후 고작 9편밖에 안 나왔지만, 그중 〈포화 속으로〉 〈고지전〉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 4편이 흥행 성공작이다. 절반 정도 타율이면 한국영화계에서 꽤 충성도(忠誠度) 높은 장르다. 웬만한 현대 도시액션영화들은 흥행 타율이 이보다 높지는 않은데도 매년 수없이 등장한다. 그런데 왜 유독 전쟁영화만 이토록 드문드문 나오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른바 ‘충무로’라 불리는 한국영화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을 든다. 필자가 실제 현직 영화업계 종사자들을 만나 들어본 얘기 중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두 가지 이유다.
먼저,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너무 심하게 도식화(圖式化)돼 있고, 그 도식화된 틀을 깨기가 어려워 더 이상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전쟁 영화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남북 간 화해를 강조하는 영화와 어쩔 수 없는 대립상황을 치열하게 묘사하는 영화다. 전자(前者)가 주로 픽션, 가상(假想)의 얘기라면, 후자(後者)는 비교적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는 특성도 존재한다. 전자의 최대 히트작이 2005년 664만 관객을 모은 〈웰컴 투 동막골〉이라면 후자의 최대 히트작은 2016년 705만 관객이 본 〈인천상륙작전〉을 꼽을 수 있다.
근래는 대결구도 명확한 영화 성공
그런데 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체제가 시작되면서 한국 대중, 그중에서도 특히 영화의 주(主) 관객층인 젊은 층에서 북한에 대한 인식이 빠른 속도로 악화되기 시작됐다고 한다. 이에 대해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어찌됐건 당장 ‘남북 간 화해 메시지’ 영화들의 연이은 흥행 실패로 상황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2010년대에만 국군과 인민군 병사의 우정을 다룬 〈서부전선〉 등이 흥행에 계속 실패했다. 반면에 명확한 선악(善惡) 구도를 바탕으로 남북 간 대결을 그린 〈포화 속으로〉 〈인천상륙작전〉 등은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아니지만 유사하게 명확한 선악 구도를 제시한 2015년 영화 〈연평해전〉도 605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그럼 그렇게 실제 역사에 기반한 전쟁영화를 계속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전쟁은 수많은 전투와 특수 상황이 존재한 전쟁이지만, 개중에 한 편의 영화로 확대시킬 만한 소재는 또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미 영화로 쓸 만한 얘기는 거의 다 나온 상황이고, 그래서 결국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전투까지 찾아낸 2019년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150여억원 제작비를 들여 불과 114만 관객을 모으는 대실패를 겪어야 했다.
결국 결론은 단순하다. 실화 소재로서는 이제 소재 부족이 오고 있기에 만들고 싶어도 더 만들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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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단으로부터 ‘뉴라이트 영화’라는 혹평을 받은 〈포화 속으로〉. |
예컨대 2010년 영화 〈포화 속으로〉 상황을 돌아보자.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해 집결한 학도병(學徒兵) 71명의 희생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해 일반 관객들의 평가와 평단의 평가가 좀 심하게 차이 난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영화 페이지에서 〈포화 속으로〉에 대한 관람객·네티즌 평점은 10점 만점에 8.23점을 기록하고 있다. 5월 5일 현재까지 1만9634명이 참여한 결과다. 상당히 좋은 평가다. 반면 평론가 평점은 게재된 평론가 7명의 점수를 평균 내봤을 때 10점 만점에 3.75점이 나온다. 관람객·네티즌은 명확하게 ‘좋은 영화’라 여겼지만, 평단에서는 정반대로 명확하게 보지 말아야 할 ‘나쁜 영화’로 결론 내렸다는 것이다.
물론 일반 대중과 평단의 반응이 서로 엇갈리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런데 오락성 강한 상업영화를 놓고 이렇게까지 갈리는 일은 꽤나 드물고, 낮은 평점을 준 평론가들의 ‘한줄 평’을 살펴보면 어딘지 서로 비슷한 맥락에서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인상도 강하게 든다. “뉴라이트 역사관에 빛나는 150억원짜리 반공영화”(황진미), “전쟁 장르의 진화와 시대정신에 모두 역행한다”(이용철), “갓 제대한 학도병들이 만든 영화 같다”(이동진), “겉멋 속으로”(박평식), “110억짜리 정훈교육 영화”(최광희) 등이다.
대부분 영화의 이데올로기와 이른바 ‘시대정신’이라는 측면을 짚어 비판한다. 영화 자체의 만듦새를 거론하며 비판하는 태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데올로기 강의를 들으러 입장료를 내는 게 아니라 그저 오락성 강한 엔터테인먼트로서 〈포화 속으로〉를 선택할 대다수 관객의 입장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 북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해외로만 넘어가도 〈포화 속으로〉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진다. 미국 영화 종합사이트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만 해도 주로 해외 네티즌들이 주는 평점에서 〈포화 속으로〉는 현재 10점 만점에 7.3점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네이버의 관람객·네티즌 평가에 훨씬 가깝다. 해외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영화여서 미국 평단의 반응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영화비평 모음 사이트 ‘로튼토마토’에 게재된 두 미국 평론가는 어찌 됐건 호의적인 반응을 보내 ‘빨간 토마토’ 표시를 받았다. 결국 엔터테인먼트로서는 대부분 합격점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평단의 편 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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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평단의 우호적 평가를 받은 〈서부전선〉. |
이 같은 국내 평단의 유별난 ‘편 가르기’ 태도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에 있어 분명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제 영화비평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세상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다 할 스타배우나 스타감독 이름이 없는 영화들은 여전히 개봉 전 기대치를 잡아주는 평단의 비평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영화비평을 읽지는 않지만 여전히 영화에 관심 많은 마니아들은 이를 꼬박꼬박 찾아 읽고, 특정영화의 평가가 아주 좋다거나 혹은 아주 나쁘면 이를 화젯거리 삼아 수십 군데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평단 반응을 퍼 나르기도 한다. 이런 식이면 그 효과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증폭돼버린다.
이 같은 문제는 위 언급한 한국전쟁 영화의 소재 다양화 측면과 정확히 맞물린다. 북한에 대해 냉정하게 바라보기 시작한 젊은 관객층에 맞춰 영화를 만들고자 했을 때 실화 소재에서 벗어나 픽션을 가미한 영화를 기획해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어느 굴지(屈指)의 영화사 직원에게서 이런 답을 들은 적 있다.
“실제로 벌어졌던 전투를 배경으로 삼아도 평단이 이렇게 시대 착오적이라는 둥 이념 편향적이라는 둥 점수를 깎아내리는데, 실제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 북한을 비판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충분히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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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최고 흥행작 〈빨간마후라〉. |
애초 한국전쟁 영화는 정전(停戰) 직후부터 제작돼 〈피아골〉(1955) 등 몇몇 주목할 영화들을 남겼지만 1950년대에는 아직 상당수가 이산가족 멜로영화로 흐르는 경향을 보였다. 이에 대해 영화학자들은 전쟁의 상흔(傷痕)이 가시지 않은 때여서 너무 직접적으로 전쟁의 참상(慘狀)을 다루는 영화는 대중이 불편해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한국전쟁 영화의 전성기는 1960년대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선 한국 대중이 어느 정도 전쟁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됐다. 그러자 소재 다양화가 가능해져 일약 가장 대표적인 흥행 장르로 손꼽히게 됐다. 예컨대 1963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었고, 1964년의 최고 흥행작은 〈빨간 마후라〉였다. 1966년에는 가장 대표적인 영화상 대종상에서 우수반공영화상을 제정했고, 1967년부터는 우수반공영화로 꼽힌 영화의 제작사에 외화수입 쿼터 1편을 배정하는 특혜를 주기도 했다.
이런 흐름에서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은, 당시까지 한국전쟁 영화는 엄밀히 ‘반공(反共)영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하위 갈래였다는 점이다. 당시 반공영화는 크게 한국전쟁물, 간첩 첩보물, 이산가족 멜로물 등으로 나뉘었다. 이 같은 구도가 1980년대 중반 즈음까지 갔다. 그러다 전반적으로 반공영화가 영화시장에서 퇴조(退潮)하고, 덩달아 한국전쟁 영화도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退出)되는 상황을 맞는다.
한국 언론 미디어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반공 메시지를 담은 한국전쟁 영화는 시대 착오적으로 여겨졌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와는 다르다. 한국전쟁을 다룬 콘텐츠가 극장용 영화에서 TV 드라마로 이동한 탓이 더 크다.
실제로 한국전쟁 소재는 1975~ 1978년, 그리고 1983~1984년 방영한 KBS TV 〈전우〉, 1983~1984년까지 MBC TV에서 방영한 〈3840 유격대〉 등을 통해 TV에 정착하고 있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 되면 어김없이 웬만한 영화 수준의 완성도를 지닌 특집 드라마들이 편성되었다. 결국 1970년대 후반 즈음부터 한국 방송계가 선진화되면서 이제 제작 규모나 기술적 측면에서 다소 까다로운 전쟁 드라마도 어느 정도 구현(俱現)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무료(無料) 지상파 TV로 한국전쟁 소재 주(主) 무대가 옮겨지다 보니 어디까지나 유료(有料)였던 극장용 전쟁영화는 퇴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영화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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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첩보물 및 전쟁영화의 부활을 알린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 |
한편 한국전쟁 영화를 현실정치와 정권의 영향하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는 그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언론 미디어를 통해 주장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다룬 최은진의 2018년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박사학위 논문 ‘〈쉬리〉 이후 분단영화에 나타난 핍진성(逼眞性)과 장르변주의 상호텍스트적 관계 연구’를 보자.
논문은 문재인 정권 시기의 남북관계 영화에 대해 “이전 시기에 비해 소재와 장르적인 측면에서 더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면서 “진보정권 10년 동안 분단영화도 햇볕정책과 평화번영 정책의 영향을 받아, 반공영화 일색이던 분단영화를 탈피해 상업영화시장에서 자생력을 갖춘 장르로 변화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보수정권 동안에는 ‘가족 이데올로기’와 ‘보수적 가치’가 영화에 틈입(闖入)하면서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반공영화가 귀환하는데, 이것은 정치적 헤게모니의 입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러 매체에서 보도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사실 이런 식의 주장들이 언론 미디어에서 하도 횡행(橫行)하다 보니 엄연한 민간기업 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들을 두고 정권의 입김이라는 식의 음모론이 번지게 되는 것이다.
‘정권 따라 흔들리는 영화계’(?)
실제 현실은 이와 ‘꽤나’ 다르다. 엄연한 보수정권이던 노태우 정권 출범 당시부터 소위 ‘반공영화 일색’ 분위기는 사라지고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빨치산을 동정적으로 다룬 영화 〈남부군〉이 무리 없이 개봉해 대성공을 거둔 것도 노태우 정권 당시인 1990년이었다. 국군이 양민을 사살하는 대목이 등장하는 한국전쟁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는 김영삼 정권 당시인 1993년 개봉해 역시 흥행에 성공했다. 심지어 이듬해 1994년에는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 직후 조정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태백산맥〉이 별 탈 없이 개봉돼 역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니 실제 벌어진 상황은, 1980년대 중반부터 영화 속 이데올로기나 정치·사회적 입장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점차 크게 확보되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정권에 따라 갈 지(之) 자로 움직인 게 아니란 말이다. 남북관계 영화는 아니지만 1988년에 노동자 문제를 다룬 〈칠수와 만수〉, 1989년에 권력자 비리와 음모를 다룬 〈서울무지개〉 등이 개봉해 성공을 거두고, 이어 1990년대에도 전태일 평전에 기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18을 정면으로 다룬 〈꽃잎〉 등이 공개돼 막대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흐름이 존재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이른바 ‘햇볕정책’ 영화도 크게 보면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는 것일 뿐 정권 성향이 달라졌다고 영화가 달라지고 영화를 보는 대중이 달라진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이른바 보수정권에서 〈포화 속으로〉 〈국제시장〉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등이 줄줄이 등장해 성공한 것도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영화를 보는 주(主) 관객층 구미에 적응하려다 보니 나온 흐름으로 말이다. 쉽게, 관객이 달라져 나온 흐름을 두고 이를 ‘정권 따라 흔들리는 영화계’라는 식으로 호도해선 곤란하다.
〈매쉬〉는 사실상 베트남戰 영화
끝으로 한국전쟁을 다룬 해외 영화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흔히 한국전쟁을 두고 해외, 특히 미국에서는 ‘잊힌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특히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나 TV 드라마 등 엔터테인먼트 차원에서 가장 다뤄지지 않는 전쟁이다 보니 일반 대중의 기억에서 쉽게 지워져 버렸다는 점도 분명 크게 작용한다.
이유는 다소 간명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미국 입장에서 ‘이도 저도 아닌 전쟁’이기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처럼 ‘승리의 전쟁’으로서 희생의 가치를 설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베트남전쟁처럼 ‘패배한 전쟁’으로서 신(新)좌파세력의 반전주의(反戰主義) 설파 기반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절반의 승리’이자 ‘절반의 패배’로서 한국전쟁의 그 ‘어정쩡함’으로 인해 확실한 방향성을 요구하는 엔터테인먼트 차원에서 꺼려지는 소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찌 됐건 참 드물게 등장한 할리우드 한국전쟁 영화 중에는 그나마 1954년 작 〈원한의 도곡리 다리〉와 1957년 작 〈전송가〉 정도가 간간이 거론되는 정도다. 그런데 개중 미국인들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영화가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1970년 작 〈야전병원 매쉬(M.A.S.H)〉라는 점이 참 당혹스럽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야전병원의 의사·간호사들의 난잡하고 문란한 생활을 다룬 난폭한 코미디이자, 한국전쟁을 다루는 척하면서 사실은 당시 진행 중이던 베트남전쟁을 비꼬는 뚜렷한 반전(反戰)영화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선 한국전쟁을 다룬 가장 유명한 영화인 동시에 실제적으로 한국전쟁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抗美援朝전쟁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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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중국에서 개봉한 한국전쟁 영화 〈금강천〉. |
한국전쟁 영화는 글로벌 차원에서 점점 더 예상치 못한 기괴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한국도 미국도 관련 영화제작을 꺼리는 동안, 정작 호국영령의 달에 중국에서 제작한 항미원조전쟁 영화가 버젓이 TV에서 방영되는 날이 언젠가 오는 게 아닐지 불안해지기도 한다. 최근 친중(親中) 역사왜곡 논란으로 떠들썩했던 SBS TV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태를 돌이켜보면 그리 허무맹랑한 예상도 아닌 것 같아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