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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시사와 역사로 주역을 읽다 以事讀易’ 〈마지막회〉 《周易》의 올바른 활용법

‘周易占’이란 가능한가?

글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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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은 小人이 아닌 君子의 근심… 公的인 일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것
⊙ 孔子, 평소 가만히 지내면서 편안하게 짚어보는 것[所居而安者]은 易의 차례
⊙ 《주역》에서 말하는 占이란 실제로 치는 점이 아니라 효사에 나타나 있는 吉凶悔吝을 단서로 삼아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미리 머릿속에 그려보라는 뜻
⊙ 《논어》를 충분히 제대로 이해하고서 《주역》으로 나아갈 때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

이한우
1961년생.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同 대학원 철학과 석사,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박사 과정 수료 / 前 《조선일보》 문화부장, 단국대 인문아카데미 주임교수 역임
《주역》을 정리한 공자.
  실은 일고의 가치도 없지만 워낙 ‘주역점(周易占)’에 대한 신화(神話)가 우리 주변에도 깊게 뿌리내리고 있어 몇 가지 사례만 우선 살펴보겠다. 점을 보려는 사람들은 당장 궁금한 것이 자신의 운 혹은 운명이다. 한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니 ‘소망’ ‘시험’ ‘사업’ ‘개업’ ‘승진’을 키워드로 삼아 소위 ‘주역점의 실례(實例)’라는 것이 실려 있었다. 그중 하나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가려니 걱정이 많았다. 공부를 잘 따라갈지, 일과 병행할 수 있을지, 아직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니 학비도 걱정이었다. 주역점을 쳐서 뇌수해괘 이효가 동했다. 뇌수해괘 이효의 소망을 보니 ‘이룬다’고 하였고 시험을 보니 ‘합격한다’고 하였다. 효사에도 ‘사냥 나가서 세 마리 여우를 잡고 황금화살을 얻으니 바르게 해서 길하다’고 하였으니 지금까지의 걱정을 불식시킬 정말로 좋은 점괘였다. 결과적으로 석사과정 내내 장학금을 지원받았고 학점도 매우 좋았으며 아이들도 자기 일을 잘해줘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周易占의 허구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소위 ‘주역점’의 허구성을 몇 가지 짚어볼 수 있다.
 
  첫째, 뒤에 살펴보겠지만 《주역(周易)》은 군자(君子)의 근심이지 소인(小人)의 욕심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말하는 대학원 진학, 일과 병행, 아이들 학비 걱정은 소인의 욕심일 뿐이다. 이는 부정적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공적(公的)인 관심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라 하더라도 조정(朝廷)의 일과 관련해서는 《주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자신의 개인적 욕망이나 욕심에 대해서는 《주역》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지침이 하나도 없다.
 
  둘째, 주역점을 쳤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주역점인가 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황태연 교수의 《실증주역》이란 책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황 교수는 서문에서 “이 《실증주역》은 서증(筮證)과 논증에 기초한 실증주역의 방법상 당연히 ‘산중에서 20년 공부했다’고 허풍떠는 자칭 역학자(易學者)들의 비(非)실증적·비논증적 주역 해설서들을 관심 밖으로 제쳐놓았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서증이란 자신만의 객관적인 점에 입각한 검증을 말한다. 점을 점으로 비판하겠다는 말이다. 황 교수는 자신의 객관적인 점에 대해서는 “우연히 역학과 시서(蓍筮)에 밝은 원주의 한 젊은 역학자를 만나 시서 체험과 함께 《주역》 관련 설명을 귀동냥하면서 비로소 역학 입문의 길을 깨닫게 되었다”며, 그 후 10여 년 《주역》 공부에 매진한 결과가 《실증주역》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서 든 사례의 뇌수해괘 이효에 대한 황 교수의 풀이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과연 그는 점으로 점을 논박하는 데 성공한 것일까?
 
  뇌수해괘(雷水解卦·☳☵)란 위에 움직임을 뜻하는 뇌(雷·☳)괘가 있고, 아래에 험난함이나 물을 뜻하는 수(水·☵)괘가 있다. 흔히 어려움이 풀어지는 상황으로 본다. 그중 밑에서 두 번째 붙어 있는 양효가 바로 뇌수해괘의 이효다. 이에 대해 주공(周公)은 “사냥을 해서 세 마리 여우를 잡아 누런 화살을 얻었으니 반듯해서 길하다”고 했다. 황 교수의 풀이다.
 
  “구이의 여우 세 마리는 주어진 때의 간사한 소인배나 사악한 경쟁자를 가리킨다. 노란 화살은 황중(黃中)의 임금이 사냥에서 여우 세 마리를 잡은 1등에게 상으로 내린 화살을 뜻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해괘 이효에서 황 교수는 그저 “서례로 실증된다”며 정이천(程伊川)은 탁월하고 주희(朱熹)는 견강부회라고 하는데 정작 ‘어떻게’ 서례로 실증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실은 1000쪽이 넘는 이 책 어디에도 서증했다, 서례로 실증했다는 말만 있지 ‘어떻게’ 했는지는 없다.
 
  그는 이미 책 서두에서 자신은 공자(孔子)나 정이천의 의리론적 주석을 따르지 않고 복서(卜筮)로서 《주역》을 강조한 주희의 입장을 따른다고 천명했다. 그 점을 달리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점을 치는 책으로서 《주역》을 따른다면 어떻게 점을 쳤는지가 명백하게 공개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신비주의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예를 들어 중지곤괘(重地坤卦·☷☷)의 밑에서 다섯 번째 음효에 대해 주공은 “노란 치마처럼 하면 으뜸으로 길하다[黃裳元吉]”고 했다. 이에 대한 황 교수의 서례다.
 
 
  정이천과 주희
 
  “여섯 명의 대통령을 모신 고건(高建) 전 총리가 여섯 명의 임금을 받든 황희(黃喜)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이 어떤지를 물은 서례(2006년 5월 20일)에서 이 황상원길을 얻었다. 필자는 황상과 황희의 황(黃)자가 일치하고 또 황희가 세종 때의 황상과 같은 현신(賢臣)이므로 황희의 이미지를 활용하면 이기고[元吉] 그렇지 않으면 크게 불길하다고 점단(占斷)했다. 그러나 고건 전 총리는 황희 이미지 활용을 거부했다. 결과는 지속적인 지지도 하락으로 나타났고, 6개월 뒤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말았다.”
 
  믿거나 말거나이며 역시 ‘어떻게’는 없다. 게다가 황상과 황희의 ‘황(黃)’ 운운은 점서로서 《주역》을 볼 경우 얼마나 궁색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황 교수는 결국 점으로 점을 비판하지 못했다.
 

  물론 ‘주역점의 실례’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이에 대해서는 조선 선조(宣祖) 때 정구(鄭逑)라는 유학자가 선조의 질문에 답한 것으로 우리의 방향을 대신 정할까 한다.
 
  “정구가 1년 만에 내직으로 돌아오니 승지에 제수하여 불렀다. 정구가 경연(經筵)에 입시(入侍)하니, 상이 《주역》의 (정이천의) 〈정전(程傳)〉과 (주희의) 〈본의(本義)〉 중 어느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 하는지 물었다. 대답하기를 ‘《주역》의 도(道)는 소장(消長)과 영허(盈虛)의 이치를 밝혀 시중(時中)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단지 (주희의 〈본의〉처럼) 복서(卜筮)로 풀어서 앞일을 미리 아는 것뿐이라면 그것은 말단이니, 〈정전〉을 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즉 주희를 떠받들던 조선의 유학자들도 《주역》의 풀이에 관한 한 주희가 아닌, 정이천의 의리역학을 절대적으로 존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현실적인 해석이기 때문이다.
 
 
  공자, 周易占의 전통을 끊다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64개 괘에 대한 말을 달았고 주공은 각 괘에 있는 6개씩의 효에 대해 말을 달았다. 그것을 계사(繫辭)라고 한다. 모두 384개의 계사가 있는 셈이다. 아주 고대(古代)에는 마치 서양에서 새로 점을 치듯이 이 64개의 단사(彖辭)와 384개의 효사(爻辭)를 갖고서 점을 쳤을 수도 있다.
 
  공자는 그러한 점의 전통을 끊어낸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10익(翼)’이라고 해서 《주역》을 현실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보조장치로서 풀이를 써냈다. 그것을 ‘전(傳)’이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계사를 풀어낸 계사전(繫辭傳)이다. 이 계사전에 《주역》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공자가 분명하게 밝혀놓았다. 계사전 2장이다.
 
  “군자가 평소 가만히 지내면서 편안하게 짚어보는 것은 역(易)의 차례이고 즐기면서 깊이 음미하는 것은 효(爻)의 말[辭·사]이다. 그래서 군자는 평소 가만히 있을 때에는 그 상(象)을 살펴보면서 그 말을 음미하고, 일에 나설 때에는 그 달라짐[變]을 살펴보면서 그 점(占)을 음미한다. 이 때문에 하늘에서 도움을 주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우선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사항은 첫째, 소인이 아니라 군자라고 했다. 즉 사사로운 일 때문에 《주역》을 보아서는 안 되고 공적인 사안과 관련해서 《주역》을 음미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 역의 차례란 바로 건괘와 곤괘에서 출발해 미제괘(未濟卦)에 이르는 차례를 말한다. 그것은 세상사의 일반적인 흐름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8년 12월25일자 기사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주역》을 강하다가 (서괘전에서) ‘태(泰)는 통(通)이니, 일은 끝까지 통하기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비괘(否卦)로써 받는다’라고 한 데에 이르러, 동지사(同知事) 이승소가 아뢰어 말했다.
 
  “대저 치세(治世)를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준괘(屯卦)·몽괘(夢卦)·송괘(訟卦)·비괘(比卦)·소축괘(小畜卦)를 말한 뒤에 태괘(泰卦)에 이르렀고, 난세(亂世)를 이루기는 쉽기 때문에 곧 비괘(否卦)로써 연계하였으니, 성인의 괘를 만든 뜻이 깊습니다. 이는 인군(人君)으로 하여금 수성(守成)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함입니다.”〉
 
 
 
일의 형세에 대한 깊은 통찰 갖춰야

 
  무슨 말인가 하면 현실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理想的)인 상황이 바로 건괘와 곤괘다. 이 둘이 만나 준괘가 나오는데 이때부터 차례대로 몽괘·송괘·비괘·소축괘에 이르고 더 가서 마침내 태괘에 이른다. 이는 곧 건국에서 시작해 수성(守成)을 잘해 태평성대에 이른다는 말이다. 그런데 태괘의 바로 다음에 비괘가 오게 되니 난세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말이다. 공자가 “평소 가만히 지내면서 편안하게 짚어보는 것은 역(易)의 차례”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괘의 순서, 즉 서괘전(序卦傳)을 음미하면서 일의 형세에 대해 깊은 통찰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효사 또한 평소에 깊이 음미해두어야 한다.
 
  이어서 일을 향해 나아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에 나설 때에는 그 달라짐[變]을 살펴보면서 그 점(占)을 음미한다.”
 
  이때 점이란 실제로 치는 점이 아니라 효사에 나타나 있는 길흉회린(吉凶悔吝)을 가리킨다. 그것을 단서로 삼아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미리 머릿속에 그려보라는 뜻이다. 즉 점을 치라는 말이 아니다.
 
  공자는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나에게 몇 년의 수명이 더 주어진다면 쉰 살까지 《주역》을 공부해 큰 허물[大過]이 없게 될 텐데.”
 
  무엇보다 역을 배우는 효용을 큰 허물을 없애려 한 데 두었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그러면 ‘역을 배운다[學易]’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공자는 평소 가만히 지내면서 편안하게 짚어보는 것[所居而安者]은 역(易)의 차례라고 했다. 이는 주로 서괘전과 관련된 것인데 총론적 차원에서 괘 일반의 의미를 짚어보라는 말이다.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正祖實錄) 1796년(정조 19년) 10월17일자에는 역의 차례를 편안하게 짚어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가 나온다.
 
 
  正祖의 교서
 
정조.
  〈교서를 내렸다.
 
  ‘번개와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치면서 새벽이 될 즈음에 (하늘이) 경고(警告)해주었으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재변(災變)이 닥치거나 상서(祥瑞)가 오는 것은 모두 사람이 불러들이는 것이다. 나 한 사람이 덕(德)이 부족하여 하늘의 마음을 제대로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탓으로 불안하고 좋지 못한 현상이 때 아닌 때에 일어났으니, 재변을 소멸시키고 좋은 방향으로 돌리는 방책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책임을 돌려야 할 것이다. 오늘부터 3일 동안 감선(減膳·찬 가짓수를 줄임)을 하도록 하라. 언관(言官)의 직책에 있는 자들은 나의 말을 기다리지 말고 또한 말을 해줄 것이며, 기타 관직에 몸담고 있는 자들도 각기 자기 위치에서 진달하도록 하라.
 
  《주역》에 이르기를 “평소 가만히 있을 때에는 그 상(象)을 살펴보면서 그 말을 음미하고, 일에 나설 때에는 그 달라짐[變]을 살펴보면서 그 점(占)을 음미한다”고 했다. 하늘과 사람은 이치가 하나이니 두드리면 응하는 법이다. 그러니 어찌 감히 인사(人事)를 다함으로써 기필코 하늘의 마음을 감동시키려고 힘쓰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수뢰둔괘(水雷屯卦)의 상사(象辭·대상전)에는 “경륜하다[經綸]”라고 했고, 뇌지예괘(雷地豫卦)의 단전(彖傳·문왕의 단사(彖辭)에 대한 공자의 풀이)에는 “굳셈[剛·양효]이 (다른 모든 음효에) 호응한다”고 했다. 택뢰수괘(澤雷隨卦)의 단전에는 “때를 따르는 것의 마땅함이 크도다”고 했고 화뢰서합괘(火雷噬嗑卦)의 대상전에는 “형벌을 밝히고 법을 엄히 했다”고 했으며, 지뢰복괘(地雷復卦)의 대상전에는 “관문을 닫아걸고 사방을 시찰하지 않았다”고 했다.
 
 
 
正祖, 스스로를 경계하면서 求言

 
  천뢰무망괘(天雷无妄卦)의 대상전에는 “천시(天時)에 맞추어 만물 만사를 길러준다”라고 했으며, 산뢰이괘(山雷頣卦)의 대상전에는 “말을 신중하게 하고 음식을 절제한다”고 했다. 뇌풍항괘(雷風恒卦)의 대상전에는 “(스스로를) 세워[立] 지향하는 바[方]를 바꾸지 않는다”고 했으며 뇌천대장괘(雷天大壯卦)의 상륙 효사(上六爻辭)에는 “숫양이 울타리를 치받았으니 어렵게 여기면 길하다”고 했다. 뇌수해괘(雷水解卦)의 대상전에는 “허물이 있는 자를 용서하고 죄가 있는 자를 사면한다”고 했으며, 풍뢰익괘(風雷益卦)의 단전에는 “익(益)은 위를 덜어 아래를 더해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중뢰진괘(重雷震卦)의 대상전에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닦고 살핀다”고 했고, 뇌화풍괘(雷火豊卦)의 단전에는 “하늘과 땅의 차고 비는 것[盈虛]도 때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난다[消息]”라고 했다. 뇌산소과괘(雷山小過卦)의 상사에는 “재물을 쓸 때는 검소함을 (조금) 지나치게 한다”라고 했다.
 
  나의 마음속 은미(隱微·깊은 곳)한 곳으로부터 시행하고 조처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어느 일이 이치대로 따른 것이고 어떤 정사(政事)가 이치에 어긋난 것이겠는가. 이것은 이미 내가 내놓은 행동을 보면 드러나지 않은 마음속까지도 충분히 징험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잘못을 바로잡고 어떤 허물을 고쳐야만 14괘(卦)의 단전과 대상전과 효사의 뜻에 제대로 부합되어 재변을 상서로움으로 돌리고 태평시대의 기상이 퍼지게 할 수 있겠는가. 섭리(燮理·재상의 직무)하는 위치에서 나를 도와주는 말을 해줄 것을 요청하는 바이니 경들은 한마디 말을 아끼지 마라.〉
 
  정조는 우레와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거세자 《주역》의 괘 중에서 이름에 뇌(雷·우레)가 들어간 괘들을 모아 이렇게 스스로를 경계시키고 신하들에게도 좋은 말을 해줄 것을 요청한[求言] 것이다. 단사(彖辭)뿐만 아니라 대상전과 소상전까지 포함돼 지나칠 정도로 많이 언급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이것이 바로 ‘가만히 있을 때 역의 차례를 편안하게 짚어보는 것’의 전형적인 사례다.
 
 
  爻에서 출발해 현실로 가는 길
 
  우리는 지난 13차례 연재를 통해 특정 인물을 특정 효에 대응시키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실험해보았다. 그러나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현실에서 출발해 효로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효에서 출발해 현실로 가는 것이다. 이 또한 실은 이미 공자가 계사전에서 제시해놓은 길이다. 이 길이 분명해질수록 점을 쳐야 하는 까닭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먼저 효에서 출발해 현실로 가는 길이다. 64괘 중에서 61번째 괘인 중부괘(中孚卦·☴☱)의 밑에서 두 번째 양효에 대한 주공의 효사는 이렇다.
 
  “우는 학(鶴)이 그늘에 있는데 그 새끼가 화합한다. 내가 좋은 술잔이 있으니 내 그대와 함께 나누고 싶다.”
 
  그런데 이것만 봐서는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공자는 이렇게 풀어냈다.
 
  “군자가 자기 집에 머물며 그 말을 내는[出言] 바가 좋으면 천 리 밖에서도 그것에 호응하는데 하물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임에랴. (반대로) 자기 집에 머물며 그 말을 내는 바가 좋지 못하면 천 리 밖에서도 멀어져가는데 하물며 가까이에 있는 사람임에랴. (다스리는 자의) 말은 (자기 한) 몸에서 나와 백성들에게 가해지며 (다스리는 자의) 행동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돼 먼 곳에서 나타난다. (이처럼) 말과 행동[言行]은 군자의 중추[樞機]이니 이런 중추가 어떻게 나타나느냐가 바로 영예와 치욕[榮辱](의 갈림)을 주관한다. 말과 행동은 군자가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방법이니 조심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계사전에는 이처럼 함축적인 시와 같은 효사를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으로 풀어내는 사례가 10개 실려 있다. 이를 통해 다른 효사도 현실에 맞게 풀어내는 훈련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실은 《시경(詩經)》이 바로 이런 훈련을 하는 훈련서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서 출발해 효를 찾아가는 길
 
  두 번째는 현실에서 출발해 그에 맞는 효를 찾아가는 길이다. 이런 사례는 8개가 실려 있다. 현실 속의 이치를 발견해 그에 맞는 효에 조응시키는 방법이다. 공자가 말했다.
 
  “다움은 엷은데[德薄] 지위는 높고[位尊], 지혜는 작은데 도모함은 크고, 힘은 작은데 맡은 바는 크면 (재앙에) 이르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역(易)에 이르기를 ‘세 발 쇠솥[鼎]이 발이 부러져 공(公)에게 바칠 솥 안의 음식을 엎어 그 형벌이 무거울 것이니 흉하다’라고 했으니 이는 그 맡은 바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공자의 말 중에서 앞부분이다. 세 가지 유형을 말한 다음에 모두 재앙에 이를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런데 이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세 가지 유형이란 곧 《논어》에서 공자가 수시로 강조하는 인자(仁者), 지자(知者), 용자(勇者)에 각각 부정적으로 조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헌문(憲問)’편에 나오는 말이다.
 
  “군자의 도리는 셋인데 나는 능하지 못하니 어진 사람[仁者]은 (이치를 알아 사리사욕에 꺾이지 않으니 사사로운) 근심을 하지 않고[不憂] 사리를 아는 사람[知者]은 (사리를 알기 때문에 불필요한) 미혹되지 아니하고[不惑] 용력이 센 사람[勇者]은 (당당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不懼].”
 
  즉 《주역》의 사리(事理)나 사세(事勢)에 앞서 먼저 자기를 갈고 닦는 수기(修己)의 문제가 선행(先行)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때문에 《논어》를 충분히 제대로 이해하고서 《주역》으로 나아갈 때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세 발 쇠솥이 발이 부러져 공(公)에게 바칠 솥 안의 음식을 엎어 그 형벌이 무거울 것이니 흉하다”라는 것은 화풍정괘(火風鼎卦·☲☴)의 밑에서 네 번째 붙은 효[九四]의 풀이다.
 
  바로 이 두 가지 방법이야말로 기존의 점서로서 《주역》을 바라보려는 입장을 그 근거에서부터 허문다. 동시에 이 두 가지 방법을 숙지하고 그것을 단계단계 확장해갈 때라야 자기 힘으로 《주역》을 읽어내 세상과 인간을 독해(讀解)하는 길이 열린다는 점을 강조해둔다.
 
 
  최재형 감사원장의 경우
 
최재형 감사원장.
  필자는 지난 13차례 《월간조선》 연재를 통해 공자의 견해를 바탕으로 인물에 접근하는 몇 가지 방식을 시도해보았다. 가장 쉬웠던 사례부터 살펴보자.
 
  《월간조선》 2020년 10월호에 실린 최재형 감사원장의 경우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감사원장이라는 직분이다. 현대 사회의 감사원과 언론은 조선시대 사간원(司諫院)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간언(諫言)하는 기관이다.
 
  64괘 중에서 간언의 문제와 직결되는 괘는 소축괘(小畜卦·☴☰)다. 한마디로 임금에 해당하는 건괘(乾卦·☰)가 겸손을 뜻하는 손괘(巽卦·☴)에 의해 저지당하는 형국이다. 묘하게도 재상(宰相)의 자리에 속하는 음효 하나가 나머지 다섯 양효를 저지하는 모양이다. 마침 감사원장은 지위상으로 재상에 준한다. 현재 탈원전(脫原電) 감사 문제와 관련해 거의 혼자서 이를 저지하고 있는 상황도 고려됐다.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소축괘 육사(六四)를 통해 최재형 감사원장의 명운을 살필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소축괘 육사에 대한 주공의 효사에 이르게 됐다. 이렇게 되면 굳이 별도로 점을 칠 필요가 없다. 특정한 효에 도달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조국 전 장관의 경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두 번째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인물을 정한 다음에 그와 가장 흡사한 역사 속 인물을 찾아내 그 역사 속 인물이 속한 괘나 효를 정하는 방법이다. 2019년 10월호에서 다룬 조국(曺國) 전 법무부 장관이 그런 경우다.
 
  조국 전 장관은 학계에 있다가 대통령과의 사적인 인연으로 갑자기 공직에 진출했다. 전형적인 측근 혹은 귀근(貴近)이다. 또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있다가 법무부 장관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돼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이런 점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역사 속 홍국영(洪國榮)을 떠올렸고, 이미 필자가 《주역》 풀이에서 홍국영의 괘와 효는 확정해놓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괘와 효를 통해 조국 전 장관의 행로를 대략적으로나마 짚어보았다.
 
  손괘(損卦·☶☱)의 맨 아래 첫 양효에 대해 공자는 “일을 마쳤으면 빨리 떠나가야 하는 것[已事遄往]은 (무엇보다) 윗사람과 뜻을 합치는 것[合志]이 최상이기 때문이다”라고 풀었다. 주공은 효사에서 “일을 마쳤으면 빨리 떠나가야 허물이 없으니 짐작하여 덜어내야 한다[酌損之]”고 했는데 공자는 그중에서 앞부분에 대해서만 풀이를 했다.
 
  “손괘의 맨 아래에 있는 양효인 초구(初九)는 양강의 자질로 양의 자리에 있으니 자리가 바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순서상으로 맨 밑에서부터 맨 위에까지 여섯 자리는 각각 양, 음, 양, 음, 양, 음의 자리다. 홀수는 양, 짝수는 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의 자리에 양효가 있으면 그것을 정(正·바르다)이라고 하고, 음효가 있으면 부정(不正·바르지 않다)이라고 한다. 음의 자리에는 그와 반대다. 손괘의 초구는 따라서 정(正)이다.
 
  효들끼리의 관계를 보는 데 있어 그 다음으로는 친밀함[比]을 보는데 위아래에 바로 붙어 있는 효와 서로 음양이 다르면 친밀하고 서로 양양이나 음음으로 같으면 친밀함이 없다[無比]고 한다. 손괘 초구의 경우 맨 아래에 있다 보니 바로 위에 있는 효하고만 친밀함을 따지는데 같은 양효라 무비(無比)다.
 
  효들끼리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응관계[應]인데 1과 4, 2와 5, 3과 6이 서로 음양이 교차하면 호응이 있다[有應]고 하고, 같은 양양이나 음음일 경우 호응이 없다[無應]고 한다. 손괘 초구의 경우 음효인 육사와 호응이 있다. 응(應)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은 정(正)이며 비(比)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면 손괘 초구의 경우 양효로 양의 자리에 있으니 자리가 바르다. 그런데 양의 자리는 모두 3개가 있는데 가장 낮은 자리에 있다. 조국씨의 경우 학자로 있을 때는 양의 자리로 가장 낮은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때에는 있어야 할 자리라 바른 것이다. 이럴 때 바로 위의 구이(九二)와는 친하지 않으며[無比] 부드럽고 고분고분한 자질의 육사와는 호응하고 있다[有應]. 풀이하자면 주변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와 친밀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육사, 즉 재상이나 대선 후보군 사람들이 그에게 호응하는 형세다. 실제로 그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자 유시민, 이재명 경기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노골적으로 그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대체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
  세 번째는 최고위직에 있는 인물을 볼 때 쓸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로 6효를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 있다. 이는 국가뿐만 아니라 거대 조직인 기업에서도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2019년 11월호에서 다룬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그런 경우다.
 
  한 괘를 구성하는 음효와 양효를 결정하는 것은 각각이 가진 성질이나 성향이 부드러움[柔]인지 굳셈[剛]인지를 가려내면 된다.
 
  그리고 한 괘의 여섯 효는 각각 위치에 따라 권력의 서열에 해당한다. 맨 위는 상왕(上王), 그다음은 임금이고 이어서 재상이나 왕비, 세자가 그다음이고 이어서 판서, 중간관리, 신진그룹이 된다. 이런 위계질서는 오늘날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회장, 대표이사, 부장, 차장, 신입사원이 그것이다.
 
  그러면 현재 문재인 대통령은 부드러울까? 굳셀까? 상왕은 일종의 배후 세력으로 볼 수 있는데 지난 2년을 돌이켜볼 때 본인의 결정력이 강할까? 배후 세력의 결정력이 강할까? 영부인이나 총리, 여당 대표가 대체로 위에서 세 번째인데 이들이 강할까? 대통령이 강할까? 판서, 즉 장관의 파워는 얼마나 될까? 중간에 있는 실무진의 파워는 어느 정도일까? 맨 아래 그의 지지 세력은 굳셀까? 부드러울까? 최대한 편견 없이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부드러움이냐 굳세냐를 척도로 음과 양을 판단해보면 양, 음, 양, 음, 양, 양이 된다.
 
  이렇게 음양의 효가 배치되면 그 모양은 다음과 같다. ☲☱ 위에는 이(離)괘(☲)이고 아래는 태(兌)괘(☱)인데 이를 규괘(睽卦)라고 부른다. 공자는 그래서 위아래 괘를 연결해 풀이하기를 “불은 움직여 올라가고 연못은 움직여 내려간다”고 했다.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규(睽)란 사팔눈, 노려보다, 이지러지다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사물을 바르게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규괘에 대해 주나라 문왕은 짤막하게 “작은 일에는 길하다”라고 뜻을 풀었다. 이 말은 큰일은 해서는 안 되고 작은 일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길할 수 있는 방도가 있다는 뜻이다.
 
  이 중에 대통령을 살피려면 밑에서 다섯 번째 음효에 대한 주공의 효사와 그에 대한 공자의 풀이인 소상전을 보면 된다.
 
 
  이낙연 전 총리의 경우
 
이낙연 전 총리.
  《월간조선》 2019년 12월호에서 다룬 이낙연(李洛淵) 당시 국무총리(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우는 문재인 정권의 괘이기는 하지만 약간의 변화가 불가피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처한 상황을 규(睽)괘(☲☱)라고 했다. 밑에서 네 번째가 재상이나 영부인 혹은 세자의 자리가 된다. 그때 네 번째 효를 음효가 아니라 양효로 정한 이유는 “이낙연 총리는 부드러운 재상에 속하지만 김정숙 여사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감안해 보면 양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그것은 문재인 대통령을 위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이낙연 당시 총리를 중심으로 하고 김정숙 여사나 이해찬 전 대표를 배제할 경우에는 당연히 음효가 된다. 그러면 괘의 명칭도 바뀌게 된다. 즉 ☶☱가 되는데 이는 손괘(損卦)다. 일단 문재인 정권하에서 이 전 총리의 처지는 손괘의 밑에서 네 번째 음효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요행수로 어떤 괘나 효를 정하기보다는 기존의 현실에 대한 최대한 거리를 둔 공정한 분석을 통해 상황을 정하게 되면 그에 해당하는 괘나 효는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이다.
 
  이는 곧 공적인 생활, 특히 고위직에 노출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사로운 개인의 경우 그만큼 《주역》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공인(公人)이라면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풀이가 가능했다.
 
 
  김정은의 경우
 
  김정은의 경우도 최고 지도자이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썼던 괘 형성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장성택 이전과 이후로 갈리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2011년 처음 권좌에 올랐을 때만 해도 국내외 분석가들은 김정은의 장래를 매우 불안정하게 전망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던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의 존재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상왕은 굳세다[剛]는 점에서 양(陽)으로 봐야 하고 상대적으로 임금인 김정은은 유약하다[柔]는 점에서 음(陰)으로 봐야 한다. 이때는 재상급도 강했고 장관급도 발언권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그와 함께할 수 있는 세력인 중간관리급은 취약했고 백성들은 새로운 기대로 유약보다는 굳셈 쪽에 비중을 둬야 할 것으로 본다. 사실 공산주의 국가에다가 폐쇄적인 독재국가에서 신진 세력이나 백성을 과연 굳세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 있지만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보자면 이 시기는 유약보다는 굳셈 쪽으로 보는 것이 나을 듯하다.
 
  이렇게 되면 2011년에서 2013년까지 상황은 위에서부터 양-음-양-양-음-양이 된다. 이는 이(離)괘(☲)가 위아래로 중첩된 이(離)괘(☲☲)가 된다.
 
  이괘는 그 자체로 밝음, 즉 해를 뜻한다. 해란 임금이다. 두 개의 해가 겹쳐 있어 매우 밝다는 긍정적 의미로 새길 수도 있지만 하늘에 해가 두 개 있는 모양이기도 하다. 즉 임금의 자리를 넘겨주는 때인 것이다. 군주제 사회에서는 세자를 책봉한 때부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어서 장성택 처형 이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2013년 장성택 전격 처형과 이어진 고모 김경희의 칩거는 곧 김정은에게 더 이상 상왕(上王)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어졌음을 뜻한다. 이렇게 되면 괘상(卦象)은 바뀌게 될 수밖에 없다.
 
  상왕은 음, 임금은 양, 재상은 음이 된다. 장관급 또한 자세를 낮췄으니 음이 되고 장성택 제거의 뒷배가 돼준 군부는 양이 되고 백성들은 다시 고분고분해져 음이 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렇게 되면서 이괘와는 음양이 모두 바뀐 감(坎)괘(☵☵)로 옮겨갔다. 감(坎)이란 구덩이, 함정, 위험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괘를 형성할 수도
 
필자의 신간 《이한우의 주역》.
  끝으로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괘를 형성해내는 방법도 있다. 이 또한 대부분 최고위직에 이른 인물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건괘(乾卦)는 곧 순(舜) 임금의 생애이고 겸괘(謙卦)는 주공의 생애와 합치되는 것 등이 그런 경우다.
 
  2020년 5월호에서 살펴본 홍준표(洪準杓·국회의원) 전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풀이도 그런 방법을 썼다. 그렇게 해서 적어도 공적으로 노출된 영역에서 홍 의원의 길을 짚었을 때 이괘(履卦)에 근접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아직 시론(試論)에 불과하다. 또 여기에 열거한 방법 이외에도 얼마든지 점(占)에 의거하지 않고서 폭넓게 공감대를 얻으며 괘나 효에 이르는 길은 있을 수 있다. 필자 또한 앞으로도 계속 그 방법들을 찾고 검증하며 늘려갈 것이다. 그러나 지금 드러난 것만 보아도 동전을 던지고 시초점을 치는 식으로 주역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분명해졌으리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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