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리옹 벨쿠르 광장 한편 生家는 지금 변호사 사무실로 변해
⊙ 12세 때 처음 타본 비행기에 매료, 조종사 되기로 결심
⊙ 유럽–아프리카–남미에서 우편기 몰며 겪은 체험으로 《어린 왕자》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펴내
⊙ 1931년 12월 카이로에서 200km 떨어진 사막에 비행기 추락… 물 한 모금 못 마시며 사막 헤매다 베두인 대상에게 극적으로 구출돼
⊙ 1944년 그르노블-안시 방면으로 정찰비행 떠났다가 마르세유 근해에서 추락사… 2000년 그가 몰던 P–38기 잔해 발견
⊙ 벨쿠르 광장 동상엔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게 아니에요”라는 글 새겨져
⊙ “그는 단순한 문필가가 아닌 행동주의 작가였으며 경험을 도외시한 글을 경멸했다”
⊙ 12세 때 처음 타본 비행기에 매료, 조종사 되기로 결심
⊙ 유럽–아프리카–남미에서 우편기 몰며 겪은 체험으로 《어린 왕자》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펴내
⊙ 1931년 12월 카이로에서 200km 떨어진 사막에 비행기 추락… 물 한 모금 못 마시며 사막 헤매다 베두인 대상에게 극적으로 구출돼
⊙ 1944년 그르노블-안시 방면으로 정찰비행 떠났다가 마르세유 근해에서 추락사… 2000년 그가 몰던 P–38기 잔해 발견
⊙ 벨쿠르 광장 동상엔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게 아니에요”라는 글 새겨져
⊙ “그는 단순한 문필가가 아닌 행동주의 작가였으며 경험을 도외시한 글을 경멸했다”
- 벨쿠르 광장 한 편에 있는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 동상이다.
리옹(Lyon)은 프랑스 한복판에 있는 도시다. 영국에서 도버해협 건너 프랑스 파리로 온 뒤 프로방스로 갈 때, 다시 프로방스에서 파리를 거쳐 영국으로 돌아갈 때마다 이곳을 거쳤다. 그때마다 리옹에는 비가 왔다. 천지를 진동하듯 대지를 난타하는 폭우가 아닌, 부슬부슬 회색빛 도시를 물안개처럼 감싸는 비다.
리옹을 동서로 가르는 론강은 굽이굽이 프랑스 중앙을 적시며 마르세유를 거쳐 지중해로 빠져나간다. 그날 론강 서편 벨쿠르 광장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인적 드문 광장에 기마상(騎馬像)이 있었다. 루이 14세. 그 반대쪽 끄트머리에서 무심코 그걸 바라보는데 가로수에 가린 회색빛 동상이 보였다.
동상 좌대(座臺)에 걸터앉은 조종사 차림의 사내 곁에 한 어린이가 서 있다. 자세히 보니 ‘어린 왕자’와 저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다. 그러고 보니 생텍쥐페리 역시 론강처럼 여기서 태어나 마르세유 근처 지중해 바다에서 잠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상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ne a lyon 29 juin 1900
mort pour la france
le 31 juillet 1944
j’aurai l’air d’etre mort
et ce ne sera pas vrai
1900년 6월 29일 리옹에서 태어나 1944년 7월 31일 프랑스를 위해 사망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게 아니에요.”
이게 어디서 나온 구절일까 찾아보니 어린 왕자와 조종사가 헤어지기 직전의 대사다. 고향 별로 되돌아가는 ‘어린 왕자’는 조종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저씨가 온 건 잘못이야. 마음이 아플 테니까. 난 죽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아니야. 거긴 너무 멀어. 내 몸을 가지곤 떠날 수 없어. 너무 무거워.”
《어린 왕자》의 첫 장에는 모자처럼 보이는 물체가 나온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그것을 모자라 여긴다. 소년은 그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한다. 그러고 소년은 되뇐다. “어른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언제나 그들에게 설명을 해준다는 것은 어린이들로서는 힘이 드는 일이다.”
두 번째 장(章)에 가면 ‘이처럼 나는 6년 전 사하라 사막에서 내가 조종하던 비행기가 고장을 일으킬 때까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도 없이 혼자 살아왔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 사하라 사막은 어디일까? 《어린 왕자》 속 조종사의 비행기가 불시착한 곳은 아프리카 모로코의 타르파야 근처 사막이다.
타르파야에는 비행기 모형과 ‘어린 왕자 박물관’이 있다. 황량한 모래벌판 한가운데 신기루처럼 보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중해 건너 모로코 타르파야까지는 못 가보더라도 근처의 생텍쥐페리 생가(生家)만은 반드시 들러봐야겠다는 마음에 조급해져 크루아상 한입을 베어 물고 길을 나섰다.
‘어린 왕자’ 동상에서 쭉 뻗은 길 이름이 ‘앙투안 생텍쥐페리’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저기쯤’이라는데 영 찾을 수가 없다. 몇 번이나 같은 길을 빙빙 돌다 마침내 발견했는데 그 이유를 알았다. 한창 공사 중이어서 가림막을 쳐놓았던 것이다. 지금은 생가의 공사가 다 끝났을 것이다.
생텍쥐페리 생가에서 다시 광장을 가로질러 다리를 건너면 그 유명한 〈리옹의 사람들〉 벽화가 나온다. 리옹이 낳은 유명인들을 건물 전체에 그려놨는데 오른쪽 2층 발코니에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가 있다. 건물 건너편 강변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헌책 벼룩시장이 독서가들의 눈길과 발목을 잡는다.
리옹은 ‘사자(獅子)’라는 뜻으로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해 이곳을 속주(屬州)로 삼았을 때의 수도다. 지금 사용하는 ‘프로방스’라는 말이 속주의 프랑스식 발음이다. 내친김에 설명하자면 리옹은 프랑스 론 알프스의 주도(州都)로 14세기 프랑스에 합병될 때까지 독자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1998년 리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데 리옹 구시가지(Old Lyon)는 유럽 내에서도 갈로 로만(gallo-roman) 시대의 건축물 및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로마제국을 다스린 황제 가운데 클라우디우스, 카라칼라가 리옹 출신이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살기도 했다.
이런 리옹은 15세기에 프랑스 최초의 서적이 인쇄된 ‘출판의 도시’이기도 하다. 론 강변을 따라 열리는 헌책 벼룩시장에서는 만화, 소설, 동화, 고서(古書)까지 다양한 장르의 서적을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리옹의 공항 역시 ‘생텍쥐페리 공항’이니 눈여겨보면 리옹은 생텍쥐페리의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생텍쥐페리의 이상향(理想鄕)은 ‘별’과 ‘창공(蒼空)’이다. 그냥 하늘이 아니라 이럴 땐 꼭 ‘창공’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 것 같은 강박감이 든다. 그는 언제부터 별과 창공에 매료된 것일까. 생텍쥐페리는 백작 아버지와 귀족 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4세 때 아버지가 괴한의 습격을 받고 사망했다.
아버지가 죽자 생텍쥐페리의 어머니는 다섯 아이를 데리고 리옹 근처 생 모리츠 드 레망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성(城)으로 이사갔다. 3년 뒤 외할아버지가 사망하자 빌프랑슈 쉬르 손에 있는 종조모의 성으로 옮겼다.
열네 살이 될 때까지 생텍쥐페리가 산 곳은 귀족의 성채(城砦)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1912년 비행기를 처음 보게 됐다. 종조모의 성이 있는 근처의 비행장에서였다. 거기서 베 드린느라는 조종사와 함께 비행기를 타본 경험에 그는 전율을 느꼈다고 하는데 이 경험이 결국 그의 인생 행로를 결정해 버렸다.
스위스 프리부르의 마리아니스트 수도원에서 공부하던 생텍쥐페리는 1917년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해 보쉬에 고교와 생루이 고교에서 해군사관학교 입학을 준비했지만 구술시험에서 낙방해 미술학교 건축과에 들어갔다. 《어린 왕자》 속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삽화가 여기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1921년 생텍쥐페리는 공군에 입대해 독일 접경지인 스트라스부르 제2전투기 연대 항공정비부대에 소속돼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 그 뒤 모로코 라바트 37비행연대로 전속된 뒤 조종사 면허를 땄다. 어린 시절 별과 창공을 그렸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생텍쥐페리는 창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폭풍우가 있는 날은 올가미와 함정이 수두룩하고 절벽이 느닷없이 내닫고 서양삼송(西洋杉松)을 뿌리째 뽑아버릴 듯한 소용돌이가 수없이 많은, 그런 동화(童話)의 세계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었다. 흑룡 같은 바람이 계곡의 어귀를 가로막았으며 번개가 무더기로 산봉우리를 내려치는 그런 광경이었다.”
이 문장은 1939년 2월 출간돼 그에게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부문 대상을 안긴 《인간의 대지》에 나온다. 이 소설은 1930년 6월 13일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당시 생텍쥐페리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편지와 소포를 운반하는 우편기(郵便機)를 몰고 있었다.
이때 그의 동료였던 기요메가 스물두 번째 남미 안데스 산맥을 횡단하는 비행을 하던 중 폭풍설을 만나 교신이 끊겼다. 생텍쥐페리는 그를 찾기 위해 5일간 수색을 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죽은 줄만 알았던 기요메가 혼자 힘으로 나흘밤을 새우며 걸어 살아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공군조종사가 되려는 꿈을 약혼녀의 반대 때문에 접었다. 그 탓인지 약혼녀와는 곧 파혼했다. 생텍쥐페리는 1926년 10월 툴루즈에 있는 라테코에르 항공에 입사해 툴루즈~카사블랑카, 다카르~카사블랑카 노선을 오가는 우편기를 몰았다. 라테코에르 항공은 에어프랑스의 전신(前身)이다.
당시의 동료 바세르, 메르모즈, 기요메 등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그의 작품 《야간비행》 속 주인공 리뷔에르도 디디에 도라라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했다. 이런 사실들은 생텍쥐페리가 단순한 문필가라기보다 행동하는 작가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가 직접 비행기라는 첨단 문명을 몰며 느낀 것이었다.
너트 한 개를 단단히 죄지 않든지 윤활유를 제때 보충해 주지 않든지 전기 접촉에 불량이 생기는 것 같은 조그마한 소홀함이 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가고 다수의 인명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비행기를 몰며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비행기가 하나의 연장인 것처럼 문학도 문명의 연장이다”라고 말했다.
밤에 ‘연장’을 몰며 하늘을 날 때 그는 다음과 같이 고독한 사색을 했다.
“평야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불빛들만이 별처럼 깜박이는 어느 캄캄한 밤, 아르헨티나를 향해 처음으로 야간비행을 하던 때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그 불빛 하나하나는 암흑의 대양 속에도 한 양심의 기적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집에서는 책을 읽거나 깊은 생각에 잠겨 있거나 혹은 마음속 이야기를 하고 저 집에서는 공간을 탐색할 생각을 하고 안드로메다 성운(星雲)에 관한 계산에 골몰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 저 집에서는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불빛들은 산과 들 사이에서 저마다 양식을 달라며 드문드문 빛나고 있었다. 시인의 불빛, 교사의 불빛, 목수의 불빛 같은 가장 겸허한 불빛까지도 양식을 달라고 했다. 그 살아 있는 별들 중에 닫힌 창문이 얼마나 많았으며 꺼진 별과 잠든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이렇게 그의 작품 곳곳에는 ‘별’과 ‘동화’와 ‘창공’이 등장한다. 다시 《어린 왕자》의 한 구절로 돌아가본다. 어린 왕자가 사는 소혹성 B612에는 집 한 채보다 좀 클까말까한데 활화산 두 개가 있어 아침식사를 끓일 때 유용했다. 휴화산 하나는 폭발을 막기 위해 그을음을 주기적으로 깨끗이 청소해 줬다.
그리고 싹을 뽑아준 바오밥 나무와 유리고깔을 씌운 꽃이 있는데 혹성을 떠나올 때 꽃과 나눈 대화가 있다. 그 꽃은 아주 도도해 떠나는 어린 왕자를 향해 눈물을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렇게 우물쭈물하지 마. 속이 상해. 떠나기로 작정했으니 어서 가’라고 채근한다.
어린 왕자는 꽃이 신경질을 부리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는 고깔을 손에 든 채 어쩔 줄을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꽃이 이렇게 조용하고 다정하게 자기를 대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응, 나는 네가 좋아.” 꽃은 말했다.
“너는 그걸 도무지 몰랐지. 그건 내 탓이었어. 그렇지만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었어. 행복해야 해…. 그 고깔은 내버려 둬. 이젠 쓰기 싫어.”
“그렇지만 바람이….”
“난 그렇게 감기가 몹시 든 것도 아니야. 찬바람은 내게 이로울 거야. 나는 꽃이니까.”
“하지만 벌레들이….”
“나비를 보려면 벌레 두세 마리쯤은 견뎌야 해. 나비는 참 예쁜 모양이던데 그렇지 않으면 누가 나를 찾아주겠어. 너는 멀리 가 있을 거고 큰 짐승들은 조금도 겁날 것 없어. 나는 가시가 있으니까.”
대체 이 꽃, 더 정확히 말해 장미꽃은 누구일까. 생텍쥐페리는 남미에서 항로개발 및 항공사 영업 주임으로 일하던 서른 살 무렵, 산살바도르 출신의 콘스엘로와 사랑에 빠졌다. 콘스엘로는 고메즈 카리요카라는 신문기자의 아내였으나 고메즈가 사망하자 홀로 살고 있다 생텍쥐페리를 만났다.
생텍쥐페리는 소설 《야간비행》의 주인공 리뷔에르, 즉 디디에 도라가 영업부장 자리에서 물러나자 그와 행동을 같이하기로 마음먹고 항공사를 그만둔 뒤 파리로 와 1931년 콘스엘로와 결혼했다. 그는 성격이 까다로운 아내에게서 영감을 얻어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왕자를 괴롭히는 장미꽃을 묘사했다.
그해 12월 29일 생텍쥐페리는 프랑스 파리부터 베트남 사이공 간 비행을 시도하기로 마음먹고 1차 목적지인 이집트 카이로를 향해 떠났다. 그런데 생텍쥐페리와 동료 두 사람이 몰던 비행기가 카이로에서 200km 떨어진 사막에 추락하고 말았다. 생텍쥐페리와 살아남은 기관사 프레보는 필사의 탈출을 했다.
하늘의 도움이 있었는지, 생텍쥐페리 일행은 닷새 동안 먹을 물도 없이 사막을 헤매다 근처를 지나던 베두인 대상(隊商)을 만나 극적으로 구조된다. 이 경험이 앞서 말했던 1929년 동료 기요메의 탈출 경험과 함께 《인간의 대지》 《어린 왕자》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동화 형식으로 된 《어린 왕자》는 프랑스가 독일에 패전하자 생텍쥐페리가 미국에 피신해 있을 때 썼고 발표도 미국에서 했다. 생텍쥐페리는 자기 꿈의 근원을 동심(童心)의 세계에서 찾으려 했고 물질이나 욕망에 더럽혀지지 않은 어린이의 심안(心眼)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했다. 그래서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치는 것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바란다.
그럴 만한 이유가 내겐 있다. 그 어른은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 어른은 모든 것을 이해할 만하며 어린아이들을 위한 책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라면 그 어른이 지금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며 프랑스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른을 달래주어야만 했다. 이 모든 이유로도 부족해 보인다면 나는 이 책을 어린 시절의 그에게 바칠까 한다. 어른들도 모두 한 번은 어린아이였다. 하긴 그걸 기억하는 어른들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소혹성 B612를 떠나 임금이 사는 별, 허풍쟁이가 사는 별 등 여섯 개의 별을 지나 일곱 번째 별인 지구에 도착한다. 거기서 어린 왕자는 맥이 탁 풀리고 마는데 그것은 자기가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꽃이 사실은 수많은 장미꽃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풀밭에서 우는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나타나 어떻게 하면 친구를 만들 수 있는지, 어린 왕자의 장미꽃이 왜 유일한 것인지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길을 들였고’ ‘서로 관련을 맺었기’ 때문이었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으로밖에는 잘 볼 수 없다’는 것도 가르쳐준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한다.
“이것은 내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쓸쓸한 풍경이다.… 이 그림은 어린 왕자가 지구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지점이다. 이 그림 속 풍경을 잘 봐두었다가 언젠가 당신이 아프리카의 사막을 여행할 때 틀림없이 이 장소를 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거길 지나게 된다면 서두르지 말고 잠깐 동안은 별빛 아래에서 기다려보길 간절히 바란다. 만일 그때 한 꼬마가 당신에게 다가와서 미소 짓는다면, 그리고 그 꼬마의 머리칼이 금발이고 당신이 질문을 해도 전혀 대답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애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게 친절을 베풀어주길! 내가 이토록 슬퍼하는 걸 봐서라도 그가 돌아왔다고 어서 편지를 보내주길.”
그렇지만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줄 필요는 없겠다. 생텍쥐페리는 이미 우리가 이 글을 읽고 있는 것보다 74년 전에 벌써 어린 왕자의 별로 날아가서 그 성격 까탈스럽지만 예쁜 장미꽃을 함께 가꾸고 양(羊)을 기르며 화산 굴뚝을 쑤시며 재미있게 어린 왕자와 지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1942년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상륙작전이 성공하자 1943년 5월 알제리에 있는 정찰비행단에 돌아가겠다는 뜻을 전해 미국인 지휘관 휘하의 ‘우즈다 비행대’에 편입됐다. 그러던 중 이커 장군에게 “5회만 출격한다”고 약속하고 지중해 샤르데냐 섬 빌라체도르에 있던 2-33정찰비행단에 복귀했다.
1944년 7월 31일 생텍쥐페리는 정찰기 P-38 라이트닝 쌍발 고속 전투기를 몰고 샤르데냐를 떠나 이탈리아-스위스 접경지인 그르노블, 안시를 향해 기수(機首)를 돌렸다. 생텍쥐페리가 몰던 정찰기는 연락이 두절됐는데 코르시카 바스티아 북쪽 100km 지점에 추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0년 5월 프랑스의 한 잠수부가 마르세유 근해(近海)에서 바닷속에 잠긴 고철을 발견했다.
그것은 생텍쥐페리가 몰던 P-38 항공기의 잔해였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04년 프랑스 수중탐사팀은 마르세유 근해에서 또다시 P-38 항공기의 잔해를 찾아냈다. 물론 잠수부와 수중탐사팀이 생텍쥐페리의 유해를 찾아내진 못했다. 앞서 말한 대로 그는 이미 소혹성 B612에서 어린 왕자와 살고 있을 것이다.
“경험을 통해 보건대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같은 방향을 볼 때 생겨난다.”(《인간의 대지》)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사막은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누군가에게 길든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것을 각오하는 것이야.”
“누군가 양을 갖고 싶어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증거야.”
“꽃들의 말에 절대 귀를 기울이면 안 돼. 그저 바라보고 향기만 맡아야 해.”(이상 《어린 왕자》)⊙
리옹을 동서로 가르는 론강은 굽이굽이 프랑스 중앙을 적시며 마르세유를 거쳐 지중해로 빠져나간다. 그날 론강 서편 벨쿠르 광장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인적 드문 광장에 기마상(騎馬像)이 있었다. 루이 14세. 그 반대쪽 끄트머리에서 무심코 그걸 바라보는데 가로수에 가린 회색빛 동상이 보였다.
동상 좌대(座臺)에 걸터앉은 조종사 차림의 사내 곁에 한 어린이가 서 있다. 자세히 보니 ‘어린 왕자’와 저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다. 그러고 보니 생텍쥐페리 역시 론강처럼 여기서 태어나 마르세유 근처 지중해 바다에서 잠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상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ne a lyon 29 juin 1900
mort pour la france
le 31 juillet 1944
j’aurai l’air d’etre mort
et ce ne sera pas vrai
1900년 6월 29일 리옹에서 태어나 1944년 7월 31일 프랑스를 위해 사망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게 아니에요.”
이게 어디서 나온 구절일까 찾아보니 어린 왕자와 조종사가 헤어지기 직전의 대사다. 고향 별로 되돌아가는 ‘어린 왕자’는 조종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저씨가 온 건 잘못이야. 마음이 아플 테니까. 난 죽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아니야. 거긴 너무 멀어. 내 몸을 가지곤 떠날 수 없어. 너무 무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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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생가 앞을 흐르는 론강이다. 생텍쥐페리 생가 뒤로는 손강이 흐른다. 즉 생가는 두 강 사이에 있는 작은 섬 같은 곳에 위치해 있다. |
두 번째 장(章)에 가면 ‘이처럼 나는 6년 전 사하라 사막에서 내가 조종하던 비행기가 고장을 일으킬 때까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도 없이 혼자 살아왔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 사하라 사막은 어디일까? 《어린 왕자》 속 조종사의 비행기가 불시착한 곳은 아프리카 모로코의 타르파야 근처 사막이다.
타르파야에는 비행기 모형과 ‘어린 왕자 박물관’이 있다. 황량한 모래벌판 한가운데 신기루처럼 보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중해 건너 모로코 타르파야까지는 못 가보더라도 근처의 생텍쥐페리 생가(生家)만은 반드시 들러봐야겠다는 마음에 조급해져 크루아상 한입을 베어 물고 길을 나섰다.
‘어린 왕자’ 동상에서 쭉 뻗은 길 이름이 ‘앙투안 생텍쥐페리’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저기쯤’이라는데 영 찾을 수가 없다. 몇 번이나 같은 길을 빙빙 돌다 마침내 발견했는데 그 이유를 알았다. 한창 공사 중이어서 가림막을 쳐놓았던 것이다. 지금은 생가의 공사가 다 끝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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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이 낳은 인물들을 건물 전체에 그려놓은 벽화 건물로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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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쪽 2층 발코니에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가 보인다. |
리옹은 ‘사자(獅子)’라는 뜻으로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해 이곳을 속주(屬州)로 삼았을 때의 수도다. 지금 사용하는 ‘프로방스’라는 말이 속주의 프랑스식 발음이다. 내친김에 설명하자면 리옹은 프랑스 론 알프스의 주도(州都)로 14세기 프랑스에 합병될 때까지 독자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1998년 리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데 리옹 구시가지(Old Lyon)는 유럽 내에서도 갈로 로만(gallo-roman) 시대의 건축물 및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로마제국을 다스린 황제 가운데 클라우디우스, 카라칼라가 리옹 출신이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살기도 했다.
이런 리옹은 15세기에 프랑스 최초의 서적이 인쇄된 ‘출판의 도시’이기도 하다. 론 강변을 따라 열리는 헌책 벼룩시장에서는 만화, 소설, 동화, 고서(古書)까지 다양한 장르의 서적을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리옹의 공항 역시 ‘생텍쥐페리 공항’이니 눈여겨보면 리옹은 생텍쥐페리의 도시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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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은 벽화도시답게 곳곳의 건물이 이렇게 장식돼 있다. |
아버지가 죽자 생텍쥐페리의 어머니는 다섯 아이를 데리고 리옹 근처 생 모리츠 드 레망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성(城)으로 이사갔다. 3년 뒤 외할아버지가 사망하자 빌프랑슈 쉬르 손에 있는 종조모의 성으로 옮겼다.
열네 살이 될 때까지 생텍쥐페리가 산 곳은 귀족의 성채(城砦)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1912년 비행기를 처음 보게 됐다. 종조모의 성이 있는 근처의 비행장에서였다. 거기서 베 드린느라는 조종사와 함께 비행기를 타본 경험에 그는 전율을 느꼈다고 하는데 이 경험이 결국 그의 인생 행로를 결정해 버렸다.
스위스 프리부르의 마리아니스트 수도원에서 공부하던 생텍쥐페리는 1917년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해 보쉬에 고교와 생루이 고교에서 해군사관학교 입학을 준비했지만 구술시험에서 낙방해 미술학교 건축과에 들어갔다. 《어린 왕자》 속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삽화가 여기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1921년 생텍쥐페리는 공군에 입대해 독일 접경지인 스트라스부르 제2전투기 연대 항공정비부대에 소속돼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 그 뒤 모로코 라바트 37비행연대로 전속된 뒤 조종사 면허를 땄다. 어린 시절 별과 창공을 그렸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생텍쥐페리는 창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폭풍우가 있는 날은 올가미와 함정이 수두룩하고 절벽이 느닷없이 내닫고 서양삼송(西洋杉松)을 뿌리째 뽑아버릴 듯한 소용돌이가 수없이 많은, 그런 동화(童話)의 세계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었다. 흑룡 같은 바람이 계곡의 어귀를 가로막았으며 번개가 무더기로 산봉우리를 내려치는 그런 광경이었다.”
이 문장은 1939년 2월 출간돼 그에게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부문 대상을 안긴 《인간의 대지》에 나온다. 이 소설은 1930년 6월 13일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당시 생텍쥐페리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편지와 소포를 운반하는 우편기(郵便機)를 몰고 있었다.
이때 그의 동료였던 기요메가 스물두 번째 남미 안데스 산맥을 횡단하는 비행을 하던 중 폭풍설을 만나 교신이 끊겼다. 생텍쥐페리는 그를 찾기 위해 5일간 수색을 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죽은 줄만 알았던 기요메가 혼자 힘으로 나흘밤을 새우며 걸어 살아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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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스토랑은 리옹에서 가장 유명했다고 한다. |
당시의 동료 바세르, 메르모즈, 기요메 등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그의 작품 《야간비행》 속 주인공 리뷔에르도 디디에 도라라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했다. 이런 사실들은 생텍쥐페리가 단순한 문필가라기보다 행동하는 작가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가 직접 비행기라는 첨단 문명을 몰며 느낀 것이었다.
너트 한 개를 단단히 죄지 않든지 윤활유를 제때 보충해 주지 않든지 전기 접촉에 불량이 생기는 것 같은 조그마한 소홀함이 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가고 다수의 인명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비행기를 몰며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비행기가 하나의 연장인 것처럼 문학도 문명의 연장이다”라고 말했다.
밤에 ‘연장’을 몰며 하늘을 날 때 그는 다음과 같이 고독한 사색을 했다.
“평야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불빛들만이 별처럼 깜박이는 어느 캄캄한 밤, 아르헨티나를 향해 처음으로 야간비행을 하던 때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그 불빛 하나하나는 암흑의 대양 속에도 한 양심의 기적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집에서는 책을 읽거나 깊은 생각에 잠겨 있거나 혹은 마음속 이야기를 하고 저 집에서는 공간을 탐색할 생각을 하고 안드로메다 성운(星雲)에 관한 계산에 골몰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 저 집에서는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불빛들은 산과 들 사이에서 저마다 양식을 달라며 드문드문 빛나고 있었다. 시인의 불빛, 교사의 불빛, 목수의 불빛 같은 가장 겸허한 불빛까지도 양식을 달라고 했다. 그 살아 있는 별들 중에 닫힌 창문이 얼마나 많았으며 꺼진 별과 잠든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이렇게 그의 작품 곳곳에는 ‘별’과 ‘동화’와 ‘창공’이 등장한다. 다시 《어린 왕자》의 한 구절로 돌아가본다. 어린 왕자가 사는 소혹성 B612에는 집 한 채보다 좀 클까말까한데 활화산 두 개가 있어 아침식사를 끓일 때 유용했다. 휴화산 하나는 폭발을 막기 위해 그을음을 주기적으로 깨끗이 청소해 줬다.
그리고 싹을 뽑아준 바오밥 나무와 유리고깔을 씌운 꽃이 있는데 혹성을 떠나올 때 꽃과 나눈 대화가 있다. 그 꽃은 아주 도도해 떠나는 어린 왕자를 향해 눈물을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렇게 우물쭈물하지 마. 속이 상해. 떠나기로 작정했으니 어서 가’라고 채근한다.
어린 왕자는 꽃이 신경질을 부리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는 고깔을 손에 든 채 어쩔 줄을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꽃이 이렇게 조용하고 다정하게 자기를 대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응, 나는 네가 좋아.” 꽃은 말했다.
“너는 그걸 도무지 몰랐지. 그건 내 탓이었어. 그렇지만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었어. 행복해야 해…. 그 고깔은 내버려 둬. 이젠 쓰기 싫어.”
“그렇지만 바람이….”
“난 그렇게 감기가 몹시 든 것도 아니야. 찬바람은 내게 이로울 거야. 나는 꽃이니까.”
“하지만 벌레들이….”
“나비를 보려면 벌레 두세 마리쯤은 견뎌야 해. 나비는 참 예쁜 모양이던데 그렇지 않으면 누가 나를 찾아주겠어. 너는 멀리 가 있을 거고 큰 짐승들은 조금도 겁날 것 없어. 나는 가시가 있으니까.”
대체 이 꽃, 더 정확히 말해 장미꽃은 누구일까. 생텍쥐페리는 남미에서 항로개발 및 항공사 영업 주임으로 일하던 서른 살 무렵, 산살바도르 출신의 콘스엘로와 사랑에 빠졌다. 콘스엘로는 고메즈 카리요카라는 신문기자의 아내였으나 고메즈가 사망하자 홀로 살고 있다 생텍쥐페리를 만났다.
생텍쥐페리는 소설 《야간비행》의 주인공 리뷔에르, 즉 디디에 도라가 영업부장 자리에서 물러나자 그와 행동을 같이하기로 마음먹고 항공사를 그만둔 뒤 파리로 와 1931년 콘스엘로와 결혼했다. 그는 성격이 까다로운 아내에게서 영감을 얻어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왕자를 괴롭히는 장미꽃을 묘사했다.
그해 12월 29일 생텍쥐페리는 프랑스 파리부터 베트남 사이공 간 비행을 시도하기로 마음먹고 1차 목적지인 이집트 카이로를 향해 떠났다. 그런데 생텍쥐페리와 동료 두 사람이 몰던 비행기가 카이로에서 200km 떨어진 사막에 추락하고 말았다. 생텍쥐페리와 살아남은 기관사 프레보는 필사의 탈출을 했다.
하늘의 도움이 있었는지, 생텍쥐페리 일행은 닷새 동안 먹을 물도 없이 사막을 헤매다 근처를 지나던 베두인 대상(隊商)을 만나 극적으로 구조된다. 이 경험이 앞서 말했던 1929년 동료 기요메의 탈출 경험과 함께 《인간의 대지》 《어린 왕자》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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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생가는 지금 변호사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치는 것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바란다.
그럴 만한 이유가 내겐 있다. 그 어른은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 어른은 모든 것을 이해할 만하며 어린아이들을 위한 책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라면 그 어른이 지금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며 프랑스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른을 달래주어야만 했다. 이 모든 이유로도 부족해 보인다면 나는 이 책을 어린 시절의 그에게 바칠까 한다. 어른들도 모두 한 번은 어린아이였다. 하긴 그걸 기억하는 어른들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소혹성 B612를 떠나 임금이 사는 별, 허풍쟁이가 사는 별 등 여섯 개의 별을 지나 일곱 번째 별인 지구에 도착한다. 거기서 어린 왕자는 맥이 탁 풀리고 마는데 그것은 자기가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꽃이 사실은 수많은 장미꽃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풀밭에서 우는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나타나 어떻게 하면 친구를 만들 수 있는지, 어린 왕자의 장미꽃이 왜 유일한 것인지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길을 들였고’ ‘서로 관련을 맺었기’ 때문이었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으로밖에는 잘 볼 수 없다’는 것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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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뒤편은 리옹 대성당이다. |
“이것은 내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쓸쓸한 풍경이다.… 이 그림은 어린 왕자가 지구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지점이다. 이 그림 속 풍경을 잘 봐두었다가 언젠가 당신이 아프리카의 사막을 여행할 때 틀림없이 이 장소를 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거길 지나게 된다면 서두르지 말고 잠깐 동안은 별빛 아래에서 기다려보길 간절히 바란다. 만일 그때 한 꼬마가 당신에게 다가와서 미소 짓는다면, 그리고 그 꼬마의 머리칼이 금발이고 당신이 질문을 해도 전혀 대답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애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게 친절을 베풀어주길! 내가 이토록 슬퍼하는 걸 봐서라도 그가 돌아왔다고 어서 편지를 보내주길.”
그렇지만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줄 필요는 없겠다. 생텍쥐페리는 이미 우리가 이 글을 읽고 있는 것보다 74년 전에 벌써 어린 왕자의 별로 날아가서 그 성격 까탈스럽지만 예쁜 장미꽃을 함께 가꾸고 양(羊)을 기르며 화산 굴뚝을 쑤시며 재미있게 어린 왕자와 지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1942년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상륙작전이 성공하자 1943년 5월 알제리에 있는 정찰비행단에 돌아가겠다는 뜻을 전해 미국인 지휘관 휘하의 ‘우즈다 비행대’에 편입됐다. 그러던 중 이커 장군에게 “5회만 출격한다”고 약속하고 지중해 샤르데냐 섬 빌라체도르에 있던 2-33정찰비행단에 복귀했다.
1944년 7월 31일 생텍쥐페리는 정찰기 P-38 라이트닝 쌍발 고속 전투기를 몰고 샤르데냐를 떠나 이탈리아-스위스 접경지인 그르노블, 안시를 향해 기수(機首)를 돌렸다. 생텍쥐페리가 몰던 정찰기는 연락이 두절됐는데 코르시카 바스티아 북쪽 100km 지점에 추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0년 5월 프랑스의 한 잠수부가 마르세유 근해(近海)에서 바닷속에 잠긴 고철을 발견했다.
그것은 생텍쥐페리가 몰던 P-38 항공기의 잔해였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04년 프랑스 수중탐사팀은 마르세유 근해에서 또다시 P-38 항공기의 잔해를 찾아냈다. 물론 잠수부와 수중탐사팀이 생텍쥐페리의 유해를 찾아내진 못했다. 앞서 말한 대로 그는 이미 소혹성 B612에서 어린 왕자와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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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 앞바다다. 가운데 보이는 섬이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무대가 됐던 이프 섬이다. |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사막은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누군가에게 길든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것을 각오하는 것이야.”
“누군가 양을 갖고 싶어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증거야.”
“꽃들의 말에 절대 귀를 기울이면 안 돼. 그저 바라보고 향기만 맡아야 해.”(이상 《어린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