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준, “지난 30년간 북한 핵 문제는 단 한 번도 해결되거나 해결의 문턱에 접근한 적 없어”
⊙ 송민순, “북한이 체제 유지 위해 무슨 일이든 해도 핵 카드는 끝까지 유지하려 할 것”
⊙ 안인해, “한반도 문제는 주변국과 외교와 협상으로 풀어야 종국적인 목적 달성할 수 있어”
⊙ 한용섭, “북핵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외교적 조치가 남아 있어”
⊙ 강인덕, “‘민족감상주의적 통일’론 또는 ‘무조건 통일’론 등을 표방하는 자들은 ‘얼치기 민주주의자들’”
[편집자 註]
이 글은 ▲이용준(李容濬)의 《북한 핵, 새로운 게임의 법칙》(2004) ▲송민순(宋旻淳)의 《빙하는 움직인다: 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2016) ▲안인해(安仁海)의 《중국과 미국 그리고 한반도: 패권의 딜레마 Ⅱ》(2021) ▲한용섭(韓庸燮)의 《핵 비확산의 국제정치와 한국의 핵 정책》(2022) ▲강인덕(康仁德)의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편조백방(遍照百邦), 투시백년(透視百年)의 기세로》(전 2권, 2022)에 대한 종합 서평이다. 이 책들을 통해 북한체제의 본질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자세를 새롭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 송민순, “북한이 체제 유지 위해 무슨 일이든 해도 핵 카드는 끝까지 유지하려 할 것”
⊙ 안인해, “한반도 문제는 주변국과 외교와 협상으로 풀어야 종국적인 목적 달성할 수 있어”
⊙ 한용섭, “북핵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외교적 조치가 남아 있어”
⊙ 강인덕, “‘민족감상주의적 통일’론 또는 ‘무조건 통일’론 등을 표방하는 자들은 ‘얼치기 민주주의자들’”
[편집자 註]
이 글은 ▲이용준(李容濬)의 《북한 핵, 새로운 게임의 법칙》(2004) ▲송민순(宋旻淳)의 《빙하는 움직인다: 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2016) ▲안인해(安仁海)의 《중국과 미국 그리고 한반도: 패권의 딜레마 Ⅱ》(2021) ▲한용섭(韓庸燮)의 《핵 비확산의 국제정치와 한국의 핵 정책》(2022) ▲강인덕(康仁德)의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편조백방(遍照百邦), 투시백년(透視百年)의 기세로》(전 2권, 2022)에 대한 종합 서평이다. 이 책들을 통해 북한체제의 본질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자세를 새롭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 2008년 6월 27일 북한은 영변 핵 냉각탑을 폭파했다. 당시 북한의 냉각탑 폭파를 ‘핵 폐기’ 의지로 받아들인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지만 북한은 핵 개발을 멈추지 않았고, 냉각 시설을 복구해 핵 시설을 재가동했다. 사진=뉴시스
새해에 들어와서도 핵탄두 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북한의 핵 위협은 끊이지 않고 있다. 동시에 그사이 한국 안의 여러 곳에서 북한이 은밀하게 전개했으나 지난날의 몇몇 ‘진보·좌파’ 정부가 포착하지 못했거나 ‘묵인’했던 것으로 의심되는 조직적 간첩 활동들이 작년에 출범한 ‘보수·우파’ 정부에 의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자연히 대한민국의 안보상황 그리고 현 정부를 포함한 우리 역대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주제와 연관된 몇몇 저술을, 그 저술 전체가 아니라 그 저술에 포함된 북핵에 관한 설명이나 언급에 초점을 맞춰, 출판된 해의 순서에 따라 살피기로 하겠다.
이용준 北核대사의 경고
저자 이용준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면서 외무고시를 통해 외무부(오늘날의 외교부)에 입부한 뒤 여러 부서를 거쳐 차관보와 말레이시아 대사 및 이탈리아 대사를 역임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북한경수로협상 한국대표 및 사무국 정책부장, 외교부 북핵외교기획단장, 남북한·미국·중국·러시아·일본 6자회담 차석대표, 북핵 담당대사 등 중책을 맡으며 통산 30년 동안 북한을 상대로 한 협상 그리고 미국을 상대로 한 외교에 참여했다. 이론적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던 그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4년 이후 15년에 걸쳐 4권의 책을 펴냈다. 《북한 핵,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비롯 《게임의 종말: 북핵 협상 20년의 허상과 진실 그리고 그 이후》(2010), 《북핵 30년의 허상과 진실: 한반도 핵게임의 종말》(2018), 《대한민국의 위험한 선택: 전환기 한국 외교의 네가지 위기》(2019) 등이다.
일련의 책들은 북핵의 진상과 북핵 협상의 내면을 정직하게 드러내주면서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거듭하고 있다. 이 대사는 우선 6·25전쟁이 휴전으로 매듭지어진 1953년 7월 직후부터 김일성이 일관되게 추진한 핵 개발의 역사를 추적했다. 북한 핵 개발의 역사는 핵 개발에 대한 북한의 끈질긴 욕망을 보여주면서 핵 개발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님을 확신시켜준다. 이 대사는 이어 북한의 평안도 영변에서 핵 시설이 관찰된 1989년 이후 북핵이 한국 그리고 미국·러시아·중국·일본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에서 심각한 쟁점으로 등장하고 전개된 과정을 정확히 복원했다. 여기서도 북한이 얼마나 집요하게 핵 개발에 매달려왔던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 대사는 협상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시키려던 국제사회에서의,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쳤던 남북정상회담에서의 외교적 노력이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2000년의 6·15공동선언을 비롯해 몇 차례의 화려한 다짐이 발표됐지만, 글자 그대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이었을 뿐,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건 불용인하건 관계없이 북한은 이제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이러한 결과가 빚어진 것일까? 이 대사에 따르면, “한국과 국제사회는 지난 약 30년의 세월 동안 온갖 오판과 시행착오와 고의적 방치를 반복한 결과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고, 북한은 결국 이 게임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이 결론에 대해, 그는 “과거 우리나라의 어느 정부는 북한 핵 문제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양 모르는 체하기도 했고, 어느 정부는 핵 문제가 모두 해결이라도 된 듯이 과장된 홍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북한 핵 문제는 단 한 번도 해결되거나 해결의 문턱에 접근한 적이 없었고, 단 한 순간도 상황이 호전됨이 없이 지속적으로 북한의 핵 개발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왔을 뿐”이라고 부연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는 북한의 전쟁불사 협박에 굴복해 미국의 대(對)북한 유엔제재 추진과 군사압박 움직임을 막은 김영삼(이하 YS) 정부, 그리고 대북 압박이나 응징보다 미국의 강력한 대응을 견제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김대중(이하 DJ) 정부와 노무현 정부 등을 비판했다. 또 《중앙일보》와의 지난 3월 13일 자 인터뷰에서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면서 북·미정상회담을 중재한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여기서 그는 ‘북핵 협상 과정에서 고비마다 번뜩였던 북한의 외교술’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현실과 희망사항을 혼동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자 한’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를 비판하고 “판단은 항상 실체적 진실과 사실의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송민순 장관의 ‘차가운’ 관찰과 ‘3M 방식’
북핵을 걱정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구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바로 《빙하는 움직인다》이다. 송민순은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를 통해 외무부에 입부했다. 동서분단의 현장이었던 서베를린총영사관의 부영사로 출발해 YS의 국제안보비서관, DJ의 외교비서관, 노무현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거쳐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 과정에서, 1999년 제네바 4자 평화회담 대표 및 2005년 베이징 6자회담 수석대표로 봉직했으며 뒤의 경우 9·19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폴란드 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송민순은 외교관 생활을 마친 뒤, 18대 국회의원에 이어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봉직하던 때 이 책을 썼다. “지나온 현장에 밀착해봐야 앞으로 갈 길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그는 특히 2005년 1월에 6자회담 수석대표로 시작해 2006년 1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외교통상부 장관을 맡은 때의 일을 기록에 근거해 되살렸다. 송 장관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참으로 많은 일화를 실감 나게 소개했다. 북핵 협상에 참여한 북한 외교관들, 예컨대, 외무성의 김계관(金桂寬) 부상의 경력과 행태에 대한 설명은 흥미롭다. “산전수전을 겪은 협상가[인] 그는 매우 노련해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바깥세상의 물정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다”는 구절이나 “북측 대표는 배석자 없이 남측과 대화하는 것을 꺼렸다”는 구절, 그리고 “북한은 한국과는 가급적 대화를 회피하다가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을 때에는 우리를 찾아왔다”는 구절 등은 북한체제의 성격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준다.
북핵에 관한 여러 기록과 저술을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북핵에 관한 다자회담에 여러 차례 직접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송 장관은 몇 가지 ‘차가운 교훈’을 제시했다. 그것들 가운데 으뜸은 “북한은 체제와 정권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한, 핵무기 옵션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하나의 작은 자료로 북한이 중국의 고위 인사들에게 전한 말을 소개했다.
“북한은 1999년 NATO 공군이 세르비아 폭격을 개시하고 이어 2001년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 대통령을 국제전범재판에 회부하는 것을 보고 핵무기를 가져야겠다는 결심이 강해졌고, 이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과 리비아의 카다피(Múammar al Qaddafi)가 비슷한 운명에 처하자 핵 보유를 정권 보장의 뗄 수 없는 장치로 간주하게 되었다고 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송 장관은 “북한은 정권과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그래서 핵 카드는 끝까지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보았다. 심지어 비핵화를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핵 개발을 계속한 사실을 상기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북한은 정권의 생존을 위해서 위장하고(mendacity), 호전적으로 나오며(militancy), 억지 지원을 요구하는(mendicancy) 전술을 혼용한다”고 지적하며 그것을 ‘3M 방식’으로 명명했다.
‘석양이 지고 나면 별들이 하늘을 채운다’
상황이 이처럼 불길한데도, 송 장관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은 앞으로도 서로 책임을 넘기면서 표면적으로는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제스처를 이어갈 것[이지만…] 모두 독자적으로나 합작으로나 해결에 발 벗고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지금 한반도는 냉전의 바닥에 다가가고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송 장관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협상과 외교를 포기하자는 뜻을 비치는 것도 아니다.
노련한 외교관답게 “적대적 상태에서도 서로에 이익이 되면 협상을 개시한다”고 말하면서, “협상은 작은 성공에서 시작해서 큰 성공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동시에 “통일이 규범이나 당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특히 ‘정권을 초월하는 통일 정책의 지속 능력, 즉 사회적 응집력’의 필수불가결을 중시하면서, “우리 내부의 통합 없이는 북한이나 주변국을 움직이지 못한다”고 부연했다.
송 장관은 독문학도 출신이다. “겨울이 추웠던 만큼 꽃향기도 진했다”로 시작되는 이 책에서 이탈리아의 시성(詩聖) 단테(Alighieri Durante)의 《신곡》과 보헤미아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선고(宣告)》를 접하고, 멋진 문학적 표현을 접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인간의 지혜는 가보지 않은 시간의 영역에 잘 미치지 못한다”는 구절,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는 ‘석양이 지고 나면 낮에는 볼 수 없던 별들이 하늘을 채운다’라고 했다. 내가 현장에서 보지 못했던 별들이 한반도 미래로 가는 생각의 지도에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구절,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쓴 “위대한 발견의 길은 새로운 땅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땅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데 있다”라는 구절 등이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쉽지 않은 국제정치학의 용어가 곳곳에서 나오는데도, 많은 외교적 비화들이 소개된 데다가 이러한 문학적 향기가 배어나오기에 초판 1쇄로부터 3주 만에 8쇄를 기록할 정도로 널리 읽혔을 것이다.
‘통일교수’ 안인해 교수의 관찰과 ‘투키디데스 함정’
안인해 교수는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특히 중국의 정치와 국제관계를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 〈중국에서의 엘리트 정치: 1978~1989년 시기 경제개혁과 중·일경제관계에 대한 엘리트 정치의 관계(Elite Politics in China: Its Relationship to Economic Reform and Sino-Japanese Economic Relations during 1978~1989)〉라는 논문으로 1991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늘날 통일연구원의 전신인 민족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으로 출발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봉직하면서 중국 베이징대 및 일본 게이오대에서 연구를 계속했고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다.
이 책은 안 교수가 1992년 9월 1~6일에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에 관한 제3차 평양토론회’에 남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고, 그 계제에 김일성이 주석궁에서 베푼 오찬에도 참석한 경험을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후 ‘중·미관계와 남북대화’라는 분석의 기본적 큰 틀을 제시하고, 곧 YS 정부로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가 추진했던 대북·통일 정책을 비교했으며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시도한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의 미·북정상회담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 핵’이라는 별개의 장(章)을 설정하고, 북핵의 현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여기서 저자는 “‘북한 정권’은 오로지 핵무기만이 자신을 보호하고 정권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정권 유지를 위한 생존전략이라면 북한의 핵 포기는 결코 쉽지 않다”고 보았으며, 김정은 정권이 “비핵화를 주제로는 어떤 협상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고 있는 현실을 중시했다. 특히 관심을 갖게 하는 부분은 ‘전망’이라는 장으로, 북핵 해결을 위한 여러 모델에 대해 설명했다. 거기에는 ‘북한 핵 시설 제거, 제한적 정밀공격’을 비롯해 ‘미·중 담판, 김정은 체제 붕괴 후 미군 철수(키신저빅딜)’ ‘북·미 수교, 중국 견제(베트남 모델)’ ‘북한 핵 포기, 남북 경제협력’ ‘북한 핵 보유, 남한 핵 배치(파키스탄 모델)’ 등이 포함됐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로서 안 교수는 세계정세는 물론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대해,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갈등과 새로운 냉전을 매우 설득력 있게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상승하는 국가’와 ‘기존 패권국가’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서 지엽적으로라도 충돌하게 된다면 한반도 평화도 요원해진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중·미 관계의 퇴보가 동북아에서 한국의 입지를 약화시키기도 하지만 중국과 미국의 국가 이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꿰뚫어 양국에 호소해야 한다. 중국과 미국 양측을 의식하면서도 한반도가 처한 시련을 자주적으로 이겨내기 위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종국적으로, 안 교수는 “한반도 문제는 북한 핵을 포함하여 주변국과 외교와 협상으로 풀어나가야 종국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건의를 제시했다. 이 건의는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처지에 비추어 우리의 외교력을 끌어올려서 평화적으로 통일의 염원을 이루고 싶다”던 여고생 때 꿈의 연장이었다. 1997년 6월 30일에 베이징의 캠핀스키 호텔에서 남북한 학자들이 참석한 ‘제2차 남북학술회의: 한반도 평화와 화합을 위한 모임’ 때 남북학자들로부터 생일축하를 받으며 ‘통일교수’로 불렸던 실향민 가족의 후손인 안 교수의 이 책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책으로 읽히길 기대한다.
한용섭 교수의 넓은 시야와 마지막 ‘희망’
한용섭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방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비장학생으로 하버드대 정책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랜드대학원에서 안보 정책을 전공해 〈재래식 군비통제 조치의 설계 및 평가: 한반도의 사례(Designing and Evaluating Conventional Arms Control Measures: The Case of the Korean Peninsula)〉라는 논문으로 1991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남측 전략수행요원으로 일하면서 실무경험을 쌓았고, 제네바의 유엔군축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자신의 연구를 심화시켜 1995년에 《동북아시아의 핵 군축과 비확산(Nuclear Disarmament and Nonproliferation in Northeast Asia)》을 출판했다. 국방대 부총장을 역임하고, 한국핵정책학회를 출범시켜 회장을 맡았으며, 현재 국방대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한 교수는 그사이 《동북아시아의 핵무기와 핵군축》(2001), 《한반도 평화와 군비통제》(2004), 《국방정책론》(2012), 《북한 핵의 운명》(2018) 등을 출판했으며, 이 주제로 몇몇 영문 저서도 출판했다. 그리고 이 연장선 위에서 앞에서 적시한 저서를 출판했다.
한국정치학계에서 핵 문제와 관련해 하영선(河英善) 교수와 백진현(白珍鉉) 교수에 이어 독보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한 교수는 핵 문제에 관한 자신의 깊고도 풍부한 지식을 동원한 이 책을 통해 북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와 이해를 훨씬 넓혀주었다. 그는 우선 핵비확산조약(NPT)의 기원과 성장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으며, 이어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한 강대국들(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핵 개발을 시도하다가 포기한 국가들(알제리, 나이지리아, 캐나다, 칠레, 이라크, 리비아, 일본, 호주, 서독, 스페인, 노르웨이,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 핵무기를 보유했다가 ‘자발적으로’ 포기한 국가들(남아프리카공화국,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핵무기를 개발하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포기한 국가(대만)와 미국의 중재로 포기한 국가(이집트), 핵무기를 개발하다가 이웃 국가들 사이의 협상으로 포기한 국가들(아르헨티나, 브라질), 핵 개발을 한다고 의심받던 국가들(이란, 시리아, 미얀마), 사실상 핵 보유 국가로 인정을 받고 있는 국가들(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여러 사례를 상세히 설명했다.
또한 6·25전쟁 때 미국이 한때 핵무기를 사용하려 했던 역사적 사례를 돌이켜보았고, 박정희 대통령과 그 이후 정부가 북핵에 대해 취한 조치들을 비교 분석했다. 여기서 한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이 죽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핵무장 국가도 되고 경제개발도 성공한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허구임을 논증했다. 이 점과 관련해, 그는 “박정희 시대 청와대 비서관과의 인터뷰와 비밀 해제된 미국 국무부의 자료를 통해 본 바로는 박정희 시대인 1976년에 한국이 핵 개발 계획을 완전히 포기했음이 증명되고 있다”고 단언했다. 이어 한국에서 민간 원자력이 발전한 과정도 상세히 설명한 뒤, 문재인 정부 때 시작된 탈(脫)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한 교수의 표현으로, “우리의 탈원전 정책은 원자력의 점진적 도태를 상수로 설정해놓고 그 격차를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무조건 대체해왔는데, 이것은 과학과 계산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한 교수는 북핵에 관한 그사이의 회담과 협상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엄중한 현실 속에서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외교적 조치가 남아 있다고 설명하며 마치 판도라 상자에 마지막으로 ‘희망’이 남아 있었듯 한반도의 장래가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기대를 심어주었다.
강인덕 박사의 통일지상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비판
북핵 문제를, 그리고 역대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의 물음과 관련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바로 강인덕 박사의 회고록인데, 이 책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막 만 90세를 넘긴 강 박사는 6·25전쟁 때 월남해 학도병으로 참전한 뒤 한국외대 러시아어과를 1회로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자 곧바로 입부해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자료들을 다루기 시작했고, 남북대화가 시작된 1971년에는 해외정보국장을 맡았다. 이듬해 북한정보국장 겸 남북대화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은 데 이어 1975년에 심리전국장을 맡았고, 1978년에 공산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극동문제연구소를 세우고 국문과 영문으로 논문집을 발행했다. 그사이 남북대화의 한국 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외대 대학원 아시아지역사회연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경희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공산주의의 통일전선에 관한 연구: 조선로동당 전략을 중심으로〉(1977년 2월)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것은 그가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정상급 북한·공산권 전문가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작은 자료들 가운데 하나가, 1970년대 중반 이후 일정 기간에 걸쳐 《로동신문》을 비롯한 북한의 주요 출판물들에 ‘당 중앙’이라는 수수께끼와 같은 ‘신비스러운’ 새 용어가 등장했을 때, 이 용어가 다름 아닌 김정일을 의미하며 김정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자리를 굳히기 위한 상징조작(象徵操作)의 일환임을 최초로 간파하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이다.
이렇게 이론과 실무 양면에서 북한을 관찰하고 분석한 강인덕 박사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북한에 관한 그의 기본적 인식은 그의 박사 학위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오늘날 북한 공산주의 집단의 대남전략의 기본 형태로 적용하고 있는 전술 역시 코민테른이 통용해온 기본 유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 공산집단의 대남전략은 1920년대 이후 통용해온 코민테른의 혁명이론의 범주 속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제시한 대표적 슬로건인 ‘3대 혁명 역량의 강화’도 국내적으로는 반정부 반보수 통일전선을 형성하고 국제적으로는 반미 반한국 통일전선을 형성하며 이를 결합함으로써 제1단계의 혁명, 즉 ‘민족민주주의 혁명’을 수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제2단계, 즉 ‘인민민주주의 혁명’으로 발전시킨다는 전략 포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인덕 박사는 자신의 이러한 대북관에 기초해 KBS 사회방송국을 통해 북한 ‘지도자’들에 대한 방송을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했다. 조선노동당 간부들의 사고방식에 변화를 안겨줘야 북한의 대남노선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는 김대중 정부 때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대통령국가안보자문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앞에서 살핀 강인덕 박사의 대북관과 관련해 중요하게 상기돼야 할 점은 그의 이러한 인식은 이후 변함없이 일관되게 유지됐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 이 회고록 제2권 제5부에 포함된 ‘양호민(梁好民) 선생과의 대화: 우리 사회의 이념 혼란 문제’를 읽어보는 것이 좋다. 이 글에서 그는 국내에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사와 김일성 체제의 연구를 선도했던 양호민 교수를 높이 평가한다. 또 ‘남조선 해방의 방식으로 이룩되는 공산주의 통일’을 철저하면서도 끈질기게 추구하는 ‘극좌적 전체주의 체제’인 북한체제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민족감상주의적 통일’론 또는 ‘무조건 통일’론 등을 표방하는 ‘통일지상 민족주의자들과 얼치기 민주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이 비판은 우리가 북핵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경제적 지원과 사회적 접촉의 확대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북핵을 저지시키거나 중단시킬 수 있다는 낙관론으로 접근한 역대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다.
공산주의에 대한 기존의 토론을 재음미하며
필자는 이 글을 쓰며 1917년에 러시아에서 공산국가가 성립된 이후 공산주의와 공산국가의 미래에 관해 지도적 사회과학자들이 전개했던 토론을 재음미하게 됐다.
널리 알려져 있듯, 한 그룹의 학자들은 자본주의도 변화할 것이지만 공산주의도 변화해 결국 하나의 공통점으로 ‘수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수렴설’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와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게 하는 이론적 근거로 작용했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에 다른 그룹의 학자들은 공산주의, 특히 레닌과 스탈린이 추구한 공산주의와 그 국가는 그 본질이 ‘악(惡)’이기 때문에 그 ‘악성(惡性)’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것이 ‘이산설(離散說)’이다.
미국의 세계적 공산주의 및 소련 연구자였던 조지 케넌(George F. Kennan) 교수는 레닌 집권기에 소련에 인접한 라트비아 주재 미국공사관의 서기관이었으며, 소련 주재 공사에 이어 대사로 봉직하는 가운데 스탈린 체제의 본질을 ‘악’과 ‘타고난 불성실’로 이해했다. 여기서 ‘봉쇄’라는 용어를 창안하고 그 유명한 봉쇄 정책을 정립했고, 그 연장선 위에서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공언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의 강경 정책은 소련 안에서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체제의 등장을 불러왔고 양자의 결합은 결국 소련과 동유럽 공산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
북한체제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북핵의 해결을 위해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협상과 외교의 수단을 버려서는 안 된다.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협상을 시도하고 계속하는 까닭은 그것만이 전쟁을 중단시키고 평화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또 송민순 장관이 강조하듯, “중국의 협조나 묵인이 없이는 북한체제 붕괴가 불가능하다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북한체제의 본질에 대한 사색을 게을리해서도 안 될 것이다. 북한체제가 안고 있는 내재적 불성실과 허위 그리고 악의 성격을 무겁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임기 안에 남북 관계에서 큰 돌파구를 열겠다는 정치적 공명심에만 매달려 접근하다가는, 더구나 핵 개발을 돕는 결과로 나타나는 정책을 구사하다가는 종국적으로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용준 北核대사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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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준(李容濬)의 《북한 핵, 새로운 게임의 법칙》(2004) |
일련의 책들은 북핵의 진상과 북핵 협상의 내면을 정직하게 드러내주면서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거듭하고 있다. 이 대사는 우선 6·25전쟁이 휴전으로 매듭지어진 1953년 7월 직후부터 김일성이 일관되게 추진한 핵 개발의 역사를 추적했다. 북한 핵 개발의 역사는 핵 개발에 대한 북한의 끈질긴 욕망을 보여주면서 핵 개발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님을 확신시켜준다. 이 대사는 이어 북한의 평안도 영변에서 핵 시설이 관찰된 1989년 이후 북핵이 한국 그리고 미국·러시아·중국·일본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에서 심각한 쟁점으로 등장하고 전개된 과정을 정확히 복원했다. 여기서도 북한이 얼마나 집요하게 핵 개발에 매달려왔던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 대사는 협상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시키려던 국제사회에서의,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쳤던 남북정상회담에서의 외교적 노력이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2000년의 6·15공동선언을 비롯해 몇 차례의 화려한 다짐이 발표됐지만, 글자 그대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이었을 뿐,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건 불용인하건 관계없이 북한은 이제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이러한 결과가 빚어진 것일까? 이 대사에 따르면, “한국과 국제사회는 지난 약 30년의 세월 동안 온갖 오판과 시행착오와 고의적 방치를 반복한 결과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고, 북한은 결국 이 게임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이 결론에 대해, 그는 “과거 우리나라의 어느 정부는 북한 핵 문제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양 모르는 체하기도 했고, 어느 정부는 핵 문제가 모두 해결이라도 된 듯이 과장된 홍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북한 핵 문제는 단 한 번도 해결되거나 해결의 문턱에 접근한 적이 없었고, 단 한 순간도 상황이 호전됨이 없이 지속적으로 북한의 핵 개발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왔을 뿐”이라고 부연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는 북한의 전쟁불사 협박에 굴복해 미국의 대(對)북한 유엔제재 추진과 군사압박 움직임을 막은 김영삼(이하 YS) 정부, 그리고 대북 압박이나 응징보다 미국의 강력한 대응을 견제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김대중(이하 DJ) 정부와 노무현 정부 등을 비판했다. 또 《중앙일보》와의 지난 3월 13일 자 인터뷰에서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면서 북·미정상회담을 중재한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여기서 그는 ‘북핵 협상 과정에서 고비마다 번뜩였던 북한의 외교술’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현실과 희망사항을 혼동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자 한’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를 비판하고 “판단은 항상 실체적 진실과 사실의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송민순 장관의 ‘차가운’ 관찰과 ‘3M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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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당시 베이징 6자회담 수석대표 등 한·미·일 3국의 수석대표들이 2005년 7월 14일 서울 외교통상부 청사에 모이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
송민순은 외교관 생활을 마친 뒤, 18대 국회의원에 이어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봉직하던 때 이 책을 썼다. “지나온 현장에 밀착해봐야 앞으로 갈 길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그는 특히 2005년 1월에 6자회담 수석대표로 시작해 2006년 1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외교통상부 장관을 맡은 때의 일을 기록에 근거해 되살렸다. 송 장관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참으로 많은 일화를 실감 나게 소개했다. 북핵 협상에 참여한 북한 외교관들, 예컨대, 외무성의 김계관(金桂寬) 부상의 경력과 행태에 대한 설명은 흥미롭다. “산전수전을 겪은 협상가[인] 그는 매우 노련해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바깥세상의 물정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다”는 구절이나 “북측 대표는 배석자 없이 남측과 대화하는 것을 꺼렸다”는 구절, 그리고 “북한은 한국과는 가급적 대화를 회피하다가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을 때에는 우리를 찾아왔다”는 구절 등은 북한체제의 성격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준다.
북핵에 관한 여러 기록과 저술을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북핵에 관한 다자회담에 여러 차례 직접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송 장관은 몇 가지 ‘차가운 교훈’을 제시했다. 그것들 가운데 으뜸은 “북한은 체제와 정권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한, 핵무기 옵션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하나의 작은 자료로 북한이 중국의 고위 인사들에게 전한 말을 소개했다.
“북한은 1999년 NATO 공군이 세르비아 폭격을 개시하고 이어 2001년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 대통령을 국제전범재판에 회부하는 것을 보고 핵무기를 가져야겠다는 결심이 강해졌고, 이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과 리비아의 카다피(Múammar al Qaddafi)가 비슷한 운명에 처하자 핵 보유를 정권 보장의 뗄 수 없는 장치로 간주하게 되었다고 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송 장관은 “북한은 정권과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그래서 핵 카드는 끝까지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보았다. 심지어 비핵화를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핵 개발을 계속한 사실을 상기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북한은 정권의 생존을 위해서 위장하고(mendacity), 호전적으로 나오며(militancy), 억지 지원을 요구하는(mendicancy) 전술을 혼용한다”고 지적하며 그것을 ‘3M 방식’으로 명명했다.
‘석양이 지고 나면 별들이 하늘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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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宋旻淳)의 《빙하는 움직인다: 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2016) |
노련한 외교관답게 “적대적 상태에서도 서로에 이익이 되면 협상을 개시한다”고 말하면서, “협상은 작은 성공에서 시작해서 큰 성공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동시에 “통일이 규범이나 당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특히 ‘정권을 초월하는 통일 정책의 지속 능력, 즉 사회적 응집력’의 필수불가결을 중시하면서, “우리 내부의 통합 없이는 북한이나 주변국을 움직이지 못한다”고 부연했다.
송 장관은 독문학도 출신이다. “겨울이 추웠던 만큼 꽃향기도 진했다”로 시작되는 이 책에서 이탈리아의 시성(詩聖) 단테(Alighieri Durante)의 《신곡》과 보헤미아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선고(宣告)》를 접하고, 멋진 문학적 표현을 접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인간의 지혜는 가보지 않은 시간의 영역에 잘 미치지 못한다”는 구절,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는 ‘석양이 지고 나면 낮에는 볼 수 없던 별들이 하늘을 채운다’라고 했다. 내가 현장에서 보지 못했던 별들이 한반도 미래로 가는 생각의 지도에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구절,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쓴 “위대한 발견의 길은 새로운 땅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땅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데 있다”라는 구절 등이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쉽지 않은 국제정치학의 용어가 곳곳에서 나오는데도, 많은 외교적 비화들이 소개된 데다가 이러한 문학적 향기가 배어나오기에 초판 1쇄로부터 3주 만에 8쇄를 기록할 정도로 널리 읽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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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해(安仁海)의 《중국과 미국 그리고 한반도: 패권의 딜레마 Ⅱ》(2021) |
이 책은 안 교수가 1992년 9월 1~6일에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에 관한 제3차 평양토론회’에 남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고, 그 계제에 김일성이 주석궁에서 베푼 오찬에도 참석한 경험을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후 ‘중·미관계와 남북대화’라는 분석의 기본적 큰 틀을 제시하고, 곧 YS 정부로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가 추진했던 대북·통일 정책을 비교했으며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시도한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의 미·북정상회담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 핵’이라는 별개의 장(章)을 설정하고, 북핵의 현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여기서 저자는 “‘북한 정권’은 오로지 핵무기만이 자신을 보호하고 정권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정권 유지를 위한 생존전략이라면 북한의 핵 포기는 결코 쉽지 않다”고 보았으며, 김정은 정권이 “비핵화를 주제로는 어떤 협상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고 있는 현실을 중시했다. 특히 관심을 갖게 하는 부분은 ‘전망’이라는 장으로, 북핵 해결을 위한 여러 모델에 대해 설명했다. 거기에는 ‘북한 핵 시설 제거, 제한적 정밀공격’을 비롯해 ‘미·중 담판, 김정은 체제 붕괴 후 미군 철수(키신저빅딜)’ ‘북·미 수교, 중국 견제(베트남 모델)’ ‘북한 핵 포기, 남북 경제협력’ ‘북한 핵 보유, 남한 핵 배치(파키스탄 모델)’ 등이 포함됐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로서 안 교수는 세계정세는 물론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대해,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갈등과 새로운 냉전을 매우 설득력 있게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상승하는 국가’와 ‘기존 패권국가’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서 지엽적으로라도 충돌하게 된다면 한반도 평화도 요원해진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중·미 관계의 퇴보가 동북아에서 한국의 입지를 약화시키기도 하지만 중국과 미국의 국가 이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꿰뚫어 양국에 호소해야 한다. 중국과 미국 양측을 의식하면서도 한반도가 처한 시련을 자주적으로 이겨내기 위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종국적으로, 안 교수는 “한반도 문제는 북한 핵을 포함하여 주변국과 외교와 협상으로 풀어나가야 종국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건의를 제시했다. 이 건의는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처지에 비추어 우리의 외교력을 끌어올려서 평화적으로 통일의 염원을 이루고 싶다”던 여고생 때 꿈의 연장이었다. 1997년 6월 30일에 베이징의 캠핀스키 호텔에서 남북한 학자들이 참석한 ‘제2차 남북학술회의: 한반도 평화와 화합을 위한 모임’ 때 남북학자들로부터 생일축하를 받으며 ‘통일교수’로 불렸던 실향민 가족의 후손인 안 교수의 이 책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책으로 읽히길 기대한다.
한용섭 교수의 넓은 시야와 마지막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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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섭(韓庸燮)의 《핵 비확산의 국제정치와 한국의 핵 정책》(2022) |
이어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남측 전략수행요원으로 일하면서 실무경험을 쌓았고, 제네바의 유엔군축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자신의 연구를 심화시켜 1995년에 《동북아시아의 핵 군축과 비확산(Nuclear Disarmament and Nonproliferation in Northeast Asia)》을 출판했다. 국방대 부총장을 역임하고, 한국핵정책학회를 출범시켜 회장을 맡았으며, 현재 국방대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한 교수는 그사이 《동북아시아의 핵무기와 핵군축》(2001), 《한반도 평화와 군비통제》(2004), 《국방정책론》(2012), 《북한 핵의 운명》(2018) 등을 출판했으며, 이 주제로 몇몇 영문 저서도 출판했다. 그리고 이 연장선 위에서 앞에서 적시한 저서를 출판했다.
한국정치학계에서 핵 문제와 관련해 하영선(河英善) 교수와 백진현(白珍鉉) 교수에 이어 독보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한 교수는 핵 문제에 관한 자신의 깊고도 풍부한 지식을 동원한 이 책을 통해 북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와 이해를 훨씬 넓혀주었다. 그는 우선 핵비확산조약(NPT)의 기원과 성장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으며, 이어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한 강대국들(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핵 개발을 시도하다가 포기한 국가들(알제리, 나이지리아, 캐나다, 칠레, 이라크, 리비아, 일본, 호주, 서독, 스페인, 노르웨이,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 핵무기를 보유했다가 ‘자발적으로’ 포기한 국가들(남아프리카공화국,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핵무기를 개발하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포기한 국가(대만)와 미국의 중재로 포기한 국가(이집트), 핵무기를 개발하다가 이웃 국가들 사이의 협상으로 포기한 국가들(아르헨티나, 브라질), 핵 개발을 한다고 의심받던 국가들(이란, 시리아, 미얀마), 사실상 핵 보유 국가로 인정을 받고 있는 국가들(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여러 사례를 상세히 설명했다.
또한 6·25전쟁 때 미국이 한때 핵무기를 사용하려 했던 역사적 사례를 돌이켜보았고, 박정희 대통령과 그 이후 정부가 북핵에 대해 취한 조치들을 비교 분석했다. 여기서 한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이 죽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핵무장 국가도 되고 경제개발도 성공한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허구임을 논증했다. 이 점과 관련해, 그는 “박정희 시대 청와대 비서관과의 인터뷰와 비밀 해제된 미국 국무부의 자료를 통해 본 바로는 박정희 시대인 1976년에 한국이 핵 개발 계획을 완전히 포기했음이 증명되고 있다”고 단언했다. 이어 한국에서 민간 원자력이 발전한 과정도 상세히 설명한 뒤, 문재인 정부 때 시작된 탈(脫)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한 교수의 표현으로, “우리의 탈원전 정책은 원자력의 점진적 도태를 상수로 설정해놓고 그 격차를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무조건 대체해왔는데, 이것은 과학과 계산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한 교수는 북핵에 관한 그사이의 회담과 협상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엄중한 현실 속에서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외교적 조치가 남아 있다고 설명하며 마치 판도라 상자에 마지막으로 ‘희망’이 남아 있었듯 한반도의 장래가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기대를 심어주었다.
강인덕 박사의 통일지상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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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덕(康仁德)의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편조백방(遍照百邦), 투시백년(透視百年)의 기세로》(전 2권, 2022) |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자 곧바로 입부해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자료들을 다루기 시작했고, 남북대화가 시작된 1971년에는 해외정보국장을 맡았다. 이듬해 북한정보국장 겸 남북대화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은 데 이어 1975년에 심리전국장을 맡았고, 1978년에 공산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극동문제연구소를 세우고 국문과 영문으로 논문집을 발행했다. 그사이 남북대화의 한국 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외대 대학원 아시아지역사회연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경희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공산주의의 통일전선에 관한 연구: 조선로동당 전략을 중심으로〉(1977년 2월)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것은 그가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정상급 북한·공산권 전문가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작은 자료들 가운데 하나가, 1970년대 중반 이후 일정 기간에 걸쳐 《로동신문》을 비롯한 북한의 주요 출판물들에 ‘당 중앙’이라는 수수께끼와 같은 ‘신비스러운’ 새 용어가 등장했을 때, 이 용어가 다름 아닌 김정일을 의미하며 김정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자리를 굳히기 위한 상징조작(象徵操作)의 일환임을 최초로 간파하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이다.
이렇게 이론과 실무 양면에서 북한을 관찰하고 분석한 강인덕 박사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북한에 관한 그의 기본적 인식은 그의 박사 학위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오늘날 북한 공산주의 집단의 대남전략의 기본 형태로 적용하고 있는 전술 역시 코민테른이 통용해온 기본 유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 공산집단의 대남전략은 1920년대 이후 통용해온 코민테른의 혁명이론의 범주 속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제시한 대표적 슬로건인 ‘3대 혁명 역량의 강화’도 국내적으로는 반정부 반보수 통일전선을 형성하고 국제적으로는 반미 반한국 통일전선을 형성하며 이를 결합함으로써 제1단계의 혁명, 즉 ‘민족민주주의 혁명’을 수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제2단계, 즉 ‘인민민주주의 혁명’으로 발전시킨다는 전략 포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인덕 박사는 자신의 이러한 대북관에 기초해 KBS 사회방송국을 통해 북한 ‘지도자’들에 대한 방송을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했다. 조선노동당 간부들의 사고방식에 변화를 안겨줘야 북한의 대남노선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는 김대중 정부 때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대통령국가안보자문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앞에서 살핀 강인덕 박사의 대북관과 관련해 중요하게 상기돼야 할 점은 그의 이러한 인식은 이후 변함없이 일관되게 유지됐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 이 회고록 제2권 제5부에 포함된 ‘양호민(梁好民) 선생과의 대화: 우리 사회의 이념 혼란 문제’를 읽어보는 것이 좋다. 이 글에서 그는 국내에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사와 김일성 체제의 연구를 선도했던 양호민 교수를 높이 평가한다. 또 ‘남조선 해방의 방식으로 이룩되는 공산주의 통일’을 철저하면서도 끈질기게 추구하는 ‘극좌적 전체주의 체제’인 북한체제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민족감상주의적 통일’론 또는 ‘무조건 통일’론 등을 표방하는 ‘통일지상 민족주의자들과 얼치기 민주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이 비판은 우리가 북핵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경제적 지원과 사회적 접촉의 확대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북핵을 저지시키거나 중단시킬 수 있다는 낙관론으로 접근한 역대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다.
공산주의에 대한 기존의 토론을 재음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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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남북차관급 회담에 나갈 정부대표들이 1998년 4월 9일 통일부 장관실에서 강인덕(가운데) 당시 통일부 장관을 면담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
널리 알려져 있듯, 한 그룹의 학자들은 자본주의도 변화할 것이지만 공산주의도 변화해 결국 하나의 공통점으로 ‘수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수렴설’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와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게 하는 이론적 근거로 작용했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에 다른 그룹의 학자들은 공산주의, 특히 레닌과 스탈린이 추구한 공산주의와 그 국가는 그 본질이 ‘악(惡)’이기 때문에 그 ‘악성(惡性)’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것이 ‘이산설(離散說)’이다.
미국의 세계적 공산주의 및 소련 연구자였던 조지 케넌(George F. Kennan) 교수는 레닌 집권기에 소련에 인접한 라트비아 주재 미국공사관의 서기관이었으며, 소련 주재 공사에 이어 대사로 봉직하는 가운데 스탈린 체제의 본질을 ‘악’과 ‘타고난 불성실’로 이해했다. 여기서 ‘봉쇄’라는 용어를 창안하고 그 유명한 봉쇄 정책을 정립했고, 그 연장선 위에서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공언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의 강경 정책은 소련 안에서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체제의 등장을 불러왔고 양자의 결합은 결국 소련과 동유럽 공산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
북한체제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북핵의 해결을 위해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협상과 외교의 수단을 버려서는 안 된다.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협상을 시도하고 계속하는 까닭은 그것만이 전쟁을 중단시키고 평화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또 송민순 장관이 강조하듯, “중국의 협조나 묵인이 없이는 북한체제 붕괴가 불가능하다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북한체제의 본질에 대한 사색을 게을리해서도 안 될 것이다. 북한체제가 안고 있는 내재적 불성실과 허위 그리고 악의 성격을 무겁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임기 안에 남북 관계에서 큰 돌파구를 열겠다는 정치적 공명심에만 매달려 접근하다가는, 더구나 핵 개발을 돕는 결과로 나타나는 정책을 구사하다가는 종국적으로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