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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북한요지경

공권력 붕괴 시작… ‘고난의 행군’ 신호탄인가?

글 : 장원재  배나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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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軍부대, 밭떼기로 농장 감자 가져가
⊙ 여배우 ‘김정은’이 주연인 〈파리의 연인〉 유통 중
⊙ 북한에는 4월 15일생, 2월 16일생이 없다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할로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2021년 9월 농업 현장을 시찰하는 북한 내각총리 김덕훈. 사진=뉴스1
  북한에 식량 위기가 닥쳤는가. 1990년대 중후반과 흡사한 대량 아사(餓死)의 가능성이 있는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22년 7월 〈작황 전망과 식량 상황 분기 보고서〉에서 북한을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한 나라로 재지정했다.
 
  위기의 징후는 또 있다. 북한이 인도에서 1만t의 쌀을 수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최근 선박업계 관계자들에게 배포된 ‘선박 수배 안내문’에 나온다. ‘선박 수배 안내문’은 화주(貨主)가 운송 선박을 찾기 위해 내는 공고다. 이 공고에 따르면, 화주는 인도 동부 비샤카파트남항(港)에서 북한 남포로 쌀 1만t 운송을 계획 중이다. 미국의 소리(VOA)가 8월 29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쌀은 50kg 단위로 포장, 희망 출항일은 9월 25일부터 30일 사이다. 쌀 수입을 추진하는 회사나 기관에 대해서는 구체적 정보가 없다. 북한이 중국이 아닌 제3국에서 쌀을 대규모로 수입하는 건 근래에 드문 일이다. 인도 쌀은 북한 주민이 선호하는 ‘스티키 라이스(sticky rice)’도 아니다. 그렇다면 최근 몇 개월 동안 지속된 식량난 소문은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
 
  8월 중순 북한의 지인(知人)과 통화한 탈북자 이모씨도 “북한 사람들이 ‘고난의 행군’이 다시 오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한다. 이상 기온으로 감자 농사를 망친 것이 결정타”라고 말한다. 예년의 경우, 농장원들이 감자를 캐서 군(軍)부대에 공급했다. 금년 사정은 다르다. 흉작(凶作)의 조짐이 보이자 군부대가 밭떼기로 감자를 가져갔다. 과거에는 일정량만 ‘납품’하면 나머지는 농장원들 차지였지만, 이 방식은 다르다. 수확량 전부를 군대가 가져간다. 그렇다고 감자를 포기할 수는 없는 법. 농장원들은 관리자에게 닭 한 마리를 주고 ‘야간 출입권’을 얻는다. 본전 이상으로 이익을 내야 하는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뇌물 경제의 상식’. 그래서 금년 북한 감자밭에는 감자가 없다. 더구나 대흉년(大凶年)이 아닌가.
 
  기준대로라면, 1정보(3000평)당 28~30t의 수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1인당 하루 감자 3알도 차례지지 않는다. 군인들이 죽어 나가는데도 아무도 수습하지 못한다.
 
 
  ‘모나리자 사건’
 
  북한 주민이 느끼는 풍향계(風向計)는 또 있다. 공권력이 느슨해지는 건 사회 붕괴의 조짐이다. ‘고난의 행군’ 전후가 딱 그랬다. 광포(狂暴)하던 안전원(경찰)이나 보위부(비밀경찰)가 하루아침에 폭력 행사를 멈췄다.
 
  이들의 기세가 등등하던 시절 일화로 ‘모나리자 사건’이 있다. ‘고난의 행군’ 초기, 학생 하나가 연필화를 그렸다. 일본의 친척이 선물한 포장지 그림의 모사(摹寫)였다. 뭐든 팔아야 연명(延命)할 수 있었던 시절이라, 그 부모가 그림을 팔러 다녔다. 안전원이 종교화(宗敎畵)라며 부모와 아이를 구타해 죽였다. 예수님 그림이라는 것이었다. “어디서 났느냐, 무슨 의도로 이 그림을 들고 다녔냐, 누구의 지시를 받았느냐”며 고문이 극심했다고 한다. “포장지 그림을 베꼈을 뿐이다, 그림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대답은 통하지 않았다. ‘모나리자’의 이미지를 아무도 모를 만큼 북한은 폐쇄사회다. 그래서 일본에 도착 후 화집(畵集)을 넘기다 ‘모나리자’를 보고 ‘그 그림이 이 그림이었구나’를 깨닫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북송(北送)동포의 자녀로 탈북, 도쿄에서 북한 인권 운동을 하는 리소라 씨의 증언이다.
 

  폭력이 멈춘 곳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일들이 벌어졌다. 포르노 소설의 유통이다. 역시 리소라 씨의 증언이다. 표지도, 제목도 없는 책이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돌려 봤는지 책 언저리가 너덜너덜했다. 적나라한, 그러나 정제된 성적(性的) 묘사가 주는 자극도 상당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성적 욕구는 오히려 화산처럼 분출했다. 인간사의 경이(驚異)였다.
 
  문제는, 북한에서는 개인이 인쇄 시설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쇄기는 물론, 프린터를 소유하는 것도 불법이다. 물론 기관들은 프린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단 한 장 인쇄를 위해서도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역 인쇄물의 배포를 막는 북한 특유의 조치다.
 
  그래서 의문이다. 도대체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이런 책을 만들어 돌렸는가. 판매 수익은 얼마였을까. 어떤 기관의 누가 필자일까. 성적 콘텐츠를 공급해 당국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려는 고도의 정치 공작이었을까? 아니면 기관의 장비를 이용해 생계비를 마련하려는 누군가의 몸부림이었을까.
 
 
  〈파리의 연인〉이 유통된다?
 
2004년 방영됐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 주연배우의 이름이 ‘김정은’이어서 정상적인 상황이면 북한에서 유통되기 어려운 드라마이다.
  과거 인기 드라마였던 〈파리의 연인〉이 평양에 돌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은 현상이다. 주인공 김정은 때문이다. 북한에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등의 이름은 김씨 일가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도 쓸 수 없다. 그래서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후 북한의 수많은 ‘김정은’이 이름을 바꿔야 했다. 그전까지는 북한 전역에 ‘김정은’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이 상당수 있었다는 뜻이다. 북한식 표현을 빌리자면, 그래서 이건 김정은이 ‘본가지’가 아니라 ‘곁가지’였다는 방증(傍證)일지도 모른다.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의 이름도 김정일 집권 후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됐다. 그때도 개명(改名) 사태가 이어졌다. 그 결과로 지금은 북한 전역에 ‘김정숙’이 없다.
 
  크레디트에 ‘배우 김정은’의 이름이 나오는 영상은 그래서 소유나 배포가 그 자체로 반역이다. 그런데도 〈파리의 연인〉이 돈다. 공권력이 느슨해졌다는 증거다.
 
  이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북한에서는 개명도 쉽지 않다. 보안원을 헷갈리게 하는 모든 시도가 다 그렇다. 언젠가 이 코너에서 썼듯 성형 수술도 얼굴이 달라질 정도는 불법, 가발 착용도 사전에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곳이 북한이다.
 
  개명 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촌스럽다, 또 딸을 낳을 것 같다 등의 이유로 개명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감히 바꾼다니’ 하는 식으로 개명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당국 주도로 대규모 개명이 일어난 적도 있다. 김씨 일가의 지시로 왜색(倭色) 이름, 특히 ~자(子)로 끝나는 여성들의 이름을 단번에 없앴고, 한국 대통령 선거 이후에도 자천타천 개명 신청이 쇄도한다. ‘반역도당 ×××와 같은 이름으로 사는 일은 민족과 개인의 수치로서…’라는 개명이유서를 쓰고 북한의 전××, 노××, 김×× 등이 이름을 바꿨다.
 
  이름만이 아니라 생일도 그렇다.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은 아예 출생 등록 불가다. 그 날짜에 출생 등록을 하는 일 자체가 신성모독(神性冒瀆) 반역 행위다. 수십 년을 두고 그날 태어난 사람이 김씨 족속을 제외하고는 하나도 없다는 것. 북한 호적은 아마도 전 세계 호적 중 가장 기괴한 표본일 터이다.
 
 
  ‘유리창을 꿰매다’
 
  극도로 물자가 부족하다 보니 동사(動詞)에도 변화가 왔다. ‘유리창을 꿰매다’는 북한 사회의 상식이다. 유리는 늘 부족하고 사고 싶어도 쉽게 살 수 없는 물건이다. 유리창에 금이 가면 버릴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꿰매는’ 것이다. 금 양쪽에 단추를 대고 틈 사이로 바늘을 넣어 실로 고정하면 한동안 쓸 만한 상태로 버틸 수 있다.
 
  최근 북한으로 보내는 송금 수수료가 75%로 올랐다. 코로나19 이전에는 50% 내외였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증거다.
 

  ‘메뚜기’로 불리는 노점상 단속도 심해졌다. 노점상의 대응은 현품이 아니라 어떤 물건이 있다는 푯말을 보여주고 손님을 집으로 데려가 거래하는 것이다. 당국은 장마당에서 자릿세를 받는다. 그래서 자릿세를 내지 않는 노점상을 핍박한다.
 
  인도에서 쌀을 수입하면 어떤 방식으로 시장에 나올까. 지금 상황으로는 북한 당국이 쌀을 무상 배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 주민들은 이 쌀을 먹더라도 불평 말기를 바란다. “찰기가 없어 불면 날아가누나”라든가 “시절이 좋아 세계 각국 쌀을 다 맛보니 얼마나 좋냐”고 했다가 끌려가 곤욕을 치르고, 탈북해 한국에 온 사람이 여럿이다. 물론 ‘고난의 행군’ 때처럼 공권력이 무너져 아예 단속에 손을 놓는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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