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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북한요지경

북한의 占卜

김정은 말은 흘려들어도 점쟁이의 말은 새겨듣는다

글 : 장원재  배나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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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이 사실은 작두를 타는 무당이었다’는 전설도 회자돼
⊙ 간부집 부인들도 점집 많이 찾아… ‘중앙당 권력자들이 다니는 집’ ‘김정일 개인 점사’ 등
⊙ 한국에서 흘러들어 간 《토정비결》은 필사본 나돌 정도로 인기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할로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점집 풍경. 혹독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도 점쟁이는 살아남았다. 사진=조선DB
  사회가 불안하면 번성하는 업종이 있다. 미래 예측업(?)이다. 큰일을 앞두고 사람들이 다투어 점쟁이를 찾는다. 길흉(吉凶)이 아니라 생사(生死)가 걸린 일이니,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과도하게 진지하다. 남쪽 얘기가 아니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사회에 만연한 풍경이다.
 
  점복(占卜)은 북한 당국이 엄격하게 금지하는 행위 가운데 하나다. ‘반사회주의(反社會主義)의 대표가 미신(迷信)’이라며 엄격하게 단속했다. 하지만 앞날이 궁금한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사회의 공통 관심사가 아닌가. 언제 식량이 떨어질지, 일가족이 잡혀갈지, 고문(拷問)당하고 죽을지 모르는 사회가 북한이다. 이런 곳에서는 사람들의 불안지수가 항상 최고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모든 환란(患亂)은 개인의 능력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북한에서 단속 때문에 점집은 사라졌어도 점쟁이는 살아남아 번성하는 이유다.
 
 
  “먼 길 가시는 분이네”
 
  장마당이나 역전에서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다.
 
  “먼 길 가시는 분이네.”
 
  탈북(脫北)을 꿈꾸는 사람들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움찔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다음 한마디가 들어온다.
 
  “내일 닭 한 마리 잡아서 어디로 오라.”
 
  닭은 점쟁이 집 부엌으로 가고, 점쟁이는 정안수에 종이 태운 재를 뿌리고 “무슨 모양 같으냐?”고 묻는다. 대답이 없으면 “신령님이 노하신다”는 협박이 들어온다. 한국으로 가는 탈북 기도나 방조는 일가족이 잡혀가는 정치 문제이니 “따뜻한 곳에 가서 살아라” “정월에는 길 떠날 수 있겠다”라는 정도의 선문답(禪問答)을 들려준다.
 

  거사일 전, 용한 곳을 방문하여 마지막 방비를 한다. 출발일을 택일(擇日)하고, 잘 굴러가라고 생계란을 굴리는 의식까지 마치면 출발 임박이다. 그렇게라도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 혹시 이런 의식을 치르지 않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끊이지 않는 수요와 공급의 원천이다.
 
  결혼식도 점쟁이의 주요 수익원의 하나다. “그 남자 만나라, 만나지 마라”는 충고부터 결혼식 택일 등이 점쟁이의 손을 거친다. 평양에서 특정일에 결혼식이 몰리는 건 이른바 ‘손 없는 날’로 모두가 날을 잡기 때문이다.
 
  인민들만 점쟁이를 찾는 것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점쟁이는 간부집 마누라들도 물어물어 찾아간다. 자기들끼리만 간다. 어느 지역에 갓 신내림을 받은 아기 무당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면 지방 방문도 불사한다. 남편의 승진, 가족의 안위, 어느 선에 줄을 대고 충성해야 하는지 등, 출세와 목숨이 걸린 중대사를 상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청 12살 애기 무당’ ‘함흥 동자’ 등이 한때 북한 전역에서 이름을 날렸던 용한 무당이다. ‘북청 12살 애기 무당’이 무슨 연유에선지 혜산으로 거주지를 옮겼을 때 북중(北中) 접경지대 전역에서 손님이 몰렸던 적도 있다.
 
 
  ‘묘향산 구렁이’
 
  복채는 쌀, 빨랫비누, 술, 참기름 등 현물을 받기도 하지만 주로 외화를 받는다. 고객의 취향(?)에 따라 성명 철학, 동전 점, 손금, 사주팔자 등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수많은 인력이 성업 중이다.
 
  ‘중앙당 권력자들이 다니는 집’ ‘김정일 개인 점사’ 등 자칭 타칭으로 명성이 높은 인물들도 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선 김씨 일가가 관상쟁이 등 점술인을 측근에 두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 대표적인 전설은 김일성의 죽음을 예언했다는 ‘묘향산 구렁이’다.
 
  “1994년 8월, 김일성의 개인 점쟁이가 독대(獨對)를 청했다. ‘묘향산에 가실 일이 생길 텐데, 구렁이가 보이거든 길을 되돌려 나오시라, 안 그러면 큰일이 난다’고 했는데, 구렁이를 보고도 무시해서 수령님이 돌아가셨다”는 설화(說話)다. 전설(傳說)은 ‘김일성 고모 중에 용한 점쟁이가 있었다’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이 사실은 작두를 타는 무당이었다’는 지점까지 비화한다.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말이라 더 생명력이 길고 널리 퍼진다.
 
  진짜(?)가 있으면 가짜(?)도 나오는 법. 군(軍) 입대 전 주워들은 몇 마디 말로 군 생활을 편하게 하는 ‘난돌이’들이 있다. “이번에 뭐 좀 보는 사람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나면 상담자가 몰리고, ‘제대 언제 하느냐?’ ‘올해 제대 날짜는 언제냐?’ ‘언제 결혼하는가?’ ‘어떤 여자 어디서 만나는가?’ 등의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단속을 해야 하는 정치지도원도 자기 관심사를 묻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면 군 생활이 말할 수 없이 편해지는 것이다. ‘가짜 점쟁이’의 생존술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 첫째,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할 것. 둘째, 모든 질문에 두루뭉술하게 답할 것. ‘앞으로 큰 걸음 걷겠다’ ‘주변 사람 조심하라’ ‘길 가다 개가 보이면 일단 걸음을 멈춰라’ ‘몇 년 안에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생긴다’ 등이 그들의 모범답안이다.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다. “액운(厄運)이 들었다”며 고객들을 겁주고, “굴뚝에 모다구(못)가 박혔으면 다시 찾아오라”며 일단 내담자를 돌려보낸다.
 
  아침에 나가보면 정말 굴뚝에 녹슨 못이 박혀 있다. 다시 점쟁이를 찾아가면 “비 온 뒤 마당 근처에 부처님이 보일 거다. 그러면 정말로 크게 부정이 탄 것”이라며 “그때 다시 오라”고 또 돌려보낸다. 비 온 뒤 마당 어귀에 정말로 진흙 속에서 솟아오른 불상(佛像)이 보인다. 놀란 마음에 허겁지겁 점쟁이를 찾아가면 “그럴 줄 알았다”며 액막이를 하자고 한다. 요구하는 금전의 단위가 다르지만, 두 번이나 미래를 족집게처럼 맞힌 용한 무당이니 앞뒤를 재고 따지고 할 겨를이 없다.
 
  최고위층에서 피해자가 다수 나온 일이라 엄중한 수사가 이어졌고, 못은 점쟁이가 직접 박은 것, 불상은 콩을 담은 그릇에 물을 부어 함께 묻어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콩이 자라면서 불상을 밀어 올려 ‘안 보이던 불상이 갑자기 흙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게 조작했다는 것이었다.
 
 
  남한산 《토정비결》
 
  뭐든지 아랫동네 물건은 최상으로 치니, 서울에서 나온 《토정비결》 책은 더없이 귀한 물건이다. 표지를 뜯어내고, 서지(書誌) 정보가 나와 있는 막장을 뜯어냈어도 이 책이 남쪽에서 온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지질(紙質)과 인쇄 상태가 평양산과는 비교불가이기 때문이다.
 
  ‘금년 신수는?’ ‘몇 년 후에 대운이 오나’ ‘자식들 운세는 어떤가’ 같은 인생 설계부터 ‘이번에 장사를 떠나기 전 운은 어떤가’ ‘어떤 물건을 어디서 사서 어디로 팔면 좋은가’ ‘걸리지는 않을까?’ 등 당장의 현안까지, 독자들은 간절하게 바라는 자신만의 대답을 찾아 밤새 부지런히 책장을 넘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소권력(小勸力)이다. 돈 주고 빌리는 수요가 많아 아예 분책(分冊)해서 대여를 하고, 북한 전역에 ‘빌려간 사람이 밤새 베껴 쓴’ 필사본이 나돌 정도다. 복사기가 거의 없고, 있어도 일반인이 이용하기는 그림의 떡이니 아예 베껴 쓰는 편이 빠른 것이다.
 
  그래서 탈북 후 지하철 역 앞 좌판에서 파는 《토정비결》은 탈북민이 겪는 문화충격 가운데 하나다. ‘이렇게 귀한 책을 여기서?’라는 의문, 그리고 자기들에게는 한때 그렇게 절실했던 서적이 여기서는 ‘재미 삼아’라는 사실에 입을 다물 수 없는 것이다.
 

  미래 예측에 관한 한 김씨 일가는 백전백패(百戰百敗)다. 과학적 미래 예측인 일기예보 등은 적중률이 바닥이다. 비무장지대 북한 병사들도 남쪽 일기예보를 듣고 일과를 준비한다. 북한 당국이 가장 아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증언도 있다. 주체사상의 역사적 미래 예측도 신뢰도가 바닥이다.
 
  얼마 안 있어 자본가가 몰락하고 노동자·농민의 세상이 오며, 그때는 모두가 ‘이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은 70년이 넘도록 이뤄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실현 가능성이 없으리라는 것이 북 주민들의 생각이다.
 
  사회가 불안하면 점복은 번성한다. 5년 후, 10년 후가 아니라 당장 내일, 다음 달의 삶이 불안한 곳이 북한이다. 점복을 단속하는 북한 당국의 싸움은 그래서 부질없어 보인다. 인민들은 김정은 말은 흘려들어도 점쟁이의 말은 새겨듣는다.
 
  김정은이 하는 말은 ‘구름잡는 말’이고, 점쟁이의 말은 ‘내 걱정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김정은은 오늘도 내일도 ‘개인 점사’의 방문을 두드릴지 모른다. 어쩌면 은밀하게 탈북 날짜를 물어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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