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지식한 인민반장을 ‘아다무끼’ ‘국제 아다무끼’라고 지칭
⊙ 당원들에게도 원칙대로 할 때는 ‘아다무끼 인민반장’도 박수받아
⊙ 인민들의 생활 세세히 파악해 ‘식구가 다섯이라면, 반장까지 여섯 식구’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할로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 당원들에게도 원칙대로 할 때는 ‘아다무끼 인민반장’도 박수받아
⊙ 인민들의 생활 세세히 파악해 ‘식구가 다섯이라면, 반장까지 여섯 식구’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할로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 2018년 9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환영하는 평양시민들. 이럴 때 주민들의 동원을 책임지는 사람이 인민반장이다. 사진=공동취재단
경제 제재가 풀리지 않으니 북한 곳곳이 아우성이다. 첨예한 전선(前線) 중 하나가 인민반장이다. ‘주민들의 바람’과 ‘윗선이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인민반장은 북한 당국의 북 주민들의 사생활을 말단까지 감시·통제하는 현장 인력이다. 당국은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를 선호하고, 인민들은 융통성 있는 사람을 원한다.
인민반장의 별칭은 ‘거두매 반장’이다. 위에서 지시한 ‘돈과 물자를 걷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유와 구실이 없어 못 걷는 경우가 없는 곳이 북한이다. 동네일은 물론, 백두산 지원, 원산 무슨 지구 지원 등, 각종 공사에 물자가 필요할 때마다 인민을 쥐어짠다. 그때마다 위에서 내려보낸 할당량을 채우는 책임자가 바로 인민반장이다. “이번에 이런 일이 제기되었는데…”라며 집집마다 돌아다닌다. 못 사는 사람이 많으니, 같은 집을 10~20번은 방문해야 겨우 뭔가를 걷을 수 있다.
‘깜뿌라치’ 퇴비
예를 들어보자. 북한에서는 매년 모든 세대가 1t의 퇴비를 바쳐야 한다. “먹은 것이 없는데 무슨 수로 ×을 1t이나 만드냐”는 항변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 융통성 있는 반장은 ‘깜뿌라치’ 퇴비를 받는다. 석탄재, 얼음, 기타 여러 재료(?)를 섞어 양을 채운, 순도(純度)가 많이 떨어지는 가품(假品)이다. 고지식한 인민반장은 품질을 꼼꼼하게 검사한다. 가품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다. 주민들이 돌아서서 ‘아다무끼’라고 욕하는 이유다. ‘아다무끼’는 ‘미숙련공’을 뜻하는 일본의 공사판 용어다. 고지식한 정도가 심한 인민반장은 ‘국제 아다무끼’라고 부른다. 그만큼 인민들의 생활을 힘들게 한다는 뜻이다.
‘깜뿌라치’ 퇴비는 걷으면 끝나는가. 아니다. 불량이라는 것을 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가 안다. 그래서 사업이 필요하다. 사무장, 동 당비서, 지도원 등의 사무일꾼들을 푹 삶아놓아야 뒤탈이 없다. 집으로 초대해 술이며 안주를 먹이고, 배웅하며 여과 담배를 들려 보낸다. ‘겉보기에 속을 안다’는 말처럼, 각자의 취향 그리고 어느 선까지 눈감아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미리미리 손을 써두는 작업이다. 간부들을 삶아놓으면, 농촌 분조장을 삶고 퇴비확인서를 받기가 수월하다. 윗선이 알아서 말을 해놓기 때문이다.
지원물자 말고도 내야 하는 것은 많다. 줄단콩(붉은콩)은 북한에서 외화(外貨)콩이라고 부른다. 중국에 수출해 상품(商品)과 바꿔오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해바라기씨도 계획대로 바쳐야 하는 물건이다. 기름을 짜서 세탁비누 등을 만드는 재료다.
주는 것 없이 내라는 것만 많으니 현장에서는 불만 폭발이다. 물건을 걷으러 가면 ‘때려죽일 놈들’ 같은 저강도(低强度) 푸념부터 ‘김정은이가~’로 시작하는 신성모독형(?) 욕설, ‘백성들 다 굶겨 죽이려고…’로 이어지는 비분강개(悲憤慷慨)형 정치적 발언 등 별난 소리가 난무한다. 온갖 하소연을 같이 들어주고, 때로는 맞장구도 치며 같이 욕해줘야 좋은 반장이다. 융통성 있는 반장들은 미리 사업을 해서 배정 할당량 자체를 줄이고, 계획을 못 채워도 채운 것처럼 보고서를 만든다.
반장 집은 검열 안전지대
하지만 ‘국제 아다무끼’들은 예외를 봐주지 않는다. 사회동원 때도 마찬가지다. 고지식한 성격대로, 마대, 삽, 곡괭이를 할당량대로 다 거둔다. 구멍 난 마대를 받아서라도 동네 할당량 40매를 다 채워서 위에다 바치는 식이다. 그래서 고지식한 반장이 아프면 모두 좋아라 한다. 사회동원에 슬쩍 빠질 수도 있고, 동원에 나가서도 일을 헐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똑똑하고 영리한 반장들은 위에다 이 구실 저 구실을 대며 반원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놓는다. 숙박검열이나 전기검열이 잡히면 “○○ 애미야, 날치지 마라. 요즘 보위부 눈치가 이상하다”라며 미리 힌트를 주고, 시간이 없으면 전화를 걸어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수화기를 세 번 두드린다. 반원들이 밥가마나 녹화기를 숨길 시간을 주는 것이다.
숙박검열에 걸릴 만한 일이 있어도 같이 돌아다니는 안전원에게 ‘이 집 식구 다섯 명이 맞다’라며 넘어가게 해준다. 물론 나중에 그 집을 찾아 “반장을 뭘로 보고…. 도와주는 것도 어느 정도지”라며 주의는 주지만.
말이 난 김에 말하자면, 반장의 집은 검열의 안전지대다. 평양 아파트 거주자들은 그래서 ‘반장 옆집’을 명당으로 친다. 걸릴 만한 물품이 있으면 미리 반장 집에 숨겨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예 베란다를 터서 문을 만들고, 밀수 이익금으로 구입한 1년 치 쌀을 그쪽에 쌓아놓고 가져다 먹기도 한다. 반장의 아들, 딸 등을 통해 흘러나오는 각종 단속 소식도 유용한 정보다.
인민반장은 월(月) 4회 시당회의에 참석한다. 당 방침을 교육받고, 인민반의 불량성을 타파하라, ‘도강자(渡江者)가 없도록 하라’ 등의 강연제강을 받는 자리다. 인민반장이 파란 책을 옆구리에 끼고 집을 나서는 날이 시당회의가 열리는 날이다. 제기된 사실을 꼼꼼하게 적어 반원들에게 과업을 알려 말씀을 관철시키는 것이 인민반장의 의무다.
인민반 회의는 인민반장 집에서 한다. 7시에 모이라고 하면 9시나 되어서 겨우 사람들이 모인다. 지루한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니 반원들은 반원들대로 자기 이야기를 하기에 바쁘다. 반장 말을 듣지 않고, “돈대(환율) 얼마냐, 쌀값은?” 등의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다. 반장은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치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할당량 채우는 일을 눈물로 호소하기도 한다.
반장이 고지식할수록 현장은 아수라장이다. 융통성이 있는 반장은 ‘머리말과 끝말’만 하고, ‘집집마다 얼마 내라’는 결론만 이야기한다. 회의 시간은 채워야 하니, 돈대와 쌀값 추세 등 화제에 참여해 말을 섞기도 한다.
고지식한 인민반장이 박수를 받는 경우도 가끔은 있다. 인구의 약 10% 전후인 당원(黨員)은 인민반 생활을 하지 않는다. 다른 집은 “아무개야!”라고 사람 이름을 부르며 문을 탕탕 치지만, 당원 집은 방문을 망설이고 조심스레 초인종을 누른다. 당원인 여자들은 ‘나는 인민반원들과 급이 다르다’라는 우월의식이 있다.
‘국제 아다무끼’들은 이 점을 봐주지 않는다. 새벽 4시 조기(早起) 작업, 식전동원에 100% 참가하라며 다그친다. 당원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이다. 경제림 보위지도원 아들 등, ‘아버지 등 대고서’ 동원에 빠지는 자들을 징치(懲治)하기도 한다. “곱게 놀고 생활 똑바로 하라”고 일갈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윗선에다 고자질을 한다. 간부들은 “이거 반장이 불었지?”라며 불만이지만, 특권층을 인민반원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을 보고 이때만은 반원들도 ‘국제 아다무끼’들을 지지한다.
평양·회령에서는 노임도 지불
인민반장은 업무가 적지 않다. 그래서 밀수 등 자기 일(?)이 바쁜 사람은 반장 자리를 마다한다. 그래도 하려는 사람은 많다. 혜택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인민반장의 가족이 저지르는 비법(非法)은 어지간하면 다 봐준다. 중범죄만 아니라면 죄를 묻지 않는 것이다.
평양과 회령 등에서는 반장에게 노임도 준다. 외화콩으로 바꿔온 중국제 양복지, 비누 등 물품이 차례지기도 하고, 국정가격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표, 돼지고기 등을 싼값에 살 수 있는 국정가격표를 주기도 한다. 원래는 ‘뜨물표’ ‘마당 쓴 표’ 등 사회동원에 나온 증거를 제시하는 반원들에게 가야 할 구입표지만, 이것을 누구에게 어떻게 나눠주는지는 전적으로 인민반장이 결정하는 문제다.
간부 사업을 하려는 반원들을 도와주고 받는 사례도 생계를 해결하는 데 꽤 도움이 된다. 북한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맨 마지막에 인민반장의 사인이 있어야 착수가 가능한 탓이다. 비법 집이 걸리면, 인민반장의 한마디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반장이 도와주느냐, “저 집 아이들… 말도 마라, 사회동원도 안 나오고, 반장 알기를…”이라고 고자질하느냐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진다. 그래서 미리 알아서 무언가를 고이는 사람도 여럿이다.
반장끼리 모이면 “못해 먹갔다”고 푸념하지만, 잘하면 뇌물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으니 그 자체가 사실 이권이다. 자기 집에서 비법을 하는 사람들에겐 반장 자리가 훌륭한 안전판이자 보험이기도 하다.
상부에서는 ‘아다무끼’ 선호
북한에서 인민반장은 피하자고 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당 비서와 대외사업을 잘하더라도, 집안이 무너지면 끝이기 때문이다. 그 집에서 어떤 음식 냄새가 나는지, 누가 들락거리는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 인민반장이다. 식구가 다섯이라면, 반장까지 여섯 식구다, 라는 말은 북한에서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 집에서 요즘 불량생들이 모여 뭘 하는 것 같았다”는 인민반장의 증언은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민반장을 보는 반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권세와 입김이 중앙당 부부장보다 더 센 사람이다’고 여기는 이유다. 반장이 이렇듯 막강한 자리이다 보니, 윗선에서는 말을 잘 듣고 지시가 잘 먹히는 고지식한 ‘아다무끼’를 선호한다. 주민들이 선호하는 융통성 있는 반장들은 자르거나 교체 대상이다. 걷어오는 할당량의 품질과 수량이 기대치에 영 못 미치는 까닭이다.
이것이 글 맨 앞에서 ‘인민반장은 당국과 북한 주민들이 부딪히는 최전선’이라고 한 배경이다. 당국과 주민 사이의 끝없는 신경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북한 내부의 사정이 나쁘면 나쁜 만큼 전선은 끊임없이 늘어날 것이다.⊙
인민반장의 별칭은 ‘거두매 반장’이다. 위에서 지시한 ‘돈과 물자를 걷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유와 구실이 없어 못 걷는 경우가 없는 곳이 북한이다. 동네일은 물론, 백두산 지원, 원산 무슨 지구 지원 등, 각종 공사에 물자가 필요할 때마다 인민을 쥐어짠다. 그때마다 위에서 내려보낸 할당량을 채우는 책임자가 바로 인민반장이다. “이번에 이런 일이 제기되었는데…”라며 집집마다 돌아다닌다. 못 사는 사람이 많으니, 같은 집을 10~20번은 방문해야 겨우 뭔가를 걷을 수 있다.
‘깜뿌라치’ 퇴비
예를 들어보자. 북한에서는 매년 모든 세대가 1t의 퇴비를 바쳐야 한다. “먹은 것이 없는데 무슨 수로 ×을 1t이나 만드냐”는 항변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 융통성 있는 반장은 ‘깜뿌라치’ 퇴비를 받는다. 석탄재, 얼음, 기타 여러 재료(?)를 섞어 양을 채운, 순도(純度)가 많이 떨어지는 가품(假品)이다. 고지식한 인민반장은 품질을 꼼꼼하게 검사한다. 가품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다. 주민들이 돌아서서 ‘아다무끼’라고 욕하는 이유다. ‘아다무끼’는 ‘미숙련공’을 뜻하는 일본의 공사판 용어다. 고지식한 정도가 심한 인민반장은 ‘국제 아다무끼’라고 부른다. 그만큼 인민들의 생활을 힘들게 한다는 뜻이다.
‘깜뿌라치’ 퇴비는 걷으면 끝나는가. 아니다. 불량이라는 것을 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가 안다. 그래서 사업이 필요하다. 사무장, 동 당비서, 지도원 등의 사무일꾼들을 푹 삶아놓아야 뒤탈이 없다. 집으로 초대해 술이며 안주를 먹이고, 배웅하며 여과 담배를 들려 보낸다. ‘겉보기에 속을 안다’는 말처럼, 각자의 취향 그리고 어느 선까지 눈감아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미리미리 손을 써두는 작업이다. 간부들을 삶아놓으면, 농촌 분조장을 삶고 퇴비확인서를 받기가 수월하다. 윗선이 알아서 말을 해놓기 때문이다.
지원물자 말고도 내야 하는 것은 많다. 줄단콩(붉은콩)은 북한에서 외화(外貨)콩이라고 부른다. 중국에 수출해 상품(商品)과 바꿔오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해바라기씨도 계획대로 바쳐야 하는 물건이다. 기름을 짜서 세탁비누 등을 만드는 재료다.
주는 것 없이 내라는 것만 많으니 현장에서는 불만 폭발이다. 물건을 걷으러 가면 ‘때려죽일 놈들’ 같은 저강도(低强度) 푸념부터 ‘김정은이가~’로 시작하는 신성모독형(?) 욕설, ‘백성들 다 굶겨 죽이려고…’로 이어지는 비분강개(悲憤慷慨)형 정치적 발언 등 별난 소리가 난무한다. 온갖 하소연을 같이 들어주고, 때로는 맞장구도 치며 같이 욕해줘야 좋은 반장이다. 융통성 있는 반장들은 미리 사업을 해서 배정 할당량 자체를 줄이고, 계획을 못 채워도 채운 것처럼 보고서를 만든다.
반장 집은 검열 안전지대
하지만 ‘국제 아다무끼’들은 예외를 봐주지 않는다. 사회동원 때도 마찬가지다. 고지식한 성격대로, 마대, 삽, 곡괭이를 할당량대로 다 거둔다. 구멍 난 마대를 받아서라도 동네 할당량 40매를 다 채워서 위에다 바치는 식이다. 그래서 고지식한 반장이 아프면 모두 좋아라 한다. 사회동원에 슬쩍 빠질 수도 있고, 동원에 나가서도 일을 헐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똑똑하고 영리한 반장들은 위에다 이 구실 저 구실을 대며 반원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놓는다. 숙박검열이나 전기검열이 잡히면 “○○ 애미야, 날치지 마라. 요즘 보위부 눈치가 이상하다”라며 미리 힌트를 주고, 시간이 없으면 전화를 걸어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수화기를 세 번 두드린다. 반원들이 밥가마나 녹화기를 숨길 시간을 주는 것이다.
숙박검열에 걸릴 만한 일이 있어도 같이 돌아다니는 안전원에게 ‘이 집 식구 다섯 명이 맞다’라며 넘어가게 해준다. 물론 나중에 그 집을 찾아 “반장을 뭘로 보고…. 도와주는 것도 어느 정도지”라며 주의는 주지만.
말이 난 김에 말하자면, 반장의 집은 검열의 안전지대다. 평양 아파트 거주자들은 그래서 ‘반장 옆집’을 명당으로 친다. 걸릴 만한 물품이 있으면 미리 반장 집에 숨겨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예 베란다를 터서 문을 만들고, 밀수 이익금으로 구입한 1년 치 쌀을 그쪽에 쌓아놓고 가져다 먹기도 한다. 반장의 아들, 딸 등을 통해 흘러나오는 각종 단속 소식도 유용한 정보다.
인민반장은 월(月) 4회 시당회의에 참석한다. 당 방침을 교육받고, 인민반의 불량성을 타파하라, ‘도강자(渡江者)가 없도록 하라’ 등의 강연제강을 받는 자리다. 인민반장이 파란 책을 옆구리에 끼고 집을 나서는 날이 시당회의가 열리는 날이다. 제기된 사실을 꼼꼼하게 적어 반원들에게 과업을 알려 말씀을 관철시키는 것이 인민반장의 의무다.
인민반 회의는 인민반장 집에서 한다. 7시에 모이라고 하면 9시나 되어서 겨우 사람들이 모인다. 지루한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니 반원들은 반원들대로 자기 이야기를 하기에 바쁘다. 반장 말을 듣지 않고, “돈대(환율) 얼마냐, 쌀값은?” 등의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다. 반장은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치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할당량 채우는 일을 눈물로 호소하기도 한다.
반장이 고지식할수록 현장은 아수라장이다. 융통성이 있는 반장은 ‘머리말과 끝말’만 하고, ‘집집마다 얼마 내라’는 결론만 이야기한다. 회의 시간은 채워야 하니, 돈대와 쌀값 추세 등 화제에 참여해 말을 섞기도 한다.
고지식한 인민반장이 박수를 받는 경우도 가끔은 있다. 인구의 약 10% 전후인 당원(黨員)은 인민반 생활을 하지 않는다. 다른 집은 “아무개야!”라고 사람 이름을 부르며 문을 탕탕 치지만, 당원 집은 방문을 망설이고 조심스레 초인종을 누른다. 당원인 여자들은 ‘나는 인민반원들과 급이 다르다’라는 우월의식이 있다.
‘국제 아다무끼’들은 이 점을 봐주지 않는다. 새벽 4시 조기(早起) 작업, 식전동원에 100% 참가하라며 다그친다. 당원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이다. 경제림 보위지도원 아들 등, ‘아버지 등 대고서’ 동원에 빠지는 자들을 징치(懲治)하기도 한다. “곱게 놀고 생활 똑바로 하라”고 일갈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윗선에다 고자질을 한다. 간부들은 “이거 반장이 불었지?”라며 불만이지만, 특권층을 인민반원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을 보고 이때만은 반원들도 ‘국제 아다무끼’들을 지지한다.
평양·회령에서는 노임도 지불
인민반장은 업무가 적지 않다. 그래서 밀수 등 자기 일(?)이 바쁜 사람은 반장 자리를 마다한다. 그래도 하려는 사람은 많다. 혜택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인민반장의 가족이 저지르는 비법(非法)은 어지간하면 다 봐준다. 중범죄만 아니라면 죄를 묻지 않는 것이다.
평양과 회령 등에서는 반장에게 노임도 준다. 외화콩으로 바꿔온 중국제 양복지, 비누 등 물품이 차례지기도 하고, 국정가격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표, 돼지고기 등을 싼값에 살 수 있는 국정가격표를 주기도 한다. 원래는 ‘뜨물표’ ‘마당 쓴 표’ 등 사회동원에 나온 증거를 제시하는 반원들에게 가야 할 구입표지만, 이것을 누구에게 어떻게 나눠주는지는 전적으로 인민반장이 결정하는 문제다.
간부 사업을 하려는 반원들을 도와주고 받는 사례도 생계를 해결하는 데 꽤 도움이 된다. 북한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맨 마지막에 인민반장의 사인이 있어야 착수가 가능한 탓이다. 비법 집이 걸리면, 인민반장의 한마디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반장이 도와주느냐, “저 집 아이들… 말도 마라, 사회동원도 안 나오고, 반장 알기를…”이라고 고자질하느냐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진다. 그래서 미리 알아서 무언가를 고이는 사람도 여럿이다.
반장끼리 모이면 “못해 먹갔다”고 푸념하지만, 잘하면 뇌물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으니 그 자체가 사실 이권이다. 자기 집에서 비법을 하는 사람들에겐 반장 자리가 훌륭한 안전판이자 보험이기도 하다.
상부에서는 ‘아다무끼’ 선호
북한에서 인민반장은 피하자고 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당 비서와 대외사업을 잘하더라도, 집안이 무너지면 끝이기 때문이다. 그 집에서 어떤 음식 냄새가 나는지, 누가 들락거리는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 인민반장이다. 식구가 다섯이라면, 반장까지 여섯 식구다, 라는 말은 북한에서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 집에서 요즘 불량생들이 모여 뭘 하는 것 같았다”는 인민반장의 증언은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민반장을 보는 반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권세와 입김이 중앙당 부부장보다 더 센 사람이다’고 여기는 이유다. 반장이 이렇듯 막강한 자리이다 보니, 윗선에서는 말을 잘 듣고 지시가 잘 먹히는 고지식한 ‘아다무끼’를 선호한다. 주민들이 선호하는 융통성 있는 반장들은 자르거나 교체 대상이다. 걷어오는 할당량의 품질과 수량이 기대치에 영 못 미치는 까닭이다.
이것이 글 맨 앞에서 ‘인민반장은 당국과 북한 주민들이 부딪히는 최전선’이라고 한 배경이다. 당국과 주민 사이의 끝없는 신경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북한 내부의 사정이 나쁘면 나쁜 만큼 전선은 끊임없이 늘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