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아난 사람’의 돈은 지배인과 보위지도원, 부기장(서기)이 나눠 먹어
⊙ 벌목공들, 아르바이트하다가 러시아 여성과 살림 차리기도
⊙ 간부들, 벌목공 시신 운반 열차에 피아노·전자제품 등 챙겨 보내
⊙ 벌목공들, 아르바이트하다가 러시아 여성과 살림 차리기도
⊙ 간부들, 벌목공 시신 운반 열차에 피아노·전자제품 등 챙겨 보내
- 북한-러시아 접경 핫산의 북한 벌목공들. 사진=조선DB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불똥이 엉뚱한 곳까지 튀었다.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시베리아의 벌목(伐木) 현장이다. 2021년 6월, 데일리NK는 “러시아 파견 신규 북한 노동자, ‘50% 폭등’ 충성자금에 아연실색”이라는 기사를 냈다. ‘건설의 경우 기존 할당액이 1년 7200달러에서 1만 달러로, 임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경우 4500달러에서 7000달러로 인상됐다’고 보도했다. 이 정도라면, 거의 매일 12시간 노동하고 가외로 상당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야 겨우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다.
8개월 전의 느닷없는 인상도 문제지만, 최근 들어 더 큰 문제가 터졌다. 미국과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가 외환(外換)시장에서 쫓겨나면서, 벌목공들이 ‘달러를 조달’할 길이 막힌 것이다. 러시아에도 암달러 시장이 없지는 않지만, 공식 환율과는 차이가 크다. 그나마 최근 시장의 추세는 ‘달러화 초강세’다.
평양의 ‘윗선’들은 아래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정해도 들어주지 않고, 오직 달러로만 상납금을 받는다. 오히려 평양의 달러 사정이 더 다급해졌다는 속사정도 있다. 자칫하면, 노예노동에 가까운 노동일을 몇 년 하고도, 돈을 벌어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2~3년 생활비를 빚으로 떠안을 판이다.
시베리아 伐木 사업
2017년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는 아직도 유효하다. 원칙대로라면, 러시아는 북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한 노동자가 없다면, 모든 제재소가 가동을 멈춰야 한다. 러시아가 유엔결의안 위반인 줄 알면서도 암암리에 북한 노동자를 계속 받는 이유다.
‘시베리아 벌목’은 러시아와 북한이 의기투합한 사업이다. 출생률 저하, 사망률 증가, 경제성장률 둔화라는 3대 악재가 겹쳐 러시아 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1994년부터는 절대 인구가 줄기 시작했고, 1997년 인구는 1989년 인구와 비슷한 수준으로 하락했다. 전체 인구의 73%가 도시에 거주한다는 사정도 있다. 시베리아의 나무를 베고 가공할 인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구(舊)소련 시절, 소련이 설비와 자재를 대고 북한이 인력을 공급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이익금의 60%가 소련에, 40%가 북한으로 가는 계약이었다. 5년에 한 번 협정을 다시 체결했는데, 그때마다 북한의 이익률이 낮아졌다. 3년 내구(耐久) 연한인 트랙터나 벌목 장비를 북한 미숙련 노동자들이 1~2년 사이에 망가뜨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유지 보수’의 개념이 희박했던 탓이다.
나중에는 북한의 이익률이 31%까지 떨어졌지만, 북한에서는 큰 불만이 없었다. ‘연간 700만 달러’가 소련-북한 협정에 의한 공식 수입이었지만, 북한 김씨 왕조는 노동자 임금의 93%를 떼어갔기에 큰 타격을 받지 않았던 탓이다. 북한 전역의 전기 사정이 나빠지면서 더 이상 북한 내부에서 목재 가공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가 북한의 사정을 봐줬다. 북한으로 나무를 가져가지 않고 현장에서 목재를 팔아 별도의 현금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벌목공, 하층민에서 엘리트로
1980년대만 해도 시베리아는 ‘토대가 나쁜 사람’들을 찍어 보내는 곳이었다. ‘목숨을 산판에 내던진 것과 같다’는 말이 돌 만큼 안전사고, 산업재해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토대가 나쁜 하층민들은 그래도 목돈을 벌 희망에 목숨을 걸고 동토(凍土)로 갔다. ‘뛰다가 걸린’ 사람들의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해서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고, 환자로 위장해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압송했다는 것도 이 시절의 이야기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성분 나쁜 자들이 외화를 벌어와 성분 좋은 자들보다 잘사는 꼴을 북한 당국은 더 두고 보지 못했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엘리트층이 자진해서 시베리아행을 원했다는 사정도 겹쳤다. 당원들을 보내면, 연좌제 때문이라도 ‘뛰는 사람’이 적고, 충성자금도 또박또박 들어온다는 장점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상황이 또 바뀌었다.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세포비서(細胞祕書)조차도 러시아에서 ‘뛰려고’ 마음먹는 경우가 급증한 것이다. 그래서 가장 엄하게 단속하는 것이 러시아어 사전과 단어장이다. 러시아어를 공부한 흔적은 곧 ‘탈출 모의’로 간주, 엄하게 처벌한다. 식당 입구에는 “92명의 적들은 돈에 눈이 어두워…”라는 글귀와 함께 사진들을 붙여놓았다.
그런데 누가 뛴 사람인지, 누가 남은 사람인지를 헤아리는 일이 또 간단치가 않다. 서두의 데일리NK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북한 스스로가 ‘건설의 경우’와 ‘임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라고 한 것이 그 증거다. ‘임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벌목공이다. ‘건설의 경우’는 구분이 복잡하다. 나무 작업은 동절기에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여름에는 산판으로 가는 길을 닦거나 잔업이 있기는 하지만, 작업량이 많지 않다.
‘가외 아르바이트’는 여름에 한다. 야생 들쭉 채취 같은 합법적인(?) 것도 있지만, 밀주 담그기, 곰쓸개 판매 등 이익이 큰 불법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건설’은 러시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인테리어 공사, 집짓기 등을 말한다. 하절기에만 하는 일이지만, 솜씨가 좋아 평판이 쌓이면 작업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예 ‘전업(專業) 아르바이트’를 한다. 고객들과 친교가 쌓이면, 여초(女超·53%) 사회인 러시아의 특성상 현지 여성과 살림을 차리는 경우도 있다.
벌목공을 감시하는 보위부원에게 별도의 뇌물을 고이면, ‘작업장 이탈’을 신고하지 않고 눈감아 준다. 북한에서 직급 높은 ‘보위부원’이 오면, 단속 정보를 주고 피신을 시키기도 한다. 이유가 있다. 서류상 ‘합법적 체류자’ 숫자가 한 명이라도 더 많아야 그만큼 많은 인건비를 러시아 측에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아난 사람’의 돈은 지배인과 보위지도원, 부기장(서기)이 나눠 먹는다. ‘러시아 돈’을 빼먹는 일이기에,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해치울 수 있는 과업이다. 탈북 벌목공 중에 ‘내가 뛴 지 2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내 이름으로 러시아에다 돈 청구하는 놈들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들이 있는 이유다. 부족한 인원을 메우기 위해 러시아 측 예상보다 잦은 빈도로 신규인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벌목공 가운데 ‘결핵’에 걸린 사람들을 후송했다”고 하면 만사 오케이다. 러시아에서도 결핵은 두려운 감염병이기 때문이다.
棺을 세워서 싣는 이유
노예나 다름없는 벌목공 생활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따로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다만 사망사고의 참상에 대해서는 여러 증언을 취합한다. 25~30m 길이의 나무를 운반하거나, 나무를 벨 때 생각보다 사망자가 많이 나온다. 압사(壓死)다. 1980년대 초반에는 현지에서 시신을 처리했고,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그래도 시신을 고향으로 보내줬다. 노동 강도가 덜하다고, 시신 관리자를 꿀보직이라 부른다. 관(棺)에는 못질을 하지 않는다. 냉동 상태로 놓아둔 관은 4월 귀국열차가 출발할 때 러시아 경찰의 검시(檢屍)를 받는다. 관을 열고, 산업 도면을 빼가지는 않는지, 현금 밀반출은 없는지를 시신의 등을 훑으며 하는 검사다. 검시가 끝나면 아연판 관을 나무관에 덧씌우고 납땜을 한다. 시신에서 녹아내린 무언가가 관 밖으로 흘러내리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관이 아니라 통조림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그 위에 나무를 덧대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한다.
동료 벌목공들의 눈이 뒤집히는 건 관을 기차에 실을 때다. 관을 눕히는 것이 아니라, 세우기 때문이다. 관을 세워서 생긴 ‘남는 공간’은 간부들 차지다. 평양의 자기 집으로 피아노며 전자제품 등을 챙겨 보내는 것이다. 운임을 아낀다며 ‘시신운송열차’에 실려가는 관을 정말로 통조림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러시아에는 지금 적어도 1000명 이상의 ‘이탈 벌목공’이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상납금을 올리고 ‘건설의 경우’를 따로 떼어 더 많은 충성자금을 받는다는 건, ‘눈감아주는 폭과 깊이’가 그만큼 깊고 넓어졌다는 뜻이리라. 자유를 맛본 사람은, 그것이 제한적인 자유라 해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1000명은 은둔자인가, 의병인가, 북한의 변화를 알리는 리트머스 시험지인가. 지금 달러가 부족한 곳은 모스크바나 평양만이 아니다. 부족한 달러가 만들어낼 연쇄효과가 어디까지 미칠지 그것이 궁금하다.⊙
8개월 전의 느닷없는 인상도 문제지만, 최근 들어 더 큰 문제가 터졌다. 미국과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가 외환(外換)시장에서 쫓겨나면서, 벌목공들이 ‘달러를 조달’할 길이 막힌 것이다. 러시아에도 암달러 시장이 없지는 않지만, 공식 환율과는 차이가 크다. 그나마 최근 시장의 추세는 ‘달러화 초강세’다.
평양의 ‘윗선’들은 아래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정해도 들어주지 않고, 오직 달러로만 상납금을 받는다. 오히려 평양의 달러 사정이 더 다급해졌다는 속사정도 있다. 자칫하면, 노예노동에 가까운 노동일을 몇 년 하고도, 돈을 벌어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2~3년 생활비를 빚으로 떠안을 판이다.
시베리아 伐木 사업
2017년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는 아직도 유효하다. 원칙대로라면, 러시아는 북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한 노동자가 없다면, 모든 제재소가 가동을 멈춰야 한다. 러시아가 유엔결의안 위반인 줄 알면서도 암암리에 북한 노동자를 계속 받는 이유다.
‘시베리아 벌목’은 러시아와 북한이 의기투합한 사업이다. 출생률 저하, 사망률 증가, 경제성장률 둔화라는 3대 악재가 겹쳐 러시아 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1994년부터는 절대 인구가 줄기 시작했고, 1997년 인구는 1989년 인구와 비슷한 수준으로 하락했다. 전체 인구의 73%가 도시에 거주한다는 사정도 있다. 시베리아의 나무를 베고 가공할 인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구(舊)소련 시절, 소련이 설비와 자재를 대고 북한이 인력을 공급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이익금의 60%가 소련에, 40%가 북한으로 가는 계약이었다. 5년에 한 번 협정을 다시 체결했는데, 그때마다 북한의 이익률이 낮아졌다. 3년 내구(耐久) 연한인 트랙터나 벌목 장비를 북한 미숙련 노동자들이 1~2년 사이에 망가뜨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유지 보수’의 개념이 희박했던 탓이다.
나중에는 북한의 이익률이 31%까지 떨어졌지만, 북한에서는 큰 불만이 없었다. ‘연간 700만 달러’가 소련-북한 협정에 의한 공식 수입이었지만, 북한 김씨 왕조는 노동자 임금의 93%를 떼어갔기에 큰 타격을 받지 않았던 탓이다. 북한 전역의 전기 사정이 나빠지면서 더 이상 북한 내부에서 목재 가공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가 북한의 사정을 봐줬다. 북한으로 나무를 가져가지 않고 현장에서 목재를 팔아 별도의 현금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벌목공, 하층민에서 엘리트로
1980년대만 해도 시베리아는 ‘토대가 나쁜 사람’들을 찍어 보내는 곳이었다. ‘목숨을 산판에 내던진 것과 같다’는 말이 돌 만큼 안전사고, 산업재해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토대가 나쁜 하층민들은 그래도 목돈을 벌 희망에 목숨을 걸고 동토(凍土)로 갔다. ‘뛰다가 걸린’ 사람들의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해서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고, 환자로 위장해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압송했다는 것도 이 시절의 이야기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성분 나쁜 자들이 외화를 벌어와 성분 좋은 자들보다 잘사는 꼴을 북한 당국은 더 두고 보지 못했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엘리트층이 자진해서 시베리아행을 원했다는 사정도 겹쳤다. 당원들을 보내면, 연좌제 때문이라도 ‘뛰는 사람’이 적고, 충성자금도 또박또박 들어온다는 장점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상황이 또 바뀌었다.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세포비서(細胞祕書)조차도 러시아에서 ‘뛰려고’ 마음먹는 경우가 급증한 것이다. 그래서 가장 엄하게 단속하는 것이 러시아어 사전과 단어장이다. 러시아어를 공부한 흔적은 곧 ‘탈출 모의’로 간주, 엄하게 처벌한다. 식당 입구에는 “92명의 적들은 돈에 눈이 어두워…”라는 글귀와 함께 사진들을 붙여놓았다.
그런데 누가 뛴 사람인지, 누가 남은 사람인지를 헤아리는 일이 또 간단치가 않다. 서두의 데일리NK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북한 스스로가 ‘건설의 경우’와 ‘임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라고 한 것이 그 증거다. ‘임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벌목공이다. ‘건설의 경우’는 구분이 복잡하다. 나무 작업은 동절기에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여름에는 산판으로 가는 길을 닦거나 잔업이 있기는 하지만, 작업량이 많지 않다.
‘가외 아르바이트’는 여름에 한다. 야생 들쭉 채취 같은 합법적인(?) 것도 있지만, 밀주 담그기, 곰쓸개 판매 등 이익이 큰 불법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건설’은 러시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인테리어 공사, 집짓기 등을 말한다. 하절기에만 하는 일이지만, 솜씨가 좋아 평판이 쌓이면 작업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예 ‘전업(專業) 아르바이트’를 한다. 고객들과 친교가 쌓이면, 여초(女超·53%) 사회인 러시아의 특성상 현지 여성과 살림을 차리는 경우도 있다.
벌목공을 감시하는 보위부원에게 별도의 뇌물을 고이면, ‘작업장 이탈’을 신고하지 않고 눈감아 준다. 북한에서 직급 높은 ‘보위부원’이 오면, 단속 정보를 주고 피신을 시키기도 한다. 이유가 있다. 서류상 ‘합법적 체류자’ 숫자가 한 명이라도 더 많아야 그만큼 많은 인건비를 러시아 측에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아난 사람’의 돈은 지배인과 보위지도원, 부기장(서기)이 나눠 먹는다. ‘러시아 돈’을 빼먹는 일이기에,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해치울 수 있는 과업이다. 탈북 벌목공 중에 ‘내가 뛴 지 2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내 이름으로 러시아에다 돈 청구하는 놈들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들이 있는 이유다. 부족한 인원을 메우기 위해 러시아 측 예상보다 잦은 빈도로 신규인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벌목공 가운데 ‘결핵’에 걸린 사람들을 후송했다”고 하면 만사 오케이다. 러시아에서도 결핵은 두려운 감염병이기 때문이다.
棺을 세워서 싣는 이유
노예나 다름없는 벌목공 생활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따로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다만 사망사고의 참상에 대해서는 여러 증언을 취합한다. 25~30m 길이의 나무를 운반하거나, 나무를 벨 때 생각보다 사망자가 많이 나온다. 압사(壓死)다. 1980년대 초반에는 현지에서 시신을 처리했고,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그래도 시신을 고향으로 보내줬다. 노동 강도가 덜하다고, 시신 관리자를 꿀보직이라 부른다. 관(棺)에는 못질을 하지 않는다. 냉동 상태로 놓아둔 관은 4월 귀국열차가 출발할 때 러시아 경찰의 검시(檢屍)를 받는다. 관을 열고, 산업 도면을 빼가지는 않는지, 현금 밀반출은 없는지를 시신의 등을 훑으며 하는 검사다. 검시가 끝나면 아연판 관을 나무관에 덧씌우고 납땜을 한다. 시신에서 녹아내린 무언가가 관 밖으로 흘러내리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관이 아니라 통조림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그 위에 나무를 덧대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한다.
동료 벌목공들의 눈이 뒤집히는 건 관을 기차에 실을 때다. 관을 눕히는 것이 아니라, 세우기 때문이다. 관을 세워서 생긴 ‘남는 공간’은 간부들 차지다. 평양의 자기 집으로 피아노며 전자제품 등을 챙겨 보내는 것이다. 운임을 아낀다며 ‘시신운송열차’에 실려가는 관을 정말로 통조림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러시아에는 지금 적어도 1000명 이상의 ‘이탈 벌목공’이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상납금을 올리고 ‘건설의 경우’를 따로 떼어 더 많은 충성자금을 받는다는 건, ‘눈감아주는 폭과 깊이’가 그만큼 깊고 넓어졌다는 뜻이리라. 자유를 맛본 사람은, 그것이 제한적인 자유라 해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1000명은 은둔자인가, 의병인가, 북한의 변화를 알리는 리트머스 시험지인가. 지금 달러가 부족한 곳은 모스크바나 평양만이 아니다. 부족한 달러가 만들어낼 연쇄효과가 어디까지 미칠지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