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목공 탈락자의 伸訴에 김정은이 반응하면서 해외 파견 관련 뇌물 시스템에 연쇄 파장
⊙ 응시자의 10%가 체중 하한선 60kg에 못 미쳐… 북한의 식량난 짐작게 해
⊙ 돈주들의 투자받아 商街 조성하는 ‘상업망 새로 꾸리기’ 진행 중
⊙ 응시자의 10%가 체중 하한선 60kg에 못 미쳐… 북한의 식량난 짐작게 해
⊙ 돈주들의 투자받아 商街 조성하는 ‘상업망 새로 꾸리기’ 진행 중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아파트 공사장의 북한 노동자들. 지난 2011년 찍은 사진이다. 사진=조선DB
사람은 언제 가장 분노하는가. 자기의 이익을 누군가가 바로 눈앞에서 빼앗아갈 때다. 그래서 지금 평양의 일부 시민들이 격분하고 있다. 이익을 빼앗기는 과정이 북한 이외의 지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이라는 점이 관전 포인트다.
“유엔에 가입한 193개 나라에서 일하는 북한 국적 노동자와 이들을 감시하는 당국 관계자들을 ‘2019년 12월 22일’까지 돌려보내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對北)제재 2397호 결의안은 아직 유효하다. 당연히 신규 인력의 해외 파견은 결의안 위반이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숨통을 틔우려고 한다. 2021년 10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결의안 초안을 제출한 것이다. 지난 2019년 12월에 이어 2년 만의 두 번째 시도다. 북한 당국은 최근 들어 러시아 파견 벌목공 노동자들을 선발했다. 결의안 통과를 자신했는지, 아니면 러시아와 북한 사이에 사전(事前) 밀약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랜만에 기회의 창(窓)이 열리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경쟁이 말도 못 하게 치열했다고 한다.
뇌물생태계
‘신체 건장한 남성’을 뽑고 파견 교육을 진행하던 중에 사고가 터졌다. 탈락자 가운데 누군가가 ‘신체검사 기준 미달자’가 선발되었다며 신소(伸訴)를 접수했다. 말하자면, 모든 선발 절차가 마무리된 이후에 ‘판정결과’에 이의(異議)를 제기한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당국이 무시하고 넘어갔겠지만,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김정은의 관심 때문이다. 김정은의 관심은 예상치 못한 파장(波長)을 불러왔다.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힌 거대한 미로(迷路)의 탑(塔) 같은 뇌물생태계(賂物生態系)가 불쑥 수면 위로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외국에 나가려면 걸음마다 돈을 고여야 한다’는 건 북한 사회의 상식이다. 응모, 1차 선발, 신원조회, 신체검사, 2차 선발, 초급당 담화, 파견기관 담화, 상급당 담화 등 심층면접, 중앙당 문건 검토(서류심사), 여권 발급, 출국 전 사상 교육, 심지어는 국제선 기차표 구입 등 모든 단계마다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을 주지 않으면 과정이 멈춘다. ‘뭐가 잘못되었다’ ‘뭐가 기재 누락이다’라며 하염없이 시간을 끈다. 러시아 벌목공의 경우 뇌물로 필요한 총액은 대략 2000달러 내외. 5인 가족이 2년 정도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뇌물을 고였는데도 탈락했다면, 그리고 고였던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면?
답답한 점은, 돈을 받은 쪽에서도 억울함을 토로했다는 사실이다. 받은 돈을 100% 혼자 먹을 수 없고, 일정량을 위에다 고여야 한다는 것도 북한 사회의 상식이다. ‘먹을 알이 있는 자리’에 붙어 있으려면, 인사권자에게 수시로 인사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뇌물을 받고서도 응시자를 탈락시킨 간부들의 변명은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 혼자 먹었느냐는 항변도 한다. “다음에 꼭 잘 봐주겠다”고 하지만, 다음이란 없다. 언제 인력을 다시 뽑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뇌물의 유효기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바랜다는 사정도 있다.
신체검사 체중 하한선 60kg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였는가. 김정은과 중앙당의 방침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해외 파견 노동자의 체중 하한선을 60kg이라고 발표했다. 명목은 노동 강도가 세서 저(低)체중인 사람은 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국제적인 이목을 의식했다는 편이 진실에 가깝다. 마르거나 연약해 보이는 사람, 영양실조 기운이 있는 사람들을 내보내면 북한이 감추고 싶은 심각한 식량 사정이 그대로 민낯을 드러낸다고 여긴 것이다. 몇 년 전 러시아 인력회사에서 “죄수들을 보낸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고, 이를 북한 당국이 아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체중을 잴 때 부정이 있었다’는 신소가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飛火)한 배경이다.
과거에는 키와 전염병력이 주요 심사 대상이었다. 신장(身長)이 작은 사람이 해외에 나가는 걸 북한 당국은 나라 망신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한다고 했지만, 기준에서 2~3cm 모자란 것까지는 굽 높은 신발이나 두꺼운 양말을 신고, 뇌물을 써서 통과했다. 평양 제2 인민병원에서 진행한 신체검사는 간염이나 결핵 등 전염병력 검사였다. 물론 병력(病歷)이 있는 지원자는 돈으로 해결하여 난관을 돌파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체중(體重)이라니!
이번에 밝혀진 부정행위 수법은 ‘쇳덩이 붙이기’다. 모자란 체중을 보충하느라 두꺼운 외투를 입고 저울에 올라서는 것까지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쇳덩어리를 옷 안에 붙이고 몸무게를 재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신소에 따라 1차 재검을 했는데, 엄격하게 측정을 하지 않았는데도 합격자의 약 10%의 인원이 체중 미달인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는 60kg으로 통과한 응시자의 ‘탈의(脫衣) 후 측정’한 실제 체중이 48kg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해외 파견 노동자는 극빈자가 아니다. 적어도 거액의 뇌물을 마련할 만큼 수완도 좋고, 중간 이상으로는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체중이 영양실조에 가까운 인원이 10%가 넘는다? 그래서 유추(類推)한다. 올해 지원자의 영양 상태가 역대 최악이라는 것, 그만큼 북한의 식량 사정이 어렵다는 것, 일반 주민들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대외건설지도부의 ‘응시자 전원 체중 재측정’ 결정이다. 1차 합격자 중 몸무게 차이가 큰 사람의 자격 박탈, 박탈자를 추천한 간부들의 추천권 박탈 등 강력한 처벌도 함께 시행한다고 한다. 신체검사 포함, 선발 전(全) 과정을 재실시해 신체검사 조작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그래서 문제가 오히려 커졌다. ‘조작’ 없이 통과한 인원이 극소수라는 건 누구나 아는데, 제일 밑단부터 최상층부까지 이어져 있는 ‘거대한 뇌물의 사슬’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 받은 돈을 토하고 계산을 정리하는 것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일 뿐 아니라 복잡다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탈락한 사람들의 신소가 정치적 문제로 떠오른 이상, 드러난 문제들을 대충 덮으며 갈 수도 없다.
새 신체검사에 또 추가로 얼마만큼의 뇌물이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엄격하게 측정하라고 했으니, 고이는 돈의 단가가 올라가리라는 건 상식이다. 위험부담이 커졌다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판이 복잡해진 이상, 피해자가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이치다. 판돈도 커졌다. 자칫 거센 불만의 후폭풍이 평양을 중심으로 터질 수도 있는 이유다.
상업망 새로 꾸리기
풍선효과를 생각하지 않고 ‘밀어제낀’ 일 중에는 ‘상업망 새로 꾸리기’도 있다. 인민소비품(생활필수품)을 더 많이 공급하기 위해 당국이 나서서 상가(商街)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올해 말부터 운영 예정으로, 당위원회, 인민위원회가 함께 토론 중이라고 한다. 돈주들의 투자도 받고, 인민들의 노력 동원으로 새 건물을 짓는다고 한다. 장마당보다 환경이 좋으니 상인이나 소비자가 모두 몰릴 것이며, 당국에 ‘바치는 돈’도 정확하게 계산할 테니 안심하고 입주할 수 있고, 그만큼 싼값에 물건을 살 수 있으니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니냐는 말이다. 현재 입주 신청자를 받고 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앞뒤가 막힌 짓이라는 얘기가 돈다. 지금도 장사를 못 하게 막으면서, 무슨 뜬금없는 ‘상업망 새로 꾸리기’냐는 반발이다.
10월 초 북한 당국은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어긴 자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이라’는 긴급지시문을 사회안전성에 내려보냈다. 분주소(파출소) 실적을 위해 ‘1분 1초도 봐주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시범게임이니 봐줄 수도 없다. 그래서 하루 저녁에 한 동네에서 60명이 넘게 잡혀가는 일도 있었다. 밤 12시 통금이 아니다. 북중(北中) 접경지대의 경우, 저녁 6시부터 아침 7시까지, 무려 13시간이 통행금지다. 10월 1일부터 강화된 규정이다. 시간을 어기면, 이유불문하고 노동단련대로 가야 하는 가혹한 처벌이 뒤따른다. 15일에서 한 달 정도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동안, 가족들은 도시락을 배달하며 옥바라지를 해야 한다.
탈북자를 막자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제는 확실히 얼어붙었다. 밀수가 어려워지고 밀수 실행 비용이 올라간 탓에 물동량이 줄고 중국산 생필품의 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단속에 걸린 사람의 대부분이 장마당이나 골목에서 장사하던 사람이라는 사정도 있다. ‘물건이 없고 사람을 못 다니게 하는데, 건물만 새로 짓는다고 새로 꾸린 상업망이 자리를 잡을까?’라는 것이 북한 주민의 속마음이다.
돈주들은 돈주들대로, ‘상업망’이 기존의 장마당을 위협할까 걱정이 많다. 당국이 가세한 ‘불공정 경쟁’을 우려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기존의 장마당을 밀어버리고, 그 터에 자기들의 상업망을 꾸릴 수도 있다는 걱정도 한다.
복거일(卜鉅一) 선생은 “뇌물과 암시장은 물론 기형적인 수단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급한 수요를 충족시켜 사회의 붕괴를 막는 선(善) 기능이 있다”는 주장을 했다. 평양이나 북중 접경지대나, 자기의 이익을 눈앞에서 빼앗긴 사람들, 긴급한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뇌물마저 작동하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해외 파견 노동자의 신체검사 재실시와 상업망 새로 꾸리기, 13시간 야간 통행금지와 강력한 시범게임 실시는 어쩌면 거대한 물밑 변화를 부르는, 서로 이어진 연결고리일 수도 있겠다. 돈의 힘, 이익의 힘은 무섭고도 강력하기 때문이다.⊙
“유엔에 가입한 193개 나라에서 일하는 북한 국적 노동자와 이들을 감시하는 당국 관계자들을 ‘2019년 12월 22일’까지 돌려보내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對北)제재 2397호 결의안은 아직 유효하다. 당연히 신규 인력의 해외 파견은 결의안 위반이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숨통을 틔우려고 한다. 2021년 10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결의안 초안을 제출한 것이다. 지난 2019년 12월에 이어 2년 만의 두 번째 시도다. 북한 당국은 최근 들어 러시아 파견 벌목공 노동자들을 선발했다. 결의안 통과를 자신했는지, 아니면 러시아와 북한 사이에 사전(事前) 밀약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랜만에 기회의 창(窓)이 열리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경쟁이 말도 못 하게 치열했다고 한다.
뇌물생태계
‘신체 건장한 남성’을 뽑고 파견 교육을 진행하던 중에 사고가 터졌다. 탈락자 가운데 누군가가 ‘신체검사 기준 미달자’가 선발되었다며 신소(伸訴)를 접수했다. 말하자면, 모든 선발 절차가 마무리된 이후에 ‘판정결과’에 이의(異議)를 제기한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당국이 무시하고 넘어갔겠지만,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김정은의 관심 때문이다. 김정은의 관심은 예상치 못한 파장(波長)을 불러왔다.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힌 거대한 미로(迷路)의 탑(塔) 같은 뇌물생태계(賂物生態系)가 불쑥 수면 위로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외국에 나가려면 걸음마다 돈을 고여야 한다’는 건 북한 사회의 상식이다. 응모, 1차 선발, 신원조회, 신체검사, 2차 선발, 초급당 담화, 파견기관 담화, 상급당 담화 등 심층면접, 중앙당 문건 검토(서류심사), 여권 발급, 출국 전 사상 교육, 심지어는 국제선 기차표 구입 등 모든 단계마다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을 주지 않으면 과정이 멈춘다. ‘뭐가 잘못되었다’ ‘뭐가 기재 누락이다’라며 하염없이 시간을 끈다. 러시아 벌목공의 경우 뇌물로 필요한 총액은 대략 2000달러 내외. 5인 가족이 2년 정도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뇌물을 고였는데도 탈락했다면, 그리고 고였던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면?
답답한 점은, 돈을 받은 쪽에서도 억울함을 토로했다는 사실이다. 받은 돈을 100% 혼자 먹을 수 없고, 일정량을 위에다 고여야 한다는 것도 북한 사회의 상식이다. ‘먹을 알이 있는 자리’에 붙어 있으려면, 인사권자에게 수시로 인사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뇌물을 받고서도 응시자를 탈락시킨 간부들의 변명은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 혼자 먹었느냐는 항변도 한다. “다음에 꼭 잘 봐주겠다”고 하지만, 다음이란 없다. 언제 인력을 다시 뽑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뇌물의 유효기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바랜다는 사정도 있다.
신체검사 체중 하한선 60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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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건설 현장의 북한 노동자들. 지난 2014년 찍은 사진이다. 사진=조선DB |
과거에는 키와 전염병력이 주요 심사 대상이었다. 신장(身長)이 작은 사람이 해외에 나가는 걸 북한 당국은 나라 망신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한다고 했지만, 기준에서 2~3cm 모자란 것까지는 굽 높은 신발이나 두꺼운 양말을 신고, 뇌물을 써서 통과했다. 평양 제2 인민병원에서 진행한 신체검사는 간염이나 결핵 등 전염병력 검사였다. 물론 병력(病歷)이 있는 지원자는 돈으로 해결하여 난관을 돌파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체중(體重)이라니!
이번에 밝혀진 부정행위 수법은 ‘쇳덩이 붙이기’다. 모자란 체중을 보충하느라 두꺼운 외투를 입고 저울에 올라서는 것까지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쇳덩어리를 옷 안에 붙이고 몸무게를 재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신소에 따라 1차 재검을 했는데, 엄격하게 측정을 하지 않았는데도 합격자의 약 10%의 인원이 체중 미달인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는 60kg으로 통과한 응시자의 ‘탈의(脫衣) 후 측정’한 실제 체중이 48kg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해외 파견 노동자는 극빈자가 아니다. 적어도 거액의 뇌물을 마련할 만큼 수완도 좋고, 중간 이상으로는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체중이 영양실조에 가까운 인원이 10%가 넘는다? 그래서 유추(類推)한다. 올해 지원자의 영양 상태가 역대 최악이라는 것, 그만큼 북한의 식량 사정이 어렵다는 것, 일반 주민들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대외건설지도부의 ‘응시자 전원 체중 재측정’ 결정이다. 1차 합격자 중 몸무게 차이가 큰 사람의 자격 박탈, 박탈자를 추천한 간부들의 추천권 박탈 등 강력한 처벌도 함께 시행한다고 한다. 신체검사 포함, 선발 전(全) 과정을 재실시해 신체검사 조작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그래서 문제가 오히려 커졌다. ‘조작’ 없이 통과한 인원이 극소수라는 건 누구나 아는데, 제일 밑단부터 최상층부까지 이어져 있는 ‘거대한 뇌물의 사슬’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 받은 돈을 토하고 계산을 정리하는 것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일 뿐 아니라 복잡다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탈락한 사람들의 신소가 정치적 문제로 떠오른 이상, 드러난 문제들을 대충 덮으며 갈 수도 없다.
새 신체검사에 또 추가로 얼마만큼의 뇌물이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엄격하게 측정하라고 했으니, 고이는 돈의 단가가 올라가리라는 건 상식이다. 위험부담이 커졌다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판이 복잡해진 이상, 피해자가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이치다. 판돈도 커졌다. 자칫 거센 불만의 후폭풍이 평양을 중심으로 터질 수도 있는 이유다.
상업망 새로 꾸리기
풍선효과를 생각하지 않고 ‘밀어제낀’ 일 중에는 ‘상업망 새로 꾸리기’도 있다. 인민소비품(생활필수품)을 더 많이 공급하기 위해 당국이 나서서 상가(商街)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올해 말부터 운영 예정으로, 당위원회, 인민위원회가 함께 토론 중이라고 한다. 돈주들의 투자도 받고, 인민들의 노력 동원으로 새 건물을 짓는다고 한다. 장마당보다 환경이 좋으니 상인이나 소비자가 모두 몰릴 것이며, 당국에 ‘바치는 돈’도 정확하게 계산할 테니 안심하고 입주할 수 있고, 그만큼 싼값에 물건을 살 수 있으니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니냐는 말이다. 현재 입주 신청자를 받고 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앞뒤가 막힌 짓이라는 얘기가 돈다. 지금도 장사를 못 하게 막으면서, 무슨 뜬금없는 ‘상업망 새로 꾸리기’냐는 반발이다.
10월 초 북한 당국은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어긴 자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이라’는 긴급지시문을 사회안전성에 내려보냈다. 분주소(파출소) 실적을 위해 ‘1분 1초도 봐주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시범게임이니 봐줄 수도 없다. 그래서 하루 저녁에 한 동네에서 60명이 넘게 잡혀가는 일도 있었다. 밤 12시 통금이 아니다. 북중(北中) 접경지대의 경우, 저녁 6시부터 아침 7시까지, 무려 13시간이 통행금지다. 10월 1일부터 강화된 규정이다. 시간을 어기면, 이유불문하고 노동단련대로 가야 하는 가혹한 처벌이 뒤따른다. 15일에서 한 달 정도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동안, 가족들은 도시락을 배달하며 옥바라지를 해야 한다.
탈북자를 막자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제는 확실히 얼어붙었다. 밀수가 어려워지고 밀수 실행 비용이 올라간 탓에 물동량이 줄고 중국산 생필품의 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단속에 걸린 사람의 대부분이 장마당이나 골목에서 장사하던 사람이라는 사정도 있다. ‘물건이 없고 사람을 못 다니게 하는데, 건물만 새로 짓는다고 새로 꾸린 상업망이 자리를 잡을까?’라는 것이 북한 주민의 속마음이다.
돈주들은 돈주들대로, ‘상업망’이 기존의 장마당을 위협할까 걱정이 많다. 당국이 가세한 ‘불공정 경쟁’을 우려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기존의 장마당을 밀어버리고, 그 터에 자기들의 상업망을 꾸릴 수도 있다는 걱정도 한다.
복거일(卜鉅一) 선생은 “뇌물과 암시장은 물론 기형적인 수단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급한 수요를 충족시켜 사회의 붕괴를 막는 선(善) 기능이 있다”는 주장을 했다. 평양이나 북중 접경지대나, 자기의 이익을 눈앞에서 빼앗긴 사람들, 긴급한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뇌물마저 작동하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해외 파견 노동자의 신체검사 재실시와 상업망 새로 꾸리기, 13시간 야간 통행금지와 강력한 시범게임 실시는 어쩌면 거대한 물밑 변화를 부르는, 서로 이어진 연결고리일 수도 있겠다. 돈의 힘, 이익의 힘은 무섭고도 강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