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가족들, 탈북자에게 “큰돈 보내도 할 일이 없으니 돈 보내지 말라”
⊙ “밀무역 끊은 건 중국… 金家王朝 버리는 신호일 수도”
⊙ “北 당국, 북한 주민 눈높이에 맞춘 탈북자 유튜브 채널 골치 아플 것”
⊙ “밀무역 끊은 건 중국… 金家王朝 버리는 신호일 수도”
⊙ “北 당국, 북한 주민 눈높이에 맞춘 탈북자 유튜브 채널 골치 아플 것”
- 2015년 9월 평양시내 창광상점을 시찰하는 김정은. 북한은 최근 경제제재, 중국과의 교역 중단 등으로 물자난을 겪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한 내부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 탈북민들의 최근 전화 통화 내용을 전문가 두 사람과 함께 분석했다. 김길선·한수정 모녀다.
김길선씨는 1955년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태생으로 1979년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육상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1995년 말까지 제2자연과학원(현재 국방과학원) 산하 제2자연과학 출판사 강연선전편집부 기자로 일했는데, 동료들과 성혜림에 관해 언급한 것이 문제가 되어 40일 동안 구속 수사를 받았다. 얼마 후 풀려나기는 했지만 직장에서 쫓겨나고 1995년 12월 지방으로 추방되어 혹독한 시절을 지냈다. ‘평양 밖’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체험하고 ‘고난의 행군’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1997년 8월 가족(남편·딸)과 함께 탈북해 1년 넘게 중국에서 노동일을 하며 숨어 지내다 1999년 1월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현재는 유튜브 ‘김길선의 평양만사’를 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중국에서 들여오던 물건 끊겨”
― 지난 6월 초에 200만원을 고향의 가족에게 송금한 탈북민이 그들에게서 의외의 답을 들었다고 한다. ‘큰돈 보내도 할 일이 없으니 돈 보내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더 보내달라고 사정하던 것이 보통 아닌가.
“최근 들어 장마당에 물건이 사라졌다고 한다. 경제제재의 효과다. 쌀, 땔나무 등 생존에 꼭 필요한 물건은 있지만, 기름과 비누 등 생필품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에서 들여오던 물건이 끊겼다는 뜻이다. 그러니 돈을 받아도 사업을 할 수 없겠지. 돈 받았다는 소문이 나면 뜯어먹으러 오는 것들만 달려드니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뇌물도 그렇다. 장사해서 이익을 남길 생각으로 미리 고이는 것 아닌가. 장사를 할 수 없는데 뇌물은 왜 고이나.”
― 그렇다면 ‘고난의 행군’이 또 오는가.
“개인적으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난의 행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경제가 좋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굶어 죽는 사람이 북한 전역에서 나온다. 다만,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주민들이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영양 상태가 부족하기는 해도 예전과 같은 대규모 아사(餓死)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최근 들어 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작년 9월만 해도 1달러에 북한 돈 8500~8900원 하던 환율이 최근에는 70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숫자만 보면 북한 돈 가치가 올라갔다는 이야기인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달러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외화로만 상품 구입이 가능한 외화상점은 외국 식품부터 각종 전자제품, 고가(高價)의 사치품까지 구비해놓고 파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조차 물건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화폐가 무슨 소용 있는가. 그렇다고 은행에 가서 환전할 수도 없다. 개인 소유 외화는 무조건 불법인 곳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한국식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 북한에서 지역마다 환율이 다른 이유는.
‘데일리NK’ 보도에 의하면 6월 중순 현재 1달러에 평양은 7100원, 신의주는 7120원, 혜산은 7000원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달러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화폐다. 달러가 널리 통용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환율은 당연히 차이가 난다. 혜산에서 달러 가치가 낮은 것은, 혜산이 북중(北中) 접경지역이라 위안화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김길선씨는 2009년 화폐개혁이 북한 경제의 분수령이라고 했다. 북한 주민이 북한 당국을 불신하게 된 결정적 계기라는 것이다. 신권이 나왔지만 북한 돈은 시장에서 휴지 취급을 받고, 달러·엔·위안화가 북한 전역에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생은, 어쩌면 달러화 가치 하락이 장롱 달러를 빨아들이려는 북한 당국의 술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이 축적한 부(富)를 단번에 빨아들이기엔 한번 더 화폐개혁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터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참지 않을 주민들의 폭동(暴動)이 두려워 우회로(迂廻路)로 돌아가려는 것이 혹시 아닐까?
“탈북자 급감은 코로나19 여파”
― 탈북자 수가 급감한 건 어떤 이유인가.
남성 탈북민 500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하나원 화천 분소는 지난 2월 교육생이 3명이었다. 여성 탈북민 교육 시설인 안성 하나원은 시설 관리·운영 인력은 80여명이지만 2월 교육생은 17명이었다. 국내 입국 탈북자가 가장 많았던 2009년에는 총 2914명이 입국했지만 2019년엔 그 수가 1047명까지 줄었고, 2020년엔 불과 229명만 입국했다.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19의 여파다. 일단 북중 접경지대를 통과하기가 예전에 비해 훨씬 힘들고,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도 장거리 이동을 하기 어렵다. 탈북 의지가 줄어든 것이 아니다. 본질적인 흐름은 여전히 탈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 북한 내 코로나19 방역은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함흥 출신 탈북자 말로는 지난 5월 초부터 함흥에 코로나19가 많이 퍼졌다고 한다. 고향의 가족이 ‘거긴 괜찮냐?’며 남쪽의 탈북민 건강을 걱정할 정도라고 한다.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하지 않은 북한 특성상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역은 꽤 유행하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별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코로나19는 새로운 경험이 아니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아직도 철마다 전염병이 도는 곳이 북한이다. 질병에 대한 관념도 남북이 판이하다. 한국에선 거의 사라진 결핵이 아직도 북한에선 주요 사인(死因) 가운데 하나일 정도다.”
― 북한이 노동당 규약을 바꿨다. 국내외 언론이 6월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 바로 밑에 ‘제1비서’를 신설했다.
“한국 언론에는 ‘제1비서’가 후계자냐, 2인자냐, 누가 그 자리에 임명되었는지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것은 ‘제2의 장성택’ 만들기다. 북한 내부 사정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결정적인 시기에 책임을 물어 숙청할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면, 인민들이 보기에도 책임질 만한 자리여야 하지 않은가.”
― ‘혁명 통일론’은 뺐지만 ‘공산주의’는 다시 명기했다. 이것의 의미는.
“그것도 본질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북한은 대남(對南) 혁명을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은 대한민국 정부를 적(敵)으로 규정한다. 북한에 더할 나위 없이 호의적인 정부가 나오더라도, ‘대한민국 정부’인 이상 타도(打倒)해야 할 ‘혁명의 적(敵)’일 뿐이다.”
“北 주민들, 김소월 몰라”
― 장마당 물건이 떨어졌다면, 북중 밀무역도 막혔다는 말인가? 김정은이 북중 접경지대에 CCTV를 설치해 도강(渡江)을 엄격히 막는 바람에 탈북뿐 아니라 밀무역도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밀무역이 거의 끊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선(線)을 끊은 쪽은 중국이지 북한이 아니다. 모든 주도권은 중국이 쥐고 있다. 이제까지는 경제제재 위반임을 알면서도 소규모 생필품 밀수는 눈감아주는 것이 중국 측 태도였다. 그런데 이것조차 꽉 막아버렸다면? 상상력(想像力)을 좀 동원하자면, 이는 중국이 북한을, 적어도 김가 왕조(金家王朝)를 버리는 신호일 수도 있다.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생각해보라.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있고 공산우방(共産友邦)으로 관계가 돈독했다. 지금의 중국과 북한의 관계와 유사한 점이 많다. 하지만 1979년 중월전쟁(中越戰爭) 이후 지금까지 적대적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중국에 투항하는 건 절대 불가다. 북한에선 ‘일본(日本)은 백년숙적(百年宿敵), 중국은 천년숙적(千年宿敵)’이라고 한다. 중국에 투항한다면, 공산당 원로들부터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 안위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차라리 미국에 항복하는 건 모르겠지만….”
― 북한은 2021년 4월2일자 《로동신문》 논설을 통해 “제국주의자들의 선전심리전, 사상문화침투에 각성과 대응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후에도 외부 사조 유입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투의 기사가 꾸준히 실리고 있다. 이미 많은 외부 정보가 북한에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북한 주민들의 외부 정보에 대한 갈증은 상상 이상이다. 평양에서만 나오는 ‘만수대TV’ 통로(채널)는 주말에만 방송한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만수대 통로만큼은 기를 쓰고 본다. 중국영화나 인도영화 등 외국 영화를 틀어주기 때문이다. 기승전-수령찬양(起承轉-首領讚揚)인 북한영화와는 비교 불가이니까.
북한 당국이 김정일 지시로 1991년부터 제작해, 지금까지 62부를 만든 연작 영화 〈민족과 운명〉도 인기 만점이었다. 영화 내용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듯 나오는 외부 정보 때문이다. ‘최덕신(崔德新)’ 편에 나온 유럽 풍경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극장에 갔고, 남조선 현대사를 다룰 때 나온 노래 ‘그때 그 사람’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널리 불렸다. 아마 역사상 최고의 인기가요일 것이다.
최덕신 편에 ‘기회’라는 시가 나오는데, 누구 작품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정말 궁금했다. 오죽하면 입국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이 시가 누구의 작품인지 찾아서 읽는 것이었겠는가.”
― 시 ‘기회’의 작가인 민족시인 김소월(金素月)은 평안북도 구성 출생인데 그의 존재를 몰랐다는 말인가.
“몰랐다. 전혀 몰랐다. 혁명시, 충성문학 말고는 조금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이상화(李尙火)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에 나온 적이 있다. 그것이 북한 주민들이 알고 있는 남조선 시인의 전부다. 그러니 시 한 줄, 노래 한 소절이 다 새롭고 강렬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 급증한 탈북자 유튜브 채널은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골치 아플 것이다. 북 주민들의 궁금증, 호기심, 생활 정보 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예능+다큐’ 프로그램이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거니까. 남북 각지의 온갖 소소한 정보가, 음식이며 옷이며 화장이며 드라마 등 모든 정보가 들어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북한 주민 눈높이에 딱 맞춰서. 그러니 북한 주민들에겐 이보다 더 생생하고 재미있고 또 부러운 오락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재미’는 혁명정신보다 힘이 세다
현대사회에서, ‘재미’는 혁명정신보다 확실히 힘이 세다. 영향력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너르게 미친다. 혁명정신은 외부 정보에 무너지고, 혁명생활은 돈의 힘에 무너지는 총체적 위기가 ‘제1비서’의 숙청으로 잠잠해질 수 있을까. 직책은 새로 만들었지만, 누가 그 자리에 올랐는지 북한은 아직도 함구하고 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제1비서가 이 기사를 읽는다면 꼭 전하고픈 말씀이 있다.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숙청당하기 전에, 다른 사람처럼 당하지 마시고, 꼭 선제공격(先制攻擊) 하시라.”⊙
김길선씨는 1955년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태생으로 1979년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육상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1995년 말까지 제2자연과학원(현재 국방과학원) 산하 제2자연과학 출판사 강연선전편집부 기자로 일했는데, 동료들과 성혜림에 관해 언급한 것이 문제가 되어 40일 동안 구속 수사를 받았다. 얼마 후 풀려나기는 했지만 직장에서 쫓겨나고 1995년 12월 지방으로 추방되어 혹독한 시절을 지냈다. ‘평양 밖’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체험하고 ‘고난의 행군’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1997년 8월 가족(남편·딸)과 함께 탈북해 1년 넘게 중국에서 노동일을 하며 숨어 지내다 1999년 1월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현재는 유튜브 ‘김길선의 평양만사’를 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중국에서 들여오던 물건 끊겨”
― 지난 6월 초에 200만원을 고향의 가족에게 송금한 탈북민이 그들에게서 의외의 답을 들었다고 한다. ‘큰돈 보내도 할 일이 없으니 돈 보내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더 보내달라고 사정하던 것이 보통 아닌가.
“최근 들어 장마당에 물건이 사라졌다고 한다. 경제제재의 효과다. 쌀, 땔나무 등 생존에 꼭 필요한 물건은 있지만, 기름과 비누 등 생필품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에서 들여오던 물건이 끊겼다는 뜻이다. 그러니 돈을 받아도 사업을 할 수 없겠지. 돈 받았다는 소문이 나면 뜯어먹으러 오는 것들만 달려드니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뇌물도 그렇다. 장사해서 이익을 남길 생각으로 미리 고이는 것 아닌가. 장사를 할 수 없는데 뇌물은 왜 고이나.”
― 그렇다면 ‘고난의 행군’이 또 오는가.
“개인적으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난의 행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경제가 좋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굶어 죽는 사람이 북한 전역에서 나온다. 다만,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주민들이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영양 상태가 부족하기는 해도 예전과 같은 대규모 아사(餓死)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최근 들어 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작년 9월만 해도 1달러에 북한 돈 8500~8900원 하던 환율이 최근에는 70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숫자만 보면 북한 돈 가치가 올라갔다는 이야기인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달러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외화로만 상품 구입이 가능한 외화상점은 외국 식품부터 각종 전자제품, 고가(高價)의 사치품까지 구비해놓고 파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조차 물건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화폐가 무슨 소용 있는가. 그렇다고 은행에 가서 환전할 수도 없다. 개인 소유 외화는 무조건 불법인 곳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한국식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 북한에서 지역마다 환율이 다른 이유는.
‘데일리NK’ 보도에 의하면 6월 중순 현재 1달러에 평양은 7100원, 신의주는 7120원, 혜산은 7000원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달러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화폐다. 달러가 널리 통용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환율은 당연히 차이가 난다. 혜산에서 달러 가치가 낮은 것은, 혜산이 북중(北中) 접경지역이라 위안화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김길선씨는 2009년 화폐개혁이 북한 경제의 분수령이라고 했다. 북한 주민이 북한 당국을 불신하게 된 결정적 계기라는 것이다. 신권이 나왔지만 북한 돈은 시장에서 휴지 취급을 받고, 달러·엔·위안화가 북한 전역에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생은, 어쩌면 달러화 가치 하락이 장롱 달러를 빨아들이려는 북한 당국의 술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이 축적한 부(富)를 단번에 빨아들이기엔 한번 더 화폐개혁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터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참지 않을 주민들의 폭동(暴動)이 두려워 우회로(迂廻路)로 돌아가려는 것이 혹시 아닐까?
“탈북자 급감은 코로나19 여파”
― 탈북자 수가 급감한 건 어떤 이유인가.
남성 탈북민 500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하나원 화천 분소는 지난 2월 교육생이 3명이었다. 여성 탈북민 교육 시설인 안성 하나원은 시설 관리·운영 인력은 80여명이지만 2월 교육생은 17명이었다. 국내 입국 탈북자가 가장 많았던 2009년에는 총 2914명이 입국했지만 2019년엔 그 수가 1047명까지 줄었고, 2020년엔 불과 229명만 입국했다.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19의 여파다. 일단 북중 접경지대를 통과하기가 예전에 비해 훨씬 힘들고,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도 장거리 이동을 하기 어렵다. 탈북 의지가 줄어든 것이 아니다. 본질적인 흐름은 여전히 탈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 북한 내 코로나19 방역은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함흥 출신 탈북자 말로는 지난 5월 초부터 함흥에 코로나19가 많이 퍼졌다고 한다. 고향의 가족이 ‘거긴 괜찮냐?’며 남쪽의 탈북민 건강을 걱정할 정도라고 한다.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하지 않은 북한 특성상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역은 꽤 유행하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별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코로나19는 새로운 경험이 아니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아직도 철마다 전염병이 도는 곳이 북한이다. 질병에 대한 관념도 남북이 판이하다. 한국에선 거의 사라진 결핵이 아직도 북한에선 주요 사인(死因) 가운데 하나일 정도다.”
― 북한이 노동당 규약을 바꿨다. 국내외 언론이 6월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 바로 밑에 ‘제1비서’를 신설했다.
“한국 언론에는 ‘제1비서’가 후계자냐, 2인자냐, 누가 그 자리에 임명되었는지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것은 ‘제2의 장성택’ 만들기다. 북한 내부 사정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결정적인 시기에 책임을 물어 숙청할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면, 인민들이 보기에도 책임질 만한 자리여야 하지 않은가.”
― ‘혁명 통일론’은 뺐지만 ‘공산주의’는 다시 명기했다. 이것의 의미는.
“그것도 본질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북한은 대남(對南) 혁명을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은 대한민국 정부를 적(敵)으로 규정한다. 북한에 더할 나위 없이 호의적인 정부가 나오더라도, ‘대한민국 정부’인 이상 타도(打倒)해야 할 ‘혁명의 적(敵)’일 뿐이다.”
“北 주민들, 김소월 몰라”
― 장마당 물건이 떨어졌다면, 북중 밀무역도 막혔다는 말인가? 김정은이 북중 접경지대에 CCTV를 설치해 도강(渡江)을 엄격히 막는 바람에 탈북뿐 아니라 밀무역도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밀무역이 거의 끊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선(線)을 끊은 쪽은 중국이지 북한이 아니다. 모든 주도권은 중국이 쥐고 있다. 이제까지는 경제제재 위반임을 알면서도 소규모 생필품 밀수는 눈감아주는 것이 중국 측 태도였다. 그런데 이것조차 꽉 막아버렸다면? 상상력(想像力)을 좀 동원하자면, 이는 중국이 북한을, 적어도 김가 왕조(金家王朝)를 버리는 신호일 수도 있다.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생각해보라.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있고 공산우방(共産友邦)으로 관계가 돈독했다. 지금의 중국과 북한의 관계와 유사한 점이 많다. 하지만 1979년 중월전쟁(中越戰爭) 이후 지금까지 적대적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중국에 투항하는 건 절대 불가다. 북한에선 ‘일본(日本)은 백년숙적(百年宿敵), 중국은 천년숙적(千年宿敵)’이라고 한다. 중국에 투항한다면, 공산당 원로들부터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 안위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차라리 미국에 항복하는 건 모르겠지만….”
― 북한은 2021년 4월2일자 《로동신문》 논설을 통해 “제국주의자들의 선전심리전, 사상문화침투에 각성과 대응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후에도 외부 사조 유입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투의 기사가 꾸준히 실리고 있다. 이미 많은 외부 정보가 북한에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북한 주민들의 외부 정보에 대한 갈증은 상상 이상이다. 평양에서만 나오는 ‘만수대TV’ 통로(채널)는 주말에만 방송한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만수대 통로만큼은 기를 쓰고 본다. 중국영화나 인도영화 등 외국 영화를 틀어주기 때문이다. 기승전-수령찬양(起承轉-首領讚揚)인 북한영화와는 비교 불가이니까.
북한 당국이 김정일 지시로 1991년부터 제작해, 지금까지 62부를 만든 연작 영화 〈민족과 운명〉도 인기 만점이었다. 영화 내용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듯 나오는 외부 정보 때문이다. ‘최덕신(崔德新)’ 편에 나온 유럽 풍경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극장에 갔고, 남조선 현대사를 다룰 때 나온 노래 ‘그때 그 사람’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널리 불렸다. 아마 역사상 최고의 인기가요일 것이다.
최덕신 편에 ‘기회’라는 시가 나오는데, 누구 작품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정말 궁금했다. 오죽하면 입국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이 시가 누구의 작품인지 찾아서 읽는 것이었겠는가.”
― 시 ‘기회’의 작가인 민족시인 김소월(金素月)은 평안북도 구성 출생인데 그의 존재를 몰랐다는 말인가.
“몰랐다. 전혀 몰랐다. 혁명시, 충성문학 말고는 조금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이상화(李尙火)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에 나온 적이 있다. 그것이 북한 주민들이 알고 있는 남조선 시인의 전부다. 그러니 시 한 줄, 노래 한 소절이 다 새롭고 강렬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 급증한 탈북자 유튜브 채널은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골치 아플 것이다. 북 주민들의 궁금증, 호기심, 생활 정보 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예능+다큐’ 프로그램이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거니까. 남북 각지의 온갖 소소한 정보가, 음식이며 옷이며 화장이며 드라마 등 모든 정보가 들어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북한 주민 눈높이에 딱 맞춰서. 그러니 북한 주민들에겐 이보다 더 생생하고 재미있고 또 부러운 오락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재미’는 혁명정신보다 힘이 세다
현대사회에서, ‘재미’는 혁명정신보다 확실히 힘이 세다. 영향력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너르게 미친다. 혁명정신은 외부 정보에 무너지고, 혁명생활은 돈의 힘에 무너지는 총체적 위기가 ‘제1비서’의 숙청으로 잠잠해질 수 있을까. 직책은 새로 만들었지만, 누가 그 자리에 올랐는지 북한은 아직도 함구하고 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제1비서가 이 기사를 읽는다면 꼭 전하고픈 말씀이 있다.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숙청당하기 전에, 다른 사람처럼 당하지 마시고, 꼭 선제공격(先制攻擊)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