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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북한요지경

북한 경제의 온도계 외화식당

對北 제재로 외화식당 매출 반 토막 나

글 : 장원재  장원재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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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류관 등 직영 식당, 시세의 80분의 1인 국정가격에 이용할 수 있지만 ‘종업원이 王’
⊙ ‌합의제 식당이란 손님-운영자, 당국-운영자 간 합의에 의해 가격 결정… 북한 시장 경제의 시발점
⊙ 외화식당, ‘식당 밖은 사회주의지만 식당 안은 자본주의’
  북한이 경제 제재로 타격을 받는가? 받는다. 명확한 증거가 있나? 있다. 평양 내 외화식당의 매상이다. 최근 들어 외화식당들의 영업 실적이 제재 전과 비교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중요한가? 외화식당이 무엇이기에 이곳의 매상이 경제 제재의 효과를 측정하는 기준 중 하나인가?
 
  평양의 식당은 크게 보아 두 종류다. 당국 직영(直營) 식당이 있고 합의제(合議制) 식당이 있다. 당국이 직영하는 식당으로는 냉면집 옥류관, 평천각, 선교각 등 대외봉사총국 산하 식당이 유명하다. 북한 내에서 고급 식당으로 평가받는 이곳에서는 모든 요리를 국정(國定)가격에 판다. 2021년 4월 현재, 공식 환율은 1달러에 북한 돈 100원이다. 암시장 환율은 달러당 8000원 내외다. ‘국정가격에 요리를 판다’는 말은 시세의 80분의 1 가격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돈이 있다고 아무 때나 이곳을 방문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쿠폰’이 있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일종의 이용 허가서인 쿠폰은 당국이 인민반을 통해 주민들에게 내려보낸다. 간부나 유공자들에게는 조금 더 차례가 가지만, 일반 주민의 경우 10년에 한 번 정도 순서가 돌아온다. ‘옥류관 냉면이 맛있는 이유는 10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해서’라는 농반진반(弄半眞半)의 말이 있을 정도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는 것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차이가 없는 법. 옥류관과 청류관 앞에는 쿠폰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 10년을 기다리느니 웃돈을 주고 쿠폰을 사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는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 상견례나 기타 가족 잔치를 위해 급매물을 찾는 사람들이 주 고객이다. 암시장에서 거래하는 쿠폰 값은 본래 가격의 10~20배이지만, ‘효율’을 생각하면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 모두 불만이 없다.
 
  이권(利權)이 있는 곳에 분란이 있는 것은 세상사의 이치라던가. 복사한 위조 쿠폰을 암시장에 넘긴 일당이 적발된 사건도 유명하고, 인민반장이 반원들에게 가야 할 쿠폰을 통째로 빼돌리다 걸린 일도 있었다.
 
 
  종업원이 王인 옥류관
 
2018년 9월 19일 평양정상회담 당시 오찬을 준비한 옥류관 종업원들. 이들은 평소 손님에게 왕으로 군림한다. 사진=공동취재단
  국수를 더 판다고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니, 옥류관 종업원들의 불친절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다. 한참 동안 줄을 서고 쿠폰 제시 후 입장, 자리 안내, 착석 후 주문까지가 일단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2~3시간 줄 서서 기다리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착석한 이후에도 문제는 이어진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종업원들은 고객을 손님이 아니라 하인처럼 대한다. 내 월급을 주는 고마운 존재가 아니라, 나를 귀찮게 하는 성가신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겨우 주문을 했다고 해도, 음식이 나오려면 또 얼마가 걸릴지 모른다. 기다리라면 기다리고, 주면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음식을 식탁에 던지듯 차려놓고 간다고 해서 불만을 터뜨릴 수도 없다. 더 심한 불친절로 보복하기 때문이다. 식당 안에서는 종업원이 왕이다.
 
  이런 행태가 아니꼽다면, 종업원들의 복무 자세를 일거에 ‘친절 모드’로 바꿀 수 있는 마법이 있다. 돈, 정확히 말하면 달러, 유로, 엔, 위안화 같은 외화(外貨)다. 외화로 음식값을 내겠다고 하면 일단 줄서기 면제다. 종업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자리도 좋은 곳으로 배정하고,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메뉴 안내도 한다. 들쭉술과 인삼주의 차이, 효능, 맛, 특징 등도 섬세하게 알려준다. ‘외화’ 손님들에겐 같은 ‘랭면’이라도 다른 음식이 나간다. 재료도, 반찬도 급이 다른 것이다. 아예 ‘외화주방’을 따로 운영하는 식당도 많다. 국정가격보다 80배를 더 내는 고객들에 대한 당연한 예우인지도 모른다.
 
  복무 중 사고로 몸을 다친 이른바 영예군인(榮譽軍人) 중에는, ‘영예’보다 ‘외화’를 높이 쳐주는 식당 종업원의 행태에 불만을 표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다 과거의 이야기다. 지금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했다간, 세상 물정 모르는 꼰대 취급을 받는다. 종업원들이 떠받드는 건 ‘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존을 위한 ‘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합의제 식당’
 
  ‘고난의 행군’은 주민들의 일상생활뿐만이 아니라 식당 등 편의시설의 운영에도 영향을 끼쳤다. 주민들에겐 식량과 생필품 배급이 끊어진 것이 전부가 아니다. 북한 당국은 식당에 들어가는 원재료를 보장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합의제 식당’이다. 식자재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니 ‘식당 스스로 돈을 벌어 원자재를 구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것은 도도하며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었다.
 
  누가 누구와 무엇을 합의하는가? 식당 운영자와 손님이 음식값을 합의한다. 국정가격이 아니라 시장가격을 받는다는 뜻이다. 불법이 아니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당국과 식당 운영자 사이의 합의도 있다. 정액제로 매달 얼마를 내면, 나머지 이윤은 식당 운영자가 가져갈 수 있다. 드물지만, ‘후불제 합의’도 있다. 정액제가 아니라 이윤 배분율을 합의하고 매달 영업 실적에 따라 당국과 운영자가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다. 식당 주인과 식자재 공급자도 가격 합의를 통해 거래를 이어간다.
 
  그래서 북한의 시장경제 시발점을 장마당이 아니라 합의제 식당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합의제 식당의 운영 방식은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끼쳤다. 합의제 당구장이나 PC방이 평양에 속속 문을 연 것이다.
 
  여담이지만, 최근 들어 북한 외교관들이 불만을 표하는 이유도 합의제와 관련 있다. 귀국 후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라 격리해야 하는데, 북한 당국이 제공한 호텔이 ‘합의제 가격’으로 숙박비와 식비를 받기 때문이다. 국정가격보다 80배를 더 내야 하기에, 월급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럼 우리더러 밀수, 마약 밀매 등 주재국에서 불법·탈법을 저지르고 뒷돈을 만들어오라는 이야기냐’라는 것이 북한 외교관들의 속마음이다.
 
 
  합의제 식당, 서비스 수준이 달라
 
  다시 합의제 식당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합의제 식당의 비교우위는 영업 실적이 증명했다. 당국 직영 식당, 대형 식당 대부분이 문을 닫거나 제한 영업을 할 때도 합의제 식당들은 단골을 늘렸다. ‘서비스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창광거리 합의제 식당들은 종업원 대상 점수제를 도입했다. 북한 최초였다. 창틀에 먼지가 쌓였거나 손님 테이블 위로 파리가 날아다니는 경우, 지각, 손님들에게 불친절하거나 불평이 제기되는 경우 등 사안과 규정에 따라 벌점을 매겼다. 종업원 사이의 친절 경쟁을 유도한 것이다. 벌점제만이 아니라 포상제도도 도입했다. 그 결과 가산점을 따기 위해 종업원 모두가 새벽에 출근, 식당 앞거리와 식당 내부를 자발적으로 쓸고 닦고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평양의 식당은 2010년대 이후 대부분 합의제로 전환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합의제 식당의 운영 방식도 다양하다. 종합편의시설인 해당화관(海棠花館) 내 식당은 일주일에 하루만 쿠폰제 국정가격으로 음식을 제공하고 나머지 6일은 시장가격(합의제 가격)으로 영업한다. 당국이 지은 시설이니 주 1회는 설립 목적에 맞춰 영업하고 나머지는 영리를 추구하며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잡는 것이다.
 
  대외봉사총국 이외 기관들도 식당 독자 영업을 통해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당 호텔관리국은 산하에 식당인 능라식당, 승리 전골집, 은하수 식당, 창광국수집 등을 운영한다. 중앙당 목장, 중앙당 공급소에서 원자재를 공급받았는데, 지금은 ‘시장’에서도 재료를 받는다. 예전에는 일반 주민은 출입할 수 없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외화만 있으면 누구나 대환영이다. 간부들만 받아서는 지속 가능한 영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사당 경리부 산하 식당으로는 고기 요리가 유명한 청류관, 경흥관 등이 있다. 당 호텔관리국 산하 식당보다는 등급이 아래지만, 소위 주석궁으로 들어가는 재료들을 사용한다는 것이 홍보 포인트다. 건재공업성, 건설성, 철도성 등 북한의 다양한 기관도 식당 영업에 최선을 다한다.
 
 
  외화 고객의 80%는 북한 사람
 
  개인이 투자해서 만든 식당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 않으니, 평양시 급양관리소 소속으로 여러 단고기 식당, 불고기 식당, 오리고기 식당이 성업 중이다. 이 모든 합의제 식당은 외화식당이다. 북한 돈을 받는 곳도 있지만, 아예 외화만 받는 식당도 많다.
 
  각 기관이 경쟁적으로 합의제 외화식당을 운영하는 이유가 있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당국은 기관 운영에 필요한 배급과 공급을 보장하지 못했다. 자력갱생(自力更生)으로 돈을 벌어야만 기관의 생존이 가능한데, 여기서 돈은 외국에서 물품을 조달할 수 있는 외화를 뜻한다. 각 기관은 식당이 외화벌이의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앞에서 예를 든 북한 외교관들의 ‘합의제 호텔’ 투숙 사례도 호텔 입장에서 보자면 어쩔 수 없는 자구책(自救策)이다. 국정가격으로 투숙객을 받으면 손님을 받는 만큼 손해가 늘어난다. 그렇다고 당국이 손실을 보전해주지도 않는다. 호텔을 운영해 먹고살려면 합의제 가격으로, 그것도 외화로 요금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외화식당 고객의 80%는 북한 사람이다. 하루에 몇백 달러를 쓰고 가는 사람도 있고, 매일 이곳에서만 식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200달러 술을 시켜놓고 키핑을 하기도 한다. 노동자 평균 임금이 4000원(암달러 환율 50센트)이니, 국정가격으로 치면 노동자 월급 30년 치를 한 끼 음식값으로 내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범용(汎用) 호칭이지만, 북한에서는 다르다. 상당한 규모의 회사를 굴려야 ‘사장님’이라고 불린다. 어디서 어떻게 돈을 버는지는 모르지만, ‘사장님’들이 외화식당의 주 고객이다.
 
  ‘외화벌이 사장님’들이 외화식당에서 보위부, 보안부를 비롯한 권력기관 간부들을 접대하는 날이 있다. 사업상의 보안 때문인지, 신흥 돈주와 간부들이 어울려 웃고 떠들며 거나하게 취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그런지, 식당을 통으로 전세 내기도 한다. 간부들이 다른 손님들을 받지 말라고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식당에서도 손해는 아니다. 매상은 매상대로 오르고, 접대 측에서 식당 책임자는 물론 주방에 이르기까지 모든 식당 종업원의 한 끼 식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간부들은 돈을 내지 않는다.
 
 
  빈부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공간
 
  외화식당은 서비스만 아니라 인테리어도 자본주의 풍이다. 짧은 치마, 귀걸이, 색조 화장 등 거리에 나가면 규찰대의 단속 대상인 사항도 외화식당 내부에서는 모두 ‘해당사항 없음’이다. 그래서 이곳 근무자들은 자연스럽게 ‘식당 밖은 사회주의지만 식당 안은 자본주의’라는 생각을 한다. ‘여기는 평등한 사회가 아니다’라고 체감하며 북한 사회의 모순에 눈을 뜬다.
 
  그렇다. 외화식당은 북한의 빈부(貧富) 격차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자 북한 경제 사정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온도계 같은 곳이다. 매일 저녁 북한의 고위층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반(反)북한 정서가 자라는 곳이기도 하다.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외화식당의 매출이 반 토막 이하로 떨어졌다면 그것은 북한 내부의 외화 사정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외화식당을 포함, 북한의 모든 식당이 가장 많은 매상을 올리는 날은 5월 1일 국제노동자절이다. 경제 제재 전 고급 외화식당 중에는 하루 매출액 1만7000~2만 달러를 찍는 곳도 있을 정도였다.
 
  2021년 5월 1일 평양 외화식당들의 매출은 어느 정도일까. 반 토막 매출액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외화식당 운영자와 종업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불안감은 몸집을 불려갈 터이다. 북한 전역엔 지금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불안감’이라는 유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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