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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북한요지경

악화된 평양의 배급 사정

김정은, 선물로 짝퉁시계 지급

글 : 장원재  장원재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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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이 선물하는 ‘명함시계’, 4만 달러짜리 진품에서 1급 짝퉁→중저가 짝퉁으로
⊙ 간부에게 지급하던 보양식 노루도 한 마리에서 반 마리로 줄어
⊙ 장마당 장사꾼에 대해서도 인민반장이 판매할 물건·매상고·재고 등 조사
김정은이 ‘조국해방전쟁 승리 67주년’을 기념해 작년 7월 26일 주요 군 지휘관들에게 선물한 백두권총. ‘선물’은 김정은이 충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사진=뉴시스
  경제제재가 아프기는 아픈 모양이다. 이제는 특권 계급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평양 이야기다. 북한 최고위층 계급은 매일 배급을 받는다. 그래서 ‘일(日) 공급대상’이라고 한다. 매주 공급을 받는 주(週) 공급대상도 있다. 역시 어지간한 신분과 능력으로는 갈 수 없는 자리다. 중앙당 과장급 이상 간부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들에게 가는 배급 물량이 반 토막 이하로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하루 두 병 지급하던 맥주는 고귀한 신분의 상징이었다. 부부가 각 한 병씩 나누라는 것이 공급 배경이었는데, 경제제재 이후 한 병으로 줄었다가 최근에는 그마저 공급이 간헐적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특권층 간부와 배우자까지 챙겨줬지만, 이제는 간부 당사자만 겨우 챙겨주기에도 힘이 달리는 것이다. 소고기 등 기타 식료품도 공급 분량이 확 줄었다. 간부들 집에는 먹을 것이 있으니 사람이 모였다. 자녀나 친지가 찾아오면 아껴놓은 술이나 식료품을 들려 보내는 것이 북한식 예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챙겨 보낼 여분의 식량이 없는 것이다. 예절이 무너지고 체면 유지가 곤란하다. 자식들 줄 것이 없어지니 못 주는 부모나 못 받는 자식 모두에게 불만이 고인다. 알음알음으로 ‘사정이 어려운가 보다’ ‘예삿일이 아니다’라는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다. 평양 최고위층의 최신 풍경이다.
 
  그래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 아직 쌀까지 끊긴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겨우 먹고살 수는 있다는 뜻이다. 북한의 최상위 특권 계층에게 배급이 절실한 이유가 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단이 전무(全無)하다. 당 중앙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뇌물받을 방법이 없고 명분도 없다. 직급은 높지만, 주민들의 실생활에 관련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소나 연구소 같은 단위를 받으면 아래로부터 ‘먹을 알’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중앙당은 아니다. 매일 출근해야 하니, 다른 기관처럼 뇌물을 고인 후 출근한 것으로 이름만 걸어놓고 장사를 나갈 수도 없다. 이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은 그래서 북한이 버티기 위한 마지노선이다. 마지노선이 아직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녹이 슬거나 헐거워진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북한이 특권층의 충성심을 유지 강화하는 비책이 있다. 상징 조작과 끼리끼리 문화의 결정판, 연회(宴會)와 선물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최근 들어 균열이 보인다. 김정은 명함시계는 북한 내 특권의 상징이다. 명함시계 차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위세 당당이다. 이 시계를 찬 사람이 지나가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고 눈치를 봐야 한다.
 
 
  장마당에 나온 명함시계
 
  그런데 이 시계가 장마당에 나온다. 김정은 명함시계를 장마당에 내다 파는 것 자체가 반역적 행동이지만, 원칙대로 단속할 수도 없다. 물건이 짝퉁이기 때문이다. 단속을 해도, ‘위원장님이 짝퉁시계를 선물로 줬다’는 걸 공식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정은이 아예 중국에서 가짜 명품시계를 구입해 선물로 돌린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물론 시계에 새겨진 브랜드는 초일류다. 과거에는 ‘진품’을 줬다. 김일성의 어린 시절 동네 친구던 캐나다 교포 모 인사가 집에 돌아와 김일성에게서 받은 시계를 감정 의뢰했더니 ‘최하 3만~4만 달러’였다는 기록도 있다. 해외 경매 사이트에 나온 명함시계는 아예 스위스 본사의 보증서까지 함께 팔았다.
 
  하지만 김정은 선물 시계는 품질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2~3년 전만 해도 짝퉁 중의 일급 시계를 지급했다면, 지금은 중저가 제품을 준다고 한다. 북한 사람 보기에도, 육안으로 조악한 품질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이다. 핵심층의 충성심 유지에 꼭 필요한 선물 구입에 쓸 현찰조차 모자라는 것이다.
 
  선물이 가짜다 보니 연쇄반응도 일어난다. 북한에서 명품시계를 수리할 수 있는 곳은 중앙당 시계수리소 단 한 곳이다. 독점(?)인데다, 일 더한다고 수입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니, 시계를 한번 맡기면 기다리는 기간만 최소 6개월이다. 그래도 명품 수리를 맡길 만한 곳은 그곳뿐이니 주인들은 이제나 저제나 수리 마쳤다는 연락을 기다렸다. 그런데 최근에는 기현상이 생겼다. 수리 마친 시계를 아예 찾아가지 않는 것이다. 짝퉁에는 재산 가치가 없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설 선물로 광목 손수건 1장 팬티 1장
 
  명함시계뿐 아니라, 다른 선물도 공급 차질이다. 간부들의 보양강장(補養强壯)까지 챙겨주는 희한한 집단이 북한이다. 김씨 일가는 특권층에게 명절 때마다 노루 한 마리를 식용으로 내려 보냈다. 노루를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가 특권층이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지표였다. 노루고기 육회는 특권층의 표지와 다름없는 요리였다. 노루뿐만 아니라 사슴, 타조, 자라 등도 챙겨줬다. 모두 중앙당 노루목장, 사슴목장, 타조목장, 자라목장에서 기른 ‘당의 사은품’이다. 목장에서 뛰쳐나온 사슴을 차로 치었다가 온 가족이 지방으로 추방당한 사례도 있다. 그만큼 보양강장용 동물은 당의 주요 자산으로 취급했다.
 
  그런데 지금은 노루를 한 간부당 반 마리도 주지 못한다. 전기 부족, 사료 부족, 폐사 등 악순환이 농장을 강타한 탓이다. 공급에 필요한 충분한 물량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다. 분기별로 1회씩 주던 양복지도 연 1회로 공급량이 줄었다고 한다.
 

  공급 감소는 일반 평양시민들도 예외가 아니다. 평양시 중구역의 경우 지난 설 선물이 광목 손수건 한 장과 팬티 한 장이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가방도 주고 여성용 가슴띠도 줬다. 이번에 배추는 줬지만 육고기는 없었다. 과거에는 아무리 어려워도, 육고기를 못 주면 꽝꽝 얼린 생선 몇 마리라도 나눠주곤 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각 기업소별로 돼지를 길러 직원끼리 나누는 풍습이 생겼다. 공장은 멈췄지만 먹을 것이라도 알아서 챙기자는 뜻이다.
 
  경제제재로 인한 식량 부족이 불러온 평양의 새로운 풍속도 있다. 그중 하나가 주민 조사다. 과거에는 시범 케이스로 가끔 실시하던 주민 조사를 지금은 연중행사로 한다. 조사 뒤 이어지는 조치가 소개사업(疏開事業)이다. 식량이 절대 부족하니 비(非)시민, 부정수급자를 철저히 가려내 시계(市界) 밖으로 추방하는 것이다. 사소한 범법이나 규칙위반도 대상자를 추방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다. 추방 인원은 식량 재고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평양 출신들이 지방 추방 후 탈북하거나 한국으로 갈까 봐, 그들을 멀리 북중 접경지대로 보내지 못하는 것은 북한 당국의 딜레마 가운데 하나다. 평양 주변 지역에서 불만 세력이 극소수지만 생겨나는 배경이다.
 
  남아 있는 주민이라고 삶이 편한 것은 아니다. 평양시민도 장마당에 나가 장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기준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장사를 나가기 전, 인민반장이 매일 찾아와 ‘오늘 판매할 물품’을 검사한다. 그리고 품목과 수량, 가격 등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매일 저녁 얼마나 팔았는지 손에 쥔 현금과 매상고를 확인하고 남아 있는 재고 수량을 대조한다. 자릿세와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사전 조치다. 그렇다고 장마당에서 아는 사람과 짜고 작전을 펼칠 수도 없다. 보위부원과 끄나풀들이 상주하며 관리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생계와 생존 때문에 허용은 하지만, 북한 당국이 장마당을 비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반역의 온상으로 본다는 증거다.
 
 
  “지금이 ‘고난의 행군’”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더라도 ‘마지막 한 방’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 무상몰수(無償沒收)다. 돈 가지고 있는 것 자체를 범죄시하는 것이 북한의 풍조다. 돈 많은 사람이 애써 모은 현찰을 하루아침에 무상몰수를 당해도 어디다 하소연할 데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상적 경제발전은 불가능하다. 탈출구는 없다. 경제제재는 오늘도 북한의 숨통을 은근하게, 하지만 끈질기게 조이고 있다. 짝퉁 명함시계는 그래서 김정은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징물이다. 안 주자니 체면이 깎이고 주자니 돈이 들고 받아도 고맙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면, 조만간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올 수 있을까요?”
 
  “아뇨 못 옵니다. 지금이 ‘고난의 행군’이니까요. 1990년대에 시작된 ‘고난의 행군’은 해결된 적 없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2의 고난의 행군이란 말은 그래서 정확하지 않습니다.”
 
  필자의 우문(愚問)에 대한 전 평양시민의 현답(賢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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