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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북한요지경

북한 주민들이 韓流 드라마 보며 이해 못 하는 대목들

글 : 장원재  (사)배우고나누는무지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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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발 착용, 성형수술은 ‘보안상’ 이유 때문에 허가받아야
⊙ ‘~님’ 호칭은 김씨 일족만, ‘여사님’은 김정일 母 김정숙만 사용
⊙ KBS 드라마 〈진달래꽃 필 때〉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쉬리〉 보면 용서 없어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영국 런던대학 연극학 박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파주영어마을 사무총장,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진행. 現 (사)배우고나누는무지개 대표 / 저서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배우란 무엇인가》 등
평양 거리의 모습. 韓流 드라마에는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들이 많다. 사진= 공동취재단
  한류(韓流)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북한 주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이 여럿 있다.
 
  먼저, 가발 착용이다. 북한 말로는 ‘덧머리’다. 북한에서 일반인은 가발을 착용할 수 없다. 가발이 사람의 외모를 다른 사람이, 특히 보안원이 바로 알아볼 수 없도록 바꾸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낯선 사람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통제에서 벗어난 자유인의 존재 자체가 체제 유지에 심각한 위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발은 ‘간첩과 배우들만 사용하는 물건’이다.
 
  가발을 쓰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미용상의 착용은 불가능하지만, 병 치료로 머리가 빠졌거나 기타 착용의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다. ‘덧머리’의 착용을 원하는 사람은 진단서 등 관련 서류, 가발을 쓰고 찍은 앞모습·옆모습 사진 등을 당국에 제출하고 허가받아야 한다. 허가받는 데 몇 달이 걸리고, 뇌물을 고여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뉴턴 운동 제3법칙에 이어, 북한에는 ‘고이면 작동한다’라는 제4법칙이 있다. 북한 엘리트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농담이다.
 
  가발을 쓸 자유만 없는 것이 아니다. 성형수술 역시 개인이 자유로이 받을 수 없다. 쌍꺼풀 수술 등 수술 후에도 동일인 식별이 가능한 수술은 가능하지만, ‘못 알아볼 정도’의 수술은 엄격히 금지된다. 북한에서 성형수술이란 ‘사고로 다친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는 치료’이지 ‘미모를 돋보이게 하는 시도’가 아니다. 남한의 모든 성형외과가 민간병원인지, 개인이 당국의 허락도 없이 어떻게 마음대로 얼굴을 고칠 수 있는지, 고치고 나면 얼마나 예뻐지는지, 수술 후 주변 사람들 반응은 어떤지…. 북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은 날개를 달고 한없이 커진다. 궁금해 죽는다!
 
 
  ‘여사님’ 호칭도 함부로 못 써
 
김일성의 첫 번째 아내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오른쪽). 사진=조선DB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고객님, 선생님, 여사님 등의 호칭도 이해 불가다. 북한에서는 ‘~님’이라는 호칭은 김씨 족속에게만 붙일 수 있다. 특히 ‘여사’는 오직 김정일의 생모(生母)인 김정숙에게만 붙일 수 있는 호칭이다. 다른 사람을 ‘여사’로 부르면 정치범수용소행이다. 소위 말하는 백두혈통을 모독하고, 김씨 족속의 정치적 정통성을 부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토록 ‘여사’라는 호칭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김일성의 후처(後妻)인 김성애(1924~2018) 때문이다. 김정숙은 1949년 출산 중 사망했고, 김일성은 6·25 당시 김성애와 재혼했다. 김성애는 당시 김일성의 비서였다. 김성애는 장녀 김경진, 김평일, 김영일(2000년 독일에서 사망) 등 김일성과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두었는데, 김평일을 후계자로 밀기 위해 1970년대 초까지 김정일과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였다.
 
  김정일은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뒤 김경진·김평일·김영일을 모두 해외 공관으로 보내고 수십 년간 귀국을 막았다. 당사자들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김평일과 가깝다고 알려진 모든 당 간부를 숙청하며 철저하게 보복했다. 해외공관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요원을 파견할 정도였다. 김평일과 말을 섞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행위였다. 임지를 옮긴 김평일이 공관 직원의 도움 없이 이삿짐을 혼자서 나르더라는 목격담도 있을 정도다.
 
  그래서 ‘김정숙 여사’는 김정일의 승리를 알리는 기념비적 호칭이며, 곁가지와 원가지는 다르다는 것을 알리는 정치적 상징이다. ‘여사’라는 호칭이 북한에서는 단 한 사람에게만 쓰이는 이유다. 이렇듯 귀하고 무시무시한 호칭을 일반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국 드라마를 보며 북한 주민은 오늘도 가슴을 졸인다.
 
 
  ‘똥값’이라는 말도 이해 못 해
 
  ‘똥값이다’라는 대사도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에서 인분(人糞)은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물품이기 때문이다.
 
  1월 1일이 휴일이라면 1월 2일은 ‘새해 첫 전투’가 시작되는 날이다. 예외적으로, 올해는 이틀 더 휴일을 주고 1월 4일에 첫 전투를 시작했지만. ‘첫 전투’의 과제는 비료 나르기다. 한 사람당 정해진 무게의 인분을 농촌 지역으로 날라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예외가 없는 필수과제다. 돈이 있는 사람은 수레를 끌고 가고 돈이 없는 사람은 배낭을 만들어 인분을 짊어지고 산길을 걸어간다. 수레가 되었든 배낭이 되었든, ‘자력갱생 간고분투’라고 쓴 구호를 달고 길을 나서야 한다. 배낭에 넣을 때는 비닐을 구해 방막을 깔고 인분을 담는다. 조금이라도 악취를 줄이기 위해, 밤새 인분 덩어리를 얼리는 것이 요령이다.
 
  새해 첫 전투가 아니라도 직장별, 학교별로 때마다 인분을 바쳐야 하기에, 북한에서는 인분이 곧 돈이다. 다른 사람이 훔쳐 갈까 봐, 공중화장실 앞에서 마을 사람이 돌아가며 보초를 서서 지키는 물건이다. 도시 사람들을 위해, 인분 의무반출량을 조달 판매하고 원하는 장소까지 배달해주는 거간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똥값, 똥차’ 등 똥과 관련한 비유는 북한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
 
  집에서 하는 목욕도 납득하기 어렵다. 받은 물을 그대로 쓰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오수처리라는 개념이 없다. 상하수도가 그대로 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평양 대동강이나 보통강 물은 오염 정도가 심각하다. 두만강·압록강 물도 마찬가지다. 식수를 긷는 옆에서 빨래를 하고 용변도 본다.
 
  수돗물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평양이라도 수도꼭지에서 지렁이가 나오고, 장마 후에는 붉은 물이 쏟아지는 수준이다. 그나마 하루 2~3시간만 물이 공급되기에, 어떻게든 물을 받고, 정화 과정을 거쳐 찌꺼기를 가라앉힌 뒤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과 비교하면, 남조선에서는 어떻게 수돗물을 그냥 쓸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19禁 영화는 ‘자본주의의 맹독’
 
  북한에 한류가 널리 퍼졌고, 지금은 본 사람이 너무 많아 본 사람을 모두 처벌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엄중하게 단속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19금(禁) 영화다. 북한에서는 19금 영화를 ‘자본주의의 맹독(猛毒)’으로 본다. ‘인민의 도덕을 파괴하는 독극물’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한 탈북민이 보안원에게 ‘19금 영화’를 건네며 ‘영화 속 이야기보다 더한 일들이 인민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단속을 세게 하는가?’라고 물어보니 ‘실제로 하는 것과 영화를 보는 것은 별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는 작품이 몇 편 더 있다. 1998년 1월부터 K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진달래꽃 필 때까지〉다. 1995년에 귀순한 만수대 무용단원 신영희의 수필을 원작으로, 기쁨조의 실상을 그린 작품이다. 김일성 초상화에 피가 튀는 장면이 나오는 〈공동경비구역 JSA〉, 김정일이 서울을 방문하고 남측을 대등하게 대우한다는 설정의 〈쉬리〉도 유통 절대 금지 아이템이다.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사소한 궁금증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북한에는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다’ ‘드라마 속 사람들처럼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열망이 거대한 지하수처럼 흐르는 중이다. 평양·개성·원산·청진·혜산·함흥·신의주·회령·나진·선봉 예외가 없다. ‘흐름’의 다음은 ‘넘침’일 터이다. 그것이 ‘뉴턴 운동 제5법칙’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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