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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3·1운동 100주년

북한과 좌파의 3·1운동 인식

“반동층이 만든 臨政, 인민대중과 유리된 허수아비 정부”

글 : 유광호  자유민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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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내 사학계, 日帝하 통일전선-좌우합작 운동 중시
⊙ “애국적 인민대중은 대대적인 봉기로서 민족적 독립을 쟁취하려고 떨쳐나… 민족주의 상층부는 겁에 질려 일제 경찰에 자진 투항”(북한 《현대조선력사》)
⊙ 문재인 정권, 3·1운동 공동행사 통해 ‘우리민족끼리’ 고취, 연방제로 가려나?

柳光浩
1958년생. 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 연세대 강사, 이승만연구원 연구원,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 연구위원, 한국자유회의 실행간사 역임, 現 자유민주연구학회장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7월 3일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文在寅) 정부가 북한에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공동으로 하자고 제의해 놓고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 주제에 대하여 문 정부와 북한 정권의 역사인식은 어느 정도 같고 다름이 있을까? 그 정치적 결과는 무엇일까?
 
  사상(思想)에서 역사관이 나오고 역사관에서 정치적 입장이 결정된다.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폄훼하는 사상과 역사관을 공유하는 세력이 여러 분야에서 터를 잡고 뭉쳐 한국 사회에서 ‘좌파(左派) 기득권 세력(the Left Establishment)’ 내지 ‘좌파 주류’를 형성한 지도 오래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일성주의와 직접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사파(主思派), 즉 김일성주의 추종 세력과 동지 관계에서 활동해 왔고, 결국 그들의 대표가 되어 대통령에까지 오르게 된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정권의 동지가 돼 있는 김일성주의 출신자 중 아직까지 공개적 전향(轉向)을 한 자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일성주의자가 아니고 중도좌파 정도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심각하다. 해방 공간에서 보았듯이 한국의 중도좌파는 대개 공산주의 세력을 쳐다보고 빨려 들어가는 용공(容共) 해바라기들이었던 역사적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남한의 다수파(多數派)인 반(反)김일성주의를 ‘나쁜 반공주의’로 매도하면서 억압하고 소수파(少數派)인 통일전선파와 김일성주의파만을 가지고 한국을 대표한다고 하면서 김일성주의의 북한 권력과 합작(合作)하려고 안달을 하고 있다. 진정한 중도좌파라면 전체주의, 즉 공산주의에 명확하게 반대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민주주의 내에서 시민권이 있는 것이다.
 
 
  항일운동 관련 연구 경향
 
  “김정은 위원장과 새로운 조국을 건설하겠다”고 평양에서 다짐한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관은 남한 사학계(史學界) 주류, 즉 좌파 기득권 세력의 그것과 궤를 같이한다. 항일(抗日)운동에 대한 국내외의 연구들은 정치적 입장을 기준으로 삼으면 세 가지 흐름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우익 입장에서의 연구다. 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독립운동의 핵심축으로 본 반면, 공산주의자들의 운동을 민족운동을 파괴하고 방해한 것으로 보았다. 1960~70년대 남한 안의 연구는 대체로 이러했다.
 
  둘째, 좌익 입장에서의 연구다. 우익 민족주의자들은 3・1운동 이후 대부분 일제(日帝)에 협조하거나 아니면 항일운동을 그만두었던 반면, 공산주의자들이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했다고 본다. 이러한 연구는 다시 김일성 등 재(在)만주 항일빨치산을 운동의 주류로 보는 연구 경향과 1920년대 결성된 조선공산당을 주류로 간주하는 두 가지 경향이 있다. 주로 북한의 연구가 전자(前者)에 해당한다. 후자(後者)의 경우에 해당하는 연구는 1980년대 국내 이른바 민주화운동이 활발한 가운데 많이 나왔다.
 
  셋째, 신간회, 유일당운동, 민족혁명당, 민족전선연맹, 동북항일연합군, 후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통일전선을 지향했던 운동들을 민족운동의 중심축으로 놓은 연구 경향이다. 강대한 일제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좌익 진영 또는 우익 진영 단독으로 할 수는 없었고 전선을 통일해서 뭉치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본다. 물론 우익 중심적 운동이나 좌익 중심적 운동은 옳지 않다고 본다. 최근 한국 사학계의 경향이 대체로 이 셋째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렇듯이 최근 항일운동 연구의 주류는 김일성 조선노동당의 통일전선전술,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전략이라고 하는 대남(對南)혁명노선을 거부하지 않고 그 자장(磁場) 안에 있는 좌우합작 내지 통일전선 지향 운동을 중심에 놓는 입장이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운동은 백안시한다. 해방 공간에서 그랬듯이 중도좌익과 좌익들 간의 합작이 그 실체다. 공산전체주의 체제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자들만의 합작이었다.
 
 
  3·1운동은 자유민주공화국 건립운동
 
  3・1운동에 대해 최근 남한 좌파 기득권 세력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이에 앞서 우리는 3・1운동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된다. 그것은 민족자결(民族自決)은 물론 ‘자유의 정신’을 발휘하여 현대 문명에 합류하겠다는 것, 즉 자유공화국들의 국제적 연합이 만들어내는 글로벌 자유주의 질서에 동참해 자유민주적 국민국가로서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민주공화국으로 독립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민주공화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를 말한다.
 
  1917년 이후 지금까지도 세계는 국가의 정치 형태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체제의 대결 상태다. 따라서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면 해방 후 건국을 위해 자유선거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북한과 남한의 좌익 세력은 자유선거를 거부했다. 그것을 파괴하려고 반란을 일으켰다. 문명과 반문명의 갈림길에서 반문명 세력임을 자인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체제 내에서의 상대적인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것에 반대하기 때문에 좌파 세력은 정통 자유민주주의자인 이승만(李承晩), 3・1운동 당시 독립지사들의 총의(總意)에 의해 통합임시정부의 최고 지도자로 추대된 이승만을 그렇게 폄훼하고 음해하며 역사에서 지우려고 한다.
 
 
  “3·1인민봉기, 부르죠아민족주의의 취약성 드러내”
 
북한 《현대조선력사》의 3·1운동 관련 부분. 3·1운동을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으로 폄하했다.
  이 대목에서 북한은 3・1운동을 어떻게 보는지 살펴보고 남한 좌파 주류의 역사관, 그리고 남북한의 역사관의 관계를 더 검토하는 것이 좋겠다.
 
  북한은 3・1운동을 ‘3・1인민봉기’라고 부른다. 북한은 김일성의 입을 빌려 “3・1봉기를 계기로 부르죠아민족운동의 시기가 끝나고 맑스-레닌주의 기치 밑에 노동계급을 선두로 하는 조선 인민의 민족해방투쟁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민족해방’이라는 말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계급해방’과 짝을 이루는 개념이다. 비공산주의자들은 ‘독립운동’이라는 말을 주로 써왔다.
 
  근현대사에 대한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서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박사 김한길이 쓴 《현대조선력사》가 꼽힌다. 《현대조선력사》는 1983년 판에서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나기 전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은 주로 민족주의의 영향 밑에 진행”되었고 “민족주의는 반제반봉건적 사상요소들을 담고 있는 데로부터 일제의 예속 밑에 신음하고 있던 우리 인민대중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본질상 부르죠아적 사상 조류로서 인민대중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었고 그들의 혁명적 정력을 충분히 발양시킬 수 없었으며 따라서 우리 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옳은 길로 이끌 수 없었다”고 그 한계를 비판한다. 즉 “3・1인민봉기는 부르죠아민족주의의 취약성을 남김없이 드러내놓았다”는 것이다.
 
  민족주의 세력의 취약성, 즉 비민중성을 주장하기 위해, 《현대조선력사》는 “민족주의 상층부는 원래 일제에게 청원하는 방법으로 또는 다른 큰 나라의 힘을 빌려 〈독립〉을 이룩해보려고 하였으며 바로 이 목적으로 〈독립선언서〉를 준비하고 1919년 3월 1일에 서울에서 그것을 발표”했는데 “애국적 인민대중은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대대적인 봉기로서 민족적 독립을 쟁취하려고 떨쳐나서게 되자 민족주의 상층부는 겁에 질려 일제 경찰에 자진하여 가서 투항하였으며 대중에게는 무저항주의를 설교하였다”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북한의 臨政 비판

 
북한 《현대조선력사》는 상하이 임시정부를 ‘인민대중과 유리된 허수아비 정부’라고 깎아내렸다.
  3・1운동 지도 세력에 대한 북한의 폄훼와 매도는 그 자유민주주의적 차원에 대한 ‘고차원적 극복’으로서 공산주의 운동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에서였다.
 
  현 한국 근현대사학계의 주류는 이런 시각을 대체로 수용하고 있다. 좌익 사상에 경도(傾倒)돼 있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진정한 역사 연구자라면 인류의 역사에서 ‘부르주아’ 사상이 가지는 보편적 휴머니즘을 인식하고 공산주의적 시각의 허구성을 비판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한다. 따라서 사실을 적절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역사인식은 뒤집혀 있으며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크게 오도(誤導)하고 있다. 이래서 대한민국이 전복(顚覆)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3・1운동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입장에도 이어진다. “3・1봉기 후 부르죠아민족주의운동의 상층부의 대부분은 민족개량주의자들로 굴러떨어져 일제와 완전히 야합하게 되었다”고 매도하고, “민족주의자들 중 완고하고 반동적인 층은 중국 상해에 모여 이른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인민대중과 유리되어 있는 망명 집단, 허수아비 ‘정부’에 지나지 않았다”고 폄하하고 있다.
 
  1980년대에 주체사상을 받아들인 주사파 운동권은 3・1운동과 임시정부에 대한 북한의 이러한 인식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그들에게는 ‘만주에서 풍찬노숙하며 무장투쟁을 한 김일성 장군’의 투쟁만이 진정한 항일투쟁이었다.
 
 
  낭만적 민족주의의 함정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3・1운동은 함께 기념하자고 하면서도 임시정부 수립을 함께 기념하자는 얘기는 할 수가 없어서 그 아이템은 뺀 것으로 보인다. 임시정부의 법통(法統)은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논리에 의하면 북한은 정통성이 없는 단체가 된다.
 
  북한이 존중하지 않는 임시정부를 문재인 정권은 상당히 받든다. 이것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586운동권과 같은 유의 김일성주의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민족주의자인 김구(金九)가 임정(臨政)의 마지막 주석이었고 바로 그가 공산 북한과 통일을 위한 남북협상을 하러 북행(北行)한 사실에서 감동을 받는 것 같다. 이 점에서 문 대통령은 낭만적 민족주의자인 것 같다. 따라서 이성적인 사고를 결여하기 십상이다. 낭만적 민족주의자는 체제의 옳고 그름과 문명인지 야만인지 따지지 않는다.
 
  또한 남한 좌파 주류와 문재인 대통령은 3・1운동에 있어서 지도자급 명사들보다는 인민대중의 운동성에 더 공감할 것이다. 좌파이기 때문에 북한의 계급주의적 시각에 끌릴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은 좌경 민족주의자일 수 있다. 이런 입장은 한국 근현대사 사학계 주류의 그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북한의 ‘남조선혁명’전략인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전략을 받아서 투쟁노선으로 삼았던 남한의 주체사상파 운동권의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론의 자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반미·반일의 민족해방과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좌익들의 계급투쟁에 공감하고 동정심을 가졌음을 뜻한다. 그러면 그는 북한의 통일전선의 대상이 되고 또 스스로 주관적으로 통일전선전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北, 7세 김일성이 3·1운동 참가 주장

 
북한 《현대조선력사》는 항일운동을 김일성 일가의 항일운동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3・1운동을 김일성 가계(家系)가 ‘위대한 혁명적 가정’ ‘신성(神聖)가족’이라고 날조하는 데 이용했다. 《현대조선력사》는 김일성의 아비 김형직이 “1917년 평양에서 국내외를 포괄한 가장 큰 반일지하혁명조직인 조선국민회를 결성”했고 1919년 8월 만주에서 역사적인 회의를 소집하여 “공산주의 사상에 기초하는 혁명투쟁으로 방향을 전환시키는 데 대한 방침을 내놓았다”는 등 여러 활동을 과장 날조하여 “반제(反帝)적이고 자주적인 투쟁방침을 처음으로 제시한 혁명투사였으며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였다”고 대서특필하고 있다.
 
  김형직이 숭실학교를 중퇴하고 1915년에 숭실학교 출신이며 부호의 아들인 장일환이 주도한 조국광복회에 잠시 가입한 것은 맞다. 그러나 위 서술은 과장을 넘어 날조다. 그래도 이 책에서는 조선의 3・1운동을 지도했다는 서술은 없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나오는 북한의 교과서와 역사서에는 김형직이 평양에서 3・1봉기의 불길을 댕겨 전국으로 퍼졌고 지도했으며 7세의 김일성이 참여했다고 날조의 극단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현대조선력사》와 교과서들은 3・1운동의 실패 원인은 근본적으로는 “탁월한 수령과 혁명적인 당의 영도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고, 더불어 “부르죠아민족주의자들의 계급적 제한성과 숭미(崇美)사대주의”와 “민중의 기운 폭발을 방해한 미국의 책동과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 있다고 기술(記述)하고 있다.
 
  결국 북한에 있어서 3・1운동은 김일성을 위한 이른바 ‘조선혁명전통’을 수립하는 데에 기점으로 이용됐다. ‘조선혁명전통’이란 ‘3・1운동 → 노동자·농민운동 → 항일무장투쟁’을 민족해방운동의 주류로 설정하는 것이다. 김일성이 ‘견실한 공산주의자’ ‘참다운 공산주의자’로서 ‘부르주아민족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1920년대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지식인성과 종파주의를 극복하고 주체적이고 대중적인 혁명투쟁 끝에 만주에서 혁명군을 이끌고 국내 진공(進攻)작전을 통해 조선을 일제로부터 해방했다는 북한 창작의 서사다.
 
 
  ‘우리민족끼리’라는 환상
 
작년 9월 20일 나란히 백두산 정상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우리민족끼리’의 환상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혁명가’들이 대개 그렇듯이 김일성의 행적에 대해 과장은 있어도 기본적인 업적과 의의는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북한 ‘인민공화국’의 수립은 정당성이 있고 체제가 확고하다고 보는 것이 한국 좌파 주류의 시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점에서는 궤를 같이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일성의 혁명전통을 액면 그대로 믿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3・1운동을 이렇게 보는 북한과 문재인 대통령은 공동 기념행사로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국민들에게 논리를 따지지도 않고 그냥 ‘우리민족끼리’라는 환상을 심는 것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북한이 선동하는 ‘우리민족끼리’는 김일성 민족과 남한에서 ‘김일성 민족’을 추종하는 자들끼리만 뭉치자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북한과 왜 3・1운동을 공동으로 기념하겠다는 것인가? 아마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답할지 모르겠다.
 
  항일이라는 대의(大義) 밑에 좌익운동을 ‘독립운동’에 포함시키려고 역사관 전복을 도모하는 남한 좌익 진영의 오랜 공작이 있어 왔다. 그러나 좌익이 문명적 독립을 지향한 것이었던가?
 
  아니다. 남북한이 체제를 달리함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의 상태를 보이고 있다. 문명과 반문명이다. 전체주의를 수용하거나 용납한다는 것은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연방제 통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을 등가(等價)로 본다거나 섞을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환상이거나 기만이다. 더구나 북한 권력은 이미 ‘김일성 민족’으로 자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민족끼리’를 수용하고 소련 공산제국의 괴뢰가 되어 민족에서 떨어져 나간 북한 권력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민족해방투쟁’의 주류로 대우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해체·전복하려는 의도 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다.
 
  남북한이 연방제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북한이 자유민주주의 남한과 평안하게 공존할 수 있을까? 하나의 나라가 되면 통교(通交)를 해야 될 텐데 북한의 주민들이 자유사회를 보고 북의 전체주의 권력을 용납할까? 세습이 가능할까? 그럴 확률은 없다. 따라서 북한 권력은 처음부터 견지해온 대로 ‘혁명’, 즉 남한을 점령하는 수밖에 없다.
 
  연방제든 뭐든 남북통일을 선언하면 북한은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만약 미군이 주둔한다는 조건하에서 통일을 하는 경우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 남한의 김일성주의자들이 미군에 대해 자살폭탄테러를 할 수 있다. 미군이 진절머리가 나서 나가게 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셰이머는 국제정치에서 자유주의는 민족주의와 맞붙어 이긴 경우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비관한다. 이런 혼란에 북한 전체주의의 대남혁명의 기회가 있다.
 
 
  무엇을 위한 수렴인가
 
  3・1운동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자유의 정신’에 의한 민주주의 나라로 독립하겠다는 공감대가 민족적으로 세워졌던 것이다.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나라를 의미했다.
 
  우리는 100년이 흐른 지금 아직 해방되지 않은 북의 국민들을 전체주의 사슬로부터 해방해야 하는 것이다. 이 민족운동에 남한의 좌파 기득권 세력은 반대해 왔고, 지금은 정부를 장악하고 있다.
 
  지금은 전 세계가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시키기에 일치하고 있는 전에 없던 절호의 상황이다. 그런데 현 정권과 좌파 기득권 세력은 이것을 방해하고 있다. 반3・1운동 세력이고 반민족 세력이고 반민주 세력이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문재인 정권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수십 년간 유행했던 수렴론(收斂論)을 믿는지 모르겠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 체제로 수렴될 것이라는 환상 말이다. 그러나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는 붕괴돼서 사라졌지, 수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권은 수렴론을 신봉해서 남한은 ‘복지 노예제’로 옮아가고 북한도 ‘전체주의 노예제’를 어느 정도 완화해서 양자(兩者)의 동질성을 만들어 가야 된다고 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기업을 해체하려 하고 국민들의 자유의 사기를 이렇게 억압하고 복지의존 노예들로 만들려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공작은 3・1운동의 자유·독립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기업인들과 종업원들이 세계를 무대로 모험과 도전을 펼친 덕택에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사실상 가장 잘사는 나라의 국민으로 팔자를 고쳤다. 그들이야말로 3・1 자유·독립정신을 최대치로 발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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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cha    (2019-03-02) 찬성 : 3   반대 : 2
이 작자 3.1 운동에 무슨 빨갱이 타령야? 하는 일마다 다 실패하니 에라 이거나 물고 늘어지자 이거다.
  질문이요    (2019-02-26) 찬성 : 1   반대 : 9
주장을 하실때는 근거를 제시해주세요.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독자가 판단할수있도록이요. 그리고 3.1은 조선시대에 일어난 일인데, 왜 남한과 북한이 보는 시각이 달라야하나요?
북한에서 이순신장군을 존경하면 남한은 싫어해야하나요?
그리고 지난 대선때 모든 후보가 남북한 통일시 연방제를 선택한다고 했는데, 한국당 조차 틀렸다고 말씀하시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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