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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의 어제오늘내일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교수

“통일의 제1원칙은 ‘죽어도 자유를 버릴 수 없다’는 것”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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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은 역사적 우연에 불과… 중요한 것은 ‘가치관’”
⊙ “문재인 정부의 對北정책, 국내외 소통 부족이 가장 큰 문제”
⊙ “독일 통일의 가장 큰 특징은 西方의 테두리 안에서 해나갔다는 것”
⊙ “‘노동자를 위하는 척하는 사회’에 순응해 온 미성숙한 동독인들, 통일 후 경쟁 체제에 적응 실패”

朴聖祚
1936년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베를린대·파리대 정치학·경제학 수학, 베를린자유대 정치학 박사. 독일 보훔대 사회과학분야 교수자격 획득(1973) / 서울대 초빙교수, 독일 루르대 동양학부 학장, 베를린자유대 정치학과 교수 역임. 현 베를린자유대 종신 정교수(정치·경제학)
사진=조현호
  김여정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 3차례의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 그리고 연말을 뒤숭숭하게 한 김정은 서울 방문설….
 
  2018년은 북한 이슈로 시작해서 북한 이슈로 끝난 한 해였다. 김일성부터 시작해 3대에 걸쳐 김씨 일가가 저지른 죄행(罪行)들-6・25 남침, 대남도발, 인권유린, 강제수용소, 민간인 납북, 300만명의 아사자(餓死者)를 낸 대기근(大饑饉) 등-은 잊혔다. 백두칭송위원회니 위인맞이환영단이니 하는 자들이 공개적으로 김정은을 찬양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국가 기간방송인 KBS를 타면서 드디어 이념의 낙동강 전선마저 무너졌다. 이를 가능케 하는 논리는 딱 하나, ‘우리민족끼리’였다.
 
  이런 시절에 다시 생각나는 책이 있다. 2005년에 나온 《남과 북 뭉치면 죽는다》이다. 책의 제목부터 강렬하다. 목차를 훑어보면 ‘통일은 감정이 아닌 생존의 문제’ ‘북한에는 노동자가 없다’ ‘민족을 잊어야 통일이 보인다’ 같은 소제목들이 보인다. 요즘에는 좀처럼 듣기 힘든, 그러나 귀담아들어야 할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통일정책연구팀. 박성조(朴聖祚·83) 교수 등 6명의 공저(共著)였다. 박성조 교수는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동양인 최초로 독일 사회과학 부문 교수 자격을 취득한 인물. 특히 독일 통일 이후에는 거의 평생 동안 독일을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통일 문제에 대해 활발한 연구・저술 활동을 펴왔다. 마침 박 교수가 2018년 11월 중순 세미나 참석차 잠시 귀국했기에 만나보았다.
 
 
  “서방국가들과의 소통 필요”
 
1970년 5월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동서독 정상회담차 동독 에어푸르트를 방문하자, 시민들은 그의 이름을 외치며 열광했다.
  ― 금년 한 해는 3차례에 걸친 정상회담 등 남북관계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독일에서 빌리 브란트 전 총리가 동방(東方)정책을 할 때도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어요. 국민과 대화도 없이 이렇게 급속도로 하다 보면 여러 가지 하자(瑕疵)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항상 소통(疏通)을 강조해 온 문재인 대통령이 이 문제와 관련해 소통을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는 멀리 있으면서 판단하기 어렵지만, 너무 급속도로 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 대북(對北)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역시 소통 부족과 속도 조절입니다. 여기서 소통이라고 하는 것은 비단 국내적인 소통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제적인 소통도 중요합니다.”
 
  ― 국제적인 소통이라면.
 
  “대한민국은 서방(西方)의 가치관 속에서 성장해 왔고, 앞으로도 그 안에서 발전해 나가야 할 국가입니다. 서방에 친구들이 많고, 6・25전쟁 때에는 유엔의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대북문제와 관련해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를 지금까지 도와주었고 가치관을 공유하는 서방측과 합심하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 가면서 해나가야 합니다. 독일은 동방정책 이후에도 항상 미국 및 EU와 보조를 맞추었기 때문에 크게 잡음이 없었습니다.”
 
  박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과 만나고 난 후, 북한의 대사(大使)인 것처럼 미국·EU 등 서방의 친구들을 만나 대북제재 해제를 촉구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EU 국가들과 사전(事前)에 의견 교환을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KTX 속도로 서두르니까 전 세계적으로 의아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방 테두리 안에서의 통일”
 
  ― 통일 이전 독일은 어떻게 국제사회와 소통했습니까.
 
  “서독(西獨)은 유럽통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멤버였습니다. 특히 중요한 게 1973년의 CSCE(Commission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유럽안보협력회의・1995년 OSCE[유럽안보협력기구]로 개칭)였습니다. 이를 통해 유럽에서의 냉전(冷戰) 체제가 완화되었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이와 비슷한 것들이 하나도 없어요.”
 
  ― 독일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독일은 유럽의 중간에서 혼자서 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1920년대 라팔로 조약 체제가 실패로 끝났던 기억과 2차대전 이후 패전국(敗戰國)으로서의 제약 등으로 인해 ‘EU나 나토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서방의 여러 가지 틀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독일인이 가진 공통된 철학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고(思考)가 없잖아요.”
 
  ― 지금 한국에서는 독자적인 대북행보, 자주적인 외교를 강조하는 분위기입니다.
 
  “미국의 지원이 없었으면 독일 통일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처음에는 대처 영국 총리,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조금 반대했지만, 부시 미국 대통령이 독일 통일을 받아들이도록 종용했잖아요? 그리고 유럽통합세력, 헬싱키 체제(CSCE) 같은 것들이 외곽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 통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독일은 동독(東獨)과의 접촉에서부터 통일에 이르기까지 외부 소통 면에서 굉장히 성공적이었습니다. 독일 통일의 가장 큰 특징은 서방측의 테두리 안에서 해나갔다는 것이에요.
 
  우리나라는 지금 그게 안 되니까 상당히 안타깝지요. 상당히 위험합니다. 한국이 어떻게 될지, 김정은을 푸틴이나 시진핑이 밀어줄 때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등, 걱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
 
  ―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일본·EU 등 서방의 친구들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식은 부족한 반면, 중국이나 러시아 지도자들과 정서적으로 더 잘 통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소통도 만족할 정도는 안 된다고 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 갔다가 푸대접받은 것이나 한국의 저널리스트가 얻어터진 것 등을 보면, 전반적으로 대한민국이 당연히 받아야 할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호네커에게는 굴라크가 없었다”
 
  ― 김정은 서울 방문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1986년 에리히 호네커의 서독 방문 때는 어땠나요.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데모도 좀 있었고요. 그렇다고 해서 한국과 독일의 경우를 1대 1로 비교하긴 힘들어요. 호네커는 핵을 갖고 있거나 굴라크(강제수용소)를 열몇 개씩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물론 굴라크 비슷한 게 있기는 했지만….
 
  그리고 이때는 이미 동서독 간에 경제협력이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함께 CSCE 체제에 들어가 있어 안보적인 부담도 적었습니다. 지금의 한국에 비하면 문제가 비교적 적은 편이었습니다.”
 
  ― 김정은의 서울 방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일단 외교로서는 괜찮다고 봅니다. 하지만 좀 더 파고들어 가서 그런 죄과가 있는 사람을 데려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토론이 있어야 합니다. 매스컴이든, 국회에서든 토론이 되어야 합니다. 국회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하는 건 위험합니다. 독일에서도 2년 반 전에 메르켈 총리가 국회에서의 토론도 없이 난민에 대한 문호 개방을 선언했다가 후유증을 앓고 있잖아요.”
 
  ―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지 30년, 독일이 통일된 지 28년이 지났습니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었다고 봅니까.
 
  “서로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것입니다. 같은 민족이라는 구름 속에서, 신기루(蜃氣樓)에 빠져서, 같은 민족이니까 뭉치면 잘살 수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죠. 하지만 동서독은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다르다는 걸 몰랐습니다. 1992년 말 《슈피겔》 조사에 의하면, 서독인의 69%, 동독인의 79%가 통일 이후에야 동서독인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고 답했습니다.”
 
  ― 무엇이 그렇게 달랐습니까.
 
  “무엇보다도 가치관(價値觀)이 달랐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가치관….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빌리 브란트는 ‘같은 것은 같이 살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체제’와 ‘이념’보다 ‘동족(同族)’이 앞선다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독일인들은 통일 후 가치관이 같지 않으면 형식적・법적・정치적으로 통합을 해도 서로 괴리(乖離)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통감했습니다.
 
  서독 사람들은 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영국 사람들과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만, 동독 사람들과는 아직도 그게 잘 안 된다고 말합니다. 동독 사람들은 통일 전에 서독 사람들이 자동차와 텔레비전을 많이 갖고 있고 해외여행을 자주 한다는 것만 알았지 가치관이 다르다는 건 몰랐다고 합니다.”
 
  ― 왜 그렇게 동서독은 달라진 것입니까.
 
  “독일인들은 바이마르공화국과 히틀러의 제3제국을 거치면서 1945년까지 같은 체제 아래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1948년 이후 동독에서는 독재 체제가 계속된 반면, 서독에서는 미국·영국·프랑스로부터 서구 민주주의를 선물 받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했습니다. 체제의 차이가 이후 동서독의 정치·경제·사회적 차이는 물론 가치관의 차이까지 만들어낸 것이죠. 이를 설명해 주는 것이 동독 출신 정신과 의사 한스-요하힘 마아츠의 ‘감정정체(感情停滯・Der Gefuelsstau)’ 이론입니다.”
 
 
 
感情停滯

 
  ― 감정정체, 그게 뭔가요.
 
  “사회주의를 내건 동독 정권은 개인에게 각종 시혜적(施惠的) 사회보장을 제공하는 한편, 주민들을 체제에 순응시키기 위해 공포와 위협을 사용했습니다. 주민들은 한편으로는 공포와 위협에 순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체제가 제공하는 시혜에 의존하게 됐습니다. 결국 이런 체제하의 인간은 정신적 미성숙 상태에 머무르게 됩니다. 마치 아기가 어머니에게 무조건적으로 의존하듯이 국가에 대한 의존성이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의식과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도전정신을 전혀 키우지 않게 된 것이죠. 마아츠는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권위주의적 천진난만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 권위주의적 천진난만함이라….
 
  “여기서 ‘천진난만함’이라는 것은 ‘진실한 자아(自我)에 대해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진정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됩니다.
 
  이러한 정신적 공허를 채우기 위해 사회주의 체제하의 사람들은 자신이 무시받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끊임없이 보거나 남과 비교하면서, 그들로부터 인정과 애정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경우, 불안과 공포를 느낄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유 없는 공격 성향과 또래 집단끼리 뭉치는 내집단 성향, 즉 감정정체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 마아츠의 주장입니다.”
 
  ― 일부 탈북자들의 성향과도 흡사하군요.
 
  “동독보다 훨씬 억압적인 체제인 북한에서 온 탈북자들의 경우는 더 심하겠지요. 특히 북한은 1950~60년대에 동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노동자 단체의 직제와 조직, 심지어 열차의 배차시각과 시간표 인쇄 형식까지 동독의 것을 수입했습니다. 때문에 동독의 사례는 북한의 경우에도 많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박성조 교수는 “옛 동독 지역에서 난민들에 대한 폭력이 독일 내 다른 지역보다 많이,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도 마아츠가 말하는 감정정체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서 “더 심각한 것은 이런 감정정체 현상이 독일인들 사이의 통합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 무슨 말씀인지 짐작이 갑니다.
 
  “동독 사람들은 같은 게르만 민족이라는 동족의식과 자본주의에 편입되기만 하면 서독과 같은 수준의 부(富)를 누릴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자유경쟁 체제에 노출된 동독인들은 게으르고 경쟁력 없는 열등한 인간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면서 동독인들은 자신들을 ‘독일인’이 아니라 ‘서독인(Wessi)’과 구별되는 ‘동독인(Ossi)’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통일 무렵인 1990년에는 동독인의 61%가 자신은 ‘독일인’, 32%가 ‘동독인’이라고 답했지만, 1992년 2월 조사에서는 동독인의 35%만이 ‘독일인’이라고 답했고 65%가 ‘동독인’이라고 답했습니다.”
 
 
  ‘노동자적 국가’ 동독
 
  ― 동독인들이 느끼는 소외의식에는 동정이 가지만, 의타심(依他心), 경쟁 회피, 무책임함 같은 그들의 문제점을 생각하면, 마냥 그들을 동정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국 동독 공산 체제의 잘못이지요. 동독 공산 체제는 ‘노동자·농민의 국가(Arbeiter und Bauerstaat)’라 칭했지만, 동독의 사회학자인 볼프강 엥글러는 ‘노동자적 사회(arbeiterliche Gesellschaft)’라고 했습니다.”
 
  ― ‘노동자적 사회’라는 건 무슨 얘기인가요.
 
  “‘노동자를 위하는 척하는 사회’라는 뜻입니다. 열심히 일해도 상응하는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노동자들은 ‘그저 되는 대로 소극적으로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결국 ‘노동자적 사회’는 마아츠가 말한 것 같은 미성숙한 인간들이 모여 이룬 미성숙한 사회였습니다.”
 
  박성조 교수는 “문제는 이런 미성숙한 사람들이 통일과 함께 갑자기 자유경쟁 체제에 노출되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경제 체제 아래서 낙오된 동독인들은 그 원인을 자신들의 노력과 책임 부족에서 찾지 않고, 서독인들이 동족인 자기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서독인들은 그런 동독인들을 이해하지 못하죠. ”
 
 
 
“메르켈, 동독인들 사이에서 인기 없어”

 
북한의 ‘아리랑’ 공연에 등장한 ‘우리민족끼리’ 구호. 하지만 남과 북은 이미 같은 민족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치관이 달라졌다.
  ― 통일된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지금은 동서독 주민들 간의 괴리감이 조금 나아졌습니까.
 
  “동독인들은 외국인들을 싫어합니다. 여기서 ‘외국인’이라고 할 때는 서독인도 포함됩니다. 동독인이면서 서독인처럼 행세하는 사람들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동독인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없습니다. 동독인 중에는 옛날 동독 시절이 그립다는 사람이 아직도 상당히 많습니다. 통일 후에는 한 20년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했는데, 30년이 가까워져도 그래요.”
 
  ― 젊은 세대는 어떻습니까.
 
  “독일이 통일될 때 대여섯 살이던 사람들이 지금은 삼십 대 중반이 됐습니다. 그 나이의 동독 출신 작가들이 쓴 책을 읽어보면 자신을 동독 사람도 서독 사람도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에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대학 교육을 받은 삼십 대 이상인 사람들 사이에서 ‘제3세대’라고 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통일 독일인’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통합된 유럽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력이 상당히 커지고 있는데, 마음속으로는 서독인들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민족끼리’라는 주술(呪術)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감정적으로 ‘같은 민족끼리’를 앞세워 합리적・이성적인 것은 모두 제쳐버리고 토론 같은 것은 필요 없고 모든 것을 밀어붙이는 식입니다. 그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무슨 기준으로 ‘같은 민족’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피가 같다’고 하는데, 피검사를 언제 해봤나요. 동족·민족이라는 건 역사적 우연의 소산입니다. 쿠르드족을 아나요?”
 
  ― 네. 터키·이란·이라크·시리아 등에 흩어져 사는 불행한 민족이죠.
 
  “쿠르드족이 전부 합치면 3000만명이 넘습니다. 그들이 하나로 모여 독립국가를 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바로 내전(內戰)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의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서로 떨어져 살아온 사람들이니까요.
 
  반면에 유럽에서는 지금 서로 다른 민족과 국가들이 통합을 이루어가고 있잖습니까? 유럽 통합은 민족들의 통합이 아닙니다. 가치관 통합입니다. 합리적·이성적 조건 아래서 경제통합·정치통합을 하는 것은 자유 의지로 서로 같은 가치관을 위해서 뭉치는 것입니다.”
 
  ― 우리 정서상 그런 주장에 대한 비판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많이 있었지만, 상관없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이라고 보기에는 전혀 다른 가치관과 문화,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어와 외모를 빼고 나면, 나머지에선 같은 점이 거의 없습니다. 서로 다른 정체성(正體性)을 갖고 있음에도, 같은 민족이라는 명분이 우리를 묶고 있을 뿐입니다.
 
  재미있는 건, 서구에서는 좌익이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우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거꾸로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북한 低賃 이용은 같은 민족 착취하는 것”
 
박성조 교수는 북한의 저임금을 이용하는 개성공단식의 대북경협에는 반대했다.
  ― 감성 따라 움직이는 건 좌우가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통일대박론’을 주장했었죠.
 
  “‘통일대박론’이 나왔을 때 저는 크게 비판했습니다. 공산국가하고 어떻게 장사를 하고, 거기서 어떻게 대박을 냅니까?
 
  공산국가에서의 무역이란 필요한 것만 계획에 의해 수입하고, 수입에 필요한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필요한 정도로만 수출을 하는 구조입니다. 자유시장경제 체제 아래서의 무역과는 다릅니다. 북한・러시아를 상대로 대박이 된다? 고생하고 돈도 못 받아낼 거라고 신문에 썼습니다.”
 
  ― 문재인 정권은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한 남북관계의 개선이 우리 경제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활로(活路)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과거에 나진·선봉에 두 번 갔다 왔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어요. 영국·독일 등에서 투자한 섬유·잡화(기념품) 공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 숙련 노동자는 비교적 적습니다. 때문에 기대하는 만큼의 효과를 내기 어려워요. 개성공단도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한국의 자본과 북한의 값싼 노동력이 결합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임금이 싸니까 북한에 가서 노동집약적인 산업을 하자는 주장에 반대합니다. 그것은 임금이 싸다는 것을 이용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같은 민족을 착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노동집약적 산업을 하자는 것은 남북 간 기술격차, 숙련격차, 경제격차를 더 벌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래지향적인 것을 해야 합니다. 예컨대 금강산 같은 곳에 공동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공장이나 연구소를 만드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소프트웨어나 애니메이션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 북한에 3000조원 가치의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하자원, 특히 희토류(稀土類)는 대부분 99년 계약으로 중국에 개발권이 넘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정부는 남북철도 연결을 열심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철도 연결은 기본적으로는 괜찮지만, 무엇을 운송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밑에서부터의 변화 추구해야
 
  ―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대북경협 방안 중에서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 있던가요.
 
  “글쎄요. 남북이 갈라져 있는 상태에서 서로 협력하면서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는 건 대찬성입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대대적인 지원을 해주는 방식이 적절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독일 등 유럽 NGO들이 북한에서 해온 방식이 바람직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건 어떤 방식입니까.
 
  “한스자이델재단, 카프아나무어, 카리타스, CfC 등 독일 및 유럽 NGO들은 지난 15년 동안 함경북도나 평안북도의 농촌에 들어가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조림(造林), 습지, 태양에너지와 바이오가스 생산 및 기술 전수, 종자(種子) 개량 등의 환경사업과 함께 농촌개발 활동, 일종의 새마을운동을 한 것이죠.
 
  진정으로 통일을 생각하면서 북한과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면, 그런 방향으로 해야 합니다. 그걸 통해 북한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방향으로 일해야지요.”
 
  ― 우리나라에서도 평양과학기술대를 만들거나, 북한 옥수수 개량 등을 하는 분들이 있죠.
 
  “북한 엘리트의 자식들이 와서 돈도 안 내고 공부하는 평양과기대 같은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농촌사회에 들어가 밑에서부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여럿이 힘을 모아서 해야지, 자기 한 사람의 이름을 내려고 하는 식은 곤란합니다.”
 
 
  통일의 조건
 
  ― 지금 정부는 그렇게 밑에서부터의 진정한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정치적 필요에 의한 이벤트성 통일정책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연방제’ 같은….
 
  “오래된 말이지만 ‘외교정책은 국내 정책의 거울’이라고 하는 말이 있지요. 하지만 연방제 같은 것은 점차적으로 하는 것이지 갑자기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연방제를 하면, 잘사는 지역이 가난한 지역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독일에서는 통일 후 ‘연대(連帶)계약’에 따라 매년 수십조 원의 돈을 보냈지만, 아직도 옛 동독 지역 주(州)들 가운데 자립(自立)할 수 있는 곳은 하나도 없어요. 2019년이 ‘연대계약’이 종료되는 해인데, 이를 계속해야 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있습니다.”
 
  ― 동독 지역에 대한 지원이 그렇게 효과가 없었나요.
 
  “경제적으로 성공한 프로젝트가 별로 없어요. BMW나 GM자동차 공장이 있는 정도인데, 그것도 세금이 싸고 보조금을 주니까 들어간 겁니다. 동독 사람 스스로가 무엇인가 해서 성공한 사례는 없어요.”
 
  ― 독일 사람들은 통일 이후 30년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반반입니다. 좋다는 사람,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 하는 사람… 베를린 사람들 중에서는 통일 후 호수가 많은 북쪽에서 레크리에이션할 수 있게 되어서 좋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통일에 대해 ‘정말 좋다’ ‘통일을 해서 훌륭한 나라가 됐다’고 얘기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통일이 안 되고, 통일하는 데 들어간 돈을 서독에 투자했다면 아마 지금쯤 경제적으로는 미국에 버금가는 나라가 됐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독일의 통일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죽어도 자유를 버릴 수 없다는 원칙입니다. ‘민족’이라는 깃발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뭉쳐야 합니다. 둘째는 가치관을 같이하는 서방, 특히 미국과의 협력입니다. 셋째는 북한을 도울 수 있는 경제적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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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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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mginchi    (2018-12-28) 찬성 : 4   반대 : 2
석학의 명쾌한 논리와 견해에 적극 동의합니다.
  아이구야    (2018-12-28) 찬성 : 0   반대 : 7
말은 바로하자..조선 너네가 소통을 말하니 우낀다야
  whatcha    (2018-12-27) 찬성 : 4   반대 : 1
이 작자의 똥고집에 무슨 소통이노? 빨갱이의 똥고집은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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