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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戰後 70年

동맹과 이념 - 이상우 신아시아연구소 이사장

“자유민주주의 정체성 유지한 것이 한미동맹 성공 요인”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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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동맹에 이념적 상응성, 전략적 가치, 경제적 가치, 自生力 요구… 한국, 이 기준에 맞추려 노력”
⊙ “한국이 성공한 것은 ▲강력한 리더십 ▲불편을 참고 협조해준 국민들 ▲기초 역량 구축 덕분”
⊙ “윤석열, 외교·안보 정책 잘하고 있다”
⊙ “중국에 대해 원칙 분명히 하면서, 능동적 억제력 갖춰야”
사진=조선DB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포화(砲火)는 멈추었지만,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했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과 한국 국민들은 3년여 동안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을 원통하게 생각했다. 이 대통령은 휴전협정에 서명하기를 거부했고, 걸핏하면 ‘북진(北進) 통일’을 외쳤다. 휴전협정에 서명한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승리하지 못한 전쟁의 사령관이 됐다”고 한탄했다.
 
  휴전은 글자 그대로 전쟁을 잠시 멈춘다는 의미다. 전쟁을 종결짓기 위해서는 정치적 협상을 거쳐 전쟁의 종식을 선언하는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 일반적이다. 1954년 한국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제네바 정치회담이 열렸지만 성과 없이 끝났다.
 
 
  70년간의 평화, 지정학적 화약고
 
  이후 불안한 평화가 70년간 이어졌다. 한반도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지정학적(地政學的) 화약고였다. 실제로 전쟁에 가까이 갔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불안한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곧잘 나왔다. 문재인 정권은 평화협정이나 종전(終戰)협정이 아니면 종전선언이라도 하자고 안달했다.
 
  하지만 ‘역사의 간지(奸智)’라고 할까?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것으로만 여겨졌던 휴전체제하에서 한반도는 지난 70년간 전쟁 없이 지냈다. 휴전협정은 어떤 평화협정보다도 더 잘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왔다.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된 지 3년 만에 남베트남이 공산화되어버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서 전후(戰後) 70년간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까? 미·소(美蘇) 냉전은 끝났지만 미·중(美中) 신냉전이 시작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지난 70년간의 성취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이상우(李相禹·85) 신아시아연구소 이사장을 만났다. 이상우 이사장은 박정희(朴正熙) 정권 시절 이래 역대 보수(保守) 정권의 외교·안보·국방 정책 자문(諮問)에 응해 온 국제정치학계의 원로다. 서강대 교수, 한림대 총장 등을 지냈다.
 
  특히 2010년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 이후에는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국방선진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가안보체제 개혁을 추진했다. 1993년 싱크탱크인 신아세아질서연구회(2006년 신아시아연구소로 법인명 개칭)를 설립, 소장 및 이사장으로 일해 왔다.
 
 
  동맹의 조건
 
  ― 먼저 전후 70년의 의미를 간단하게 말씀해주십시오.
 
  “대한민국은 폐허 속의 가난에서 일어나 이제는 세계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10개 나라 중 하나로까지 올라섰다,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민주공화국을 만들어서 유지해 왔다,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 휴전협정 당시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너무 잘 기억하고 있지요. 그때 내가 14세 때였는데, 휴전 반대 데모를 참 열심히 했거든요.”
 
  ― 당시 휴전 반대 데모는 좀 관제(官製) 데모적 성격이 강하지 않았나요.
 
  “물론 정부도 반대했지만, 국민들도 반대했어요.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렀는데 다시 원점(原點)으로 돌아가는 것은 억울하다, 이번에 기필코 통일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이 당시 분위기였어요.”
 
  ― 파리평화협정까지 체결했지만 결국 패망해버린 남베트남과는 달리, 대한민국이 휴전협정만으로도 안보를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이 미국의 정책 기준에 맞춰서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죠. 특히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체성(正體性)을 유지해 온 것이 중요했습니다.”
 
  ― ‘미국의 정책 기준’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가 동맹, 동맹, 하지만, 미국도 자기들에게 필요해야 동맹을 맺는 것 아니겠어요? 미국이 동맹을 선택하는 데에는 네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 그게 뭡니까.
 
  “첫째는 이념적 상응성(相應性), 둘째는 전략적 가치, 셋째는 경제적 가치, 넷째는 자생력(自生力)입니다.”
 
  ― 한국은 그 네 가지 요건을 갖추었다는 말씀인가요.
 
  “우선 미국은 대한민국을 자신들과 같은 이념을 공유(共有)하는 나라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은 일본을 지키기 위한 대륙의 교두보(橋頭堡)라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도 있었어요. 또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을 유지하는 데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았어요. 휴전협정을 앞두고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 한국군 20개 사단을 무장시켜달라고 했어요. 미국 의회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했는데, 당시 미국 정부는 미군 1개 사단을 무장시킬 돈이면 한국군 20개 사단을 무장시킬 수 있다고 했어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생력입니다.”
 
  ― 자생력이라는 건 주로 경제적·군사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겠죠.
 
  “미국이 아무리 보호해주려 해도 스스로 생존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는 것이죠. 한국은 자생력을 비롯해서 미국이 동맹에 요구하는 네 가지 기준을 맞추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어요.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동맹을 유지할 가치가 있는 나라가 된 것이지요.”
 
  ― 휴전협정이 이런 식으로 장기적인 평화로 연결된 유사한 사례가 역사적으로 있습니까.
 
  “없어요.”
 
 
  한미상호방위조약
 
1953년 8월 8일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미 국무장관 간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가조인되었다. 사진=조선DB
  ― 이런 평화가 가능했던 것은 역시 한미상호방위조약 덕분이겠지요.
 
  “그렇죠. 그런데 상호방위조약 조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한심해요.”
 
  ― 그게 무슨 뜻입니까.
 
  “미군 주둔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제4조인데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許與·허용)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 앞의 제3조를 보면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게 아니에요.”
 
  ― 그렇죠.
 
  “유사시 개입하고 안 하고는 미국 마음이고, 우리는 늘 미국에 매인 처지였어요. 이번에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이 방미(訪美) 시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NCG)을 만들기로 한 것은 그런 점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간 것이죠.”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 직후부터 미국에 대해 상호방위조약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미국 건국 이래 어느 나라하고도 양자(兩者) 간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적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이를 거부했다. 결국 휴전협정 체결을 앞두고 이승만 대통령은 ‘벼랑 끝 외교’ 끝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냈다.
 
  ―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이전에 양자 간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적이 없다는 게 사실입니까.
 
  “없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가 결정한 전쟁에 미국이 끌려들어 가지는 않겠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자동 개입 조항을 넣지 않은 것이지만, 결국은 그와 다를 바 없게 되었지요. 미군이 3만6000명이 와 있고, 휴전선 앞에 배치되어 있으니 전쟁이 나면 미군이 자동적으로 피해를 입으니까….”
 
  ― 미군이 평택으로 옮겨간 이상 그런 ‘인계철선’ 효과는 굉장히 약해진 것 아닙니까.
 
  “옛날 지상전을 생각하면 인계철선이 의미가 있지만, 이제는 전쟁 개념이 확 달라졌어요. 입체전(立體戰)의 시대입니다. 병력의 전방(前方) 추진이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졌어요.”
 
 
 
‘우크라이나의 한국화’

 
  휴전협정이 장기 평화로 이어진 한반도의 사례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법(解法)으로 거론되고 있다. 현 상태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휴전협정을 체결하고 우선 전쟁을 끝내 놓으면, ‘장기 휴전’이 ‘장기 평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 미국이나 유럽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는 ‘우크라이나의 한국화’가 가능할까요.
 
  “미국은 직접 참전하지는 않으면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주는 방식으로 러시아가 지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견딜 수 없을 만큼 지치게 되면 그때는 러시아도 휴전을 할 수밖에 없겠죠. 물론 푸틴은 자기네가 점령한 곳은 차지하려고 할 것이고, 우크라이나는 그것을 양보하지 않으면서 옥신각신하겠지요.”
 
  ― 한미상호방위조약 같은 안전 보장 없이 우크라이나가 휴전에 응하겠습니까.
 
  “우크라이나를 나토(NATO)에 가입시키면 별도의 상호방위조약은 필요가 없죠.”
 
  ― 당초 푸틴이 전쟁을 일으킨 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결국 체면의 문제고, 러시아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인데, 러시아가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다고는 보지 않아요. 너무 피해가 크거든요. 국민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있고….”
 
  ― 러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들은 인명 손실이나 경제적 피해에 대한 감수성이 우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내치(內治)에서의 어려움은 피할 수 없어요. 자기 아이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사람들이 푸틴을 지지할까요? 푸틴의 인기가 떨어지면 그걸 이용해서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가 나오지 않겠어요? 러시아도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이 되었기 때문에 스탈린 시절과는 달리 국민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요.”
 
  ― 휴전협정으로는 한반도 평화를 담보할 수 없으니, 북한과 평화협정이나 종전협정을 맺거나, 종전선언을 통해 전쟁 상태의 종식을 선언해야 한다는 좌파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건 결국 미군 나가라는 얘기입니다. 전쟁 상태가 끝났다고 하면 미군이 계속 주둔할 명분이 없어지니까. 한번 미군이 나가면 제2의 6·25가 일어나더라도 미군의 개입을 보장할 수 없어요.”
 
 
  대한민국의 성취를 가능케 한 3가지 요인
 
1976년 5월 31일 포항제철소 제2 용광로 화입식에서 직접 불을 댕기는 박정희 대통령.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은 어려웠던 시절에도 미래를 위한 기초 역량 구축에 노력했다. 사진=조선DB
  ― 전후 70년 동안 대한민국이 많은 성취를 이루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요인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세 가지를 꼽고 싶어요. 첫 번째는 강력한 지도력입니다.”
 
  ― 강력한 지도력이라고 하면?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을 말하는 것이죠. 두 분의 리더십은 ‘목적을 밝힌 전제(專制)’였어요.”
 
  ― ‘목적을 밝힌 전제’요?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리더십》이라는 책에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리더십을 두고 한 말이에요. 사실 리콴유는 독재자였어요. 하지만 당시 싱가포르의 상황은 그런 통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었어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것이라는 점에서 ‘목적을 밝힌 전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죠.”
 
  ― 두 번째 요인은 무엇입니까.
 
  “불편을 참고 협조해준 국민들입니다.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는데 그걸 다 견뎌냈잖아요? 잡곡밥 먹어라, 막걸리도 만들지 마라, 하는 걸 국민들이 다 참아줬잖아요?”
 
  ― 세 번째 요인은요.
 
  “그 어려운 시절에도 길게 보고 기초 역량을 구축(構築)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포항제철·원자력 발전소·고속도로 건설, 전전자교환기(TDX) 도입 같은 것들을 들 수 있겠지요.
 
  큰 틀에서 이런 걸 기획한 것도 대단하고, 이런 걸 하기 위해 참아달라고 할 때 참아준 국민들도 대단하고, ‘목적을 가진 전제’를 하면서 그걸 잘 통제한 리더십도 대단합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4·19는 민주화 투쟁이 아니었다”

 
  ― 이승만 대통령을 4·19로 몰아내고, 이후에도 계속 민주화 투쟁이다 뭐다 하면서 맨날 데모를 한 것을 보면,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잘 참아준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내가 4·19 과정에 깊이 관여했고, 4·19 당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사회를 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 있게 얘기하는데, 사실 4·19는 민주화 투쟁이 아니었어요.”
 
  ― 4·19가 민주화 투쟁이 아니었다고요?
 
  “4·19 후에 《사상계(思想界)》에서 대담할 때 내가 학생 대표로 참석했는데, 그때 가장 많이 나온 얘기는 ‘케말 파샤’ ‘선의(善意)의 독재’ 이런 거였어요. ‘민주’란 말은 하나도 안 나왔어요. ‘우리도 정신 차려서 잘사는 나라로 나아가야 하는데, 부정선거나 하고 이게 뭐냐’면서 일어난 게 4·19였어요.”
 
  ― 근대화와 민주화 중에서 근대화 쪽에 방점(傍點)이 있었다는 뜻이군요.
 
  “‘지금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는데,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군(軍)에서도 똑같은 걸 느끼고 있었던 겁니다. 학생이나 군인이나 모두 같은 젊은이들이었으니까.”
 
  ― 그게 5·16이군요.
 
  “지금은 4·19로 나온 민주주의의 싹을 5·16이 군홧발로 짓밟았다고 되어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자기 배를 불리자고 나온 게 아니잖아요?”
 
 
  “김영삼 이후 북한의 정치전 방치”
 
  ― 오늘날 좌파 세력이 드러내놓고 행세하고 있는 걸 보면, 대한민국은 전후 70년 동안 이룩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념 전쟁에서는 밀리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입니다.
 
  “우리가 이념 전쟁에서 밀렸다기보다는 북한의 정치전(政治戰)을 방치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경제 발전을 하면서 빈부(貧富) 격차가 생기고,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잖아요? 여기에 불을 지르면서 저쪽에서 공작이 들어오면, 지하조직이 되는 것이죠. 전에는 그래도 정보기관에서 대처를 했는데, 김영삼 정권 이후에는 거의 손을 놓았어요. 특히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너무 마음을 놓았어요.”
 
  ― 이제는 거의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80%는 넘어간 것 같아요. 전교조, 민노총, 언론… 윤석열 대통령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막연한 대처로는 바로잡기 어려워요.”
 

  ― 이번에 튀르키예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한 것을 보면,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한번 궤도를 이탈하면 바로잡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비자유민주주의(非自由民主主義·illiberal democracy)’로 전락할 우려는 없을까요.
 
  “너무 희망적인 건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비자유민주주의 독재자의 출현 가능성은 아직은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이 자기 할 일에 바빠서 그저 잘 되겠거니 생각하면서 관심을 덜 두어서 그렇지, 급해지면 제정신을 차릴 겁니다. 다만 정부가 중국과 북한의 대남(對南)전략을 좀 제거해줄 필요는 있어요. 특히 전교조가 문제고, 학교 교육부터 고쳐야 합니다.”
 
  ― 포퓰리즘을 내세운 비자유민주주의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것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들도 별로 다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역설인데,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정치 같은 걸 안 하려고 해요. 정치 말고도 얼마든지 좋은 일이 많으니까. 그러다 보니 저질들이 정치를 하게 되는 거죠. 일반 국민들은 세상이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케어(care)할 생각을 않고….”
 
 
  “윤석열, 외교·안보 잘하고 있다”
 
이상우 이사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관계 복원 노력 등을 높이 평가했다. 사진=대통령실
  ― 평생 외교·안보 문제를 연구해 온 입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을 어떻게 봅니까.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싶어요. 다른 정책들은 불만이 있지만, 외교·안보만큼은 마음을 놓았어요. 특히 지난 3월 일본에 가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에요. 4월에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나서도 아주 잘했고, 5월에 히로시마 G7 정상회담에 간 것도 다 잘했어요. 미·중 냉전이 시작되고 있는데, 윤 대통령이 우리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확실하게 밝힌 것은 잘한 일입니다.”
 
  ― 그러자 중국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을 한·미·일 동맹의 약한 고리로 보고 때리는 것 같은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우리의 주체성을 유지하고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 쌍방의 이익을 고려한 제한적 협력을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감수해야죠. 그와 함께 중국에 대한 능동적 억제력(proactive deterrence)을 갖춰야 합니다.”
 
  ― 능동적 억제력이라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중국이 우리가 약하다고 생각하니 자꾸 짓밟으려고 들잖아요? 우리가 중국과 맞대응할 능력을 갖출 수는 없겠지만, ‘너희가 우리를 건드리면 우리는 죽을지 몰라도 곱게는 안 죽겠다’면서 결정적 타격을 안겨줄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고슴도치 전략이죠.”
 
  ― 중국이 수년 내로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봅니다. 과거 여러 차례 대만에 가 보았는데, 대만군의 능력이나 의지도 만만치 않아요. 중국도 다른 방법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몰라도 핵무기를 쓰지 않는 한 군사적으로 대만을 공격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봐요.”
 
 
  “리콴유 같은 강력한 지도자 필요”
 
  ― 전후 70년간의 성취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중국·북한과의 정치전에서 나라를 지키려면 싱가포르의 리콴유처럼 바른 목적을 가진 강력한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자존, 수기(修己), 위공(爲公), 순리(順理), 사랑의 덕목을 가진 지도자, 다음 세대의 지도자를 길러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 그런 지도자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같은 정치 시스템으로는 어렵겠지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요구하지만,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사람과 인민공화국을 만들겠다는 사람 간에 어떻게 타협이 가능하겠습니까. 후자(後者)와 같은 사람들을 걸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 그게 가능할까요.
 
  “민주주의를 제대로 유지하려면 ‘깬 시민’이 국민의 절반은 넘어야 합니다. 그게 안 되는 여건에서는 정치인의 자격을 엄격하게 검토해서 선발한 유능한 후보를 내세워 국민들이 투표하게 해야 합니다. 흔히 ‘상향식(上向式) 공천’을 얘기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오히려 ‘하향식(下向式) 공천’이 필요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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