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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한반도

시진핑이 김정은을 중국으로 부른 까닭은?

시진핑, 김정은에게 ‘체제 보장’ 전제로 한 비핵화 요구했을 듯

글 :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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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이 북한과 손잡고 미국에 맞서기 위해 김정은 불렀다는 주장 등은 납득하기 어려워
⊙ 국경 접한 중국과 북한은 기본적으로 우호적이기 어려워… 중국이 북한 우대하는 건 ‘번견(番犬)’이기 때문
⊙ 덩샤오핑, 1990년 김일성 초청해 비핵화 설득, … “북한은 핵개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 핵을 개발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확답 받아내

이춘근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저술
김정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3월 25~28일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사진=뉴시스.
  지난 3월 5일 북한을 방문했던 대한민국 특사단에게 김정은은 놀라운 사항 몇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북한은 비핵화(非核化)할 것이다. 선대(先代)의 유훈(遺訓)이 그것이다. 둘째, 대한민국을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로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 넷째, 미국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 다섯째. 한미연합 훈련을 이해할 수 있다. 이 같은 말은 물론 김정은이 공식 문건으로 작성해 준 것이 아니고, 또한 이것들이 정확한 언급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김정은의 음성이 녹음되어 있지도 않다.
 
  김정은이 했다는 놀라운 언급들은 대한민국의 특사단이 김정은의 말을 듣고 전해 준 것이다. 한국 정부는 특사단을 미국에 파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시 김정은의 말을 전해 주었다. 한국 특사의 말을 듣던 중 트럼프는 김정은이 그렇게 말했다면 자신도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하며, 한국 특사들에게 자신(트럼프)도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발표하라고 말했다. 한국 대표들은 백악관 건물 앞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에 대해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5월까지(by May) 김정은을 만나겠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북한 정권이 수립된 이래 북한 정부가 최악의 원수라고 비난해 왔던 미국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는 소식은 가히 세기의 뉴스거리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의 지위를 물려받은 후 단 한 번도 국경을 넘어 나가 본 적이 없는 김정은이 미국 대통령을 만나겠다니 확실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4월 말로 예정된 한국 대통령과의 회담, 그리고 5월 중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계획대로 열리게 된다면 이는 결과 여하와 관계없이 한반도 분쟁사의 변곡점(變曲點)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미국은 아직 비관적인 입장이지만 한국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평화’로 그 모드가 바뀌었다. 북한의 핵은 대화로 해결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또 다시 김정은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번에는 시진핑(習近平)도 등장했다. 3월 25~28일 베이징(北京)에서 김정은과 시진핑의 비밀스런 회동이 있었던 것이다. 중국은 김정은 방문 마지막 날인 3월 28일 시진핑의 초청으로 김정은이 베이징을 비공식 방문했다는 사실을 증거 자료들과 함께 공개했다.
 
  결국 김정은이 국경을 넘어 외국으로 나간 첫 번째 사건은 트럼프를 만난 것이 아니라 시진핑을 만난 것으로 귀결되었다. 방문 사실이 공개되기 이전까지 모든 것이 비밀이었다. 일본 언론들이 김정은의 특별열차가 중국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는 보도를 한 후인 3월 27일, 청와대는 그 열차에 김정은이 타고 있지는 않으며 아마도 김여정, 김영철 등이 타고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김정은의 방중(訪中)이 비밀리에 이루어졌고, 발표문 역시 애매모호한 일반적인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김정은이 중국에 가서 무슨 말을 했고 시진핑이 김정은에게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북한과 중국의 외교문서가 비밀해제될 때에나, 즉 앞으로 수십 년 이후에나 알 수 있는 일이다.
 
  김정은의 비밀스런 중국 방문의 자초지종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시진핑과 김정은 단 두 명뿐일 것이다. 아마도 미국은 국가의 정보수집 기술(National Technical Means)을 총동원, 진실에 상당히 근접한 내용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트럼프의 트윗에 의하면 회담 후, 시 주석은 트럼프에게 김정은의 방중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다고 하는데, 같은 수준의 메시지를 한국에도 보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3월 27일 청와대 발표-특별열차에 김정은이 타고 있지 않다는 것-가 사실이라면 한국은 북한과 중국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한국의 언론, 논평가들은 김정은의 방중에 관한 상상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다 제시했다. 정보가 없으니 상상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애통하다. 이 글 역시 김정은의 방중을 상상해 보는 작업의 하나다.
 
 
  중국이 북한과 손잡고 미국에 맞선다?
 
중국 방문 중 김정은 부부는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 투숙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사진=뉴시스
  어떤 국제정치적인 사건이라도 그 이유가 있다. 김정은이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한 데에도 당연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중국이 김정은의 비공식 방문을 요청했다고 발표했고, 김정은이 즉각적으로 수락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방중 초청을 수락함으로써 시진핑과의 회담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주동자는 중국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면 시진핑은 김정은을 왜 초청했을까?
 
  상상 가능한 시나리오들이 이미 다 나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기서 반복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미 제기된 김정은의 방중에 관한 설명을 정리하고 평가할 필요는 있다. 설득력이 있는 설명과 그렇지 않은 설명들이 혼란스럽게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방중 이유로 제시된 바들을 크게 분류하면, 첫째는 김정은이 절망스런 상황을 타개하는 방책으로 중국에 무엇인가를 부탁하고 의존하기 위한 방문이라는 주장, 둘째는 중국은 미국의 경제 압박과 북한은 미국의 제재 압박 등 모두 어려운 상황에 처해져 있기 때문에 중국과 북한이 힘을 합쳐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회동이라는 주장, 셋째는 중국이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 등으로 인해 자신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주도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모임이라는 주장 등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이 세 가지 모두가 국제정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근거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먼저 김정은이 중국에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 갔다는 주장은 이번 회동이 시진핑의 요청해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중국 측 발표와 상치된다.
 
  둘째, 북한과 중국이 힘을 합쳐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아니다. 3월 8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미국은 최대의 선진국, 중국은 최대의 개발도상국” “중국은 자신을 현대화하는데도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미국과의 경제전쟁을 코앞에 두고 있으며, 지난 수년간 경제침체로 고생하고 있는 중국이 북한과 힘을 합쳐 미국에 대적하려는 것이라는 두 번째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중국이 러시아와 힘을 합쳐 미국에 대항한다면 몰라도 북한과 힘을 합쳐 미국에 대항한다는 것은 국제 권력정치(Power Politics) 현실에 근거한 설명이 될 수 없다.
 
  셋째 이유, 즉 중국이 북핵문제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미국의 언론들도 말하고 있는 것인데 역시 설득력이 약하다. 국가들은 가급적이면 골치 아픈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더 많다. 미국이 북한을 폭격할 가능성조차 말해지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과 힘을 합친다는 것은 미국과 전쟁을 각오하는 일이 될 수도 있는데 중국이 그런 결심을 했다고 보기 힘들다.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본질은 안정과 현상유지였다. 중국이 소외감을 해소시키고자 했다면 북한을 통하는 길보다 미국을 통하는 길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되어 온 북·중(北中) 외교사에 근거해서 기왕에 별로 제시되지 못한 설명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북한은 중국의 번견(番犬)”
 
  중국은 김정은의 방중이 비밀, 비공식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공식 방문 시보다 훨씬 급이 높은 대접을 해 주었다. 언론들은 작년 11월 트럼프의 방중과 맞먹는 예우를 해 주었다고 평가했다. 중국이 북한의 국가원수를 최고로 대해 준 것은 북·중 외교사를 읽어 보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역대 중국 정부가 김일성,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마다 베풀어 준 의전(儀典)은 결코 소련의 국가원수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보다 못하지 않은 것이었다.
 
  중국이 북한을 그렇게 잘 대접한 것은 물론 북한이 소련만큼 강한 나라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솔직히 중국은 북한을 가장 골치 아픈 나라로 보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최대의 외교적인 ‘골칫덩어리’는 북한이었다. 그래서 그 골칫덩어리가 사고를 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은 북한의 지도자를 최대한 융숭하게 대접했다.
 
  위계적(位階的) 국제질서에 충실한 중국이 아랫것이라고 비하하던 북한의 지도자들을 그렇게 융숭하게 대해 준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중국의 지도자들의 대북한관(對北韓觀) 중 번견론(番犬論) 이라는 게 있다. 중국은 강대국 미국과 맞장을 떠야 하는데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북한이 중국을 대신해서 미국을 향해 짖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즉 개가 집주인을 대신해 짖어 주니 주인은 개에게 밥을 준다는 논리다.
 
  중국은 물론 북한의 수뇌를 극진하게 대접해 줌으로써 북한을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가지고 놀았다. 1인 지배 국가의 통치자들인 김일성, 김정일을 극진히 대해 주면 김일성, 김정일은 중국에 충성을 바칠 것이다. 대신 중국으로부터 최상급 예우를 받은 김일성,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에게 자신의 국제적 위상을 과시,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중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은 그렇게 상대를 이용해 왔다. 적어도 이 같은 관계는 중국이 한국과 수교한 후, 그리고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북한이 말하는 수정주의라고 비난당하기 이전까지 지속되었다.
 
  1993년 8월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이후부터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특히 김정은 시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중국과 북한은 거의 적대국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었다. 특히 2012년 12월 김정은의 은하 3호 미사일 발사는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김정은의 미사일 발사에 분노하는 중국을 본 오바마도 놀랐다고 할 정도였다.
 
 
  김정은, “중국은 천년 숙적, 일본은 100년 숙적”
 
6·25 전쟁 중 김일성(오른쪽)과 펑더화이(왼쪽)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은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북·중 관계가 적대적이 되는 것은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 보았을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국경을 길게 접하고 있는 나라들이 진정한 우방이 되는 법은 본시 없기 때문이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의 법칙은 만고불변의 국제전략적 철칙이다. 김정은의 북한이 보인 중국과의 관계는 지정학적 원칙의 부활이었을 뿐이다. 1300km에 이르는 긴 국경을 공유하고 있는 중국과 북한은 애초부터 진정한 우호국가가 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2015년 9월 3일 중국이 전승절 기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벌일 때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갔지만 북한은 서열 3위인 최룡해가 파견되었다. 그때 김정은은 최룡해에게 “중국 놈들에게 역사가 변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 주라”고 말했다 할 정도로 김정은 시대의 북·중 관계는 적대적이었다. 일본의 곤도 다이스케 기자는 《시진핑은 왜 김정은을 죽이려는가: 시진핑의 숨겨진 야망과 북·중 관계의 진실》이라는 책까지 저술할 정도였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나라들은 국경을 접하고 있을 경우라도 임시로 뭉칠 수는 있다. 6·25 당시 북한과 중국은 피를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둘 다 죽을지도 모를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차후 북한의 역사책들은 김일성을 너무나도 우상화시킨 나머지 한국전쟁 당시 중국의 지원이 아예 없던 일처럼 기술(記述)했을 정도다. 절세의 명장 김일성이 누구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지켰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참전 중 중국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김일성의 뺨을 후려갈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정은은 “중국은 천년 숙적, 일본은 100년 숙적”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북한의 역사가들은 중국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이 중국 인민지원군을 총지휘했다는 거짓말을 천연스럽게 함으로써 중국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김정은과 시진핑이 만났다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으르렁거리던 중국과 북한이 같이 ‘뭉쳐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북한과 힘을 합쳐 얻을 게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황제와 같은 권력을 차지하게 된 시진핑이 트럼프에 의해 ‘미친 것이 확실한 인간’으로 낙인 찍힌 김정은과 ‘함께’하는 것이 중국이 당면한 미국과의 경제전쟁이라는 큰 난국을 해소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김일성, 덩샤오핑에게 “핵개발 안 한다” 약속

 
1980년대 후반 덩샤오핑은 김일성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비핵화를 설득했다. 사진은 1987년 김일성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
  필자는 시진핑이 김정은을 중국으로 부른 것은 김일성 말년인 1990년 무렵 덩샤오핑(鄧小平)이 김일성을 베이징으로 불러 비핵화를 강요했던 일의 재판(再版) 같다는 느낌이 든다.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 덩샤오핑은 중국의 발전을 위해 미국과 잘지내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때 덩샤오핑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중국은 미국이 이 지역에서 갖고 있는 전략적 기득권(旣得權)을 존중한다고 분명히 했다. 덩샤오핑은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인 영향권을 갖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중국은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을 인정하는 대신 미군이 보유한 전술핵만큼은 중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제기했다. 이런 중국의 문제가 한반도 비핵화 정책의 시작이었다.
 
  미국 역시 중국이 느끼는 이런 위협을 현실로 인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당시 북한의 핵개발 노력을 한반도 비핵화의 가장 큰 장애 요소로 보았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중국이 막아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덩샤오핑은 김일성을 중국에 초청, 무려 12일에 걸쳐 집요하게 설득했고 최종적으로 김일성으로부터 “북한은 핵개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 핵을 개발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확답을 받았다.
 
  중국으로부터 북한 핵개발 방지 보장을 얻어 낸 미국은 전 세계에 널리 전개되어 있던 전술 핵폭탄들을 미국 본토로 철수시킬 수 있었고, 한국에 배치되었던 핵도 철수할 수 있었다. 이에 노태우 대통령은 1991년 12월 18일 “이 시각 우리나라의 어디에도 단 하나의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한국은 핵을 개발, 보유, 반입 저장하지 않는다는 소위 비핵화 선언도 했던 것이다. 1991년 12월 말 남북한은 〈한반도비핵화선언〉 혹은 〈남북한기본합의서〉에 합의하게 된다. 김일성이 덩샤오핑에게 말했다는 “북한은 핵개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 핵을 개발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언급은 오늘날 김정은이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 운운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2017년 3월부터 7월 하순까지 4~5개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다그쳤다. 트럼프의 중국에 대한 닦달은 미국은 대한민국으로부터 핵무기를 철수함으로써 중국의 요구를 들어 주었는데 중국은 왜 북한에 대한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트럼프는 작년 7월 28일 “중국은 말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아서 대단히 실망했다”는 트위터를 날린 후 북한 문제를 미국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북한을 거의 말려 죽일 정도까지 압박을 가했다. 이번 비밀회동은 김정은 정권과 북한의 파멸을 우려하는 시진핑이 “너를 살려줄 방법을 강구해 볼 터이니 핵을 포기하라”고 설득 및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김정은의 딜레마
 
  시진핑이 지원을 해 준다고 해도 핵을 포기하고 난 후에 김정은이 권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치 전갈과도 같은 김정은 정권이 독(毒), 즉 핵무기를 제거한 후에도 전갈로 남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은 그것뿐 아닌가? 김정은은 선대가 야기한 핵개발과 이로 인한 위기를 가부간 마무리지어야 할 피곤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이 미국에 도달하는 상황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지만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없는 북한의 핵은 전략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북한이 야기하는 핵문제는 타협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결국 김정은의 선택지는, 첫째 강제로 비핵화를 당하는 것, 둘째 스스로 비핵화를 결단하고, 그 대가로 비록 극히 위험하기는 하지만, 중국의 지원을 통해 정권의 생존이나마 보장받는 것 중 하나다. 시진핑은 김정은에게 위의 두 가지 중 후자가 더 좋은 것이라고 설득하기 위해 김정은을 베이징에 부른 것이 아닐까?
 
  2018년 3월 하순 베이징에서 있었던 김정은·시진핑의 회동은 1990년 무렵, 북·중 외교사에서 나타났던 김일성·덩샤오핑 사이에 있었던 핵협상의 재판(再版)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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