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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水爆 실험 그 이후

중국이 보는 北核

북한의 생존이 중국 북핵정책의 제1목표

글 : 마중가  중국문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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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학적으로 북한은 중국의 동대문…, 한반도에는 필연적으로 미·일·한(美日韓)을 한쪽, 북한·중국을 한쪽으로 하는 새로운 냉전구도 형성될 것”(장롄구이(張璉瑰) 중공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 교수)
⊙ “손톱과 이빨이 없어진 두루뭉술한 제재안으로… 이것이 북한 제재안에 대한 정책”(리바오둥(李保東) 유엔 주재 중국 대표)
⊙ 중국, 핵무기가 있는 북한이 중국 편이 되기를 희망

마중가
1940년 중국 창춘 출생. 중국 지린(吉林)대학 물리학부 졸업, 중국 광저우 지난(旣南)대 역사학 박사 / 중국 하얼빈 공대·중국 칭다오(靑島)대 교수, 대만 정치대·보광(佛光)대·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방문교수, 미국 UC 버클리대 연구교수, 한림대 교수 역임 / 저서 《마중가의 중국》 《중국인과 한국인》 《산동화교 100년》(중문) 《중국원문 칼럼선집》(중문) 《한반도 통일시나리오》(공저) 저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한 중공군 고위 장령(將領·장성)은 자기의 회고록에 김일성이 1953년 휴전 후 한 차례의 회의에서 “조선은 작은 나라지만 다른 나라가 갖고 있는 무기를 우리도 다 가져야 하며 그중에는 원자폭탄도 포함된다”라고 말했다고 썼다. 그리하여 김일성이 핵무기를 소유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중국 고위층 내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1956년 2월 북한은 수백명의 유학생을 소련에 파견하여 핵(核)기술을 배우게 하였고 1959년 9월에는 소련이 북한에 소형원자로를 제공하는 데 동의하였다.
 
  1960년 공산 진영이 분열하기 시작하였고 그 중심에는 중국과 소련의 논전(論戰)이 있었다. 1965년 5월 김일성과 브레즈네프는 극비리에 소련의 항공모함에서 북한 핵무기 발전에 관한 협상을 가졌다. 1965년 10월 김일성은 북한군 고위 간부회의에서 “얼마 안 가 우리는 핵무기를 갖게 된다”고 공언했으며 1967년에는 “지금 우리는 원자탄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1970년 북한 부수상 박성철은 “1972년이 되면 우리는 핵무기 제조에 성공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중국의 대북 환상
 
  1974년, 10년 동안의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단절되었던 북중(北中)관계가 수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8년부터 중국은 개혁개방을 시작하여 대(對)북한 무상 원조는 거의 사라졌다. 1991년 구(舊)소련은 한국과 수교했고, 얼마 후 해체됐다. 1992년에 한중(韓中)수교도 이루어졌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냉전구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이때까지 북핵문제는 국제적인 안보문제로의 가치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도 방관자의 역할에 안주하고 있었다. 이 기간을 중국인들은 대북핵 암묵기(對北核 暗默期)라고 표현하고 있다.
 
  개혁개방 초기인 1980년대에 중국의 대외(對外)정책은 덩샤오핑(鄧小平)의 28자(字) 방침을 좇는 것이었다. 북핵문제를 포함한 여러 국제 이슈에 거의 오불관언(吾不關焉)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28자 정책은 이렇다. 냉정관찰, 온주진각, 침착응부, 도광양회, 선어수졸, 결부당두, 유소작위(冷靜觀察, 穩住陣脚, 沈着應付, 韜光養晦, 善於守拙, 決不當頭, 有所作爲·냉정히 관찰하되 쉽게 흔들리지 말고 침착하게 대처하며 자기의 재능은 숨기고 드러내지 말며 자신의 치부를 감출 줄 알고 절대 앞장서지 말 것이며 자기의 할 일을 잘해 나가야 한다).
 
  제1차 북핵위기는 1991년 말 미국이 위성사진에 근거하여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은 1992년 5월부터 1993년 2 월까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6차례 부정기 핵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김일성은 IAEA는 미국의 조종하에 있는 기구이므로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이를 두고 이것이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남긴 일종의 정치 유산이라는 평가가 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세습한 후 미국은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가로 경수로를 건설해 주고 80만 톤의 경유 공급을 약속했으며 북한은 다시 NPT에 가입하였다.
 
  이렇게 제1차 핵위기에서 중국은 암묵기를 지냈으며 방관자의 역할을 했다. 이 시기 중국 정부가 북핵문제에 대해 방관자 역할을 한 주요 원인은 중국 언론들의 무지(無知)에서 왔다. 그때 중국의 주요 언론들은 북한의 핵개발 움직임을 중국의 안전과 연계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권위 있는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공개적으로 “북한은 핵개발을 할 능력도 없고 할 생각도 없으며, 지금 북핵을 논하는 것은 미국이 만들어 낸 음모”라고 단언하였다. 중국의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심지어 “북핵 개발은 북한이 만들어 낸 가짜 뉴스로서 미국을 협박하기 위한 양공(佯攻)에 불과하고 미국과의 담판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술수”라고까지 하였다. 이러한 언론의 보편적인 인식은 중국 정부로 하여금 북핵에 대해 무사안일주의와 수정주의(修正主義)에 함몰되어 있게 했으며 소극적인 방관자의 입장에 오랫동안 안주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대북핵 환상을 여지없이 파탄 나게 한 것이 바로 2006년 10월의 북한 지하 핵실험 성공이었다.
 
 
  “북한은 중국의 동대문”
 
장롄구이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
  2001년 9·11사건 이후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 국가로 지정했다. 2002년 10월 존 켈리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한 후 미국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이유로 중유 공급을 철회했다. 2003년 1월 10일 북한은 성명을 발표, NPT에서 탈퇴하였다. 이렇게 제2차 북핵위기가 시작되었다.
 
  제2차 북핵위기 때부터 중국은 적극적으로 한반도 이슈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 중국의 저명한 한반도 전문가인 중공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의 장롄구이(張璉瑰) 교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북한 핵실험이 북중 국경지대에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은 이 기회를 첨단무기를 한국에 도입하여 중국 포위의 MD(미사일방어) 라인을 매듭 짖는 기회로 삼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북한은 중국의 동대문이며 이것은 중국이 북핵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북핵문제는 현실적으로 중국의 안전 위협으로 상존하고 있고 중국은 북핵문제로 인하여 세계 정치의 초점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계속하여 이렇게 쓰고 있다.
 
  “북핵문제에는 미국의 검은손이 깊숙이 뻗치고 있다. 이제 한반도에는 필연적으로 미·일·한(美日韓)을 한쪽, 북한·중국을 한쪽으로 하는 새로운 냉전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중국은 자국 국익을 위하여 반드시 원칙적인 투쟁을 벌여야 한다.”
 
  중국 정부는 초기에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2불정책(二不政策(不生亂, 不生戰): 혼란을 야기하지 말고 전쟁을 하지 말 것)’을 제출하였다. 그 후 이러한 이불정책은 좀 더 완전한 형식인 ‘3대 원칙’으로 정착되었다. 즉
 
  1. 한반도 비핵화(非核化)
  2.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해결
  3.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도모
 
 
  중국의 속셈
 
1950년 중국은 ‘순망치한’을 이유로 북한을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이러한 3원칙은 중국의 절대적인 원칙이며 어떤 경우에라도 양보할 수 없다는 원칙이기도 하다.
 
  지금 전 세계가 북한의 무모한 핵개발을 반대하고 있는데 중국은 뜬금없이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마치 남한도 핵개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실은 북한에 중국이 북한을 지지하고 있음을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음으로 대화와 평화를 거절하는 측은 북한이다. 북한은 그 어떤 비핵화를 선제조건으로 하는 대화는 일절 거절하고 있는데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해결은 도대체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 것인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볼모로 끊임없이 도발하는 측은 북한인데 마치 중국과 북한이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것처럼 일방적인 구호를 외치고 있다.
 
  북핵을 대하는 중국의 기본목적이 북한의 생존이 제1 목적이라면 북한의 핵의 보유 유무는 제2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진정으로 북핵 제거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핵무기가 있는 북한이 중국 편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국이 한국전쟁에 중공군을 파견할 때 마오쩌둥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명분으로 400만 중공군을 참전시켰다. 지금 중국은 북한의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또 한 번 ‘순망치한’ ‘호파당위(戶破堂危·문이 없으면 거실이 위태롭다)’라는 중국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의 고어를 명분으로 호시탐탐 북한을 엿보고 있다.
 
 
 
중국의 김 빼기 전략

 
유엔주재 중국대표 리바오둥.
  중국의 《환구시보(環球時報)》 2016년 9월 20일 자 사설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는 미군이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하는 것을 인정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미군이나 한국군이 DMZ를 넘어 북진한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수많은 해결책을 내놓지만 북한 강역은 한 치도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기본 원칙에서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유엔 주재 중국 대표 리바오둥(李保東)은 중국의 신문 매체를 향해 안보리 제재가 통과되기 전까지의 과정을 이렇게 해석하였다.
 
  1. 제재안 초안의 회람기간에 초안 중에 있는 조치가 만약 정세 완화에 불리하든가 외교 노력에 불리하면 삭제한다. 더욱이 북한의 민생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면 삭제하든가 어구(語句)를 고친다.
 
  2. 제재안이 통과된다 해도 많은 단서를 달아서 북한의 경제와 대외무역에 피해를 가급적 적게 한다.
 
  3. 어떤 제재안도 일단 중국이 동의한 후에는 손톱과 이빨이 없어진 두루뭉술한 제재안으로 된다. 이것이 우리의 북한 제재안에 대한 정책이다.
 
  중국 유엔협회 부회장 장소안(張小安)은 안보리에서 중국 대표가 대북한 제재안에 동의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1. 확실히 북한이 1718과 1874 등 결의안을 위반했다.
 
  2. 새로운 결의안이 통과되기 이전에 중국 대표는 이미 결의안 속의 예봉을 많이 무뎌지게 한 후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은 절대로 북한 정권이 멸망하든가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반대하며, 비록 핵개발은 멈추어야 하지만 정권 자체는 상존(尙存)하기를 희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6년 10월 북한의 제1차 핵실험 후 안보리는 1718호 제재안을 통과시켰다. 중국은 찬성표를 던지고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제재는 목적이 아니다. 중국은 앞으로도 계속하여 6자 회담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며, 이번 제재안의 일부 내용에 대해 동의하지 않음을 선포한다.”
 
  2017년 3월 2일의 2270 제재는 매우 엄격한 제재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훙레이(洪磊)는 이번 제재안에 대해서도 또 김 빼기 설명을 하였다.
 
  “제재는 북한의 핵개발을 제재하는 것이고 민생과 인도(人道)의 요구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 제재안에는 6자 회담 재개와 정치와 외교 방식으로 동북아 정세를 해결하자는 내용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의 농간으로 망가진 안보리 제재안
 
지난 2013년 5월 24일 북한의 2인자 최룡해(왼쪽)는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시진핑과 만났다.
  안보리는 북핵을 제지하기 위하여 1695, 1718, 1874, 2087, 2094, 2270, 2321, 2356 등 8차례의 제재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제재의 실질적인 실행은 중국의 비협조로 인해 별로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번 9월 3일의 북한의 수소폭탄 시험은 인류에 대한 가장 난폭한 도전이다. 9월 12일 새벽 유엔의 새로운 제재결의안 통과를 앞둔 9월 11일 중국 외교부 겅솽(耿爽) 대변인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중국 측은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제6차 핵실험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에 동의한다. 우리는 안보리 성원들이 공식(共識)을 갖고 대외적으로 단결하여 일치된 소리를 낼 것을 희망한다. 안보리의 내용은 두 가지 뜻이 있는바 하나는 북한에 대한 제재이고, 다른 하나는 6자 회담의 재개이다. 최종 목적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한반도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번 북한 제6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 조치도 중국의 간섭으로 초안보다 많이 완화되어 발표되었다.
 
  결의안은 당초 미국이 마련한 초안에 포함됐던 대북 원유 공급 중단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자산동결 조치가 제외되었다. 미국이 주도한 초안이 수정된 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초안은 당초 북한에 대한 원유와 정제된 석유제품, 액화 천연가스의 수출을 금지했으나 수정안은 원유 수출은 현 수준에서 동결하고, 석유 수출은 연간 200만 배럴로 제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국영 항공사인 고려항공에 대한 자산동결 조항은 삭제됐다. 아울러 북한의 해외 노동자 수출 전면금지 조항도 완화됐다. 초안에는 인도주의적 원조, 또는 비핵화 등 안보리 결의의 목적에 부합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 국적자에게 노동허가서를 발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가장 중대한 한 차례 대북한 제재가 또 한 번 중국의 농간에 제지당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되었다.
 
 
 
‘쌍중단’과 ‘쌍궤제’

 
  최근에 중국은 북핵 해법으로 새로운 방안을 제안하였다. 이른바 ‘쌍중단’과 ‘쌍궤제(雙軌制)’이다. 이는 2017년 3월 8일 중국 외교부장 왕이(王毅)가 중국 국내 언론 브리핑에서 제출한 것으로서 ‘쌍중단’은 한미는 대규모 군사 연습을, 북한은 핵개발을 중단하는 것이다. ‘쌍궤제’는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동시에 추진하자는 제안이다.
 
  한미군사연습을 북핵과 동일시하는 어리석은 중국 외교부장이 가소롭고 중국의 나태와 시행착오로 북한의 핵이 오늘날까지 오게 된 책임을 묻지도 않고 거창하게 그 무슨 한반도 평화체제 운운하는 모습에 곡소부득(哭笑不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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