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거년금일차문중 인면도화상영홍
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
인면부지하처거 도화의구소춘풍
작년 이맘때 어느 봄날, 이 집 뜨락에는
복사꽃보다 더 고운 여인이 있었지
곱디고운 얼굴의 그녀는 어디로 갔나?
복사꽃만 여전히 봄바람에 웃고 있네….
성당(盛唐) 시절의 서정시인 최호(崔護·772~846년)의 ‘도성 밖 남쪽 별장에 쓰다(題都城南莊)’라는 제목의 시이다. 이 시에는 그의 ‘기이한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당나라 덕종(德宗) 때 박릉(博陵) 땅의 서생 최호는 젊어서 과거에 여러 차례 응시했으나 번번이 낙방했다. 어느 해인가, 그해도 과거에 낙방했는데 마침 청명(淸明)절이어서 울적하고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고 혼자 말을 몰아 도성 밖으로 봄꽃 구경을 나섰다.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다가 어느 집 문 앞, 흐드러진 복사꽃 나무에 말을 매어 놓고 물 한잔을 청하니,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복사꽃보다 더 고운 얼굴의 처녀였다.
최호는 그녀에게서 물을 얻어 마시고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후 돌아온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복숭아꽃이 만개한 풍경과 아름다운 여인을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복사꽃만 여전히 봄바람에 웃고 있네”
최호는 그 이듬해 과거에 합격했고, 마침 청명절이 돌아오자 그 여인에 대한 그리운 정을 억누를 수 없어 작년의 그곳을 찾아갔다. 그러나 문은 잠겨 있고 만개한 도화는 옛날과 같은데 복숭아꽃 아래 있었던 그 미인은 어디 갔는지 종적조차 없었다. 실망감에 사로잡혀 망연히 서있다가 그 집 대문 위에 “작년 이맘때 어느 봄날… 복사꽃만 여전히 봄바람에 웃고 있네”라는 시를 써놓고 돌아왔다.
최호를 한번 본 후 늘 사모의 정을 품고 살던 그 여인은 마침 그때 친척 집에 가고 없었는데 돌아와 보니 대문 위에 시 한 수만 달랑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이름도 거처도 알 수 없고 찾을 길도 막막하게 되자 그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다.
최호는 며칠이 지나고 우연히 장안 남쪽 교외에 왔다가 다시 그곳을 찾았는데, 그 집 안에서 통곡 소리가 들리기에 문을 두드리니 한 노인이 밖으로 나와서 이야기한다.
“그대가 이 시를 쓴 사람인가? 작년 이래 내 딸이 그대 때문에 상사병(相思病)에 걸렸다네. 최근 그대가 문 위에 써놓은 시를 보고 상사병이 더욱 심해져서 그 뒤로는 아예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워 이제 막 숨이 끊어지려고 한다네.”
그 말에 최호가 안으로 달려 들어가 그 여인을 끌어안고 “내가 왔소! 나 여기에 있소!”라고 흐느껴 우니 잠시 뒤 죽어 가던 처녀의 얼굴에 불그스레 생기(生氣)가 돌더니 이내 의식을 되찾으며 되살아났다. 그 후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해진다.
최호의 이 시는 언뜻 보면 일반적인 ‘사랑의 노래’처럼 들리지만, 은연중에 한 사람의 따스한 사랑이 ‘기사회생(起死回生)의 묘약’으로 작용해 죽어 가는 사람의 생명을 되살려 냈다는 이야기를 통해 단순한 서정(抒情)을 넘어 진정한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공자의 인(仁), 석가모니 부처의 자비(慈悲), 예수 그리스도의 박애(博愛)는 일치된 목소리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성인(聖人)들께서 인류에게 전한 함축적 표현이다. 가족 간의 사랑이나 이성에 대한 사랑을 위시하여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의 지고한 가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르는 이 없겠지만 성현(聖賢)의 가르침에 따른 그런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는 이가 드물다는 게 작금의 불행이라 하겠다.
요즘 여의도 정가의 정치적 분위기는 사랑이나 화기애애와는 거리가 먼 ‘살벌’ 그 자체다. 행정 각 부 수장들에 대한 지나치게 잦은 국회의 탄핵과 대통령의 계엄령으로 시작된 혼란 정국의 긴 터널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국익(國益)과 민생(民生)을 위한 정책적 결정과 입법을 두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다른 당 소속 의원 간에 합의는 고사하고 사사건건 대립과 갈등, 정쟁(政爭)을 일삼으며, 나랏일을 좀 더 잘해 보려는 선의의 경쟁과 타협 없이 오로지 소속 집단의 이익과 권력의 탐욕 추구에다 ‘네 탓 공방’이고 비방과 욕설이 난무하는 추태를 보이기 일쑤다.
큰 틀에서 볼 때 함께 나랏일을 논의하는 정치적 도반(道伴)인 국회의원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국정을 논의하는 게 아니라, 당적(黨籍)이 다른 의원들을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적(敵)’으로 간주해 온갖 공세를 퍼부어 파멸의 길로 몰아가는 행태는 ‘화염곤강(火炎崑岡) 옥석구분(玉石俱焚)’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화염곤강…’은 《서경(書經)》에 나오는 문구로 “곤강(崑岡)산에 불이 붙으면(火炎) 옥도 돌도(玉石) 함께 타게(俱焚) 되듯, 임금이 덕을 잃으면 그 피해는 사나운 불길보다 심하여 죄 없는 백성도 함께 불에 타게 된다”는 뜻이다.
‘휴머니즘의 실종’ 시대에 읽는 봄의 노래
자유 대한민국 체제의 국회의원이란 좀 더 훌륭한 나라, 세계 일등 선진국이자 부강(富强)한 나라를 이룩하고 문화·복지 강국으로의 성장 발전을 도모해 달라는 국민적 염원을 담아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의(代議)정치의 핵심 구성원들이다. 그런데도 자신을 선택한 민의(民意)를 저버리고 염불(念佛)보다는 잿밥에 눈이 어두워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을 위해 이전투구(泥田鬪狗)식 치졸한 정쟁에만 몰두하는 한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쟁인가? TV 화면을 장식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에 국민은 짜증이 날 대로 나있고 일부 극렬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이제 분노가 극에 달해 점차 폭발 직전으로 치닫는 양상을 보인다. 이럴 바에는 국회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라는 회의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최호의 시가 보여 주는 것처럼 ‘상대에 대한 따듯한 사랑은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참작해, ‘휴머니즘의 실종’으로 살벌하기 그지없는 대한민국 국회의 면모를 일신하여 의원 간에 서로 사랑하고 존중·배려하는 따뜻한 국회, 사랑이 넘치는 국회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년금일차문중 인면도화상영홍
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
인면부지하처거 도화의구소춘풍
작년 이맘때 어느 봄날, 이 집 뜨락에는
복사꽃보다 더 고운 여인이 있었지
곱디고운 얼굴의 그녀는 어디로 갔나?
복사꽃만 여전히 봄바람에 웃고 있네….
성당(盛唐) 시절의 서정시인 최호(崔護·772~846년)의 ‘도성 밖 남쪽 별장에 쓰다(題都城南莊)’라는 제목의 시이다. 이 시에는 그의 ‘기이한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당나라 덕종(德宗) 때 박릉(博陵) 땅의 서생 최호는 젊어서 과거에 여러 차례 응시했으나 번번이 낙방했다. 어느 해인가, 그해도 과거에 낙방했는데 마침 청명(淸明)절이어서 울적하고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고 혼자 말을 몰아 도성 밖으로 봄꽃 구경을 나섰다.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다가 어느 집 문 앞, 흐드러진 복사꽃 나무에 말을 매어 놓고 물 한잔을 청하니,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복사꽃보다 더 고운 얼굴의 처녀였다.
최호는 그녀에게서 물을 얻어 마시고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후 돌아온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복숭아꽃이 만개한 풍경과 아름다운 여인을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복사꽃만 여전히 봄바람에 웃고 있네”
최호는 그 이듬해 과거에 합격했고, 마침 청명절이 돌아오자 그 여인에 대한 그리운 정을 억누를 수 없어 작년의 그곳을 찾아갔다. 그러나 문은 잠겨 있고 만개한 도화는 옛날과 같은데 복숭아꽃 아래 있었던 그 미인은 어디 갔는지 종적조차 없었다. 실망감에 사로잡혀 망연히 서있다가 그 집 대문 위에 “작년 이맘때 어느 봄날… 복사꽃만 여전히 봄바람에 웃고 있네”라는 시를 써놓고 돌아왔다.
최호를 한번 본 후 늘 사모의 정을 품고 살던 그 여인은 마침 그때 친척 집에 가고 없었는데 돌아와 보니 대문 위에 시 한 수만 달랑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이름도 거처도 알 수 없고 찾을 길도 막막하게 되자 그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다.
최호는 며칠이 지나고 우연히 장안 남쪽 교외에 왔다가 다시 그곳을 찾았는데, 그 집 안에서 통곡 소리가 들리기에 문을 두드리니 한 노인이 밖으로 나와서 이야기한다.
“그대가 이 시를 쓴 사람인가? 작년 이래 내 딸이 그대 때문에 상사병(相思病)에 걸렸다네. 최근 그대가 문 위에 써놓은 시를 보고 상사병이 더욱 심해져서 그 뒤로는 아예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워 이제 막 숨이 끊어지려고 한다네.”
그 말에 최호가 안으로 달려 들어가 그 여인을 끌어안고 “내가 왔소! 나 여기에 있소!”라고 흐느껴 우니 잠시 뒤 죽어 가던 처녀의 얼굴에 불그스레 생기(生氣)가 돌더니 이내 의식을 되찾으며 되살아났다. 그 후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해진다.
최호의 이 시는 언뜻 보면 일반적인 ‘사랑의 노래’처럼 들리지만, 은연중에 한 사람의 따스한 사랑이 ‘기사회생(起死回生)의 묘약’으로 작용해 죽어 가는 사람의 생명을 되살려 냈다는 이야기를 통해 단순한 서정(抒情)을 넘어 진정한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공자의 인(仁), 석가모니 부처의 자비(慈悲), 예수 그리스도의 박애(博愛)는 일치된 목소리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성인(聖人)들께서 인류에게 전한 함축적 표현이다. 가족 간의 사랑이나 이성에 대한 사랑을 위시하여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의 지고한 가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르는 이 없겠지만 성현(聖賢)의 가르침에 따른 그런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는 이가 드물다는 게 작금의 불행이라 하겠다.
요즘 여의도 정가의 정치적 분위기는 사랑이나 화기애애와는 거리가 먼 ‘살벌’ 그 자체다. 행정 각 부 수장들에 대한 지나치게 잦은 국회의 탄핵과 대통령의 계엄령으로 시작된 혼란 정국의 긴 터널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국익(國益)과 민생(民生)을 위한 정책적 결정과 입법을 두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다른 당 소속 의원 간에 합의는 고사하고 사사건건 대립과 갈등, 정쟁(政爭)을 일삼으며, 나랏일을 좀 더 잘해 보려는 선의의 경쟁과 타협 없이 오로지 소속 집단의 이익과 권력의 탐욕 추구에다 ‘네 탓 공방’이고 비방과 욕설이 난무하는 추태를 보이기 일쑤다.
큰 틀에서 볼 때 함께 나랏일을 논의하는 정치적 도반(道伴)인 국회의원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국정을 논의하는 게 아니라, 당적(黨籍)이 다른 의원들을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적(敵)’으로 간주해 온갖 공세를 퍼부어 파멸의 길로 몰아가는 행태는 ‘화염곤강(火炎崑岡) 옥석구분(玉石俱焚)’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화염곤강…’은 《서경(書經)》에 나오는 문구로 “곤강(崑岡)산에 불이 붙으면(火炎) 옥도 돌도(玉石) 함께 타게(俱焚) 되듯, 임금이 덕을 잃으면 그 피해는 사나운 불길보다 심하여 죄 없는 백성도 함께 불에 타게 된다”는 뜻이다.
‘휴머니즘의 실종’ 시대에 읽는 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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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 |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쟁인가? TV 화면을 장식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에 국민은 짜증이 날 대로 나있고 일부 극렬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이제 분노가 극에 달해 점차 폭발 직전으로 치닫는 양상을 보인다. 이럴 바에는 국회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라는 회의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최호의 시가 보여 주는 것처럼 ‘상대에 대한 따듯한 사랑은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참작해, ‘휴머니즘의 실종’으로 살벌하기 그지없는 대한민국 국회의 면모를 일신하여 의원 간에 서로 사랑하고 존중·배려하는 따뜻한 국회, 사랑이 넘치는 국회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