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사려는 MZ 세대에 조언 “공감할 수 있는 그림 사야”
⊙ “갤러리스트의 매력? 작가 아니어도 작가 같은 삶 살 수 있어”
⊙ “미대 졸업생이 작업으로 수익 낼 수 있는 환경 조성 필요”
⊙ “글로벌 시장이 주목하는 갤러리, 한국인이 자랑스러워할 갤러리 만들 것”
咸允喆
美 코넬대학교 재료공학과, 同 대학원 재료공학과 석사 / 제이슨 함 대표, 삼양사 화학연구소 주임연구원
⊙ “갤러리스트의 매력? 작가 아니어도 작가 같은 삶 살 수 있어”
⊙ “미대 졸업생이 작업으로 수익 낼 수 있는 환경 조성 필요”
⊙ “글로벌 시장이 주목하는 갤러리, 한국인이 자랑스러워할 갤러리 만들 것”
咸允喆
美 코넬대학교 재료공학과, 同 대학원 재료공학과 석사 / 제이슨 함 대표, 삼양사 화학연구소 주임연구원
- 사진=제이슨 함
1990년생인 함윤철 제이슨 함(Jason Haam) 대표는 국내 대표적인 ‘MZ 갤러리스트’다. 지난 2018년 서울 성북구에 갤러리를 열고 꾸준히 업계 내에서 인지도를 올려왔다. 제이슨 함의 업계 평가는 대형 갤러리 못지않다. 우르스 피셔, 린 마이어스 같은 세계적인 작가와도 활발히 협업하고 있다.
미술 시장이 침체해 있는 상황 속에서도 제이슨 함은 외연 확장에 나선다. 갤러리 바로 옆 빈 건물을 사들여 8월 말 리모델링을 할 계획이다. 리모델링이 끝나면 제이슨 함의 규모는 서울 내 상업 갤러리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게 된다.
오는 9월 코엑스에서 개막하는 프리즈 서울 2024 준비에 한창인 함 대표를 서울 성북로에 자리한 제이슨 함에서 만났다.
프리즈 서울 2024 참가
― 올해에도 프리즈와 키아프가 코엑스에서 동시에 열립니다. 2022년 제이슨 함은 두 아트페어 모두에 참여했는데, 올해는 어떻습니까.
“올해는 프리즈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세계적인 작가들이 저희 갤러리와 함께하기로 했거든요. 유명한 외국 작가 작품은 받기가 어려워요. 오히려 판매 경쟁보다 어렵습니다. 여러 갤러리가 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죠.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제이슨 함은 이들 작가의 하이라이트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 세계적인 작가들을 어떻게 섭외한 겁니까.
“그간 쌓아온 관계가 한몫했습니다. 사실 유명 작가의 작품은 어디서나 잘 팔리고, 어떤 갤러리를 통해도 잘 팔립니다. 이땐 작가와 쌓아온 개인적인 관계가 중요하죠. 저희는 이들의 작품을 한국에 보다 널리 알리고 국내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 협업하려는 작가와 판매하려는 작품을 선정하는 안목이 궁금합니다.
“예술(藝術)을 한자로 풀이하면 ‘아름다운 기술’을 의미합니다. 미국에서 예술은 자기표현(self expression)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 예술에 어떤 기능이 있느냐, 묻는다면 그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예술이 좋은지 혹은 나쁜지 가치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요. 대신 자기표현을 얼마나 솔직하게, 잘했느냐는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작품을 고르고 있습니다.”
― 그런 안목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미술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추상적인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술을 매일 다루는 사람은 상대 평가가 가능하잖아요? 매일 보는 게 그림인데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추게 되죠. 축구를 예로 들어볼게요. 축구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이 선수가 얼마나 잘하는지 감이 안 옵니다. 그런데 축구 팬들은 한 선수가 뛰는 걸 보면 어떤 능력이 이 선수의 강점인지 알 수 있죠. 미술에도 그런 요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이슨 함, 이목하 작가 브랜드화
―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발전시키게 된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죠. 일반적으로 예술가를 떠올리면 판타지를 갖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그런 콩깍지가 벗겨졌어요. 저 작가가 왜 작업을 하는가, 이 작가는 얼마나 잘하고 있는가, 얼마나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는가 등을 고민해보면서 저만의 데이터가 쌓이게 됐습니다.”
― 제이슨 함은 스타 작가로 떠오른 이목하 작가를 브랜드화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목하 작가와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이목하 작가는 당시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은 작업실에서 틈틈이 그림 그리는 작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로부터 자기 작품을 평가받을 기회가 없었어요.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그리고 있었죠. 어느 날 인터넷에서 이목하 작가의 작품을 봤는데 단번에 매료됐습니다. 저는 아침부터 밤까지 그림만 보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웬만한 그림을 보면 어떻게 그렸는지 대충 감이 옵니다. 그런데 이목하 작가 그림은 어떻게 그렸는지 전혀 모르겠는 거예요. 당장 만나자고 했죠.”
― 실제로 만나보니 어땠나요.
“작업실이 정말 작았어요. 1~2평 남짓했습니다. 그와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가인 우르스 피셔와 큰 차이를 못 느꼈어요. 물감 하나 사는 데도 가격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할 만큼 ‘생계형 작가’였지만, 지향점은 분명했습니다. 몇십 년 후 자신이 어떤 작가가 될지, 자기 작품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가치관이 확실했죠. 불과 96년생 어린 작가였음에도 말입니다.”
― 그래서 바로 계약을 맺었나요?
“네. 우리 갤러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줄 테니 재능을 믿고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모든 상황이 갖춰졌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구현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2월 그룹전을 열고 이듬해 3월 아트 바젤 홍콩에 참여했죠. 이어 개인전까지 열었습니다. 반응이 어마어마했어요. 작품 자체도 성장한 게 느껴졌죠. 그때 ‘아, 이런 게 갤러리의 역할이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림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암담”
― 갤러리는 결국 작품을 팔아야 수입이 나는데, 작가와의 협업만큼 고객 관리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고객 관리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어떻게 해야 그림을 팔 수 있는지 몰라 참 암담했습니다. 컬렉터들은 이전까지 자신이 거래하던 갤러리에서 주로 그림을 사지 않겠어요? 당시 저는 로비가 답인 줄 알았어요. 구매력 있는 개인을 찾아가서 설득하는 과정이 전부인 줄 알았죠. 그런데 갤러리를 찾는 고객 대다수는 이미 사겠다는 마음을 먹고 갤러리에 온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격 조율만 잘하면 거래가 되는 거죠. 갤러리에 오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그림을 팔 기회 역시 많아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수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 어떤 식으로요?
“앞서 이목하 작가에 대해 설명했잖아요. 이런 성공 사례들이 많이 알려지면 갤러리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목하 작가가 이렇게 컸으면 다른 작가도 그런 서사가 있겠구나, 하는 인식이 자리 잡히게 되죠. 작가와 갤러리의 성공 사례 같은 선순환이 많이 일어나면 갤러리를 찾는 고객 역시 증가합니다. 저희 갤러리 소속 작가들의 베스트를 끌어낼 수 있게 돕고, 이들이 성장하고 이름이 알려지는 데 집중하는 것이 제이슨 함의 고객 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 전공은 재료공학
함 대표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갤러리를 오픈하기 전 한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2018년, 평소 좋아하던 미술을 업(業)으로 삼았다.
― 개관한 지 6년이 지났습니다. 갤러리스트라는 직업이 적성엔 잘 맞습니까.
“네, 하지만 힘든 점도 있어요. 사실 미술이라는 게 ‘용도’가 있으면 더는 예술이 아니에요. 그저 공산품에 불과하죠. 그러니 판매는 더더욱 어려워요. 고객이 거래를 통해 소비 의미를 찾아야 하고 작가 역시 갤러리와의 협업을 통해 더 성장해야 하니까요. 운도, 타이밍도 모두 중요하죠.”
―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갤러리스트라는 직업이 주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작가가 아닌데 작가 같은 삶을 살 수 있어요.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준다’는 말이 있죠. 실제로 한번 권위를 갖게 되면 갤러리 이름만으로 작가를 이곳저곳으로 보낼 수 있는 힘이 생겨요. 무명 작가들을 알릴 수 있는 로켓 부스터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점이 갤러리스트의 매력인 듯싶어요. 저 역시 이런 힘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고요. 또 한 작가의 태동기부터 마침내 대가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할 수 있다는 점도 갤러리스트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미술 투자로 이득 보려면 ‘선구안’ 갖춰야”
― 제이슨 함은 어떤가요? ‘똥만 싸도 박수 쳐주는’ 단계에 이르렀나요?
“전혀 아닙니다(웃음). 물론 저희는 그 단계에 올라도 똥을 팔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갤러리 업계에서 힘과 권위를 가지면 가질수록 좋은 작가들과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져요. 더 좋은 작품을 소개할 기회 역시 많아지죠.”
― 코로나19 기간 미술 시장엔 전례 없는 구매 열풍이 불었습니다. MZ 세대 가운데 그림을 사보겠다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첫 그림 구매에 나서는 이들에게 팁을 주자면요?
“벤저민 그레이엄이라는 주식 투자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시장은 단기적으로 보면 투표기계와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체중계와 같다.’ 즉 짧게 봤을 때 주식 시장은 투자자의 탐욕과 공포, 변덕스러움 등에 영향을 받지만, 길게 보면 기업의 내재 가치에 따라 평가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미술 시장 역시 이와 같아요. 길게 보고 가치가 오르는 작품을 살 수 있으면 가장 좋아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대단한 내면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다면요.”
―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굉장히 어렵죠. 미술 거래에는 높은 제반 비용이 들어갑니다. 투자 목적으로 작품을 구매해 유의미한 가격 상승을 보려면 그 정도 ‘선구안’을 갖고 있어야 해요. 다시 말하면 재정 여유가 많지 않은 사람이 굳이 미술품을 사야 하나 싶기도 해요. 다른 투자 수단도 많은데 말이죠.”
― 투자 목적이 아닌 취미로 작품을 구매하려고 하는 MZ 세대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을 사는 게 중요합니다. 사람을 사귈 때 외모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결이 맞는 사람과 사귀어야 하잖아요. 그림도 비슷해요. 갤러리에서 봤을 때 예뻐 보여도 막상 집에 걸어놨을 때 그렇지 않을 수 있죠. 하지만 ‘이 그림을 보니 엄마 생각이 난다’ 같은 공감을 하게 되면 꽤 긴 시간 만족할 수 있어요.”
“한국 미술, 세계적 레벨로 가는 과정”
― 미술이 투기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미술품 가격은 그 작품이 가진 가치에 의해 정해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다이아몬드나 코인, 부동산 시장은 다른가요?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돈세탁이나 투기에 악용될 가능성은 있어요. 결국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문제죠.”
― 갤러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한국 미술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로 보나요.
“전 세계 미술 시장의 절반이 넘는 미국을 빼고, 중국 미술 시장의 주 채널인 홍콩을 빼고, 유럽과 중동 시장의 채널인 런던을 빼고 보면 한국은 이제 꽤 큰 미술 시장이 됐습니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도시지만 글로벌 미술 생태계가 구축돼 있어요. 활발한 경매회사도 있고 해외 갤러리도 많이 들어와 있죠. 이런 조건은 갤러리 업을 하기에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 한국 작가 수준 자체는 해외 작가들과 거의 차이가 없을 만큼 성장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계적 레벨로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축구에 비유해볼게요. 우리나라에서 손흥민, 이강인 같은 월드클래스 선수가 나왔다고 한국 축구 전체가 월드클래스에 오른 건 아니에요. 전체 수준을 놓고 봤을 때 한국 축구가 스페인 축구에 밀리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미대를 졸업한 졸업생 대다수는 미술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 몰라요. 자기 작업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죠. 이제야 조금씩 이목하 작가처럼 작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어요. 미국의 경우, 미대 졸업 후 석사 과정을 끝내면 자기 작업으로 돈을 벌 기회가 많습니다. 갤러리도 많고 시장도 크니까요. 미술계의 전반적인 토양이 더 올라와야 해요. 한 10년쯤 지나면 좀 더 나아질 수 있겠죠.”
미술 시장 침체에도 “크게 불안하진 않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미술시장조 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미술 시장 거래액은 2021년 7562억원 규모에서 2022년 8065억원 규모로 증가했다. 하지만 2023년은 6694억원(추정치)으로 전년 대비 17% 감소할 전망이다.
― 코로나19 시기 이후 미술 시장은 다시 침체되는 모양새입니다. 이 변화를 실제로 느끼나요?
“그렇습니다. 코로나19 기간인 2021~2022년엔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을 많이 가진다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요즘엔 유명 작가의 작품 빼고는 잘 팔리지 않지만 크게 불안하진 않아요. 시장은 침체해 있으나, 우리나라 작가들이 국내외에서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고 있고 국내에도 글로벌 인프라가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까요.”
― 한국 시장에선 단색화(단색조의 미니멀리즘계 추상회화 장르)가 유독 인기인데, 제이슨 함이 다루는 그림에는 개성 있는 작품이 많습니다.
“네. 한국에선 단색화가 꾸준히 인기가 있죠. 한국 사람들은 튀는 색이나 튀는 표현 기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단색화가 재미가 없더라고요. 미술의 의미는 새로움에 있는데, 단색화가 그리 새롭다고 느끼지 않아요. 작품은 한 작가의 영혼의 창이거든요. 자기표현이 센 작품을 보면 그 영혼의 창이 또렷하고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 제이슨 함이 추구하는 비전은 무엇인가요.
“글로벌 미술 시장이 주목하는 갤러리, 한국인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갤러리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훌륭한 작가들과의 협업도 많이 하고 싶고요.”⊙
미술 시장이 침체해 있는 상황 속에서도 제이슨 함은 외연 확장에 나선다. 갤러리 바로 옆 빈 건물을 사들여 8월 말 리모델링을 할 계획이다. 리모델링이 끝나면 제이슨 함의 규모는 서울 내 상업 갤러리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게 된다.
오는 9월 코엑스에서 개막하는 프리즈 서울 2024 준비에 한창인 함 대표를 서울 성북로에 자리한 제이슨 함에서 만났다.
프리즈 서울 2024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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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로에 자리한 갤러리 제이슨 함. 사진=월간조선 |
“올해는 프리즈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세계적인 작가들이 저희 갤러리와 함께하기로 했거든요. 유명한 외국 작가 작품은 받기가 어려워요. 오히려 판매 경쟁보다 어렵습니다. 여러 갤러리가 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죠.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제이슨 함은 이들 작가의 하이라이트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 세계적인 작가들을 어떻게 섭외한 겁니까.
“그간 쌓아온 관계가 한몫했습니다. 사실 유명 작가의 작품은 어디서나 잘 팔리고, 어떤 갤러리를 통해도 잘 팔립니다. 이땐 작가와 쌓아온 개인적인 관계가 중요하죠. 저희는 이들의 작품을 한국에 보다 널리 알리고 국내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 협업하려는 작가와 판매하려는 작품을 선정하는 안목이 궁금합니다.
“예술(藝術)을 한자로 풀이하면 ‘아름다운 기술’을 의미합니다. 미국에서 예술은 자기표현(self expression)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 예술에 어떤 기능이 있느냐, 묻는다면 그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예술이 좋은지 혹은 나쁜지 가치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요. 대신 자기표현을 얼마나 솔직하게, 잘했느냐는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작품을 고르고 있습니다.”
― 그런 안목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미술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추상적인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술을 매일 다루는 사람은 상대 평가가 가능하잖아요? 매일 보는 게 그림인데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추게 되죠. 축구를 예로 들어볼게요. 축구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이 선수가 얼마나 잘하는지 감이 안 옵니다. 그런데 축구 팬들은 한 선수가 뛰는 걸 보면 어떤 능력이 이 선수의 강점인지 알 수 있죠. 미술에도 그런 요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이슨 함, 이목하 작가 브랜드화
―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발전시키게 된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죠. 일반적으로 예술가를 떠올리면 판타지를 갖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그런 콩깍지가 벗겨졌어요. 저 작가가 왜 작업을 하는가, 이 작가는 얼마나 잘하고 있는가, 얼마나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는가 등을 고민해보면서 저만의 데이터가 쌓이게 됐습니다.”
― 제이슨 함은 스타 작가로 떠오른 이목하 작가를 브랜드화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목하 작가와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이목하 작가는 당시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은 작업실에서 틈틈이 그림 그리는 작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로부터 자기 작품을 평가받을 기회가 없었어요.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그리고 있었죠. 어느 날 인터넷에서 이목하 작가의 작품을 봤는데 단번에 매료됐습니다. 저는 아침부터 밤까지 그림만 보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웬만한 그림을 보면 어떻게 그렸는지 대충 감이 옵니다. 그런데 이목하 작가 그림은 어떻게 그렸는지 전혀 모르겠는 거예요. 당장 만나자고 했죠.”
― 실제로 만나보니 어땠나요.
“작업실이 정말 작았어요. 1~2평 남짓했습니다. 그와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가인 우르스 피셔와 큰 차이를 못 느꼈어요. 물감 하나 사는 데도 가격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할 만큼 ‘생계형 작가’였지만, 지향점은 분명했습니다. 몇십 년 후 자신이 어떤 작가가 될지, 자기 작품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가치관이 확실했죠. 불과 96년생 어린 작가였음에도 말입니다.”
― 그래서 바로 계약을 맺었나요?
“네. 우리 갤러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줄 테니 재능을 믿고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모든 상황이 갖춰졌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구현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2월 그룹전을 열고 이듬해 3월 아트 바젤 홍콩에 참여했죠. 이어 개인전까지 열었습니다. 반응이 어마어마했어요. 작품 자체도 성장한 게 느껴졌죠. 그때 ‘아, 이런 게 갤러리의 역할이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림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암담”
― 갤러리는 결국 작품을 팔아야 수입이 나는데, 작가와의 협업만큼 고객 관리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고객 관리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어떻게 해야 그림을 팔 수 있는지 몰라 참 암담했습니다. 컬렉터들은 이전까지 자신이 거래하던 갤러리에서 주로 그림을 사지 않겠어요? 당시 저는 로비가 답인 줄 알았어요. 구매력 있는 개인을 찾아가서 설득하는 과정이 전부인 줄 알았죠. 그런데 갤러리를 찾는 고객 대다수는 이미 사겠다는 마음을 먹고 갤러리에 온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격 조율만 잘하면 거래가 되는 거죠. 갤러리에 오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그림을 팔 기회 역시 많아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수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 어떤 식으로요?
“앞서 이목하 작가에 대해 설명했잖아요. 이런 성공 사례들이 많이 알려지면 갤러리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목하 작가가 이렇게 컸으면 다른 작가도 그런 서사가 있겠구나, 하는 인식이 자리 잡히게 되죠. 작가와 갤러리의 성공 사례 같은 선순환이 많이 일어나면 갤러리를 찾는 고객 역시 증가합니다. 저희 갤러리 소속 작가들의 베스트를 끌어낼 수 있게 돕고, 이들이 성장하고 이름이 알려지는 데 집중하는 것이 제이슨 함의 고객 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 전공은 재료공학
함 대표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갤러리를 오픈하기 전 한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2018년, 평소 좋아하던 미술을 업(業)으로 삼았다.
― 개관한 지 6년이 지났습니다. 갤러리스트라는 직업이 적성엔 잘 맞습니까.
“네, 하지만 힘든 점도 있어요. 사실 미술이라는 게 ‘용도’가 있으면 더는 예술이 아니에요. 그저 공산품에 불과하죠. 그러니 판매는 더더욱 어려워요. 고객이 거래를 통해 소비 의미를 찾아야 하고 작가 역시 갤러리와의 협업을 통해 더 성장해야 하니까요. 운도, 타이밍도 모두 중요하죠.”
―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갤러리스트라는 직업이 주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작가가 아닌데 작가 같은 삶을 살 수 있어요.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준다’는 말이 있죠. 실제로 한번 권위를 갖게 되면 갤러리 이름만으로 작가를 이곳저곳으로 보낼 수 있는 힘이 생겨요. 무명 작가들을 알릴 수 있는 로켓 부스터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점이 갤러리스트의 매력인 듯싶어요. 저 역시 이런 힘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고요. 또 한 작가의 태동기부터 마침내 대가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할 수 있다는 점도 갤러리스트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미술 투자로 이득 보려면 ‘선구안’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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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함은 8월 말 이 공간을 리모델링해 갤러리 규모를 늘린다. 건물 철거 전 작가 우르스 피셔와 협업해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월간조선 |
“전혀 아닙니다(웃음). 물론 저희는 그 단계에 올라도 똥을 팔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갤러리 업계에서 힘과 권위를 가지면 가질수록 좋은 작가들과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져요. 더 좋은 작품을 소개할 기회 역시 많아지죠.”
― 코로나19 기간 미술 시장엔 전례 없는 구매 열풍이 불었습니다. MZ 세대 가운데 그림을 사보겠다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첫 그림 구매에 나서는 이들에게 팁을 주자면요?
“벤저민 그레이엄이라는 주식 투자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시장은 단기적으로 보면 투표기계와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체중계와 같다.’ 즉 짧게 봤을 때 주식 시장은 투자자의 탐욕과 공포, 변덕스러움 등에 영향을 받지만, 길게 보면 기업의 내재 가치에 따라 평가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미술 시장 역시 이와 같아요. 길게 보고 가치가 오르는 작품을 살 수 있으면 가장 좋아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대단한 내면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다면요.”
―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굉장히 어렵죠. 미술 거래에는 높은 제반 비용이 들어갑니다. 투자 목적으로 작품을 구매해 유의미한 가격 상승을 보려면 그 정도 ‘선구안’을 갖고 있어야 해요. 다시 말하면 재정 여유가 많지 않은 사람이 굳이 미술품을 사야 하나 싶기도 해요. 다른 투자 수단도 많은데 말이죠.”
― 투자 목적이 아닌 취미로 작품을 구매하려고 하는 MZ 세대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을 사는 게 중요합니다. 사람을 사귈 때 외모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결이 맞는 사람과 사귀어야 하잖아요. 그림도 비슷해요. 갤러리에서 봤을 때 예뻐 보여도 막상 집에 걸어놨을 때 그렇지 않을 수 있죠. 하지만 ‘이 그림을 보니 엄마 생각이 난다’ 같은 공감을 하게 되면 꽤 긴 시간 만족할 수 있어요.”
“한국 미술, 세계적 레벨로 가는 과정”
― 미술이 투기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미술품 가격은 그 작품이 가진 가치에 의해 정해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다이아몬드나 코인, 부동산 시장은 다른가요?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돈세탁이나 투기에 악용될 가능성은 있어요. 결국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문제죠.”
― 갤러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한국 미술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로 보나요.
“전 세계 미술 시장의 절반이 넘는 미국을 빼고, 중국 미술 시장의 주 채널인 홍콩을 빼고, 유럽과 중동 시장의 채널인 런던을 빼고 보면 한국은 이제 꽤 큰 미술 시장이 됐습니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도시지만 글로벌 미술 생태계가 구축돼 있어요. 활발한 경매회사도 있고 해외 갤러리도 많이 들어와 있죠. 이런 조건은 갤러리 업을 하기에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 한국 작가 수준 자체는 해외 작가들과 거의 차이가 없을 만큼 성장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계적 레벨로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축구에 비유해볼게요. 우리나라에서 손흥민, 이강인 같은 월드클래스 선수가 나왔다고 한국 축구 전체가 월드클래스에 오른 건 아니에요. 전체 수준을 놓고 봤을 때 한국 축구가 스페인 축구에 밀리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미대를 졸업한 졸업생 대다수는 미술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 몰라요. 자기 작업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죠. 이제야 조금씩 이목하 작가처럼 작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어요. 미국의 경우, 미대 졸업 후 석사 과정을 끝내면 자기 작업으로 돈을 벌 기회가 많습니다. 갤러리도 많고 시장도 크니까요. 미술계의 전반적인 토양이 더 올라와야 해요. 한 10년쯤 지나면 좀 더 나아질 수 있겠죠.”
미술 시장 침체에도 “크게 불안하진 않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미술시장조 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미술 시장 거래액은 2021년 7562억원 규모에서 2022년 8065억원 규모로 증가했다. 하지만 2023년은 6694억원(추정치)으로 전년 대비 17% 감소할 전망이다.
― 코로나19 시기 이후 미술 시장은 다시 침체되는 모양새입니다. 이 변화를 실제로 느끼나요?
“그렇습니다. 코로나19 기간인 2021~2022년엔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을 많이 가진다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요즘엔 유명 작가의 작품 빼고는 잘 팔리지 않지만 크게 불안하진 않아요. 시장은 침체해 있으나, 우리나라 작가들이 국내외에서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고 있고 국내에도 글로벌 인프라가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까요.”
― 한국 시장에선 단색화(단색조의 미니멀리즘계 추상회화 장르)가 유독 인기인데, 제이슨 함이 다루는 그림에는 개성 있는 작품이 많습니다.
“네. 한국에선 단색화가 꾸준히 인기가 있죠. 한국 사람들은 튀는 색이나 튀는 표현 기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단색화가 재미가 없더라고요. 미술의 의미는 새로움에 있는데, 단색화가 그리 새롭다고 느끼지 않아요. 작품은 한 작가의 영혼의 창이거든요. 자기표현이 센 작품을 보면 그 영혼의 창이 또렷하고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 제이슨 함이 추구하는 비전은 무엇인가요.
“글로벌 미술 시장이 주목하는 갤러리, 한국인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갤러리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훌륭한 작가들과의 협업도 많이 하고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