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영 감독의 영화 〈건국전쟁〉이 6년 전 나왔던 같은 제목의 책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 김 감독의 영화가 이승만의 독립운동과 건국, 네이션 빌딩을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해방 후 건국에 이르는 과정에서 좌익 세력과 유혈(流血) 투쟁을 불사했던 우익애국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도둑처럼 온’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정치 투쟁에서 한 발 앞서나간 것은 좌익 세력이었다. 특히 박헌영이 이끌던 남로당은 전평·전농 등 외곽 세력을 앞세워 총파업, 폭동, 테러를 일삼았다. ‘친일(親日)’ 낙인이 찍혀 있던 경찰은 무력(無力)했고, 군(軍·국방경비대)은 경찰보다 더 무력했다.
그들을 대신해 좌익과의 투쟁에 나선 것이 서북청년단, 백의사(白衣社), 대동단 같은 우익단체들이었다. 오늘날 좌파사관에 물든 자들이 ‘극우단체’라고 비방하는 이들은 사실 ‘자유민주주의의 전사(戰士)’이자 ‘대한민국의 건국공신’이었다. 저자는 이들의 피어린 투쟁사를 백의사 대원이었던 백관옥의 증언, 방송작가 이영신의 《현대사 발굴》, 구월산유격대 출신인 이경남의 《분단시대의 청년운동》 등을 바탕으로 복원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일본 신민(臣民)으로 태어나 천황에 충성하는 일본 국민으로 교육받으며 자랐다. 그런데 조상의 나라가 일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상이 지켜온 가치를 이어갈 자기 나라를 그리며, 아직은 ‘이름조차 없는 나라’에 대한 애국심에 목숨을 걸었다. 배고픔을, 외로움을, 죽창에 찔리는 고통을 참고 또 참는 놀라운 인내도 보여주었다. 그들은 증오만치 사랑도 알았고, 동지애도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비겁함을 보이지 않았다.”
저자에 의하면 그렇게 죽어간 ‘건국전쟁’의 전사자들은 100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들이 승리했기에 대한민국이 세워질 수 있었다.⊙
‘도둑처럼 온’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정치 투쟁에서 한 발 앞서나간 것은 좌익 세력이었다. 특히 박헌영이 이끌던 남로당은 전평·전농 등 외곽 세력을 앞세워 총파업, 폭동, 테러를 일삼았다. ‘친일(親日)’ 낙인이 찍혀 있던 경찰은 무력(無力)했고, 군(軍·국방경비대)은 경찰보다 더 무력했다.
그들을 대신해 좌익과의 투쟁에 나선 것이 서북청년단, 백의사(白衣社), 대동단 같은 우익단체들이었다. 오늘날 좌파사관에 물든 자들이 ‘극우단체’라고 비방하는 이들은 사실 ‘자유민주주의의 전사(戰士)’이자 ‘대한민국의 건국공신’이었다. 저자는 이들의 피어린 투쟁사를 백의사 대원이었던 백관옥의 증언, 방송작가 이영신의 《현대사 발굴》, 구월산유격대 출신인 이경남의 《분단시대의 청년운동》 등을 바탕으로 복원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일본 신민(臣民)으로 태어나 천황에 충성하는 일본 국민으로 교육받으며 자랐다. 그런데 조상의 나라가 일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상이 지켜온 가치를 이어갈 자기 나라를 그리며, 아직은 ‘이름조차 없는 나라’에 대한 애국심에 목숨을 걸었다. 배고픔을, 외로움을, 죽창에 찔리는 고통을 참고 또 참는 놀라운 인내도 보여주었다. 그들은 증오만치 사랑도 알았고, 동지애도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비겁함을 보이지 않았다.”
저자에 의하면 그렇게 죽어간 ‘건국전쟁’의 전사자들은 100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들이 승리했기에 대한민국이 세워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