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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책

랍비를 찾아온 예수 (조지 베네딕트 지음 | 윤준희·이혜경 옮김 | 아트플랫폼 펴냄)

이승만을 도운 유대인 랍비 조지 베네딕트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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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4월 상연된 〈1919필라델피아〉는 1919년 4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서재필과 이승만의 주도로 열린 제1차 한인자유대회를 다룬 다큐멘터리 음악극이다.
 
  여기에는 낯선 인물이 한 명 등장한다. 유대교 랍비 조지 베네딕트(1887~?)다. 이 음악극을 본 이들 중에는 이 베네딕트가 한인자유대회를 기획하고 주도한 것처럼 묘사된 데 대해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기독교(개신교) 목사도 아니고, 천주교 신부도 아닌 유대교 랍비가 한인자유대회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후 설립된 한국친우회의 초대 총무까지 맡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해 3월 말 필라델피아의 한 문구점에서 우연히 서재필과 이승만을 만나 3·1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한국인을 만나본 적도, 한국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그가 왜 한국의 독립운동에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을까?
 
 
  ‘유대-그리스도인’
 
  주지하다시피 유대교와 기독교는 아브라함을 공통된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고 있으며, 유대인의 구약성경은 신약성경과 함께 기독교 신앙의 축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유대교는 기독교의 뿌리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교와 기독교는 지난 2000여 년간 서로를 용납하지 않아 왔다. 결정적인 이유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아(그리스도)’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초기만 해도 유대교의 분파(分派) 정도로 여겨졌던 기독교는 로마제국하에서 공인되고 국교(國敎)가 되고 중세 이후 유럽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후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로 몰아 박해하고 학살했다. 러시아 차르 정권이나 히틀러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유대인 학살을 조직적으로 자행했다. 이 과정에서 12사도를 비롯한 초기의 기독교인, 그리고 예수조차도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은 편리하게 망각되었다. 기독교인들의 박해를 받으면서 유대인들에게 예수와 십자가는 더욱더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런데 19세기 말 이후 유대인 가운데 예수를 구약이 예정하고 있는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들을 ‘유대-그리스도인(a Jewish Christian)’이라고 한다.
 

  조지 베네딕트는 바로 이 ‘유대-그리스도인’이었다. 독일 태생인 그의 모계와 부계 모두 저명한 유대인 랍비 집안이었다. 베네딕트는 영국 런던의 유대신학대학에서 공부하고 랍비 자격을 얻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했다.
 
  젊어서부터 베네딕트는 유대인들은 인격적인 하나님을 더 이상 믿지 않으면서 신앙을 잃어버린 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었던 소명은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예수를 ‘눈부시게 훌륭한 유대인, 영화로운 하나님,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영광, 완벽한 선지자, 제사장, 왕, 그리고 구약이 언젠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해온 메시아’로 받아들였다.
 
 
  베네딕트와 이승만의 만남
 
  그러면서도 베네딕트는 여전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聖靈) 체험을 하지 못하면서 신앙적으로 갈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때 그는 필라델피아의 한 문구점에서 서재필, 이승만과 우연히 만났고, 그들이 제1차 한인자유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돕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토록 고대하던 ‘성령 체험’을 하게 되었다. 베네딕트는 이승만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한국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그리스도를 단지 책으로만 배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을 통해 처음으로 그분의 능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향한 열정적인 사랑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았지요. 이와 같은 열정은 1세기 초 초대 교회에서 존재한 후 로마제국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을 온전히 사로잡은 것은 십자가 희생에 녹아 있는 그분의 열정이겠지요. 죽은 상태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인류를 섬겨왔던 그분에 대해 제가 새로운 마음으로 반응하게 된 것입니다. 내게는 처음 경험하는 심리적 발견이었어요. 지금까지는 제가 절반 정도만 붙들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이 말을 들은 이승만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절반 정도라고요? 그리스도가 이미 랍비 속에서 일하며 당신의 반을 얻었으니, 이제 곧 전부를 얻으시겠지요.”
 
  이는 베네딕트가 후일 ‘유대-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를 증거 하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예언이기도 했다.
 
  조지 베네딕트는 이후 한국친우회 총무 자격으로 미국 교회들을 돌면서 “프랭클린이나 워싱턴, 그리고 미국의 건국으로 이어진 독립운동의 지도자들처럼 한국인들은 자신의 대의(大義)를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고 믿으면서 열방(列邦)의 주권자인 그분의 손에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라면서 “저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샘물과 그것을 저에게 드러내 준 동료들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이후 내내 저는 그 샘물을 마시고 있습니다”라고 간증했다.
 
 
  이승만 독립운동사의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
 
  1919년 말 베네딕트가 다른 곳의 랍비로 옮겨가면서 그와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인연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인 이유와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인이 예수를 매개로 연합해야 하는 이유를 설파하면서, 1919년 필라델피아에서 한국인과 만났던 경험을 종종 상기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베네딕트가 당시 한국이나 한국 독립운동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들도 눈에 띈다. 하지만 당시 ‘코리아’가 세계 속에서 얼마나 초라한 존재였는지를 생각한다면, 그런 대목들이 큰 흠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측면에서 읽을 수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은 이 책을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종교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지적 담론으로 생각하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 현대사에 관심 있는 이들은 1919년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와 이승만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잃어버린 퍼즐의 한 조각을 발견하고 ‘독실한 기독교인 이승만’의 면모를 엿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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