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담론의 서사가 아닌 소(小)서사. 작지만 단단했던 우리의 음악 이야기, 1985~95년 사이에 있었던 인천 록메탈 연대기를 담은 책이다. ‘인천 음악 씬’을 기억하기 위해, 이 씬의 작은 지류가 한국대중음악사의 큰 물결로 더해졌음을 말하고 있다. 서울에 가려져 있지만 인천은 어느 도시보다 용광로처럼 뜨겁던 ‘메탈 시티’였다.
1980년대 이전까지 인천 밴드는 외국인 전용 클럽과 부평 애스컴, 월미도 등지에 주둔하던 미군을 위한 클럽 밴드가 전부였다. 그룹사운드 혹은 밴드라는 개념은 AFKN이나 해적판 LP 등을 통해 서구 음악을 접한 ‘록 키즈’ 청년들에 의해 198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됐다. 인천 밴드 1세대들은 인천시민회관과 수봉문화회관 등지에서 공연을 하며 활로를 찾았다. 인하공전 밴드 티삼스가 1987년 〈강변가요제〉에서 동상과 가창상을 수상하며 인천산(産)임을 만방에 알렸다. 한국 헤비메탈의 흐름에서 앞자리를 차지하던 사하라 등이 음악을 시작하던 때도 이즈음이었다.
1990년대 멤버가 교체된 아웃사이더스, 스컨드럴, 사두(Sadhu) 등 2세대들이 본격적인 밴드 활동을 시작하면서 대명라이브파크 같은 록 헤비메탈 전문 공연장도 개관했다. 음악감상 실심지, 성림음악감상실 등에서 록 공연이 열렸고 록 키즈들은 현대음악학원과 예인음악학원 등에서 기타와 드럼을 배우며 록 스타의 꿈을 키웠다.
1997년 사두가 데뷔 앨범을 발매했고 화이트, 블루 머치(Blue March) 같은 팀이 각종 록 콘테스트에 나가 상을 받았다. 밴드는 있었지만 레이블이나 기획사의 인프라가 형성되기 어려웠고, 지리적으로 서울과 가깝다는 이점이 오히려 인천을 ‘허브’로만 기능하게 했다. 인천산 헤머링(Hammering), 블랙 메디신, 알포나인틴(R4-19) 등의 음악인들은 지금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80년대 이전까지 인천 밴드는 외국인 전용 클럽과 부평 애스컴, 월미도 등지에 주둔하던 미군을 위한 클럽 밴드가 전부였다. 그룹사운드 혹은 밴드라는 개념은 AFKN이나 해적판 LP 등을 통해 서구 음악을 접한 ‘록 키즈’ 청년들에 의해 198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됐다. 인천 밴드 1세대들은 인천시민회관과 수봉문화회관 등지에서 공연을 하며 활로를 찾았다. 인하공전 밴드 티삼스가 1987년 〈강변가요제〉에서 동상과 가창상을 수상하며 인천산(産)임을 만방에 알렸다. 한국 헤비메탈의 흐름에서 앞자리를 차지하던 사하라 등이 음악을 시작하던 때도 이즈음이었다.
1990년대 멤버가 교체된 아웃사이더스, 스컨드럴, 사두(Sadhu) 등 2세대들이 본격적인 밴드 활동을 시작하면서 대명라이브파크 같은 록 헤비메탈 전문 공연장도 개관했다. 음악감상 실심지, 성림음악감상실 등에서 록 공연이 열렸고 록 키즈들은 현대음악학원과 예인음악학원 등에서 기타와 드럼을 배우며 록 스타의 꿈을 키웠다.
1997년 사두가 데뷔 앨범을 발매했고 화이트, 블루 머치(Blue March) 같은 팀이 각종 록 콘테스트에 나가 상을 받았다. 밴드는 있었지만 레이블이나 기획사의 인프라가 형성되기 어려웠고, 지리적으로 서울과 가깝다는 이점이 오히려 인천을 ‘허브’로만 기능하게 했다. 인천산 헤머링(Hammering), 블랙 메디신, 알포나인틴(R4-19) 등의 음악인들은 지금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