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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나들이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 展

“인도 조각의 가장 아름답고 섬세한 꽃”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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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 이후 인도 밖으로 나간 적 없었던 문화재들… 미국에 이어 소개”
⊙ 풍요와 생명의 땅, 신화와 불교의 땅에서 온 생동감 넘치는 조각들
⊙ 〈풍요의 신, 락슈미〉 〈석가모니의 이번 생 이야기〉 등 총 97점 전시
〈풍요의 신 락슈미〉, 2세기, 104.1 x 30.5 x 27.9cm, 인도 뉴델리국립박물관 소장
  여름, 공작새가 우짖기 시작한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몬순(계절풍)이 아라비아해에서 불어오는 계절이다. 이 바람은 남인도 거대한 땅에 비를 뿌린다. 그러자 모든 생명이 앞다투어 성장했고, 열대 우림이 우거졌다. 자연의 풍요는 고대(古代) 남(南)인도인들에게 상상력과 영감의 원천(源泉)이 됐다. 악어 주둥이에 코끼리 코, 물고기 지느러미 모양의 귀를 가진 전설 속 동물 마카라나 풍요의 신(神) 락슈미 모두 이들의 상상력에서 태어났다. 남인도인들은 조각에 곡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생동감과 리듬이 단번에 느껴진다. 스리랑카의 미술사학자 아난다 쿠마라스와미는 이런 곡선을 “인도 조각의 가장 아름답고 섬세한 꽃”이라고 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남인도에 불교가 전해지면서 전설 속 동물과 신들은 불교 세계관과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연스레 스투파(부처나 승려의 사리를 모신 탑을 뜻하는 인도 옛말)를 지키는 정령(精靈)이 되거나 석가모니를 보필하는 수호 정령이 됐다.
 
〈물이 가득 찬 풍요의 항아리〉, 기원전 2세기 후반, 44.5 x 34.3cm, 인도 알라하바드박물관 소장
  고대 남인도 불교를 조망할 수 있는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이다(~4월 14일).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함께 준비한 이번 전시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남인도 스투파 장식 부조 45점을 비롯해 총 97점의 고대 인도 초기 불교 미술품을 선보인다. 인도 뉴델리국립박물관 및 영국·독일·미국 등 4개국 18개 기관 소장품을 만나볼 기회다.
 
  전시의 시작은 1장 ‘신비의 숲’이다. 전시실은 이국적인 분위기로 연출돼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벽면은 온통 초록색이다. 곳곳엔 나무가 놓여 마치 열대 우림에 들어선 듯한 착각이 든다. 맨 처음 관람객을 반기는 유물은 〈물이 가득 찬 풍요의 항아리〉다. 항아리에서 활짝 피어난 연꽃을 중심으로 꽃망울 영근 연꽃이 좌우 대칭으로 새겨져 있다. 그 위에는 함사라고 불리는 새 두 마리가 다정하게 부리를 맞대고 있다. 항아리를 채운 물이 연꽃을 틔우고, 그 연꽃 위로 새들이 찾아온 것이다.
 
 
  여성미, 불교 조각의 주요 주제
 
전시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이다.
  신비의 숲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어린아이 키만 한 조각상이 서 있다. 풍만한 가슴과 굴곡진 허리 그리고 둥근 엉덩이를 가진 풍요의 신 락슈미다. 유물 이름 역시 〈풍요의 신, 락슈미〉로 지어졌다.
 
  락슈미의 온몸을 장식한 각종 장신구를 보니 당시 이 지역이 얼마나 풍요로웠을지 짐작할 수 있다. 락슈미는 관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자신의 한쪽 젖가슴을 부여잡은 채 고개를 살짝 아래로 돌려 바닥을 내려다보는 자세다.
 

  초기 불교는 청교도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지만, 여성미만큼은 불교 조각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이를 두고 독일의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짐머는 “여체(女體)를 묘사함에 있어 인도 예술은 다른 어떤 나라의 예술도 추종할 수 없는 달콤한 감각과 우아함으로 가득하다”고 평가했다.
 
 
  고대 신앙, 불교를 만나다
 
〈동전을 쏟아내는 연꽃 모자를 쓴 약샤〉, 3세기 말, 72 x 38cm, 인도 나가르주나콘다 고고학박물관 소장
  불교와 인도 고대 신앙이 만나는 지점을 잘 보여주는 유물도 있었다. 〈석가모니를 보필하는 나가〉가 대표적이다. 나가는 머리 다섯 달린 뱀 신으로 물을 다스린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이 유물에서 나가는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해 한 손에 불자(拂子·불교 수행자가 마음의 티끌과 번뇌를 털어내는 도구)를 들고 있다. 머리 부분을 장식한 뱀 모양의 머리쓰개를 통해 그가 나가임을 알 수 있다.
 
  이 유물은 기원후 3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인도 조각이 성숙기에 접어든 시기다. 이 시기 인물 조각은 역동성으로 가득하다. 인물의 몸을 치장한 장신구나 연꽃 장식도 화려하게 조각됐다.
 
  그 뒤편으로 익살스럽게 생긴 조각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발달한 광대뼈와 치켜 올라간 눈매, 불룩 튀어나온 배 그리고 허리춤에 올린 한쪽 팔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재물과 생산의 신 쿠베라를 보좌하는 약샤다. 이들은 나무에 깃들어 살며 풍요를 가져오는 정령으로 여겨졌다. 남성형은 약샤, 여성형은 약시로 불렸다. 〈동전을 쏟아내는 연꽃 모자를 쓴 약샤〉 역시 불교와 고대 신앙의 접점을 잘 보여준다. 약샤가 쓴 모자를 보자. 연꽃으로 장식된 모자는 약샤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받아 교화됐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런데 이 모자에서 동전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돈은 벌고 싶지만, 석가모니의 가르침도 따라야 했던 남인도 상인들의 속마음이 아니었을까?
 
 
  사리와 8만4000개의 스투파
 
〈석가모니의 이번 생 이야기〉
  2장 ‘이야기의 숲’에 들어서면 스투파를 매개로 한 석가모니의 생애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는 열반에 들기 전 제자들에게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장례 절차에 따라 자신의 시신을 처리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륜성왕은 통치의 수레바퀴를 굴려 세계를 통일해 지배하는 인도 신화 속 제왕이다. 제자들은 석가모니를 화장해 얻은 사리(舍利)를 8개 스투파에 나눠 모셨다. 이로부터 150년 뒤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은 갠지스강 유역의 스투파에서 사리를 꺼내 인도 곳곳에 8만4000개의 스투파를 세웠다.
 
  〈석가모니의 이번 생 이야기〉라는 부조에서 석가모니의 생애가 엿보인다. 하나의 원 안에서 한 장면씩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야기는 맨 오른쪽 원에서 시작해 맨 왼쪽 원에서 끝난다. 첫 번째 원은 석가모니가 출가의 뜻을 밝히자 왕비를 비롯한 궁 안 여인들이 슬퍼하는 장면이 담겼다. 두 번째 원은 석가모니가 말을 타고 성을 빠져나가는 장면을 묘사했다. 불교의 수호신 중 하나인 인드라가 등장해 그에게 햇빛을 가리는 산개(傘蓋)를 씌워준다. 장차 그가 귀한 존재가 될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세 번째 원에서는 석가모니의 수행을 방해하는 악마가 등장한다. 악마의 갖은 유혹에도 석가모니는 결국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마지막 네 번째 원에서 그는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상상력을 지탱해온 영웅 서사 구조를 느낄 수 있는 유물이다.
 
  〈석가모니의 이번 생 이야기〉는 안드라프라데시주 나가르주나콘다에서 발굴됐다. 3세기 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남인도 불교 예술의 중심지로 이곳에서 제작된 부조 속 등장인물 대부분은 역동적인 동작을 취하고 있다.
 
  초기 불교도들은 ‘감히’ 석가모니의 형상을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신 석가모니를 대체할 상징물을 찾고자 했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석가모니의 발바닥 자국·수레바퀴·연꽃이다. 불교 미술에서 이 시기는 ‘무불상(無佛像) 시대’로 구분된다. 무불상 시대는 석가모니 사후(死後) 500년 뒤까지 이어졌다.
 

  이번 전시에는 무불상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 여러 점이 출품됐다. 그중 〈태양처럼 빛나는 바퀴〉가 인상적이다. 기원전 2세기 후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멈추지 않고 구르는 수레바퀴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상징한다. 유물 속 사람들은 커다란 수레바퀴를 향해 경배하고 있다. 맨 아래 두 사람은 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고 있고, 양옆의 두 사람은 손을 가슴에 모은 채 기도하고 있다.
 
  이들 조각은 과거 스투파를 둘러싼 화려한 문과 울타리의 일부였다. 스투파는 화려한 외형과 상당한 크기를 자랑했다고 한다. 그중 돔 지름이 50m에 달하는 스투파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안타깝게도 세월이 지나며 스투파와 울타리 대부분은 무너졌다. 이를 장식하고 있던 조각들 역시 저마다 이야기를 품은 채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대중 언어로 풀어낸 전시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지난해 12월 2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굴된 이후 한 번도 인도 밖으로 나간 적 없었던 문화재가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에 소개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쉽게 볼 수 없는 남인도 불교 유물을 전시한 것도 의미가 크지만, 불교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일반 관람객이나 어린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전시를 준비하며 학예사들은 깊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전시 설명문 역시 관람객들이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컨대, ‘드넓은 남인도에 펼쳐졌던 스투파의 숲을 여행하듯 그사이를 거닐며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을 맞춰보시면 어떨까요?’ ‘스투파에 새겨진 석가모니의 인생 이야기는 요즘 드라마나 영화만큼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었을 것입니다’ 같은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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