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예술 나들이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서울이 그린 새로운 지도를 따라서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프랑소와 노체 〈코어 덤프〉, ‘불공정한 소비 과정’을 염두에 둔 듯
⊙ 제시 천 〈오 더스트〉, 유럽 언어의 권력에 도전
⊙ 로-데프 필름 팩토리 〈지하 흔적 아카이브〉, 아프리카 천연자원 채굴의 역사 도식화
⊙ ‘연대’ ‘공생’ ‘생태 보전’ ‘실천’과 같은 가치에 귀 기울여본 적 있을까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가 진행 중인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서울은 지금 미술 축제로 한창이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2023.9.21 ~11.19)가 2년 만에 돌아왔다. 올해 12회째를 맞은 이번 비엔날레 제목은 〈이것 역시 지도〉다. 전 세계 예술가 40명(팀)이 참여해 61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비엔날레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의 입을 빌려 소개한다.
 
  “이주·이산·경계·환경오염·자연 채굴 등에 대해 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지식과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서구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벗어난 출품작들은 이 시대의 다층적인 네트워크·움직임·이야기·정체성·언어를 파악하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번 비엔날레를 기획한 레이철 레이크스 예술감독 역시 “미디어를 재료로 삼아 글로벌 역학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특정 민족이 자의 혹은 타의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집단을 형성하는 것 또는 그러한 집단)와 갈 곳 잃은 사람들의 삶을 쫓아가면서 지구를 리맵핑하고자 했다”고 밝힌다.
 
  이번 비엔날레는 주제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새로운 지도 그리기’를 내세웠다. 국경에 따라 그려진 기존의 지리적 질서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전이다. 이른바 ‘비영토적 지도 그리기(non-territorial mapping)’.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전시 장소를 서울 시내 여러 군데로 분산해 개최했다. 서울시립미술관·서울역사박물관·SeMA 벙커·스페이스mm·소공 스페이스·서울로미디어캔버스 등 6곳이다. 인상적인 작품을 중심으로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살펴본다.
 
 
  그로테스크한 작품이 시사하는 ‘新식민 문화’
 
프랑소와 노체의 〈코어 덤프〉(2018~2019)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3층 전시실에 들어서니 폐전자기기로 만들어진 설치 작품 여러 점이 시선을 압도한다. 프랑소와 노체의 작품 〈코어 덤프〉 (2018~2019)다.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는 폐전자기기 탑 사이를 거닐다 보면 영상 작품과 마주한다.
 
  미국 뉴욕, 중국 선전,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 카메룬 다카르를 배경으로 제작된 이 영상 작품은, 전자기기의 자원 채굴-생산-유통-폐기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맹점을 다룬다. 아프리카에서 채굴되는 각종 원자재가 중국으로 건너가 전자기기의 부품으로 가공된다. 여기서 만들어진 전자기기는 미국으로 건너가 사용되다가 수명이 끝나면 다시 아프리카로 보내져 폐기된다.
 
  영상 속 주인공은 다카르에서 폐전자기기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일을 한다. 사과(apple)를 즐겨 먹던 주인공은 어느 날 작업 도중 감전(感電)되고 만다. 고통스러워하지만, 이내 이성을 되찾고는 감전된 자신의 얼굴을 폐부품을 이용해 ‘수리’한다.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다. 그렇게 얼굴 수리를 마친 주인공은 디지털 방식으로 소통하는 ‘사이보그 인간’이 된다. 그리고 각성한 듯, 소비 주체들을 향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나는 역사에 갇혀 있지 않다.” “기계들이 모두 봉기하여 인간 주인을 말살할 때까지는.” “다카르 어린이 40여 명의 혈액에서 대량의 납 성분이 검출되었다.”
 
  실제 아프리카 서부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기기 쓰레기장’으로 불린다. 예컨대, 가나의 수도 아크라의 한 집하장에는 매년 42메가 톤의 전자 폐기물이 버려진다. 대부분 외국에서 사용된 것들이다. 이 쓰레기장은 인근 주민들의 질병 및 화재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작가는 이 ‘불공정한 소비 과정’을 염두에 둔 듯하다.
 
 
  티베트어가 가진 아름다움
 
쉔 신의 〈지구는 푸르네〉(2022)
  국경이 아닌 사용되는 언어를 따라 지도를 그리면 새로운 지도가 생성된다. 언어는 같은 국가 내 다른 민족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론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의 일방적인 중국어 교육을 꼽을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2층에는 쉔 신의 작품 〈지구는 푸르네〉(2022)라는 영상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티베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겪은 ‘잊힌 역사’와의 화해 과정을 그린다. 작가의 아버지는 티베트와 인도의 인물화를 그렸다고 한다. 작가는 티베트어를 가르치는 교사를 찾아가 빛과 색을 표현하는 단어를 배운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티베트어가 가진 아름다움을 조금씩 알아간다. 티베트어와 중국어, 두 사람의 대화에 따라 아름다운 빛이 퍼져나가는 영상이 무척이나 신비롭다.
 
 
  유네스코 본부, 언어의 권력 확인할 수 있는 곳
 
제시 천의 작품들이 전시된 서울역사박물관.
  이어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곳엔 제시 천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 중 영상 작품 〈오 더스트〉(2023)에서 작가의 정체성(正體性)과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홍콩, 캐나다, 미국 등 다양한 나라를 오가며 살아온 탓에 작가는 언어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각 언어에도 권력 구도가 있다고 봤다. 작가는 언어의 권력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UNESCO) 본부를 선택했다. 작품은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리는 회의의 모습을 그린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계자들이 각자의 언어로 회의에 참여한다. 이들의 언어는 모두 프랑스어로 통역된다. 통역되지 않는 유일한 단어는 관계자들의 이름뿐.
 
  작가는 영상 중간중간 한국 전통 무용수가 춤추는 장면과 자신의 할머니에게 전하는 편지 낭독 사운드를 삽입했다. 작가의 할머니는 실제 한국 전통 무용수였다고 하는데, 이후 승려가 돼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 낭독은 영상 말미로 갈수록 중얼거림으로 변해 이해할 수 없는 소리가 된다. 이와 동시에 송출되는 자막 역시 영어와 한국어가 겹쳐 알아볼 수 없게 변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유럽 언어가 갖는 권위와 위계에 도전한다.
 
  서울 여의도 SeMA 벙커에서 열리는 전시는 천연자원 채굴의 역사를 통해 지하 생태계 지도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눈길이 간 작품은 전시장 벽면을 가득 메운 로-데프 필름 팩토리의 작품 〈지하 흔적 아카이브〉(2021~2023). 작품은 아프리카 천연자원 채굴의 역사를 그 맥락에 따라 그려놓았다. 마치 생물의 분화 과정을 그린 도표를 보는 듯하다. 이를테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에 사용된 우라늄이 콩고민주공화국의 싱콜로붸 광산에서 채굴됐고, 이렇게 만들어진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다고 설명한다.
 
 
  아프리카 천연자원 채굴, 원자폭탄 투하로…
 
  또 벽면에 적힌 ‘아카이브를 넘어’ ‘아프리카의 기술정치적 아카이브를 향하여’라는 문구를 통해 아프리카 대륙의 역사가 세계사적 맥락에서 얼마나 많이 축소됐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아프리카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은 서구와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이들의 역사는 승자의 입맛에 따라 취사 선택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SeMA 벙커 역시 지하 전시 공간이라는 것. 천연자원 채굴 문제를 다루기 최적의 장소다. 이곳은 2005년 여의도 환승센터 건립을 위한 조사 중 발견됐다. 1970년대 군사 정권 시절 만들어진 공간으로 추정된다. 2017년부터 미술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문화적, 철학적, 역사적 틀로 본 우리 사회의 거울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이번 비엔날레가 말하는 ‘지도’는 단순히 영토를 나누는 도구가 아니다. 문화적, 철학적, 역사적 틀로 본 우리 사회의 거울에 가깝다. 이렇게 한번 만들어진 ‘지도’를 다시 그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10월 14일 호주에서 치러진 국민투표 결과가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투표는 호주 원주민과 토러스 해협 도서민을 ‘호주 최초의 국민’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대변할 기구를 신설하는 내용의 개헌을 묻는 것이었다.
 

  호주 전체 인구(2600만 명)의 약 3.2%를 차지하는 원주민은 호주 대륙에서 6만 년 이상 살아왔지만, 호주 헌법에는 언급돼 있지 않다. 호주 헌법은 ‘영국이 주인 없는 땅에 나라를 세웠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원주민은 사람이 아닌 ‘토착 동물’로 취급됐었다. 지난해 5월만 해도 찬성 지지율이 80%에 이를 만큼 많은 사람이 개헌에 동의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유권자의 61%가 ‘반대’ 표를 던졌고, 개헌안은 부결됐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서구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세계를 새롭게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일각에선 예술계의 이런 주장이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일리가 있다. ‘고작’ 예술이 세계의 위기 극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도 적다. 그런데 비엔날레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을 나올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단 한 번이라도 ‘연대’ ‘공생’ ‘생태 보전’ ‘실천’과 같은 가치에 귀 기울여본 적 있을까. 예술의 주장이 이상적이라고 비판하기 전에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