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가 거래 외교? 원래 외교는 가장 높은 수준의 거래”
⊙ “트럼프를 인정하고 제대로 봐야”
⊙ 젤렌스키, 잘못된 영어 구사로 미국 대통령 협박… 최악의 외교 실수
⊙ “관세는 도구일 뿐… 트럼프는 미·중·러가 균형을 이루는 판세로 국제체제 개편하려 한다”
⊙ “전시작전통제권 가져오고, 핵 재처리 권한 확보해야”
⊙ “미국에 ‘우리가 가장 먼저 싸울 것… 우리도 함께하게 해달라’고 해야”
金珍祐
1967년생. 美 조지타운대 학사, 하버드대 석사, 예일대 박사 / 美 해군분석센터 작전분석그룹 군사작전·동아시아 담당 분석관, 美 로렌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 핵 비확산·국토 및 국제안보 담당실 동아시아·북한 담당 선임분석관, 국제안보연구센터 연구위원, 美 국방부 장관실 총괄평가국 특별보좌관, 美 국무부 검증·준수·이행국 차관보실 총괄 선임보좌관 역임. 現 세르모국제연구소 소장, 서강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그 너머:국가경영의 예술》
⊙ “트럼프를 인정하고 제대로 봐야”
⊙ 젤렌스키, 잘못된 영어 구사로 미국 대통령 협박… 최악의 외교 실수
⊙ “관세는 도구일 뿐… 트럼프는 미·중·러가 균형을 이루는 판세로 국제체제 개편하려 한다”
⊙ “전시작전통제권 가져오고, 핵 재처리 권한 확보해야”
⊙ “미국에 ‘우리가 가장 먼저 싸울 것… 우리도 함께하게 해달라’고 해야”
金珍祐
1967년생. 美 조지타운대 학사, 하버드대 석사, 예일대 박사 / 美 해군분석센터 작전분석그룹 군사작전·동아시아 담당 분석관, 美 로렌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 핵 비확산·국토 및 국제안보 담당실 동아시아·북한 담당 선임분석관, 국제안보연구센터 연구위원, 美 국방부 장관실 총괄평가국 특별보좌관, 美 국무부 검증·준수·이행국 차관보실 총괄 선임보좌관 역임. 現 세르모국제연구소 소장, 서강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그 너머:국가경영의 예술》
- 3월 3일 미국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중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 JD 밴스(오른쪽) 미 부통령과 언쟁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AP/연합뉴스
“트럼프를 제대로 봐야 해요.”
김진우 세르모국제연구소 소장이 말했다. 김 박사는 미국의 공화당 깊숙이 들어가 본 아마 한국에서 유일한 인사다. 미국 국무부, 국방부 등 정부 부처와 여러 연구소에서 일하며 핵무기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다. 대통령 탄핵의 그림자가 서울 거리에 한참 드리워져 있던 지난 3월 6일 그를 서울 서강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그는 서강대에서 국제관계 강의를 하고 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외교는 가장 높은 수준의 거래”
“싫다, 무식하다, 나쁜 놈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제대로 판단 못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이렇게 평가하지요. ‘역시 사업가라 거래적(transactional)이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외교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거래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영국을 도왔죠? 원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영국을 도울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다 군수 물자를 제공하는 ‘렌드리스(Lend-lease act)’ 프로그램을 했죠. 이게 미국이 퍼준 게 아니에요. 빌려줬지요. 영국은 미국에 그때 진 빚을 50년 동안 갚다가 2006년 말에야 다 갚았어요.”
― 동맹이라 그냥 도와준 건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가쓰라-태프트 밀약 보세요. 우리나라가 거래 대상이 됐잖아요. 이건 거래 아닌가요? 역사를 봐야 해요. 지금 한국에서 ‘트럼프는 장사꾼’이라고 하는데 다른 대통령은 안 그랬냐는 얘기입니다. 한국 대통령은 외교에서 거래 안 합니까? 그냥 퍼줍니까?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전 참전을 두고 거래 안 했을 것 같나요?”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1905년 7월 일본 수상 가쓰라와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가 도쿄에서 대한제국과 필리핀에 대한 이해를 두고 맺은 합의다.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통치상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미국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권 확립을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젤렌스키의 외교 실수
― 지난 2월 28일에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인 일에 세계가 놀랐지요.
“맥락을 봐야 합니다. 2월 12일에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키이우에 갔어요. 원래 그때 광물협정을 체결하자고 했는데, 젤렌스키가 뮌헨안보회의에서 서명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2월 14일에 뮌헨에서 밴스 부통령, 루비오 국무장관이 젤렌스키와 만났어요. 젤렌스키가 이때도 지금 서명 안 하고 워싱턴에서 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백악관에서 다시 만난 겁니다. 이미 협정 내용이 다 조율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명만 하면 됐어요. 그런데 정상회담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그렇게 된 거예요.”
기자회견은 총 50분가량 이어졌다. 거친 대화가 오가는 막판 7분이 아니라 전체 회견을 봐야 상황이 좀 이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종전을 위한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밴스 부통령이 말했다. 그러자 젤렌스키는 ‘당신이 말하는 외교가 뭐냐’고 물었다. 이때부터 설전이 시작됐다.
급기야 젤렌스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전쟁 중에는 모두가 문제를 겪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아름다운 바다가 있고 지금은 그 영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에는 느끼게 될 것입니다(You will feel in the future). 신의 가호가 있기를, 당신들이 전쟁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가 뭘 느낄지 말하지 마시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오.”
서로 목소리를 높이던 끝에 젤렌스키가 말했다.
“당신들은 그 영향을 느끼게 될 겁니다(You will feel influence).”
잘못된 조언받은 젤렌스키
젤렌스키 대통령은 왜 이랬을까. 젤렌스키가 회담 직전 빅토리아 눌런드, 토니 블링컨 같은 전·현직 외교 관료들을 만나 ‘세게 나가라’는 잘못된 조언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후에 흘러나왔다. 반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젤렌스키에게 회담에서 부드럽게 하라고 조언했다. 그레이엄 의원의 조언을 안 들은 거다.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밴스, 루비오 모두 젤렌스키를 아예 안 믿어요. 바뀐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시그널이 린지 그레이엄 의원입니다. 그레이엄 의원은 우크라이나를 9번이나 방문했어요. 우크라이나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였어요. 바이든 정부 때부터 한결같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회담 후 그레이엄 의원이 ‘나는 이제 젤렌스키를 상대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 학을 뗐군요.
“트럼프 대통령 자신은 거칠고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만, 예의나 정중함을 굉장히 따지는 사람입니다. 그 회담도 어떻게 보면 트럼프가 젤렌스키를 배려해 마련한 자리였어요. 원래 회담이라는 게 살벌합니다. ‘그래서 당신 나라에 탱크 몇 대 있는데? 50대도 없지? 어떻게 혼자 싸울 건데?’ 이런 식이에요. 회담의 맨얼굴인 거죠. 그걸 젤렌스키가 언론들 앞에서 노출한 겁니다.”
― 젤렌스키 대통령이 ‘당신들도 전쟁의 영향을 느끼게 될 거다’라고 말한 건 명백한 실수 같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전쟁을 중재해 주려는 지도자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그건 협박이에요. 오바마 대통령이었어도 화냈을 겁니다. 그래서 한 우크라이나 기자가 그랬어요. ‘젤렌스키는 왜 우크라이나 말로 회담을 안 하나. 제대로 못 하면서 영어로 회담을 하니 뉘앙스도 모르고 그런 표현을 쓴 거 아닌가.’”
“이승만과 젤렌스키는 달라”
젤렌스키의 언행을 두고 일부 한국 언론은 ‘젤렌스키와 이승만 대통령이 닮았다’고 보도했다. 김 소장은 ‘두 사람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냐’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1999년 논문 〈당근과 속박 : 아이젠하워, 이승만, 한국의 2중 봉쇄(Carrot and Leash: Eisenhower, Syngman Rhee, and the Dual Containment of Korea)〉를 써서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은 2001년 연세대 이승만 연구소를 통해 《Master of Manipulation: Syngman Rhee and the Seoul-Washington Alliance, 1953-1960》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의 말이다.
“이승만에 대한 미국 내 기록을 논문 준비하며 먼저 봤어요. 이 대통령은 그 시절에 하버드에서 석사, 프린스턴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우드로 윌슨 미 대통령 밑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박사 논문은 〈전시 중립론〉이었어요. 나중엔 한국의 안위를 위해 미국 정가를 다니며 싸웠어요. 그렇지만 예의를 지켰습니다.”
이승만은 국제정치 정세를 잘 읽었다. 1941년 미국에서 발행한 책 《Japan Inside Out(일본 내막기)》에서 일본의 침략 야욕과 미국 공격 가능성을 예언했다. 5달 뒤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이 박사의 책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 조선 시대에 태어난 인물이 미국 대통령 밑에서 국제정치 연구를 했다니 다시 생각해도 참 대단하네요.
“이 대통령은 아이젠하워를 만나 이렇게 말했어요. ‘제발 좀 한국을 도와달라. 우리는 막 태어난 아기나 다름없는 나라다. 어떻게 소련이랑 핵전쟁을 할 수 있겠나.’ 젤렌스키처럼 공개적으로 거친 말들을 하지 않았단 얘기입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젤렌스키와 비교합니까.”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치, 3000조원 이상”
― 미국 정치인들은 이 대통령을 어떻게 봤을까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존 포스터 덜레스 장관이 당시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어요. ‘이 노인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불쌍하다. 그는 자신의 나라를 위해 있는 힘껏 싸우고 있다.’ 이 대통령은 휴전협정이 진행 중이던 1953년 6월에 반공포로들을 석방해 버렸어요. 미국에서 난리가 났어요. 이 대통령 납치 작전(Operation Everready)까지 세웠죠. 실행하진 않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지만요.”
1953년에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이 체결한 가장 성공적인 조약으로 꼽힌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021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하 방위조약)의 경제적 가치를 추산해 봤다. 2000년 이후로만 따져도 3000조원이 넘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 이 대통령은 미국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효과적으로 공략한 모양이군요.
“그 옛날에 워싱턴DC 정치를 파악했어요. 외무장관한테 ‘누구 만나서 이렇게 하라’며 정확히 지시를 내려요. 본인도 워싱턴에 가서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도 만나고 군인들도 만나죠. 제가 논문에 썼듯, 미국은 처음엔 절대 한국과 방위조약을 맺을 생각이 없었어요. 한국은 미국에 별로 필요 없는, 없어도 되는 나라였으니까요. 오로지 이승만이 협상으로 방위조약을 이끌어낸 겁니다.”
― 일부 반미(反美) 세력은 미국이 필요해서 방위조약을 맺은 것처럼 말하는데요.
“한국인들이 자존심을 중시하는 건 좋아요. 하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 알아야지요.”
전쟁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
시계를 확대해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살펴보자. 도대체 러-우 전쟁은 왜 일어난 걸까. 김 소장의 말이다.
“역사를 정확히 봐야 합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다른 국가를 침공했다고 주장합니다. 푸틴은 그 말에 이렇게 답해요. ‘코소보는?’”
1999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 지역을 공습한다. 인종 청소와 전쟁 범죄를 막기 위한 작전이었다. 공습은 78일 동안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최초로 NATO가 군사적으로 개입한 사례다. 결국 이듬해 밀로셰비치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은 실각한다.
― 푸틴 입장에선 처음 침공한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사실 당시 미국 내에서도 코소보 공습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학자는 많지 않았어요. 루스 웨지우드 존스홉킨스대 국제법 교수 정도였지요. 그는 나토의 군사 개입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어요.”
― 이번의 경우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고 싶어 했고 러시아는 그걸 원하지 않는 거지요?
“1990년 독일이 통일될 때 미국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James Baker)가 고르바초프에게 ‘NATO는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되지 않을 것(not one inch eastward)’이라고 말한 기록이 있어요. 러시아 입장에선 그걸 조건으로 독일 통일을 허락한 거예요. 그런데 그 뒤 어떻게 됐어요. 나토가 계속 동쪽으로 확장했잖아요.”
1991년 소련이 붕괴한 후, 나토는 동유럽 국가들의 가입을 허용했다. 1999년엔 폴란드, 체코, 헝가리가 가입했고, 2004년엔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가 나토에 들어갔다. 2010년대 이후엔 몬테네그로(2017), 북마케도니아(2020), 핀란드(2023), 스웨덴(2024)이 가입했다.
냉전 초기 미국의 대(對)소련 정책인 ‘소련 봉쇄 정책’을 설계한 러시아 전문가 조지 케넨은 1990년대 이후 나토의 동진(확장)에 강하게 반대했다. 1997년에 그는 “NATO가 동유럽으로 확장하면, 결국 러시아와의 새로운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터지면서, ‘케넨의 예측이 정확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 러시아 입장에선 이런 마당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약속 위반일 수 있겠네요.
“2008년에 조지아가 나토 가입을 시도했어요. 그러자 러시아가 조지아를 공격했어요. 2014년엔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합병했습니다. 2014년이 중요해요. 당시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친러시아 성향이었어요. 그런데 시위가 일어난 후 축출됐어요.”
“푸틴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해야”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대규모 반정부 시위(유로마이단 시위)가 키이우에서 계속됐고, 결국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를 떠났다. 야누코비치 축출 뒤에 미국 CIA가 있다는 추측이 불거졌다. 미국 국무부의 빅토리아 눌런드 차관보는 “미국은 1991년 이후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50억 달러를 지원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키이우를 방문해 시위대와 연대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 러시아 입장에선 미국이 먼저 우크라이나에 개입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지금 서방은 푸틴에게 인종 청소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요. 돈바스와 크름반도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인들을 죽였다고 러시아 측은 주장하고 있고요. 그래서 돈바스랑 크름반도로 들어갔다는 거죠. 푸틴이 아무 이유 없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게 아닙니다. 푸틴을 두둔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는 해야지요.”
― 트럼프는 앞으로 세계의 판을 어떤 식으로 짜려는 걸까요.
“미국은 ‘리버스 키신저(Reverse Kissinger)’ 정책을 하려는 겁니다. 키신저는 마오쩌둥(毛澤東)과 손잡고 관계를 개선해, 소련을 견제하려 했어요. 이번엔 거꾸로 러시아를 인정하고 관계 개선을 하려는 거죠. 러시아와 함께 군축도 다시 하고요. 그렇게 해서 중국을 견제한다기보단 ‘우리 셋이 같이 가자’ 이렇게 하려는 것 같아요.”
― 중국에 관세를 올린다고 경고하는데 같이 가려는 게 맞을까요.
“한국인들이 잘 이해해야 해요. 관세는 정책이 아닙니다. 관세는 도구예요. 관세를 갖고 협상을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볼 때는 관세를 가지고 시진핑(習近平)이랑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는 겁니다. 중국도 지금 내부에서 문제가 많아요. 시진핑도 미국이 필요할 거예요.”
― 만약 그 구상이 실현된다면 세 강대국이 균형을 이루는 모양새가 되겠네요.
“군사적 영향력을 중심으로 구분해 보자면 미·중·러가 초강대국(first tier), 영국·프랑스·독일 같은 곳은 중견국(middle tier), 우크라이나 같은 곳은 약소국(third tier)인 거죠.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는 러시아를 초강대국에서 빼기도 합니다.”
― 우리는 중견국일까요.
“글쎄요. 자꾸 한국의 군사력이 전 세계 5위라고 하는데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5위는 의미가 없어요.”
트럼프가 계승한 잭슨적 전통
― 한국 같은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은 지켜달라고 징징대는 고객(client)을 원하지 않아요. 독립적인 친구를 원합니다. 미국 정치·외교에는 세 가지 정신적 조류가 있어요. 제퍼슨적 전통(Jeffersonian Tradition), 해밀턴적 전통(Hamiltonian Tradition), 잭슨적 전통(Jacksonian Tradition)입니다. 트럼프는 잭슨적 전통을 따릅니다.”
제퍼슨적 전통은 ‘작은 정부, 외교적 개입 최소화’로 표현할 수 있다. 불필요한 군사 개입을 반대하고 고립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전통이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정책 성향이었다.
해밀턴적 전통은 ‘강한 중앙정부, 경제·군사 강국, 글로벌 리더십’을 중시하는 조류다.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주도적 역할(Global Leadership)을 해야 한다는 믿음 아래, 국제 동맹과 협력을 중시하며 경제적 자유주의(자유무역, 국제 금융질서 유지)를 선호한다. 군사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경제적 영향력을 통한 외교를 우선시한다. 알렉산더 해밀턴, 우드로 윌슨,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에 해당한다.
잭슨적 전통은 쉽게 ‘강한 군사력, 애국주의, 대중주의(populism), 미국 중심주의(America First)’를 말한다. 강한 민족주의(Nationalism)와 애국주의를 강조한다. 일반 대중과 보통 시민의 권리를 중시하고 국제기구보다 국가의 주권을 우선한다. 자유무역보다는 보호무역을 선호한다. 앤드루 잭슨과 도널드 트럼프가 이에 해당한다.
― 그러니까 지금은 잭슨적 전통의 시대군요.
“앤드루 잭슨 대통령 역시 재임 당시 ‘거칠고 천박하다’는 비판을 들었어요. 특히 엘리트 계층이 그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군대를 보면 어떤 출신배경을 가진 군인들이 가장 열심히 싸우는 줄 아세요? 백인들 중에서도 중하급층,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이민자 출신, 소위 ‘레드넥(Redneck)’이라 불리는 이들입니다. 힐빌리에서 온 JD 밴스 같은 이들이에요.”
레드넥은 미국 남부 및 시골 지역의 백인을 가리키는 속어로, 종종 촌스럽거나 교육 수준이 낮은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을 조롱하는 의도에서 사용된다. 김 소장의 설명이 계속됐다.
“잭슨적 전통에선 자립, 독립, 충성심을 강조해요. 그러면서도 예의를 중시합니다. 평판을 중시하고 약속하면 꼭 지켜야 한다고 여겨요. 싸움에 개입하는 걸 싫어하지만, 이왕 개입하게 되면 박살을 내려 합니다. 마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한국 전쟁 당시 북한은 물론 중국 본토도 공격해야 한다고 한 것처럼요. 잭슨 대통령 별명이 올드 히코리(Old Hickory·히코리 고목)였어요.”
히코리나무는 북미산 참나뭇과의 매우 단단한 나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초상화를 걸어놨다.
미국에 기대는 유럽 안보
― 트럼프는 자신을 앤드루 잭슨 전통의 계승자라 생각하는군요.
“그렇죠. 잭슨적 세계관은 복잡한 걸 싫어합니다. ‘세상의 문제는 복잡하지만 해결책은 단순하다.’ 엘리트 계층 눈에는 거칠고 천박해 보이죠. 트럼프가 내놓은 가자지구 해법을 보세요.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해서 개발하겠다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비웃었죠. 그런데 이 해법을 들은 아랍인들의 속내는 어떨 것 같나요? ‘오, 신이여 감사합니다’예요. 그동안 하마스 때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살았는데 미국이 거기에 주둔하면 누가 덤빌 수 있겠어요.”
― 그럴 수 있겠네요.
“지금 미국과 나토가 루마니아 내의 흑해 연안에 유럽 최대의 군사기지를 짓고 확장하고 있어요. 이유가 뭘까요. 흑해 연안에 주둔해 있어야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으니까요. 러시아 입장에서는 흑해에 있는 노보로시스크(Novorossiysk)항 같은 항구가 매우 중요해요. 부동항이 몇 군데 없으니까요. 블라디보스토크는 너무 멀고요. 미국은 이런 점을 이미 20년 전에 간파하고 그곳에 군사기지를 지은 겁니다.”
― 결국 유럽의 안보는 미국에 기댈 수밖에 없네요.
“그런데도 유럽이 미국 없이 러-우 전쟁을 치르겠다고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은 국방예산을 늘리겠다고 했지요. 계속 그런 식이면 현재의 복지 시스템 유지 못 합니다. 과연 독일이 자국의 복지를 포기하고 우크라이나를 도울까요? 한국은 정말 세계정세를 제대로 봐야 해요.”
미군, 소규모 원정 기동부대로
―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 국방장관(2001~2006 재임)은 재임 당시 미군의 전략을 ‘고정 주둔’에서 ‘기동성 중심의 유연한 배치’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했지요. 부분적으로만 실행됐지만요. 만약 트럼프 정부가 효율성을 내세우며 또다시 이런 정책을 추진하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미국 군사 전략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미국 해병대를 보면 됩니다. 규모가 작지만 제일 영향력이 센 군대예요. 전쟁터에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많이 죽지요. 데이비드 버거(David Berger) 전 미국 해병대 사령관(2019~2023 재임)이 군사 전략을 주장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이 전쟁을 일으키면 우리가 이길 수 없다.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 본부에서 대규모 병력이 가려면 시간이 걸린다.’”
데이비드 버거 전 사령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과의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해병대의 역할을 전통적인 대규모 상륙 작전 중심에서 소규모, 기동성 있는 해상 기동부대 중심으로 개편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바로 ‘포스 디자인 2030(Force Design 2030)’이다. 대규모 상륙전 중심이 아닌 소규모 원정 기동부대를 도입해 태평양 섬들 곳곳에 해병대를 배치하고, 신속하게 이동하며 작전을 수행하는 개념이다. 전차가 아닌 소형 함정과 헬리콥터, 드론 등을 활용하여 분산 작전을 수행한다.
대만 위해 미국이 전쟁 감수?
― 중국은 대만을 삼키겠다는 야욕을 공공연히 보이고 있는데요, 거기에 대한 대비일까요.
“그렇죠. 하지만 대만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TSMC가 더 이상 인질이 될 수 없어요. TSMC가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고 있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할 겁니까. 미국에서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과 톰 카튼 상원의원이 충돌했어요. 카튼 의원은 전통적인 공화당 정치인이에요. 대만을 끝까지 지키자는 쪽이죠. 콜비는 생각이 달라요. ‘대만은 중요한 나라고, 우리가 대만에 투자를 많이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만을 지키려고 미국이 중국과 전쟁을 해야 할까?’ 의문이라는 겁니다.”
― 대만을 위해 전쟁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거군요.
“중국이랑 싸우면 미국이 감수해야 하는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겁니다. 대만은 분명 미국에 중요합니다. 필수적이지만, 실존적이진 않은 거죠.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면 물론 미국도 경제적 피해를 보겠죠. 그러나 엄밀히 말해 돈은 다시 벌면 되잖아요.”
“대통령 권한대행, 트럼프 만나야”
―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제품의 수입 관세를 올리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요.
“미국도 지금 한국의 누구와 협상해야 할지 모를 거예요. 협상을 좀 하려고 하면 탄핵되잖아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미국에 가서 트럼프를 만나야 해요. 지금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고 있잖아요. 한덕수 총리의 탄핵이 기각된다면 한 총리가 가면 되고요. 일본 보세요.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김 소장의 말이 이어졌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한국의 탄핵 재판 절차는 상당히 의아합니다. 왜 신속히 판결을 내려야 하죠? 내란죄가 윤 대통령 탄핵소추의 핵심 사유라고 탄핵 의결해 놓고 이후에 철회했잖아요. 제대로 된 법원 시스템이라면 거기서 멈추고 국회로 되돌려 보내야 해요. 왜 서둘러야 하나요? 윤 대통령이 나쁜 행동을 했다는 게 이유입니까? 법에 따라 진행해야지요.”
미국 의회도 2019년, 2021년 두 차례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했다. 두 번 다 하원에서 의결했고 상원에서 기각했다. 미국 헌법상, 대통령 탄핵 심리는 대법원장이 상원의 재판장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2020년 트럼프 1차 탄핵 재판 당시, 존 로버츠(John Roberts) 대법원장이 재판을 주재했다.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로버츠 대법원장은 트럼프와 공공연하게 대립한 적도 있다. 그가 주재한 재판에서 상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판사의 개인 성향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헌재를 두고 한국의 사법 시스템이 최근 들어 정치 성향에 오염됐다는 지적이 있다. 김 소장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들이 흔히 이런 말을 하잖아요. ‘저 사람 돈 없을 때는 안 그러더니 돈 많이 벌더니 변했다.’ 저는 변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원래 모습이 나오는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의 사법 시스템이 최근에 망가진 게 아니에요. 원래 그랬는데 위기라서 더 잘 보이는 겁니다.”
― 그럴 수 있겠네요.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한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대통령직을 보호하기 위해 공정하게 절차를 진행했잖아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도 법 제도를 지키려면 자신의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처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통령 탄핵이 너무 잦은 것도 문제예요.”
― 20년 내에 벌써 세 번째니까요.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도 마찬가지예요. 북한에 비밀을 팔아먹었나요? 엄청난 돈을 수뢰했나요? 연설문 보여줬다고 탄핵하면 미국 대통령들은 다 탄핵되어야 합니다. 무속에 심취했다고요? 레이건 대통령도 점성술을 신뢰했어요. 대통령 탄핵은 정말 심각한 사안에만 엄격하게 적용해야 해요. 나중에 후회할 겁니다.”
“대통령 참모 교체해야”
― 어쨌든 탄핵 재판 결과가 나오면 윤석열 대통령이 돌아오든, 선거로 다른 대통령이 뽑히든 한국 정치가 다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너무 중요한 시기에 외교 공백이 큰데요, 대외 정책을 되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모진을 교체해야죠. 현실적으로 정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인사를 기용해야 합니다. 학자는 곤란합니다. 빌 클린턴도 학자 출신 참모진에게 투덜거렸어요. ‘어떻게 사과 10개 먹는 동안 정책 하나 결정을 못 하냐’고요.
미국 NSC 회의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수준이 정말 높아요. 1970년대에 포드 대통령과 키신저가 대화하는 걸 보면 이런 수준이에요. ‘소련 모스크바에 탄도미사일방어 시스템이 10개 있는데 이걸 3개로 줄이면 영국에 대한 2차적 억제 효과가 없어지는가. 우리는 MIRV(다탄두 독립 유도 재진입체) 기술이 있으니 이렇다 저렇다….’”
― 포드 대통령이 이런 전문적인 지식을 다 알았다고요?
“학자보다 나아요. 당시 회의록을 읽어보고 놀랐어요. 기본 자료는 키신저 밑의 참모들이 준비해서 올려주죠. 그러면 그걸 갖고 논쟁을 하는 겁니다. 지도자가 결정을 해야 하잖아요. 소련과 어떻게 협상할 건지, 뭐를 제시하고 양보할 건지 등등을요. 어떤 사람이 정권을 쥐든 정말 머리 좋은 사람을 선택해야 해요.”
― 여러 의미로 한국 외교에 있어 올해가 중요한 해인데 말이지요.
“‘현실주의 외교가 중요하다’ 이런 말 자주 하지요? 그럼 비현실적인 외교도 있습니까. 의미 없는 말이에요. 국방부 군인이 군사 전략 관련해 전담하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 트럼프 취임 후 미국이 동맹을 버렸느니 하는 말도 자주 나오는데요.
“일부 학자들 얘기를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도 문제입니다. 루비오 국무장관이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미국은 한국과 일본 같은 동맹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요. 미국 정부 관계자 누가 동맹을 버릴 거라고 했나요? 하지 않은 말을 짐작해서 묻는 건 모욕을 주는 겁니다. 트럼프 팀은 절대 그렇게 접근하면 안 돼요.”
― 만약 한국 언론이 이런 내용의 기사를 보도한다면 이런 걸 미국에서 예민하게 볼까요?
“한국 언론은 선정적으로 쓰는 경향이 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미디어에 예민하잖아요. 가짜 뉴스라고 비판도 하고요. 한국도 언론들이 함께 담합해서 선정적으로 보도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 만약 트럼프 정권이 ‘자립적인 친구’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번 기회에 핵 재처리 권한을 얻어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인도-태평양에서의 미국의 방위 부담을 더는 조건으로요.
“그렇지요. 일본처럼요. 국제원자력기구 안전조치 협정 1, 2, 3을 보면 ‘핵연료 재처리를 포함한 모든 핵 활동은 평화적 목적에 한해 허용된다’는 규정이 있어요. 이 규정 덕분에 일본이 핵 재처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호주는 핵잠수함을 도입할 수 있게 됐어요.”
“美, 강한 친구 좋아해”
― 한국도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군요.
“루비오 장관에게 우리 장관이 요구하면 돼요. ‘동등한 파트너라며 왜 우리만 차별하냐.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 통일 시도하지 않았냐고? 1950년대 한국과 현재 한국의 상황이 같은가.’ 이런 게 협상이에요. 미국도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친구를 좋아해요.”
― 그러면 미국산 무기도 구입하면서 자립 의지를 보이면 핵 재처리 권한 확보에 유리하겠군요.
“그렇게 기술적으로 접근하기보단 단순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기대할 수 있는, 터프한 실행력을 가진 국가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일본보다 더 중요한 강한 파트너가 되겠다’ 그런데 안 하잖아요. 게다가 우리 국민 중 35%가 반미 성향에 동조합니다. 미국이 이걸 모를 것 같나요? 우리가 왜 이런 나라를 지켜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전시작전통제권 가져와야
― 하긴 일본과 달리 우리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선 핵 재처리도 중요하지만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져와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미국 4성 장군(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지휘하게 됩니다. 전작권이 없는데 핵무기가 있으면 뭐 합니까.”
―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전작권을 주면 우리가 한미동맹의 선봉이 되겠다. 뒤에서 우리를 지원해 줘라. 우리가 가장 먼저 싸울 거다. 미국 해병대가 추구하기로 한 기동대 개념에 우리도 동의한다. 우리도 함께하게 해달라.’ 그리고 우리 지도자가 킬체인 운운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없어요. 진짜 자신감 있는 사람은 절대 먼저 이런 얘기 안 합니다.”
― 좀 다른 얘기지만 우리 관료들 중 일부는 영어 때문에 국제 협상장에서 위축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한국말로 하면 돼요. 실력 좋은 통역사만 있으면 됩니다. 자존심 때문에 본인이 영어로 말하려다가 엉망이 될 수 있어요. 젤렌스키 보세요. 일본은 일본어로 다 해요.”
― 언어를 넘어서 내적 자신감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 고위 관료들은 미국 언론이랑 인터뷰도 해야 해요. CNN, BBC와 인터뷰하는 걸 별로 본 적이 없어요. 이스라엘, 헝가리, 인도, 파키스탄 이런 곳의 대통령이나 관료들은 영어 발음이 어떻든 부지런히 인터뷰합니다. 심지어 영어를 잘 못하는 중국 대사도 등장하는 판이에요. 왜 우리는 안 합니까.”
인터뷰 중 여러 번 그는 ‘거래’에 대한 한국인의 선입관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미국식 사고방식 자체가 이거예요. ‘내가 당신을 위해 뭘 할 수 있고, 당신은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나’ 이게 문화인데 ‘거래 외교’를 한다고 비난해 봤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싫어할 수 있어요. 하지만 프레임을 씌워서 잘못 보는 건 곤란합니다. 트럼프를 인정하고 제대로 봐야 해요.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 4년 동안 기다리기만 할 겁니까.”⊙
김진우 세르모국제연구소 소장이 말했다. 김 박사는 미국의 공화당 깊숙이 들어가 본 아마 한국에서 유일한 인사다. 미국 국무부, 국방부 등 정부 부처와 여러 연구소에서 일하며 핵무기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다. 대통령 탄핵의 그림자가 서울 거리에 한참 드리워져 있던 지난 3월 6일 그를 서울 서강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그는 서강대에서 국제관계 강의를 하고 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외교는 가장 높은 수준의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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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국방부 보좌관을 지낸 김진우 박사. 사진=조준우 |
― 동맹이라 그냥 도와준 건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가쓰라-태프트 밀약 보세요. 우리나라가 거래 대상이 됐잖아요. 이건 거래 아닌가요? 역사를 봐야 해요. 지금 한국에서 ‘트럼프는 장사꾼’이라고 하는데 다른 대통령은 안 그랬냐는 얘기입니다. 한국 대통령은 외교에서 거래 안 합니까? 그냥 퍼줍니까?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전 참전을 두고 거래 안 했을 것 같나요?”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1905년 7월 일본 수상 가쓰라와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가 도쿄에서 대한제국과 필리핀에 대한 이해를 두고 맺은 합의다.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통치상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미국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권 확립을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젤렌스키의 외교 실수
― 지난 2월 28일에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인 일에 세계가 놀랐지요.
“맥락을 봐야 합니다. 2월 12일에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키이우에 갔어요. 원래 그때 광물협정을 체결하자고 했는데, 젤렌스키가 뮌헨안보회의에서 서명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2월 14일에 뮌헨에서 밴스 부통령, 루비오 국무장관이 젤렌스키와 만났어요. 젤렌스키가 이때도 지금 서명 안 하고 워싱턴에서 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백악관에서 다시 만난 겁니다. 이미 협정 내용이 다 조율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명만 하면 됐어요. 그런데 정상회담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그렇게 된 거예요.”
기자회견은 총 50분가량 이어졌다. 거친 대화가 오가는 막판 7분이 아니라 전체 회견을 봐야 상황이 좀 이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종전을 위한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밴스 부통령이 말했다. 그러자 젤렌스키는 ‘당신이 말하는 외교가 뭐냐’고 물었다. 이때부터 설전이 시작됐다.
급기야 젤렌스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전쟁 중에는 모두가 문제를 겪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아름다운 바다가 있고 지금은 그 영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에는 느끼게 될 것입니다(You will feel in the future). 신의 가호가 있기를, 당신들이 전쟁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가 뭘 느낄지 말하지 마시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오.”
서로 목소리를 높이던 끝에 젤렌스키가 말했다.
“당신들은 그 영향을 느끼게 될 겁니다(You will feel influence).”
잘못된 조언받은 젤렌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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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일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밴스, 루비오 모두 젤렌스키를 아예 안 믿어요. 바뀐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시그널이 린지 그레이엄 의원입니다. 그레이엄 의원은 우크라이나를 9번이나 방문했어요. 우크라이나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였어요. 바이든 정부 때부터 한결같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회담 후 그레이엄 의원이 ‘나는 이제 젤렌스키를 상대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 학을 뗐군요.
“트럼프 대통령 자신은 거칠고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만, 예의나 정중함을 굉장히 따지는 사람입니다. 그 회담도 어떻게 보면 트럼프가 젤렌스키를 배려해 마련한 자리였어요. 원래 회담이라는 게 살벌합니다. ‘그래서 당신 나라에 탱크 몇 대 있는데? 50대도 없지? 어떻게 혼자 싸울 건데?’ 이런 식이에요. 회담의 맨얼굴인 거죠. 그걸 젤렌스키가 언론들 앞에서 노출한 겁니다.”
― 젤렌스키 대통령이 ‘당신들도 전쟁의 영향을 느끼게 될 거다’라고 말한 건 명백한 실수 같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전쟁을 중재해 주려는 지도자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그건 협박이에요. 오바마 대통령이었어도 화냈을 겁니다. 그래서 한 우크라이나 기자가 그랬어요. ‘젤렌스키는 왜 우크라이나 말로 회담을 안 하나. 제대로 못 하면서 영어로 회담을 하니 뉘앙스도 모르고 그런 표현을 쓴 거 아닌가.’”
“이승만과 젤렌스키는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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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7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환영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사진=대통령기록관 |
“이승만에 대한 미국 내 기록을 논문 준비하며 먼저 봤어요. 이 대통령은 그 시절에 하버드에서 석사, 프린스턴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우드로 윌슨 미 대통령 밑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박사 논문은 〈전시 중립론〉이었어요. 나중엔 한국의 안위를 위해 미국 정가를 다니며 싸웠어요. 그렇지만 예의를 지켰습니다.”
이승만은 국제정치 정세를 잘 읽었다. 1941년 미국에서 발행한 책 《Japan Inside Out(일본 내막기)》에서 일본의 침략 야욕과 미국 공격 가능성을 예언했다. 5달 뒤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이 박사의 책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 조선 시대에 태어난 인물이 미국 대통령 밑에서 국제정치 연구를 했다니 다시 생각해도 참 대단하네요.
“이 대통령은 아이젠하워를 만나 이렇게 말했어요. ‘제발 좀 한국을 도와달라. 우리는 막 태어난 아기나 다름없는 나라다. 어떻게 소련이랑 핵전쟁을 할 수 있겠나.’ 젤렌스키처럼 공개적으로 거친 말들을 하지 않았단 얘기입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젤렌스키와 비교합니까.”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치, 3000조원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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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6월 한국을 찾은 로버트슨(왼쪽) 미 국무부 차관보와 이승만 대통령의 회담 장면. 18일 동안의 회담 끝에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약속받았다. 사진=대통령기록관 |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존 포스터 덜레스 장관이 당시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어요. ‘이 노인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불쌍하다. 그는 자신의 나라를 위해 있는 힘껏 싸우고 있다.’ 이 대통령은 휴전협정이 진행 중이던 1953년 6월에 반공포로들을 석방해 버렸어요. 미국에서 난리가 났어요. 이 대통령 납치 작전(Operation Everready)까지 세웠죠. 실행하진 않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지만요.”
1953년에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이 체결한 가장 성공적인 조약으로 꼽힌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021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하 방위조약)의 경제적 가치를 추산해 봤다. 2000년 이후로만 따져도 3000조원이 넘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 이 대통령은 미국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효과적으로 공략한 모양이군요.
“그 옛날에 워싱턴DC 정치를 파악했어요. 외무장관한테 ‘누구 만나서 이렇게 하라’며 정확히 지시를 내려요. 본인도 워싱턴에 가서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도 만나고 군인들도 만나죠. 제가 논문에 썼듯, 미국은 처음엔 절대 한국과 방위조약을 맺을 생각이 없었어요. 한국은 미국에 별로 필요 없는, 없어도 되는 나라였으니까요. 오로지 이승만이 협상으로 방위조약을 이끌어낸 겁니다.”
― 일부 반미(反美) 세력은 미국이 필요해서 방위조약을 맺은 것처럼 말하는데요.
“한국인들이 자존심을 중시하는 건 좋아요. 하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 알아야지요.”
전쟁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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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16일 재영국 유고인들이 영국 국방부 건물 앞에서 나토의 유고 공습에 대한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역사를 정확히 봐야 합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다른 국가를 침공했다고 주장합니다. 푸틴은 그 말에 이렇게 답해요. ‘코소보는?’”
1999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 지역을 공습한다. 인종 청소와 전쟁 범죄를 막기 위한 작전이었다. 공습은 78일 동안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최초로 NATO가 군사적으로 개입한 사례다. 결국 이듬해 밀로셰비치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은 실각한다.
― 푸틴 입장에선 처음 침공한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사실 당시 미국 내에서도 코소보 공습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학자는 많지 않았어요. 루스 웨지우드 존스홉킨스대 국제법 교수 정도였지요. 그는 나토의 군사 개입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어요.”
― 이번의 경우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고 싶어 했고 러시아는 그걸 원하지 않는 거지요?
“1990년 독일이 통일될 때 미국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James Baker)가 고르바초프에게 ‘NATO는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되지 않을 것(not one inch eastward)’이라고 말한 기록이 있어요. 러시아 입장에선 그걸 조건으로 독일 통일을 허락한 거예요. 그런데 그 뒤 어떻게 됐어요. 나토가 계속 동쪽으로 확장했잖아요.”
1991년 소련이 붕괴한 후, 나토는 동유럽 국가들의 가입을 허용했다. 1999년엔 폴란드, 체코, 헝가리가 가입했고, 2004년엔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가 나토에 들어갔다. 2010년대 이후엔 몬테네그로(2017), 북마케도니아(2020), 핀란드(2023), 스웨덴(2024)이 가입했다.
냉전 초기 미국의 대(對)소련 정책인 ‘소련 봉쇄 정책’을 설계한 러시아 전문가 조지 케넨은 1990년대 이후 나토의 동진(확장)에 강하게 반대했다. 1997년에 그는 “NATO가 동유럽으로 확장하면, 결국 러시아와의 새로운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터지면서, ‘케넨의 예측이 정확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 러시아 입장에선 이런 마당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약속 위반일 수 있겠네요.
“2008년에 조지아가 나토 가입을 시도했어요. 그러자 러시아가 조지아를 공격했어요. 2014년엔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합병했습니다. 2014년이 중요해요. 당시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친러시아 성향이었어요. 그런데 시위가 일어난 후 축출됐어요.”
“푸틴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해야”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대규모 반정부 시위(유로마이단 시위)가 키이우에서 계속됐고, 결국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를 떠났다. 야누코비치 축출 뒤에 미국 CIA가 있다는 추측이 불거졌다. 미국 국무부의 빅토리아 눌런드 차관보는 “미국은 1991년 이후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50억 달러를 지원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키이우를 방문해 시위대와 연대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 러시아 입장에선 미국이 먼저 우크라이나에 개입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지금 서방은 푸틴에게 인종 청소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요. 돈바스와 크름반도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인들을 죽였다고 러시아 측은 주장하고 있고요. 그래서 돈바스랑 크름반도로 들어갔다는 거죠. 푸틴이 아무 이유 없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게 아닙니다. 푸틴을 두둔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는 해야지요.”
― 트럼프는 앞으로 세계의 판을 어떤 식으로 짜려는 걸까요.
“미국은 ‘리버스 키신저(Reverse Kissinger)’ 정책을 하려는 겁니다. 키신저는 마오쩌둥(毛澤東)과 손잡고 관계를 개선해, 소련을 견제하려 했어요. 이번엔 거꾸로 러시아를 인정하고 관계 개선을 하려는 거죠. 러시아와 함께 군축도 다시 하고요. 그렇게 해서 중국을 견제한다기보단 ‘우리 셋이 같이 가자’ 이렇게 하려는 것 같아요.”
― 중국에 관세를 올린다고 경고하는데 같이 가려는 게 맞을까요.
“한국인들이 잘 이해해야 해요. 관세는 정책이 아닙니다. 관세는 도구예요. 관세를 갖고 협상을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볼 때는 관세를 가지고 시진핑(習近平)이랑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는 겁니다. 중국도 지금 내부에서 문제가 많아요. 시진핑도 미국이 필요할 거예요.”
― 만약 그 구상이 실현된다면 세 강대국이 균형을 이루는 모양새가 되겠네요.
“군사적 영향력을 중심으로 구분해 보자면 미·중·러가 초강대국(first tier), 영국·프랑스·독일 같은 곳은 중견국(middle tier), 우크라이나 같은 곳은 약소국(third tier)인 거죠.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는 러시아를 초강대국에서 빼기도 합니다.”
― 우리는 중견국일까요.
“글쎄요. 자꾸 한국의 군사력이 전 세계 5위라고 하는데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5위는 의미가 없어요.”
트럼프가 계승한 잭슨적 전통
― 한국 같은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은 지켜달라고 징징대는 고객(client)을 원하지 않아요. 독립적인 친구를 원합니다. 미국 정치·외교에는 세 가지 정신적 조류가 있어요. 제퍼슨적 전통(Jeffersonian Tradition), 해밀턴적 전통(Hamiltonian Tradition), 잭슨적 전통(Jacksonian Tradition)입니다. 트럼프는 잭슨적 전통을 따릅니다.”
제퍼슨적 전통은 ‘작은 정부, 외교적 개입 최소화’로 표현할 수 있다. 불필요한 군사 개입을 반대하고 고립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전통이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정책 성향이었다.
해밀턴적 전통은 ‘강한 중앙정부, 경제·군사 강국, 글로벌 리더십’을 중시하는 조류다.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주도적 역할(Global Leadership)을 해야 한다는 믿음 아래, 국제 동맹과 협력을 중시하며 경제적 자유주의(자유무역, 국제 금융질서 유지)를 선호한다. 군사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경제적 영향력을 통한 외교를 우선시한다. 알렉산더 해밀턴, 우드로 윌슨,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에 해당한다.
잭슨적 전통은 쉽게 ‘강한 군사력, 애국주의, 대중주의(populism), 미국 중심주의(America First)’를 말한다. 강한 민족주의(Nationalism)와 애국주의를 강조한다. 일반 대중과 보통 시민의 권리를 중시하고 국제기구보다 국가의 주권을 우선한다. 자유무역보다는 보호무역을 선호한다. 앤드루 잭슨과 도널드 트럼프가 이에 해당한다.
― 그러니까 지금은 잭슨적 전통의 시대군요.
“앤드루 잭슨 대통령 역시 재임 당시 ‘거칠고 천박하다’는 비판을 들었어요. 특히 엘리트 계층이 그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군대를 보면 어떤 출신배경을 가진 군인들이 가장 열심히 싸우는 줄 아세요? 백인들 중에서도 중하급층,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이민자 출신, 소위 ‘레드넥(Redneck)’이라 불리는 이들입니다. 힐빌리에서 온 JD 밴스 같은 이들이에요.”
레드넥은 미국 남부 및 시골 지역의 백인을 가리키는 속어로, 종종 촌스럽거나 교육 수준이 낮은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을 조롱하는 의도에서 사용된다. 김 소장의 설명이 계속됐다.
“잭슨적 전통에선 자립, 독립, 충성심을 강조해요. 그러면서도 예의를 중시합니다. 평판을 중시하고 약속하면 꼭 지켜야 한다고 여겨요. 싸움에 개입하는 걸 싫어하지만, 이왕 개입하게 되면 박살을 내려 합니다. 마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한국 전쟁 당시 북한은 물론 중국 본토도 공격해야 한다고 한 것처럼요. 잭슨 대통령 별명이 올드 히코리(Old Hickory·히코리 고목)였어요.”
히코리나무는 북미산 참나뭇과의 매우 단단한 나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초상화를 걸어놨다.
미국에 기대는 유럽 안보
― 트럼프는 자신을 앤드루 잭슨 전통의 계승자라 생각하는군요.
“그렇죠. 잭슨적 세계관은 복잡한 걸 싫어합니다. ‘세상의 문제는 복잡하지만 해결책은 단순하다.’ 엘리트 계층 눈에는 거칠고 천박해 보이죠. 트럼프가 내놓은 가자지구 해법을 보세요.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해서 개발하겠다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비웃었죠. 그런데 이 해법을 들은 아랍인들의 속내는 어떨 것 같나요? ‘오, 신이여 감사합니다’예요. 그동안 하마스 때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살았는데 미국이 거기에 주둔하면 누가 덤빌 수 있겠어요.”
― 그럴 수 있겠네요.
“지금 미국과 나토가 루마니아 내의 흑해 연안에 유럽 최대의 군사기지를 짓고 확장하고 있어요. 이유가 뭘까요. 흑해 연안에 주둔해 있어야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으니까요. 러시아 입장에서는 흑해에 있는 노보로시스크(Novorossiysk)항 같은 항구가 매우 중요해요. 부동항이 몇 군데 없으니까요. 블라디보스토크는 너무 멀고요. 미국은 이런 점을 이미 20년 전에 간파하고 그곳에 군사기지를 지은 겁니다.”
― 결국 유럽의 안보는 미국에 기댈 수밖에 없네요.
“그런데도 유럽이 미국 없이 러-우 전쟁을 치르겠다고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은 국방예산을 늘리겠다고 했지요. 계속 그런 식이면 현재의 복지 시스템 유지 못 합니다. 과연 독일이 자국의 복지를 포기하고 우크라이나를 도울까요? 한국은 정말 세계정세를 제대로 봐야 해요.”
미군, 소규모 원정 기동부대로
―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 국방장관(2001~2006 재임)은 재임 당시 미군의 전략을 ‘고정 주둔’에서 ‘기동성 중심의 유연한 배치’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했지요. 부분적으로만 실행됐지만요. 만약 트럼프 정부가 효율성을 내세우며 또다시 이런 정책을 추진하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미국 군사 전략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미국 해병대를 보면 됩니다. 규모가 작지만 제일 영향력이 센 군대예요. 전쟁터에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많이 죽지요. 데이비드 버거(David Berger) 전 미국 해병대 사령관(2019~2023 재임)이 군사 전략을 주장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이 전쟁을 일으키면 우리가 이길 수 없다.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 본부에서 대규모 병력이 가려면 시간이 걸린다.’”
데이비드 버거 전 사령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과의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해병대의 역할을 전통적인 대규모 상륙 작전 중심에서 소규모, 기동성 있는 해상 기동부대 중심으로 개편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바로 ‘포스 디자인 2030(Force Design 2030)’이다. 대규모 상륙전 중심이 아닌 소규모 원정 기동부대를 도입해 태평양 섬들 곳곳에 해병대를 배치하고, 신속하게 이동하며 작전을 수행하는 개념이다. 전차가 아닌 소형 함정과 헬리콥터, 드론 등을 활용하여 분산 작전을 수행한다.
대만 위해 미국이 전쟁 감수?
― 중국은 대만을 삼키겠다는 야욕을 공공연히 보이고 있는데요, 거기에 대한 대비일까요.
“그렇죠. 하지만 대만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TSMC가 더 이상 인질이 될 수 없어요. TSMC가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고 있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할 겁니까. 미국에서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과 톰 카튼 상원의원이 충돌했어요. 카튼 의원은 전통적인 공화당 정치인이에요. 대만을 끝까지 지키자는 쪽이죠. 콜비는 생각이 달라요. ‘대만은 중요한 나라고, 우리가 대만에 투자를 많이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만을 지키려고 미국이 중국과 전쟁을 해야 할까?’ 의문이라는 겁니다.”
― 대만을 위해 전쟁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거군요.
“중국이랑 싸우면 미국이 감수해야 하는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겁니다. 대만은 분명 미국에 중요합니다. 필수적이지만, 실존적이진 않은 거죠.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면 물론 미국도 경제적 피해를 보겠죠. 그러나 엄밀히 말해 돈은 다시 벌면 되잖아요.”
“대통령 권한대행, 트럼프 만나야”
―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제품의 수입 관세를 올리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요.
“미국도 지금 한국의 누구와 협상해야 할지 모를 거예요. 협상을 좀 하려고 하면 탄핵되잖아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미국에 가서 트럼프를 만나야 해요. 지금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고 있잖아요. 한덕수 총리의 탄핵이 기각된다면 한 총리가 가면 되고요. 일본 보세요.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김 소장의 말이 이어졌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한국의 탄핵 재판 절차는 상당히 의아합니다. 왜 신속히 판결을 내려야 하죠? 내란죄가 윤 대통령 탄핵소추의 핵심 사유라고 탄핵 의결해 놓고 이후에 철회했잖아요. 제대로 된 법원 시스템이라면 거기서 멈추고 국회로 되돌려 보내야 해요. 왜 서둘러야 하나요? 윤 대통령이 나쁜 행동을 했다는 게 이유입니까? 법에 따라 진행해야지요.”
미국 의회도 2019년, 2021년 두 차례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했다. 두 번 다 하원에서 의결했고 상원에서 기각했다. 미국 헌법상, 대통령 탄핵 심리는 대법원장이 상원의 재판장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2020년 트럼프 1차 탄핵 재판 당시, 존 로버츠(John Roberts) 대법원장이 재판을 주재했다.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로버츠 대법원장은 트럼프와 공공연하게 대립한 적도 있다. 그가 주재한 재판에서 상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판사의 개인 성향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헌재를 두고 한국의 사법 시스템이 최근 들어 정치 성향에 오염됐다는 지적이 있다. 김 소장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들이 흔히 이런 말을 하잖아요. ‘저 사람 돈 없을 때는 안 그러더니 돈 많이 벌더니 변했다.’ 저는 변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원래 모습이 나오는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의 사법 시스템이 최근에 망가진 게 아니에요. 원래 그랬는데 위기라서 더 잘 보이는 겁니다.”
― 그럴 수 있겠네요.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한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대통령직을 보호하기 위해 공정하게 절차를 진행했잖아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도 법 제도를 지키려면 자신의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처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통령 탄핵이 너무 잦은 것도 문제예요.”
― 20년 내에 벌써 세 번째니까요.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도 마찬가지예요. 북한에 비밀을 팔아먹었나요? 엄청난 돈을 수뢰했나요? 연설문 보여줬다고 탄핵하면 미국 대통령들은 다 탄핵되어야 합니다. 무속에 심취했다고요? 레이건 대통령도 점성술을 신뢰했어요. 대통령 탄핵은 정말 심각한 사안에만 엄격하게 적용해야 해요. 나중에 후회할 겁니다.”
“대통령 참모 교체해야”
― 어쨌든 탄핵 재판 결과가 나오면 윤석열 대통령이 돌아오든, 선거로 다른 대통령이 뽑히든 한국 정치가 다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너무 중요한 시기에 외교 공백이 큰데요, 대외 정책을 되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모진을 교체해야죠. 현실적으로 정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인사를 기용해야 합니다. 학자는 곤란합니다. 빌 클린턴도 학자 출신 참모진에게 투덜거렸어요. ‘어떻게 사과 10개 먹는 동안 정책 하나 결정을 못 하냐’고요.
미국 NSC 회의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수준이 정말 높아요. 1970년대에 포드 대통령과 키신저가 대화하는 걸 보면 이런 수준이에요. ‘소련 모스크바에 탄도미사일방어 시스템이 10개 있는데 이걸 3개로 줄이면 영국에 대한 2차적 억제 효과가 없어지는가. 우리는 MIRV(다탄두 독립 유도 재진입체) 기술이 있으니 이렇다 저렇다….’”
― 포드 대통령이 이런 전문적인 지식을 다 알았다고요?
“학자보다 나아요. 당시 회의록을 읽어보고 놀랐어요. 기본 자료는 키신저 밑의 참모들이 준비해서 올려주죠. 그러면 그걸 갖고 논쟁을 하는 겁니다. 지도자가 결정을 해야 하잖아요. 소련과 어떻게 협상할 건지, 뭐를 제시하고 양보할 건지 등등을요. 어떤 사람이 정권을 쥐든 정말 머리 좋은 사람을 선택해야 해요.”
― 여러 의미로 한국 외교에 있어 올해가 중요한 해인데 말이지요.
“‘현실주의 외교가 중요하다’ 이런 말 자주 하지요? 그럼 비현실적인 외교도 있습니까. 의미 없는 말이에요. 국방부 군인이 군사 전략 관련해 전담하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 트럼프 취임 후 미국이 동맹을 버렸느니 하는 말도 자주 나오는데요.
“일부 학자들 얘기를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도 문제입니다. 루비오 국무장관이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미국은 한국과 일본 같은 동맹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요. 미국 정부 관계자 누가 동맹을 버릴 거라고 했나요? 하지 않은 말을 짐작해서 묻는 건 모욕을 주는 겁니다. 트럼프 팀은 절대 그렇게 접근하면 안 돼요.”
― 만약 한국 언론이 이런 내용의 기사를 보도한다면 이런 걸 미국에서 예민하게 볼까요?
“한국 언론은 선정적으로 쓰는 경향이 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미디어에 예민하잖아요. 가짜 뉴스라고 비판도 하고요. 한국도 언론들이 함께 담합해서 선정적으로 보도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 만약 트럼프 정권이 ‘자립적인 친구’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번 기회에 핵 재처리 권한을 얻어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인도-태평양에서의 미국의 방위 부담을 더는 조건으로요.
“그렇지요. 일본처럼요. 국제원자력기구 안전조치 협정 1, 2, 3을 보면 ‘핵연료 재처리를 포함한 모든 핵 활동은 평화적 목적에 한해 허용된다’는 규정이 있어요. 이 규정 덕분에 일본이 핵 재처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호주는 핵잠수함을 도입할 수 있게 됐어요.”
“美, 강한 친구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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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 독일 뮌헨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왼쪽부터 조태열 외교부 장관,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 사진=뉴스1 |
“루비오 장관에게 우리 장관이 요구하면 돼요. ‘동등한 파트너라며 왜 우리만 차별하냐.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 통일 시도하지 않았냐고? 1950년대 한국과 현재 한국의 상황이 같은가.’ 이런 게 협상이에요. 미국도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친구를 좋아해요.”
― 그러면 미국산 무기도 구입하면서 자립 의지를 보이면 핵 재처리 권한 확보에 유리하겠군요.
“그렇게 기술적으로 접근하기보단 단순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기대할 수 있는, 터프한 실행력을 가진 국가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일본보다 더 중요한 강한 파트너가 되겠다’ 그런데 안 하잖아요. 게다가 우리 국민 중 35%가 반미 성향에 동조합니다. 미국이 이걸 모를 것 같나요? 우리가 왜 이런 나라를 지켜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전시작전통제권 가져와야
― 하긴 일본과 달리 우리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선 핵 재처리도 중요하지만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져와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미국 4성 장군(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지휘하게 됩니다. 전작권이 없는데 핵무기가 있으면 뭐 합니까.”
―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전작권을 주면 우리가 한미동맹의 선봉이 되겠다. 뒤에서 우리를 지원해 줘라. 우리가 가장 먼저 싸울 거다. 미국 해병대가 추구하기로 한 기동대 개념에 우리도 동의한다. 우리도 함께하게 해달라.’ 그리고 우리 지도자가 킬체인 운운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없어요. 진짜 자신감 있는 사람은 절대 먼저 이런 얘기 안 합니다.”
― 좀 다른 얘기지만 우리 관료들 중 일부는 영어 때문에 국제 협상장에서 위축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한국말로 하면 돼요. 실력 좋은 통역사만 있으면 됩니다. 자존심 때문에 본인이 영어로 말하려다가 엉망이 될 수 있어요. 젤렌스키 보세요. 일본은 일본어로 다 해요.”
― 언어를 넘어서 내적 자신감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 고위 관료들은 미국 언론이랑 인터뷰도 해야 해요. CNN, BBC와 인터뷰하는 걸 별로 본 적이 없어요. 이스라엘, 헝가리, 인도, 파키스탄 이런 곳의 대통령이나 관료들은 영어 발음이 어떻든 부지런히 인터뷰합니다. 심지어 영어를 잘 못하는 중국 대사도 등장하는 판이에요. 왜 우리는 안 합니까.”
인터뷰 중 여러 번 그는 ‘거래’에 대한 한국인의 선입관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미국식 사고방식 자체가 이거예요. ‘내가 당신을 위해 뭘 할 수 있고, 당신은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나’ 이게 문화인데 ‘거래 외교’를 한다고 비난해 봤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싫어할 수 있어요. 하지만 프레임을 씌워서 잘못 보는 건 곤란합니다. 트럼프를 인정하고 제대로 봐야 해요.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 4년 동안 기다리기만 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