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약에는 이데올로기가 없다”
⊙ 2015년 국내 마약 사범 1만 명 돌파, 2023년엔 2만7611명
⊙ “북한과 한국 내 조폭들은 오래전부터 직접적인 거래를 했을 것”
李冠亨
1979년생. 조선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고려대 대학원 정책학 박사 /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 민주시민교육지원센터장, 한국교육개발원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 연구원 역임. 現(사) NK Watch 사무국장 / 《The Suryong Dictatorship Mechanism》 《북한 마약산업의 주요 실행 주체와 생산 시설 연구》 《북한의 ‘마약사업’ 운영과 기반 확장》 《북한의 마약류 생산 및 밀매의 발단》 《북한 마약 문제 연구: 국가주도형 초국가적 조직범죄 특성을 중심으로》 《Effects of International Advocacy toward Human Rights of North Korea》 《북한 공작원 연구: 전직 공작원들과의 인터뷰》 등
⊙ 2015년 국내 마약 사범 1만 명 돌파, 2023년엔 2만7611명
⊙ “북한과 한국 내 조폭들은 오래전부터 직접적인 거래를 했을 것”
李冠亨
1979년생. 조선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고려대 대학원 정책학 박사 /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 민주시민교육지원센터장, 한국교육개발원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 연구원 역임. 現(사) NK Watch 사무국장 / 《The Suryong Dictatorship Mechanism》 《북한 마약산업의 주요 실행 주체와 생산 시설 연구》 《북한의 ‘마약사업’ 운영과 기반 확장》 《북한의 마약류 생산 및 밀매의 발단》 《북한 마약 문제 연구: 국가주도형 초국가적 조직범죄 특성을 중심으로》 《Effects of International Advocacy toward Human Rights of North Korea》 《북한 공작원 연구: 전직 공작원들과의 인터뷰》 등
- 사진=조선DB
국내 마약류(대마,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등) 사범(事犯)의 수가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은 건 1999년이다. 이후 2002년까지 4년 연속으로 1만 명 선을 상회했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0년 마약류 범죄백서》와 《2023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02년도에 강력한 단속으로 필로폰 밀수조직 등 공급조직 10개 파(派) 224명(구속 162명)이 적발됐고, 이로 인한 마약류 공급선 차단 등으로 2003년도부터 2006년도까지 4년간 7000명대로 감소”했다.
그런데 2015년부터 다시 1만 명 선을 넘기 시작한 국내 마약류 사범은 2016년 1만4214명, 2017년 1만4123명, 2018년 1만2613명, 2019년 1만6044명에 이어 2020년 1만8050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은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으로 접속하는 비밀 사이트), 소셜미디어(텔레그램) 등을 이용하여 해외 마약류 공급자와 연락이 용이해짐에 따라 국제 우편물을 이용한 마약류 구입 사례가 늘어난 것이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국내 마약류 사범은 2023년 2만7611명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러한 마약류의 ‘생산지’는 어디일까.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산 필로폰이 국내에서 유통되는 마약 중 적게는 30%, 많게는 5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관형(李冠亨·45) NK워치 사무국장은 지난 11월 25일, 북한산(産) 마약의 생산 및 밀매 실태를 다룬 저서 《수령과 마약》을 출간했다. NK워치는 2003년 6월 3일 북한 정치범 수용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설립한 북한 인권 시민사회단체다. 이 단체의 대표인 안명철씨는 1987년부터 1994년까지 국가안전보위부 7국이 관리하는 정치범 수용소 경비대원으로 근무한 바 있다. 지난 12월 2일 이관형 사무국장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NK워치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일성, 1968년부터 양귀비 재배 지시
이관형 사무국장은 “마약에는 이데올로기가 없다”며 “이것(마약)의 품질이 좋은지, 가격이 합당한지만 따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 세계 범죄 조직들이 탐을 낼 만큼 북한산 마약의 품질이 좋다고도 했다. 그에게 물었다.
― 북한산 마약이 인기가 많다고 했는데, 소위 북한의 관(官)이 관리하는 것이라서 순도라든지 여러 가지 품질이 보증되는 건가요.
“당연하죠. 겉으로 보면 북한 내 범죄 조직이 마약을 다루는 것 같지만, 이마저도 관 주도입니다. 북한은 애초에 정보가 통제되기 때문에 기본적인 (마약) 화학식(化學式)조차 공유가 쉽지 않아요. 물론 화학자들 머릿속엔 있겠죠. 하지만 마약이 돈이 되고, 순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공식이 필요하고, 어떤 원료가 필요하고, 이 원료를 가져오기 위해 어떤 회사나 공장을 거쳐야 하고, 이런 건 국가밖에 몰라요. 그리고 그 국가(북한)는 모든 일을 수령의 허락 아래 진행합니다.”
양귀비 재배에 정치범·의대생 동원
소위 ‘관’이 주도한다는 점 이외에도 북한산 마약의 품질이 좋은 데엔 뿌리 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이관형 사무국장에 따르면, 북한은 1968년 1월 일반 주민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산간 오지나 완전 통제 구역으로 분류되는 관리소(정치범 수용소)에서 양귀비(아편의 원료)를 재배했다. 경작 인원들은 제대한 군인이나 특수 기관 종사자, 의학대학이나 약학대학 재학생들을 주로 동원했다. 북한은 1987년 7월 ‘공화국 정부 성명’을 발표하고 그해 12월 말까지 “10만 명의 인민군 장병들을 이방적으로 제대시켜 사회주의 건설장들에 진출시켰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양귀비 재배 인력으로 투입됐다고 한다.
《수령과 마약》에 따르면, 안명철 NK워치 대표는 그가 근무했던 함경북도 온성군 소재 13호 관리소에서도 1987년 양귀비가 재배된 바 있다고 밝혔다. 양귀비 재배를 위해 정치범들로 구성된 1개 작업반이 투입됐고, 관리소 내에서도 보안 유지를 위해 이 작업반 명칭을 ‘남새(채소) 작업반’으로 위장했다고 한다. 또 함경북도 회령시에 위치한 22호 관리소 내 락생지구에서도 양귀비가 재배됐는데, 총 500여 명의 정치범들이 양귀비 재배에 동원됐다고 한다.
이관형 사무국장은 1998년 10월부터 2002년 5월까지 북한 보위사령부(현 군 보위국) 산하 청진 ‘5.18소’라는 마약 생산 시설에서 재정 담당 지도원으로 근무했던 손명화씨의 증언도 확보했다. 손씨는 ‘16호 관리소(함경북도 명간군 소재 완전 통제 구역)에서 생산된 아편 진액을 수납하기 위해 직접 청진 5.18소 소장과 함께 2000년도에 관리소에 방문했다’고 한다.
아편→헤로인→필로폰
양귀비는 아편의 원료다. 그런데 10kg의 아편과 20kg의 화학 물질이 있으면 헤로인을 제조할 수 있다. 헤로인을 100배 농축하면 ‘인류 최악의 마약’으로 알려진 펜타닐(Fentanyl)이 된다. 이미 1960년대부터 양귀비를 재배한 북한은 1990년대 들어 매월 1t에 달하는 헤로인 생산 능력을 갖게 됐다. 이는 2002년 《월간조선》 7월호에 실린 윤대일(尹大日)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된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지도원 출신 탈북자인 윤씨는 이때 이렇게 말했다.
“1996년 말에는 중앙으로부터 ‘함북도의 협동농장 중 (가능한 곳은) 10정보씩 아편을 재배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1997년부터 함북도 내 협동농장에서 대대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재배된 아편은 인민무력성 보위국이 관리하는 청진시 나남 구역의 나남제약공장으로 운반된 다음 이곳에서 가공하여 완제품을 생산했습니다. 나남제약공장에는 태국인 마약 기술자들이 근무했는데, 이곳에서는 헤로인과 필로폰을 각각 매월 1t씩 연간 24t 정도 생산했습니다.”
이관형 사무총장은 나남제약공장 외에도 만년제약공장, 흥남제약공장, 국가과학원 함흥분원, 보위사령부 5.18소 등을 북한의 마약 생산 시설로 꼽았다. 또 그는 “필로폰 생산 기술은 순도가 관건”이라며 “북한은 고순도 필로폰 생산 기술을 1990년대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1998년 발행한 책자 《21C 새로운 위협 국제범죄의 실체와 대응》을 인용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산 필로폰을 분석한 결과 불순물이 거의 없는 고순도(98%)이며 미량의 벤즈알데히드(1%)가 검출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北, 국내 조폭과 연계”
이처럼 오랜 기간 마약 생산에 공을 들여온 북한은 제조한 마약류를 어떤 방법으로 팔아치울까. 이관형 사무국장이 가장 먼저 꺼낸 단어는 ‘조폭(組暴·조직폭력배)’이다. 그는 “북한은 1980년대부터 한국 조폭의 끈을 잡으려 했다”며 “이복헌 사건(1990년 사기 혐의로 수배된 이복헌이 국제 범죄조직 ‘아시아 샤론’에 가입한 뒤 북한의 지령을 받아 간첩으로 활동하다 1994년 안기부에 검거된 사건) 당시 북한이 이복헌에게 내린 지령은 ‘조폭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어 “북한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폭력조직들과 연결을 시도했다”며 “여러 가지 활용도가 높은, 합당한 사업 파트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과 한국 내 조폭들은 오래전부터 직접적인 거래를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얘기다.
“1990년대 ‘임양냉 사건(국내 폭력조직 ‘신상사파’ 조직원들이 5000억원대 북한산 필로폰을 사서 중국 선적 ‘임양냉 2호’를 통해 일본으로 보내려다 적발된 사건)’을 보면 중국인 등 브로커를 두고 북한과 국내 조폭이 거래를 하는 식이었어요.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조폭들이 마약 사범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는 건 멀리한다’고 알려졌었어요. 과연 그럴까요. 돈이 되면 다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돈을 향한 탐욕은 마약 못지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북한이 외화벌이 수단으로 생산한 마약은 도리어 북한 내부를 잠식하고 있기도 하다. 이관형 사무국장은 2012~2019년 사이 탈북한 주민들로부터 북한 내 마약 소비 상황에 대해 ‘전당(全黨), 전군(全軍), 전민(全民)이 다 사용한다. 머저리, 미물, 소아마비 걸린 사람이 아닌 이상 모두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1990년 기준, 검거되지 않은 간첩 50여 명
한편,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북한 군(軍) 내부에서는 “통전부(통일전선부) 서울지구당원들이 다 체포된 것인가”라는 말이 돌았다고 전해진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는 지난 12월 6일 북한 내부 군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총참모부는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후 약 30분 뒤인 밤 11시경 군 고위 간부들을 평양시 서성구역 석봉동에 있는 총참모부 본부로 소집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의 간첩이 실존한다는 건 기정사실처럼 여겨진다.
그렇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될까. 이관형 사무국장은 과거 대남(對南) 공작원으로서 한국에서 조직공작(지하조직 구축, 지도, 검열)을 담당하다가 국내에서 검거된 김동식 전 국가안보전략연구 책임연구위원과 친분이 있다고 한다. 이관형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전향한 북한 간첩들 중에선 김동식 전 위원의 급(級)이 제일 높다”고 했다. 그러며 김동식 전 위원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북한 공작지도부는 1988~1992년 사이에만 10개 공작조를 한국에 침투시켰다. 이 공작조들은 기존에 한국에 구축했던 지하조직들을 지도, 검열한 동시에 새로운 간첩망들을 만들었다. 이 공작조들은 적어도 2개 이상의 간첩망을 새롭게 구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1개 간첩망은 3~5명의 조직원들로 구성된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구축된 20여 개의 간첩망(전체 지하조직원은 60~100명) 중 10개 정도는 검거된 것으로 보인다.”
김동식씨가 1995년 9월 남파 직전 공작지도부로부터 받은 임무는 ‘한국 유력 대선 후보와 연락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는 같은 해 10월 24일 부여에서 한국 군경(軍警)과의 총격전 끝에 검거됐고, 그의 조원(組員)은 사살됐다. 이관형 사무국장은 “만약 김씨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쳤다면, 그의 지하조직은 한국 정·관계 깊숙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물론 그가 실패했더라도, 북한은 다른 공작원을 통해 연락 체계 구축을 완료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에서 북한과의 내통 체계를 구축하려면 한국인들을 포섭해야 하는데, 실제로 포섭된 이들이 수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북한에 헌납했다는 증언도 있다.
“한국인 수백 명, 북한에 충성 獻金”
이관형 사무국장은 “북한에 포섭된 한국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지하조직에 들어갔다”며 “자발적인 친북 활동 도중 공작 기관의 눈에 띄었거나 ‘통일혁명당 사건’처럼 지하조직에서 활동하는 가족이나 지인에 의해 포섭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김씨 일족(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대한 충실성이 검증된 지하조직원은 북한으로부터 대호 및 연계 번호, 예를 들어 ‘지리산 101호’ ‘대둔산 302호’ 등을 받아 ‘참된 노동당원’으로 거듭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원 임명 권한을 가진 대남 공작원이나 지하조직 총책과 접촉하기를 오매불망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도 모르게 포섭된 사례도 있다”며 “북한이나 지하조직에 약점, 예를 들어 ‘부패·치정·재북 가족 신변 등’을 잡혔을 수도 있고 오직 자신의 정치·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지하조직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 근거로 “지난 2019년 한국에 정착한 한 탈북민으로부터 ‘수백 명의 한국인이 북한에 충성 헌금을 바쳤다’는 놀라운 증언을 들었다”고 전했다. 해당 탈북민은 2012년에 설립된 중앙당 선전선동부 산하 김일성김정일기금위원회(기금위원회)에서 기금을 관리했다고 한다. 이관형 사무국장이 전한 해당 탈북민의 얘기다.
“한국 사람들도 많아요. 한국 사람들이 가명으로 들어오거든요. 통전부에서 취급해요, 한국 사람들은, 가명으로 해가지고 헌납 증서만 받아 가는 거죠. 금액만 써주거든요. 한국 사람들이 액수가 제일 높은데 한 번에 3000~5000달러, 3만 달러까지 내는 이도 있어요.”
이관형 사무국장이 ‘헌금을 내는 한국인 규모’를 묻자 그는 “몇백 명 된다”고 했다. 헌금액의 최소 단위가 얼마인지를 묻는 물음엔 “최소 1000달러고, 한 명이 혼자서 최대로 많이 낸 게 2만~3만 달러 될 것”이라고 했다. 기금 헌납 명단을 관리하는 방식에 대해선 “명단을 관리하는 곳은 전산망으로 되어 있다”며 “기금위원회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 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 봉사기(서버)를 기금위원회에서 관리하고, 도(道)마다 서버기가 다 나가 있다”고 했다.
이관형 사무국장이 해당 탈북민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북한 공작원들은 해외에서 미상의 접선 방법으로 헌금을 직접 수령한 후 그 자리에서 영수증과 헌납 증서를 발급한다고 한다. 헌금이 북한 원화일 경우에는 조선중앙은행, 달러는 조선무역은행에 입금된다. 기금을 입금할 때는 헌금을 수령한 공작원과 기금위원회 직원, 은행 직원이 배석한다. 기금 관리자였던 이 탈북민은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한국에 충성심이 높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얘기를 자주 듣곤 했다고 한다.
“최근에도 북한 공작원들 귀순”
끝으로 이관형 사무국장은 “신원을 밝힐 순 없지만, 최근에도 북한 공작원들이 한국으로 귀순했다”고 밝혔다. 그는 마약 밀매 등을 목적으로 남파된 북한 간첩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북한 공작원들도 똑같은 사람일 거예요. 김동식 위원처럼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북한에서 공작원 후보생으로 선발돼 이를 가문의 영광이라 여기고, 세뇌돼 목숨 걸고 훈련도 받았을 거예요. 그 사람들의 인생이 너무 안타깝고 기구하다고 생각해요. 북한에 남은 가족들도 있어서 남의 인생에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악업은 덜 쌓았으면 좋겠어요. 여기 와서 보고 느낀 게 있으면 북한 체제의 모순을 어느 정도 체감했을 텐데 머릿속으로라도 탈북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쩔 수 없이 죄를 저지른다면 그게 죄인 줄 알고 저질렀으면 좋겠어요. 특히 마약에 대한 악업은 덜 쌓았으면 좋겠어요. 본인들이 더 잘 알잖아요. 마약이 한 인간, 한 가정을 파탄 낸다는 것을요. 물론 북한에 돌아가면 사상 검사도 다시 받고 할 거예요. 그런 것들을 잘 피하면서 해악을 덜 끼치는 방법도 있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2015년부터 다시 1만 명 선을 넘기 시작한 국내 마약류 사범은 2016년 1만4214명, 2017년 1만4123명, 2018년 1만2613명, 2019년 1만6044명에 이어 2020년 1만8050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은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으로 접속하는 비밀 사이트), 소셜미디어(텔레그램) 등을 이용하여 해외 마약류 공급자와 연락이 용이해짐에 따라 국제 우편물을 이용한 마약류 구입 사례가 늘어난 것이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국내 마약류 사범은 2023년 2만7611명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러한 마약류의 ‘생산지’는 어디일까.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산 필로폰이 국내에서 유통되는 마약 중 적게는 30%, 많게는 5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관형(李冠亨·45) NK워치 사무국장은 지난 11월 25일, 북한산(産) 마약의 생산 및 밀매 실태를 다룬 저서 《수령과 마약》을 출간했다. NK워치는 2003년 6월 3일 북한 정치범 수용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설립한 북한 인권 시민사회단체다. 이 단체의 대표인 안명철씨는 1987년부터 1994년까지 국가안전보위부 7국이 관리하는 정치범 수용소 경비대원으로 근무한 바 있다. 지난 12월 2일 이관형 사무국장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NK워치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일성, 1968년부터 양귀비 재배 지시
이관형 사무국장은 “마약에는 이데올로기가 없다”며 “이것(마약)의 품질이 좋은지, 가격이 합당한지만 따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 세계 범죄 조직들이 탐을 낼 만큼 북한산 마약의 품질이 좋다고도 했다. 그에게 물었다.
― 북한산 마약이 인기가 많다고 했는데, 소위 북한의 관(官)이 관리하는 것이라서 순도라든지 여러 가지 품질이 보증되는 건가요.
“당연하죠. 겉으로 보면 북한 내 범죄 조직이 마약을 다루는 것 같지만, 이마저도 관 주도입니다. 북한은 애초에 정보가 통제되기 때문에 기본적인 (마약) 화학식(化學式)조차 공유가 쉽지 않아요. 물론 화학자들 머릿속엔 있겠죠. 하지만 마약이 돈이 되고, 순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공식이 필요하고, 어떤 원료가 필요하고, 이 원료를 가져오기 위해 어떤 회사나 공장을 거쳐야 하고, 이런 건 국가밖에 몰라요. 그리고 그 국가(북한)는 모든 일을 수령의 허락 아래 진행합니다.”
양귀비 재배에 정치범·의대생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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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과 마약》(2024) |
《수령과 마약》에 따르면, 안명철 NK워치 대표는 그가 근무했던 함경북도 온성군 소재 13호 관리소에서도 1987년 양귀비가 재배된 바 있다고 밝혔다. 양귀비 재배를 위해 정치범들로 구성된 1개 작업반이 투입됐고, 관리소 내에서도 보안 유지를 위해 이 작업반 명칭을 ‘남새(채소) 작업반’으로 위장했다고 한다. 또 함경북도 회령시에 위치한 22호 관리소 내 락생지구에서도 양귀비가 재배됐는데, 총 500여 명의 정치범들이 양귀비 재배에 동원됐다고 한다.
이관형 사무국장은 1998년 10월부터 2002년 5월까지 북한 보위사령부(현 군 보위국) 산하 청진 ‘5.18소’라는 마약 생산 시설에서 재정 담당 지도원으로 근무했던 손명화씨의 증언도 확보했다. 손씨는 ‘16호 관리소(함경북도 명간군 소재 완전 통제 구역)에서 생산된 아편 진액을 수납하기 위해 직접 청진 5.18소 소장과 함께 2000년도에 관리소에 방문했다’고 한다.
아편→헤로인→필로폰
양귀비는 아편의 원료다. 그런데 10kg의 아편과 20kg의 화학 물질이 있으면 헤로인을 제조할 수 있다. 헤로인을 100배 농축하면 ‘인류 최악의 마약’으로 알려진 펜타닐(Fentanyl)이 된다. 이미 1960년대부터 양귀비를 재배한 북한은 1990년대 들어 매월 1t에 달하는 헤로인 생산 능력을 갖게 됐다. 이는 2002년 《월간조선》 7월호에 실린 윤대일(尹大日)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된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지도원 출신 탈북자인 윤씨는 이때 이렇게 말했다.
“1996년 말에는 중앙으로부터 ‘함북도의 협동농장 중 (가능한 곳은) 10정보씩 아편을 재배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1997년부터 함북도 내 협동농장에서 대대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재배된 아편은 인민무력성 보위국이 관리하는 청진시 나남 구역의 나남제약공장으로 운반된 다음 이곳에서 가공하여 완제품을 생산했습니다. 나남제약공장에는 태국인 마약 기술자들이 근무했는데, 이곳에서는 헤로인과 필로폰을 각각 매월 1t씩 연간 24t 정도 생산했습니다.”
이관형 사무총장은 나남제약공장 외에도 만년제약공장, 흥남제약공장, 국가과학원 함흥분원, 보위사령부 5.18소 등을 북한의 마약 생산 시설로 꼽았다. 또 그는 “필로폰 생산 기술은 순도가 관건”이라며 “북한은 고순도 필로폰 생산 기술을 1990년대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1998년 발행한 책자 《21C 새로운 위협 국제범죄의 실체와 대응》을 인용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산 필로폰을 분석한 결과 불순물이 거의 없는 고순도(98%)이며 미량의 벤즈알데히드(1%)가 검출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北, 국내 조폭과 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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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북한산 필로폰을 국내로 유통시킨 19명이 검거됐다. 북한산 마약이 국내에 유통되는 과정이다. 사진=조선DB |
“1990년대 ‘임양냉 사건(국내 폭력조직 ‘신상사파’ 조직원들이 5000억원대 북한산 필로폰을 사서 중국 선적 ‘임양냉 2호’를 통해 일본으로 보내려다 적발된 사건)’을 보면 중국인 등 브로커를 두고 북한과 국내 조폭이 거래를 하는 식이었어요.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조폭들이 마약 사범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는 건 멀리한다’고 알려졌었어요. 과연 그럴까요. 돈이 되면 다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돈을 향한 탐욕은 마약 못지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북한이 외화벌이 수단으로 생산한 마약은 도리어 북한 내부를 잠식하고 있기도 하다. 이관형 사무국장은 2012~2019년 사이 탈북한 주민들로부터 북한 내 마약 소비 상황에 대해 ‘전당(全黨), 전군(全軍), 전민(全民)이 다 사용한다. 머저리, 미물, 소아마비 걸린 사람이 아닌 이상 모두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1990년 기준, 검거되지 않은 간첩 50여 명
한편,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북한 군(軍) 내부에서는 “통전부(통일전선부) 서울지구당원들이 다 체포된 것인가”라는 말이 돌았다고 전해진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는 지난 12월 6일 북한 내부 군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총참모부는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후 약 30분 뒤인 밤 11시경 군 고위 간부들을 평양시 서성구역 석봉동에 있는 총참모부 본부로 소집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의 간첩이 실존한다는 건 기정사실처럼 여겨진다.
그렇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될까. 이관형 사무국장은 과거 대남(對南) 공작원으로서 한국에서 조직공작(지하조직 구축, 지도, 검열)을 담당하다가 국내에서 검거된 김동식 전 국가안보전략연구 책임연구위원과 친분이 있다고 한다. 이관형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전향한 북한 간첩들 중에선 김동식 전 위원의 급(級)이 제일 높다”고 했다. 그러며 김동식 전 위원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북한 공작지도부는 1988~1992년 사이에만 10개 공작조를 한국에 침투시켰다. 이 공작조들은 기존에 한국에 구축했던 지하조직들을 지도, 검열한 동시에 새로운 간첩망들을 만들었다. 이 공작조들은 적어도 2개 이상의 간첩망을 새롭게 구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1개 간첩망은 3~5명의 조직원들로 구성된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구축된 20여 개의 간첩망(전체 지하조직원은 60~100명) 중 10개 정도는 검거된 것으로 보인다.”
김동식씨가 1995년 9월 남파 직전 공작지도부로부터 받은 임무는 ‘한국 유력 대선 후보와 연락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는 같은 해 10월 24일 부여에서 한국 군경(軍警)과의 총격전 끝에 검거됐고, 그의 조원(組員)은 사살됐다. 이관형 사무국장은 “만약 김씨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쳤다면, 그의 지하조직은 한국 정·관계 깊숙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물론 그가 실패했더라도, 북한은 다른 공작원을 통해 연락 체계 구축을 완료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에서 북한과의 내통 체계를 구축하려면 한국인들을 포섭해야 하는데, 실제로 포섭된 이들이 수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북한에 헌납했다는 증언도 있다.
“한국인 수백 명, 북한에 충성 獻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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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단체 사단법인 물망초가 《조선일보》에 제공한 북한 국경 지역의 양귀비 밭 모습이다. 2013년 7월 함경북도 회령시 일대 야산에서 촬영됐다. 사진=조선DB |
그 근거로 “지난 2019년 한국에 정착한 한 탈북민으로부터 ‘수백 명의 한국인이 북한에 충성 헌금을 바쳤다’는 놀라운 증언을 들었다”고 전했다. 해당 탈북민은 2012년에 설립된 중앙당 선전선동부 산하 김일성김정일기금위원회(기금위원회)에서 기금을 관리했다고 한다. 이관형 사무국장이 전한 해당 탈북민의 얘기다.
“한국 사람들도 많아요. 한국 사람들이 가명으로 들어오거든요. 통전부에서 취급해요, 한국 사람들은, 가명으로 해가지고 헌납 증서만 받아 가는 거죠. 금액만 써주거든요. 한국 사람들이 액수가 제일 높은데 한 번에 3000~5000달러, 3만 달러까지 내는 이도 있어요.”
이관형 사무국장이 ‘헌금을 내는 한국인 규모’를 묻자 그는 “몇백 명 된다”고 했다. 헌금액의 최소 단위가 얼마인지를 묻는 물음엔 “최소 1000달러고, 한 명이 혼자서 최대로 많이 낸 게 2만~3만 달러 될 것”이라고 했다. 기금 헌납 명단을 관리하는 방식에 대해선 “명단을 관리하는 곳은 전산망으로 되어 있다”며 “기금위원회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 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 봉사기(서버)를 기금위원회에서 관리하고, 도(道)마다 서버기가 다 나가 있다”고 했다.
이관형 사무국장이 해당 탈북민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북한 공작원들은 해외에서 미상의 접선 방법으로 헌금을 직접 수령한 후 그 자리에서 영수증과 헌납 증서를 발급한다고 한다. 헌금이 북한 원화일 경우에는 조선중앙은행, 달러는 조선무역은행에 입금된다. 기금을 입금할 때는 헌금을 수령한 공작원과 기금위원회 직원, 은행 직원이 배석한다. 기금 관리자였던 이 탈북민은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한국에 충성심이 높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얘기를 자주 듣곤 했다고 한다.
“최근에도 북한 공작원들 귀순”
끝으로 이관형 사무국장은 “신원을 밝힐 순 없지만, 최근에도 북한 공작원들이 한국으로 귀순했다”고 밝혔다. 그는 마약 밀매 등을 목적으로 남파된 북한 간첩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북한 공작원들도 똑같은 사람일 거예요. 김동식 위원처럼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북한에서 공작원 후보생으로 선발돼 이를 가문의 영광이라 여기고, 세뇌돼 목숨 걸고 훈련도 받았을 거예요. 그 사람들의 인생이 너무 안타깝고 기구하다고 생각해요. 북한에 남은 가족들도 있어서 남의 인생에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악업은 덜 쌓았으면 좋겠어요. 여기 와서 보고 느낀 게 있으면 북한 체제의 모순을 어느 정도 체감했을 텐데 머릿속으로라도 탈북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쩔 수 없이 죄를 저지른다면 그게 죄인 줄 알고 저질렀으면 좋겠어요. 특히 마약에 대한 악업은 덜 쌓았으면 좋겠어요. 본인들이 더 잘 알잖아요. 마약이 한 인간, 한 가정을 파탄 낸다는 것을요. 물론 북한에 돌아가면 사상 검사도 다시 받고 할 거예요. 그런 것들을 잘 피하면서 해악을 덜 끼치는 방법도 있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