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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의 저자 최범

“우리 사회의 문제는 ‘독재 vs 민주’가 아니라 ‘근대 vs 전근대’의 문제”

글 : 장원재  ㈜戰後 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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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예총·희망제작소 등에서 일한 좌파 예술운동가 출신
⊙ “한국 좌파, 조선말 衛正斥邪 守舊派의 후예이자 종족주의자”
⊙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 것”
⊙ “현재 대한민국은 물질적으로는 근대화됐지만 정신적으로 근대화되지 않아”
⊙ “8·15는 자유주의혁명기념일… 한국 근대화 과정이야말로 세계사적인 혁명”
⊙ “문재인 정권 때 세월호 참사·위안부 소녀상 논란 등 겪으면서 충격”
⊙ “사회·문화적 혁명 없이는 정치·경제 혁명의 재생산 불가능”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헐러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주)戰後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어떤 통일이라도 분단보다 낫다’는 사람이 있다. 북한 주도 통일도 포함해서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과 전체주의 노예제 사회 북한을 동등하게 평가한다. 그러면서 진지하다. 농담이 아니다.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이 의문에 답하는 책이 나왔다. 최범(崔範·67) 평론가의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 몸은 한국인 정신은 조선인》(기파랑 펴냄)이다. 현대 한국인은 겉보기에는 근대인(近代人)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봉건주의 전근대(前近代)에 머물러 있는 중세인(中世人)이라는 논증(論證)이다. 근대와 전근대가 기형적으로 얽혀 있기에 이를 물리치고 극복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필자는 우리에게 간곡하게 호소한다. 좌우의 대결이 아니라, 근대와 전근대의 충돌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수구좌파는 反근대화 세력”
 
  ― 이념 차이가 아니고요?
 
  “저는 한국의 현재 정치 지형을 크게 셋으로 나눕니다. 수구좌파(守舊左派), 보수우파(保守右派), 진보우파(進步右派)입니다.”
 
  ― 좌파는 자칭 진보주의자라고 하는데, ‘수구’로 평가하네요.
 
  “저는 한국의 지금 좌파는 조선말의 위정척사(衛正斥邪) 수구파의 후예라고 봅니다. 위정척사라는 말 자체가 ‘자신들이 옳다(正), 그래서 배타적 독점권(獨占權)을 가지고 상대방을 탄압할 수 있다’라는 사상을 깔고 있지요. 그 사람들, ‘우리 민족’을 강조하잖아요? 다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 어떤 점이 제일 큰 문제가 되는 겁니까.
 
  “무엇보다도, 반근대화(反近代化) 세력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근대를 부정해요. 그리고 ‘민족제일주의’에 빠져 있어서 조선과 대한민국의 차이를 모릅니다. 지금이 조선 시대라고 생각해보죠. 일반 백성은 아무런 정치적 권리가 없고, 의무만 있습니다. 세금을 낸다든지, 나라에서 일 시키면 부역 나간다든지, 재산권도 없어서 돈 벌면 나라에 그냥 빼앗기는 겁니다. 무조건 잡아다 형틀에 묶고 ‘네 죄를 네가 알렷다!’ 고함치고 죽도록 때려서 권력층이 다 가져가는 거죠. 법적 보호, 이런 것 없어요.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적·법적 권리를 누리고 삽니다. 조선 시대에는 남녀 차별도 심각했어요. 오늘날에도 현실적으로는 남녀 차별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엔 남녀 차별이 없습니다. 이렇게 조선과 대한민국은 너무나 다릅니다.”
 
  ― 그런데 좌파에게는 이 점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대한민국과 조선, 이 두 나라의 사회적·체제적 조건들이 매우 다른데, 좌파가 볼 때는 이건 하나도 안 중요합니다. 이보다는 둘 다 한민족(韓民族)의 국가라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해요.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을 옹호하는 멘털이 나오는 겁니다.”
 
 
  “좌파의 주된 세계관은 종족주의”
 
2018년 9월 10일 창덕궁에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맞은 것은 조선 전통 의장대였다, 사진=연합뉴스
  ― 어떻게 연결되는 겁니까.
 
  “김일성(金日成)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거죠. 좌파가 말하는 ‘우리 민족’은 거의 종교적으로 신성(神性)시하는 개념입니다. 이순신(李舜臣)도, 박정희(朴正熙)도, 김일성도 다 우리나라 사람. 완전히 다른 세계관과 멘털리티를 가지고 살았다는 차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그냥 ‘종족적으로 한민족이다’ 이게 중요한 거죠.”
 
  ― 이런 논리대로라면, 김씨 족속이 수많은 인권 유린을 자행하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그들이 주민들을 노예로 부리고, 고난의 행군 때 80만~300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종족주의자들에겐 이런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까? 북한 주민은 ‘우리 종족’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그것도 모순되지만, 중요한 건 다른 거죠. 국제사회가 공격하는 건 주민들이 아니라 김씨 왕조잖아요? 우리 민족 중에 남들이 공격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가 편들어야 한다, 왜? 같은 종족이니까. 이런 종족주의가 주된 세계관인 집단이 한국의 좌파라는 거죠. 서양의 좌파와는 본질에서 차이가 납니다.”
 
  평론가 최범은 ‘종족주의’의 실례로 문재인 대통령 시절의 국가 행사를 들었다.
 
  “2018년 9월에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창덕궁에서 공식 환영식을 열었습니다. 국가 의식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빈 방문한 외국 원수를 맞는 공식적인 행사는 국제사회의 관례에 따른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잖아요. 이건 문화 행사가 아니고 정치 행사입니다. 정치 행사라는 것은 두 국가의 정체성에 맞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죠.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럼 자기가 조선 시대 왕이라는 얘기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죠.”
 
  ―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이 훼손되었다는 말씀이네요.
 
  “그날 의장대 사열도 했죠. 군대도 대한민국 국군이 아니라 조선군 복장을 하고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의장대 사열은 방문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식입니다. 그럼 대한민국이 아니라 조선이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맞이한 겁니까? 제가 당시 청와대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니까 조선 시대 복식 등을 자문해준 사람이 있더라고요. 이런 사실을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건 문재인 정부가 이 일에 대해 아무런 모순을 느끼지 못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면 대한민국이 조선인 겁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이런 모순조차도 감지를 못 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워요. 양국 정상이 공식 행사 끝나고 뒤에 전통문화를 즐겼다면 그건 정치적인 공식 행사가 아니니까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대한민국은 혁명국가”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사진=조선DB
  ― 그런데 광화문 광장에는 여전히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 계십니다.
 
  “그러니까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은 우리 민족의 위대한 영웅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민족의 영웅을 모시는 데가 아니고 공화국의 영웅을 모셔야 하는 곳입니다. 제 주장의 기본 요지는 ‘대한민국은 혁명국가이고 그리고 대한민국 혁명은 한국 근대 혁명의 한 일환이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혁명의 소중한 결과물인 공화주의에 상처를 내고 있어요. 공화국 대한민국은 우리가 힘써서 아끼고 보수(補修)해야 유지될 수 있습니다. 늘 지금과 같은 형태로 살아남아 우리에게 유·무형의 이익을 영원히 주리라고 보는 건 착각입니다.”
 
  ― 상처를 낸다고 하셨는데, 사실은 더 홀대하죠. 공화국 대한민국은 생일조차 미확정입니다. 아직도 건국(建國) 시점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방증(傍證)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런 사달이 일어난 거죠. 이인호 교수님 말씀처럼, ‘1919년 건국절’ 주장은 논박할 가치도 없어요. 1919년에 건국했다면, 그다음에 했던 일련의 독립운동, 독립군 활동에 ‘독립(獨立)’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되는 겁니다. 제가 이런 논쟁을 보면서 도대체 왜들 이러는지를 생각해봤습니다. 논점을 아주 단순화하면,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인정하기 싫어서 그러는 겁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하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류의 인식이랑 똑같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부정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건 역사에 대한 다른 해석이라기보다는 그냥 반대한민국적인 태도예요. 이것도 조선조의 전근대성과 이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이성계는 조선의 5대 임금?”
 
  ― 좀 더 말씀해주십시오.
 
  “제 개인의 역사적 상상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정상일까? 자기들도 아닌 걸 알면서 억지를 쓰는 걸까? 아니면 진짜 뭐 믿는 구석이 있나? 조선 시대에는 누군가가 영의정이 되면 4대 할아버지까지 추존(推尊)했습니다. 그래서 이성계만 해도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 4대를 추존하잖아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가 바로 추존왕까지 신격화(神格化)하는 내용이잖습니까? ‘육룡(六龍)이 나르샤’의 여섯 용이 태조, 태종에 4대조를 합친 거죠.
 
  자, 그럼 조선을 건국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태조(太祖) 이성계입니까, 목조입니까? 태조가 아니라 목조 때부터 조선을 개국했느니라, 1919년 건국설이 이거랑 뭐가 달라요? 종묘(宗廟)에도 목조를 개조(開祖)로 모셨습니다. 거기서 이성계는 5대 임금이에요.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조선 사람들의 사고(思考)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합니다.”
 
  ― 이렇게 조선을 좋아하는 분들은 천부인권(天賦人權), 남녀평등, 재산권 이런 것들이 없는 조선 사회로 돌아가자는 걸까요?
 
  “정신적으론 그렇죠. 정확하게 말하면 이런 중요한 차이들을 간과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의 한계와 부조리함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시장에서 콩나물 살 때 100원을 깎는 사람이 다른 경제적인 부분에는 무지해서 엄청난 손해를 보고 살아간다, 그럼 이런 걸 우리가 비웃잖아요. 그러니까 조선과 한국을 보는 것도 혈연 중심주의를 기준으로 하면 다른 가치는 다 하위 기준이 되는 겁니다. 다른 모든 것이 거기에 다 쓸려 들어가서 죽어버리는 거죠. 한국의 혈연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사회적인 삶의 가치를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같이 돼버렸어요. 그럼 이 블랙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좌파의 사고방식은 인지부조화 모순”
 
  ― 조선에도 자랑스러운 문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인류적 자산이죠.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건 우리가 얼마든지 자랑스러워해도 좋습니다. 문제는, 객관적 비판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에요. 《조선왕조실록》은 500년간의 역사를 정밀하게 다뤘지만, 그건 그 시기를 살아간 1% 양반층의 기록입니다. 거기 나오는 사람들은 다 조선의 왕후장상(王侯將相)이죠. 민중의 얘기는 안 나와요. 여자들도 거의 안 나옵니다.”
 
  ― 왜 그런 겁니까.
 
  “사관(史官)들이 보기에 그들은 아예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기재하려고 해도 이름이 없었으니까 기록할 수 없었겠죠.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중요한 기록물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부정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그 방대한 기록물이 조선 시대 1%의 기록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죠. 말을 바꾸면, 조선은 그런 나라였다는 겁니다. 1%만 기록할 가치가 있고 다른 중생들은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라가 조선이었다는 겁니다.”
 
  ― 대한민국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네요.
 
  “그렇죠. 대한민국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하는 나라인데 이 두 차이는 정말 어마어마한 차이잖아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차이인데 좌파가 볼 때는 둘 다 우리나라입니다.”
 
  ― 수구좌파는 왜 이 차이를 간과하는 겁니까? ‘우리 민족끼리’가 중요하다면 조선과 북한의 모순과 수탈엔 왜 관심을 안 두는 거죠?
 
  “우파는 자유를 추구하고 좌파는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고 하죠. 그래서 한국 좌파의 이런 사고방식은 당연히 모순입니다. 좌파의 평등 개념은 또 자세히 얘기하려면 할 얘기가 많지만, 그냥 한마디로 인지 부조화 모순이라고 정리하겠습니다.”
 
 
  ‘외부로부터 주어진 근대’를 ‘주체적 근대화’로
 
  ― 대한민국은 근대 국가입니까?
 
  “네. 현재의 대한민국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근대를 우리가 받아들여서 주체적으로 수용한 결과물이죠. 이제 2년 뒤면 개항(開港) 150주년입니다. 150년간 우리가 근대를 수용해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지금 이만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누리고 경제적으로도 발전하고 잘살잖아요. 이게 주체적인 근대화죠. 그래서 저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 기념일이 아니라 ‘혁명 기념일’로 명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대한민국 건국이 그만큼 혁명적인 역사적 사건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자유주의 혁명 기념일이라고 해야죠. 5000년 역사에서 우리 한국인이 지금처럼 정치적 권리를 갖고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남녀가 차별 없이 살았던 적이 있나요? 이런 게 혁명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혁명이에요? 하늘에서 맨날 뭐 뭐가 떨어져야 혁명입니까? 한국 근대화 과정이야말로 세계사적인 혁명인데 드라마틱한 폭력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위대한 혁명을 혁명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족예술》 편집장 지내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기획실장 시절(1997~1999년 사이) 최범 작가.
  강연이나 책을 통해서 우익적 가치를 힘써 전파하는 자유주의 전사(戰士)지만, 최범의 사상적 출발점은 좌파다.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기획실장, 희망제작소 간판문화연구소 소장,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을 지냈다. 그는 2000년대 중반까지 좌파 예술 진영에서 날리는 이론가 중 한 명이었다. 1957년 부산 생으로, 파란만장한 유년기를 보낸 것과 관련이 있을까?
 
  “1960년대의 부산은 일제(日帝) 시대 분위기가 물씬했어요. 저만 해도 일본식 주택에서 살았죠. 여러 시대가 겹쳐 있던 공간입니다.”
 
  부모님은 모두 경상도 시골 출신이다. 부친은 대한제국 시절인 1899년생. 아주 늦은 나이에 아들을 본 셈이다.
 
  “당신 말씀에 의하면 10대 때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지게를 벗어던지고 그 길로 바로 부산으로 왔답니다. 막 공장들도 생기고, 일자리가 많았다고 하셨어요. 일제 시대 초기에 만들어졌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대 공장인 조선방직 짓는 현장에서 노무자로 일하시고, 일본의 영역인 조선, 만주, 일본의 공사판을 전전하면서 사셨죠. 해방 이후에 귀국하셨고 어머니를 만나 제가 태어났습니다. 말년엔 부산에서 장사를 하면서 지내셨고, 제 아래로 동생이 셋 있습니다.”
 
  소년 최범은 그림 그리기가 취미였다. 초등학교 때 별명이 ‘만화가’였다. 봉건적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의 그림 취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최범의 10대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미대에 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중퇴 후 서울로 올라와 고학(苦學)으로 검정고시를 보고, 화실과 미술학원에 다녔다. 그러다 군대에 갔고 제대 후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동기들보다 5~6세가 많았다.
 
  1991년 대학원 졸업 후에는 민중문화운동에 투신했다. 민중미술협의회에 가입해 열성적으로 활동했고 1995년부터는 민예총(민족예술인총연합)으로 자리를 옮겼다. 민예총은 소위 민중문화운동 단체가 총집결한 연합체였다. 민중 음악, 민중 연극 등 모든 장르를 망라한 그곳에서 최범은 《민족예술》이라는 기관지 편집장을 맡아 일했다. 10년 동안의 민중운동을 배경으로, 2000년대엔 좌파 시민운동가의 삶을 살았다. 무려 20년을 좌파 진영에서 이론과 실천의 핵심 운동가로 활동한 것이다.
 
 
  ‘좌파가 재난을 다루는 방식’
 
  도대체 어떤 사건이 그를 우선회(右旋回)하도록 만든 것일까?
 
  “문재인 정권 때 세월호 참사 문제라든가 위안부 소녀상 논란 등을 겪으면서 충격을 받고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특히 좌파가 재난을 다루는 방식을 보고요.”
 
  ―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였습니까.
 
  “199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 일어났던 커다란 재난으로는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가 있습니다. 그런데 재난을 대하는 자세는 이 두 사건과 세월호의 경우가 많이 달랐어요. 그 당시에도 이런 재난에 대해서 많은 개탄이 있었고 잘못한 사람들, 책임져야 할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질타가 있었지만, 그것을 정치적 채권(債權)이라고 할까요?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쓴 사람은 없었습니다.”
 
  ― 세월호 때는 그런 접근이 많았습니까?
 
  “세월호는 참사를 다루는 방식이 달랐죠. 저는 구조적인 부조리(不條理)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한국 사회가 커다란 사회적인 재난을 겪고, 보다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랬는데, 보면 볼수록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한국 사회의 관점이나 태도가 완전히 그 반대로 가는 겁니다. 소위 좌파 시민단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이 재난을 다루는 방식은 전혀 근대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았어요. 심지어 민주적이지도 않았죠. 그래서 저는 이건 주술적(呪術的)인 대응 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 주술적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말씀하는 겁니까.
 
  “잘못을 누구에게 뒤집어씌운다든가, 사고의 과학적 검증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다든가, 어떤 원한의 문제로 이 사태를 풀어간다든가 하는 겁니다.”
 
  최범 작가는 세월호 사고 당시, 사고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이에 따라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고,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 규모를 산정해 보상하는 절차는 우리 사회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고의 수습이 1차 목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서 사태가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구체적 근거 없이 특정인을 비난하고, 또 그걸 가지고 사고(事故)의 카테고리를 넘어서서 정치 영역으로 치환(置換)했죠.”
 
  필자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일부 극소수 세력의 목표는 사태의 수습이 아니라 문제의 확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특정 정치 세력을 공격했습니다. 합리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비합리적인 정념(情念)에 가득 찬 방식이었어요. 사건을 대하고 사안을 몰아가는 방식을 보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위안부 숭배와 상업화 동시에 일어나”
 
최범 작가는 ‘위안부 소녀상 숭배’ 현상을 비판했다. 사진=조선DB
  세월호 참사는 최범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한국 사회가 자신이 이해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자각(自覺)이다. 한국 사회가 원래 이러했던가? 아니면 급격하게 바뀐 것인가? 처절하게 고민하는 와중에 위안부 소녀상 숭배와 이를 둘러싼 각종 논란이 언론 기사를 장식했다.
 
  “저 자신이 미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더 엄하게 볼 수밖에 없었죠. 위안부 소녀상 논란은 어떤 의미에선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힘들 정도로 성역화(聖域化)한 면이 있습니다. 이것도 문제지만, 저는 숭배와 상업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 무슨 뜻입니까.
 
  “위안부 소녀상이 전국 곳곳에 세워지고, 목도리를 둘러준다든지 신발을 신겨준다든지,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저는 너무 놀랐어요. 이것이 역사를 대하는 바람직한 방법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일본 대중문화 서브컬처 용어에 ‘모에화’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물체, 개념, 형상 등을 귀엽고 예쁘게 꾸미고 여성화시키는 것이죠. 위안부 소녀상이 전국에 조각품, 복제품이 많이 만들어지고 미니어처도 나왔습니다. 그걸 가지고 무슨 액세서리 같은 것도 만들어서 인터넷에서 팔고 그랬어요. 한쪽에서는 그걸 숭배하면서, 똑같은 세력이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을 모에화해가지고 상품으로 판다? 모에화와 숭배 대상화가 동시에 일어난 것이죠. ‘엄정한 역사적 문제라며 사람들에게 묵시적으로 숭배를 강요하듯 하면서, 동시에 이토록 가볍고 쉽게 접근하는 건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벨기에의 오줌싸개 동상은 옷도 갈아입히고, 이것저것 다 하잖습니까.
 
  “오줌싸개 소년이야 말 그대로 가공의 역사고, 그냥 귀여운 동상이니까 그것 가지고 재미있는 장난을 친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위안부 소녀상은 일방적으로 숭배해서도 안 되지만 장난쳐도 안 되는 거죠.”
 
 
  몸은 한국인, 정신은 조선인
 
  이에 30여 년간 갖고 있던 한국 사회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는 깨달음이 왔다. 기존의 방식, ‘독재와 민주’로는 우리 사회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낸 화두(話頭)가 ‘근대와 전근대’였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니 새로운 것이 보였다. 대한민국의 문제는 부분적 근대화라는 것, 다시 말하면 몸은 한국인, 정신은 조선인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었다. 정치·경제는 근대화되었지만 사회·문화는 아직 근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인터뷰 첫머리에 수구좌파 이야기를 하시면서 전근대적이라고 비판했는데, 그럼 우파도 근대화를 이룩하지 못했습니까.
 
  “개인주의는 ‘개인이 개성적으로 사는 것을 용인하자’라는 사상이고, 집단주의는 개인보다는 전체가 중요하다, 가문 등 소속 집단이 중요하다, 이런 건데 우익 중에서도 집단주의를 선호하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국에는 자유주의자가 드물다는 증좌(證左)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전혀 다르고 심지어 정반대 개념인데, 일부 우익 운동을 하는 분 중에는 정치·경제의 근대화는 중요시하면서도 사회·문화는 여전히 종족주의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개인주의의 반대는 집단주의다. 민주화 이후 한국인들은 정치적 자유를 획득했다. 하지만 사회적 감시와 압력은 나날이 커지는 중이다. 이것을 사회적 전체주의, 여론 전체주의라고 이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어쩌면 줄어드는 추세인지도 모른다. “개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건 대부분의 우파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저는 ‘엄밀하게 말하면 한국에 우파는 없고 좌파만 있다’라고까지 생각합니다. 좌우를 가르는 기준은 말 그대로 근대적인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인데 개인을 인정하면 우파, 인정하지 않으면 집단주의자 좌파라고 봐요.”
 
 
  ‘보수우파’ ‘진보우파’
 
  ― 그런데도 ‘보수우파’라는 말을 썼습니다.
 
  “보수우파들도 집단주의자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굳이 ‘보수우파’라는 말을 써서 ‘수구좌파’와 분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수우파들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수구좌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는 거죠.”
 
  ― 자유주의 우파는 없습니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합리적 개인주의가 창출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보우파인데, 저는 대한민국에서 자유주의 ‘진보우파’는 극소수라고 생각합니다.”
 
  ― 왜 그렇게 봅니까.
 
  “간단히 말해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아닙니까? 대한민국에선 자유가 제일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선 ‘자유’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요. 교과서를 보면 민족이 어떻고 국가가 어떻고 이런 얘기만 하지 자유를 얘기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교과서에서 왜 자유가 다 빠졌는지 이해가 돼요.”
 
  ― 왜 그렇습니까.
 
  “개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자유는 개인의 자유거든요. 자유라는 말은 개인의 자유를 뜻하지, ‘국가의 자유’ 이런 말은 존재하지 않아요. 집단의 자유, 회사의 자유 이런 말도 없습니다. 자유는 당연히 개인을 전제하고 있어요.”
 
  ― 그럼 우리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을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개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집단주의와의 투쟁을 먼저 해야죠. 개인은어느 날 짠! 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집단주의의 지배로부터 서서히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거든요. 서양도 그래요. 개인주의가 금방 나온 게 아닙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예를 들어 국가권력, 종교와의 투쟁 같은 걸 통해서 비로소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승만과 박정희
 
최범 작가가 2020년 금보성아트센터에서 〈한국 근대미학의 기원: 새마을운동, 근대화, 디자인〉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 우리는 그런 과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위대한 거예요. 문제는 이승만이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게 통째로 자유를 준 것이지 ‘개인’까지 만들어준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승만 개인이 할 수 있는 과업도 아니었고요.”
 
  ―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건국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에게 자유를 선사했죠.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이 ‘개인의 자유’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죠. 이승만은 헌법적 권리로서 이전에는 없던 자유를 우리에게 줬습니다. 그런데 이승만이 부여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완성이 되려면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승만이 어떤 단초를 제공한 건 맞지만, 이승만이 완성할 수도 없고 이승만 개인이 할 수 있는 과제도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 박정희는 어떻습니까.
 
  “경제적 자유 없는 정치적 자유는 큰 의미가 없죠. 그래서 박정희도 위대합니다. 저는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을 좌파가 폄하(貶下)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한국의 역사적 과제가 이승만과 박정희를 복권(復權)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계승하는 일은 그분들의 업적을 넘어서는 것이니까요.”
 
  ― 청출어람(靑出於藍)을 말하는 거군요.
 
  “자식이 아버지보다 더 잘돼야 서로가 자랑스럽겠죠. 이승만은 우리 국민에게 헌법적 자유를 부여했다. 박정희는 경제적 자유의 기반을 닦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자유를 실현하는 것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권자라는 의식을 가질 때 그때 바로 그 자유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는 자유는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이지 개개인이 완전히 그 자유를 체현(體現)했다고 보기는 좀 힘든 것 같아요.”
 
 
  “‘동원을 통한 성공 이후’가 문제”
 
  ― 보수우파를 동도서기(東道西器)파의 후예, 진보우파를 개화파(開化派)의 후예로 본다는 말씀도 했더군요.
 
  “대한민국 사회가 중세 사회에서 근대로 이행할 때 수구파, 동도서기파, 개화파의 3자 대결이 있었는데 수구파는 시대착오적 전통주의자입니다. 지금 좌파가 수구파의 후예라는 건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한국의 우파, 제가 보수우파라고 하는 세력은 정치·경제적인 근대화, 즉 물질적 근대화를 담당한 세력을 말합니다. 이승만, 박정희 두 분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동도서기라는 것이 뭡니까? 말 그대로 동양의 정신을 유지하면서 서양의 기술과 도구를 쓰자는 말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논리적인 모순인데, 우리 역사에선 실현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동도서기’가 가장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 그런데 왜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겁니까.
 
  “현재 대한민국은 물질적으로는 근대화됐지만 정신적으로는 근대화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혁명이 맞고 혁명국가인데, 문제는 정치·경제 영역에서만 혁명이 일어났지 사회·문화적인 혁명, 그러니까 의식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정치·경제 혁명에 걸맞은 사회·문화적 혁명이 일어나 줘야 통합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 지금은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살면서도 머릿속은 여전히 조선인이라는 말씀입니까?
 
  “정치적인 근대화는 이승만 대통령이 토대를 쌓았고 그다음에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적인 자유화를 이룩했죠. 그런데 두 분이 동원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었기 때문에 민족주의와 전통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건 불가피했다고 봐야죠. 불가피했지만, ‘동원을 통한 성공 이후’가 문제입니다.”
 
 
  ‘절반의 혁명’
 
  ― 말하자면 정치·경제의 근대화에 이은 사회·문화적 근대화의 방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군요.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과제가 그것입니다. ‘지난 몇십 년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정치·경제 혁명은 놀라운 성취였다. 하지만 반쪽짜리 혁명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혁명은 사회·문화적 혁명까지 이룰 때 완성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사회·문화적 혁명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회·문화 혁명은 정치·경제 혁명하고는 성격이 다르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이승만이나 박정희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가 끌고 가는 것이 불가능해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사회·문화적인 혁명이 정치·경제 혁명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어요.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어쨌든 이것이 이것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안 하고 지금처럼 살 수는 없습니까?
 
  “‘일단 반(半)이라도 한 게 어디냐? 그거 안 한다고 우리가 죽는 건 아니잖아. 그냥 우리가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안 살면 되지 뭐’, 이럴 수도 있는데 사회·문화적 혁명 없이는 정치·경제 혁명의 재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정치·경제 혁명 한 번 했다고 사회가 굴러가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 사회는 재생산이 기본입니다. 밥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사회도 재생산해야 유지 발전이 됩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했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저절로 유지되고 굴러가는 건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지난 76년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 전쟁도 하고 산업화·민주화도 한 것 아닙니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호하고 이것이 우월한 체제임을 인정한다면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지속가능하도록 계속 연료를 공급해줘야 합니다.”
 
  ― 그렇군요.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사회·문화적인 근대성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쉽게 말하면 민주적인 시민이 있어야 제대로 작동합니다. 절반의 혁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나머지 혁명이 이뤄져야 해요.”
 
 
  “근현대 살면서 여전히 중세적 가치관 고수”
 
  최범 작가는 문명사(文明史) 이야기도 했다. 고대(古代) 사회는 우리끼리 그냥 뭐든지 하면 되는, 그러니까 우리 기준이 다 통용되던 시대였다면 중세와 근대는 다르다고 했다. 중세는 이슬람 문명권, 기독교 문명권, 동아시아 문명권 등 거대 지역에 하나의 중심부가 있고 주변부가 종속적으로 위계질서에 맞춰서 살아가던 시대였다. 그때 동아시아 문명권에선 중국의 천자(天子)가 표준을 정했다. 그것에 우리가 맞춰서 살면 되는 시대였다. 하지만 근대라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표준이 새로 제정된 시대다.
 
  “그래서 근현대에 살면서 여전히 중세적인 가치관을 주장하고 고수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모순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지금 우리 한국이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저는 현재 대한민국을 문명사적으로 이렇게 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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