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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의 인간탐험

등단 60주년 ‘나는 별아저씨’ 시인 정현종

“좋은 시란 내 안에서 발효되어 저절로 나와야”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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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현대문학》 통해 시단에 등장… 지금까지 모두 11편의 시집 펴내
⊙ “이 세상이 매일같이 새로 창조되고 있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 “정신이 무거우면 그냥 가라앉아… 삶이란 무겁지 않고 가볍게 들어 올리는 고양(高揚)”
⊙ “어린 시절 나를 무겁게 한 것은 물지게였고 사춘기 때 나를 무겁게 한 것은 육체”
⊙ “神이란 무슨 고정된 존재라기보다는 전 생명 과정이 항상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어떤 힘”

鄭玄宗
1939년생. 연세대 철학과 졸업 /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첫 시집 《사물의 꿈》을 출간한 이래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견딜 수 없네》 《광휘의 속삭임》 《그림자에 불타다》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등 다수 / 한국문학작가상, 연암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경암학술상, 파블로 네루다 메달 등 수상
  노(老)시인과 인터뷰하기 전날 책상 위에 엎드려 잠깐 그의 시집들을 베고 잠이 들었다. 《고통의 축제》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그림자에 불타다》와 칠레 시인 네루다의 시집을 번역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포개어 베개로 삼았다.
 
  꿈속 시인이 말했다. ‘나는 별아저씨/ 별아 나를 삼촌이라 불러다오/ 별아 나는 너의 삼촌/ 나는 별아저씨’(시 ‘나는 별아저씨’ 중)
 
  이튿날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백발의 시인이 밀짚모자를 쓰고 저 멀리서 걸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별아저씨” “별할아버지”라고 부를 뻔했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걸/ 확실히 손에 쥐어보란 말야’
 
‘문지(문학과지성사)’ 1세대.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복거일, 김원일, 오생근, 김주연, 김치수, 황동규, 김병익, 정현종, 홍성원, 김광규씨. 사진=조선DB
  정현종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박두진 선생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이미 대학 4학년 졸업 전후로 두세 차례의 추천과 게재의 과정을 거쳤으니 사실상 올해가 등단 60주년이 되는 해다.
 
  첫 시집 《사물의 꿈》(1972)을 출간한 이래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2022)까지 11권의 시집과 3권의 시선집, 시론과 산문을 모은 5권의 산문집, 네루다 시집 4권, 스페인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집 한 권을 번역했다.
 
  장장 예순 해 동안 시인이자 시창작교실 선생, 문학교수, 시 번역가로 살아온 그에게 과연 시란 무엇이며 시인이란 누구인지 묻고 싶었다.
 
  그를 만나기 5분 전, 예정된 시간의 4분 전, 3분 전 이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내 소리도 가끔은 쓸 만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피는 꽃이든 죽는 사람이든/ 살아 시퍼런 소리를 듣는 거야/ 무슨 길들은 소리 듣는 거보다는/ 냅다 한번 뛰어보는 게 나을걸/ 뛰다가 넘어져보고/ 넘어져서 피가 나보는 게 훨씬 낫지/ 가령 ‘전망’이란 말, 언뜻/ 앞이 탁 트이는 거 같지만 그보다는/ 나무 위에 올라가보란 말야, 올라가서/ 세상을 바라보란 말이지/ 내 머뭇거리는 소리보다는/ 어디 냇물에 가서 산 고기 한 마리를/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걸/ 확실히 손에 쥐어보란 말야
 
  -‘시 창작 교실’ 중에서

 
  시인이자 시 선생은 ‘냅다 한번 뛰어보’고 ‘뛰다가 넘어져보고/ 넘어져 피가 나는 게’ 시라고, 시 쓰기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렇게 만난 노시인에게, 등단 60주년의 대한민국예술원 소속 시인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 시가 뭡니까.
 
  “시는 하늘하늘 내려오는 꽃잎, 내려오면서 거꾸로 땅을 떠오르게 하는 꽃잎이며, 땅을 덮어, 그 위를 걷는 우리가 일거에, 기적과도 같이 중력(무거움)에서 해방되게 하는 꽃잎이지요.”
 
  이 환상적인 말, 은유로 가득한 말, 비유로 반짝이는 순은(純銀)의 말을 세속의 때로 꼬질꼬질한 기자가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말의 성찬(盛饌)이었다.
 

  시인은 “내려오는 꽃잎” “떠오르는 땅”의 언어로 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새벽 숲을 걷는 것이 몸과 마음에도 새벽을 동트게 한다는 사실을 나는 여러 해 전 내 일터(연세대 신촌캠퍼스)의 새벽숲을 걸으면서 실감한 적이 있어요.”
 
  시 이야기를 하다가 숲과 나무 이야기로 뻗어 나갔다. “동쪽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동트면서 오솔길이 하얗게 떠오르고 나무들의 초록빛도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바로 그 순간 어떤 감격을 느꼈는데 그것은 말로 명징하게 드러낼 수도, 글로도 담아낼 수 없는 “이 세상이 매일같이 새로 창조되고 있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했다. 자연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순간이었다.
 
  “동이 트는 순간에 숲에 있으면 천지창조가 옛날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이며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막 동이 트자 (숲이) 초록빛으로 물드는데 그때의 감격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빛이라는 게 어떤 사물을 드러내 보이고, 떠오르게 하고, 밝히고, 그런 게 아니겠어요?
 
  말하자면 빛이 지닌 어떤 성질이 말이죠. 그게 바로 시가 하는 일이 아니겠느냐 해서 빛에다 하이픈으로 연결해 ‘빛-언어’라고 명명했어요.”
 
 
  “시란 黎明의 빛이나 새와 같아”
 
  하이픈으로 연결된 정체성(hyphenated identity)을 지닌 ‘빛’과 ‘언어’에 대한 시인의 설명은 그 자체로 시처럼 다가왔다. 그가 은유를 이어갔다.
 
  “그런데 (숲속으로) 조금 더 걸어가자니 하얗게 떠오른 길 위에 새 한 마리가 있다가 나를 보더니 목털을 곤두세우며 날아올랐어요. 그 순간 새가 지구를 거머쥐고 가볍게 떠올랐다는 느낌이 지나갔어요.
 
  나는 시가 그 여명(黎明)의 빛이나 새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빛-언어이며 (새의) 깃-언어인 것이죠.”
 
  여명의 빛처럼 사물을 망각과 어둠에서 떠오르게 하고 창조하는 말, 끊임없는 시작(始作)으로서의 말, 빛 속에 떠오른 하얀 숲길 위에서 날아오른 그 새처럼 무겁고 무거운 걸 가볍게 들어 올리는 말-시는 그러한 말인 것이다.
 
  시인이 말하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워도 나무와 새, 꽃잎 같은 자연 속 무거움과 가벼움 속에 시가 숨어 있다는 것을 기자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거기까지였다. 등단 60년 시인의 복잡한 시론이 쉽게 풀릴 리가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풀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기자의 물음표로 가득한 눈빛이 전달됐던지 곧이어 시인의 부드럽고 나지막한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여러 해 전 니체의 ‘선한 것은 가볍고, 무엇이든 신성한 것은 가벼운(여린·tender) 발로 움직인다: 내 미학의 제1 원리’라는 말에 밑줄을 그은 것도 필경 예술에 대한 그의 직관에 전적으로 찬동하기 때문이겠지요.
 
  역사와 실존의 슬픔과 무거움이 낳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언어 스스로 거기에 짓눌려 있어선 안 됩니다. 동시에 그 슬픔과 무거움을 견디게 하는 힘, 공기처럼 날아오르게 하는 어떤 동력, (새의) 깃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게끔 (시가) 노래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시인은 다시 비유로 설명했다.
 
  “시라는 것은 땅 위에 떨어져 땅을 덮고 있는 꽃잎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나는 벚꽃 잎이 깔린 길을 가면서 그 꽃잎이 땅을 떠오르게 한다는 느낌과 함께 나도 덩달아 떠오르곤 합니다.”
 
  벚꽃 잎 내려 덮인 길을
  걸어간다 — 이건 걸어가는 게 아니다
  이건 떠가는 것이다
  나는 뜬다, 아득한 정신,
  이런, 나는 뜬다,
  꽃잎들,
  땅 위에 깔린 하늘
  벌써 땅은 떠 있다
  (땅을 띄우는, 오 꽃잎들!)
  꿈결인가
  꽃잎은 지고
  땅은 떠오른다
  지는 꽃잎마다
  하늘거리며 떠오르는 땅
  꿈결인가
  꽃잎들…
 
  -정현종의 시 ‘꽃잎’ 전문(시집 《세상의 나무들》)

 
 
  “빛-언어 깃-언어”
 
2008년 9월 무렵 정현종 시인. 사진=조선DB
  시인은 최근 《빛-언어 깃-언어》라는 산문집을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펴냈다. 이 책은 2015년 다른 출판사에서 낸 《날아라 버스야》라는 책의 제목을 바꿔서 새롭게 세상의 빛을 보게 한 것이다.
 
  “빛-언어 깃-언어는 일종의 내 시론이랄까 일종의 (시론) 요약이라… 말할 수 있어요.
 
  나무 얘기, 새 얘기 이런 건 전부 가벼움에 관한 생각과 다 연결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우리의 정신을,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 삶을 그나마 견디게 해주는 건 우리가 가벼워지는 것 아니겠어요?”
 
  ― 그렇다면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게 시라는 말씀인가요.
 
  “정신이 무거우면, 마음이 무거우면 그냥 가라앉잖아요. 죽음을 보세요. 몸이 죽으면… 시체는 무겁잖아요. 무거우면 가라앉잖아요.
 
  삶이란 무겁지 않고 가볍게 들어 올리는 고양(高揚)인 겁니다. 이 고양이라는 말도 내가 참 많이 썼어요.”
 
  ― 시력(詩歷)이 그렇게 오래됐으니 시가 저절로 쓰이겠네요.
 
  “확실한 건 내가 시 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죠. 한참 안 쓰면서도 지나치게 느긋하다고 할 만큼 지낼 수 있다는 것, 그건 물론 게을러서 그런 것이지만 언필칭 시가 익어 터지기를 기다리기도 한다는 것, 무슨 물건 주문 생산하듯이 손에 익은 재주 가지고 적당히 그럴싸하게 찍어내는 건 상당히 싫어한다는 것, 늘 하는 얘기지만 시 쓰기가 어려운 건 에누리 없이 자기가 산 만큼 쓰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안다는 것입니다.”
 
  ― 어린 시절, 시인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산문으로 쓴 적이 있는데 어린 시절 나를 무겁게 한 것은 물지게였고 사춘기 때 나를 무겁게 한 것은 육체, 그리고 청·장년기에 나를 무겁게 한 것은 정치 상황이었으며, 그 뒤에 무겁게 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지게를 진 소년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때는 다 우물을 퍼다 먹었으니까요. 고향이 경기도 고양 화전입니다. 집안에 노동력이 없으니까 물지게를 지었죠.
 
  제 시의 시원(始原), 그러니까 무거움과 가벼움을 찾아가는 연원(淵源)이 아닐까 하고 따라가 보니 물지게가 생각나는 겁니다. 내가 어려서 물지게를 져서 무거운 것에 대한 한(恨)이 맺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어요.
 
  사실 물지게뿐만 아니라 나무도 해다 땠으니까 지게에다 나무를 그냥 산더미처럼 해가지고 짊어져 날랐으니까….”
 
  ―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셨나요?
 
  “농사는 아니고 텃밭 같은 것을 가꾸긴 했지만…. 내가 자꾸 가볍다든가, 새, 깃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자꾸 하는 연원이 거기(물지게, 나무지게)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데 물지게를 통한 실존의 무거움만이 아니었고, 물을 길으러 우물에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담아가지고 지고 오기만 한 것이 아니었어요.”
 
  ― 그럼 무얼 같이 했나요.
 
  “어린 아이였으므로, 우물 속을 들여다보면서 소리를 지르고 우렁우렁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들으면서, 나중에 될 한 시인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체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드와 보들레르, 니체…
 
2015년 8월 12일 강원도 인제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린 제19회 만해대상 시상식에서 정현종 시인이 만해문예대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사춘기 때 무겁게 한 것은 육체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요.
 
  “천주교나 기독교는 육체나 성(性)을 죄악시했어요. 제가 천주교에 냉담한 이유도 어떻게 사람의 자연스러운 욕망, 이런 걸 감추려고 하는 것일까. 그런 회의가 들어오고, 금기(禁忌)처럼 이야기를 하니까 갈등이 생겨서 무겁게 느껴졌어요.
 
  니체가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기독교는 억압하고 금지하니까요. 내가 자라면서 니체를 읽고 좋아하는 게 그런 이유도 있겠죠. 그런 게 짐이라면 짐이랄까.”
 
  그러더니 시인은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몸이라는 것은 평생 짐이에요, 사실은. 우리가 병(病)이 없을 때가 없잖아요. 하다못해 감기를 앓고 소화불량을 앓는 것도 다 몸 때문에 생기는 질환이에요. 몸이라는 게 우리의 고통, 고통의 한 원천이에요. 그렇잖아요?”
 
  ― 몸도 마음도 다 짐이지요.
 
  “그렇죠. 마음이라는 것하고 몸이라는 것 두 개 다가 문제인데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먹고살기 위해서 일도 하고 그러는 게 다 몸이 있으니까 하는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몸은 우리를 살아 있게도 하지만, 또 이것이 짐이기도 하죠. 그 양면성이 평생에 있어요.”
 
  젊은 시절 시인은 삶의 자연스러운 진행을 가로막고 왜곡하는 힘들에 저항하는 책들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흥미를 따라가다 보니 “타성적으로 순응하면서 살고 있는 어떤 지배적인 가치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전복하려 하고, 한껏 자유롭고 탄력 있는 정신만이 해낼 수 있는 각성과 해방에 이른” 자들의 책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가령 지적 갈증과 성적 호기심이라는 두 가지 욕망에 이끌렸던 사춘기 때 탐독한 에머슨이나 함석헌은 그 시절 특유의 이상주의를 만족시켜주었죠.”
 
  그 무렵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나 보들레르의 《나심(裸心)》을 읽고 “은총과도 같은 해방의 기쁨을 맛보았다”고 했다. 선악을 넘어서 사랑하라며 감각적 쾌락을 예찬한다든지 ‘나라면 이렇게 말하리라-사랑의 유일한 그지없는 일락은 악을 행한다는 확신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하는 속삭임을 이 책들에서 들었다고 시인은 회상한다.
 
  그런가 하면 감각의 덧없음을 말하고 마른 막대기처럼 되기를 권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독백》이나 십자가의 요한의 《어두운 밤》 같은 책들이 다른 한쪽에 있었는데, 성자(聖者)들의 남다른 성스러운 열정도 실은 그 뿌리가 에로스(Eros)라는 사실을 나중에 그들의 전기를 읽고 알게 되었다.
 
  “또 프란치스코 성인의 전기나 부처의 일생 등을 읽으면서 스스로 헐벗은 행적의 광채 같은 것에도 감동했어요. 그런 종교적인 관심도 나한테 또 있었어요, 물론. 양면적인 게 다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보다 더 내 상상력을 자극한 것은 새들이 성인한테 날아와 어깨에 앉고 맹수들도 그 앞에서는 유순했다는 이야기였지요.”
 
  시인은 니체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니체의 같은 이름의 책은 주로 기독교 윤리를 비판하고 나아가서는 도덕 일반이 갖고 있는 문제를 들춰내는 것이지만, 그가 쓴 책들의 내용은 어떤 추상적인 단어로 요약될 수도 없고 다른 말로 설명될 수도 없는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생각의 경탄할 만한 의외성과 심리적 통찰이 피워내는 불꽃 튀는 긴장으로 넘치는 그의 문장에, 그 자신의 말처럼 혀를 담가보지 않으면 그를 안다고 할 수 없어요. 그런 책들은 수많은 비범한 통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 조숙했고 고민이 많은 시절이었겠네요.
 
  “그런데 학창 시절, 미션 스쿨에 다녔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갈등이 있었던 겁니다.”
 
  ― 그런 것들이 내면을 무겁게 만들었군요.
 
  “나를, 우리를 무겁게 한 것이 뭐 사춘기 시절뿐이었겠어요? 평생 모든 일이 다 우리를 무겁게 합니다. 불교가 위대하다는 게 ‘쓸 고(苦)’를 얘기하잖아요. 고해(苦海)라는 건 너무 옳은 말 아니에요? 살아보면 다 압니다.”
 
  ― 삶에 고해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이지요. 고해만 있는 게 아니나 전반적으로 볼 때 ‘고통의 바다’인 것만은 틀림없어요. 틀림이 없는데 우리한테 즐거움도 있고, 여러 가지가 늘 같이 섞여 있어요.”
 
  ― 괴롭지만 괴로움만 있는 게 아니고….
 
  “즐겁지만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니고 늘 이른바 인과(因果)관계라는 게 있잖아요. 불교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사상이 인과관계가 아니겠어요? 우리는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그것이 또 괴로움이에요, 어떻게 보면….”
 
  ― 지금 종교는 있는지요.
 
  “없어요. 믿는 종교는 없고 그저 불교를 좋아해요. 정년을 하고 나니까 시간이 많아서 불교, 노자 책을 좋아해요.”
 
  ― 신이 존재한다고 보시나요.
 
  “신에 대해선 별로 그렇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신이라는 말은 그냥 한마디 말인 것이지, 그 존재를 우리가 알 수가 없어요.
 
  나는 신이라는 말보다는 자연이라는 말을 더 좋아해요.”
 
  ― 그럼 자연이 신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내 필생의 꿈은 반인반조(半人半鳥) 하나 낳는 일!’
 
2008년 9월 미당의 시혼을 기리기 위한 시집 출간을 준비 중인 시인들이 선운사를 찾았다. 왼쪽부터 정현종 시인, 문학평론가 김화영씨, 나희덕ㆍ문인수ㆍ서정춘ㆍ송희 시인. 사진=조선DB
  이 대목에서 기자는 정현종 시인의 ‘숲에서’라는 시가 떠올랐다.
 
  1
  만물 중에 제일 잘생긴
  나무야
  내 뇌수도 심장도 인제
  초록이다
  거기 큰 핏줄과 실핏줄들은
  새소리의 샘이며
  날개의 보금자리!
  (지저귀는 실핏줄이여
  날으는 큰 핏줄이여)
 
  2
  내 필생의 꿈은
  저 새들 중 암놈과 잠을 자
  위는 새요 아래는 사람인
  반인반조(半人半鳥) 하나 낳는 일!
  새여, 내 부적이여
  나무여, 내 부적이여
 
  -시 ‘숲에서’ 전문

 
  시인은 이런 말을 보탰다.
 
  “수많은 생물 중 두 가지 예에 불과한 새와 나무의 미덕과 능력, 그리고 아름다움에 비추어 뭐 대단할 게 없는데도 그동안 사람들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으로 높여놓고 다른 생물들을 함부로 대하기도 했지요.
 
  물론 인간을 깎아내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다만 인간이 다른 생물에 비해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미화해왔어요.”
 
  자연이 신일 수도 있다고 믿는 시인은 “신이란 무슨 고정된 존재라기보다는 전 생명 과정이 항상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어떤 힘, 자생력의 비밀을 쥐고 있는 어떤 신비한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건 그러니까 곰팡이나 세균 등 미생물에서부터 온갖 식물, 동물, 광물을 거쳐 불과 바람 등 무기물에 이르기까지를 아우르는 총화(總和)에 다름 아닙니다.”
 
  이 대목에서 숨을 잠시 돌린 뒤 말을 이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것 속에는 신이 깃들어 있어요.”
 
 
  “나름대로 꿈틀거려본 흔적”
 
  정현종 시인의 시집 《나는 별아저씨》(1978)에는 정치시라고 할 수 있는, 말하자면 살아 있는 게 굴욕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꿈틀거려본 흔적들이” 시집 곳곳에 담겨 있다.
 
  예를 들어 거세된 느낌이 ‘나와/ 다른 사내들의 불알을 까서/ 소금 접시와 함께 날라온다’라든가, 강요된 침묵이 ‘땅콩이 입안에서 폭발한다’라는 구절을 쓰게 했을 것이다. 그 무렵 작품에는 악몽, 납, 지옥, 돌, 쇠, 우울 같은 무거운 낱말들이 등장한다.
 
  주객(酒客)들은 다만 잠들어 시끄럽고/ 술과 안주만이 깨어 있다/ 혀는 말의 부스러기나/ 비꼬인 토막 따위를 핥으며 춤추고/ 애국적인 아가씨들은 나와/ 다른 사내들의 불알을 까서/ 소금 접시와 함께 날라온다/ 젊은 가수(歌手)의 노래는/ 유배(流配)된 청춘(靑春)의 축제 없는 가슴을 어루만진다/ 나는 술잔을 들며/ 기억도 아픈 젊은 부러진 날개들의 눈동자를/ 녀석들의 잔 없는 손을 깨문다/ 땅콩이 입안에서 폭발한다/ 오이와 당근/ 대구포도 폭발한다
 
  -시 ‘밤 술 집’ 중 일부

 
  ― ‘청장년기에 나를 무겁게 한 것은 정치 상황’이라고 했는데 고 김지하(金芝河·1941~2022년) 시인과 가까우셨다고 알고 있어요. 김지하에 대해 ‘전사, 영매, 광대’라는 표현을 쓰셨어요.
 
  “한 시절을 그렇게 그야말로 (김지하 시인과) 술집에서 보냈어요. 그 친구는 자꾸 감옥에 들락날락하니까, 투사니까….”
 

  그는 시인의 직관으로 김지하를 이렇게 분석했다.
 
  “바깥의 억압과 공포, 마음속의 수치심과 모멸감이라는 최고의 고약한 상태를 뚫고 나가려 했고, 그것은 김지하를 곧장 위험 속에 몰아넣었어요. 그런 점에서 그는 전사였어요.
 
  한편으론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은 원혼들과의 교감에 남달리 민감해서 사람들이 죽은 장소엘 가면 그렇게 몸이 떨리고 진땀이 나며 가슴이 조여 온다고 했지요. 무엇보다 그의 시 쓰기가, 시 쓰기로 인한 수난과 더불어, 액막이 노릇을 한 것도 빼놓을 수 없어요. 김지하의 ‘담시’는 말하자면 굿이며 그리하여 그는 영매였어요.”
 
  김지하 시인은 스스로 광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계속된 시인의 말이다.
 
  “칼날보다 더 가파른 길이니 광대가 안 될 수 없고 ‘왼쪽도 오른쪽도 허공도 땅도 모두/ 지옥이라서’ 딴 길이 없으니 어름사니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절박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냥 구경꾼으로서 가슴 졸이거나 웃고 박수 치고 하는 것이지만, 그 절박함을 잘 느끼는 사람은 웃다가도 눈물이 날 수밖에 없지요.
 
  그리하여 김지하는 전사요 영매요 광대였습니다.”
 
  ― 말년의 김지하 시인은 어떻든가요? 세계관 자체가 젊은 시절과 비교해 많이 바뀌었지요?
 
  “젊은 시절엔 그렇게 어울려 지냈는데 나중엔 별로 만난 적이 없어요. 또 이 친구가 거대담론을 말했잖아요. 난 거대담론은 별로 좋아하질 않아요. 이 친구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커지고, 담론도 커지더라고.”
 
 
  “나를 추천하는 사람도 없었고…”
 
정현종 시인이 2005년 2월 24일 정년퇴임 당시 연세대 알렌관 무악홀에서 동료 교수, 제자들과 함께 감사연을 열었다. 사진=조선DB
  정현종 시인은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1982년 임용돼 23년여 동안 재직한 뒤 2005년 정년퇴임했다. 정확히는 82년 8월 19일부터 2005년 2월 27일까지 재직했다. 그 흔한 석사 학위, 박사 학위 하나 없었지만 시인이란 이름 하나로 족했다.
 
  ― 그 어떤 보직도 안 맡으셨지요?
 
  “아, 그래요. 국문과 학과장은 했어. 그건 돌아가면서 하는 거니까 싫어도 해야 했어요.
 
  난 솔직히 감투하고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걸(자리, 직함) 싫어하고, 좋아하지도 않고, 그러니까 시켜주지도 않고, 물론 그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어요.”
 
  ― 하다못해 시인협회장, 문인협회장도 선거를 해야 하지 않나요?
 
  “모르겠어. 그런 자리에 나를 추천하는 사람도 없었고, 모든 조직, 일종의 이권 같은 건 (나와) 너무나 안 맞으니까…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맡으면 되니까요.”
 
  ― 교수 시절, 동료들과의 추억이랄까 우정이랄까 재밌는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연세대 문과대학 산악회를 줄여서 연문산악회라고 불렀는데 북한산에 자주 등반했어요. 국문과 남기심(南基心) 선생, 사회학과 전병재(全炳梓) 선생, 독문과 김수용(金秀勇) 선생 등 해서 6~7명이 여러 해를 댕겼어요.
 
  영문과 이상섭(李商燮·1937~2022년) 선생의 별장엘 가곤 했는데 저기 마석에서 쭉 들어가면 수동이란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 별장도 아니고 소 외양간 비슷한 것을 고쳐서 쉼터를 만들었어요. 그 뒤에 축령산이 있어요.
 
  이상섭 선생이 주변 땅 2000평을 사다가 농사를 지어서 우리가 몇 번 갔어요. 선생은 술도 안 하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 내가 아주 좋아했어요. 정말 학자 중의 학자입니다.
 
  국문과의 국어학자들과 서로 협력해서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구 언어정보개발연구원)을 만든 것도 이 양반이 추진해 가능한 일이었고 그래서 《연세 한국어 사전》을 출간하게 됐어요. 상당한 업적입니다.”
 
 
  이상섭 선생과의 추억
 
  《연세 한국어 사전》(5만2000여 표제어. 단권, 2144쪽)은 196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어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편찬되었다. 1986년에 연구를 시작하여 거의 13여 년 동안에, 대규모의 언어자료(말뭉치)를 전산화하고, 여기서 원하는 용례를 뽑고, 분석하는 전산 처리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도 했다. 또 숱한 용례를 뒤져 낱말 하나하나의 뜻을 올바로 정의하고 기술하는 ‘국어학’과 ‘사전편찬학’의 융합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전과 함께 셰익스피어 전집을 펴냈는데 이 전집도 두꺼워서 들 수가 없어. 그런데 이 두 업적만으로도 굉장한 업적이에요.
 
  이 양반이 돌아가신 뒤에 신문 부고(訃告) 한 줄도 안 나와…. 이게 한국 기자들의 수준인가, 제가 탄식을 했어요. 가치 있는 인물에 대한 대접이 없어요.”
 
  “오는 8월에 이상섭 선생 추모 학술대회를 엽니다. 제가 그때 추모시를 읽기로 했어요.”
 
  기자는 정현종 시인에게 미리 추모시 한 편을 받았다.
 
  저의 대학 시절,
  선생님의 아마 대학원 시절
  도서관 2층 독서실에서 본 광경이
  지금도 제 기억에 선명합니다.
  학생들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데
  선생님은 거기 빈 공간을
  무슨 책인지 들고 읽으시면서
  왔다 갔다 하시던 모습.
  말할 것도 없이
  큰 학자가 태어나는 움직임이었습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오로지 거기 집중하는 정신의 순수,
  그런 타고 난 태도로 일관한 일생이
  비할 데 없이 값진 업적을 일궈내셨지요.
  대표적인 것 두어가지만 들겠습니다.
  〈연세 한국어사전〉은
  선생님의 추동 없이는 나오기 어려웠겠지요.
  그거 하나만으로도 큰 일을 하신 것입니다.
  〈셰익스피어 전집〉은 영문학자로서 큰 업적이구요.
  또 〈문학비평용어사전〉을 비롯 여러 저서가 있습니다.
  물론 후학을 키워내신 교육자로서의 업적도 있겠지요.
 
  추억이 있습니다.
  문과대학교수 대여섯 사람이
  경기도 마석 수동에 마련하신
  소 외양간을 손질해서 만든 별장에
  몇 번 가서 자고 먹고
  근처 축령산도 오르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다녀온 뒤 저는
  〈지식인의 환생〉이라는 작품을 쓰기도 했지요.
  그 작품은 이렇게 끝납니다.
  “양간 속의 지식인들ㅡ
  소와 외양간의 후광은 대단했으며
  문득 모두 소가 된 듯했고
  비로소 그 사람들이 이뻐 보였습니다.”
  선생님이 소띠라는 얘기를 들은 듯도 합니다만…
  학자로서 소처럼 일을 많이 하시니
  워커홀릭이라는 소리도 들으셨지요.
 
  어떻든 분명한 것이 하나 있는데요
  선생님이 생전에 연세 캠퍼스에 퍼트리신
  맑은 바람은
  지금도 거기 맴돌고 있습니다!
 
  -정현종 시인의 ‘큰 학자, 맑은 기운-이상섭 선생님을 추모하며’ 전문

 
  ― 열정적인 사랑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열정적인 사랑… 아휴, 그건 뭐 얘기할 수가 없지.”
 
  ―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열정적인 사랑이야 뭐, 누구나 한두 번은 있는 것 아니겠어요?”
 
  ― 젊은 시인들의 작품은 더러 읽습니까.
 
  “시집을 집으로 많이 보내오는데 힘들어요. 읽기가….
 
  문학과지성사에 전화를 걸어 (출간을) 좀 줄여야 되지 않느냐고 했어요. 시들이 대체로 AI가 쓴 것 같아요. 사람이 쓴 게 아니고. 하여간 별로 탐탁지가 않아요.”
 
  시의 나무 아래서 한평생을 살아온 시인에게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물었다.
 
  “늘 하는 얘기지만 그렇게 많이 쓰려고 하지 말라고 얘기해요. 단 한 편이라도 사람들이 기억하고 좋아하는 시를 써야 해요. 말하자면 억지로 꼭 무얼 써야 된다든지, 무슨 명예나 명성 때문에 그걸 유지하려고 부자연스럽게 쓰면 좋은 시가 나올 수가 없어요.
 
  무르익어 저절로 저절로 나오면 그때 쓰면 좋은 시가 되지요.”
 
 
  ‘무르익는다’는 말
 
  ― 무르익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요?
 
  “자기가 일상에서 겪은 일이 있지 않겠어요? 체험이라든가 정신으로 겪는 일도 있겠고,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저장이 되어 있지 않겠어요?
 
  그것들이 다 발효(醱酵), 발효가 잘 되어서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그냥 쓰면 돼요. 내가 쓴다기보다 어떤 힘, 그런 것에 의해서 그냥 받아쓰는 것처럼 써야 좋은 시가 나오지 않을까요?”
 
  정현종 시인이 말하는 ‘어떤 힘’이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지는 말, ‘시 받아쓰기’란 나무가 뜨거운 여름 태양을 홀로 견뎌내는 그 인내로, 폭풍우를 이겨내는 그 강인함으로 여러 해를 담금질해온 세월의 나이테를 아는 사람에게만 쉬운 작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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