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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중국의 샤프파워 공작

인터뷰 | 한국에서 중국 ‘비밀경찰’ 감시받다 미국으로 떠난 중국 유학생

“어디 살든지 상관없어… 말 조심하라”(공안과의 통화)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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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문 앞에서 감시하는 수상한 중국인들 보고 다음 달 미국으로 출국
⊙ “한국은 중국 비밀경찰이 집 문 앞에서 기다릴 정도로 활동하기 쉬운 나라”
⊙ “중국 비밀경찰이 자국민 감시 활동을 했더라도 주권 침해”(조정현 교수)
⊙ 유명해지면 조금 더 안전할 수 있을 것 같아 인터넷 시작… 구독자 40만 명 육박
진씨가 하이난성 하이커우시 인민검찰원 앞에서 ‘범죄 혐의인 소송 권리 의무 고지서’를 들고 사진을 찍은 모습. 사진=진씨
  “문 앞에서 익숙한 말소리가 들려왔어요. 저의 개인정보와 외출 시각을 나누는 두 명의 중국인이 서 있더군요.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다른 조치도 없었어요. 바로 다음 달에 급하게 미국으로 떠났어요.”
 
  중국인 청년 진모(27)씨는 2021년 8월 국내 모(某) 대학 재학 시절 자취방 문 앞에 서 있던 ‘수상한 중국인’을 떠올리면 아직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미국 망명 절차를 밟고 있다. 익명(匿名)을 전제로 진씨와 화상(畵像)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넷 검열 뚫으면서 꼬이기 시작한 삶
 
중국 하이난성(海南省) 하이커우시(海口市) 공안국이 발부한 진씨의 취보후심(取保候審ㆍ보증금 또는 보증인을 내세워 일시적으로 석방하는 처분) 결정서. 사진=진씨
  진씨는 “한국은 중국 비밀경찰이 집 문 앞에서 기다릴 정도로 활동하기 쉬운 나라”라며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진씨에게 비밀경찰이 따라붙은 계기는 무엇일까.
 
  2022년 12월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 실태를 폭로했던 ‘세이프가드 디펜더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 있는 중국 비밀경찰서는 중국 장쑤성(江蘇省) 난퉁시(南通市) 공안국 소속이다. 진씨는 장쑤성 옆 안후이성(安徽省) 출신이다.
 
  어렸을 적 유수아동(留守兒童)이었던 진씨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중국에선 부모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가고 지방에 남겨진 아이들을 ‘유수아동’이라고 부른다. 조부모 밑에서 크며 홀로 있는 시간이 길었던 진씨에게 세상을 보는 창(窓)은 인터넷이 유일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의 인터넷 검열 시스템 ‘만리방화벽’을 뚫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 화근(禍根)이 됐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가상 사설 통신망(VPN·Virtual Private Network)을 통한 만리방화벽 우회 접속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한국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정치와 관련된 것들도 접하게 됐다. 특히 이웃 나라인 한국, 일본, 대만은 중국과 달리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19년, 중국의 소셜미디어(SNS) ‘웨이신(微信·국외판 WeChat)’에 중국공산당의 방역 지침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공안으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검열이 심한 중국에서 VPN 우회 접속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진씨는 이 방법을 친구에게 알려줬다. 더 나아가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들에게도 전했다. 2019년 홍콩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렸다.
 
  결국 2020년 6월 10일, 진씨의 집에 공안 10명이 들이닥쳤다. 혐의는 ‘다른 사람에게 VPN 우회 방법을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공안들은 사복(私服)을 입고 있었고, 소속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전자제품도 압수당했다. 그렇게 취조실로 끌려가 심문을 받다 이튿날 취보후심(取保候審·보증금 또는 보증인을 내세워 일시적으로 석방하는 처분)으로 풀려났다. 이마저도 진씨가 마침 열이 났기 때문에 이뤄진 임시 조치였다. 코로나19에 민감했던 시기여서 구치소에선 진씨의 수용을 거부했고, 보석금을 내고 조건부로 풀려났던 것이다. 그가 위험을 감수해가며 이렇게까지 행동하게 된 건 대만 유학 시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대만 유학 시절 자유민주주의 알게 돼”
 
중국의 비밀경찰로 추정되는 인물이 서울에 있는 진씨의 자취방 앞에 있을 때, 진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모습. 사진=진씨
  진씨는 20세였던 2016년 대만 유학을 갔었다. 그는 이때 느낀 점을 이렇게 회상했다.
 
  “4개월 동안 대만 유학을 다녀왔다. 당시 20세였고 다른 나라에 가본 적이 전혀 없었다. 대만에 가서야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은 대로, 대만은 중국의 일개 성(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대만인들은 마음대로 정부에 항의할 수 있었고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조차 비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샤오펀훙(小粉紅·중국의 맹목적 애국주의자)을 거부하게 되었다. 긴 잠에서 깬 듯한 기분이었다.”
 
  2020년 6월 중국 공안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진씨는 한국행을 앞두고 있었다. 자신의 혐의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진씨는 그해 12월 31일 ‘일반연수(D-4)’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하지만 곧 중국 공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귀국을 종용(慫慂)하는 것이었다. 진씨가 응하지 않자 2021년 5월 그의 계좌가 동결됐다. 진씨는 이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그랬더니 3개월 만인 2021년 8월, 중국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공안이 찾아왔다는 연락이 왔다. 진씨가 올린 유튜브 영상을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며칠 뒤, 진씨의 자취방 문 앞에 수상한 2명이 지키고 서 있기 시작했다. 현관문 너머로 익숙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두 명의 수상한 남성이 중국어로 진씨의 이름과 주소, 외출 시각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 속엔 그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그들은 이웃도 아니었고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며칠 전엔 중국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집에 공안들이 찾아왔었다는 전화가 온 참이었다. 이때 공안이 진씨의 아버지, 할머니, 친구, 사촌, 이모, 중학생 동생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얘기를 들었다.
 
  진씨는 문 앞에 상주하던 이들을 한국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한국 경찰이 오고 나서는 이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두려움이 엄습해, 결국 다음 달인 2021년 9월 21일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진씨는 중국 공안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계좌가 동결된 이유를 따져 물었다. 하지만 공안은 계좌 동결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기는커녕 어서 귀국하라며 어르고 달랬다. 그는 중국 공안과의 통화를 녹음해 그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다음은 통화 내용 일부다.
 
  “(소셜미디어에서) 발언하고 싶으면 하세요. 괜찮아요. 다만 미국에선 말 때문에 잡혀간 사람이 없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네요. 당신이 돌아온다면 우리가 법원 측에 이야기를 해서 좀 더 관대한 처벌이 내려지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걸 다 정부와 체제의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뒤늦게 귀국하면 정말 오랫동안 징역을 살게 될 겁니다.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법원에 잘 얘기해드리겠습니다. (중략) 조언 하나 해드리지요. 돌아올 것인지 정말 잘 생각해보세요. 우리 공안이 나서서 법원 측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디에 살든지 상관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다 정부의 탓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국외(國外)에 있을 때는 말 조심하세요.”
 
  중국 전문가인 A씨는 진씨의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중국은 국외에 있는 자국민이 ‘문제의 인물’이 되면 행적 조사부터 시작한다. 진씨의 경우, 그가 우연히 문 앞에 있던 이들을 발견했을 뿐, 사실 24시간 내내 그에 대한 감시가 이뤄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문제가 되는 학생은 보통 1개월에서 2개월 내에 중국으로 송환된다.”
 
 
  “비밀경찰이 또 따라붙을 수 있다고 생각”
 
  진씨는 한국이 좋아 머무르고 싶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게 되면서 중국의 민주화에 대한 기대를 품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공안이 자취방 앞에 상주하고 가족은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그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망명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진씨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난민(難民) 신청을 검토하다가 금방 단념했다. 한국 정부가 중국 국적의 사람들에게 난민 신분을 준 경우가 굉장히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난민으로 인정된 사례를 찾아보니 중국에서 탈북자(脫北者)들을 도왔던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는 중국인이 난민 신청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도 중국인을 난민으로 받는 건 부담스러울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비밀경찰이 또 따라붙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진씨가 말한 사례의 인물은 2018년 법무부가 난민으로 인정한 중국인 투아이룽(塗愛榮·60)씨다. 그는 중국에서 12년 동안 500여 명의 탈북자들을 동남아시아 등지의 제3국으로 보내 ‘중국인 쉰들러’로 불리기도 했다. 투씨도 처음엔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난민 불인정 취소 소송을 거쳐 2년여 만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지난 6월 29일 법무부가 낸 〈2022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 국적자가 신청한 난민 인정 심사는 총 8224건으로, 카자흐스탄(9637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그러나 같은 기간 난민으로 인정받은 중국 국적자의 수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극히 적었다.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
 
  조정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난민을 인정하는 기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엄격한 편”이라고 말했다. 진씨와 같은 사례에 대해선 “진술에 신빙성이 있고, 특히 진씨의 경우처럼 당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또한 있으면, 관련 탄압이나 박해를 받을 우려로 인해 한국에서도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진씨가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도 ‘유명해지면’ 중국 정부가 함부로 자신과 가족을 건드리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첫 영상은 2021년 5월에 올라왔다. 진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는 8월 26일 기준, 39만7000명이다. 구독자들의 64%는 대만인, 10%는 홍콩인이다. 나머지는 미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순이다. 구독자의 성별은 78%가 남성, 22%가 여성이다. 연령별로는 25~34세의 젊은이들이 가장 많으며 35~44세가 뒤를 잇는다. 그의 영상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주로 중화권에 거주하는 젊은 남성들이다. 지난해 12월 진씨는 일본 TBS와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당시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이 과도하다며 일어난 ‘백지(白紙) 시위’의 의미를 소개했다.
 
 
  방첩 당국, ‘비밀경찰서’ 수사 종결
 
  한편 방첩 당국은 지난 8월 ‘중국 비밀경찰서’ 관련 수사를 종결했다. 당국은 처벌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식품위생법 위반’ 등 첩보 활동과는 관련 없는 혐의만 살펴봤다. 현행 형법상 중국을 ‘적국(敵國)’으로 규정할 수 없어 간첩죄를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페인 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가 2022년 12월 중국의 비밀경찰서가 한국에도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후 수사에 나선 방첩 당국이 지목한 ‘중국 비밀경찰서’ 거점은 서울 한강변에 있는 식당인 ‘동방명주’였다.
 
  진씨도 문 앞에 있던 수상한 이들을 한국 경찰에 신고했지만 마땅히 처벌할 근거가 없어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립외교원 교수를 지낸 조정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법에 마땅한 처벌 근거가 없어도 국제법적으로는 문제가 된다”면서 “중국의 비밀경찰서가 자국민(自國民)을 감시만 했더라도 주권(主權)이 있는 타국(他國) 내에서 경찰력 또는 행정 관할권을 행사한 것이기 때문에 주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국립외교원 교수를 지낸 이지용 계명대 중국어중국학과 교수도 “우리 주권을 침해당한 문제인데 처벌 근거가 없다는 건 손발이 묶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반체제 중국인들은 한국에 와서도 보호받지 못한다고 토로한다”며 “그(진씨)의 경우도 중국의 집중 관리 대상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우리 정보기관이 중국의 국제법 위반 소지를 알고 있음에도 국가 단위의 비밀스러운 활동이기에 어느 정도 덮고 넘어갔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관련 전문가의 이야기다.
 
  “주재국에서 경찰 활동을 하는 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하지만 국가 간에는 항상 명쾌하게 두부 자르듯이 딱 떨어지지 않는 ‘회색 지대’가 있다. 그러한 활동 영역엔 적과 우방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동방명주에 대한 수사도 그래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측면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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