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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인터뷰

‘위로의 시인’ 정호승

“새해는 우리 삶의 첫눈과 같아”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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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삶에 슬픔, 이 지독한 비극을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어”
⊙ “기쁨만 있는 기쁨은 진정한 기쁨이 아니다”
⊙ “나의 운명이 내 삶의 거룩한 땅”
⊙ ‘상처 많은 꽃잎이 가장 향기롭다’
⊙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 ‘슬픔이 택배로 왔다. 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나에게’

鄭浩承
1950년생. 경희대 국문과·同 대학원 졸업 /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등 14편의 시집을 펴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김우종문학상, 하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사진=조준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정시인 정호승(鄭浩承·72)의 시는 대개 슬프고 아름답다. 마음이 슬플 때 그의 시(詩)를 읽으면 ‘막 불이 켜진 전신주처럼’[시 ‘녹명(鹿鳴)’ 중에서] 희망이 생긴다. 어쩌면 슬픔은, 동전의 양면처럼, 기쁨의 등 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시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전문

 
 
  “神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
 
10여 년 전 정호승 시인의 서재에서. 사진=조선DB
  ‘상처 많은 꽃잎이 가장 향기롭다’는 표현처럼 신년을 맞아 《월간조선》 독자들에게 위안이 되는 이야기, 슬픔을 이겨내는 귀한 말씀을 들려달라 부탁했다. 전화기 저쪽에서 들리는 “껄껄껄” 하는 웃음소리…. 구랍 12월 1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가끔 우리는 슬픔과 이별을 경험한다. 그 사람에게 실망하며 분노와 마주한다. 오래 외로움과 슬픔을 견뎌야 한다. 그런데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시 ‘술 한잔’ 중에서)
 
  시인은 말한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라”고 .
 
  이런 말도 한다. “신(神)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 인간에게는 원망이 필요하다. 신은 원망과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자신의 사랑을 깨닫게 한다”고.
 
  알 듯 말 듯한 그의 따스한 음성을 들으며, 그가 쓴 ‘달팽이’ 1연을 마음속으로 외워본다.
 
  내 마음은 연약하나 껍질은 단단하다
  내 껍질은 연약하나 마음은 단단하다
  사람들이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듯이
  달팽이도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
 
  -시 ‘달팽이’ 1연 중에서

 
  인간은 누구나 제 몸의 달팽이집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혼자 먼 길을 가야 한다. 대신 갈 수 없다. 오늘 자 신문을 펴 본다. 부지런히 기어가는 달팽이들의 사연이 가득하다.
 
  ― 왜 시를 쓰나요? 무엇이 시를 쓰게 합니까.
 
  “사실 저는 인생이 슬프기에 시를 씁니다. 기쁨 속에서는 시가 꽃으로 피어나기 어려워요. 우리가 이 시대를 살면서 감당할 수 없는 비극, 슬픔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월호의 비극, 이태원 참사를 떠올려보세요. 내 부모, 내 동생, 내 이웃의 죽음과 만납니다.
 
  그때 이 슬픔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슬픔 속에 시의 영혼, 시의 닻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시를 쓸 때 슬프지 않을 때가 없었지만 시를 쓸 때 고통스럽지 않을 때도 없었습니다. 결국엔 고통과 슬픔 속에서 시가 쓰이고, 또 (슬픔에서) 기쁨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 그런데 인생은 제게 술 한 잔 사주지 않더군요.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가 부뚜막에 앉아 가계부 한 편에 연필로 시를 쓰시곤 하셨어요.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곤 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시는 슬플 때 쓰는 거다.’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지금껏 슬프지 않을 때 시를 쓴 적이 없는 거예요. 늘 제 마음이 아플 때 시를 썼거든요.
 
  제가 문단에 나온 지 꼭 5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1100편을 썼지요. 제 시의 발원지, 그건 인간의 슬픔입니다.”
 
  그는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50년 동안 1103편의 시를 썼고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8개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영어·일본어·중국어·에스파니아어·러시아어·조지아어·몽골어·베트남어 등의 번역시집을 냈고, 많은 산문집, 동시집, 동화집, 우화소설집 등을 썼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전업(專業) 시인이다.
 
 
  “슬픔이 인간의 본질”
 
정호승 시인은 “돌이켜보면 제가 시를 쓸 때 슬프지 않을 때가 없었지만 시를 쓸 때 고통스럽지 않을 때도 없었다”고 말한다. 일러스트=조선DB
  문득 그의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른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 1연 중에서

 
  ― 우리가 겪는 슬픔을 어떻게 마주하면 좋을까요.
 
  “저는 슬픔이 인간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 본질이 그렇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부처님도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우리는 고통이라는 바다에 사는 한 마리 물고기와 같아요. 물속에 살면서 목말라하는 물고기 말이죠.”
 
  ― 물속에 살면서 느끼는 이 갈증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목이 마르다고 물을 찾으러 육지로, 뭍으로 나와야 할까요? 그래선 안 됩니다.”
 
  ― 뭍으로 나오면….
 
  “죽게 됩니다. 아무리 목말라도 물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고통이라는 바다에 사는 목마른 물고기가 감당해야 할 숙명이죠.
 
  우리 인생에서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지 말고, 고통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슬픔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말고 그 슬픔을 이해해야 합니다.”
 
 
  ‘상처는 스승이다’
 
  그러더니 장미 이야기를 꺼냈다.
 
  “장미에는 향기가 있습니다.”
 
  ― 가시도 있지요.
 
  “가시 없는 장미는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장미의 향기는 어디서 나오느냐? 저는 가시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장미의 향기는 바로 고통의 향기죠. 우리 인간에게 향기가 난다면 그 향기는 삶의 상처에서 나는 것일 겁니다.”
 
  그의 시 ‘상처는 스승이다’가 떠올랐다.
 
  상처는 스승이다
  절벽 위에 뿌리를 내려라
  뿌리 있는 쪽으로 나무는 잎을 떨군다
  잎은 썩어 뿌리의 끝에 닿는다
  나의 뿌리는 나의 절벽이어니
  보라
  내가 뿌리를 내린 절벽 위에
  노란 애기똥풀이 서로 마주앉아 웃으며
  똥을 누고 있다
  나도 그 옆에 가 똥을 누며 웃음을 나눈다
  너의 뿌리가 되기 위하여
  예수의 못자국은 보이지 않으나
  오늘도 상처에서 흐른 피가
  뿌리를 적신다
 
  -시 ‘상처는 스승이다’ 전문

 
 
  “슬픔의 본질을 사랑에서 찾아야”
 
  시인에게 언제 가장 슬픈지를 물었다. 그의 답이다.
 
  “사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사랑이 시작되면 동시에 고통이 시작되고 슬픔이 시작돼요.
 
  한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왜 사랑이 고통스러울까. 사랑은 원하지만 고통은 원하지 않는다’고. 어리석은 생각이었어요. 사랑이 있으면 반드시 고통이 있어요.
 
  사랑과 고통은 한 몸이죠. 김수환(金壽煥·1922~2009년) 추기경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고요.”
 
  ― 사랑과 고통이 한 몸이라지만 너무 아프면 사랑을 잃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됩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슬픔이 있고 고통이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슬픔의 본질을 사랑에서 찾아야 합니다. 여기 기쁨이라는 나무 한 그루가 있어요. 기쁨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나요?
 
  기쁨의 나무는 슬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쁨의 나무니까 기쁨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 그렇다면?
 
  “기쁨만 있는 기쁨은 진정한 기쁨이 아닙니다. 기쁨은 슬픔에 뿌리를 내려야 기쁨의 꽃을 피웁니다. 우리가 기쁨의 눈물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눈물은 기쁨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라는 택배를 받을 수밖에 없어”
 
  정호승 시인은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를 상재(上梓)했다. 많은 시 가운데 ‘택배’라는 시를 읽어보았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
  누가 보냈는지 모른다
  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
  서둘러 슬픔의 박스와 포장지를 벗긴다
  벗겨도 벗겨도 슬픔은 나오지 않는다
  누가 보낸 슬픔의 제품이길래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이길래
  사랑을 잃고 두 눈이 멀어
  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나에게 배송돼 왔나
  포장된 슬픔은 나를 슬프게 한다
  살아갈 날보다 죽어갈 날이 더 많은 나에게
  택배로 온 슬픔이여
  슬픔의 포장지를 스스로 벗고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나에게만은
  슬픔의 진실된 얼굴을 보여다오
  마지막 한방울 눈물이 남을 때까지
  얼어붙은 슬픔을 택배로 보내고
  누가 저 눈길 위에서 울고 있는지
  그를 찾아 눈길을 걸어가야 한다
 
  -시 ‘택배’ 전문

 
  ‘슬픔이 택배로 왔는데, 누가 보냈는지 모르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이길래 사랑을 잃고 두 눈이 먼 나에게 배송이 되었느냐’고 반문하는 시다.
 
  시인은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을 택배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택배를 받을 때 마음이 무척 기쁘잖아요. 원하던 물건, 직접 주문한 물건이 도착하니까. 때로 먼 곳에서 벗들이, 친지들이 사과 한 상자를 보내오면 얼마나 기쁜가요? 그래서 택배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때로 슬픔을 택배로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어느 날 저에게 슬픔이라는 택배가 왔어요. 그 택배는 이별이라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아니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택배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고,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되는 이별의 택배를 받을 수밖에 없지요.”
 
 
  죽어도 죽지 않는 것은…
 
눈 오는 날, 가족과 대구 옛집 앞에서. 맨 오른쪽 형의 교복을 입은 이가 소년 정호승.
  ― 죽음이라는 이별은 우리 삶의 본질적인 모습일까요.
 
  “죽음을 통한 이별의 택배를 받았을 때, 우리가 그런 택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면 생(生)을 좀 더 이해하고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요?”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한때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인간이 죽고 나면, 한때 뜨거웠던 죽은 존재에 대한 사랑도 사라지는 것일까?’ 하고요.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가 사랑했던 존재가 죽었을 때, 내가 품었던 그 사랑은 죽지 않고 내 삶의 원동력이 되니까요.”
 
  ―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죽음은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지 않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내 부모님의 죽음이, 당신의 육체는 사라졌지만, 그분들이 주신 사랑은 죽지 않고 살아 있잖아요. 어디서? 가슴 속에, 삶 속에 살아 있잖아요.”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
  다시 기저귀를 갈아드릴 수 있다면
  나 아기 때 엄마가 내 기저귀를 갈아주신 것처럼
  종이처럼 가벼운 아버지를 아기 달래듯 달래며
  아버지 허리 좀 드세요
  괜찮아요 뭘 그리 부끄러워하세요
  토닥토닥 아버지를 달래며 환하게 웃어드리겠네
  물티슈로 엉덩이를 깨끗이 닦아드리며
  늙고 병들면 인간은 기저귀를 차야 한다고
  누구나 아기처럼 기저귀를 차야 할 때가 있다고
  그럴 때는 자식이 부모의 기저귀를 갈아 드린다고
  말없이 귓속말로 말씀드리며
  아버지 한숟가락만 더 드세요
  밖에 봄이 왔어요
  사람은 먹어야 살잖아요
  싫다고 고개 돌리시는 아버지를 껴안고
  미음 몇숟가락 더 잡수시게 하고
  흩날리는 벚꽃을 기저귀에 주워 담아드리겠네
  땅바닥에 떨어진 목련꽃 그늘도 듬뿍 주워 담아
  아버지의 기저귀에서 나는 봄의 꽃향기
  아버지라는 아기 냄새를 흠뻑 맡겠네
 
  -시 ‘아버지의 기저귀’ 전문

 
  정호승 시인은 “세상을 떠나며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죽음의 의미를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남겨진 자식은 부모님이 가르쳐주신 죽음이라는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인간 삶에서 가장 큰 주제, 문학의 영원한 주제는 사랑과 죽음…이 아닐까요? 이 두 가지 주제가 제 시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슬픔은 서로 나누고 공유해야”
 
대구 중앙고등학교 앞 범어천. 정호승 시인이 유년을 보낸 공간이다.
  ― 부모가 자식을 먼저 떠나보냈을 때 그 슬픔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요.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처럼 어느 날 찾아오는 사건·사고가 너무 많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은 이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요.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는데 말이죠.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그 부모에게 고통을 주는 말이 없어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는 그 말을 듣기 싫어하세요.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분들의 슬픔, 비극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요. 그분들이 겪은 아픔을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선 결코 안 됩니다. 당신의 슬픔이 내 슬픔이라는 걸 마음속에 공유하며 살아야 합니다. 공유함으로 슬픔도 나눌 수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슬픔을 나누는 데 인색해하며 오늘을 살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 많은 시 중에 가장 큰 위안을 주는 시를 꼽으라면….
 
  “음… ‘산산조각’이 아닐까 합니다.”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시 ‘산산조각’ 전문

 
  시인은 이 시를 쓴 내력을 이렇게 털어놨다.
 
  “2000년 새해가 막 지났을 때 가까운 벗들이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죠.”
 
  북인도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지만 부처가 처음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 깨달음을 얻고 나서 처음으로 설법한 사르나트(녹야원), 그리고 열반한 쿠시나가르, 태어난 룸비니를 차례로 순례하게 되었다고 한다.
 
  룸비니는 인도와 네팔 국경을 넘어 한나절을 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그곳은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 있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면적에 작고 초라해 보이는 마야데비 사원이 철조망에 둘러싸여 있었다.
 
  “철조망이 쳐진 정문 앞에 노파 한 분이 가마니를 깔고 흙으로 만든, 앉아 계신, 내 손바닥만 한 부처님을 순례기념품으로 팔고 있었어요.
 
  그 부처님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와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죠. 마음이 산란할 때 그 부처님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졌어요.”
 
 
  “시적 상상력 속 부처님이 저를 부르시며…”
 
  ― 그래, 그 부처상(像)이 ‘산산조각’ 났었군요.
 
  “아뇨…. 우리는 현재를 걱정하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잖아요. 혹시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자칫 잘못해서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말이에요.
 
  걱정을 자꾸 하니까 시적 상상력 속 부처님이 저를 부르시는 거예요.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은 것 아니냐.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지 않느냐’ 하더군요.
 
  그 말씀이 불화살처럼 박혀서 이런 시를 썼어요. 우리가 견디기 어려운 슬픔에 빠졌을 때 ‘오늘도 산산조각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지 뭐!’ 하고 생각해보세요. 마음이 평온해질 겁니다. 아니, 100% 평온해지지는 않더라도 다소 평온해집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산사의 범종에 금이 가면 종을 칠 때마다 깨어진 종소리가 납니다. 그런 종이 완전히 금이 가고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면 그 파편 하나하나를 칠 때마다 제각기 맑은 종소리를 냅니다.
 
  깨어진 종의 파편이므로 깨어진 종소리가 나리라고 생각되지만 그게 아닙니다. 깨어진 종의 파편 하나하나가 제각기 종의 역할을 합니다.
 
  내 삶이 하나의 종이라면 그 종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어요. 그러나 나는 산산조각 난 내 삶의 파편을 소중히 거둡니다. 깨어진 종의 파편 파편마다 맑은 종소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죠.”
 
 
  ‘나의 운명이 내 삶의 거룩한 땅’
 
  ― ‘슬픔’이란 감정이 우리 삶에서 왜 중요할까요.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말을 했어요. ‘슬픔에 성지(聖地)가 있다’고요. ‘슬픔에 거룩한 땅이 있다’는 말입니다.
 
  슬픔에는 어떤 운명이 담겨 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우리가 ‘이것은 내 운명이야’라고 말할 때 이 운명엔 기쁨보다 슬픔이 먼저 떠오릅니다.
 
  결국 우리 인간의 운명, 나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운명대로 살아가기 마련이죠. 운명을 원망하고 부정할 순 없어요. ‘나의 운명이 내 삶의 거룩한 땅’이지 않겠어요?
 
  우리는 우리의 운명, 그 비극과 슬픔을 긍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기 땅이 움푹 패 있다고 칩시다. 비가 오면 어떻습니까. 물이 고이겠지요? 웅덩이가 됩니다. 여기서 ‘고인다’는 말은 ‘받아들인다’는 말과 같습니다.
 
  산에 비가 오면 나무의 뿌리가 빗물을 받아들이다가 더는 받아들이지 못하면 강으로 흘려보냅니다. 강은 그 빗물을 받아들입니다. 그 강물은 어디로 가나요? 바다로 갑니다. 만약 바다가 강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요. 바다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바다는 강물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바다로서 존재할 수 있어요.
 
  우리에게 운명은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슬픔은 인간의 운명입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의 시 ‘슬픔으로 가는 길’을 떠올려보았다.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시 ‘슬픔으로 가는 길’ 일부

 
 
  “슬픔도, 비탄도 인간의 양식”
 
  잠시 목을 가다듬은 뒤 톤을 조금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운명이란 말속에는 비극과 슬픔이라는 말의 의미가 들어 있어요. 이 비극과 슬픔을 인간의 운명적 본질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어쩌면 인간이 될 수 없을지 모릅니다.”
 
  ―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비밀이 저마다의 운명을 이해하는 일이 아닐까요.
 
  “유대인들의 초(超)정통파인 하시디즘 공동체에 ‘슬픔의 나무’라는 우화(寓話)가 전해 내려오고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천국의 문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앞으로 간다고 해요. 그 나무의 이름은 ‘슬픔의 나무’라 불리는데, 그 나뭇가지엔 사람들이 겪은 온갖 슬픈 이야기들을 적은 쪽지가 주렁주렁 걸려 있다고 합니다.
 
  막 그곳에 도착한 영혼은 자신의 슬픈 사연을 적어 가지에 걸어 놓습니다. 그러곤 천사의 손을 잡고 나무를 한 바퀴 돌며 그곳에 적혀 있는 수많은 사연을 읽게 됩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천사는 그 영혼에게 그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해 다음 생을 살고 싶은가를 묻습니다. 자신이 보기에 가장 덜 슬퍼 보이는 삶을 선택하면 다음 생에 그렇게 살게 해주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어떤 영혼이든 결국엔 자신이 겪은 슬픔을 적은 쪽지를 다시 선택하게 된다고 해요.”
 

  ― 왜 그럴까요.
 
  “그건 ‘슬픔의 나무’에 적힌 다른 이들의 사연을 다 들으면 그래도 자신이 겪은 슬픔이 가볍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해요. 혹시나 나만 더 슬프고 외롭다고 외치고 있진 않나요?
 
  인간은 (절대자처럼) 무슨 힘이 없기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시인 김남조(金南祚) 선생님은 ‘슬픔도 인간의 양식(糧食)’이라 하셨습니다. ‘비탄도 양식’이라 하셨어요.
 
  박완서(朴婉緖·1931~2011년) 선생님은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의 죽음을 견디기 어려워 남을 원망하고 신을 원망하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으셨대요. ‘내가 원망할 수 있는 절대자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원망하는 존재, 그 존재에 대한 감사를 통해 천주교 신자가 되셨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삶에 슬픔을, 이 지독한 비극을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고 봅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이 대목에서 시인의 ‘수선화에게’가 떠올랐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시 ‘수선화에게’ 전문

 
 
  “슬픔이야말로 가장 큰 비밀”
 

  ― 정말, 이 순간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시간에 의탁할 수밖에 없어요. 시간엔 치유(治癒)의 힘이 있어요. 슬픔이 완벽하게 치유되지는 않겠지만, 그 시간이 치유의 힘이 되어 그래도 고통의 무게를 조금 가볍게 해주지 않을까요?
 
  그리고 결국엔, 우리 인간의 존재는 절대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남을 용서할 수 없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용서는 신의 몫입니다. 내 삶의 비극과 슬픔을 신께 의탁하면 어떨까요?
 
  인간은 비극적 존재이고, 인간은 슬픔이라는 운명적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시를 쓰는 이유도 인간 삶의 비극 속에서 그 비극을 서로 나누고 위로하는 과정입니다.”
 
  호흡을 가다듬은 뒤 조용히 이렇게 말을 맺었다.
 
  “우리 인생에 많은 비밀이 있습니다. 슬픔이야말로 가장 큰 비밀이죠. 그 비밀을 경험하면서 이 슬픔을 받아들이지 않고 긍정하지 않을 때 더 슬프지 않을까요? 슬픔이란 인생의 비밀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우리는 무얼 먹고삽니까. 물과 공기, 밥을 먹고삽니다. 슬픔도 우리에게 양식과 같아요. 슬픔은 우리 삶의 가장 본질적 가치입니다.”
 
 
  “새해는 우리 삶의 첫눈과 같아”
 
  ― 한 해가 저물고 또 한 해가 찾아왔어요. 새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까요.
 
  “새해를 떠올리면 첫눈이 생각나요. 어릴 때 제가 살던 고향엔 눈이 많이 내렸어요. 모든 것이, 모든 싸움과 분노와 상처가 다 눈으로 덮이고 우리는 그 눈길에 새로운 발자국을 새기게 됩니다. 새해 첫날처럼 말이죠.
 
  새해에는 첫눈이 푸짐하게 내렸으면 좋겠어요. 첫눈이 함박눈으로 내려 대립과 갈등의 지붕들을 새하얗게 덮어 하나 되게 했으면 좋겠어요. 갈 곳 없는 노숙인의 추운 발길 위에,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는 노인의 구부정한 가슴속에도 더 많이 내렸으면 좋겠어요.”
 
  첫눈은 내리지 않는다
  이제 기다린다고 해서 첫눈이 내리지 않는다
  내가 첫눈이 되어 내려야 한다
  첫눈으로 내려야 할 가난한 사람들이
  배고파 걸어가는 저 거리에
  내가 첫눈이 되어 펑펑 쏟아져야 한다
 
  오늘도 서울역까지 혼자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명동성당의 종소리가 들렸다
  땅에는 저녁별들이 눈물이 되어 굴러다니고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릴 수 없어
  나는 오늘도 그의 제자가 될 수 없었다
 
  별들이 첫눈으로 내린다
  가장 빛날 때가 가장 침묵할 때이던 별들이
  드디어 마지막 첫눈으로 내린다
  커피전문점 어두운 창가에 앉아
  다시 찾아올 성자를 기다리며
  첫눈으로 내리는 흰 별들을 바라본다
 
  -시 ‘마지막 첫눈’ 일부

 
등단 50년, 잊을 수 없는 선생님
  “열심히 노력한다면 넌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구나”

 
대구 범어3동에 세워질 정호승문학관. 사진=대구 수성구청
  김진태 선생님은 정호승으로 하여금 시의 길을 걷게 한 분이다. 그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쩌면 시를 쓰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1964년, 대구 계성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 때의 일이다. 당시 소설을 쓰던(그때는 선생님께서 《만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당선됐는지 몰랐다고 한다.) 김진태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느닷없이 시를 한 편씩 써오라는 숙제를 냈다.
 
  교과서에 실린 김영랑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등의 시를 배우고 있었다. 정호승 학생은 시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동시 외에는 시를 접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시를 써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일주일 내내 걱정만 하다가 하루 전날 ‘자갈밭에서’라는 제목의 시를 써서 학교에 갔다.
 
  “다들 숙제해왔나?”
 
  “네!”
 
  그런데 선생님께서 유독 정호승을 지목해 다시 물으셨다.
 
  “호승이, 니 숙제해왔나?”
 
  “네.”
 
  “그럼 일어나서 한번 읽어봐.”
 
  숙제를 안 해오고도 해왔다고 거짓말을 했다간 큰일 날 순간이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시를 읽었다. 지금은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린 날 가난의 체험을 여름날 자갈밭에 나뒹구는 자갈들에 비유해서 쓴 시였다.
 
  “으음, 아주 잘 썼군.”
 
  대뜸 선생님의 손이 고구마처럼 생긴 그의 까까머리를 쓰다듬었다. 뜻밖이었다. 한번 슬쩍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몇 번이나 쓰다듬는 것이었다. 그러고 한 말씀 더 덧붙였다.
 
  “열심히 노력한다면 넌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구나. 앞으로 열심히 한번 써봐.”
 
  다만 숙제를 해갔을 뿐이었는데, 선생님은 그가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훌륭한 시인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 한마디 말씀이 인생을 바꾸어놓을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
 
  2023년 3월이면 시인 정호승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구 범어3동에 ‘정호승문학관’이 들어선다. 시인은 그곳을 ‘내 시의 고향 동네’라고 말해왔다. 세월이 흘러, 밤에 피던 달맞이꽃 꽃잎이 순간순간 벌어지던 모습을 지켜보며 신기해하던 꽃밭과 수박을 넣어두던 우물은 사라졌어도 추억은 그대로다.
 
  대구엔 수많은 시인이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지만, 시인의 이름을 단 문학관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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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대교수    (2023-01-02) 찬성 : 4   반대 : 0
정년을 일년 앞둔 공대교수 입니다.
정호승님과 같은 시대를 살 수 있어 행복합니다.
수선화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제가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암송해 주는 시들 중의 일부입니다.
정선생님 덕분에 우리 젊은이들에게
인생에 대해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 해줄 수 있어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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